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참고] 스포일러 포함 /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한강의 대표작]

이번에 읽은 책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이다.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의 세 편이 쭉 이어지는 소설. 몇 달 전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단 한 편의 소설을 읽고, 한강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도 제목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채식주의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으로 놀라게 했다. 장면들 중에 다소 불편한 장면들도 있었지만,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여성 작가 특유의 감수성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강의 대표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몽고반점>은 그 작품만으로 이상문학상을 타기도 했다. 우연찮게 이 책을 읽고 난 며칠 뒤, 한강이 이 소설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이 소설은 한강의 완벽한 대표작이 되었다. 맨부커상의 이 소설에 대한 심사평은 이랬다.

"다양하면서도 탁월한 작품들 사이에서 우리는 6개의 작품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초벌 번역본으로 본 진정으로 탁월한 6개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채식주의자>를 수상작으로 결정했습니다. 3명의 목소리로 서사되고, 3명의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이 소설은 간결하면서도 불안정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평범한 한 여성이 그녀를 가정에,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 옭아매는 모든 관습과 추측을 거부하는 궤적을 따라갑니다.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문체로 소설은 여주인공의 거부가 여주인공 스스로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충격을 그려냅니다. 짧으면서도, 격렬하고, 충격적인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각인돼, 아마도 꿈에까지 남을 겁니다.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 씨는 완벽한 번역을 통해 소설 매 순간 순간의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러운 기묘한 혼합을 전달했습니다."

이 심사평이 이 소설을 가장 잘 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 심사평을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강의 맨부커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우리나라 소설들이 다른 나라에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엇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이 훨씬 좋았다.

 

[채식주의자]

이 연작소설은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3편으로 되어 있고, 각각 다른 사람의 한 사람, 영혜를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영혜의 남편. 평범한 아내인 영혜. 결혼 5년차. 아내는 그동안 식성도 좋고, 내조도 잘하고, 남편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아내였다. 비록 뜨거운 사랑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들은 원만한 보통 부부였다. 그런데, 어느날 영혜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난 이후, 아내 영혜는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악몽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못 먹고 못 자고, 영혜는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혼자 채식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 고기 반찬은커녕, 달걀, 우유도 올라오지 않아서 남편도 집에서는 고기는 냄새도 맡지 못했다. 영혜는 남편에게서 고기냄새가 난다면서 잠도 같이 자지 않았다. 남편의 회사 상사들과의 부부동반 식사 모임에서도 영혜로 하여금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은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처가 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처형의 집들이 때 모여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사단이 일어났다.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를 보고 장인어른 호통을 치며 먹으라고 했고, 그래도 먹지 않자 손찌검도 했지만, 요지부동... 강제로 먹이려다가 영혜는 그것을 뿌리치며,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서 울부짖으며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영혜에게 고기는 죽음보다 더 싫었던 것이다. 놀란 식구들을 영혜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몽고반점]

이번에는 영혜의 형부 이야기다. 형부의 직업은 비디오 아티스트다. 영혜는 손목에 그은 사고 이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다시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했지만, 여전히 고기는 먹지 않았다. 남편은 더 이상 이런 생활을 못한다며 영혜를 떠났다. 그 이후 영혜는 한동안 언니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이젠 혼자 살고 있었다.

어쩌다가 아내와 몽고반점 이야기를 하다가 처제가 아직도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이상한 충동이 생겨났다. 그런 자신에 대해 책망을 하기도 했지만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처제의 몽고반점을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처제에게 제안을 했는데, 처제는 스스럼없이 허락을 했다. 그래서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을 하나의 꽃으로 하는 그림을 그렸다. 바디페인팅. 그리고 그런 처제의 모습을 빛과 어울리도록 비디오로 찍었다. 작품을 동료 작가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좋은 작품이라고 그를 칭찬했다. 영혜는 영혜 나름대로 자신의 몸에 그려진 꽃 그림이 불면증을 없애주었다고 좋아했다. 그 그림을 지우지도 않았다.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실제 식물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처제의 바디페인팅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는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바로 꽃의 결합이다. 남녀간의 결합 말이다. 후배한테 모델이 되어달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가 왔다. 바디페인팅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하자, 불편해 하면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응해주었다. 하지만, 형부가 진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자, 후배는 거절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는 결국 자신이 직접 하기로 했다.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처제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서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다음날. 동생의 반찬을 갖다 주러 온 언니가 벌거벗고 잠들어 있는 그들을 발견하였다.

