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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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분류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매우 정치적인 동시에 개인적이고, 에세이면서 과학책이고, 전기이면서 미스터리 스릴러 기도하다. 틀에 매이지 않는 이 책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유유자적 고정관념의 바위를 피해 다니며 자신만의 독자적 장르를 만들어간다. 정말로 독특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를 빼고 보면 마이클 조던의 별칭인가 싶을 정도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 남자는,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스탠퍼드의 초대 학장이다. 물론 당시의 스탠퍼드가 지금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설립자는 캘리포니아에서 매우 수상한 방법으로 떼돈을 번 부부였고 대학을 설립한 취지에도 약간 구린내가 풍겼다. 심지어 남편 릴런드 스탠퍼드가 사망하자 아내 제인은 스탠퍼드 대학이 강신술에 대한 과학적 연구 같은 분야로 확장해나가길 원했다. 제인은 과학자들이 대기 중의 X선을 활용하여 망자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열어주기를 요구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래도 과학자였다. 제인의 생각을 쓰레기라고 치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을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든 조던은 물고기 분류에 관한 한 미국 일인자였고 그가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해 명명한 종들만 모아도 대학 연구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이 관심의 충돌은 이 책을 돌연 미스터리 스릴러로 이끄는 복선이 된다.


이 책의 줄기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생애다. 일종의 전기라고 보는 것이 맞다. 저자 룰루 밀러는 불행했던 개인사를 중간중간 끼워 넣어 자신이 왜 조던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됐는지를 밝힌다. 밀러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조던이 평생을 놓지 않았던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였다.


조던은 강신술을 과학이라 믿는 무지한 고용주와 함께 일하면서도 자기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나이였다.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두 번째 부인과는 궁합이 잘 맞았지만 사랑했던 자식들을 불운한 사고로 잃었다. 치명타는 1906년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대지진이었다. 그 끔찍한 지진은 조던이 30년 동안 일군 업적을 단 몇 초만에 박살 내버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에 사로잡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대사건 앞에서 조던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아는가? 그는 부서진 연구실로 달려가 에탄올과 시체 냄새를 헤치며 터지고 찢어진 물고기 표본들을 손에 쥐고 다시 그 위에 이름표를 꿰매 넣었다.


조던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좌절과 분노를 어떻게 제압했을까? 그에겐 감정이란 게 없었던 걸까? 그릿(Grit)이라고도 부르는 이 근면 성실은 조그만 바람에도 휘청이던 삶을 살았던 룰루 밀러에게 성배와도 같았다. 어떻게 하면 조던처럼 살 수 있을까?


감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흔하고 뻔뻔한 아메리칸 성공 스토리 기도 한 이 책은, 그러나 종반에 이르러 눈에 띄게 궤도를 이탈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이 되어 독자를 충격에 빠뜨린다. 그 순간 사소하고 같잖았던 이 이야기는 인류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힌트는 제목에 있다. 마지막 문장을 다 읽고 나면 이 모든 게 페이크 다큐는 아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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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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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를 선택한 건 '아작'과 '부커상'이라는 미스 매치 때문이었다. 아작에서 나온 소설이 부커상에 노미네이션 되다니, 내가 아는 아작은 그런 데가 아닌데... 물론 아작의 책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읽어온, 이 임프린트에서 출간한 책들은 대개 SF였기 때문이다. SF가 뭐 어때서?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


<저주토끼>는 SF가 아니었고 얼마 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한다면 한강 이후 한국 문학계가 내디딘 또 하나의 중요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한국 문학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들의 심사평에 동의하든 말든. 그 의도가 어쨌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소설에 주목했는지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이런 책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서와 문화와 전통이 다른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배움을 위한 의문이다.


<저주토끼>는 10편의 소설로 엮은 단편집이다. 공포 또는 환상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로 전부 지독하게 쓸쓸하고 우울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갑자기 임신해 여기저기 핍박을 받다 사람이 아닌 핏덩이를 낳고 안도한다거나, 자신의 똥오줌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변기 뚜껑을 열고 나타나 '어머니'라고 부른다거나, 자기를 초기화하려는 주인을 살해하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들.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해 죽은 자리를 뱅뱅도는 지박령의 사연이나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건 벌을 받아 죽은 뒤 매일 밤 가족을 찾아오는 유령의 이야기 정도는 이 책에서 꽤 밝은 축에 속한다. 사는 게 힘들어 희망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절대 피하시라 말하고 싶다. 아니, 아픔의 공유를 통해 오히려 치료의 기회가 생기려나?


