이탈리아 도시기행 -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이 있는 상쾌한 이탈리아 문화산책
정태남 글.사진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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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명은 지중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를 품고 있는 나라들은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집트와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지역 등이다. 또한,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 아시아국들도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이중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이며, 서양문화의 뿌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저자는 7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유럽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주요 매체에 글을 기고하던 건축사다. 그는 '넥타이를 맨 보헤미안'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유럽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열정은 2007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수상하게 했다.

 

이 책은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볼로냐, 베로나, 제노바, 밀라노, 토리노 등 6개 도시와 중부 이탈리아의 피렌체, 피사, 아렛쪼, 시에나, 로마 등 5개 도시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의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아말피 등 4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시칠리아 섬의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시라쿠자 등 3개 도시로 그의 여행은 끝을 맺는다.

 

비록 여행 전문 가이드북이 아닐지라도 이 책은 이탈리아를 여행코자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매매우 유용한 실용서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 이탈리아의 전체 모습을 폭 넓게 조망하고 있다. 자, 그를 따라 여행에 나서보자.

 

 

 

 

베네치아

 

머나먼 옛날 이탈리아 반도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다. 북동쪽 지역엔 베네티라는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의 베네토주州이며, 주도가 바로 베네치아이다. 영어식 표기는 베니스다. 베네치아의 뜻은 '베네티의 땅'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베네치아를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베니스는 가보고 베네치아는 바빠서 못갔다는 대답을 듣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이곳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철도용 다리로 1846년 오스트리아가 세웠고, 다른 하나는 1933년 파시스트 정권이 세웠는데 지동차용 다리이다.

 

다리를 통과한 기차는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한다. 산타 루치아는 '빛의 성녀聖女'다. 이곳 산타 루치아 성당에 성녀의 유골이 보관되고 있다. 역을 건립하면서 이 성당은 헐렸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다. 유골은 유리상자에 보존되어 있는데, 체구가 작은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다.

 

산타 루치아역 앞 광장에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바포렛토)에 승차했다. 이 버스는 증기선으로 수상버스를 일컫는다.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따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대운하 양편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특히, 명문가 콘타리니 가문이 소유했던 1400년대의 카 도로는 화려함과 세련됨이 가히 환상적이다.

 

대운하는 삐딱한 'ㄹ'자 모양으로 베네치아 심장부를 휘감으며 관통한다. 그 폭은 약 30 ~ 90미터이다. 수심은 약 5미터, 총길이는 약 3.8km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약 180개의 작은 운하와 약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이 놓여있다. 베네치아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한 친환경 도시 건설의 모범 사례이다.

 

바포렛토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훈족의 말발굽 소리가 커지자 베네토 주민들은 공포를 피해 배를 타고 이곳으로 피난왔던 것이다. 이후 6세기 후반 게르만족 계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육지로 피신해왔다. 697년 지도자('도제'라고 불렀음)를 선출하여 공화정체제의 도시국가 기틀을 다졌다.

 

섬하면 고립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역발상을 한다면 섬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렸다. 육지와의 교역에 눈을 뜨고, 이를 위해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에 관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쌓기 시작했다. 이후 베네치아는 바다로 진출하면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급성장하여 14세기엔 라이벌인 제노바를 굴복시키고, 15세기엔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섬은 더 이상>

 

리알토 지역은 세계 각지의 상품이 모이던 곳이며, 셰익스피어<베니스 상인>에 나오듯 금융의 중심지였다.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 위에 건립된 최초의 돌다리인데, 다리 양편에 우아하게 디자인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본디 이 다리는 목조였지만 자주 무너지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돌다리로 대체했다. 당시 공모전에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인물이 응모했지만 당선작은 무명의 안토니오 다 폰테의 안이 채택되었다. 1592년에 아치 구조로 완공되었다. 관강객들을 태운 곤돌라가 다리 밑을 지난다. '산타 루치아'노래가 들려온다.

 

산타 루치아역을 출발한 바포렛토가 남쪽을 향해 약 40분쯤 지날 때 오른편 앞에 커다란 돔이 솟아오른다. 바로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델라 살루테는 '건강의'란 뜻이다. 1629년 초여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2년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1630년 10월 베네치아 원로원은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바치는 성당을 지어 이 재앙을 퇴치코자 했다. 디자인 공모를 거쳐 1631년 공사에 착공하자 놀랍게도 흑사병이 수그러들었다. 1681년에 완공되었는데, 베네치아 도시의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115만 개 이상의 말뚝을 땅 속에 박아 넣었다니 대단한 건축술이다.

