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비 우먼 - 여성 리더 15인의 운명을 바꾼 용기있는 결단의 순간
김선걸.강계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여성이든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복잡다단한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여성들은 인생의 새로운 관문을 거칠 때마다 좌충우돌하게 된다. 임신과 출산 문제를 비롯해 육아 문제가 있다. 이런 새로운 관문에 맞닥뜨리는 순간, 여성은 인생의 분수령이 될 만한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내리게 되곤 한다.

 

 

 

열다섯 명의 한국 여성들이 선택한 길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기도 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섀릴 샌드버그는 세계 최고의 명문 하버드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재원이다. 그녀는 미국 재무부, 매킨지, 구글 등에서 활약해온 여성 리더로 그 어떤 여성보다 큰 주목을 받는 소위 '잘나가는 여성'이다. 이런 그녀도 여성이기에 겪는 유리천장의 고통을 토로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뉴욕 맨해튼 사모펀드의 최고층 회의실에 간 그녀가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당신은 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한 첫 번째 여성이거나 아니면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첫 번째 여성일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즉 여성용 화장실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남성들만의 세계에 최초로 진입한 여성들이 마주치는 현실을 짐작케 해준다.

 

이런 케이스가 단순히 셰릴 샌드버그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어머니부터, 우리의 아내, 우리의 여동생들이 이미 겪어왔고, 또 우리의 딸들이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그런 어려움이다.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에는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레이마 그보위의 스토리도 실려 있다. 그녀는 라이베리아의 독재자를 권좌에서 몰아낸 여성운동가이다.

 

그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날 셰릴의 집에서 레이마의 자서전 출간 파티가 열렸다. 당시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라이베리아 여성처럼 전쟁과 테러와 성폭력에 고통받는 여성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질문하자, 레이마는 간단하게 해답을 내놓았다. "영향력을 손에 쥔 여성들이 많아지면 됩니다"

 

그렇다. 리더의 위치에 올라서는 여성이 많이질수록 이들이 여성의 관심사항과 요구사항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엔 세계 모든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편 상황들이 점찾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한국의 15 명 여성들도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책에는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였다가 마흔 넷에 수험생 딸을 두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 로펌 일을 처리하느라 불철주야, 심지어 주말조차도 반납하고 일하는 가운데 육아도우미까지 계속 바뀌는 힘겨운 상황을 겪었던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순경 출신-고졸-여성'이라는 3대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퇴근 후 녹음해둔 대학 강의를 들으며 집안일을 해 온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 무허가 판잣집에 살며 중학교 때부터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등 지독한 가난을 겪었던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 삼성증권 최초 여성임원인 이재경 상무, 포스코 역사상 최초 여성임원인 오인경 상무 등 각 분야 1호 여성이 1인자로 등극하기까지의 위대한 인생 드라마가 담겨 있다.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

 

충북 청주 출신으로, 청주 대성여상을 졸업한 후 경찰공무원 시험을 통해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청 과학수사계장, 경찰청 여성정책실장, 충북 진천경찰서장,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 광주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을 거쳐 부산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2014년 12월 경찰제복을 벗고 현재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며 제2의 경찰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가 고3이던 열아홉 살 때, 5년째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렇잖아도 어려운 가정 형편이 급격히 더 나빠졌다. 미대에 진학하려던 그녀의 꿈은 실현불가능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5남1녀의 외동딸인 그녀는 혼자서 6남매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결심을 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변곡점이 있다. 그녀의 변곡점은 아버지의 죽음이 초래한 셈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대학이나 은행 취업을 선택했지만 그녀는 순경 시험에 지원했다. 엄마를 잘 보살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그녀는 순경 교육을 마치고 희망 배치 근무지로 청주를 선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평생을 경찰직에 몸담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결혼하면 자연스레 가정주부로 돌아가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1982년 전국 몽타쥬 요원 선발시험에 응시해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미술학도의 꿈을 이렇게 보상받게 되자 서울에 위치한 경찰청 과학수사과로 인사발령이 났다. 순경이 된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승진시험을 치뤄 경장으로 승진했고, 그 무렵 교제하던 남친과 결혼을 했다. 과학수사과의 업무에 큰 보람을 느끼면서 진짜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녀의 남편은 유통 회사에 근무하므로 주말엔 일하고 월요일엔 쉰다. 맞벌이 부부의 인생이 어디 쉬우랴? 일요일에 그녀는 '남편 없는 과부'로, 월요일엔 남편이 '아내 없는 홀아비'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부부의 슬하엔 세 딸이 있는데, '진짜 엄마'는 따로 있다. 바로 그녀의 시어머니다.            

 

