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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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 김훈의 소설!
 
 작년에 있었던 도서대전을 통해 작가 김훈을 처음 보았다. 그 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시간이 허락하면 소설보다는 영화를 즐기던 내게 그의 소설은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그 분을 보는 순간 어떤 이유가 동했는지 그의 전권세트를 사들이고 말았다. 그의 정성스런 친필 싸인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최고의 소설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네임밸류는 '언제 이분을 또 뵙겠는가?'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평소 책을 고르는데 장고長考에 장고를 더하고, 또 심사숙고 해서 낙점하는 내게 그의 전집을 구입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또 다른 이유 하나는 그의 눈이었다. 머리엔 하얗게 눈이 내린 듯 반백색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굵은 주름 가득한 모습 속에 빛을 내는 커다란 눈과 흰 바탕의 까만 눈동자는 '추호秋虎'를 연상하게 했다. 그 인상적인 눈매로 쓴 글은 어떨까? 책장 맨 위에 잘 모셔두고 마치 포도주를 숙성하듯 두었다. 그제 [칼의 노래]를, 그리고 어제 또 한 권을 폈다. 김훈 선생의 [현의 노래]이다.
 
 


 
 
  소설 [현의 노래]는 가야금의 예인(藝人) 우륵과 그의 시대를 그린 소설이다. 김훈선생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우륵을 극한의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려냈다. 무너져 가는 자신의 조국을 한탄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가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가야금의 금을 튕기듯 심금을 울리고, 그의 삶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모호함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책의 주인공 우륵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신라시대의 음악가로  “중국(수나라)에는 악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하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가실왕(嘉實王)의 뜻을 받들어 12현금(絃琴:가야금)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이라는 제목으로 12곡을 지었다. 가야가 어지러워지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항복하였는데, 왕은 그를 국원(國原:忠州)에 살며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등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치도록 했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높게 평가해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 소설 역시 어둡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글 속에 담긴 역사들은 당시의 풍요로움과 태평성대는 찾아 볼 수 없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한 나라의 무관으로서. 또 한 사람의 남자로의 충무공 이순신의 고뇌와 슬픔, 삶에 대한 처절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던 [칼의 노래]와 이 책 [현의 노래]는 무너져 가는 대가야국(大伽倻國) 궁중악사 우륵의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나 각기 다른 그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지 않다. 멸망을 앞둔 가야국과 명나라의 도움과 일본의 내부적 변란이 없었다면 당시의 조선 역시 멸망을 바라볼 수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단, 주인공의 시점이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전쟁을 이끌었던 무관이 아닌, 궁중 악사라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 즉, 살아있는 것들은,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기에, 살기위해 발버둥친 그 모든 흔적은 [옳은 것이다]는 김훈의 메시지에 의해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로 비춰진다.
 
  우륵과 제지 니문은 가야의 소리와 금琴을 찾아 무너져 가는 가야의 한 복판에서 사라져 가는 각 고을들의 소리를 담아 낸다. 소리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삶의 소리다. 즉, [예술은 무엇인가, 권력은 또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그 권력의 해답은 대장장이 야로를 통해 찾아 볼 수 있는데, 야로는 새로운 신무기와 철을 가야만이 아닌 자신의 조국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신라에 제공함으로써 권력에 삶을 의지하는 가냘픈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명의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 아라가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왕이 죽으면 죽음으로써 왕을 모신다는 의미의 순장제도를 통해 시대적처참함 비합리성을 그려낸다. 순장 직전에 도망을 친 아라는 야로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 하지만 그녀의 삶 또한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없는 가련한 삶이다.
 
