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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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팬心]

작년에 서민 교수가 쓴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완전히 서민 교수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겠다고 검색을 했다. 그는 아주 예전부터 많은 책들을 썼다. 심지어 소설도 썼다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서민적 글쓰기>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의 예전 책들을 안 읽은 것이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서민 교수는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에서 자신의 예전의 책들을 완전히 실패작이라고 자기 비하에 가까운 솔직함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글쓰기에 잘 모르던 시절, 이상에 휩싸여 쓴 책들. 그래서 창피할 정도로 실패한 책들이라면서, 그 책들이 책으로써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해 주었다.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은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글쓰기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 아니라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지은이가 서민 교수였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한 내용보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서민 교수의 유머 넘치는 글솜씨였다. <기생충 열전>에서 보았던 황당하면서도 촌철살인 같은 유머. 여전히 그의 글에는 그런 유머가 가득 넘쳤다. 부러울 따름이다. 어떻게 글을 이리도 재미있게 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서민 교수도 처음부터 그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글쓰기 성장기]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글쓰기를 못하는 지은이가 어떻게 지금 글 좀 쓰는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대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온갖 글쓰기를 하였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이 못생기고 말도 어눌하게 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면서 글쓰기에서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첫번째 출간한 책이 <소설 마태우스>라는 단편소설집이다. 그 이후로도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교양 과학 서적을 냈는데, 잇단 실패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책을 자신이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회수해 오기도 하고, 어떤 지인으로부터 책을 그만 내면 안되겠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한때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멈출 수가 없었다. 블로그에 계속 글을 쓰고, 신문에서 제안 받은 칼럼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글쓰기는 그만의 독특한 글로 완성되어 갔다. 자기 비하 수준이 거의 극에 달할 정도의 솔직함, 그리고 파안대소를 하게 만드는 유머를 장착한 글. 그는 심지어 논문을 낼 때 조차도 딱딱하게 사실만 적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유머라는 살을 붙여서 논문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 해외 논문지에 실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실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신문 칼럼이라고 하면 보통 진중함이 잔뜩 배여 있지만, 그의 칼럼은 유머가 장착되어 있어서, 당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그리고 그를 위해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글을 잘 쓸 수  있다고그의 글쓰기에 대한 노력을 보면, 우리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쿵푸 팬더>의 주인공 포를 보는 것 같다. 쿵푸에 그렇게 소질이 없던 포가 쿵푸의 최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포는 뚱뚱하고 별 볼 일 없었지만, 그의 몸에는 타고난 쿵푸의 재질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서민 교수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고 하지만서민 교수 내면의 그런 글 잘 쓰는 유전자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글쓰기를 해도 그런 내공이 쌓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냥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며, 기억의 보조장치로 글쓰기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두 가지 핵심]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두 가지이다. 그 두 가지 모두 지은이 서민 교수가 정리해 두셨다. 먼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이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아래 내용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내용은,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 힐링이 된다. 앞서 기억의 보조장치로 글쓰기를 한다고 했는데, 거기에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바로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이유도 있다. 읽기와 쓰기. 그것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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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래이고,

내일 아침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과장에겐 밥벌이다.

피 끓는 청춘에게는 연애의 방법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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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핵심은 글을 잘 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잘 쓰기 위해서는 마지막 '지옥훈련'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님도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글을 쓰시냐는 질문에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벽에 머리를 쥐어막는 듯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진정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그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때 잘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는다. 직업 글쓰기 꾼도 아니고,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읽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검토도 잘 안해서 오타도 많다. 아래 내용 중에 솔직함, 간결함, 꾸준함, 정확함 정도만 주로 의식하고 글을 쓴다. 비유하기, 돌려까기, 웃기기, 삐딱함 등은 나의 내공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요컨대, 서민 교수님이 이야기는 글 잘 쓰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지옥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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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

.

.

.

.

지옥훈련이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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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블로그를 찾아서...]