경찰이란 직업은 해야 할 업무가 있으면 출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범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말에 현장 지문 등 감식이 들어오면 경찰청 사무실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사무실 구석이나 복도에서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절단된 신원 미상의 손가락 증거물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보게 됐지만, 이를 일부러 숨기지는 않았다. 사실 책상 주변을 치울 여유도 없었다. 이렇게 그녀는 '엄마가 일하는 곳'을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혹시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이 있다면 단지 육아와 가사 때문에 멈추지는 마십시오. 정 힘들면 주변에 도움을 구해보세요. 어려운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여성 분들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이금형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로펌과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서 일했고 한국시티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다. 이후 정치권에 입문해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여성가족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등을 지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 법과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주는 자신의 세 가지 행운을 평소에 즐겨 자랑했다. 첫째는 일찍 부모를 여읜 탓에 남들보더 일찍 철이 들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워낙 약골로 태어났기에 항상 건강 관리에 신경을 기울였기에 아흔이 넘어도 정정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저학력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겸손하게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조윤선 전 장관은 마쓰시타 회장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여자이었기에 불모지에 뛰어든 결단 덕분에 '여성 1호' 타이틀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즉, 성차별이란 유리천장을 오히려 그녀는 블루오션으로 만들어낸 셈인데, 이는 결국 여성이란 핸디캡이 만들어 준 행운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약사다. 평생 딸에게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밤늦게까지 부엌방을 공부방으로 차려서 한약사 시험을 준비하던 모습, 그리고 운전면허를 준비할 때 식탁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그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그녀의 가슴에 '평생 배움과 전문성'이란 어머니의 가르침이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로서 그녀 역시 피할 수 없는 3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즉 임신, 출산, 육아 문제였다. "한 여성의 직장생활은 온 우주가 나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애로를 토로한다. 이중에서 가장 큰 위기는 육아였다. 보모 아주머니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김앤장 변호사로 재직하던 중 한 금융기관에서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이에 멘토로 모시던 원로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그녀는 금융기관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따져본 결과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 원로 변호사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나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인데 그런 수준으로 생각해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후 생각을 고쳐, 자신이 그 자리를 맡아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어떤 기분일까 등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를 생각하자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걸 경험한 이후부터는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항상 '내가 그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슴이 뛰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기준으로 결정해왔다. 그렇게 내린 그녀의 결정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에는 여성이 직장에 진출하는 것을 도와야 했지만, 이제는 여성이 직장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때가 되었어요. 젊은 세대들이 우리 세대를 보며 너무 사치스로운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조윤선 

 

 

이민재 엠슨 회장

 

이 회장 역시 사업 초기엔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술 접대, 골프 접대는 물론 사우나를 함께 다니며 영업을 하는 경쟁사 남성들에 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좌절감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특히 당시엔 구매 담당자나 기업체 대표 등이 여성이라면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몇 푼이나 번다고 돌아다니느냐"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고 비애를 느꼈어요.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엄마의 끈기라는 건 이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회장은 주변에서 같이 사업하던 남성들이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많이 봤지만 본인은 끈기를 가지고 그들보다 더 치열하게 도전했다고 말했다. 어떤 얘기도 꾹 참고 웃으면서 명함을 내밀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은 바로 가족과 위기감 때문이었다. 마흔네 살, 평범한 전업주부 생활을 즐기던 그녀의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하자 두 자식의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당시 큰 아이는 대학 1학년, 작은 아이는 고3이었다.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금성방직에서 5년간 일했던 게 전부였던 그녀에게 찾아온 위기는 바로 기회였던 셈이다.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녀를 필사적인 창업으로 내몰았다. 1987년 돈을 빌려 펄프지를 수입하는 작은 무역 회사를 설립, 18평짜리 사무실에서 광림무역상사가 출범했던 것이다.

 

"끈질기게 버티고 기다려야 합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가진 후엔 모성애를 바탕으로 초월적인 힘을 낸다고 하지요. 그런 슈퍼파워를 잠재력으로 지닌 사람들은 여성뿐입니다. 몸속에 내재된 그 끈질긴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않고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 이민재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

 

위에서 살펴본 3명의 여성 리더외에도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 여성 최초로 국내 금융사 CEO를 역임한 손병옥 프루덴셜생명 회장, 삼성증권 최초 여성 임원인 이재경 삼성증권 상무, 42년 포스코 역사상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오인경 상무, 1세대 여성 IT 벤처 기업가로 스물일곱에 창업해 20년간 기업을 건실하게 일궈온 송혜자 우암코퍼레이션 회장, 전국에 104개의 직영매장과 헤어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인생을 바꾼 드라마틱한 결단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결정적 순간이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다양한 상황과 입장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중국 상하이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가지 않고 아이들과 한국에 남아, 약 7년동안 워킹맘 생활을 하며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은 결단을 인생 최고의 결단으로 꼽았다.

 

이들이 내린 결단 중에서 한결같은 공통점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제대로 갖추겠다'는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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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치의 두 얼굴 - 서울대 교수 5인의 한국형 복지국가
안상훈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리스의 실패와 스웨덴의 성공을 보면 국가 발전전략으로서 '좋은 복지전략'은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크기'만 얘기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의 문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정치적 결정은 국민들의 의식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국민여론이 얼마나 잘 집약되어 있는가는 변화가 필요한 순간 그 나라의 명운을 결정한다. - '서문' 중에서

 

 

복지 정치는 두 얼굴을 가졌다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을 분석하고 사회 통합을 모색한 서울대 사회복지학, 정치외교학, 경제학, 사회학, 언론정보학 교수 5인이 다시 모였다. 이번 주제는 '한국형 복지의 방안과 해법'이다. '성장'만으로 더 이상 '복지'를 해결할 수 없는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정치권과 언론계,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실현해야 할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현실적 해법을 모아 한 권으로 엮었다.

 

복지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다. 더욱이 삶이 팍팍해질수록 우리 사회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열띤 공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의 고민은 유럽의 고민과는 다르다. 유럽은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웨덴vs 그리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통 가능한 나라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만든다', '앞으로 10년,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그들은 어떻게 복지 이슈를 이용하는가', '국민이 행복한 복지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등 다섯 개의 주제로 한국 복지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 전망을 함께 다룬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간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난 한국 경제는 지금 저성장의 국면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국가발전략의 화두는 '복지국가'다. 현재 이러한 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좋은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지는 정치권의 행보에 달린 셈이다.