  아라는 우륵에게 발견되어 니문과 가정을 이루지만 순장에서 도망쳤던 아라를 찾아 나선 자들에 의해 다시 붙잡히게 되고, 다시금 왕과 함께 제물로 바쳐진다, 그 비참한 죽음 위에서 금을 연주하고 춤을 춰야 했던 우륵과 니문. 권력앞에 그들이 말하는 예술은 단지 삶을 영위할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삶을 통해서만 그들의 음악이 살아있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칼의 노래]에서 자신의 칼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사지死地)를 찾아 마지막을 결정했던 이순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소리는 오직 살아서만 의미를 갖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소리와 음악 역시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우륵과 니문은 가야를 등지고 신라로 새 길을 찾아 떠난다. 한편, 가야를 떠나 아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 야로는 이사부의 칼에 죽게 됨으로써 권력에 대한 그의 야망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처절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죽음과 어두움, 그리고 인간의 애욕칠정이 거침없이 드러나지만 그곳엔 비릿한 상스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순결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김훈 선생만이 가진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계속해서 김훈 선생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다음에 만날 그의 소설은 [남한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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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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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팩션장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 최고의 소설!
 
  난 소싯 적엔 세종대왕을 원망했었다. 형편없는 국어실력 때문이었다. 왼손잡이가 한글을 쓰기는 정말 쉽지 않았고, 글자가 뭔지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외워야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일일공부'라는 한글 매일학습지를 재미있게 놀듯 써내려가는 친구를 보고 부러워 이틀을 떼를 써서 구독을 하게 되었고, 그 날부터 저녁마다 아부지한테 두들겨 맞았고, 한 달을 채 못넘겨 구독하기를 끊게 해달라고 사흘동안 떼를 써야 했다. 젬병,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우리 때 이름) 3년동안 '국어'과목에 붙은 '가'라는 성적에 연이어지는 내 별명이었다.
 
  간신히 3년을 넘겨 한글을 깨쳤지만, 글쓰기 솜씨는 여전히 젬병. 울 엄니는 '서예'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결국 6년 동안 한글에 대해서는 늘 구박을 먹는 상황이 되었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강박으로 자리잡았다(만약 자필로 리뷰를 써야 한다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원망의 대상인 그분이 내 이름이었다는 것. 시험을 볼 때 마다 내 이름을 쓰는 란에는 항상 '세종대왕'을 적었드랬다.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트라우마에 대한 나만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시험 때 마다 당연히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다. '한글'하면 당연히 '몽둥이'가 생각났으니, 그분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을 턱이 있나? 물론 나이들면서 그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존경하고 자주 뵙고 싶은 분이시다(그럼, 만원 짜리 지폐의 모델이신데...)

 
  올해 초, [세종대왕 실록]을 읽고 그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알았던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셨다. 그분을 추적해서 읽던 중 35만 부라는 놀라운 판매부수가 입증하듯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을 알게 되었다.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를 둘러싼 토종 팩션, 이정명씨의 소설 [뿌리깊은 나무]가 그것이다. 읽기를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전 단원 김홍도와 사라진 한 천재화가 신윤복을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줬으며, 현재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의 원작소설 [바람의 화원]을 통해 저자 이정명과 만나게 되었는데, 역사소설로서 가지기 힘든 긴박감과 탄탄한 구성, 방대한 역사적 정보들을 통한 무한한 상상력의 향연과 치밀하게 계산된 스토리 전개,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허구성의 벽을 허무는 궁극의 몰입도는 외국의 그것보다 더 재미와 읽는 쾌감을 선사했었다.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의 화원]에 앞서 쓰여진 것이라 기대감은 더했다.
  
 


 
"세종대왕은 위대한 왕이었다. 아니 단순히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단한 인격자이며, 걸출한 인간이었다. 그에겐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중략) 왕이기 이전에 학자 였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이자, 공평무사한 판관이었다. "
 
-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 실록 中 -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이 남긴 최고의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즉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을 위한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곧 양반과 권문세족을 비롯한 전국 팔도 유생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킨다. 이 반발은 명나라의 조공국인 우리가 한자를 두고, 우리의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명나라에 대한 배신이며, 이는 반역에 해당하는 행동이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것은 양반들의 허울좋은 핑계일 뿐 '문자로 지식을 배운 계층'이라는 헤게모니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데 이유가 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백성을 윤택하게 하고자 법률을 만든다 할지라도,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널리 알릴 수가 없고, 설령 말로 일러 알린다 할지라도 양반들이 저희들에게 이롭게 해석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백성을 이롭게 하는 법률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한글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도 둔 것이다.  
 