만약 <저주토끼>가 부커상을 최종 수상하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 탓에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펼쳐 들고 느낄 곤혹을 떠올리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직접 읽고 판단하시라.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좀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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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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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들려주는 최초의 사적인 이야기다. 그 수많은 수필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꼭꼭 감춰두었던 하루키다. 물론 위스키나 달리기 클래식 음악처럼 본인의 취향을 드러낸 적은 많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인간관계, 그러니까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아버지는 1917년 12월 1일 교토시 사쿄 구 아와타쿠치에 있는 '안요지'라는 정토종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불운한 세대였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두 번이나 징집되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부상 없이 종전을 맞았다. 어린 시절 하루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매일같이 불상을 마주 보고 앉아 불경을 외는 모습이었다. 죽은 적군과 동료의 명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학문에 큰 뜻을 두었던 것 같다. 문학, 특히 하이쿠에 깊이 빠져들었다. 동인들과 유명한 하이쿠 시인의 여행지를 답사하고 하이쿠를 짓고 출간도 여러 권 했다. 그 당시 하루키의 집 한켠에는 아버지가 출간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는 시인이 될 수 없었다. 결혼을 했고, 하루키를 낳았고, 교사가 됐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꽃다운 나이에 다른 꽃을 죽이다 처절한 패배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얇은 뿌리 몇 가닥을 내릴 땅을 찾아 고군분투했던 세대. 그러니 그의 아버지가 이른바 단카이 세대로 불리는 하루키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아버지와는 다르게 단카이 시대의 아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들은 대학 입학 직전에 전쟁에 나가라며 등을 떠밀리지 않았다. 일본은 세계를 지배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하루키가 청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은 현실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황과 고민의 새싹은 늘 풍요의 대지를 비집고 움튼다. 하루키는 공부에 큰 열정이 없었다. 정해진 답을 기계처럼 외우는 일에 이 아웃사이더가 어찌 흥미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의 아버지는 이런 하루키에게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다. 뻔한 레퍼토리.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방해하는 것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좀 더 면학에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가'(p.60). 하루키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했지만 그 시점에 두 사람은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결국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 부모를 이해하고 화해를 시도한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건네는, 지극히 하루키다운 화해로 읽힌다. 책은 얇고, 그 어디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하루키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슴 끝으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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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1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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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선을 떠나 다른 땅과 시간을 구경하니 흥미가 남달랐다. 이제는 남의 땅이 되어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분노가 집중을 더했을 것이다. 당시에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같을지는 미지수다. 땅의 모양과 크기, 산과 강의 구성, 기후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만약 그 시간대로 날아가 그들과 만날 수 있다면, 그럼에도 한 핏줄임을 의심할 수 없는 표식을 서로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드문드문 완벽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을까?


당시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단 두 개의 나라와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그 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고 외교를 맺고 강토를 관리해왔을 그들을 떠올리면 절로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지간한 배짱과 지혜, 힘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총 700년에 달한다. 그동안 한반도는 삼한과 가야, 옥저 등이 일어났다 사라져 백제와 신라로 압축됐고 중국은 한나라를 거쳐 위, 촉, 오의 삼국시대, 5호 16국, 남북조를 거쳐 수와 당나라까지 수많은 국가가 명멸하였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할 때마다 이 북방의 맹주는 늘 목 앞에 드리운 칼날이었다. 고구려는 여러 나라가 난립할 때는 외교를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했고 하나로 뭉쳐 강해졌을 땐 힘으로 맞서 무너뜨렸다. 광개토대왕의 무력 덕분에 강력한 철기병으로 적진을 초토화하는 여포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위치에서 700년을 살아가려면 창과 칼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전쟁은 이기든 지든 국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 복잡했던 중국 대륙을 다시 한번 통일해낸 최강 수나라가 괜히 망했겠는가?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특히 그들의 정치 외교술에선 무지가 더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고구려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힘과 정치의 교묘한 균형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보다도 긴 고구려의 역사를 조선의 역사보다 한참이나 얇은 두께로 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고, 너무 오래되었으며, 그나마 남의 땅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된 지역도 꽤 최근까지 청나라 왕조가 시발한 성지로 간주되었을 정도다. 심지어 그 비문은 일본과 중국이 독점하여 각각 역사 왜곡의 원료로 삼고 있다. 자국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타국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부조리. 그러니 그 후손들이 향수와 함께 깊은 분노와 아쉬움을 느끼는 거 아니겠는가?


이 책은 고구려의 역사를 정말 한 권으로 읽을 수 있게 잘 요약해놨다. 그러나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고구려의 문화와 제도, 정치를 좀 더 깊이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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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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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타임>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파리 리뷰>에서 기획한 단편선이다. <파리 리뷰>는 1953년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문학을 다뤘으며 계간지였다. 창간 이후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의 경력, 국적,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소설들을 편집해왔다.


어느 날 <파리 리뷰>는 웬만한 출판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기획한다.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한 것이다.(자기 소설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소설을 고른 것이다)


물론, 보는 이야 즐거운 기획이지만 선택당할 소설의 작가들이 이런 기획에 흔쾌히 동의했을지는 의문이다. 문학을 해설하는 일에 기겁하는 작가들이 많은 데다 누군가 본인의 소설을 탁월하다고 평하는 걸 마냥 흐뭇하게 쳐다볼 작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비평 자체를 혐오하는 작가들도 많다. 오죽하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다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뒤 모조리 상어 떼에 뜯겨먹힌 산티아고 노인의 이야기를 헤밍웨이와 비평가 사이의 관계로 해석하는 버전이 나왔겠는가.


그러나 소설을 선택하는 입장에선 이런 기획이 자신의 최애 작가를 여러 사람 앞에서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작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작품에 대해 뭐라 하는 건 싫어하지만 다른 작가에 대한 얘기는 곧잘 하는 편이다. 특히 그들이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만약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두 소설을 두고 고민할 것 같다. 하나는 어윈 쇼의 <80야드의 질주>이고 하나는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다. 둘 모두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어윈 쇼의 경우 작가 자체도 낯선 이름인데, <80야드의 질주>에서 그가 크로키한 인생의 무상함은 읽은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아무튼 나 같은 바보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원고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이는 꽤 신나는 일이다. 아마 <파리 리뷰>의 전화를 받은 작가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소설을 고를까. 이 소설의 어떤 면을 소개할까. 독자들도 나처럼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될까?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란 고작 먼지 한 톨에도 비기지 못할 존재고, 그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낳은 문학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가치가 있나 싶다가도, 이렇게 문학이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걸 보면 역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위대함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첫 소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화자는 자동차 사고 현장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고 말한다. 우주의 먼지들에게도 모두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이 적힌 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나는 문학의 폭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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