 

복지정책과 관련해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 그것은 복지정책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2012년 대선 경쟁시 '복지정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공한 스웨덴의 복지국가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들여올 수도 없다. 그들은 이미 오랜 세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들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책의 다섯 저자들은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

 

1. 스웨덴과 그리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스웨덴과 그리스의 성패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누구와 더 가까운가? 한국이 이미 그리스행 특급열차를 탔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 정치인들은 복지와 세금에 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2. 소통 가능한 나라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만든다 ~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스웨덴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 반면, 그리스는 현재까지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과연 한국은 정치인과 정부, 국민 간의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3. 앞으로 10년,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는 각각 심각하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령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이를 풀기 위해 남은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세 가지 문제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4. 그들은 어떻게 복지 이슈를 이용하는가 ~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선거 때마다 쟁점이 되는 복지 정책은 왜 구호에만 그칠까. 언론과 정치권의 역학관계에 그 이유가 숨어 있다. 상호 필요한 존재이면서 견제하는 이 둘은 복지 이슈를 어떻게 이용할까?

5. 국민이 행복한 복지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집이 돼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집'을 건설하는 데 있었다. 복지정치 없는 복지정책에 머물고 있는 한국은 이제 장기적 차원의 복지국가를 모색해야 할 때다.

 

 

"복지는 곧 정치다"

 

선진국들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사정에 따라 차별화되는 복지국가를 꾸려가고 있다. 스웨덴과 그리스, 두 나라의 복지국가 행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쪽은 지구촌 여러 나라로부터 성공신화에 박수를 받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망국亡國의 늪에 빠진 모양새이다. 두 나라는 모두 동일한 복지국가를 지향했는데 왜 이처럼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      

 

복지정책과 관련해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이 있다. 그것은 복지정책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정치에서도 복지가 화두로 등장하게 된 사건은 '무상급식'이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설처럼, 무상의 파급효과는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차별적인 무상급식을 내세웠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진사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복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사전에 깊은 성찰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야권에선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해 '무상급식'을 공약公約으로 내세우자,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사회보장기본법에 관한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보수파의 합리적 복지확대를 선언했다. 이후 여당은 박근혜식 복지확대론으로 야권을 궁지로 몰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 만다.

 

지나간 과거 시대의 복지는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충족되었다. 이른바 성장만능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복지에 관한 국가 차원의 준비 타이밍을 놓친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후 그동안 억눌린 복지 욕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성장주의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고 압축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위의 그림[1-1]을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크게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복지국가를 통해 불평등이 개선되는 정도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향후 성장에 의해 우리의 불평등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복지의 확대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림[1-2]는 국민소득 수준에서 각국의 복지지출 수준을 보여준다. 첫째, 한국은 복지출 수준이 가장 낮다. 1만불 시점에서 스웨덴이나 독일은 20%선을 넘고 있는데 한국은 5% 대도 한참 하회한다. 둘째, 한국은 지속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복지증가를 보여준다. 앞서 나가던 스웨덴과 독일은 25,000~30,000 불을 거치면서 약간 지체 내지는 낮아지는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복지지출 증가속도가 빨라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험한 복지'는 사실 수준이나 속도만 갖고서 얘기할 순 없다. 위험한 복지라는 표현도 옳지 않다. 좀 더 세련된 표현법으로 구사하자면 '지속불가능한 복지'가 되겠다. 한국의 경우 출발부터 복지수준이 워낙 낮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험수위라고 단정짓기엔 논리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복지확대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정치가 문제인 듯하다. 보수와 진보 측 양당이 큰 복지를 외쳤지만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쪽에선 '부자증세'를, 다른 한쪽에선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약속했다. 과연 이들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안이 시급하다 하겠다.

 

복지정치란 무엇인가?

 

20세기 사회과학의 관시밍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합리적인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복지전략이 도출되려면 정치가 어떠해야 할까? 마치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만큼이나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의 이론은 복지 확대기와 축소기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초기 복지정치론의 대표주자는 북유럽의 '권력자원론'이다. 이에 따르면 처음엔 자본가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정치마저 좌지우지하지만 민주정치가 활성화됨과 함께 유권자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일반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의회에 더 많이 진출하게 되고, 마침내 좌파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국정운영권을 잡게 되면 자본주의의 폐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각종 입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익집단정치론은 권력자원론이 북유럽과 일부 유럽에 국한되는 얘기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복지입법은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반응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정치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유권자로서의 이익집단은 자신들을 위한 복지확대를 요구하므로 정치인들은 이를 결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가 복지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선거가 있었던 해엔 복지지출을 증가시켰던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국가의 황금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 무렵 막을 내렸다.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성장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몇몇 나라에선 복지축소와 세금감면 등 신자유주의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동조하면서 '방만한 복지'에 대한 개혁 조치들이 힘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지난 시기엔 낙관적이었던 모든 전망이 이젠 회색빛으로 변해버렸고, 연금을 깎고,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 일이 선진국 정부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복지축소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가 공통과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림[1-4]는 복지재편기에 각국의 복지지출이 어떤 변화를 껶었는지 보여준다. 첫째, 대체로 복지 후발주자에 속하는 나라들의 성장 기울기가 좀 더 가파르다. 둘째,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대부분 나라에서 복지 지출 증가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셋째,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1990년대 초반의 상승에 이어 다시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넷째,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선도국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스웨덴의 성공과 그리스의 실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리스의 경우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복지 혜택을 줄이고 경제의 생산성을 올리는 방식에서 스웨덴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성공한 반면에 그리스는 위기를 당하자 국민들의 의견 차이가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흔히 한 사회가 노령화될 때 노인의 증가가 가져오는 재정 부담에 주목하지만 늘어난 노인이 정치 지형도를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의 비중이 증가하면 복지를 비롯해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든다. 즉 그냥 이 상태로 오래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써 복지 개혁을 비롯한 어떤 개혁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복지정치의 미래는 사회적 대타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 복지'를 끈기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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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 국정운영을 말하다
시진핑 지음, 차혜정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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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 주요 내용을 18개의 주제로 나누고 각 주제의 내용은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그리고 중국의 사회제도와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각 편 말미에 필요한 주를 달았다. 특히 18차 당대회 이래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담은 사진 45장을 함께 수록하였다. - '출판에 붙이는 글' 증에서

 

 

중국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중국은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을 벗어나 점점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은 영국을 방문했다. 이와 관련해 인민일보는 24일 시 주석이 중국경제, 남중국해, 사회주의 이념,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등의 문제에서 세계가 중국에 대해 품은 의구심을 명쾌하게 해명했다며 이를 '8가지 메시지'로 정리했다.