술술 읽히지만, 읽는 내내 불편했다. 형부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을 위해서라면 어떤 벽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영혜의 입장에서는 식물이 되고자 하니, 사람들의 윤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혜의 언니, 인혜는 지극히 정상인 윤리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영혜의 언니, 인혜는 그들을 정신병원에 집어 넣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불꽃]

이번에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이야기다. 남편이 동생과 그런 짓을 하고 둘 다 정신병원에 넣었지만, 남편은 정신감정을 받고 퇴원을 했다. 인혜는 그런 남편과 살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리고 영혜를 보살피는 일도 인혜의 몫이었다. 어느날 영혜가 머무르고 있는 정신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영혜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영혜를 본 인혜는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먹지를 않아서 점점 말라가는 동생을 보는 것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영혜는 자신이 식물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냐고... 인혜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 영혜와 추억도 되살려보고 그랬다. 그리고 아직도 왜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옛기억을 그리다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일. 아버지가 개를 잔인하게 죽인 장면... 그때 영혜는 그것을 견뎌내기 힘들어했다. 트라우마. 그것이 영혜의 내면에 남아있다가 꿈에서 그 트라우마가 깨어난 것이고, 그것으로 영혜를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인혜는 영혜가 식물이 되고 싶은 마음을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 영혜는 식물이 아니고 당연히 사람이 아닌가? 그럼 먹고 살아야지. 그것을 나중에 영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이해할 거야. 인혜는 사람인 영혜를 살려야 했다. 그것이 언니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의료진들이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것에 허락을 하고, 의료진들이 영혜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고 했다. 하지만 어디서 힘이 생겨났는지 강한 거부를 했다. 결국 인혜는 영혜를 큰 병원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

이렇게 소설은 끝났다. 소설이 무겁다. 책을 덮고 한동안 농담을 던질 수 없없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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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억압이나 슬픔이 아니라 평안한 기쁨, 보편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그것이 만들어놓은 욕망의 집어등은 의식할 새도 없이

우리에게서 삶의 자유와 기쁨을 앗아가버립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욕망의 집어등은 매우 교묘하게 작동합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꼼꼼히 살펴보세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자유란 '소비의 자유'일 뿐이고

자본주의에서 얻는 기쁨이란 '자기 파괴적인 욕망의 충족'일 뿐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들 대부분은 욕망의 집어등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깊이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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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철저히 의존하고 모든 것을 고백하며,

기독교도들에게는 평화와 안식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수중에 많이 넣을수록 현대인의 마음에도

여유와 안정이 찾아들지요.

독실한 신자는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 찾아올 때 신의 은총을 느낍니다.

또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거나 주식 투자로 주가가 오르면

우리는 돈이라는 신이 강림한 데 대해 엄청난 황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우리 지배력은 돈을 쓰지 않고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을 꿈꾸는 동안에만 작동합니다.

현실적으로 돈을 사용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해버립니다.

이 순간은 마치 신이 떠나버린 듯한 무서운 효과를 낳습니다.

신의 은총을 찾아 다시 교회로 돌아가듯이,

우리는 돈이 떠나려는 순간,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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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피상적으로 보면 이전 사회보다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의 자유를 위해서 돈의 노예가 된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세요.

