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우리 공장에서 주관하는 연수에 다녀왔다. 교육 프로그램중 하나가 이동순 교수의 <노래로 배우는 한국현대사>다. “황성옛터”, “비내리는 고모령”, “굿세어라 금순아” 등 옛 가요의 역사와 노래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살펴보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황성옛터 하나만 소개한다. <황성옛터>는 한국 사람이 작사와 작곡을 한 최초의 대중가요다. 가요사적 의미가 실로 중차대하다.

 

1920년대 말 순회극단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전수린이 어느 달밝은 밤, 개성에서 고려의 옛 궁궐터 만월대를 둘러보다 역사와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었다. 이 곡조를 듣고 같은 극단의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왕평이 가사를 붙인 것이 바로 “황성옛터”이다. 음반 출판당시의 제목은 <황성(荒城)의 적(跡)>이다. 돌보지 않아 거칠고 낡은 성의 자취라는 뜻이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러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같은 극단의 배우였던 당시 18세의 이애리수가 연극무대 막간에 이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황성의 적>이 크게 유행하면서 1932년 빅타레코드사에서 정식 음반으로 취입하게 된다. 전국의 가요팬들이 이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레코드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이 음반은 5만장이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가요시장이란 것이 개념조치 없었던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노래에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설움이 감정이입 되어 있었다.  

 

이애리수가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을 무렵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배동필. 부자집 외아들이자 연희전문에 다니는 잘생긴 엘리트 대학생으로 두사람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배동필은 양반가 출신이고 이애리수는 말하자면 천한 딴따라였으니 배동필의 집안에서 이를 허락할리 없다. 더구나 배동필은 이미 부모가 맺어준 아내도 있었다. 두사람은 죽어서라도 사랑을 이루겠다는 비장한 의지로 정사(情死)를 계획하게 되고 실제로 동맥을 끊고 극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당시 신문기사의 제목 부분이다.

 

死後天國(사후천국)의 佳緣期約(가연기약)코

悲戀靑春(비련청춘)의 情死騷動(정사소동)

- 歌姬 李愛利秀(가희 이애리수), 學生 裵東必(학생 배동필) 동맥을 끈코서 “칼모친”까지 마시었다.

- 鮮血(선혈)로 물드린 사랑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 허락을 받아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단 조건이 있었다. 첫째는 결혼식은 올리지 않는다. 둘째는 가수 출신임을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후 이애리수는 가요계를 완전히 떠나 모습을 감추었다. 이애리수가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근 80년만인 2008년 신문 지면을 통해서이다.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형 요양원에서 자녀과 손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생존해 있다는 보도였다. 2009년에 돌아가셨다. 향년 99세.

 

영남대 교수인 이동순 시인이 한국가요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지 몰랐다. 옛가요사랑모임인 <유정천리> 전국회장이다. 1천여장의 가요 SP음반을 소장하고 있다. 1932년 나온 황성옛터는 가격이 1천만원선이라고 한다. 가요관련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대구MBC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늘 강의에서는 이동순 시인의 수준급 아코디언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시인이 직접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들려주는 우리 옛 가요 이야기는 예상외로 무척 재미있고 또 그 가요에 얽힌 사연들을 알게되니 노래가 더욱 새롭고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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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4-16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도 있군요. 바로 담아갑니다. 저는 큰 회사생활을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단체로 연수가거나 놀이가는게 부럽네요. 물론 여러 사람들이 섞이는만큼 문제도 많고 피곤하기도 하겠지만요.ㅎ

붉은돼지 2015-04-16 11:13   좋아요 0 | URL
우리 옛가요에 얽힌 이야기들도 재미있더라구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가 부산 국제시장에 있다가 나중에 대구의 양키시장(지금의 교동시장)에 와서 장사를 했는데 당시 대구 송죽극장 위에 있던 오리엔트 레코드사 관계자가 금순이의 파란많은 이야기를 듣고 깊이 공감하여 <굳세어라 금순아> 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 배경은 부산이지만 만들어지기는 대구에서 만들어졌다는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문단야사도 재미있지만 가요계 야사도 재미가 솔솔....