서민 교수님이 블로그를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파워 블로그라고 한다. 그래서 서민 교수님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최근에도 가끔씩 글을 올린다. 그래서 팔로워를 신청했다. 가끔씩 업로드되는 그의 글을 보는데, 유머와 솔직함은 여전하다. 간혹 블로그에 올라온 그의 글을 읽으면서 책도 추천 받고, 힐링도 해야겠다

글쓰기는,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래이고,
내일 아침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과장에겐 밥벌이다.
피 끓는 청춘에게는 연애의 방법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17쪽)

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
.
.
.
.
지옥훈련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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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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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소문난 책]

이 책은 재미있다고 소문난 소설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출간했을 때도 신간 소개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표지 디자인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란 책이 성공한 이후로, 파스텔 톤의 단색 바탕에 손글씨로 쓴 듯한 책제목의 표지이런 스타일의 책 디자인의 많은 소설들이 출간되었다. 이런 것도 아류작이라고 하면 아류작 아닐까? 책표지 디자인의 아류작 말이다. 이 책도 또 그런 디자인의 책이 나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도 하늘색의 파스텔 풍의 단색 바탕에 손글씨로 쓴 듯한 제목이 써져 있고, 까칠한 주인공 오베의 캐릭터 그림으로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인기가 꾸준했다. 그렇게 재미있나? 내가 표지에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베스트셀러에도 오르고, 여기저기에서도 추천을 하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읽었다. 바로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힘들게 읽어서 좀 가볍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은이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지은이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사람이고, 이 소설이 그의 첫작품이라고 한다. 책날개의 지은이 약력을 보면 이 사람이 ‘오베라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출간해달라고 요청에 따라 출간을 했다고 한다. 그의 모국 스웨덴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잭 니콜슨이 열연했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란 영화다. 재미있어서 몇번을 본 영화다. 남들이 보기에 아주 냉정하고 까칠한 남자 주인공은 사실은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고, 로맨티스트였다. 그 남자 주인공은 성격이 괴팍하기까지 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그가 동성연애자를 보살펴주는 장면도 있는데, <오베라는 남자>에서도 동성연애자를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는 주인공이 강아지와 엮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고양이와 엮이는 장면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그 영화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이 오베라는 남자 또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은 맞고,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전형화된 캐릭터였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은 리뷰는 여기까지만 읽기를 바란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오베였던 남자]

소설 속 오베는 59살로 아내와 여섯 달 전에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었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침마다 동네를 돌면서 주차 금지에 주차한 차를 보면 참지 못하고자전거도 지정장소가 아닌 곳에 세워져 있으면 보관소에 넣어버리는 그런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영역에 남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이웃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한 그런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까칠함 뒤에 숨어 있는 포근한 사랑이 있다고나 할까? 어떻게 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알려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오베의 어린시절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철도회사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다가 오베 나이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다. 오베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분이었는데, 철도회사는 그런 분의 아들인 오베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 회사에서 일하게 해 주었다. 오베도 그런 아버지를 쏙 닮아서 올곧고 도덕을 중시했고, 양심에 따른 행동을 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 누명을 쓰고도 양심에 따라 남을 고발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소냐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소냐는 오베에게 너무 과분한 여자였다. 고 오베는 생각했다. 아름답고, 책을 몹시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무엇보다 오베를 사랑했다. 둘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오베는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자치위원회의 회장도 맡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소냐가 임신 중에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서 아이는 유산하고, 소냐는 하반신 장애로 아이를 못 가질 뿐만 아니라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소냐는 그 장애에 굴복당하지 않았다. 존경 받는 교사가 되었다. 오베도 평생 소냐를 사랑하고, 소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러던 소냐가 4년 전 암에 걸렸다. 그리고 6개월 전 소냐는 세상을 떠났다. 오베에게 있어 소냐는 삶의 이유였다그런 소냐가 세상을 등지다니이후 오베의 삶은 소냐의 묘지에 가서 잠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거기에 오베는 직장에서마저 실직을 하게 되었다.

