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아쉬움]

일년에 한편씩 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곤 한다. 그런데, 솔직히 점점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일년에 한편씩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인지, 출판사와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구애 받지 말고 좀 더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소설을 썼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1991. 아서. 25. 레지던트 응급실 의사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는 같은 병원의 의사인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관계가 소원해져서 연락도 잘 안하고 살았다. 사실 친아버지가 아니다.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몰래 난 아들이었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찾아왔다. 아버지는 어떤 등대로 아서를 데리고 갔고, 유산이라면서 등대와 등대에 붙은 집을 그에게 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용서하고 아서를 친아들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친아들과 친딸보다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등대를 준다고 하면서,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 절대로 등대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는 것. 둘째는 등대의 철문을 막아 쌓은 담을 절대로 헐지 말 것. 이것은 아서의 할아버지가 아버지한테 시킨 것이라고 했다. 아서의 할아버지는 1954년에 실종되었다가 1958년에 한번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때 문을 절대로 열지 말고 벽돌로 막아놓으라고 이야기하셨다는데, 아버지는 그 말대로 했고,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다시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서는 궁금증에 휩싸였다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그 철문을 열지 말라고 하신 걸까. 등대를 조사해 보았다. 할아버지 이전의 등대 주인을 추적해보았더니 그분도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종되었다가 몇 년 뒤에 그를 봤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 또한 연락이 두절되었다. 할아버지와 그 이전 주인의 이상한 공통점은 아서에게 더욱 큰 궁금증으로 만들었고, 결국 아서는 벽들을 허물고 철문을 열기로 했다. 궁금증에 결국 지고 만 것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벽을 허물고 철문을 뜯어내고 그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철문이 닫히고 찬바람이 불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의 어느 성당에 사람들 사이였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그는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이 1992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년이 휙 지나갔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일년 동안의 일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 등대의 창고의 그 무엇인가가 그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했고,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한테 대충 그간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혹시 모르니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사실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다고 했다. 정신병원에 계시지만 말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고,  집 앞에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시간을 점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여자 혼자 사는 집의 욕실이었고, 그 여자는 샤워 중이었다. 상황이 대략난감이다. 아서를 본 여자는 놀라서 소리지르고 아서는 또 경찰에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그만 그 집에 지갑을 흘리고 와서, 나중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의 주인은 이미 외출하고 난 뒤였다. 집주인의 이름은 리자.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20살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또다시 일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무슨 병에 걸린 걸까? 도대체 어찌 된 것인가? 그 동안 기욤 뮈소의 소설을 즐겨 읽는 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눈치 챘을 것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타임 슬립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1년 미래로 시간 점프를 하는 그런 소설이라고,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버지의 전화가 기억이 나서 아서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면회 온 아서에게 자신이 등대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서 자신을 이 병원에서 빼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정신병원 탈출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아서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무턱대고 그 리자라는 여자를 찾아갔다. 리자는 자신의 집에서 본 그 남자가 아서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그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리자는 거절했지만, 아서는 리자가 빚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돈을 주겠다고 했다. 리자는 아서의 계획에 동참을 했다. 사실 아서가 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암튼 그들은 할아버지의 작전에 따라 구급차를 운전하고 정신병원으로 갔고, 그 시간에 맞게 할아버지는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구출에 성공을 했다하지만 아서는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1994 5월 어느 방에서 깨어났는데어떤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욕실에 정신을 잃은 채 있었다. 리자였다. 아서는 리자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 주었고, 간신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서 만났고 할아버지는 비밀을 아서에게 알려 주었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비밀... 그 등대 창고에 들어가면 시간의 늪에 걸린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데, 1년씩 시간을 점프하게 되고그곳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24시간씩 24번의 시간여행을 하면 24년이 지나버린다는 것이다. 그 시간여행을 멈추는 방법은 없고, 24번이 끝나야 그 시간여행이 멈춘다고 한다. 이건 저주다. 24시간씩 24번이면 24일이다. 24일이 24년이라니...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런데 나쁜 소식은 더 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여인에게 잘 설명을 했고, 24번 시간을 여행을 하면서도 사랑을 지속했다고 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일년에 하루 그것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그것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이젠 행복한 시간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갔는데 그녀는 할아버지를 처음 보는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인과 낳은 아이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그 여인에게 자신을 모르냐고 다그쳤고그러다가 여인이 찻길로 쓰러졌고, 때마침 온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거의 실성상태였고, 그의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여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다른 평행 우주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

일 년 뒤 아서는 리자를 찾아갔고,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자 아서는 사라졌다.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한지 못한 채. 그리고 리자의 기준으로 일년 뒤에 아서가 나타났다. 이미 다른 남자친구도 있었고, 아서를 외면했다. 아서는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24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그는 사라졌다. 2001 WTC 무너질 때 근처에 있던 리자와 아서는 다시 만났는데, 그때 그들은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아서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리자는 그를 이해했다. 할아버지의 그 여인처럼… 그들은 이후 몇 년의 시간여행 동안 계속 만나고 벤자민과 소피아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는 또 멀어졌다. 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만한 한다. 더욱이 리자는 유명 배우가 되어 바쁜 스케줄로 아서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 벤자민도 아서의 24번의 시간여행이 끝나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면서 아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24번의 시간여행의 끝이 가까이 오면서 아서는 시간여행이 끝나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할아버지도 이젠 돌아가시고 드디어 24번의 시간 여행이 끝이 났다. 과연, 할아버지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약간은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전이라고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랑 소설에 판타지 요소를 넣는 기욤 뮈소...이번에는 소설 전체를 또 다른 소설로 만들어 버렸다 ... , 그런데 신선하지가 않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많이 읽은 이라면 예상 결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심한 스포일러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인다.