여운 2015-04-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순 교수님과 사석에서 커피 한 잔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멋진 교수님이시죠 ^^

붉은돼지 2015-04-20 14:48   좋아요 0 | URL
연세가 환갑을 훨 넘으셨는데도 청바지에 중절모에 은발에 아코디언까지 멋지시던데요^^

여운 2015-04-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가요사 책 저도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는 OB파니 양은이파니 이런 건 몰라도 청록파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는 아니고 다 알았다. 아시다시피 청록파의 삼거두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이다. 올해가 박목월 탄생 백주년이라고 한다. 박목월의 아들은 서울대교수 박동규다. 검색을 해보니 조지훈의 아들은 조태열이라는 분으로 현재 외교부 제2차관이다. 박두진의 아들은 검색되지 않는다.

 

오늘자 조선일보 정민의 <세설신어>의 제목은 이백과포(易帛裹布).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은 박목월 선생의 수필집을 정리하다 명주안감이란 글을 읽었다. 아들은 아침저녁 10리씩 걸어서 학교에 갔다. 혹독한 겨울 날씨에 내의를 안 입은 채 광목옷이 빳빳이 얼면 사타구니가 따가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헌 명주옷을 뜯어 아들의 바지저고리에 안을 받쳐 주었다. 살결에 닿는 감각이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우연히 손자의 옷 안자락을 보게 된 할아버지가 불벼락을 안겼다. “당장 벗어라그러고는 어린 것을 저리 키워 뭐에 써먹느냐고 펄펄 뛰었다. (중략)

 

김언종 교수가 번역해 실학박물관에서 새로 펴낸 다산의 잡록 혼돈록(餛飩錄)’을 보니 이백과포의 항목이 보인다. 우리나라 조복(朝服)이 여름엔 모시를 쓰는데 비단으로 안감을 대서 겹옷으로 만들었다. 정조가 이를 금지시켜 겉의 천이 모시이면 안감 또한 모시를 두게 했다. 정조의 이 같은 조처는 예기(禮記)’ ‘옥조()’편에서 베옷에 비단으로 안감을 두는 것(易帛裹布)은 예가 아니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후략)“

 

훗날 선생(박목월)은 그 때의 소동에서 한 그루 교목처럼 실팍하고 굳세게 자녀를 기르시려는 할아버지의 준엄한 마음을 읽었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기억했다고 정민은 쓰고 있지만 불초한 소생은 조신들의 조복에 대한 정조의 조처는 아주 적절하지만 어린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행동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광목옷 안에 비단을 댄 것도 아니고, 못쓰는 아버지의 명주 헌옷을 재활용하여 불편한 점을 고쳐쓴 것이니 오히려 잘한 일이라 할것이다. 목월의 할아버지는 그 자신에게도 그리 엄격했는지 묻고 싶다.

    

 

추신 : 소생 서재 당호 <사의재>의 유래 

 

다산 이야기기가 나와서 참고로 알려드린다. 소생 서재의 당호가 가당찮게도 사의재(四宜齋)”이다. 처음 알라딘에 서재를 꾸릴 때 그때 아마 다산 정약용 관련 책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별 생각없이 서재이름을 사의재라고 정했다. 사의재란 네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다산이 강진에 귀양 가 살 때 거처하던 곳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나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나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나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나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방에 그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고 한다. 고 사의재기에는 나와있다. 그런데 어째 말이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다. 외모가 장엄한 것은 어떤 것인지(너훈아쯤 되어야 장엄한 건가?)......빨리 더디게 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인지.....(내용이 맞는 지 원문을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뭐 원문을 본들 잘 알것 같지도 않지만서두..)

 

그건 그렇고 불초한 소생이 감당키 어려운 당호를 쓰고 있으니 무거운 짐을 짊어 진 듯 어깨가 무겁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거동이 불편하다. 언제 시간날 때 당호를 바꾸어야 겠다. 이건 어떤가? “딸딸이를 신고 일렁일렁”  딸딸이는 어감이 좀 거시기하니 슬리퍼를 신고 일렁일렁”.  사실 나가이 가후의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이 나왔을 때 이 생각이 들었다.