수중에 돈이 없을 때 얼마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고 느끼는지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가 돈이 있을 때만 가능한 그런 성격의 것이라면,

그것은 돈의 자유이지 우리 삶의 자유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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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드에게 파리는 악의 꽃, 다시 말해 '악'이며 동시에 '꽃'이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악'은 19세기 파리를 장악하던 산업자본의 힘,

다시 말해 '화페'의 신적 역량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꽃'은 화려하고 매혹적인 '상품'이나 '여성'을 상징합니다.

산업자본이란 '악'이 있기 때문에 상품이라는 '꽃'도 가능했겠지요.

보들레르가 파리에 대해 애정과 증오라는 이중 감정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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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였습니다.

사랑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은 자본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소망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본주의는 늘 인간의 무한한 진보와 번영을 약속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곧바로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가의 노쇠함과 그에 이어지는 필연적 죽음입니다.

육체적 노쇠함은 인간을 탐욕과 축재로부터 벗어나게 하지요.

물론 노쇠해져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도 자본주의적 탐욕의 갈등이 꺼지지 않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인 유하에게는 이 두 가지 희망이 어렴풋하게나마 그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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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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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 /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행복?]

이 책은 작년에 신간소개를 통해서 알게 된 책이다. 책표지가 독특해서 일까? 이 책에 많이 끌렸다. 그래서 가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보았다. 괜찮은 평들이었다. 귀가 얇은 나는 남들의 평이 괜찮으니,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목. 행복만을 보았다. 그리고 파란색 꽃들이 그려져 있는 책표지무슨 내용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는 우리 인생의 가치는 얼마일까? 를 물어보았다. 왜 이런 질문을 던질까?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주인공의 직업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손해사정사. 그것도 원칙을 중시하는 손해사정사. 손해사정사가 어떤 사람이냐면, 교통사고 등이 났을 때 보험금에 대해 책정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일을 냉혈한처럼 감정 없이 원칙대로 감정함으로써, 그가 소속된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앙투안. 주인공 앙투안이 7살 아들 레옹에게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를 통해 앙투안의 삶을 추리해보니,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 않다. 아내와 이미 이혼한 것 같고딸 조세핀과 아들 레옹이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런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 앙투안은 그 불행을 계속 몸에 담아두고 사는 같았다. 그에게는 다섯 살 아래 쌍둥이 여동생들이 있었다. 이름은 안, 안나. 그런데 안이 일곱 살 때 갑자기 죽고 말았다. 어떤 병도 없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그 전부터 우울증을 겪고 있던 엄마는 가족들을 두고 집을 떠났다. 그 이후 아버지와 앙투안, 그리고 안나 그렇게 살게 되었다. 안나는 쌍둥이 언니가 죽고 나서 그 충격의 후유증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문장 전체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단어들만 이야기했다. 마치 자신의 반을 잃어버린 것처럼안나의 말을 알아듣는 이는 별로 없었다. 물론 앙투안은 안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안나도 그렇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나중에 토마스를 만나 둘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갔다. 토마스를 만난 후로 안나는 어린 시절의 불행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실패한 결심 = 다행]

앙투안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사랑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새어머니와 만나면서 불행을 극복한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앙투안은... 그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 시절의 불행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괜찮은 직업도 갖게 되었고, 나탈리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조세핀과 아들 레옹도 낳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탈리는 앙투안만을 사랑하는, 안정적인 여자는 아니었다. 나탈리는 사랑에 굶주렸는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나기 일쑤였다. 레옹을 낳기 전부터 그랬다. 안나가 사랑을 통해서 불행을 극복한 것과 달리, 앙투안은 깨진 사랑으로 자신의 불행이 더욱 커진 것 같다. 그가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의 동정으로 냉철함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 단 한 번의 일로 회사는 그에게 해고를 명했다. 그보다 회사는 더욱 냉철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앙투안은 재취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숨어 있던 불행은 스멀스멀 올라왔다. 바람 피워 집을 뛰쳐 나간 아내. 실직한 자신. 어린 자식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불행과 불안은 극에 달하게 되고... 결국 아이들과 함께 자살을 계획하려고 했다. 총도 샀다. 그가 계획한 날 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의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는 잠든 조세핀에게 먼저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방아쇠는 당겼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총구를 트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늦어서 총알은 조세핀의 턱을 그대로 강타하고 피는 난자하고 조세핀은 그 예쁜 얼굴이 일그러졌다. 앙투안을 조세핀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정신병원으로 격리되었다.