한가지 기욤 뮈소에게 바램이 있다면, 일년에 꼭 한편이 아니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예전의 필력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이 책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책 전용 SNS인 북플이라는 곳에서 알게 된 책이다. 법정 스님을 좋아해서 책에 눈이 바로 갔다. 법정 스님이 떠나신 봄이 벌써 여섯 해 전이다세월이 참 빠르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그가 늘 자리잡고 있다. 그런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설전>이라는 책이다. 부제가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고 되어 있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말씀으로 유명하신데, 나는 성철 스님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성철 스님이 입적하신 것이 1993년이었다고 하니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시절이라서, 그 분의 책을 접하지 못한 듯성철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어 좋았다.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한 것처럼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 스님이 답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법정 스님보다 성철 스님의 생각이 더욱 많이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대담이나 토크콘서트를 책으로 엮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경우, 답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것이 맞지만, 좋은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은 책의 뒷표지에 적힌 것처럼 현문과 현답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다. 그리고 책에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자연의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 적은 양이 담고 있는 슬기와 교양은 깊은 심금을 울린다.

 

[눈싸움]

책 제목 설전. 설전이라고 하면 말로 옳고 그름을 다툰다는 설전(舌戰)이 바로 생각이 난다.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도 생각이 나고그런데 책 제목에 옆에 적혀 있는 한자를 보니 눈 설(), 싸울 전(). 이라고 써있다. 우리말로 해석해보면 눈싸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눈이 온 겨울이면 눈을 뭉쳐서 던지면서 놀던 그 눈싸움. 책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후반부의 대화 주에 두 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많은 시주들 앞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있다. 다른 제자들은 성철 스님 앞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는데,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좀더 진면목의 답을 이끌어내신 것이다. 이렇듯 두 분이 서로 주고 받는 말씀이 마치 즐거운 눈싸움 같았기 때문에 제목을 눈싸움이라는 뜻의 <설전(雪戰)>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나중에 책 뒷날개를 보니 아래와 같이 책제목이 <설전(雪戰)>인 이유가 적혀 있었다.

=====================================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설전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

 

[삶과 불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불교에 관한 이야기.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등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이 가질 만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질문들도 있고, 중도 이론이나 중국 선종에 관한 질문 등 비교적 불교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선 질문과 답변도 오가곤 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불교 신도들 앞에서 나눈 대화들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에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좀 접해서 그리 낯설지 않게 읽으면서, 오랜만에 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새기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수필집처럼 생각하고 책을 편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의 또 다른 주제는 우리네 삶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한 질문들도 오가곤 했다. 많은 대화 중에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내용과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특히 공감을 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나라 언론의 편향성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주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분명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대안 언론을 찾아 듣는 이들이 더 많다.

객관성이 결여되고 주관성이 깊이 개입한 기사들... 그런 언론들을 향해 성철 스님이 주시는 깊은 가르침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그들이 들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졌으니, 그들은 더욱 편향적이 될까 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편향적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

...

그리고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을 다시 읽고 발췌해 보았다. 이 쉬운 지도자의 덕목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 그런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이 회초리를 들어준 것을 보고, 아직 우리 백성들의 힘은 세다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희망을 보았다.

=====================================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30쪽
내가 자꾸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면 만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는 줄 알면,
거기에 금이 꼭 있을 것 같아서 땅을 파면 금이 나오지만,
암만 파도 금이 없을 것 같으면 헛일이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깨치는 공부를 해도 헛일입니다.
문제는 그 광맥이 사람 사람 마다에 다 있나 없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46쪽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모든 생각을 쉬어 버리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구하는 생각, 이것이 마음에 들어 있으면 아무리 섭생을 잘해도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 구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쉬고 사는 이것이 건강에 좀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85쪽
흔히 `용서를 하자. 용서를 하자`고 하는데, 불교의 근본사상에 용서란 없습니다.
용서란 내가 잘하고 남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모든 것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것이며,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남의 인격을 근본적으로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칼로 나를 찌른다 할지라도
찌르게 한 것의 근본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회`를 해야지 저 사람을 `용서`하다니요.
그래서 우리 불교사전에서 `용서`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역학의 법칙 - 수학으로 배우는 법칙 시리즈 2
Transnational College of LEX 지음, 강현정 옮김, 곽영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히포 패밀리와 트래캘리]

또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집어 들었다. 작년부터 양자역학을 이해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고 있다. 이번에는 읽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본의 히포 패밀리 내에 Transnational College of Lex라는 교육기관에서 그들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한 후에 낸 책이기 때문이다.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에서 펴낸 책 중에 몇 달 전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란 너무 좋게 봤었다. 이 책을 통해서 푸리에 급수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설명들도 어렵지 않게 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래서 <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도 쉽게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에는 히포 패밀리에 관한 설명도 더 있었다. 히포 패밀리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자연 습득으로 배우는 그런 모임이라고 한다. 자연 습득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 따로 그 언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조금씩 조금씩 익혀서 배워 나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도 낯선 언어에 대한 노출을 많이 해서, 처음에는 아무 뜻도 없이 발음만 비슷하게 하면서 나중에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게 그들은 7개국의 말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히포 패밀리에 일종의 스터디 모임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이고, 그들은 줄여서 '트래칼리'라고 부른다. 그들이 처음 만나서 공부한 것이 바로 푸리에 급수였고, 그 공부를 마치고, 두번째로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그들은 수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으로 수식을 이해하고 그 수식을 통해 양자역학이 무엇이란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10주 동안 양자역학에 대한 공부를 계획했고, 그 전에 양자역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먼저 읽었다고 한다.