 

소생은 초등학교 때 일없이 동네 시장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길 좋아했는데, 옆 골목에 사는 친구 홍길이 엄마가 홍길이에게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다. “홍길아, **이 오늘도 딸딸이 신고 시장에서 일렁일렁 거리고 있더라.” 홍길이는 이름 때문에 별명이 홍길동이었는데 별명만 그렇지 뭐 번쩍번쩍 신출귀몰한 재주는 없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한번 외쳐본다. 오갱끼데스까?~  정말 이야기가 두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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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4-0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목월 시인에게 할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의 반면교사의 면이 있었나 보아요~ 박동규 교수가 기억하는 아버지 박목월 시인은 한없이 자애롭고, 큰소리 한번 치신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 방송에서 봤거든요. 사의재가 다산의 책에서 온 것이구나요~우아,,, 그럼,, 붉은돼지는 역시 지브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온 것인가요?
아,, 이 페이퍼 사람풍경에 이은 오겡기데스카 시리즈였군요~ ㅋㅋ

붉은돼지 2015-04-09 10:09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읽고 있는 김형경의 <사람풍경>에 나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으로다가 말하자면 조부로부터 받았던 엄격한 훈육에 대한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받고자하는 욕망이 자녀에 대한 한없는 자애로 표현된 것은 아닌지요..(말이 되나?)....

붉은돼지는 역시 미야자키하야오의 홍돈입니다. ㅋㅋ 홍돈과 사의재가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하여튼 그렇습니다. ㅜㅜ

cyrus 2015-04-0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 때 다산의 사의재기라는 글을 처음 알았어요. 이때부터 다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

붉은돼지 2015-04-09 10: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을 읽고부터 다산에 관심을 조금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뭐 관련도서를 열심히 찾아 읽은 것은 아니구요..그냥 관심만...ㅜㅜ

유부만두 2015-04-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동화를 신고 뽈뽈뽈뽈 다닙니다.... 막내가 아직 어려서 데리고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네요. ^^

붉은돼지 2015-04-12 01:50   좋아요 0 | URL
귀엽게 다니시는군요 ^^
우리파에 들어오셔요 ㅋㅋㅋ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책을 보내왔다. <역주 장릉지(譯註 章陵誌)>라는 책이다. 비매품이다. 고딩 때야 물론 친했지만 고딩 졸업하고는 두세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데 문득 책을 보내와서 조금 놀랬다. 고마울 따름이다. 친구는 고딩 때부터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 대학도 국사학과인지 역사학과인지 진학했고 지금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이 친구 옛날에 독도박물관에도 근무해서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아무생각없이 보던 소생 깜짝 놀랜 적도 있었다.

 

 

장릉(章陵)은 조선왕조 제16대 인조의 사친(私親 : 생부) 추존왕 원종과 원종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침이다. 원종은 선조13년(1580) 6월 22일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선조 20년에 정원군에 봉해졌고 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였다. 광해군 11년(1619년) 12월 한성남부 호현방에서 40세로 훙서하여 광해군 12년 2월 양주군 군장리에 장사지냈다. 인조 즉위후 대원군으로 추존되었고 인조4년 묘호를 흥경원으로 정하였다.

 

원종비 인헌왕후는 능성구씨로 선조11년(1578) 4월 17일 탄생했다. 선조23년 23세의 나이로 원종과 가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으로 봉해졌다. 인조4년(1626) 정월 14일에 경덕궁 회상전에서 49세로 졸서하였다. 5월 18일 김포현 고현내방의 북성산 아래 자죄 언덕에 장사지냈다. 묘호를 육경원이라 하였다.

 

이후 인조4년 9월 양주군의 흥경원을 김포현의 육경원 왼편으로 천장(무덤을 옮김)하기 위한 예장도감이 설치되었다. 인조5년(1627) 8월 22일 흥경원을 계묘(무덤을 연다는 뜻)하고 8월 27일 육경원 봉분 왼편에 천장하였다. 인조6년 윤득열과 유충걸이 두 원의 참봉으로 임명되었다. 인조10년(1632) 3월 11일 대원군과 대원군부인을 각각 왕와 왕후로 추숭함에 따라 흥경원과 육경원은 장릉으로 승격하였다.

 

 

릉(陵)은 임금의 무덤을 말한다. 원(園)은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을 이르는 듯하다. 원종의 죽음은 훙서(薨逝)라고 하고 원종비의 죽음은 졸서(卒逝)라고 하였는데, 다음 국어사전에는 훙서(薨逝)는 임금이나 왕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고 졸서(卒逝)는 죽어서 멀리감 이라고 나와있다. 원종은 남자이고 원종비는 여자여서 구분하여 쓴 것 같지만, 영원히 가다(죽다)는 의미의 ‘서(逝)’라는 글자 자체가 ‘서거(逝去)’라는 말이 있듯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예기(禮記)에는 “天子死曰崩 諸侯曰薨” 라고 했다.(천자가 죽었을 때는 붕(崩)이라 하고 제후가 죽었을 때는 훙(薨)이라 한다)

 

한자는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뜻 글자여서 글자 하나하나에 오묘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공부해 보면 재미있을 듯도 하고 골머리가 아플 듯도 하다. 소생도 관심이 없지 않아서 소싯적에는 논어니 맹자니 고문진보니 뭐 이런 책들을 막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손 놓은지 오래되었다. 서양사를 좀 알려고 하면 먼저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동양사를 어느정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고전에 대한 공부가 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뭐 하나 해 먹기 쉬운 것이 없다. 인생은 짧고 공부에는 끝이 없다.