 

드디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이지만 이슬람 풍이 가미된 팔랏쪼 두칼레('도제의 궁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공화국의 정부종합청사였다.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기둥과 창틀이 윗부분을 받치고 있다. 1340년에 착공되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증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말해준다.

 

발걸음이 자연히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먼저 대성당에 눈길이 간다. 산 마르코는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가의 이탈리아식 표기다. 마치 동화 속의 건물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양파 모양의 5개 쿠폴라(돔)는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베네치아의 중요 행사는 이곳에서 열렸다.

 

대성당 정면 입구 위에 네 마리의 청동말과 그 아래 5개 아치에 장식된 화려한 모자이크에 시선이 모아진다. 모자이크 중 베네치아의 상인이 산 마르코의 유물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몰래 빼돌려 오는 장면이 흥미롭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이집트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있었다. 산 마르코의 유물이 보관된 수도원에서 두 상인은 유골을 구입하여 출항시 이를 빵 바구니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이슬람 신자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덮었다. 가져온 유물을 보존하려고 과수원 옆에 성당을 세웠는데, 976년 이 성당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자 1063년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착공하여 30년이 지난 1094년에 완공했다. 과수원 자리가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 되었다. 

 

네 마리의 청동말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온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태자 알렉시우스가 황제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면 엄청난 보상과 동지중해 무역 독점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황위에 앉도록 했지만 약속을 어기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약탈을 감행했다. 이때 가져온 약탈품인 것이다. 베네치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흥하면 망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아드리아 해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베네치아도 해상권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부귀영화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음악, 미술, 연극, 출판 등 문화의 전성기를 거치다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벌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1720년 12월 29일에 개업했는데, 원래 상호는 카페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콴테, 즉 '개선하는 베네치아 카페'였다. 상호가 너무 길어 주인의 이름을 따 '카페 플로리안'으로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카페는 나폴레옹, 바이런 등 저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특히, 이 카페는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바람둥이의 대명사 격인 카사노바도 이 카페를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시라쿠자

 

시라쿠자는 이탈리아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도고도의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와 품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고대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며,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다. 신약성경에는 '수라구사'로 표기되어 있다.

 

시라쿠자의 역사가 시작된 오르티지아 섬에 들어간다. 이 섬의 초입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유적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 건너 이탈리아반도 남단의 남서해안과 시칠리아섬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8세기너온 사람들이 '쉬라쿠사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것이 현재의 시라쿠자이다. 당시로 거슬러가면 그리스의 문화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따라서, 시라쿠자는 로마에 비해 문화가 매우 앞서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칠리아 최대강국으로 시라쿠자가 부상하면서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으며 이곳으로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여류 시인 사포가 망명 생활을 했고,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을 초연했으며,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건설에 대해 설파했다. 

 

17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시라쿠자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바로크 풍으로 재건되었는데, 이곳의 두오모도 자세히 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유적 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사이 곳곳에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도 곳곳에 있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아레투사의 샘은 신기하게도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다. 파피루스는 민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샘은 민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전설이 있다.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의 아들 알페이우스는 요정 아레투사를 보고 반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오르티지아 섬으로 피신해 샘으로 변한다. 그러자 알페이우스도 강으로 변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서 바다 밑으로 흘러 오르티지아 섬까지 와 이레투사 샘과 합류한다. 이 신화도 따지고 보면 지질학적 구조 때문이다. 시칠리아 본토에서 흘러온 차네강이 바다 밑 지하로 이곳까지 연결된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에 들어섰다. 요정 아레투사의 전설을 묘사한 분수 조각이 눈길을 끈다. 그 오랜 옛날에 발가벗은 채로 질주하던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여 "헤우레카! 헤우레카!"를 외치며 백주에 달린다. 이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나는 알아냈다'라는 뜻이다. '유레카'는 영어권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하고 귀국해서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부력의 발견이다. 시라쿠자의 왕 히에론 2세가 순금 왕관에 싸구려 금속이 섞였는지 알아보라고 명했던 것이다.

 

30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박해에 기승을 부릴 때 이곳 귀족 집안의 처녀 루치아가 갑자기 약혼을 파기하고 지하 동굴에 숨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가곤 했다. 어두운 동굴이라 그녀는 머리에 나뭇가지 관을 쓰고 그 위에 촛불을 얹어 앞을 밝혔다. 그런데, 배신감을 느낀 약혼자의 밀고로 그녀는 두 눈이 뽑히고 참수형을 당했다. 후세에 성인으로 추대되어 '빛의 성녀'가 되었다.

