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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고 끈덕지게
박유연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평점 :
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커서만 홀로 깜빡이는 하얀 화면에 첫번째 단어와 문장을 쓰는 것이다. 그게 무서워 오랜 기간 글 쓰는 일을 주저했다. 매우 오랜만에 긴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와 깊게 대화할 기회가 좀더 빨리 잇었다면, 내가 일하며 겪었던 위기를 피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윤종규의 인생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반전시킬 아이디어를 얻었으면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박유연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에서 주로 경제를 담당했다. 지금은 조선일보의 커머스 계열사 '비비드몰'의 대표를 맡고 있다.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지금 당장 세계경제를 공부하라>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가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윤종규의 노력과 성과를 담고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가 KB맨이 된 후 회장에 올라 퇴임할 때까지 여정과 성과를 정리한 파트로 재임 9년 동안 확실한 국내 1등 금융 그룹으로 환골탈태한 변화를 다룬다. 둘째는 유년 시절부터 은행원, 회계사 시절을 지나 KB맨이 되기까지의 인생을 정리한 파트로 그의 집념과 노력으로 어떻게 인생이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삼일회계법인에서 은행으로
(서태식 회장)“내가 주말 동안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너 같이 잘 나가는 파트너가 그런 선택을 한다니. 은행으로 옮기면 지금 받는 경제적 대우는 절대 못 받는다. 네 속마음에 있는 게 정말 뭐냐.”
(윤종규)“말씀 그대로입니다. 금융의 삼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회계법인에서 잘 훈련된 회계사가 기업 경영도 잘 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후배 회계사들의 선택지를 넓혀보고 싶습니다. 은행 CEO가 돼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당시 윤종규는 잘 나가는 삼일회계법인 소속의 전도유망한 파트너였다. 은행 CEO가 되겠다는 포부에 서 회장은 된다는 보장도 없음을 우려하자, 그는 일단 도전해 보겠다며 CFO로 시작해 은행 모든 업무를 관여해 단기간에 견문을 넓히면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이었다. 즉 그는 스스로에게 가능성의 배팅을 한 셈이었다.
꺾여버린 꿈
우리 사회에 소위 '카드 대란' 사태가 있었다. 국민은행도 국민카드 부실이 드러났다. 금융회사에서 손실을 처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돈으로 이를 메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돈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셈이다. 국민은행에서 벌어진 문제는 충담금 회계 처리 방식이었다. 국민카드 흡수 합병 과정에서 아래의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1. 자본 잠식 상태인 카드사에 먼저 충담금을 쌓은 후 흡수 합병할지
2. 흡수한 후 은행이 충당금을 채울지
이에 당시 윤 부행장은 회계법인의 세무 담당자들을 불러 논의했다. 그는 어차피 충당금을 쌓는 금액은 은행이나 카드사 중 누가 하든 같지만 세금 부담에서만 차이가 나므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결정을 선택, 국세청에서 괜찮다는 답변을 받고 그리 처리했다. 그러나 추후 금융당국의 감사에서 이 부분이 지적됐는데, 탈세 목적을 위한 부정 회계로 본 것이다.
징계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윤 부행장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은행 문을 나서면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란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로 심경을 대변했다. 계획했던 모든 일을 완수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는 퇴임사에서 “어느 때보다 변화와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민은행은 리딩뱅크의 지위를 강력하게 도전받고 있다”며 “보리 한 움큼 쥔 손으로 절대 쌀자루를 쥘 수 없듯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노력을 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었던 국민은행에 대한 애정이 담긴 말이었다.
윤 회장의 전략 짜기
KB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선임된 후 KB 성장 전략에 골몰했던 윤 회장은 기존 금융권에서 사용하는 3가지 프레임인 C(customer), P(product), C(channel) 에다 2가지(E와 T)를 추가했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결국 ‘직원’이다. 그래서 Employee의 E를 추가했고, ‘기술’이 매우 중요해졌으므로 Technology의 ‘T’까지 추가해 전략을 짜는 데 활용했다.
윤 회장은 새로운 사업이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반드시 사업화 후 End-image를 그려 보라고 강조했다. 사업으로 회사가 뭘 얻을 수 있을지 명확화하는 것이다. 즉 엔드이미지는 가능한 정교하게 수익 계산 모델을 만들어 수치화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꼭 매출이나 이익일 필요는 없다. 예상되는 고객 증가 등 다른 결과치라도 숫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종규의 3R
윤 회장은 좋은 리더라면 3R(Remove, Reduce, Redesign)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Remove는 보고서 작성 같은 직원들이 시간을 많이 뺏기는 부분을 찾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관성과 타성, 관행에 의해 해 온 일을 없애는 것이다.
Reduce는 필요한 일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필요한 보고서라 하더라도 목차부터 결론까지 길고 화려하게 작성할 필요는 없다. 보고서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것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이다. 이 내용에만 집중한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대거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Redesign은 일의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해야 했는데, 지금은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런 부분을 찾아 디지털화해야 한다는 게 또한 그의 생각이었다. 좋은 리더라면 실시간 쌓이는 정보를 활용해 이런 부분을 찾아 Redesign해야 한다.
어린 윤종규의 꿈
그는 어려서 꿈이 없었다. 가정 형편 탓이었다.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꿈을 심어줄 주변 사람도 없었다. 서울의 명문대나 고시 합격 같은 목표를 희미하게나마 생각해 볼 법도 하지만, 하루하루 버거웠던 삶에선 너무나 먼 얘기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당장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지역에서 명망이 있었다. 대대로 한학漢學을 하는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일제 시대 때 훗카이도에서 광부로 일히다가 귀국해선 마을 이장을 맡았다. 하지만 명성과 인망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었다.
일의 덕목德目
내 회사도 아닌데 무작정 열심히 일하긴 어렵다. 윤종규는 일의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한 대가로 돈을 받는 프로라면 조직에 있는 동안 발자취나 흔적, ‘Footprint’ 또는 ‘Milestone’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의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물이 없을 때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고 일했을 경우가 많다. 보고서를 쓴다면 왜 이 보고서를 썼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윤종규는 훗날 KB 회장이 된 후 직원들에게 ‘3心’을 강조했다. ‘초심, 뚝심, 득심’ 세 가지다. 세 가지 마음이 있으면 개인과 조직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윤종규의 얘기다. 즉 늘 초심을 잊지않고 기억하며, 끈덕지게 실행하고, 주변과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담대하고 끈덕지게
2002년 KB에 합류해 2023년 퇴임하기까지 집념의 21년. 윤 회장은 퇴임사에서 “경쟁에서의 본질적 승패를 가르는 미세한 차이인 ‘앵프라맹스(Inframince)’를 만들어 가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지만 근본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차이’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경영과 리더십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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