쉽지는 않았다. 책의 첫부분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유치한 듯한 그림까지 섞어가며 쉽게 쓰여 있었고, 상식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나와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중간부분을 넘어가면서, 온통 알 수 없는 수식들로 어지러웠다. 아래 수식과 같은 페이지가 연속으로 나왔다. ,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책은 양자역학을 이해시켜주는 책이라기보다 증명하는 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설명한 수식들이 있는데, 그들이 계산한 수식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들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수식을 하나하나 따라 써 내려가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눈으로 읽어 내려간다면, 그 수식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전에 읽은 <파동의 법칙>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운 수학에서 볼 수 있는 수식들이 많았지만, 이번에 읽은 <양자역학의 법칙>에는 수식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 책은 양자역학이 왜 생겨났으며,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연구했다는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복잡한 수식은 건성건성 건너뛰고, 글만 읽어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 리뷰에서는 그런 양자역학에 대한 흐름만 정리해보았다.

이 책의 좋은 특징 중 하나는 반복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한 챕터를 시작하기 전에 그때까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 그러면 복잡한 수식으로 잃어버렸던 맥을 다시 찾아서 다시 한번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내 다시 출현한 복잡한 수식 때문에 한숨을 내쉬지만 말이다. 좀 아쉬운 점은... 수식을 대충대충 봤는데도, 수식에서 명백한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본 것만 두어 군데인데, 꼼꼼히 수식을 검토해 보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오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수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읽길 바란다.

 

[빛이란]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빛이다. 먼저 과학자들이 빛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살펴보자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는 무엇일까? 고대 돌턴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원자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시절에 원자를 볼 수는 없었다. 근대에 들어서서 돌턴이 이야기한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원자들이 발견되어 주기율표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원자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자, 광자 등 원자보다 더 작은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있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입자들을 양자(量子)라고 했다. 그런 양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았다보이지는 않아도 그 양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바로 양자역학이다양자들이 자연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그런데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빛은 19세기까지만 해도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영이라는 사람이 실험을 통해 빛이 간섭한다는 것을 밝혔다. 간섭이라는 것은 파동의 성질이기 때문에 영의 실험을 통해 빛은 파동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런데, 파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흑체 복사다. 태양의 빛이 지구에 닿으면 지구는 따뜻해진다. 그것은 빛이 열을 전달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파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전달 물질이 있어야 열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빛이 열을 복사하는 것을 흑체 복사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과학교과서에 들어본 적이 있는 플랑크라는 과학자가 그래서 실험을 했다. 진공의 쇠상자에 온도를 높이면 빛이 나오는데, 온도에 따라 빛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양한 온도는 다양한 파동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온도와 빛의 파동과의 관계를 그린 그래프를 플랑크 곡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곡선을 수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고전역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파동이라면 에너지가 불연속일 수가 없다... 여기서 고전역학이라고 하면 뉴턴의 역학과 거기에서 파생된 역학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자연의 모든 현상은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플랑크는 그 곡선의 식을 구해서 플랑크 곡선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논문에 발표하면서도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구를 추가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의 고전역학은 절대진리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천재가 등장하였으니, 바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논문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빛은 파동이 아니라 입자라고 생각했다. 혁신적인 생각이란다. 선입견을 깨는 그런 생각. 그렇게 빛이 입자라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바로 광양자 가설이다. 이것이 1905년이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1905년 한 해에 광양자 가설뿐만 아니라 특수상대성이론, 브라운 운동 등 3개의 위대한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는 외계인이거나 천재임에 틀림없다. 빛이 입자라고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것은 바로 광전효과와 콤프턴 효과란 것이 있다. 광전효과는 금속에 진동수가 큰 빛을 쬐면 전자가 튕겨나가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파동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입자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콤프턴 효과는 빛 입자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x선은 충돌 후 산란되어 진동수가 작아진다... 진동수가 작아진다는 것은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인데, 파동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현상을 운동량으로 증명해야 하는데운동량은 속도와 질량의 곱으로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빛의 질량이 있나? 없다... 빛의 질량은 0이다. 하지만 질량이 없어도 에너지와 속도를 알면 운동량을 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빛의 운동량을 구했다고 한다.

빛이 입자를 증명하는 실험 중에 안개상자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 콤프턴 실험에서는 전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물방울을 모아 놓은 안개상자에 전자를 쏘게 되면 전가가 지나가는 모습이 물방울의 흔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빛은 입자라는 것이다. 정말 빛은 신기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빛의 성질들은 정말 확실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빛의 성질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자역학의 탄생]