 

[다시 태어나다]

앙투안은 그동안 경찰서에서,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뒤 그는 프랑스를 떠나 멕시코 서쪽 해변가 마을에 이방인으로 살아갔다. 모든 과거를 숨긴 채... 호텔에서 청소를 하면서 착한 이방인으로 살아갔다. 자신이 한 짓을 후회하면서 살아갔고, 가족들과 연락도 모두 끊었다. 어쩌면 그는 새로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곳의 이웃 중에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났을 때, 차량 사고의 원인을 찾아내주고 차도 고쳐 주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천부적인 직업정신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후, 앙투안은 이웃 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런 이웃으로부터 사례금도 받아서 경제적 여유도 좀 생겼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는 더 이상 그 옛날의 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마틸다라는 여인과 사랑도 하게 되었다. 마틸다는 그의 옛 아내와 달리 그의 곁을 늘 지켜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드디어 그 옛날의 불행을 극복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늘 조세핀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잘못으로 후회가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퍼즐]

다행으로 조세핀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또 불행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그 예전의 어여쁜 얼굴은 아니었다. 턱 주변이 거의 날아갔으니 말도 제대로 못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얼굴은 흉측했다. 정신을 잃었던 조세핀이 깨어나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엄청 컸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동생 레옹도 누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했다. 그렇게 누나의 복수를 하겠다고 했다. 엉덩이 살을 얼굴로 이식하는 등 큰 수술을 여러 번을 했다. 조세핀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 엄마와 엄마의 새 애인이 같이 사는 집에서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 그래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앞으로 조세핀은 평생 남의 이목을 신경 쓰며 살아야 했다. 이런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런 조세핀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 찾아왔다. 친구 사샤. 주근깨가 유달리 많던 사샤는 조세핀과 단짝 친구가 되었다. 사샤는 조세핀의 외모를 보지 않고, 조세핀의 예쁜 마음을 보는 그런 친구였다. 조세핀과 사샤의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그들의 우정은 조세핀의 불행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행복으로 변하는 놀라운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우정은 조세핀의 불행을 작은 것으로 만들고, 조세핀의 불행을 만들었던 아빠에 대한 악한 감정도 조금씩 사그러 들었다. 그리고 꺼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용서'라는 카드도 꺼낼 정도가 되었다.

조세핀은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조세핀은 아빠를 만나기 위해 멕시코로 날아갔다. 다시 만난 아빠는 그 옛날의 괴물이 아니었다. 사랑으로 불행을 극복한 착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조세핀에게 미소를 보내고, 어깨를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것으로 조세핀과 앙투안의 마지막 행복의 퍼즐을 푼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리곤 지은이는 마지막 한 페이지 한 가운데에 단 두 줄로 결론을 지었다. 어쩌면 당연한 말...

"그러니까 인생이란 결국

힘겹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라고....

...

이 책의 지은이는 그레구아르 들라쿠르라는 사람이다.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름이 너무 어렵다 오랫동안 외우기는 어려운 이름이다. 프랑스 사람으로 유명한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한다. 이름을 잘 외우고 있어야 다음의 그의 책을 만나면 또 한번 읽어볼텐데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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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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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님을 추모하며…]