 

루치아의 유골은 400년 동안 시라쿠자에 보존되어 있다가 이탈리아 동부 아브룻쪼 지방의 한 성당으로 옮겨졌고, 10세기 후반 프랑스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가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산타 루치아의 것으로 믿어지는 유골이 발견되자,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이를 보존코자 산타 루치아 성당을 건립했다. 이후 기차역이 세워지면서 이 성당이 없어지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 밖에도 바다를 정복했던 구두쇠들의 고향 제노바, 아르노 강변에 핀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중세의 역사가 숨쉬는 토스카노 언덕의 소도시 시에나, 매력이 넘치는 로마, 산타 루치아 노래가 흐르는 곳 나폴리, 파도치는 저력 아래에 숨겨진 지상낙원 아말피, 영원히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 등 18개 도시를 함께 거닐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을 소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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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에게 주는 선물
안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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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은가요?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는 바로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행복을 먼 곳에 있는 보물 쯤으로 여기고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하던 보물찾기 처럼 온 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무슨 일이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엄마! 형제 돼지 한 마리가 없어졌어요!

뭐라고! 형제 돼지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어린 돼지 소풍 이야기다. 엄마 돼지는 형제 돼지를 일렬로 정렬시키고 한 마리씩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그제사 엄미 돼지는 사태를 파악한 듯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는 아기 돼지들을 안심시킨다. 아기 돼지들은 모두 자신을 제외하고 열심히 숫자를 센 것이었다.

 

우리의 행복도 그렇다. 늘 내 곁에 있어온 것인데, 찾아보겠다고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잃어버린 행복이 결코 아니다. 자신에게 늘 있었던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 갖고 있어도 음미하지 못했을 뿐이다. 돈이 있어야, 지위가 높아야 행복한 줄 알고 우리는 늘 아우성 속에 살고 있다.

 

 

 

 

 

벗기

 

행복의 첫 걸음은 '벗고 비우기'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수치심, 죄의식, 무기력, 두려움, 분노, 자존심 등의 오물들이 가득하다. 어느 누구도 이런 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만든 것은 나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 이 경이로운 빛이 매일 내 온 몸을 가득 비춰줌에도 우리는 이 신비로움을 맞이할 줄 몰랐다. 이 행복의 빛을 맞이 하려면 우리 자신의 마음을 씻어야 한다. 씻고, 벗고, 또 비워 찬란한 그 빛과 하나가 되라.

 

많은 사람들은 '조건부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조건부란 뭘 의미할까? 돈, 명예, 지위, 권력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말한다. 과연 그럴까? 큰 집을 가져도, 멋진 외제차를 가져도, 국회의원이 되어도, 성형수술로 예쁜 모습으로 바뀌어도, 또 다른 부족함으로 결코 그 조건은 채워지지 않는다. 현재라는 선물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가올 미래는 허망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늘의 연이 바람에 두둥실 떠있다. 맞바람이 없다면 연은 절대로 날 수 없다. 맞바람이란 바로 자기 앞의 시련이요, 생각을 달리 하면 성장을 도와주는 맞바람인 셈이다. 자신에게 불어오는 그 바람을 피하지 말고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맞이해보자. 시련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 시련은 또 반복된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자, 그의 저서 <무소유>를 웃돈을 얹어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소유란 자신의 마음 속에 내 것을 만들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란 무집착이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이 책에 집착을 한다니 얼마나 아이로니한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은 '허상虛像'의 타파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空'으로 표현한다. 본디 내가 없는데, 내 이름, 내 지위, 내 재산, 내 명예에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하는 법이다. 참된 나를 아는 것, 그리고 '참나'의 본질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부처임을 알게 된다고 설파한다.

 

 

설렘

 

행복의 둘째 걸음은 설렘이다. 이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만남의 약속이 성립된 이후 온종일 거울 앞에서 거울 속의 나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이 옷이 좋은지, 아니면 저 스타일이 좋은지, 어떤 표정이 귀여운지, 어떤 말투가 매력적인지 등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이 세상은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너와 내가 같을 수 없는 법이다. 자기만 옳고 타인은 모두 틀렸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신념을 넘어 아집으로 중무장하여 세상을 산다.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의 갑옷은 더 두껍다. 다양성을 인정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세계만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이를 강요까지 한다. 내 지인 중 한 사람이 이런 관점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거지가 된 인물이 있다. 지금도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살고 있어 맘 아프다.

 

사내에는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편도 들고, 저 편도 든다. 한마디로 무색무취의 꽃이다. 이런 사람을 리더로 모신다면 그야말로 멘붕이 될 것이다.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자기만의 향기를 갖되, 타인의 향기도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내 색깔과 향기는 뭘까?

 

나는 누구인가?