 

 

 

먼저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6.9%를 기록하며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자 시 주석은 영국방문의 기회를 빌어 중국경제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피력했는데, 21일 런던 중영 기업인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의 성장은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얻어진 것"이라며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은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중국 경제가 일정 수준의 하방 압력을 받고 있고 일부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주요 경제지표는 여전히 합리적 구간에서 운용되고 있고 예상 목표의 범위에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영국 방문 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중국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원으로 계속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굴기 중인 중국이 미국처럼 '세계 경찰국가'가 되길 바라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에도 열심이었다. 시 주석은 런던 길드홀 만찬연설을 통해 "중국은 평화발전의 길을 견지할 것이며 '강대국은 패권을 추구하기 마련'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어떤 이유로든 평화발전의 길을 가겠다는 중국의 결심과 의지를 흔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소위 '세계경찰'이 되길 바라지도 않으며 누구의 자리를 빼앗지도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영원히 패권이나 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뜻을 타국에 강압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과 갈등이 커지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해명보다는 강한 어조로 자국의 입장을 설파했다. 시 주석은 "남중국해 제도는 예로부터 중국의 고유 땅으로 옛 조상들이 물려준 것"이라며 "중국인민은 중국의 주권과 남중국해 관련 권리 및 이해를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남중국해 관련 조치는 자국의 영토 주권을 수호하려는 정당한 반응"이라며 "팽창주의는 자국 영토 바깥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인데 중국은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고 따라서 그런 의심과 주장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일당독재 체제의 사회주의에 대한 서방의 비판적 시각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시 주석은 길드홀 연설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은 중국인이 선택한 길"이라며 "중국이 입헌군주제, 의회제, 대통령제 등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발이 모두 똑같을 필요는 없다. 신발을 신는 사람의 발에만 맞으면 된다. 그런 것처럼 국가의 체제도 같을 필요는 없다. 거기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또 중국이 세계 2대 경제대국이면서도 '개발도상국'이라는 하위범주에 숨어 지나치게 엄살을 피우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그는 "중국 내부의 기준으로는 중국에는 여전히 7천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의 기준을 따르면 빈곤선 이하의 인구는 2억명으로 늘어난다"는 논리를 내놓았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임을 내세워 국제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중국의 기여율이 30%에 이르고 있으며 국제원조, 평화유지 활동에 모두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앞으로 5년 안에 중국은 10조 달러 상당의 상품을 세계에서 수입할 것이고 대외투자 규모도 5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며 5억명의 중국인이 해외에 나가 관광과 쇼핑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개방 확대가 지속될지도 관심사 중 하나였다. 시 주석은 "개방은 중국 번영의 중요한 동력이며 세계 각국과 합작공영을 실현하는 초석"이라며 "중국 개방의 대문은 절대 닫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서구의 우려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서방에서는 일대일로가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의 부를 빨아들이는 밀매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시 주석은 중영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일대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함으로써 이웃을 더 넓게 확대한 개념"이라며 "일대일로는 중국 개인의 도로가 아니라 모두가 손잡고 갈 수 있는 공용 도로"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중국 상무부는 올들어 3분기까지 중국 기업이 일대일로 구상에 포함된 48개 국가에 120억3천만 달러 상당의 직접 투자를 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부패관료들의 해외 도피와 관련해서도 "세계의 어느 국가 지역도 부패 분자나 이들의 범죄수익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각국 사법기관 간 수사공조와 정보공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책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올라 중국의 1인자가 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모은 '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한다習近平談治國理政'의 한글판이다. 지난해 6월까지 어록을 한데 모았다. 그의 주요 연설과 담화, 발언, 문답, 축하서신 등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내용을 읽다보면 2022년까지 중국을 통치할 시진핑의 정책 방향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 주석을 두고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베이징TV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한 방향 설정이 돼 있고,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믿음이 가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더욱이 시 주석은 중국 안팎에서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에 버금가는 강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다

 

공산당원으로서 사상적 신념과 정신적 추구를 확고히 지키는 것은 입신양명의 기본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앙,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공산당원의 정치적 영혼이며, 어떠한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는 정신적 기둥입니다. 이상과 신념이란 공산당원의 정신적 '칼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신념이 없거나 확고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칼슘 부족' 현상이 나타나 '골다공증'에 걸리게 됩니다. 현실에서 일부 당원과 간부들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신념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당은 18차 당대회의 구체적인 배치에 따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이론 체계, 특히 과학적 발전관을 깊이 학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당성黨性을 강조하고 품행을 중요시하며 솔선수범하는 태도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공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합니다.

