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지음, 윤현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품절


귀는 안 들리지, 가슴팍은 계속 아프지,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만 여겨졌다. 게다가 언니에게도 부아가 나 있었다. 하는 말이라고는 언제나 "입 좀 다물어!"이거나 "걷기나 해!"뿐인데도 어머니는 한 번도 언니의 나쁜 말버릇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아버지만 함께 있었더라면 언니가 신경질을 좀 부리다가도 나를 좀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을 텐데. 내가 줄창 울면서 걷자 드디어 어머니까지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넌 왜 언니처럼 좀 참을성 있고 의젓하게 행동하지 못하니?"
서운한 마음에 나는 소리를 질러댔다
"난 언니가 아니잖아요! 나처럼 다쳤으면 언니도 분명히 울었을 거야"
"난 안 그래!" 언니도 되질러 소리를 쳤다
"네가 하는 짓이라곤 징징거리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것밖에 없잖아. 차라리 네가 죽고 없었더라면 우리도 훨씬 덜 고생스러웠을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멍한 얼굴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내가 차라리 죽었기를 바라고 있었다니.
"코야! 그게 무슨 소리니? 앞으로 절대로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알겠니? 절대로!" 어머니가 엄한 표정으로 언니를 나무랐다.
언니는 아무 대꾸없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어머니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말이 없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듸ㅣ에서 조금 천천히 걸어갔다.-123쪽

모여 있던 아이들이 나를 피해서 하나 둘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마치 내가 몹시 나쁜 전염병을 옮기기라도 할 것처럼.
'만약 쟤들도 나처럼 힘든 일을 경험했다면 남들에게 좀더 동정심을 가질 거야'
'저 아이들은 세상을 너무 모르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다.-194쪽

미국에서 처음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을 때, 작가인 한 친구가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도 이제 작가가 되었으니 다른 작가들과 경쟁하게 되었군요"
그러자 저자인 요코 씨는 "아니, 나는 더이상 누구와도, 어떤 걸 가지고도 경쟁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답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삶과 죽음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겼습니다"-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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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아이
에디트 슈라이버 비케 지음, 카롤라 홀란드 그림, 유혜자 옮김 / 동현출판사 / 2005년 5월
품절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난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살면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만나는 사람마다? 그건 너무 많을 텐데" 빈센트가 말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건 불가능해"아더도 거들었다
"정말로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이번에는 마리아가 물었다
"간단해. 내가 다른 사람과 조금만 다르게 보이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나오미는 즐거운 기분으로 대답했다
"조그만 다르게? 어떻게?"마리아가 물었다
"머리카락이 녹색이라든가, 아니면 눈동자가 보라색이라든가, 정말 재미있겠지?"
나오미는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 듯이 환하게 미소지었다. 마리아는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된다고? 정말 깊이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니?"
나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 부모님이 다른 아기와 조금 다르게 보이는 아기를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아더가 물었다
잠시 나오미가 생각에 잠겼다. 나오미는 어느 누구에게도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애써 선택한 가족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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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모으는 남자
앙리 퀴에코 지음, 남수인 옮김 / 샘터사 / 2005년 5월
절판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버리는 부류와 간직하는 부류이다. 그것은 가풍에서 비롯된다. 우리 부모님은 간직하는 쪽이었다. 부모님은 무엇이건 곳간에 보관하였다. 곳간에서 토끼도 길렀는데, 놈들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놈들은 자동차 타이어조차 쪼아댔다. 때는 전시였다. 그런 땐 간직하는 부류가 유리했다. 내가 아는 어느 할머니는 무엇 하나 버리는 법이 없었고, 무용지물의 보물들을 신발 상자에 넣어놓았다. 일생동안, 특히 쓸모없는 끈 조각들을 모아서, 상자 뚜껑에 '쓸모없는 끈 조각들'이라고 써 두었다.-13쪽

나는 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로 인색해서는 아니고, 다만 나 자신을 분산시키기를, 분열시키기를 좋아하지 않아서이다. 자기를 분산시키는 것은 앞으로 올 즐거움을 망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왜 자기가 끈질기게 시도하는지, 왜 바보처럼 그렇게 고생을 사서하는지 자문하는 예술가에게 작업은 몹시 힘든 것이다. 때로 그런 회의에 덧붙여 자기가 쓸데없이 일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면 그는 의욕을 잃고 만다.-157쪽