지금 느낌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최선'과 '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홀로 침묵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침묵 속에 홀로 존재해보라. 어느 순간 평온함을 느낀다.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삶에 대한 감사와 긍정이 절로 생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존재와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하기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우리는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 성공이란 부와 지위로만 정의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과 기쁜 웃음 속에도 있기 마련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성적올리기'가 아니다.

 

소통의 기본은 사랑과 감사로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먼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소중한 손님을 맞으려면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성심껏 대화를 나눈다면 그 소통은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내 마음도 하루에 수백 번 바뀌는데,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갈등을 피하는 것보단 오히려 즐겨라. 때론 대화보다 냉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갈등이 무서워 안전한 관계만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관계는 바로 죽음이다.

 

 

깊어지기

 

최고의 칼은 수천 번 이상의 달아오름과 망치질, 그리고 차가운 담금질 속에서 탄생한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닥쳐오는 비바람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담금질 하다보면 어느새 깊어져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겐 난초처럼 은은하고 깊은 향이 난다.

 

나의 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왔다. 자신의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만들라고 주문했다. 물론 이 향기가 향수의 내음이 결코 아니다. 남에게 봉사하고 베푸는 삶은 향기가 난다. 잘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아낌없이 퍼주기만 한다. 결코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더구나 기념 촬영은 절대로 안한다. 가진 게 많아서 베푸는 게 아니다.

 

부처는 도와주어도 내가 도와주었다는 상像을 가지지 말고 도와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는 상에 갇히면 받는 사람도 불편해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그 상에 갇혀 있으면 자만하게 되고, 또 도와준 대가로 뭔가를 바라게 된다.

 

아이가 빨리 걷게 하려고 일찍 보행기를 태우는 젊은 엄마가 있다. 이는 아이의 성장에 치명적이다. 이럴 때는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치를 열고 나비가 되려면 애벌레의 발버둥이 안타까워 누에를 풀어버리면 이 애벌레는 영원히 나비가 될 수 없다.

 

회사 구내식당의 풍경이다. 휴대전화를 받으면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밥을 먹을 때는 온전히 그 밥에 몰입하자. 사람을 만날 때는 온전히 그 사람만 느끼자. 마찬가지로 일할 때는 온전히 그 일과 하나가 될 때, 그 끝에서 돈도, 명예도, 권력도 나온다.

 

 

어린 돼지의 무지함처럼 우리도 무지한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만든 생각의 장막 때문에 실재를 보지 못한다. 그 안에 늘 존재하고 있던 행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더 하려고 애쓰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자. 아주 길고 평안한 호흡을 느껴보자. 그 속에도 행복의 작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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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 임윤택 에세이
임윤택 지음 / 해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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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불가능한 건 절대 없어!

 

음악전문 방송 Mnet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장장 3개월 동안에 이뤄진 서바이벌은 출연자들의 화려한 공연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4명으로 구성된 울랄라세션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출연자 중 소위 갑甲이었다.

 

특히, 울랄라세션의 리더인 임윤택이 위암 말기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 팀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이미 미사리 카페촌에서 그 실력이 출중하다고 널리 회자되고 있던 공연 팀이었다. 이들은 버스커 버스커와의 결승에서 당당히 우승하여 상금 5억원을 거머 쥐었다.

 

이 책은 임윤택이 이 땅의 청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따스한 에세이다. 때론 그와 함께 비정상적인 처결에 울분을 느끼고, 때론 당당하게 현실에 맞서는 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때론 꿈을 찾아 열정을 쏟는 그의 용기가 나에게 전염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춤추는 것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는 그 시절 최고의 이벤트가 유치원 재롱잔치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꺼려했지만 재롱잔치에서 추는 춤은 한번도 싫어한 적이 없었다. 춤을 잘 추면 대개는 활달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의 그의 모습은 내성적인 성격에다 뚱뚱한 '비만 아동'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여행 때 장기자랑에서 구경한 급우들의 춤 솜씨에 반해 이후 그는 그룹 '듀스'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비만은 춤을 추는 사람에겐 공공의 적이다. 그는 춤 연습을 위해 다이어트를 실행했다. 한편, 댄서 가수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녹화하여 이를 학습 교재로 활용했다. 미국 방송 AFKN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주말에 방송하던 <소울 트레인>에는 흑인 가수들의 다양한 춤들이 소개되어 많은 춤 동작을 배울 수 있었다.