 

[자살 시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오베는 자살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소냐의 곁으로 가기로 했다. 그에게 있어 소냐가 없는 삶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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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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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배는 자살을 하기 전, 이것저것 살폈다. 누가 까칠한 성격 아니랄까 봐. 거실 한 가운데 목을 매달아 죽을 결심을 했는데, 나중에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거실에 흙 묻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닐로 거실 바닥을 깔아 놓았다. 이제 소냐를 만나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밧줄에 목을 걸었는데그만 밧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자살 실패. 오베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요즘은 밧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기로 했다. 자동차 안으로 배기가스를 들어오게 하고 그곳에 잠들려고 했다. 차고에서 죽으려고 했다. 배기가스가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소리가 계속 그의 귀 안으로 들어왔다. 차고 문을 심하게 끊임없이 두들기는 소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자살은 다음에 하면 되니까.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일단 누구인지 보려고 나갔다. 화를 내며 나가보니 옆집에 사는 임신중인 이란 여자 파르바네가 서 있었다. 그의 옆집은 패트릭이라는 남자와 그의 아내 파르바네그리고 일곱살 난 딸과 세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파르바네의 남편 패트릭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응급차에 실려갔다면서, 자신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오베는 남자가 되어서 그런 것 하나 못하나 투덜거리면서, 파르바네와 그녀의 두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그가 파르바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오베의 행동 기준은 죽은 아내 소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가 기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냐라면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도와준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베도 그 스스로 착한 심성을 분명이 가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파르바네의 두 딸을 보살펴 주기까지 하고다시 집까지 그들을 데려다 주었다. 파르바네는 차 안의 짙게 배여 있는 배기가스 냄새와 고무 호스를 보고 걱정했다. 파르바네가 눈치를 챈 것이다.

오베의 세번째 자살 시도는 열차에 몸을 던지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관사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직전에 선로로 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계획 직전 어떤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며 선로에 떨어졌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를 구할 이는 역시 오베뿐이었다. 오베는 되는 일이 없다며 또 투덜거리며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출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기회였다.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기회. 올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그 장면을 본 기관사는 기차를 멈춰 세웠다. 이번에도 오베는 살아났다. 그에 입장에서 보면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영웅이라는 호칭까지 생겼다. , 젠장.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

그는 일이 계속 꼬이게 되었다. 동네에 길 잃고 얼어 죽을 뻔한 고양이를 그가 떠맡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고양이를 맡지 못할 사정들이 있었는데, 오베는 그런 사정이 없었다. 전혀그 고양이를 떠맡게 되면서 예전에 소냐가 좋아한 고양이 어니스트도 생각이 났다. 이 고양이를 두고 어떻게 자살을 하나. 고양이가 건강해지자 그는 다시 시도하였다. 소냐의 곁으로 가는 것. 그는 네번째 자살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한번에 끝낼 수 있는 권총자살최근 동네에 강도가 출현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의 집에 얼쩡거리는 이들을 보게 된 것이다. 동네를 위해서는 저 강도를 잡아야 했다. 다시 자살은 잠시 뒤로그는 그 강도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가 가끔 가던 술집에서 일하는 건실한 청년 지미와 그가 일하는 술집의 젊은 사장인 동성애자였다. 아버지가 그의 정체, 즉 동성애자임을 알고 내쫓았고, 그는 갈 곳이 없어서 오베에게 온 것이다. 하루만 재워달라고 말이다. 엄동설한에 그를 재워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살을 할 때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국]

오베는 이번에 실제 강도를 만났다. 강도로부터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입원까지 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죽기 어려웠는데, 잘못했으면 한번에 죽을 뻔했다. 그가 퇴원한 이후에 그는 파르바네 식구들을 비롯한 이웃들과 잘 지냈다. 특히 파르바네의 두 딸들은 그를 좋아했다. 이제 오베는 또다른 행복이 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오베는 파프바네의 첫째딸이 생일선물로 아이패드를 갖고 싶다고 해서 한번도 컴퓨터를 해보지 않았던 그가 아이패드를 사러 가는 노력도 했다. 그는 컴맹에 아이패드란 존재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웃집 청년 지미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소냐에게 가는 시간을 미뤄지만, 그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소냐의 묘지에도 수시로 가서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소냐가 원하는 것도 오베의 이런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어느 아침 그는 홀연히 오베는 소냐에게 갔다. 처음에는 오베가 자살을 한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가 아주 자세한 유서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다시 읽어보니 자살은 아니고, 아마 그가 큰 병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어서 유서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파르바네를 비롯한 이웃들에게 주라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도 간소히 하라고 했지만,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다. 그렇게 오베는 소냐를 만나러 갔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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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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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읽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