매일 하루에 하나, 그리고 매순간 변하는 하늘. 밝아졌다 어두어졌다하는 하늘. 저녁 하늘 역시 한없이 많다. 노랗구나 하면 어느새 오렌지 빛이고 빨개진 하늘, 꼭 빨갛다곤 할 수 없는 붉은색조의 하늘이 지는 태양을 어떻게 에메랄드빛 녹색으로, 아니 그보다는 베로네즈색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하늘, 강렬하고 투명한 하늘, 우리가 비행기로, 시선으로 횡단하는 하늘, 현기증이 되는 하늘, 검청색 자켓 무늬에 금장식을 늘어뜨린, 폭우를 쏟아내는 하늘. 진노한 하나님의 하늘들. 지붕의 기와들이 이를 갈고, 하늘은 흥분하여 날뛰며 자기 몸에 전기로 얼룩무늬를 그린다. 시원한 여름밤의 하늘. 사람들이 한없이 뛰어드는 별들의 밤들, 꽃불이 가득 흩뿌려진 우윳빛 하늘.-181쪽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광물이건 식물이건, 이 모든 물체들은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오래 생존하며 생존하는 동안, 어쩌면 서로 관찰하고 도전하고 미워하고 경멸하는지도 모른다. 몽당연필들은 무해하여 함께 장난하고 놀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 연필과의 관계는 시련이 된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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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즈 지음, 용경식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2월
절판


앙투안은 항상 자신이 개의 나이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살 때, 그는 벌써 마흔아홉 살 먹은 남자처럼 지쳐버린 느낌이었다. 열한 살 때는 일흔일곱 살 먹은 노인처럼 환멸을 느꼈다. 스물다섯 살인 현재, 그는 좀더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자신의 두뇌에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의 수의를 입힐 결심을 했다. 지성이란 잘 설계되고 멋있게 발음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성은 너무나 타락해서 이제는 공인된 지식인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바보가 되는것이 훨씬 유리할 때가 많다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지성의 눈속임이 신문의 영원성과 자기들이 읽은 것을 믿는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 때, 지성은 불행과 외로움과 가난을 가져온다.-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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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숙제
다니엘 페낙 지음, 신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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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꼭 한 번만이라도 어린 시절을 '맛보고'싶은 것뿐이에요. 누군가 내게손을 내밀어 단 한 번 만이라도 나를 냉절한 의식의 사막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면, 내 인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았으면 하는 거라구요! 그 빌어먹을 어린 시절을 꼭 한 번만! 다 줄 수 있어요, 내 말 듣고 있는 거지요, 여러분들의 어린 시절을 단 일 초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뭐든지 줄 수 있다구요! 그 어리석기 짝이 없는 기쁨을 '느낄'수만 있다면! 그토록 충만한 무지를! 슬픔도 제대로 모르는 저 무딘 감성을 내가 맛볼 수만 있다면! 쉽게 열정에 빠졌다가도 그 순간만 지나면 이내 후회하고, 지난 일은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리고 금세 상처가 아무는 저 단순함! 진지한 동기란 애초부터 없는,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 생각 없는 행동들! 현재에 푹 빠져 있는 완벽한 현실 도취! 게눈 감추듯 꿀떡 삼켜버린 양심! 단 한 순간이라도 아이처럼 바보 같아질 수 있다면 난 내가 가진 모든 걸 죄다 내놓을 수 있다구요! 그 천진한 어리석음을 누려볼 수만 있다면! 딱 한 번이라도 태초의 바보짓을 저질러 봄으로써 내가 어떤 짐을 벗어놓았고, 어떤 상태에서 빠져나왔으며, 내 의식이 정복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느끼면서 어른이 된 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른으로 커가는 내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해서 어른이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다 알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란 얼마나 감미로운 것일까! 그 어린 시절을 무사히 치러냈다는 확신이란 또 얼마나 유쾌한 것일까! 자신이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고 있을 때만이 현재의 제 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는 거예요!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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