 

추신 : 장릉지에는 인조6년(1628년)부터 1948년 7월까지 임명되었던 238명의 역대 능관들의 정보가 담겨있는 <장릉선생안>이 포함되어 있다. 왕조가 이미 망해버린 일제 강점기에도 능관들의 숙배(肅拜 : 삼가 공손히 절함)가 계속되었다는 것은 조금 놀라운 사실이다. 능관의 품계는 종9품 참봉이다. 그래서 흔히 능참봉이라고 한다. 종9품이면 최말단 관직이다. 고관대작 아니고 미관말직. 요즘으로 치자면 9급 공무원. 하지만 진사나 생원와는 또 다르다. 진사나 생원은 말하자면 고시 1차 합격생으로 국가로부터 정식 관품을 하사받은 것은 아니지만 참봉은 어엿한 벼슬아치다. 능참봉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한명회일 것이다. 한명회가 수양대군에게 발탁될 당시 벼슬이 능참봉이었다. 칠삭둥이에.

 

검색해 보니 왕릉에 대한 책이 여러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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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2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재 관련 도서는 서점에서 구하기 찾기 힘든 건데 좋은 친구분 덕분에 특별한 책 선물을 받으셨군요. ^^

붉은돼지 2015-03-29 22:11   좋아요 0 | URL
귀한 책 보내준 친구에게 저는 어떤 책을 보낼까 숙고중입니다 ~~

낭만인생 2015-03-2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하나 해 먹기 쉬운 것이 없다. 인생은 짧고 공부에는 끝이 없다.
백배 공감합니다.

붉은돼지 2015-03-29 22: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건강하게 한 오백년 정도 살았으면 좋겠어요 ㅋㅋ

moonnight 2015-03-3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렵습니다. ;;;; 역사와 한문에 특히 취약ㅠㅠ;;;; 맞아요. 공부에는 끝이 없어서 100세 수명시대에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갖고 있는 책 다 못 읽을 거 같아서(벌써-_-;) 조급해하고 그럽니다.;;

붉은돼지 2015-03-31 11:57   좋아요 0 | URL
맞죠...한문은 역시 어려워요...그래도 역사는 가만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저도 책장에 잔뜩 어지럽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흐믓하기도 하지만 조급한 마음도 들고 그렇습니다요. ^^

transient-guest 2015-04-02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게 지금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릴적에 천자문도 많이 써보고 했는데, 워낙 강압적으로 가르치시니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한자를 다시 배워보고 싶은데 시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쉽지가 않아요.ㅎ

붉은돼지 2015-04-02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중학교 때까지는 아버지 강권으로 방학 때마다 새벽에 향교에 다니면서 한문 공부를 좀 했는데요.....그 뒤로는 계속 학업에 용맹정진하지 못해서....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계속해서 공부 좀 해둘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뭐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그거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요....ㅎㅎㅎㅎㅎ

포와로 2018-03-1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명회가 능참봉을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경덕궁직이라는 말직을 하다가 발탁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 한명회가 능참봉을 했다는 출처가 어딘지 혹시 알수 있을까요?

붉은돼지 2018-05-29 14:22   좋아요 0 | URL
어머! 포와로 님 답글이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저도 한번 찾아봤는데요....한면회가 능참봉을 했다는 출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뭐 잘못 주워듣고 적은 것 같습니다.
 