이 책은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76년 이후 줄곧 과학분야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을 시작으로 관련분야에 관한 많은 책들을 썼고 대부분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지만, 유시민, 최재천 등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해준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추천하면서 책의 내용을 대충 이야기해주어 책의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좋게 평했기 때문에 꼭 읽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어느날 알라딘 중고서점에 싼 가격에 이 책이 올라왔길래 구입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첫 출간 이후 1989년 개정판을 냈고, 2006년에 출간30주년 기념으로 한 번 더 개정판을 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2006 30주년 개정판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쉽지 않다.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문맥을 잡기 쉽지 않다. 책 읽는 속도도 너무 느리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앞부분을 읽기도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그런데도 쉽지 않다. 아직 이런 과학서적을 읽어낼 깜냥이 되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살짝 했다. 하지만, 솔직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도 한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봤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번역을 문제 삼는 글들이 많았다. 어떤이는 이 책의 원작을 직접 소개하면서 잘못된 번역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가 1989년 첫번째 개정판 때 추가한 60페이지 분량의 후주는 책에 포함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예의 없는 번역이다. 많은 독자들이 불만과 이슈를 재기해서인지출판사는 2010년에 다시 개정판을 냈다. 그 책은 번역도 한 사람이 추가되었고, 문제가 되었던 후주도 추가했다. , 책을 절반을 읽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책을 덮고 2010년판을 찾아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책은 일단 다 읽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2010년판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을 힘겹게 다 읽어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자연선택설의 주체는 결국 누구?]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주체는 다름 아닌 유전자. 바로 이것이 주제다. 많은 과학자들의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주체로 개체다, 그룹이다, 종이다, 유전자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그 주체를 유전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유전자들이 그들의 종족 유지를 위해 조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동물행동학자로써, 그는 이 책을 동물 행동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라는 것이다. 자연선택설의 주체 단위가 개체라고 생각해보자. 이럴 경우,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이타적인 개체를 설명이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룹이 자연선택설의 단위라고 하떨가? 그렇게 되면 유전의 법칙에 의해 이기적 개체들이 늘어나게 되게 되고, 결국 이기적 개체들만 남게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자연선택설의 단위는 뭐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유전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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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가장 최적의 물질이 오래 생존하는 최적자 생존 또는 안정자 생존이란 법칙에 의해 보존된다고 한다. 그것은 생명체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분자 상태가 안정한 상태이면 분자 상태로 존재하고, 원자 상태가 안정한 상태인 물질은 원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최초로 생명체가 발생한 시점을 살펴보자. 여러 가지 반응에 의해 아미노산이 생성이 되었을 테고그것에서 시작하여 생물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 생명체는 안정한 상태로 있으려고 했고, 그런 생명체들은 그 안정한 상태를 마구 복제를 했다. 자신을 복제하는 생명체를 자기복제자라고 한다. 자기복제자가 오래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세가지가 있는데, 먼저 장수해야 하고, 그리고 그 수가 많아야 하고 마지막 조건은 복사의 정확도라고 한다. 유전자들은 이런 것들을 갖추었고, 그들 또한 진화해서 자신들이 오래 살아가기 위해 보호막을 만들었을 거라고 한다. 그 보호막이 바로 생명체, 즉 생존기계라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체들이 모두 생존 기계란 소리다. 그리고 유전자들은 더 오랫동안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우수하고 더 효과적인 생존기계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복잡한 보호막이 된 것이다. 그런 과정이 바로 진화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생겨난 것은 바로 유전자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최초 자기 복제자는 아마 DNA와 연관된 분자일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몸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 임시 운반체일 뿐이고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오랜 생명연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염색체는 이런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유성생식은 염색체를 반반씩 만나 또다른 염색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기계를 왜 늙게 두는가? 그리고 왜 죽게 두는가? 만약 모든 생명체가 죽지 않고 산다면, 자원 부족으로 곧 생명체가 멸종하게 될 것이다. 똑똑한 유전자가 이걸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유전자의 생존 기계를 언제 없애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다음 세대를 번식한 다음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개체를 죽이는 것에 관련된 치사 유전자는 생식활동이 끝난 다음에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개체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지게 되면 치사유전자가 출현하기 시작해서 결국은 그 개체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 즉 다른 생존 기계로 옮겨 탄 후 쓸모없는 기계는 없애겠다는냉철한 킬러와 같은 존재그것이 바로 유전자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지만, 너무 설득력이 있다.