가끔 어떤 책은 어떤 내용인지 전혀 확인도 하지 않고 지은이만 보고 책을 사는 경우가 있다. 장영희 교수님. 그 분의 책들도 그런 책들이다. 지난 월요일(2016 5 9)은 장영희 교수님이 돌아가신 지 정확하게 만 7년이 되는 날이다. 어디선가에서는 장영희 교수님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 나름대로 장영희 교수님을 추모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산 것은 좀 되었는데, 5월에 읽으려고 읽지 않고 있었다가 이번에 읽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미 장영희 교수님께서 영미시를 소개해 준 책 두 권을 읽었다. <생일>이라는 책과 <축복>이라는 책이 그 책이다. 좋은 시를 소개해주고,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형식이었다. 시를 즐겨 보지 않던 나에게 시도 읽을 만하다.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시가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들이었다. 이번에 읽은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 봄에 출간을 했으니, 이미 장영희 교수님이 돌아가신 후다. <생일>이나 <축복>과 비슷한 책을 출간하려고 준비했던 글들을 모아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생일> <축복>이라는 책에서 봤던 시와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책 맨 뒷 쪽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생일>, <축복>,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에서 계절을 노래한 시들을 선별해서 엮은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시가 기억났지만, 대부분의 시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시를 천천히 읽으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던 장영희 교수님의 또 다른 책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란 책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다른 책 살 일이 있었는데, 이 책도 같이 구입했다. 잘 아껴두었다가 내년 5월에 읽어야겠다.

이번에 읽은 <다시, >이라는 책도 <생일>, <축복> 등의 책과 마찬가지로 화가 김점선의 그림과 함께 했다. 두 분이 생전에 단짝이었던 것처럼 두 분의 글과 그림은 이 책에서 단짝이 되어 서로 잘 어울렸다.

 

[시를 찾아서…]

시집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는 마음을 찡하게 하는 좋은 시를 만나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그 시를 외우면 좋겠지만, 이제 나는 외우는 능력은 사라져버렸다. 쓰는 걸로 대신한다. 이번 책에서 나의 마음을 적신 시 몇 편을 발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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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 메리 R 하트먼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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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 클로버

                    - 엘라 히긴슨

 

나는 해가 금과 같이 반짝이고

벚꽃이 눈처럼 활짝 피는 곳을 알지요.

바로 그 밑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네잎 클로버가 자라는 곳이 있지요.

 

잎 하나는 희망을, 잎 하나는 믿음을,

그리고 또 잎 하나는 사랑을 뜻하잖아요.

하지만 하느님은 행운의 잎을 또 하나 만드셨어요.

열심히 찾으면 어디에서 자라는지 알 수 있지요.

 

하지만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가져야 하지요.

사랑해야 하고 강해져야지요.

열심히 일하고 기다리면 네잎 클로버

자라는 곳을 찾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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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 모드 M. 그랜트

 

햇빛 번지는 푸른 하늘

나무 밑의 녹색 그림자

숱한 새들의 노랫소리

부드럽고 따뜻한 미풍

연분홍, 진줏빛 흰색꽃

만발한 과일 나무들

보라색 구름 흔드는 라일락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어라

꽃피는 나무 하나하나

커다랗하고 아름다운 꽃다발

새들과 꽃들의 달인

향기롭고 아름답고 즐거운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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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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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못한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을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

 

그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 하기에....

,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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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만약 내가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5월은.....
- 모드 M. 그랜트

햇빛 번지는 푸른 하늘
나무 밑의 녹색 그림자
숱한 새들의 노랫소리
부드럽고 따뜻한 미풍
연분홍, 진줏빛 흰색꽃
만발한 과일 나무들
보라색 구름 흔드는 라일락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어라
꽃피는 나무 하나하나
커다랗하고 아름다운 꽃다발
새들과 꽃들의 달인
향기롭고 아름답고 즐거운 5월에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 메리 R 하트먼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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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감동하는가 - 클래식계의 괴물 조윤범의 감동 사냥법
조윤범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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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조윤범 에세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딱 한가지, 지은이 때문이다. 보통 에세이를 선택할 때, 지은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주제를 보고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아무리 주제가 관심이 가더라도, 잘 모르는 지은이라면 책 선택하는데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지은이가 좋아하는 이라면 주제에 크게 관심 없이 그의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조윤범이라는 분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연주가다. 연주가라고 하기에는 그가 하는 분야가 너무 다양하지만, 그의 본업은 바이올리니스트니까 연주가임은 분명하다.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이기도 한 조윤범. 그런데 콰르텟엑스의 이름은 잘 안 외어진다. 연주단 이름이 좀더 쉬운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윤범이 이끄는 현악사중주단 이름이 뭐였더라? 이렇게 된다. 공연이라도 한번 보면 모를까? 그런 적도 없다. 조윤범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의 연주도 직관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 맞나?^^ 비록 그의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그가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된 클래식 강의를 즐겨 보았고, 나중에 그것을 유투브에서 다시 보았고, 몇 년 전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들었고, 그가 쓴 책들을 보았다. 이 정도면 그를 좋아한다고 할 만하지 않나?^^