  이런 적도 있었다. 집현전의 대 재학이자 현학의 대부라 불리는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세종대왕께서는 최만리를 직접 불러 앉히고는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되느냐?" 며 그의 운학에 대한 무식을 꼬집음과 동시에 그(최만리)의 언어 가치관이 지닌 논리적 결함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이두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했으며, 반박하지 못하는 그들을 두고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며 반문하셨는데, 이점만 보아도 세종대왕께서는 왕이기 이전에 당대 최고의 언어학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자, 학자로서 한글제작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두고 참여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아니셨으면 이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 25년(1443년) 훈민정음 반포를 7일 앞두고 경복궁 안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세력과 그것을 원치 않는 보수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정명의 손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었다. 경복궁 후원 우물 속에서 발견된 젊은 집현전 시체가 발견된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과 문신의 조악한 단서만을 남긴 살인사건은 겸사복 별감의 간괴에 종8품 말단 애송이 겸사복 강채윤에게 맡겨진다. 비록 북방의 호랑이 김종서 장군의 밑에서 북관의 전투를 누볐지만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봐도 체포하지 못하는 말단 중의 말단이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의 찾아 내는데 성공하지만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 용의자의 2번째 죽음은 사건을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살인자를 목격한 유력한 목격자가 발견되고 진술로 살인자를 색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찾아온 세 번째 살인은 의구심만을 증폭 시킨다. 매일 밤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과 그 곳에서 알게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실과 의혹, 왕의 침전에 출몰하는 귀신의 존재와 귀신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반인 가리온의 엽기적 행동, 사자들의 문신과 알 수 없는 숫자와 표식으로 이루어진 마방진. 나인 소이를 통해 마방진의 해법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이미 이 의문의 살인사건이 나약한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없는 큰 힘이 뒤에 존재하고 있음을 전해 줄 뿐이다.
 
  읽히고 설키는 의혹과 긴장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향원지, 집현전, 경회루, 아미산등 살인이 벌어지는 경복궁 구석구석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들의 건축 과정 속에 숨은 수수께끼와 마방진, 지수귀문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 숨겨진 단서는 짜릿한 지적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사건을 풀어가는 흥미를 북돋는다. 천문학, 언어학, 역사, 철학, 음악, 건축, 미술 등의 방대한 지식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게 되는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안겨줘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시대적 상황은 한글창제가 얼마나 큰 논란거리가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고 있지만 한글창제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성들의 삶의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세종대왕과 그의 뜻을 받들어 모심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충신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감히 변화를 이끄는 자와 일신의 안락을 위해 그것을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 세력, 즉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고, 그 행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에 처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듯 했다. 박진감 넘치는 흥미로운 소설, 최고의 팩션이란 소릴 들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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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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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미술이 조화된 우리나라 팩션의 맛깔한 한상차림!
 