 

[천재 유전자]

, 그럼 이타적인 개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신들의 개체를 희생하면서 다른 개체들을 살려내는 것은 비단 사람들 사이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이타적인 모습은 근친간에서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희생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다루고 있다왜 그럴까? 그것은 근친간에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식들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도 자식들 몸 속에 있는 유전자가 더 오래 살아야 그들의 존속에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타적인 개체들의 행동은 바로 자신의 희생으로 더 많은 유전자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을 근친도라는 용어로 설명해준다. 지은이는 각 가족관계에 따라 근친도를 계산하고몇명을 살리고 죽어야 유전자에게 유리한지 계산한다고 한다. 그 계산할 때는 살려야 하는 개체의 남은 수명도 고려한다고 한다. 지금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것도 유전자가 조정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허무감이 든다고 한다. 나란 존재를 도대체 무엇인가? 유전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생존기계. 그것이 정녕 나의 실체란 말인가?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인구 증가의 조절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보통 출산율과 사망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유전자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 새의 경우는 낳는 알 수도 몇 개가 최적인가를 계산한다고 한다. 몇 개를 낳아야만 자원이 부족하지 않고 종족을 잘 유지할 수 있는지 말이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에서 보면 수컷보다는 암컷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그리고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일반적으로 더 각별하다고 한다. 이런 것도 모두 유전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암컷은 자신의 자식이 확실히 자식이라는 것을 알지만, 수컷인 경우는 자신의 자식일 확률이 100%는 아니라는 것이다. 암컷이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자식이 너의 새끼라고즉 근친도에 있어 수컷은 암텃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근친도가 높은 암컷이 새끼에게 있어 더욱 이타적인 개체가 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보면 외할머니가 친할머니보다 근친도가 더 높은 것이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행동, 인간의 행동을 모두 유전자의 입장,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유전자의 종족 유지에 유리한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설명들이 오묘하게 합리적이라서 반대할 수 없게 만든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반박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의 주장의 타당성에 반기를 들 수가 없다. 그저 한가지 지은이한테 묻고 싶은 것만 생겼다.

 

[묻고픈 것]

그럼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유전자들이 조정을 하는 기계들이 그들의 터전을 망치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잘못하면 그들의 멸종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그것을 멈추고 있지 않다. 도대체 왜 유전자는 그들의 생존기계를 지구파괴자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궁금하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의 대답을 듣고 싶은 대목이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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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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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댓글]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무엇을 소재로 했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이다. 댓글부대는 지난 대선 때 특정 후보의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았던 국가기관을 빗대 부르는 말이다. 세금을 받고 일하는 국가기관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격분을 했던 그 사건. 그 이후 그런 일들이 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댓글부대의 활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바로 그 때 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이 소설이 신간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소설의 내용보다 도대체 이런 무서운 시대에 저런 용감무쌍한 제목을 지은 지은이가 더 궁금했다. 장강명.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문학상을 많이 받은 사람이고, 그의 소설들은 우리나라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린 소설들이 많았다. 이번에 읽은 소설 <댓글부대>도 그런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처럼 시대를 이야기하는그래서 소설로나마 많은 이들의 이 사회의 부조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온라인마케팅 업체]

-알렙은 온라인마케팅 업체다. 명목상…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그들이 하는 일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먼저 의뢰를 받는다. 의뢰의 종류는 개인적인 원한부터 경쟁업체의 이미지 죽이기, 반대로 자사의 이미지 개선 등이 있다. 그럼 팀-알렙은 치밀한 전략을 거쳐 간단히 할 수 있는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거나, 어떤 커뮤니티에 회원 가입을 해서 아무도 모르게 분란을 일으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을 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면 돈을 받는다. -알렙의 멤버들은 전략 담당인 삼궁’, 작문을 주로 하는 찻탓캇’, 그리고 기술을 담당하는 ‘0110’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고, 돈을 받으면 공동생활비를 빼고 정확하게 삼분의 일로 나눠 가졌다. 그들 중에 주로 삼궁이 의뢰인을 만나고 가끔은 찻탓캇도 같이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의뢰를 하는 이들 중에 합포회로 알려져 있는 단체가 있다. 그들도 신분을 숨기기 때문에, -알렙 멤버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합포회 멤버들도 서로 본부장, 팀장, 대리, 사원으로 부르고 한 사람만 이철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분명 가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합포회가 팀-알렙에게 한 첫번째 의뢰는 대기업의 폐해를 고발하는 어떤 영화의 흥행을 실패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라는 것이었는데, -알렙은 아주 성공적으로 일을 해냈다.