 

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자연히 모여들었다. 현재 울랄라세션의 스케줄 관리를 담당하는 우진과의 인연도 이때 생겨났다. 중학에 진학해서도 춤 연습은 계속 되었다. 수업이 파하면 다들 모여서 연습에 몰두했다. 장소는 주로 집 근처 초등학교 뒤편 공터였다.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일이 생겼다. 2학년 체육대회 때 학급 대항 댄스 대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는 춤 동아리 급우들과 함께 출전하여 전 학년을 통틀어 우승하는 실력을 뽐냈다. 학교 내에서 영웅이 되었다. 3학년 졸업여행 때는 학생회장의 요청으로 한 시간짜리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무렵 그와 동아리의 부모님들이 연습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공식적인 연습실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팀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루트 H', 정식 팀 명칭도 생겼다. 이들의 꿈도 덩달아 커졌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더욱 큰 물을 원했다. 댄스 대회에서 이미 인사를 드린 적 있었던 구의원을 찾아가 단독 콘서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원을 약속받았다. 콘서트는 대박이었다. 천 명이 넘는 관중이 구민회관을 가득 메웠다. 관중들의 환호성은 그들의 미래에 큰 힘이 되었다.

 

비만한 몸집과 소심한 성격 때문에 그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같은 중학교을 다니게 되자 또 다시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이번엔 그냥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실컷 패주었다. 그 때의 그가 아니었다. 한번은 자신을 괴롭히던 축구부원이 경남 진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로부터 사과를 받고자 진해까지 내려가는 집요함을 보였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나타난 그에게 한 선생님이 핀잔을 주자,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운이 좋게도 이러한 그의 당당함을 선생님이 무시하지 않고 수용해주었다. 비록 칭찬은 아니라해도 그를 인정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그를 탄생시킨 원동력인 듯하다.

 

"아이들과 외모가 좀 다르다고 해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리 노랗고 귀걸이를 하는 천상 착한 사람과, 깔끔한 옷을 입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기 치는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옳은 건가요? (중략)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칙 원리주의를 고집하는 선생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댄스 팀 활동에 더욱 주력했다. 그가 결성한 루트 H가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자 연예기획사는 춤에 특별한 자질을 보이는 3~4명에게만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를 막지 못하고 실력 좋은 친구 3명이 떠나면서 연습실도 폐쇄했다. 그는 당구장에서 빈둥대는 방황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후 재결성하여 그는 엔터테이너로서 미사리 카페촌에서 색다른 공연을 시작했다. 기존의 미사리는 발라드 위주의 조용한 공연이 주였다. 2000년을 기점으로 가수 춘자가 무대에 서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는 중이었다. 발라드 외에 디스코, 알앤비 등 다양한 노래들이 공연되었다. 그는 이제까지 미사리에서 선보인 적이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리더 임윤택, 춤 솜씨가 날로 발전하는 박광선, 노래를 제일 잘하는 김명훈,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군조, 눈빛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박승일 등 5명이 울랄라세션의 멤버이다. 20년 지기 친구 우진은 이들의 매니저이다. 군조를 제외한 4명은 <슈퍼스타 K>에 도전하면서 기존의 가수 못지 않는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얼마전 그는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울랄라컴퍼니'라는 기획사를 설립했다. <슈퍼스타 K> 우승 후 매력적인 조건의 영입 제안들이 쇄도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위해 내린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 책은 그의 멘토인 이외수 작가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진정성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없지.

임 단장이 겪은 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 이외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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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힘든 터널을 빠져나오나 했더니 다시 복병이 나타난다. 유럽의 재정위기. 이 녀석이 좀 뛰어보려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는다. 힘이 든다. 암담한 현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정말 앞이 캄캄하다.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추천한다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뭔가 해법이 있을까 하고서.

 

 

 

 

 

타력他力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他者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했다는 생각은 얕은 생각으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내 운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타력他力''자력自力'은 각각 '타력정토문他力淨土門''자력성도문自力聖道門'이라는 대립개념으로 일본의 불교를 이분二分해왔다. 이후 '자력'은 각고면려刻苦勉勵를 슬로건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로 편입되어 왔기에, '타력'은 남에게 의지하는 소극적인 삶의 방식으로 오해되어 왔다.

 

저자 이츠키는 '타력'을 이야기하면서 지금과 같은 난세에 살아남으려면 '타력'을 한 줄기 빛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약한 인간에게 '타력'의 은총이 찾아온다는 것이 결코 어리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탄식하고, 분노하고, 웃고, 울어온 사람들의 내면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 책에는 100가지의 힌트가 수록되어 있다. 결국에는 '타력'이라는 한 가지로 수렴된다.

 

 

'타력'이라는 불가사의한 감각

 

사람은 누구나 평생 몇 번쯤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해야 하는 중병에 걸리거나, 명예나 지위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또는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가면서 완화되거나 소멸한다. 지나고 나면 기가 막히고 감탄하게 된다.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세월이 흘러 멀쩡하게 우리들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는 경우를 왕왕 만난다. 인간은 정말 끈질긴 존재다. 이 불가사의한 힘은 뭘까?