이번에 읽은 <나는 왜 감동하는가?>는 전형적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솔한 인간 조윤범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그의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등등... 물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감동은…]

제목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을 나한테 적용해 봤어. 나는 왜 감동하는가? 그리고 나는 언제 감동하는가? 최근에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감동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내가 감동을 받은 순간을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집 아이들. 아이들 자체가 나에게 감동이다.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해서 아빠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감동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감동이고, 그저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 그러면 아이들을 빼고 나면 나는 무엇에 감동을 받는가? 생각해 보았다.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은 많지만입에서 저절로 정말 감동받았다고 한 적이 오래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도 ", 감동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오래인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감정이 메마른 것인가? 어쩌면 우리집 아이들이 나에게 너무 큰 감동을 주어, 웬만한 감동은 감동처럼 느껴지지 않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 조윤범은 이 책을 열면서 감동을 쉽게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고,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연주자인 지은이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니 참 행복한 직업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동의 표현을 보고 자신도 또한 더 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나의 직업은? 나의 일로 다른 이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니후후.. 농담도 그런 농담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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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동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공감'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그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마지막의 '표현'은 가장 중요한데, 그 결과로 눈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큰 소리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며,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가장 극적일 경우에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과 이해의 진폭이 나에게 되돌아와서 감동은 더 커진다. 관객이 많이 차 있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더 좋은 이유는 이러한 피드백을 서로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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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감동이 필요할까? 감동은 행복과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동이 많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세상. 그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음악]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모두 그것으로 밥벌이까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전공을 바꾸고, 그냥 회사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 지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밥벌이도 하니, 행복이 가득할 것 같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면 그래 보인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한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음악에 관련된 취미가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다. 꼭 배우고 싶은 악기가 있다면 피아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오래된 아내의 피아노로 집에서 독학으로 연습을 하기도 했었지만, 열정이 부족해서 중단하고 말았다. 다시 마음을 먹고 배우고 싶다. 그런데, 손가락과 머리가 굳을 대로 굳어서 과연 할 수 있을까?

지은이 조윤범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글이 있어 발췌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친다. 이 글을 읽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났다. “음악 없는 인생은 물 없는 사막 여행이다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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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돈과 성공 그 이상의 무엇이다. ''은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이용해 다른 것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며, '성공'이란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뤄낸 결과다. 이 두 가지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당신의 아이를 인생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우리는 음악을 가르쳐야 한다. 음악을 모르고도 살 수는 있다. 인생의 정수를 모르고도 숨을 쉴 수는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삶을 대물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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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감동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동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공감`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그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마지막의 `표현`은 가장 중요한데, 그 결과로 눈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큰 소리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며,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가장 극적일 경우에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과 이해의 진폭이 나에게 되돌아와서 감동은 더 커진다. 관객이 많이 차 있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더 좋은 이유는 이러한 피드백을 서로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9쪽)

음악은 돈과 성공 그 이상의 무엇이다. `돈`은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이용해 다른 것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며, `성공`이란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뤄낸 결과다. 이 두 가지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당신의 아이를 인생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우리는 음악을 가르쳐야 한다. 음악을 모르고도 살 수는 있다. 인생의 정수를 모르고도 숨을 쉴 수는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삶을 대물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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