그래서 곧바로 또 다른 의뢰를 받았다. 이번에는 폐쇄적이지만 진보성향의 커뮤니티를 없애라는 것이다. -알렙에게 이 정도는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커뮤니티에 가입을 해서 회원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와해시키거나 둘로 쪼개지게 만들었다.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자, 합포회는 그들에게 더 큰 제안을 했다. 물론 그들에게 떨어지는 돈도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금액이었다. 이번에도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동일한데, 그 규모가 달랐다. 진보성향의 아줌마들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커뮤니티가 그 목표물이다. 그들은 유모차 부대 등 사회의 각종 이슈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다. 그리고 그들은 자체 검열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합포회에서 가상의 인물을 지원해 주었다. 이 가상의 인물은 실체가 없지만, 주민등록번호는 완벽하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래서 팀-알렙은 합포회가 국정원과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렙은 그 가상의 인물을 이용하여 작전을 폈다. 그 가상의 인물이 그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일베’ 게시판에 올렸다. 그리고 슬며시 그 사실을 커뮤니티에 알렸다. 커뮤니티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가상의 인물에 대해 비판의 글들을 올렸다. 함정을 만들어 놓았는데, 완벽하게 빠져든 것이다. 가상의 인물과 그의 남편 역할을 맡은 ‘0110’에게 온갖 비방과 욕설이 쏟아졌다. 일부러 ‘0110’의 전화번호도 공개했는데, 그 전화번호로도 비방과 욕설이 쏟아졌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캡쳐하고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로 그 커뮤니티의 많은 회원들을 고소했다. 그것도 밀양경찰서에고소 당한 사람들은 밀양경찰서까지 출두해야만 했다. 아니면 합의를 해야만 했다이 사건 이후로 이 커뮤니티는 풍비박산 났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렸다.

 

[배신 속의 배신]

합포회는 팀-알렙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삼궁을 따로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순간 삼궁은 긴장했다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없애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를 데려간 그곳에는 어떤 나이 많은 대기업 회장이 있었다. 지금까지 합포회에서 의뢰한 것은 모두 그가 뒤에서 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저 그런 진보성향의 커뮤니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리고는 또다른 의뢰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었다. 그 대기업 회장은 젊은이들이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십대들의 성향을 보수 성향을 갖게 하는 일을 해보라고 했다. 돈은 얼마든지 지원해준다고 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삼궁을 비롯한 팀-알렙은 전략을 짰다. 그리고 캠페인들을 벌이기로 했다. 그 캠페인을 통해 은연 중에 진보 진영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것을 합리화하였다. 그로 인해 그들에게 보수 성향을 심어주려는 계획이었다. 십대들이 쉽게 관심 가질 만한 것들로 이용했고, 그들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캠페인은 안전사고 등으로 인해 여러 목숨을 잃는 일도 일어났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찻탓캇이 팀-알렙을 배신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하는 일들로 인해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진 것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들이 해온 일을 진보 성향을 띤 신문의 기자인 임상진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배신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해 그는 비밀 유지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찻탓캇은 자신이 본 얼굴 중에 한 명이 경제단체의 임원이라고 알려주었다. 임상진은 특종이라고 해서, 그 인터뷰를 기사화하려고 했지만, 편집부에서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그 제보가 정확한지 신중을 기하자고 했다. ‘찻탓캇이 지목한 사람에게 접근을 하려고 하자, 그가 잠적해버린 것을 보고 그 신문사는 그 제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기사를 싣기로 했다. 정부, 대기업에서 밀어주는 합포회의 정체가 온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기사가 나오고, 곧바로 관련인으로 지목 당한 경제 단체의 임원은 반박을 하고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잠적한 것이 아니고, 그냥 우연히 전화를 받지 못할 피치 못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에 나오는 내용들이 실제와 다르다는 반대 제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기사에 언급된 인물들이 직접 연락을 해와서 기사와 다르다고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기사를 쓴 임상진을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찻탓캇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했으나 연락두절이다. 임상진은 이 일로 신문사에서 상벌위원회가 열렸고, 좌천당했고, 그리고 그 진보성향의 신문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다. 이것은 팀-알렙의 작전이었다. 진보신문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기 위한 또 다른 작전. 자신들의 얼굴까지 공개하면서까지 위험부담이 있던 작전. ‘찻탓캇은 당분간 중국으로 밀입국하여 몸을 숨기기로 했다. ‘찻탓캇은 술집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여인과 함께 가려고 했지만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혼자 밀입국을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바다 한가운데로 가면 그곳에서 그를 싣고 갈 중국배가 기다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약간은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뱃사공이 찻탓캇을 죽이고 바다에 수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찻탓캇은 죽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일은 물론 합포회에서 한 짓이었다. 다른 팀-알렙의 멤버들을 모르게 한 일이다. 합포회는 팀-알렙의 리더격인 삼궁은 몇 년 더 이용해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삼궁을 비롯한 팀-알렙은 자신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돈의 권력에 의해 사라지게 될 피라미였던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끝났는데한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다. ‘찻탓캇이 가명을 쓰면서 철저하게 자기의 신상을 숨기면서 일을 했는데, 굳이 중국을 밀입국해서 가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가 밀입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있었는데, 내가 놓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여론을 바꾸기 위해 굳이 이런 댓글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방법이 아니어도 충분히 여론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이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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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같이 읽기]