 

당과 인민대중, 간부와 인민대중 간에 긴밀한 연계를 확립하고, 인민 대중과 혈연적 연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 당을 불패의 지반에 서게 하는 근본적 토대입니다. 한 정당과 한 정권의 운명은 결국 민심의 향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인민의 옹호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지속적이고 건전한 경제 발전을 촉진하다

 

개혁개방 이후 우리 나라는 경제사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하여 경제 규모가 세계 2위로 도약하였으며, 주요 경제지표는 세계 선두 대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경제는 규모는 크지만 강하지 못하고, 성장 속도는 빠르나 최적화되지 못했음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주로 자원 등 요소 투입에 의존하여 경제성장과 규모를 확대하던 조방형 발전 모델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인구는 총 10억여 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13억이 넘는 중국의 인구가 전부 현대화에 진입한다면 세계 선진국 수준의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기존의 선진국 인구가 자원을 소모하던 방식으로 생산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 자원을 전부 사용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기존의 길이 통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은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과학기술 혁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산요소와 투자 규모 위주의 발전에서 혁신 드라이브 위주의 발전으로 서둘러 전환하는 것입니다. 

 

 

평화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다

 

내년은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과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유엔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국제사회는 이 중요한 계기를 잘 이용하여 다자주의에 대한 약속을 재천명하며,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을 지키고 유엔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에 진력해야 합 니다.

 

국제사회는 함께 노력하여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해야 합니다. 첫째, 정치적인 충돌을 해결하려는 방향을 견지해야 합니다. 현재 세계적인 이슈들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도리에 맞게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강압적인 수단을 써서는 안 되며 외부의 무력 개입은 더더욱 곤란합니다. 정치적 해결만이 유일한 탈출구이며, 유엔은 이러한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합니다.

 

둘째, 공동 발전의 목표를 실현해야 합니다. 유엔은 정치, 도의적 우위와 총괄적 조율의 역할을 발휘하여, 2015년 이후 발전 어젠다를 정하고 빈곤 퇴치를 핵심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해야 합니다. 중국은 금년 9월에 개최되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원만히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국제 사무에서 유엔의 선도적 역할을 견지해야 합니다. 유엔은 반테러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고 국제사회가 모든 형식의 테러리즘을 결연히 반대하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인터넷 문제에 있어 유엔은 주요 경로 역할을 발휘하여 규칙, 주권, 투명성을 강조하고 정보 안전에 대한 각국의 관심을 존중함으로써 공동 관리를 실현해야 합니다. 중국은 유엔의 업무를 확고히 지지할 것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대국 관계 구축을 추진하다

 

조금 전 저와 오바마 대통령은 첫 회동을 가지고 각기 자국의 내외 정책, 중 · 미 간 새로운 형태의 대국 관계 및 공동 관심사인 국제 문제와 지역 현안에 대해 심도 있고 진솔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저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은 평화적 발전 노선을 흔들림 없이 걸어 갈 것이며, 개혁의 심화와 개방의 확대를 확고부동하게 추진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고 인류의 평화와 발전이라는 숭고한 사업을 힘써 촉진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중국의 꿈은 국가의 부강, 민족의 부흥,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평화, 발전, 협력, 공영의 꿈이며, 미국의 꿈을 포함한 세계 각국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도 일치합니다.

 
저와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 글로벌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과 각국이 한배를 탄 운명체라는 객관적 요구에 직면하여, 중 · 미 양국은 역사적으로 대국들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며, 또한 걸어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이에 양국은 새로운 형태의 대국 관계를 구축하고 상호 존중하고 협력 공영하며 양국 국민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여하자는 데 합의 했습니다.

 

 

부패 척결 및 청렴화를 추진하다

 

인민이 불만을 가지는 부분은 즉시 개선해야 합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감찰부와 각급 기율검사기관, 감찰기관은 검사와 감찰의 강도를 높여 기율을 제대로 집행하고 문책과 통제를 철저히 실시해야 합니다. 돌을 밟으면 자국이 남고, 쇠를 잡으면 흔적이 남을 정도로 힘을 기울여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며,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전당과 전체 인민의 감독을 받고 인민대중이 실질적인 성과와 변화를 계속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패를 결연히 척결하는 것은 우리 당의 역량을 드러내는 일이며, 전당 동지와 많은 인민의 공통된 염원이기도 합니다. 우리 당은 고위급 간부를 포함한 일부 당원 간부의 심각한 기율 위반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여 엄중하게 처리한다는 확고한 의지와 뚜렷한 태도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당의 기율과 국가의 법률을 위반하면 예외 없이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처벌을 받는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당과 전 사회에 표명하는 것입니다.

 

당을 엄격히 관리하는 데 있어 처벌의 강도는 절대 느슨할 수 없습니다. '호랑이'(고위급 부패 관료-역주)와 '파리'(하위급 부패 관료 -역주)를 함께 잡으면서 지도간부들의 기율 위반, 법 위반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처리할 뿐만 아니라 사건, 인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옳지 않은 풍조와 부패 문제도 철저히 해결해야 합니다. 

 

중공 중앙 총서기 시진핑에 관한 기록

 

1975년, 시진핑은 추천으로 칭화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가 마을을 떠나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그를 배웅했고 많은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으며,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동구 밖 멀리까지 배웅했다. 마을 사람들은 '빈농, 하중농의 훌륭한 서기'라고 새긴 액자를 선물하여 시진핑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를 표하였다.

 
산시 북부 지방을 떠난 후에도 시진핑은 늘 그곳 마을 사람들을 걱정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 전기를 가설하고 다리를 놓았으며 소학교를 개축했다. 푸저우 시 당위원회 서기로 근무할 때는 일부러 량자허 마을에 찾아가 한집 한집 방문했으며,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위문금을 전달하고 아이들에게는 새 책가방, 문구, 그리고 등교 시간을 알리는 자명종을 선물했다. 그 후 푸젠 성 지도간부로 근무할 때는 중병을 앓는 농민 친구를 푸젠 성에 데려가 자비로 치료해 주기도 했다.