<시리얼 vol.1.> 표지의 솔방울이 생각나서 소생이 다니는 공장 마당에 떨어져 나뒹구는 솔방울을 몇 개 주워 폰으로 찍어봤다. 솔방울 솔방울 솔방울 하니 둥실 둥실 둥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모래알로 쌀을 만드시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너시고 어쩌고 저쩌고하던 영험하신 수령님의 전설같은 이야기. 옛날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그리 바쁜 사정도 특별히 할 일도 없던 인구에 더러 회자되기도 했던 것인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는 시답잖다는 것인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녕 신화와 전설의 시대가 거했다는 뜻인가...음...근자에는 솔방울로 천연 가습기를 만든다고 한다. 이른바 과학의 시대요 평화의 시대다. 맞나? 과학이 발달하니 레몬 수류탄도 나왔다. 수령님보다 뒤에 태어난 리모노프는 수령님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풍운아였으니 레몬으로 슈류탄을 만들만 하다. 독자 제현이시여! 기대하시라. 언젠가는 수박 대포알이 나올지도 모른다. 과학의 힘은 무궁하고 평화는 요원하다. 무슨 소린지..참... 

 

수령님 운운하니 저 아득한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한 구절 그리운 노랫가락이 또 둥실 떠오른다. 천지를 분간하지 못한 채 까불대고 촐싹거리던 초딩 때인가 중딩 때인가 부르고 다니고 또 많이 듣기도 한 노래다. “수령님의 건강은 축복된 내일, 인민들의 지혜로운 영양간식, 강냉이~” 이름하여 ‘강냉이송’ 이거이 아마 전국적으로 유행해서 사회문제가 되어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오고 교육청에서 공문같은 게 왔는지 선생님들이 못부르게 했던 기억이 난다. 다 옛날일이다. 오늘 날씨가 따뜻하다. 날이 풀리니 정신줄도 느슨해 지는지 뜬금없는 옛 생각이 자꾸 납니다. 그려

 

사진으로 보니 시리얼의 솔방울이 인물 좋은 놈인 줄 알겠다. 역시 모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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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붉은 돼지님 찍으신 솔방울이 더 정감가고 좋습니다만? 동글동글 귀여워서...시리얼 솔방울 느낌이 뭐랄까, 베케트 스럽군요. 예민하고 글 잘 쓰게 생겼어요.

붉은돼지 2015-03-13 09:03   좋아요 0 | URL
떨어진 송방울들을 여러개 주워 봤는데 시리얼의 그 바게스스러운 ㅋㅋ(저는 베케트를 바게스라고 부르죠..양동이 말이에요...베케트 발음이 조금 어려워서요...이게 경상도 사투린지 일본어인지는 잘모르겠어요) 솔방울은 잘 없더라구요...아마 외국 솔방울이라서 그런가보다 생각해봤습니다. ㅎㅎㅎ

하이드 2015-03-12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솔방울을 넣어둬보세요. 반나절쯤? 지나 꺼내두면 솔방울이 오므라 들었다가 펴지면서 모양이 좀 변할꺼에요. 그 과정에서 수분이 나와 요즘은 자연가습기.로도 쓰이죠.

붉은돼지 2015-03-13 09: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솔방울 가습기를 사무실에나 집구석에 한번 설치해 봐야겠어요.^^

stella.K 2015-03-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긴 솔방울이로군요.
그걸 수류탄으로 보시다니. 상상력이 남다르신데요?^^
요즘에 소나무가 점점 병들어 간다는데
괜히 짠한 느낌도 드네요.
멀쩡해 보이기는 한데...ㅋ

붉은돼지 2015-03-13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심의 소나무나 솔방울들은 약간 시원찮아 보이긴 해요...
소나무 이야기를 하니 언젠가 갔던 은해사 소나무숲이 생각납니다.~

nama 2015-03-13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류탄...예전에 체력검사 연습할 때 모조수류탄을 사용했는데 그 수류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적이 있었지요. 오늘은 이 얘기를 몇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수류탄 얘기를 또 듣는군요. 반가운 마음에^^

붉은돼지 2015-03-14 09:2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옛날 체력장인가 교련시간엔가 가짜 고무수류탄을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몹시 단단해서 맞으면 거의 사망ㅋㅋ 일텐데....다행입니다 ^^

yamoo 2015-03-13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대로 생긴 솔방울 이군요!^^ 저걸 수류탄으로 상상하시는 붉은 돼지님은 크으~~ 남다르십니다!!! 흠, 수류탄처럼 보이기도 하는 군요~^^

붉은돼지 2015-03-14 09:25   좋아요 1 | URL
제가 어릴 땐 솔방울을 수류탄처럼 던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저게 모양도 수류탄 비슷하고 맞아도 별로 아프지도 았고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5-03-14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북플을 스치며
솔방울 사진이 너무 이쁘다 했는데
오늘 다시 봐도 너무 이쁘네요