이 책을 읽기 직전에 강헌의 <명리>를 읽었다. <명리>를 읽으면서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란 책이 생각났다. <명리>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았고, 그리고 <명리>에서 읽은 내용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내어 읽었다. 강헌의 <명리>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연달아 읽었더니, 명리를 이해하는 데 더 좋았던 것 같다. 잘했다 싶다. 내침김에 명리에 관한 또 읽어볼까? 강헌의 <명리>에서 여러 번 소개한 <조용헌의 명리사주학 이야기>를 읽어볼까?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서도 음양오행과 명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강헌의 <명리>에서는 원국에 대해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실전편이라고 하면, 이번에 읽은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명리와 사주팔자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리뷰는 바로 직전에 읽은 강헌의 <명리>를 읽고 쓴 리뷰에 나온 내용과 겹치는 내용은 생략했다.

[내가 곧 우주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강헌, 인문학자인 고미숙.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명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명리가 홀대 받는 경향이 있는데, 지은이 고미숙은 그 이유를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찾았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의 시각으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타자와, 하위주체화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들인 동양에서 오랫동안 중시 여겨왔던 것을 무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행(五行)목화토금수‘목’은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고, 계절로는 봄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木처럼 해야 하는데火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 형식에만 너무 집착하고, 소리만 요란한 시작.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가버린 그런 것.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모든 일은 순리가 있는 법. 오행이 이런 삶의 교훈도 알려주고 있다. 무슨 일을 마음먹고 시작할 때,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고미숙은 사주 뿐만 아니라 관상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주는 시간적 관찰이고, 관상은 공간적 관찰이라고 하면서, 사주가 관상이고, 관상이 곧 사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주와 관상은 곧 나의 생로병사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동양의학에서 관상과 사주는 필수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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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중첩, 교차되다 보니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풍수지리와 관상, 의학과 사주명리, 기문둔답과 매화역수 등등. 특히 동양의학을 하려면 관상과 사주명리는 필수적이다. 이 둘은 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평생의 운을 읽어내는 것이고 관상은 얼굴에 드러나 있는 운명의 지도를 읽는 것이다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는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고 그 얼굴에 드러난 기운에 따라 일생의 리듬을 밟아 간다는 것이 기본원리이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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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역과 명리를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어서, 누군가 주역과 명리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역은 사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고, 명리는 인생 전체의 지도를 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주 명리가 철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명리라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철학도 내가 알기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을 한다. 그러니 명리와 철학은 형제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가끔 혁명이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나를 희생하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를 희생하면서 바꾸는 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내가 곧 우주이고, 자연이 곧 나의 연장이기 때문에, 나를 희생하면 우주가 희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관계가 중요하다]