 

7년간의 농촌 생활, 7년간의 동고동락, 황토 고원의 순박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먹고 자고 일하던 세월 동안 시진핑은 촌민들과 돈독한 정을 쌓았을 뿐 아니라, 중국의 농촌은 어떤 모습이고 서민의 희로애락은 무엇이며 중국의 기본 실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역 촌민들에 대한 끈끈한 우정과 자기가 딛고 있는 이 땅에 대한 책임감은 그의 인생 목표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이 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그중 한 부분은 혁명의 선배들이고, 다른 한 부분은 우리 산시 북부의 마을 사람들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16세의 나이로 처음 량자허에 왔을 때는 곤혹감과 방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22세에 그곳을 떠날 때는 '인민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인생 목표가 수립되어 있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소강사회'를 달성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 과학적 발전관을 지도 이념으로 정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 중국의 국정 방향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그리고 향후 경제 정책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무척 도움이 된다. 신중국 100년 시나리오가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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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가보 마테 지음, 류경희 옮김, 정현채 감수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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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게이버 메이트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다. 나치의 통치를 받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생애의 첫해를 보냈고 가족들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극한의 고통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아기를 보낸 그는 그 자신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삼았다. 내과 의사이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주의력 결핍 장애', '중독'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펴낸 데는 자기 감정에 대한 성찰과 치유가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자기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먼저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던 영국인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는 1987년 43세의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 합병증으로 숨졌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영화 <힐러리와 재키>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즉 힐러리 뒤 프레와 근육마비증으로 요절한 전설적인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들 자매는 극성스런 부모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처음엔 플룻을 부는 언니 힐러리가 더 촉망받았으나 이에 자극받은 동생 재키가 첼로를 열심히 연습해 마침내 언니를 능가하는 천재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종종 재키의 연주회에서 울었다. 청중과 그녀의 교감은,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숨 막힐 정도였으며, 모든 청중을 마법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연주는 열정적이었고 어떤 때는 침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뒤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클래식 음악의 절제미보다 오히려 로큰롤의 현란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재키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고, 가금은 장난기도 있는 예민한 아이였다. 그녀는 첼로 연주 때를 제외하곤 늘 차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전 생애 동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어머니에게 감추곤 했다. 언니 힐러리는 재키가 감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은밀하게 "언니,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하지만 난 어른이 되면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거야"라고 속삭였던 어린 시절의 오싹한 기억을 얘기한다. 이런 소름끼치는 자기 예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니 힐러리는 혹시 동생 재키의 병이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자 신경과 의사들은 스트레스와는 무관하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의료계의 전통적인 견해는 "스트레스가 다발성 경화증의 유발 원인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재키의 질병과 죽음은 감정 억압이 초래한 스트레스의 파괴적 영향에 따른 사례라고 주장한다.

 

동생이 요절한 후, 언니 힐러리는 1973년 BBC 방송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동생 재키가 녹음한 엘가의 협주곡을 주의 깊게 들어보았다. 이 곡은 재키가 대중 앞에서 행했던 마지막 연주였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군요. 그리고 동생이 연주를 시작했어요. 갑자기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그 애는 천천히 템포를 늦췄어요. 몇 소절 더 지나자 연주가 생생하고 선명해졌어요. 저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재키는 첼로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자신을 위한 레퀴엠을 연주하며 자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지혜를 갖고 있다 

 

내과 전문가인 저자는 많은 환자들의 삶과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 트라우마, 그리고 질병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살펴왔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신체를 공격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앞서 살펴본 재클린 뒤 프레의 사례를 비롯해 유명한 메이저 야구선수 루 게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의 인물을 인용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나중에 천식, 알츠하이머, 암 등으로까지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환자였던 수 로드리게스가 안락사 권리를 위한 결연한 법적 투쟁을 벌여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인 소외를 당했던 사람이다. 10년 안 터울로 줄줄이 태어난 다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항상 외톨이였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수 로드리게스의 대인 관계 내력은, 그녀가 사실은 자신의 삶을 결코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역할들만 수행하며 살았다. 법정과 대중을 향해 그녀가 던진 "누가 제 삶의 주인입니까?"라는 고뇌에 찬 질문은, 그녀의 온 인생을 요약한 것이었다.

 

그녀는 맨 처음 ALS 진단을 받고나서 절망에 빠졌을 때, 자신의 가망 없는 상황을 동료 ALS 환자 스티븐 호킹이 지녔다고 생각되는 이점들과 비교해보았다. "그녀는 완화 의료실에서 여러 장의 팸플릿을 받았다. 그런데 그 팸플릿들은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인' 환자들이나 '정신적인 삶' 속에서 기쁨을 찾는 환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웬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삶은 또 뭐야? 스티븐 호킹 같은 천재나 그런 삶을 살지. 하지만 나는, 나 같은 사람은 몸을 못 움직이면 삶도 없는 거야' "

 

 

젊은 시절 스티븐 호킹은 대부분의 ALS 환자들은 가질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몸은 파괴시키지만 지능은 손상시키지 않는 ALS라는 병의 특성을 감안할 때, 추상적인 사색가야말로 '정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입장에 놓인 사람이다. 암벽 등반가이자 전직 마라토너였던 로드리게스와 달리, 호킹은 신체 기능의 악화가 스스로 선택한 역할을 손상시킨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더 향상시켰는지도 모른다.