 지구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두려운 예언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혼란에 빠진다는 밀레니엄버그는 2000년을 넘으면서 1900년대의 달력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세상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가장 찾기 쉽고 알리기 쉬운 것은 조상들이 남긴 책 속에서 찾았다. 바로 '역사歷史'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면서 문학계를 사로잡은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을 필루로 하는 환타지 장르와 [다빈치 코드]를 시작으로 펼쳐진 히스토리 팩션 장르. 여기서 두번째로 거론된 팩션이야기를 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인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 팩션(Faction)이란 장르의 소설로는 미국에서만 7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가 단연 지금까지는 최고의 화제꺼리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품을 설명하는데 흔히들 '빅뱅'과 '블록버스터'라 표현을 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루브르 박물관과 각종 건축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소설의 인기가 판매량을 끌어올렸고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한 사이였으며 예수가 마리아에게 자신의 사후,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했다는 내용은 뜨거운 종교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도 함께 서양의 그것에 함께 열광하다보니 '남의 잔치에 흥돋우는 격'이라, 그래서 될 말인가? 우리의 작가들이 [다빈치 코드]라는 '낫' 앞에서 'ㄱ 기역자字'를 찾았다. 바로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설명하면서 가장 머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반만년半萬年', 즉 5,000년의 역사가 아니던가? 21세기를 '지식문화산업'이 중심이 되는 시대임을 이야기한 미래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스토리텔링'즉 풍부한 이야기를 '컨텐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년 째 '아시아 전역'을 뒤흔든 한류韓流의 영향도 바로 우리 외엔 세상의 어느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뭉근한 정情 이라는 정서'와 그들은 상상할 수 조차 없어 '판타지'와 같은 '우리의 역사이야기'였던 것을 보면, 이젠 한 나라의 정서와 이야기가 '확실한 돈을 가져다 주는 산업'으로 흘러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이러한 '문화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계속해서 순조롭게 태동되고 있다. 서양에서 만들어지고 히트한 것만을 골라서 제공하는 역할만 하던 과거와는 달리 그동안 외국의 하청으로 단련된 경험과 새로 개발된 기술, 그리고 세상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를 엮어 새로운 '문화컨텐츠'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조상들의 기록인 역사를 비롯해, 허구의 소설을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만화도 그에 동참해 새로운 문화장르로 탈바꿈을 하고 있으니, 원소스 멀티 유즈One Sauce -Multi Use로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컬처비즈의 시대'에 제대로 순풍을 탄 느낌이다. 
 
 최근에 이러한 거대한 흐름에 동참을 한 소설이 있다. 치밀한 복선과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통해 한글 속에 숨겨둔 세종대와의 비밀코드를 타이틀로 한국형 팩션의 장을 열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저자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이 지난 주부터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예전의 이야기가 의술을 말하고, 음식을 말했다면, 이번에는 미술 그리고 미술가를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부터 재미가 쏠쏠하다. 이야기의 전부를 알면, 드라마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얼른 집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 [바람의 화원]이다.    
 


 우선 주인공을 소개하자. 본관 김해(金海), 자 사능(士能), 호 단원(檀園)인 김홍도, 그는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된 뒤 1781년(정조 5년)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려 도화서 최고의 영애인 어용화사가 되었다. 1790년 수원 용주사(龍珠寺) 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三世如來後佛幀畵)]를 그렸고, 1795년(정19년) 중인의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벼슬직인 정6품 연풍현감(延豊縣監)이 되었지만 곧 사임한다. 이듬해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삽화를 그렸으며, 1797년 정부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삽화를 그렸다. 산수화·인물화·신선화(神仙畵)·, 불화(佛畵), ·풍속화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화원인 단원 김홍도. 그리고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 화가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며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그리고 남녀 간의 애정을 풍자적인 필치로 묘사했던 혜원 신윤복 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쉽게도 조선 최고의 화원 김홍도에 필적한 혜원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화서에서 춘화를 그려 파직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그에 대한 어떠한 신뢰할만한 자료가 없는 게 실정이다. 그의 성별의 모호함과, 사라쿠란 이름의 일본 화인이 혜원이라는 풍문까지 그에 대한 궁금증을 중폭시킨다. 강한 필력으로 서민들의 삶을 담았던 단원 , 섬세한 묘사와 풍작정인 필지로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이름을 널리 펼쳤던 단원의 그림과 극과 극을 이루며 여성적인 섬세한 표현과 묘사의 새로운 화풍의 또 다른 천재화원 혜원 신윤복. 이 소설은 그 사라진 한 천재 아니 두 천재의 이야기가 이정명의 글을 통해 화려하게 세상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 신한평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 혜원 신윤복. 철저하게 규정된 도화서 양식에서의 틀에 박힌 그림에 반항이라도 하듯 여인을 그림의 중심으로 한 춘화를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 날 위기에 처한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주변 배경으로만 그려졌던 양식을 뒤집어 버린 그의 그림은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줬지만 사회적 인정을 받기엔 너무 앞선 그림 이었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 두 명의 천재를 내린 하늘의 뜻을 안 듯 그의 천재성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김홍도. 그는 혼이 담겨진 혜원의 그림을 누구보다 인정 하지만 양식을 거부하고 규율을 무너뜨리며 마음이 가는대로 가는 그의 그림이 화원이 될 수 없는 그림임을 또한 알고 있었다.
 