원자에 열을 쪼이면 빛이 난다그것을 프리즘으로 보게 되면 불연속선으로 보인다. 그 모양의 형태는 원자마다 다르다. 이것은 예전에 학창시절 배웠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선들이 불연속적으로 나타날 것인가? 그 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발머라는 수학교사가 취미로 그 선들의 관계식을 구했다고 한다. 그냥 불연속적인 선들로 보였는데, 특정 수식으로 그 선들과의 관계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 선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톰슨이라는 과학자도 이 금속에서 나타나는 불연속 선 스펙트럼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래서 전자의 존재를 알아냈다. 전자의 질량은 원자의 1/2000 이고, (-)전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그럼 전자는 어떻게 생겼지톰슨은 전자가 수박씨처럼 위치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자가 수박이면 수박씨는 전자가 되는 것이다. 톰슨의 제자 러더퍼드는 α산란실험으로 톰슨모델을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α파가 2만개 중에 1개꼴로 금속을 통과하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톰슨모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전자는 원자핵 주변에 있다고 생각을 했다.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인데, 전자는 (-)전하를 띠고 있으니, 원자핵은 (+)전하를 띠어야 했다. 그러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전하와 (+)전하는 전자기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긴다. 그런 원자핵 주변의 전자는 이내 원자핵과 붙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 전자가 원자핵을 주변을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원심력과 전자기력이 같기 때문에 일정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모순이 있었다. 원운동은 가속도운동이고, 고전역학 중에 맥스웰의 파동역학에 의하면 가속도 운동을 하는 것은 에너지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 시간이 흐르면 원자력이 전자기력보다 작아져야 하고그로 인해 다시 전자와 원자핵이 서로 붙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 전자의 움직임을 고전 역학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빛도 그렇고, 전자도 그렇고... 이런 작은 입자들의 미시적 세계의 현상들은 고전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작은 입자들의 현상을 설명할 새로운 역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전자 궤도를 버려라]

닐스 보어란 과학자가 있었다. 원자 모형을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이론, 즉 입자로 설명하려고 했다. 고전 역학은 아예 적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양자역학의 규칙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먼저 원자의 선 스펙트럼이 불연속적인 에너지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자가 몇 개의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는 궤도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자가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은 정상상태라고 하고 이때는 빛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달라질 때, 즉 에너지가 변할 때 빛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선 스펙트럼의 원자 구조를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좀더 보충해서 설명하면, 궤도가 높은 곳의 전자들은 궤도간 간격이 아주 좁게 되어 불연속이 아니라 연속처럼 동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궤도가 높은 곳의 전자들의 움직임은 전자기력과 원심력이 같다고 하는 고전역학으로 설명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궤도의 전자의 경우 고전역학을 이용하여 전자의 진동수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의 궤도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닐스 보어는 원자의 궤도 구하는 것은 뒤로 하고, 선 스펙트럼의 빛의 세기나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보어가 구한 것은 진동수 구하는 방법까지였다.

닐스 보어의 제자 중에 하이젠베르크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초열이라는 병에 걸려서 헬골란트 섬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쉬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고전역학을 궤도가 높은 전자뿐만 아니라 낮은 전자도 고전역학을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칙이었다. 그런 변칙을 써서 그는 보어가 하지 못한 선 스펙트럼의 에너지 크기를 구했다. 하지만 그도 전자의 궤도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궤도를 버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자가 방출하는 빛으로 진동수와 진폭을 구할 수 있다면서, 굳이 궤도를 밝혀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어야 물리학이라고 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물리를 부인했다. 아인슈타인은 관측이 가능한 것만이 물리학이라고 했다.

 

[전자의 정체는…]

루이 드브로이란 사람이 있었다. 아마추어 과학자로 독학으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자가 입자가 아닌 파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빛이 파동이 아닌 입자라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전자를 파동으로 생각해서 계산했더니 양자조건을 만족하는 것을 밝혀냈다. 그래서 그는 전자는 파동이라고 논문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도 이 논문에 흥미를 느끼고, 그 논문을 슈뢰딩거에게 전달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슈뢰딩거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전자의 파동방정식을 이끌어냈다전자가 파동임을 수식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전자의 파동방정식을 유도해내는 식이 책이 쭉 나와 있지만눈으로만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식이다. 그렇다고 손으로 천천히 따라 적는다고 이해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수식의 연속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하는 페이지가 지나면 결국 슈뢰딩거가 이룬 것은 전자를 파동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바라던 그것.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슈뢰딩거의 전자는 약점들이 있었다. 그가 구한 파동방정식은 전자가 한 개인 경우를 구한 것이었다. 내가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전자 2개를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면 6차원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자 3개면 9차원, 더 많은 전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한차원이 필요하게 된다고 했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시 전자의 이미지가 사라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막스 보른이라는 사람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확률로 해석했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파동이 아닌 입자들의 개수로 바꿔서 설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이중슬릿 실험. 그것은 파동을 설명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전자의 입자로 바꿔서 생각하고 이중슬립을 통과한 전자의 개수들을 세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파동으로 나타난 간섭의 세기에 비례하여 전자의 개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확률로 생각하니 다시 이미지가 돌아왔다고 했다슈뢰딩거 방정식은 한 개의 전자만 설명이 가능했는데, 보른의 확률해석은 전자가 많아도 3차원의 공간에서 설명이 되었다. 그런데 전자를 한개만 쏘면 어떻게 될까? 이중슬릿에 전자를 한 개만 쏘면 전자는 둘 중에 하나로 들어오게 된다. 각각 확률은 반반씩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간섭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가 우리가 관측을 하게 되면 전자는 영 딴 놈이 된다. 이를 확률파동이 수축한다고 하는데, 몇 번을 읽어봐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결국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보다 보면 가장 끝에서 출현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자의 불확정성이란, 위치를 정확하게 보려고 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려고 하면, 전자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눈으로 봤을 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정성 원리를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관측될 때는 입자처럼 움직인다" 라고... 그리고 이때 파동은 실제 물질의 파동이 아니라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물리학이라는 것은 명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니까 말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를 1927년에 주장하였는데그 이후에 이것을 뒤집는 이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옳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고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분야라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전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관측될 때는 입자처럼 움직인다라고 대답하며 된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아쉽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 양자역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모했다. 전에 다른 책에서 양자역학을 가장 쉽게 설명한 사람이 리처드 파인만이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제 파인만이 설명한 양자역학을 찾아봐야 하나.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색평론 통권 147호 - 2016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선거를 앞두고…]

