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하와이에 다녀왔다.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1박 2일로. 아내와 혜림씨와 함께.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다닌던 시절에 부곡하와이가 처음 생긴것 같다. 당시로는 한강 이남에서 최대의 놀이시설이었다는 기억이다. 엄청나게 크고 놀랍도록 재미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때는 뭐 인터넷이니 이런게 없어서 다녀온 친구들의 전언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는데, 그 전언이란 것이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다녀오지도 않고 어디서 주워듣기만 한 어린 호사가 놈들이 더 떠들고 다녀 부곡하와이는 무슨 천상의 낙원 비슷한 곳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그 시절 부곡하와이를 다녀온 친구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진짜 미쿡땅 하와이에 갔다 온 것보다 한 천배 정도는 더 큰 부러움을 샀던 것이다. 소생한테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흔줄 훌쩍 넘어 돌이켜본 유년의 기억은 어쨌든 그렇다. 결국 나는 부곡하외이에 한 번 다녀오지 못하고 유년을 마쳤다. 쓸쓸하게.
하지만 그때는 유원지라는 곳도 있었다.(요즘 말로 테마파크다) 비록 부곡하와이보다는 급이 떨어지지만. 당시 대구에는 동촌유원지, 수성유원지, 화원유원지 등이 있었고, 수문장 거인아저씨로 유명한 동물원인 달성공원도 있었다. 유원지라는 곳에는 화려한 가짜 말들과 마차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와 관람차라고 하나 거대한 자전거 바퀴살 모양의 놀이기구는 꼭 있었다.
회전목마하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히사이이 조의 음악 <인생의 회전목마>가 떠오른다. 흥겹지만 어딘가 애잔하고 쓸쓸한 그 곡조. 요즘의 최신식 테마파크에는 관람차는 거의 없다. 어릴 때는 저런 걸 누가 타나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왠지 한 번 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천천히 느릿느릿 돌아가는 관람차. 조금만 통속에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싶다. 삼십여년 전의 유원지는 지금도 유원지로 그대로 남아있다. 약간은 퇴락한 느낌과 함께. 관람차는 없어졌지만 회전목마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강정도 유원지지만 놀이시설은 없다. 옛날부터 없었다. 물가여서 물놀이 할 수 있는 곳과 식당이 있을 뿐.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하다. 강정엔 왠 쟁반 우주선 비슷한 건물도 있다. 낙동강 복합문화관인 디아크다. 한국건축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정일 - 강정 간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무얼 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나는 기다린다. 짜증이 곰팡이 피는 오후 한때를
그리하여 잉어 비늘 같은 노을로 가득 쳐진 어깨를 지고
장석 덜그럭거리는 대문 앞에 돌아와 주름진 바짓단에 묻은
몇 점 모래 털어놓으며, 그저 그런 곳이더군 강정이란 데는
그렇게 가봤자 별수없었다는 실망의 말을 나는 듣고 싶었고
경박한 입술들이 나의 선견지명 칭찬해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강정 깊은 물에 돌팔매하자고 떠났거나
여름날 그곳 모래치마에 누워 하루를 즐기고 오겠다던 사람들은
안오는 걸까, 안오는 걸까, 기다림으로 녹슬며 내가 불안한 커텐
젖힐 때, 창가의 은행이 날마다 더 큰 가을우산을 만들어 쓰고
너무 행복하여 출발점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강정 떠난 사람처럼 편지 한 장 없다는 말이
새롭게 지구 한 모퉁이를 풍미하기 시작하고
한 솥밥을 지으신 채 오늘은 어머니가, 얘야 우리도
강정 가자꾸나. 그래도 나의 고집은 심드렁히,
좀더 기다렸다 외삼촌이 돌아오는 걸 보고서, 라고 우겼지만
속으로는 강정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지경
형과 함께 우리 세 식구 제각기 생각으로 김밥의 속을 싸고
골목 나설 때, 집사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가게
정리나 하고 천천히 따라가겠다는 구멍가게 김씨가
짐작이나 한다는 듯이 푸근한 목소리로
오늘 강정 가시나보지요. 그래서 나는 즐겁게 대답하지만
방문 걸고 대문 나설 때부터 따라온 조그만 의혹이
아무래도 버스 정류소까지 따라올 것 같아 두렵다.
분명 언제부터인가 나도 강정 가는 길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밤에도 두 눈 뜨고 찾아가는 그 땅에 가면 뭘하나
고산족이 태양에게 경배를 바치듯 강둔덕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 높은 까치집이나 쳐다보며 하품하듯 내가
수천번 경탄 허락하고 나서 이제 돌아나갈까 또 어쩔까
서성이며, 어느새 세월의 두터운 금침 내려와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망각 속에 가두어놓고
그제서야 메마른 모래를 양식으로 힘을 기르며
다시 강정의 문 열고 그리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끈끈한 강바람으로 소리쳐 울어야 하겠지
어쨌거나 지금은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이 모두 강정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