  화원이 되지 못한 그의 그림은 천재가 아닌 미치광이의 그림에 지나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규약이 그들의 자유로움을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혜원의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묘사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 화풍은 조선의 부흥기를 이끌며 예약을 사랑했던 또 한명의 천재 정조의 눈에 띄어 김홍도와 함께 어진화사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도화서의 눈엣가시 같았던 두 천재화가를 정조가 어진화사에 참여할 화원으로 뽑히게 된 또 다른 이유를 정조를 통해 듣게 된다. 10년 전 두 화원이 살해 된 사건의 재수사와 함께 뒤주에 갇혀 처참한 죽음을 당했던 정현세자의 어진을 찾는 일이 그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과 어진을 찾아가며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그 속에 단원과 혜원의 갈등, 아픈 상처를 지닌 또 한명의 천재 정조, 동생을 위해 화원이 되기를 포기하며 색을 연구하는 단청쟁이 영복, 이루지 못할 사랑의 여인 예기 정향, 살해당한 김홍도의 스승 강수항과 친구 서징, 그리고 재물을 바탕으로 권세를 휘어잡은 거상 김조년, 제자로서 경쟁자로서, 그리고 한명의 인간으로서 혜원을 향했던 김홍도의 애정과 열정이 하나의 하늘아래 내려진 두 천재화원의 작품과 함께 이정명의 손에 의해 긴박하게 살아난다. 
   

  
  책속에 수록된 30여 편의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은 책을 이끌어 가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교과서를 통해 익히 보아 왔기에 눈에 많이 익은 그들의 작품은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그려진 것이다. 단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뿐 아니라 그들의 혼과 삶이 담겨진 반짝이는 보석으로 오늘날까지 빛을 발했다. 같은 주제로 두 화인이 그린 극명하게 다른 두 작품을 보며 그들이 느낀 삶의 애환과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짧은 역사기록과 남겨진 미술작품을 통해 미술가들을 그려보고 추억함이 이 소설을 읽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역사소설로서 가지기 힘든 긴박감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스토리 전개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영상을 뇌리에 떠오르게 만든다.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영화로도 손색없는 소재였다.
 
  이제 드라마를 통해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영상과 모습들을 비교해 볼 차례다. 팩션임을 알린 소설을 놓고 다시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에 대해 '사실과 거짓'을 논하기는 마치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에 몰두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원된 엑스트라의 급여'를 계산기로 계산하는 제작자의 입장일 게다. 원작을 읽으며 내가 상상한 이야기가 늘 최고인 법, 드라마는 영상을 즐기고, 연기자의 표정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를 백배 즐기고 싶다면 소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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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빗발치는 포화속에 피어난 꽃, 그녀의 이름 어머니!
 
  중동국가의 두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아프간 전쟁의 참상과 두 아이의 우정,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말했던 할레드 호세이니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내게 많은 감동을 남겼다. 처녀작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필체와 묘사 그리고 감동적인 스토리는 계급사회가 있었던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 충분한 공감과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고, 그때의 감동을 되새김했고, 이제는 두번 째 이야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마주했다.
 