선거다. 곧 있으면 또 하나의 중요한 선거가 있다이제 열흘도 안 남았다.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녹색당을 알리려고 많이 노력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녹색당이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녹색당이 꼭 국회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녹색당을 지지하게 된 원인은 바로 정기적으로 읽는 녹색평론 때문이다. 얼마 전에 녹색당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초대손님으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나왔는데, 그 또한 녹색평론을 읽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녹색당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방송을 들으면서, 나도 "저도요~~"라고 속으로 이야기했다. 이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의 영혼에 녹색이 덧칠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녹색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정의당과 녹색당이 국회 제 1 당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는 결선 투표 없는 소선거구제로써 소수정당의 기회를 박탈하는 선거구제다. 대의 민주주의라면 백성들의 뜻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어야 하지만, 백성들의 정당의 지지율과 국회의원의 정당 비율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을 어찌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국회의원이 300. 만약 정당 지지율이 3%인 경우, 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국회의원 300명 중 3% 9명의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녹색당이 3% 득표를 하더라고 국회의원 자리는 1. 이건 말이 안된다. 이럴 바에야 이번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고, 그 전에도 여러분 언급이 되었던 제비뽑기, 즉 추첨제 민주주의가 더욱 대표성을 띠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지금의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제도이니 그들이 바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암울하다. 이번 선거 결과도 이미 누구나 예상하고 있듯 야당의 참패로 끝날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하나? 정의 당의 선전과 녹색당의 국회진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두 가지만 이루어져도 이번 선거를 대패해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희망고문이 아니길…

 

[()을 살리는 세계로]

이번 녹색평론 147호의 주제는 바로 "()을 살리는 세계로". 농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해마다 농업에 대한 정책은 뒤로 가고, 그로 인해 힘없는 농민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언론의 펜 속에 숨은 칼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정말 슬픈 대한민국이다. 작년에 그런 농민들이 시위하다가 백남기라는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중태에 빠지셨고,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정부 또한 그 사건에 대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백남기 선생이 어떤 분일 줄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분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젊은 시절은 민주화에 청춘을 불태웠고, 그 이후에는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다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숙연해졌다. 그는 중앙대에 입학을 했고, 당시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광주 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오랜 시간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나와서, 그 이후에는 농촌에 내려가 농사를 지내며, 여러 농촌 살리기 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그는 민주화에 앞장서면서도 우리나라 땅을 사랑하셔서 아이들 이름을 백도라지, 백두산이, 백민주화 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런 분들이 왜 찬 바닥에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야 하는가?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 그 시위를 진압했던 경찰들은 진급을 했다고 하니, 이게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싶다.

농촌 살리기.. 결코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로컬 푸드의 개념을 확대하여 로컬의 개념을 국가로 확대해서 시행하자는 의견도 좋은 의견인 것 같았다. 그보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가 되었던 농민기본소득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농업은 어찌 보면 국가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농민들에게 국가가 일정 정도 소득을 보장해주는 농민기본소득을 주는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주는 국민기본소득이 어렵다면 국한적인 기본소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성남시에서는 청년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농민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죽어가는 농업의 마지막 인공호흡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해방 후 정치인 전진한이 1950년대 후반에 내세웠던 자유협동주의를 소개하였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 그 또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내용이 자유협동주의를 잘 설명하는 부분인 것 같아 발췌해 보았다.

==========================================

이익균점권을 주장할 때 전진한 선생의 논리는 아주 명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노동을 상품으로 간주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매우 고루한 사상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참신하고 용기 있는 발언이에요. '노동력=상품'이라는 관념은 19세기적 발상이라는 거예요. 시대를 그렇게 앞서 나갔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어떤 진보적 지식인이 이렇게 과감한 논리를 펼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맑스를 공부한 사람들도 늘 노동력 상품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안고 살잖아요. 자본주의체제하에서의 노동은 상품이다, 라는 명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전진한 선생은 그것을 고루한 사상이라고 단정하고자본가가 돈을 출자했다면 노동자는 자기의 '노력'을 출자한 또하나의 '자본가'라고 선언합니다. 노동자도 출자자라는 거죠출자자와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는 것즉 균점(均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당한 권리다, 이런 논리죠.'노동자=임금노예'라는 진부한 공식이 이 명쾌한 논리로 단번에 척결돼버린 거죠.