붉은돼지님, 아이디가 미야자키 하야오와 상관있으신 건가요? 계속 궁금해서 오늘 여쭤보네요~^^

붉은돼지 2015-03-14 22: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하야오의 붉은돼지에 나오는 붉은돼지 포르코입니다.뮈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거는 아니고요 제가 하야오의 에니를 좋아하는데 아마 알라딘 서재처음 만들때 그 즈음에 이 에니를 봤던 거 같아요..그래서...^^
 

아내는 맥주를 좋아한다. 소생은 특별히 좋아하는 술은 없다. 한 때는 라벨 수집 목적으로 와인을 좀 마시고 이런저런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하고는 했지만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소생의 무딘 혀가 와인의 오묘한 맛을 구별해내지 못했다. 와인 마실 팔자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아내도 와인보다는 맥주를 좋아한다. 750ml 한 병을 사면 하루 이틀 사이에 처리를 못한다. 개봉하고 며칠 지나면 와인이 산패라고 하나 뭐라나 하여튼 맛이 간다. 작은 용량의 병도 있지만 종류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맥주라벨을 수집한다. 병뚜껑 수집은 부수입이다.

 

말했듯이 아내는 맥주를 좋아한다. 거의 매일 저녁 작은 병 하나 정도는 드신 후에 주무신다. 전에는 카스를 즐겨 드셨는데 맥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나 어쩐다나 이른바 카스파동 이후에는 카스를 버리셨다. 호가든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호가든이 OB맥주와 제휴해서 우리나라 OB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맛이 달라졌고 그래서 역시 버리셨다. 요즘은 버드를 즐겨 드신다. 가격도 적당하고 입 맛에 맛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몇 년 전에 유럽에 갔을 때 독일, 오스트리아 이런 나라에는 맥주, 와인 등 술만 취급하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마트 같은 마트인줄 알고 먹을 것 좀 사려고 들어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햐~ 술술술 술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양의 술술술에 깜짝 놀랬다. 아~ 주당들의 천국이 예 있으니! 아마도 애서가가 멋진 서재에 감탄하듯이 주당들이 여기 온다면 가슴이 둥실둥실 벅차올라 터질 지도 모른다는 한심한 생각도 해봤다.

 

맥주에 대한 책이 여러권 나와있다. 창해에서 나온 <맥주>, <맥주견문록>, <500 비어>는 읽었고 집에 책도 있었는데 지금은 집나가고 없다. 몇 년 전 대처분시 처분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또 아깝다. 창해판 맥주는 다시 사고 싶다. 처분했다가 다시 사고 다시 샀다가 또 처분하고 이게 뭐 시계불알도 아니고 왔다갔다 갔다왔다. “더이상 이래선 안돼! 중심을 잡아야 해!” 하다가도 “시계 불알이 중심을 잡게 되면 시계는 이미 죽은 것이야”하는 생각도 든다. 역시 오락가락. 횡설수설. 아이고 답 없다.

 

2012년 영국 일간지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했다는데, 카스나 하이트나 마셔보면 싱겁고 맛이 없기는 없다. 지난해부터인가 주세법이 바뀌어 소규모 양조장에서도 맥주 제조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는 각 지역에서 만든 다양한 수제맥주를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수제맥주의 춘추전국시대가 안전에 도래했다. 춘추전국시대는 당대의 석학들이 자기의 주장을 펼치며 논쟁하던 백가쟁명의 시대고, 오패칠웅이 자웅을 겨루던 군웅할거의 시대다. 독특한 풍미를 뽐내는 로컬 맥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그 향기로 백화가 만발하여 주당들의 구미를 인정사정없이 잡아 당기는 그런 멋진 세상을 기대해 본다. 소생의 맥주 라벨 수집도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병뚜껑 수집도 덩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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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3-04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뚜껑 모으니까.. 뉴욕현대미술관 컬렉션깜!! 아트네요,, 아트..
저는 오디주나 크루저 같은 단맥주가 딱 좋더라고요.. 값싼 샴페인 입맛이라고들..

붉은돼지 2015-03-05 12:46   좋아요 0 | URL
음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술을 고르라고 하신다면 소주는 조금 쓰고 맥주는 배가 부르고 해서 역시 쏘맥이 최고인 것 같아요.^^

하이드 2015-03-05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수퍼 같은 곳 단골하시면 좋겠네요. 저 맥주병 뚜껑 뒤에 자석 붙여서 냉장고나 철제 서랍장에 붙여 놓으니 귀엽더라구요.