 

 

'안 되는 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안 되는 건 안 되고, 못하는 건 못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어거지는 결코 통하지 않는 법이다. 개개인의 노력이나 선의도 보답 받지 못할 때는 보답 받지 못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형편 좋을 때 지인에게 경제적 도움을 줬는데, 본인이 막상 어려워져 손을 내밀었지만 외면하는 경우 말이다.

 

세상 살다보면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는 경우도 있다. 노력이 보답받는 일 또한 드물지만 있다. 노력이 결코 헛되다는 것이 결코 아니란 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직한 이는 대체로 손해를 본다. 또한, 노력이 보답 받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비상시'를 헤쳐나가는 강력한 사상

 

'비상시'"국가적 또는 국제적으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이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며 전시 비상체제로 돌입한 적이 있다. 당시 먹는 걸로 투정부리는 아이들에게 일부 어른들은 전쟁터에 나가있는 병사들의 노고를 생각하라고 고압적인 설교를 했다.

 

작금의 경제적 위기는 나라의 '비상시'이지, 개인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구촌 경제가 국가와 사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자살, 이혼, 범죄, 파산, 실업 등의 사건들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는 지금이 바로 '비상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비상시'에는 '비상시'의 사상과 삶의 방식이 있다.

 

 

'본원타력'이야말로 생명력의 진정한 핵심

 

'타력'이라고 하면 '타력본원他力本願'을 떠올린다. 타력본원은 일반적으로 '네가 하는 대로 내맡김', '남이 하는 대로 내맡김'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즉 '자력'의 반대말로 통용된다. '타력본원'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내맡기거나 무책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유달리 선명하고 강력한 세계관에 기초하는 대사상이며, 위기에 직면한 인간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힘이라고 해도 좋다. 굳이 종교를 논하지 않더라도 모든 현대인의 마음에 작용하는 격렬하고 큰 힘이 바로 타력이다. '비상시'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강하게 흔드는 에너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을 실감하다

 

'염불'이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외치는 것을 말한다. '나무'는 산스크리트어의 '나마스'를 한자로 바꾼 것이라 한다. 또 '나모'라는 말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둘 다 존경과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삿말 '나마스떼'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아미타'는 산스크리트어의 '아미타유스' 또는 '아미타바'와 연관되는 말이다. 중국인은 '아미티유스''무량수無量壽''아미타바''무량광無量光'으로 번역했다. 아미타유스는 '우주에 힘차게 흐르는 끝없는 생명의 에너지', 아미타바는 '세계의 모든 곳 구석구석을 비추는 진리의 빛'으로 이해하면 된다.

 

'불''부처'이다. '부처'의 원래 의미는 '깨어난 사람',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을 온몸과 마음으로 깊이 자각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이 말은 석가모니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본디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저편에서 다가오는 것

 

오로지 염불하면 쉽게 왕생한다고 일본 정토교의 시조 호넨法然이 말한다. 진종眞宗의 확립자 신란은 한걸음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아기처럼 순수하고 무심하게 '부처'에게 귀의하라는 것이다. '귀의'란 스스로의 결심에 의해서라기보다 오히려 '커다란 힘'에 저절로 이끌리는 것이다.

 

"염불만으로도 충분하다"

 - 호넨法然

 

"내 소관이 아니다"

 - 신란

 

호넨이라는 위대한 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타인으로부터 듣는다. 이미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좀처럼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스스로 찾지 못하다가 친한 친구나 가족 중 누군가가 오늘 호넨 님의 법문이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권할 수 있다. 이는 '저편에서 다가오는 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가지만 가능하고, 사실은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후원해주고 있다는 감각이 잇어야 가능하다. 스포츠 선수들은 누구나 기술을 연마코자 무한반복 연습한다. 막상 실제 경기에선 보이지 않는 힘이 우승을 결정한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그런 존재가 힘을 빌려주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 구시켄 고지, 체조선수 <1984 LA 올림픽 개인종합우승>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운명론도 아니고 숙명론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 때 자기를 초월한 커다란 자유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종교적인 것에 눈을 뜸으로써 안심입명安心立命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신앙이 깊어도,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두려움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혼란한 시대에 살고있는 만큼 뭔가 고민이 될 때, 곁에 두고 이 책을 펼쳐 보자.