==========================================

앞으로 우리나라 농업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그런데, 그런 농촌의 유권자들은 농촌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이들에게 다시 표를 던지고 있으니,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4월은 세월호]

이젠 또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까 무섭기까지 하다. 세월호 사건이 벌써 2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위로도 없었다. 이젠 국가는 그것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청문회에도 정부 관련자들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올해는 선거철이라고 더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그들은 좋겠구나. 선거로 세월호가 감쳐줘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런다고 숨겨지나?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트라우마를 준 사건이 말이다.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그보다 시 한 편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시를 다시 한번 발췌했다. 이제라도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사과할 사람들은 사과하는, 그런 이해가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제 다시는 묻지 않으리

 - 시천주 2014 4 16

 

                            홍일선

 

길섶 풀 한 포기

외진 곳 몽돌 하나이

응달 습생들 벌레 한 마리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공경의 말씀 이 땅에 누대로 계셔서

은빛 갈대들이 기꺼이

마을숲이 되어주었던 강마을

앉은뱅이꽃으로 만든 집 울타리

아기들 옹아리도 뉘엿뉘엿 지는 노을도

그 마을 저녁 연기 만나 지극했으리라

그러하온데 갈대숲 너머

단양쑥부쟁이들이 스러지던 봄날

 

연둣빛 신생의 아픔이 그믐달처럼

그 집을 찾아주신 것

이기지 못하고 늘 지는 것들 쓰라린 것들

그것들 슬픈 눈빛들이야말로

온 생명 보듬어 안아야 할 대덕이시라고

어머니시라고 그리운 님이시라고

한 농부에게 조용히 일러주신 것

그 농부 그믐달이 이윽한 마당에서

그리하여 흙님 숲님 강님 햇빛님 곡식님께

삼가 무릎 꿇어 삼배 올린 것

하늘 아래 생명 가진 것들에게는

하늘님이 계시다고 그 농부 믿게 되었을 것이다

 

산천 오랜 기다림들이

꽃망울 터뜨리는 봄날

2014 4 16일 봄날

그 집에선 어미 닭들

줄탁동시 산고가 있더니

병아리들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아홉 마리 열네 마리

목숨의 꽃들을 꼬옥 보듬어 안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봄날을 뵈옵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그러하온데 진도 어디라 했던가

어여쁜 꽃들로 가득 찬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

울음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들려왔던 것

그 집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들었을 것이다

앉은뱅이꽃 울타리 홍씨도 들었을 것이다

못자리 물을 대던 이장도 들었을 것이다

아욱 씨를 파종하던 새마을 지도자도 들었을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손보던 김씨도 들었을 것이다

배꽃이 영 글렀다고 한숨짓던 배씨도

밀린 사료값 때문에 밭 한 두락 내놓은 황씨도

4대강 공사가 끝난 뒤부터 양수장 물이 말렀다고

투덜대던 강씨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들었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대저 에프티에이가 무엇이기에 난리를 치는 거냐고

묻고 또 묻던 구노인회장도 들었을 것이다

대처 나가 사는 아들 내외 온 김에

땅콩이며 강낭콩 옥수수까지 심어 한시름 놓았다는

홀로 사는 충주댁 할머니도 들었을 것이다

부녀회장님 당나귀 다정이도 들었을 것이다

언평 벙어리 내외도 들었을 것이다

 

오호라

거룩한 봄 날

꽃 피는 봄 날

소용없는 그리움이었을까

처음부터 부질없는 비나리였을까

이 나라 귀태鬼胎들의 시간 어디였을까

가여운 가여운 팽목항에

붉은 동백꽃들이 하나씩 하나씩 질 때

마침내 우리나라 꽃이 다 질 때

밭에서 일하는 게 큰 죄를 짓는 서 같아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귀 세우는 시간

앉은뱅이 꽃집 어미 닭의 일곱 시간은 

지극한 생명의 시간이었는데

꽃이 지기 시작한 오전 아홉 시부터

꽃이 가뭇없이 진 오후 다섯 시 그때까지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었으리

 

이제 다시는 박근혜 그에게 묻지 않으리

오늘부터 쓰러진 것들에게 물으리

아픈 강물에게 물으리

시든 풀들에게 물으리

깨진 몽돌들에게 물으리

쓰라린 생명들에게

공경의 말씀으로 물으리

누구는 봄날이 간다고 설워하기도 하지만

이 땅 또 찾아주신 붉은 진달래꽃이 고마워서

시천주로 고요히 호명하노니

봄날 어린 꽃들이여

우리나라 꽃들이시여

==========================================

 

[책 추천]

이번 녹색평론에 실린 서평에서 소개된 책 네 권은 모두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리영희 선생의 삶을 쓴 <비판과 정쟁 - 리영희의 언론 사상>,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관점에서 쓴 생존기(?)를 그린 <동물 인문학>, 그리고 귀농에 관한 <귀농, 참 좋다>, 마지막으로 앞서도 이야기했던 추첨 민주주의에 관한 책인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책... 다 괜찮았지만, 그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동물 인문학>이라는 책이다. 그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실었는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의 심정을 동물들의 시각에서 적은 글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 책이 읽고 싶어서 바로 주문했다. 이 책을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한 책이 또 있는데, 그 책은 서평에서 소개해 준 책이 아니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여러번 이야기한 책이다. 전에 녹색평론을 통해 장일순 선생을 알게 되고 <좁쌀 한 알>을 읽은 적이 있는데그 책을 읽으면서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중에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여러번 이야기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도 같이 주문했다. 그 책들이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114쪽)
그(장일순)의 결혼 주례 이야기도 남다르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경쟁으로 가득 차 있네.
너나없이 남보다 한발 앞서서 남을 밟고 이겨야 해가 산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채 살고 있어.
그렇지만 삶이란 건 일등부터 골찌까지 다 저마다 할 일을 하며 함께 도우며 사는 거라.
이 이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사람만이 아니고 자연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모두가
서로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그게 참다운 공생의 삶인 거지.
오늘 새로 결혼하는 두 사람도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천지신명과 더불어 그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133쪽)
장일순의 글을 인용하면서....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봐라.
이루려 하면은 헛되니라.
자연은 이루려 하는 자와 함께하지 않느니라.
나는 한적한 들에 핀 꽃 밤이슬 머금었네.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마는 나 웃으며 피어났네.
누구를 위해 피어나서 누구를 위해 지는 것일까.
가을바람이 불면 져야 해도 나는 웃는 야생화.