 


 
  끝없는 포화속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소련의 침입과 철수, 나지불라 정권과 무자헤딘 동맹군 간의 내전, 탈레반 정권과 미국과의 다시 시작된 전쟁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숨가픈 격동의 세월을 보낸 두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속 주인공인 이 여성들은 사실 엑스트라다. 그녀들을 고통받고 신음하게 만든 전쟁은 남성, 그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취임했다가 암살을 당하는 대통령들, 제국의 패배, 전쟁의 종식과 함께 또다시 반복되는 전쟁이 그녀들에겐 이유도 물을 수 없고, 항변도 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다. 그곳 중동국가에는 여성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과 몸을 전부 가리고 다녀야 하고, 남자 없이는 외출의 기본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란 사치에 가깝고, 그저 폭력과 굶주림만 면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자로서, 어머니로서의 처절한 삶에 대한 투쟁은 녹아 있었다. 가슴 시리도록 슬프고, 그래서 처연하게 아름다운 노래들이 이 소설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이 소설은 두 주인공 하리미(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 근대적 교육자의 아버지를 둔 라일라의 이야기가 서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현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라일라와 하리미로 태어나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에 익숙해 져 삶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마리암.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10대의 라일라와 30대의 마리암 두 여자가 전쟁으로 인해 우연과 같은 필연을 맺게 되며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남편의 억압과 폭력, 계속 되는 사산으로 자식을 갖지 못한 여인으로서의 절망감에 모든 것을 잃었던 마리암의 인생에 나타난 라일라. 그녀 역시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으로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라일라와 마리암의 만남은 처음부터 삐걱 거린다.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마리암과 라일라는 서로의 아픈 상처를 남편을 공유해 가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치유해 간다. 자식을 가질 수 없었던 마리암은 라일라의 딸 아자자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눈앞에서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라일라와 아자자를 위해 벽 뒤에 숨은 태양으로 자신을 이끌며 두 모녀에게 찬란한 태양의 빛을 선물한다.
 
  두 여자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 여자로서, 어머니로서의 그들의 삶은 그렇게 서로에게 찬란한 빛을 비추며 다시 탄생한다. 언제 폭격을 받아 생사를 달리할지 모르는 극박한 상황, 군벌간의 내전으로 인한 이유 없는 전쟁 속에 사라져 가는 친인척과 수많은 사람들, 옆집이 폭격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함께하던 친구의 죽음과 갈기갈기 찢어진 친구의 파편을 챙기는 어머님의 모습은 그녀들의 눈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참혹함을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눈앞에 영상이 그려지듯 생생하게 전한다.  계급으로 인한 신분의 차이로 안타깝게 살다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던 [연을 쫓는 아이]와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한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무책임한 남자들의 판단으로 치뤄진 전쟁의 실제적인 피해자인 여성들이 바라보는 전쟁과 남성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이 책[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제목은 17세기 페르시아 한 시인이 카불에 대해 노래한 시 속의 한 구절 속에서 만들어졌다. 시 속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들 아프가니스탄의 어머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폭력과 억압받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아닌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들이 가지는 여성상은 찬란한 태양과 같게 느껴진다. 라일라의 딸 아자자는 무의미한 마리임의 삶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와 그녀를 찬란한 태양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마리암은 또 다시 그들에게 빛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뇌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였다. 덜렁대는 성격에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여 외출도 매번 허락을 받아야 하는 답답한 현실에 불만인 가정주부인 델마. 꼼꼼하고 이성적이지만, 식탁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한 웨이트레스 루이스.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려는 델마와,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루이스의 여행은 권위적인 남성들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여성들의 화려한 탈출이었다. 그 결말을 떠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던 가치관과 아닌 것에 대해 거침없이 반대하는 그녀들의 용기가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는데, 마리암과 라일라의 삶을 엿보면서 그녀들의 마지막 질주가 떠올랐던 것은 왜 였을까? 남성으로 대표되는 전란과 폭력 속에 처절하지만 아름답게 피어나 있는 여성들을 이야기한 영화같은 소설, 역시 할레드 호세이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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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 사랑의 시작에서 이별까지 연애 심리 보고서
이철우 지음 / 북로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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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이 지금 솔로라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엊그제인 9월 19일, [한국경제신문]의 [고두현의 책마을 편지]제목이 재미있다. "심리학이 밥먹여 준다!" 라는 제목으로 세 권의 [심리학 서적]을 소개한 컬럼인대, 얼마 전 '심리학 책이 연봉을 높여준다'는 본인의 컬럼을 빌어 심리학 관련서를 읽는 사람이 남보다 앞선 생각이나 지혜를 발휘하게 되므로 직장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요지를 설명하였다. 앞선 바와 같이 최근들어 심리학 서적이 많이 출간되는 이유는 '심리학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또한 이 '사람의 마음(心)을 이해(理)하는 학문(學)'이 독자들에게 그 소용을 점점 늘어간다는 말은 그만큼 현실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학문적 위치'로서의 심리학이 아니라, 그 쓰임을 실생활에 점점 넓혀가는 심리학 전공자들의 노력이 독자들의 요구에 충분히 노력하며 부응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도 든다. 
 