올해는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60년만에 오는 백호띠 해, 흑룡띠 해라고 떠들석한 적도 있다. 도대체 색깔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냥 장삿속으로 갖다 붙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해를 육십갑자를 부를 때 천간을 이루는 오행을 색깔로 표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2010년이 경인년으로 60년만에 오는 백호, 즉 하얀 호랑이띠 해라고 했고, 2012년은 임진년으로 흑룡, 즉 검은 용띠 해라고 했고, 올해는 병신년 빨간 원숭이띠 해라고 한다. 육십갑자 중에 십이지지가 나타내는 것은 띠를 나타낸다. 경인년의 ‘인’은 호랑이띠, 임진년의 ‘진’은 용띠, 병신년의 ‘신’은 원숭이띠를 나타낸다. 그리고 육십갑자의 십천간은 아래와 같이 오행과 연결이 되고, 그 오행이 의미하는 색깔도 아래와 같이 맺어진다.

, -> -> 녹색

, -> -> 빨간색

, -> -> 노란색

, -> -> 흰색

, -> -> 검정

그러니까 경인년의 ‘경’은 오행으로는 金이고, 그것은 흰색을 의미하는 것이고, 임진년의 ‘임’은 오행으로는 水이고, 색깔로는 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병신년의 ‘병’은 오행으로 火, 색깔은 빨간색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인년은 흰색 호랑이가 되는 것이고, 임진년은 검정색 용이 되는 것이고, 올해 병신년은 붉은색 원숭이가 되는 것이다.

강헌의 <명리>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팔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간이고, 나머지 팔자들과 일간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동양 사상에는 “관계가 존재를 우선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간을 중심으로 각각의 팔자들의 관계 또한 중요한 거다. 관계의 중요성 때문에 오행의 개수보다 서로 어떤 생극적 관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관계의 중요성은 사회생활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협력해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보다 개인의 능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서, 사회가 더 삭막해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는 협력보다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순행대로 살지 않아서 더 힘들고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다시 예부터 내려오는 동양사상의 중요한 가치인 “관계”를 중시 여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잠시 이야기가 나의 잡생각으로 빠져나갔는데,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오행은 우리 몸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동의보감>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행과 우리 몸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 ,

- 심장, 소장,

- 비장, 위장

- , 대장

- 신장, 방광

그래서 자신이 부족한 오행과 연계되는 우리 몸의 기관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

관계만큼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것.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사주팔자에도 중요하다. 만약 내 사주팔자에 넘치는 것이 있으면, 줄여주어야 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해주는 것이 지장간이라는 것이다. 강헌의 <명리>를 읽고 나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장간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쓸 능력은 되지 못한다. 패스~~

 

 

[운명은 결국 나의 것]

운명은 숙명론이 아니다. 운명은 을 내가 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리학은 잘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네비게이션 같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길이 있어도 자신이 더 자신있는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핸들을 틀면 된다. 결국 그 길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나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말을 잘 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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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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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팔자를 고치고 싶다면,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깨달음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 아니라,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혜는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팔자를 바꾸고 싶다면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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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정보는 소유와 축적의 대상이지만 지혜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다' '도달하다'의 합성어다. 낡은 사유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히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앎과 몸 사이의 '간극'이 없어야 한다. 간극이 없으면 깨닫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간극이 줄어든다. 고로,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지혜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이, 지혜에 대한 열정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신이 무엇인지 절로 드러나게 될 터이니.(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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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중첩, 교차되다 보니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앎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풍수지리와 관상, 의학과 사주명리, 기문둔답과 매화역수 등등. 특히 동양의학을 하려면 관상과 사주명리는 필수적이다. 이 둘은 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사주명리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평생의 운을 읽어내는 것이고 관상은 얼굴에 드러나 있는 운명의 지도를 읽는 것이다. 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는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고 그 얼굴에 드러난 기운에 따라 일생의 리듬을 밟아 간다는 것이 기본원리이다.(49쪽)

보통 사주명리학을 말하면 숙명론이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인생을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127쪽)

지식과 정보는 소유와 축적의 대상이지만 지혜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다`와 `도달하다`의 합성어다. 낡은 사유의 지평을 깨고 새로운 경계를 열어젖히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앎과 몸 사이의 `간극`이 없어야 한다. 간극이 없으면 깨닫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간극이 줄어든다. 고로,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지혜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이, 지혜에 대한 열정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지혜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신이 무엇인지 절로 드러나게 될 터이니.(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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