(177쪽) <토마스 페인, 한 혁명가의 삶과 사상> 中에서
개인재산은 사회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사회의 도움 없이 한 개인이 개인재산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가 땅을 처음 만들어낸 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개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그에게 하나의 섬이나 대륙을 소유하도록 해보라.
그는 개인재산을 결코 획득하지 못한다.
그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처럼 수단과 목적은 분리할 수 없다.
수단이 없으면 목적도 없고 목적이 없으면 수단도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모든 개인재산의 축적은 그가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정의와 감사와 문명의 원칙에 의거해 볼 때, 그가 축적한 재산의 일부는
그 모든 것이 거기서 유래하는 사회로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택트 2
칼 세이건 지음, 이상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드디어 기계를 만들다]

1권의 마지막에서 세계 메시지 컨소시엄을 열었었다. 직녀성으로부터 신호 분석에 관한 컨소시엄이었다. 그 컨소시엄 이후에 세계 각지의 천문대에서는 신호를 계속 받았다. 그런데, 어느날 드디어 맨 처음 받았던 신호가 다시 들어왔다. 직녀성에서 보낸 신호가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되고 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구에서 받을 수 있는 신호는 다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었다. 엘리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예상은 그 메시지들 속에 암호를 풀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메시지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엘리는 엄청난 부자이자 암호 해독 전문가인 헤든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엘리는 헤든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헤든은 암호를 풀 수 있는 몇가지 단서를 주었다. 그리고 헤든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기계를 만들게 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돈을 자신이 대겠다고 했다. 자신이 기계를 만들겠다고 적극 나선 것이다. 그의 제안은 자금 마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한 개인의 소유로 간다는 점에 문제가 있어서, 엘리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가 결정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온 엘리는 헤든이 준 단서를 가지고 신호들을 해석해보았다. 그랬더니 불가능한 줄 알았던 신호 해석이 되었다.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그 신호들은 어떤 기계를 만드는 매뉴얼이었다. 그런데 그 기계는 아주 정밀한 기계였다. 그 기계를 만드는 매뉴얼만 수천 페이지였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그런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과학자들은 그 기계가 직녀성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 기계의 이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불러왔던 대로 그냥 '기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 머신”. 이 기계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 기계는 한두 해로 되는 일이 아니다. 수 년 아니 십 수 년이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돌발 사고]

세계 각국의 관련자들은 이 기계를 미국과 소련에서 각각 만들기로 했다. 만의 하나 누군가 나쁜 예측을 한 것처럼 이 기계가 폭발할 수도 있으니,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기계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 5명은 미국인 한 명, 소련인 한 명, 중국인 한 명, 인도인 한 명, 한 명의 자리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유럽과 일본은 기계의 부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기계 제작에 대한 우려는 지구를 폭발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는 걱정 이외에 기계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아서 세계 경제에 안 좋을 거라는 예상으로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 맞서, 이 기계 제작은 그동안 지구에 없던 신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로 결국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반론을 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계에 대한 전 지구인의 호기심을 누가 막겠는가?

미국인 탑승인 한 명. 미국 탑승인의 최종 후보는 드럼린과 엘리가 되었다. 아무래도 그들 둘이 가장 이 기계와 관련이 깊었으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최종 결정은 엘리에게는 안타깝지만 드럼린이 되었다. 엘리는 실망을 했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빛의 속도로 가도 26년이나 걸리는데 나이 많은 드럼린이 가면 안되고 했다. 하지만, 광속으로 여행하는 이들의 시간개념은 지구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이제 상식이다. 상대성 이론 말이다.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드럼린, 엘리도 그곳에서 기계를 점검하는 일을 같이 했다. 그러던 어느날, 공사 도중 무슨 실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큰 폭발이 일어났고, 그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죽은 사람들 중에는 드럼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드럼린은 엘리를 보호하려고 했고그의 그런 행동으로 엘리는 살아 남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 폭발로 미국에서의 기계 제작은 잠정 중단이 되었다. 또 안 좋은 소식은 소련에서도 결함이 발생하여 기계 제작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과연 기계는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드디어 탑승]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계를 만들면서 습득된 기술과 기계로 인한 우주에 대한 많은 관심 때문에 지구에서는 우주 여행이 보편화되었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 암호 해독의 중요한 단서를 주었던 헤든은 지구의 위성 궤도에 있는 우주거주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헤든 뿐만 아니라 노후를 보내려고 오는 이들도 있었다. 엘리는 헤든을 방문했다. 그리고 헤든의 돈 많은 일본인 이웃을 알게 되었고, 헤든과 그 일본인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일본에서도 그 기계를 몰래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제작도 끝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기계 탑승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탑승자 다섯 명 중에 미국인 탑승인인 드럼린이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는 엘리가 대신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계가 만들어졌다. 그 기계의 탑승일은 새로운 천 년을 코앞에 둔 1999 12 31일로 정했다. 지금의 시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1999년은 이미 먼 과거가 되었고, 당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설을 썼던 1985년을 기준으로 1999년은 먼 미래였고, 지은이 칼 세이건은 그런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다.