 The scientific study of the human mind and the reasons for people's behaviour, 즉 '인간의 마음과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인 심리학Psychology 이 이제 그 영역을 넓혀 '연애'에도 손을 뻗었다. 제목도 솔직하게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고 써져있다. '사랑의 시작에서 이별까지 - 연애 심리 보고서' 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자신의 블로그 유멘시아 닷컴(http://www.umentia.com)을 통해 사회심리학을 일반인에게 소개하고 있는 이철우씨가 쓴 책이다. 한 길 속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거기다 알다가도 모르는 그것, 사랑을 더했다. '심리학과 연애'라, 의문투성이들의 오묘한 조합이 시작부터 흥미롭다.
 
 저자는 사람들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배경과 연애가 시작되고 전개되는 과정 그리고 그 연애가 결국 이별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까지, 그 각각의 과정들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인 요인들을 살펴봄으로써 연애에 대해 품고 있는 지나친 기대감이나 비현실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연애 그 자체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성도 모두 네 가지로 나누었다.
 
 1장에서는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배력을 느끼고 좋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고, 2장에서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사랑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고, 다양한 연애의 단계설을 통해 연애가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3장에서는 연애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마주치게 되는 현상이나 심리들을 알아보았고, 마지막 4장에서는 '실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자는 각론에 들어가면서 이 책은 제대로운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사회심리학에서 이루어진 연애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쉽고 현실에 맞게 풀어쓴 책이지, 절대 '연애를 잘 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전략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결코 늘 그러한 답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리라.
 
  1장 연애의 배경은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다면 먼 데서 짝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리적 근접성'을 선호하는 인간의 심리를 들어 조언하고, '단순접촉효과'를 빌어 '호감'이란 자주 볼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상대의 눈에 자주 띌 것을 권하며 이것이야말로 연애를 시작하는 첫 번째 절차라고 말한다. 또한 '호의의 상호성'에 의해 사람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긴다면서 입발린 말이라도 칭찬을 거듭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성에게 사랑받는 성격으로는 여자들은 상냥하고 부드러우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남성을 가장 좋은 연인 상대로 생각하고 있고, 남성들은 함께 있을 때 즐겁고 명랑한 여성, 그리고 자기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여성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연애의 시작은 '생리적으로 흥분해 있을 때' 심장이 뛰고 격양된 상태에 연애의 감정이 생기기 쉽다면서 '높은 산을 등반한다든지, 함께 운동을 한다든지,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타라'고 권한다. 또 단 둘이 배를 타는 방법도 좋은 방법인데, 배가 흔들려서 내 가슴이 뛰는 건지,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가슴이 뛰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사랑을 속삭이려면 투우장에서"라는 스페인의 속담을 예를 들었다.
 