 

호킹에게는 있었지만 로드리게스에겐 없었던 필요 불가결한 요소는 사람하는 사람의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원과 실질적인 보살핌이었다. 호킹의 경우, 이런 보살핌의 원천이 현재는 전처前妻가 된 아내 제인이었다. 처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호킹에게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뒤늦게 이는 너무나도 큰 개인적 희생을 요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헌신적 태도가 없었다면 호킹은 일찌감치 생존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인이 자기 포기적인 태도를 받아들이고, 아내에게서 남편에게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에너지 흐름을 받아들이던 동안, 그들의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제인은 결국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두 다 빨려버려 메마른 상태로, "고독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부서지는 텅 빈 조개껍질이 되었고" 자살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호킹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독립을 갈구하는 제인의 이런 분투에, 경멸감과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은 분노로만 응대했다. 결국 제인은 이 과학자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까지 버린 간호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사실 제인 역시 이미 다른 연인이 있었다. 그나마 그들 부부의 마지막 결혼 생활 몇 년 동안 제인이 스티븐을 계속 도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연인 관계 덕분이었다.

 

 

39살의 밴쿠버 시민인 미셸은 지난 7년 동안 가슴에 혹을 지니고 있엇다. 그 혹은 커지거나 줄어들긴 했지만 그녀와 의사들을 한 번도 걱정시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혹이 아주 딱딱해지고, 뜨거워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조직 검사 결과, 악성종양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녀는 그 이유를 안다고 믿고 있다. 바로 스트레스였다.

 

"제가 제 삶을 마구 강타하자 혹이 변화를 일으킨 겁니다"

 

그녀는 실직하는 바람에 병원에 갈 수입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 강타를 얻어맞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유방 절제술을 받았고 다행히 림프선에는 암이 없음이 확인되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수술 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유방암 환자들이 작성하는 설문지에, 자신의 진솔한 아동기 내력을 빠뜨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전前 미국 퍼스트레이디 베티 포드 여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 속에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치료 노력을 용감하게 기술하고 있다. 유방암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가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면 늘 장밋빛 안경을 쓰고 있다. 그녀는 자신과 부모가 평화스러운 목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키려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버리는 전형적인 사람의 예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야심만만한 정치인과 결혼했고, 남편의 이력에 자신의 인생을 지배당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서적 박탈을 당하며 살았다. 그녀는 여러 해동안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는 요통으로 고생했고, 진통제와 진정제 치료를 받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가 자신을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사 그레이엄과 함께했던 내 활동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나는 무용가로서의 재능은 있었지만 위대한 무용가는 아니었다―그리고 내 자신감은 늘 흔들거렸다. 나는 사람들이 내 본연의 모습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학사 학위도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꼈다…… 짧은 교육. 결코 안나 파블로바 같은 무용가가 될 수 없는 사람. 어머니의 절반도 못 따라가는 딸. 나는 불가능한 이상형들과 나를 비교하며 좌절했다"- 베티 포드의 자서전 <내 생애의 시간들> 중에서
 

 

 

자기와 비非자기를 구분하는 심리적 능력에 손상이 발생하면 그 손상은 반드시 생리적 기능으로까지 확대된다. 화禍를 억압하면 면역의 교란이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는 무능감과 자신의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이런 대처 방식은 자기 바운더리가 흐려지고 심리적 차원에서 자기와 비非자기의 혼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혼동이 세포, 조직, 그리고 몸 차원에서도 뒤따른다. 자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면역 세포들이 파괴되거나 무해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면역 세포들이 스스로 몸 조직을 공격한다.


 

때로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긍정적인 지혜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인 로버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유명한 노조 지도자이다. 40대 후반의 그는 서글서글한 성격에다 낭랑한 목소리로 쾌활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는 25세 무렵부터 발뒤꿈치에서 통증을 느꼈고, 그후 12년 동안 어깨 관절과 쇄골 부위에서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병이 화禍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저는 화를 내는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결코 고함을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호흡만 가다듬어도 상대방에게 확실한 말로 제 뜻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강직성 척추염의 장점 중 하나는, 그 병이 갈비뼈를 굳게 만들고, 그래서 앞쪽과 뒤쪽 갈비뼈가 모두 고정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거나 말하는 모습을 통제하려면 횡경막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정상인들은 그곳으로 호흡할 수 없습니다. 저는 병 때문에 불가피하게 횡경막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는 더 많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대화를 제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해줍니다"

 

또 한 연구는 류머티즘 관절염의 고통스러운 염증조차도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절의 유연성이 일주일 뒤 스트레스 사건이 감소한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는 중요한 임상적 의미를 지닌다"고 연구진은 결론지었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과 관절 통증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가, 병의 악화를 통해 부정적인 사회관계가 조절되는 항상성恒常性 체계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병의 재발이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인 관계를 피하라고 강압한다는 것이다. 즉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일했던 분자생물학자 브루스 립턴의 질병, 건강, 치유에 대한 과학적 통찰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대중 강연 때마다 "개별 세포의 뇌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으로 청중의 의표를 찌르곤 한다. 세포의 뇌는 핵이 아니다. 개별 세포의 일생에서 뇌 활동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은 핵이 아니라 세포막이다.

 

그는 "세포는 어떤 주어진 시간에 방어 모드에 들어가거나 성장 모드에 들어가지만, 동시에 두 가지 모드로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한다. 환경에 대해 우리가 지각한 내용은 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된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이 사랑할 만하고 인정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경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적대적인 대상인지를 결정한다.

 

아동기의 환경이 미친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발달 과정 중인 신경계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전기적, 호르몬적, 화학적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된다. 아동기에 겪는 경험들이 세상에 대한 태도를 좌우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맺게 될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브루스 립턴은 이런 과정을 '믿음의 생물학'이라고 불렀다.