엘리를 비롯한 탑승객 5명은 기계를 타고 출발했다. 그들은 놀라운 경험을 했다. 기계가 회전을 하면서도 어떤 구불구불한 통로를 가는 듯했다. 엘리는 그 통로를 블랙홀이나 웜홀이라고 생각했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중간중간 서기도 했다. 마치 지하철 역처럼... 거대한 중앙역 같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그곳은 어떤 행성이었다. 지구와 아주 비슷한 행성의 바닷가였다. 백사장이 있고, 야자수도 있고, 바다도 있었다. 사람과 같은 생명체는 없었다. 그들은 마친 휴양 온 사람들처럼 그곳에 있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해안가에 의문의 문이 하나 생겼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젠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그들은 그 문을 열고 한 명씩 들어갔다. 엘리는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혼자 남았다. 혼자 있는 엘리에게 누군가 멀리서 다가왔다. 엘리는 깜짝 놀랐다. 바로 엘리의 아빠였다. 엘리는 그 사람이 진짜 아빠인지는 모르지만, 직녀성에 그가 살고 있고 딸에 대한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의 아빠는 신호를 보낸 것도 자신들이 한 것이고, 엘리의 아빠가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해 가능한 말들과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했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문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혼자 온 것이 아니고, 다들 다른 일행을 한 명씩 더 데리고 왔다. 그 사람들은 모두 죽은 가족들이나 자신이 동경하던 인물이었다. 중국인 탑승객은 진시황을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 이곳 직녀성으로 오는 것 같다. 그들 열 명은 한 자리에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기계에 탑승을 했다. 그리고 2 3일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기계에 탔다. 그 기계는 다시 통로를 통해 지구로 돌아왔다. 엘리를 비롯한 탑승객들은 환희에 찼다. 그들은 진짜 직녀성 주변의 행성을 다녀온 것이다. 인류 역사의 정말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무사 귀환한 것에 환호도 했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꿈인가]

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탑승한 이후로 기계는 회전하는 듯 하다가 그러면서 모두 통신이 끊겼고, 20분 정도 흐르고 나서 기계는 멈춰섰고, 그들이 기계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밖에서 기계를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엘리를 비롯한 다섯 명은 흥분해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다들 죽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고 하니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고작 20분이라니... 2조 달러를 쏟아붓고 난 결과가 이것이라니밖에 지켜 본 사람들은 엘리를 비롯한 탑승객의 경험을 조작이고,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들은 격리되어 각 국가의 정부요원에게 심문을 받았다. 엘리는 이 기계 만드는 것, 처음 신호 받은 것까지 모두 사기극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사기극에 엘리도 포함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이 사기극의 배후에는 헤든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물어봤다. 헤든은 돈 버는데 일인자였으므로, 이런 사기극을 만들고 기계 만드는데 참여해서 돈을 번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엘리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고,

그가 찍어온 카메라의 내용은 모두 지워지고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증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계는 한번 동작으로 하고 다시 동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엘리는 억울하지만, 그들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다시는 그 기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그냥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라면서 엘리에게는 어떤 죄도 묻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연구소로 돌아온 엘리. 요양소에 있다가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편지 속에, 엘리의 진짜 아빠는 어렸을 때 죽은 아빠가 아니고, 계부였던, 자신과 평생 각을 세웠던 존 스터튼 이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있었지만, 엘리가 직녀성을 다녀온 경험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을 것이다. 다시 엘리는 멀고 먼 우주의 지적 생명체로부터 또다른 신호를 기다라면서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 그렇게 소설은 끝났다.

외계 생명체 진짜 있을까? 개인적으로 진짜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무수한 별들 중에, 아무리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확률이 극히 낮다 하더라고 그 확률을 뛰어넘을 만큼 별이 많지 않는가. 당연히 지적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몰래 지구에 숨어 들어와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없다면, 지구에 있는 우리가 전 우주에 있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면~~ 이건 말이 안된다. 지구의 인류는 우주의 나이로 보자면 곧 멸망할 것인데, 이 오묘하고 광대한 우주를 인식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섬뜩할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 든다. 아무도 없는 이 광활한 우주가 팽챙만 하고 있다? 상상이 안간다. 그렇게 되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구의 인류가 생겨나기 전에, 우주를 알아주는 이는 누가 있었을까? 그냥 무심하게 별들이 생기고 사라지고 팽창하고 그랬을까? 아무도 없이?

사실 나는 이 우주의 지적 생명체보다 이 우주 자체가 무엇일까가 더욱 궁금하다. 이 우주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고,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간이라는 개념이 무한하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와 닿질 않는다. 우주에 관련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면, 좀 더 그렇다. 그래서 회사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곤 하면, 범 우주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한다. 이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 속에서 한낱 사람이, 촛불 연기처럼 살다가 살 터인데,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고 말이다.

 

[영화 <콘택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콘택트>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내용이 영화와 완벽하게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은 소설도 괜찮았지만, 살짝 각색한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엘리 혼자 기계에 탑승하고, 아무도 엘리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캠코더에 아무 신호없이 녹화된 것이 17시간이었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엘리의 경험이 진짜였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더 크면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da 2016-04-03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의 저자의 작품이네요. 책과 영화 보고 싶네요. 덕분에 재밌는 책을 알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bookholic 2016-04-03 10:1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이유로 읽었습니다. 영화도 재미있습니다~~ 즐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