 

지독하게 고민하고 번민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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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장애는 왜 두 번 일어났을까? - 미즈호은행, 동일본 쓰나미 그 후 시스템 장애에서 얻은 교훈
[닛케이 컴퓨터] 편집부 지음, 이영희 옮김 / 한빛미디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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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 또는 소설에 의하면 인간이 만든 로봇과 기계 또는 전산시스템이 오작동되어 편익인 커녕 오히려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내용의 경고성 스토리를 다룬다. 새로운 밀레미엄을 맞이할 즈음 국내에서도 소위 'Y2K' 문제로 모든 금융기관 내지는 기업들이 밀레미엄 버그를 방지하기 위해 선투자를 감행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 갑자기 시스템 장애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종 스케줄 관리표가 사라져 허둥대야 하고, 고객들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연락을 못하거나, 폰 뱅킹으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보낼 수 없는 등 황당한 경험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 사용하던 폴더형 휴대폰이 길바닥에 강하게 떨어지면서 부서지고 말았다. 바로 A/S센터를 찾아 수리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 모델이 오래된 구형이라 부품자체를 구할 수 없어 수선이 불가능하며 더 큰 문제는 휴대폰에 저장된 데이타도 전혀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때로는 아날로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은 전화부에 일일히 기록해 둔다. 

 

이 책은 2002년과 2011년 두 번이나 대규모 시스템 장애를 일으켜 은행을 이용하는 수많은 고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했던 미즈호은행의 시스템 장애 사건의 적나라한 고발이며, 또한 이런 장애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 관리 방법과 경영 방식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999년 8월 20일 다이치간교은행, 후지은행, 니혼코교은행의 총재 3명이 함께 '전면 통합'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통합으로 재탄생한 회사가 바로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며 2002년 미즈호은행,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 그리고 미즈호증권으로 각각 분사했다.

 

'세 은행의 전면 통합'은 일본의 IT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것이다

 - <닛케이 컴퓨터> (1999년 9월 13일호) 중에서 

 

당초 세 은행은 IT를 재구축해 금융 비즈니스 세계에서 생존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는 달리 명확한 경영 전략과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기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합병이나 통합은 보통 '100일 승부'라고 말한다. 내부 의견 조율에 실패하여 허둥대다가 2002년 4월 1일 합병을 맞이했다.

 

통합의 최대 난관은 대형 컴퓨터를 사용하는 계정계를 비롯한 핵심 시스템이다. 계정계는 예금, 융자, 내국환이나 외환 업무를 처리한다. 세 은행이 합병되면 셋이던 계정계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더구나 비슷한 규모의 세 은행을 두 은행으로 재편하므로 화합보다는 오히려 갈등으로 대치하는 상황 때문에 정보시스템의 통합은 멀고도 먼 길이었다.

 

계정계시스템의 통합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완전히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여 기존의 것을 전부 이관하는 것이다. 두 번째, 생존 기업의 시스템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로 이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옮긴다. 여기서 복잡한 요인은 각 은행의 시스템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정보시스템의 통합 프로젝트는 통합후 새로운 은행이 어떤 전략을 채택할 것인가에 맞물려있다. 즉 새로운 시스템의 모습이 결정되면 기존 시스템에서 부족한 부분은 새로이 개발 보완되고 불필요한 것들은 하나씩 폐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게 될 대표 총재인 후지은행의 야마모토 총재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자. 왜냐하면,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합병이란 단순히 하나가 되는 산술이 결코 아니다.

 

"앞으로 시스템 통합과 전략 시스템의 개발 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기자회견 전에 시스템 부서장에게 서둘러서 검토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 야마모토.후지은행 총재

 

이 답변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정보시스템 통합 문제를 기술적인 문제로만 보고 경영적인 판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같은 업종의 컴퓨터라 쉽게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과, 시스템 부장에게 업무를 일임한다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 등이 나타났다.

 

후지은행니혼코교은행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통합 비용, 제각각 진행되는 계정계시스템의 통합 작업, 미비한 프로그램, 온라인 처리를 위한 통신 프로그램의 난관 등을 안고 있었음에도 다이치간교은행의 시스템 담당 임원 CIO는 문제가 없다고 선언하면서 2002년 3월 29일 오후 10시 역사적인 신新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돌입했다.