 

"나는 강해야 해", "화를 내는 건 내게 옳은 일이 아니야", "내가 온 세상을 다 책임져야 해" 등과 같은 잘못된 무의식적 믿음들은 모두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오해일 뿐이다. 인간의 잠재 능력은 이런 '믿음의 생물학'이 생리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보증한다.

 

사람들이 전통적인 의료를 선택하든, 대안적 치료 방식을 선택하든, 동양적 치료 행위를 선택하든, 심리 치료를 선택하든 간에, 치유의 핵심은 개인의 적극적이고 자유로우며 정보에 근거한 선택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억압적인 외부 상황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해방은 먼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믿음의 생물학'의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때만 가능하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

 

처방은 외부에서 주엊지지만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처방이란 무언가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가정을 전제합니다. 반면에 변화는 본래부터 존재하던 원상태로의 치유, 즉 완전하고 온전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을 가져옵니다. 위대한 생리학자 월터 캐넌의 주장처럼 우리의 신체 내부에는 지혜가 존재합니다. -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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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싶은 토끼
칼 요한 포셴 엘린 글.그림, 이나미 옮김 / 박하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스웨덴 심리학자 칼-요한 포셴 엘린이 쓴 동화로, 심리학에 기반하여 문장의 리듬감을 구성함으로서 아이가 책을 읽으며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파란색 굵은 글씨는 강하게, 초록색 굵은 글씨는 천천히, 군데군데 하품과 같은 행동을 집어넣으면서 뇌에 제각기 다른 정보를 입력시키며 학습 효과와 공감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졸리는 이야기를 해 줄게

 

작가는 1978년에 태어나, 스웨덴의 소도시 후스크바르나에서 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돕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좋아했는데, 스무 살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여 직장을 그만둔 후 스웨덴 대학교에서 6년간 심리학, 리더십, 교육학, 연극, 수사학을 공부했다. 동시에 본인의 사업을 시작해 사람들의 자기계발을 도왔다. 대부분은 개인교습이었지만 나중에는 회사와 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2006년, 처음으로 <미래를 창조하라>를 출간한 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했는데 자기계발과 심리학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다. 이 책 <잠자고 싶은 토끼>를 스웨덴에서 자비 출판한 후 세계 여러 나라로 번역되어 전 세계 어린이들이 편안히 잠들도록 돕고 있다. 다음 책으로 아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워킹 맘은 회사 업무와 상사 및 동료의 관계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귀가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보모나 어린이집에 맡겼던 아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억지 노력을 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데,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샘 솟는지 도무지 잠이 없다. 이럴 때 남편이라도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 사람은 해외 장기 출장 중이다.

 

중력의 법칙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눈꺼풀은 계속 아래로 향한다. 워킹 맘의 고통을 알리 없는 아이는 연신 동화 책을 바꿔 가면서 읽어달라고 곁에서 졸라댄다. '넌, 지겹지도 않니?', 수백 번을 읽어서 토씨 한 자 틀리지 않고 줄줄 외어대면서도 말이다. 그렇다. 아이는 지금 잠을 청하는 의식을 거행 중이다. 보다 편하고, 보다 아늑하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일종의 행사를 치루고 있다.

 

이때 워킹 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결코 지아비도 아니고 더구나 잠을 쫓아내는 아이스커피도 아니다. 듣기만 하면 잠시 후 졸음이 밀려오는 그런 동화책이다. 특히, 잠투정이 심한 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심리학을 공부한 전문가답게 이런 워킹 맘의 심리를 어찌 이리도 꿰뚫고 있는지 정말 기똥찬 동화 책을 만들어 냈다.

 

 

경고! 운전자 가까이서 소리 내어 책을 읽지 마시오

 

하하하, 빵 터진다. 책은 읽는 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강조해서 읽어라', '천천히 부드럽게 읽어라', '하품을 하라' 등등. 잠을 보채는 아이 재우려고 읽다가 워킹 맘이 먼저 잠에 빠질 지도 모른다. 참, 이 책은 오디오북을 앱으로 설치해서 들을 수도 있다. 책 뒤표지의 QR코드로 설치 가능하다.

 

       

 

 

 

 

 

"좋아, 이제 주문을 외우마"

하품 아저씨는 잠들게 하는 강력한 주문을 외기 시작했어.

셋..... 둘..... 하나.....

지금 잠이 든다, 지금 잠이 든다, 나는 잠이 든다.....

 

"레드선"(요건 애드립,ㅎㅎ)

 

 

 

 

"잘 자렴"

 

잠자리에서 자주 깨는 사람에게 우리는 토끼잠을 잔다고 말한다. 동화 책의 주인공은 토끼다. 낮엔 잠을 자다가 밤에만 깨어있는 부엉이, 정말 느리디 느려 자는 건지 가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달팽이도 등장한다. 무성無聲영화를 읽어주던 사람은 변사辯士, 조선시대에 고전소설을 읽어주던 사람은 전기수傳奇叟다. 워킹맘은 지금 아이에게 최고의 변사이자 전기수인 셈이다.

 

 

뜨거운 찬사를 한 몸에 받다

 

"불과 몇 분 만에 아이를 잠들게 하는 마술과 같은 책!"

- 뉴욕 포스트

 

뉴저지 수면 건강 센터 캐롤 애쉬 센터장은 "심리학자인 작가가 쓴 이 책의 성과는 환상적이다. 이 책은 아이들의 수면 습관을 바로잡는다. 게다가 휴식 치료 기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보스턴 아동병원 수면 연구소장인 우마칸트 카타는 "2세부터 9세 아이들의 수면에 대단히 효과적인 책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불면증에 자주 시달리는 아내에게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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