붉은돼지 2015-03-05 12:49   좋아요 0 | URL
저는 주로 마트에서 맥주를 사는데요...음주가 목적이 아니라 라벨 수집이 목적이어서....언젠가 맥주집에서 빈병 몇 개를 가방에 넣어 온적도 있습니다. 뚜껑 뒤에 자석 붙이는 것 괜찮은 것 같아요.

하이드 2015-03-05 13:06   좋아요 0 | URL
라벨수집이 목적이시라면 비어수퍼 검색해보세요. ^^ 독특한 수입맥주 파는 곳이에요.

붉은돼지 2015-03-05 13:1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비어수퍼가 술집인 줄 알았습니다. 맥주만 파는 슈퍼군요...검색해 보니 대구에는 없는 것 같아요.ㅠㅠ 감사해요.. 우리동네 홈플러스 수입맥주 코너에도 그런대로 구입못한 맥주가 좀 있어서 아직은 버틸만 한데.....대구에도 빨리 비어수퍼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집 근처에요 ㅎㅎㅎㅎ

보슬비 2015-03-0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맥주뚜껑 모으는데 하이드님 말씀대로 자석붙여서 자석용보드에 붙였어요. 비슷한분을 만나니 반갑네요^^

붉은돼지 2015-03-05 12:50   좋아요 0 | URL
뚜껑 많이 모으셨어요? 한번 보여주시죠,,ㅎㅎㅎ

stella.K 2015-03-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술은 거의 못하는데 가끔 맥주와 막걸리는 먹는 편입니다.
맥주를 마신다면 전 하이트를 마시죠.
그게 좀 약한 것 같아서 목넘김이 좋더군요. 아니면 흑맥주도 좋구요.
오래 전 기네스란 맥주를 딱 한번 먹은 적이 있는데
술 못 먹는 제가 이 맥주는 정말 극찬하고 싶더군요.
그게 요즘엔 캔으로도 나온 모양인데 그렇게 극찬하고 싶은데도
막상 안 사지게 되더군요. 넘 비싸다는 생각에...ㅋㅋ
여름이 오면 꼭 한번 다시 먹어봐야겠슴다.^^

붉은돼지 2015-03-0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에서 수입 맥주 살려고 하면 손이 다 떨려요...330ml 작은병이 만원가까이 하는 것도 많아요....ㅠㅠ

transient-guest 2015-03-06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에 마신 맥주깡통으로 벽을 장식하던 친구가 생각이 나는 사진입니다. ㅎㅎ 저도 술을 맥주로 시작해서 참 좋아하는데요, 한 동안은 색깔이 진한 에일계통을 주로 마시다가 요즘은 다시 가벼운 라거를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심야식당처럼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작은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맥주맛은 참 좋네요.ㅎ

붉은돼지 2015-03-06 11:39   좋아요 0 | URL
맥주깡통 벽장식은 무슨 설치미술 같겠습니다.ㅎㅎ 요즘 오비에서도 에일맥주 에일스톤이란 놈이 나와서 가끔 마시고 있습니다. 저는 맹숭한 것 보다는 약간 뻑뻑한 게 더 좋은 거 같아요..여름에는 라거, 겨울에는 에일이라고...하더군요...

후애(厚愛) 2015-03-0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이제는 맥주 말고 소주를 좋아합니다.^^
병뚜껑 많이 모으셨네요.
제 옆지기는 맥주깡통 수집한 게 엄청 많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붉은돼지 2015-03-07 23:23   좋아요 0 | URL
저는 특별히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역시 맥주보다는 소주죠...

맥주깡통 한번 보여 주시죠ㅋㅋ

앤의다락방 2015-05-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분께서 매일 한병쯤 드신 후 주무신다는 말씀에 격한 동의를 표합니다~ 저도 지금 두캔 따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자러 들어왔지요~ 우리나라 맥주는...이것 저것 마셔봤으나 좀 싱겁긴 해요~ 그나마 요즘 오비 프리미어 필스너에 꽂혔어요~ 병뚜껑을 모으신다니... 사진을 보니 정말 다양한 맥주가 많네요! 전 생애 최고의 맥주는 터키에서 마신 에페스랍니다~ 캬~

방티 2015-05-11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마어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