 

계좌이체 처리가 원할하지 못했다. 3월 31일 분의 이체 처리가 완료되지 않아 계정계시스템 전체가 멈추게 되었다. 계좌이체가 종료되지 않아 확인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대기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하는 수가 없어 4월 1일 오전 7시에 계좌이체를 종료시키지도 않고 계정계시스템 전체를 풀가동했다. '모 아니면 도 였다'

 

시스템 장애와 복구 상황

 

4월 1일후지은행 이외의 ATM에서 구 후지은행 현금카드를 사용한 거래 불가

           직불카드 서비스 불가

           현금 인출이 안되면서 잔액만 줄어드는 147건의 문제 발생

 

4월 6일 이중 인출처리를 수정했지만, 미수정분 1,000건이 남음

 

5월 1일 계좌이체 결과 데이터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전환하여 재개 

 

이후 계좌이체 장애를 처리코자 불철주야 수작업을 진행했다. 데이터 변환 작업을 2004년 7월에 끝내고 12월까지 이행 작업을 진행했다. 구 후지은행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정보계시스템은 2004년 6월에 일원화를 끝냈다. 2004년 12월 미즈호은행은 정보시스템 일원화를 종료했다. 경영 통합 발표후 5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1년 3월 14일 미즈호은행에 의연금 이체가 몰리자 대규모 장애가 또 다시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난 직후, 의연금 이체가 몰리자 미즐호은행의 계정계 시스템에 일일저장가능한 거래명세 건수가 상한값을 초과했다. 이 때가 오전 10시 16분이었다.

 

은행 통장을 이용한 사람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통장 1행이 거래명세 1건이다. 그런데, 거래 건수가 상한값을 초과한 이유는 a계좌의 설정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송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계좌는 통지예금으로 등록한다. 이는 거래명세를 기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거래명세 건수가 상한값을 초과하는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의연금 송금은 오후 3시가 지나도 계속 쇄도했다. 낮 동안 밀려든 a계좌의 송금 데이터를 처리하던 야간 배치처리도 오후 10시 7분에 비정상 종료되었다. 이 처리 건수도 상한값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처리 건수에 상한값을 두는 이유는 정보시스템의 처리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은 시스템 담당자가 설정 처리의 존재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미즈호은행은 구 다이치간교은행의 계정계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STEPS'라는 이 시스템은 1988년에 가동된 것으로서 무려 23년 전의 정보처리 설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설계상의 문제점을 23년이나 방치한 채 사용해왔고, 이것이 시스템 장애를 불러온 것이었다.

 

시스템 당담자는 17시간이나 지나서야 시스템 담당 임원에게 보고했다. 어느 조직이든 있는 일이지만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보고도 없이 해보다가 결국 안되면 나중에 보고하는 일이 왕왕있다. 담당 임원은 서비스 개시가 늦어지는 걸 막고 싶어서 온라인 처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스템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15일 오전 9시, 사과인사 하기에 바빴다.

 

"죄송합니다. 시스템 장애로 거래를 접수할 수 없습니다" 

 

미즈호은행은 '비정상 처리 시나리오'를 자동운용시스템에 적용하지 않았다. 운용 매뉴얼도 준비되지 않았다. 시스템 담당자가 즉흥적으로 비정상 처리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밤새 작업을 했다. 매뉴얼 부재와 즉흥적인 수작업은 오류를 양산하면서 장애는 더 확산되었다. 16일 아침 ATM 장애가 발생하고 말았다.

 

악순환이 지속되자, 미즈호은행은 마침내 두 가지 결단을 내렸다. 첫째, 정보시스템의 계획 정지다. ATM이나 인터넷 뱅킹 등의 서비스를 정지시켰다. 둘째, 연휴 3일 동안 ATM을 중지하는 대신에 지점을 오픈하여 현금 인출을 허용했다. 계좌 잔액이 확인되지 않아도 예금자를 위해 10만 엔까지 지불했다. 

 

'동작하지 않는 컴퓨터'를 없애는 십계명

 

경영진이 시스템 도입을 지휘하고, 전사의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직원을 투입한다

여러 시스템 개발 회사를 비교하여 자사에 가장 정통한 업체를 선택한다 

시스템 개발 회사를 하청 취급하거나 개발비를 깍지 않는다

시스템 구축에 관한 능력을 파악하여 무리하지 않는 계획을 수립한다

사내의 책임 체제를 명확히 한다

설계나 요건 등 상위 공정에 시간을 투자하고, 요건 확정 후에는 변경하지 않는다

개발 진척은 자사에서 파악하고 테스트와 검사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시스템 가동시까지 포기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도입한다

시스템 개발 회사와 유상 A/S 계약을 맺는 등의 방법으로 유지보수를 확립한다

'부주의로 인한 오류'를 경시하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한다

 

 

장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위기 상황의 발생시에 경영진의 역할이 운명을 좌우하는 법이다. 따라서, 시스템을 모르면 차라리 집으로 보내야 한다. 미즈호은행은 시스템 장애가 두 번씩이나 발생했다. 단순한 '운영 오류'는 9년 전의 시스템 장애로 충분했다. 두 번째의 장애는 경영진의 '판단 오류'에 기인한다. 이러한 장애는 어느 회사에도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견지해야 비즈니스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하겠다.

 

우리 회사 전산시스템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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