  2장 연애의 시작에서는 심리학자 스턴버그의 연구를 빌어 사랑의 구성요소는 '친밀감', '열정', '커미트먼트(결정과 관여)'가 있는데, 이들의 조합에 따라 사랑의 종류는 호의, 짝사랑, 공허한 사랑, 연애, 우애, 뜨내기 사랑, 비애, 완전한 사랑 이렇게 8개로 도출된다고 한다. 가장 이상적인 완전한 사랑은 그 자체가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에서 이러한 사랑을 하는 커플은 거의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우애적인 사랑'을 현실적인 사랑의 최고형태로 생각한다고 한다. '우애적인 사랑'이란 친밀감과 커미트먼트가 높은 상태로 결혼한 지 비교적 오래된 부부나 친구 사이에 생기는 감정을 말한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최고는 '모성애'이고, '우정'은 세번째라고 한다. 그럼 연애는? 자매간의 사랑보다 한 단계 아래인 다섯번 째라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짐작은 하고 있지만, 학자들도 연애에는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연구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머스타인이 제안한 '연애 과정의 3단계론'인데, 단계별로 중요한 요인의 머리글자를 따서 'SVR : Stimulus-Value-Role' 즉, 자극 - 가치 - 역할분담 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모두를 넘어서면 결혼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연구는 돈과 외모는 단지 자극, 즉 S일 뿐이며 첫 단계에 불과 하다면서 연애란 만남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장 연애의 전개에서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대해 연구들이 호의적인 것을 들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직관', 즉 '감이 좋은 만남'으로 맺어진 케이스들은 직관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고 전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 오히려 '계산적인 그것'보다 나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연애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면 어둠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면서 밑저야 본전이니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극장이나 조명이 어두운 술집등 그런 분위기가 연출된 곳으로 함께 가라고 조언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해'를 반복하게 하거나, 비슷한 것을 확인하려 하는 사랑은 절대 오래가지 못하는데, 그것은 '자기정체성 즉, 자기 아이덴티티'가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만 요구하기 때문이란다. 양보와 배려가 부족한 미성년의 경우는 자주 있을 수 있지만, 청년기에 형성되어야 할 이것이 부족하면 '자기 정체성을 위한 사랑'이 되기 때문에, 상대가 쉽게 지친다고 말한다. 진정한 친밀성이란 나를 상대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커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질투심'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냉정하게 질문을 하라'이다. 냉정하게 질문하면 상대방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답을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주의 해야 할 것은 '내 여자가 질투를 드러낸다면 헤어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4장은 연애의 파국, 이별을 이야기한 장이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나 이별, 둘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경험해보았겠지만 결혼까지 골인하는 연애는 매우 드물다. 나도 물론 이제껏 이별만 거듭했다. 대개의 연애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로 끝난다. 특히 젊은 날의 연애란 그 끝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놀란 사실인데, '권태'가 가장 많았단다. 흥분해 있던 감정이 식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상대에 대한 실망 혹은 상대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난 후 환멸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흥미나 관심의 차이' 나머지 모두 배경, 지적, 성적 태도 등의 차이로 순서를 매긴다고 한다. 이별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징후들은 서로간에 만나자는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던가, 시시콜콜 알고 싶어 오랜시간동안 하던 전화와 메시지가 뜸해지거나 단순해질 때인데, 유념해야 할 것은 남성들은 전화, 문자, 이메일등을 도구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여기는 반면, 여성들은 이를 적극 활용하는 표출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처음에 사귈 때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원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통화나 문자를 주고 받지만 실은 그녀를 위한 행동일 뿐 사실 즐기지 않는 반면, 여성들은 전에도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남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수상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처음처럼 그녀를 위해 배려를 해야 겠지만, 여성들 또한 남성들의 그런 점을 이해해 그 횟수를 줄여야 할 필요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실연 후에 대처해야 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은 사랑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고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새롭게 다가온 사랑은 쓰라렸던 과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느꼈던 불안감과 상실감은 새로운 사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충실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조언을 구하거나, 대답을 해준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기에, 누가 그런 사람이 있거든 옆에서 입다물고 그저 자리를 지켜주거나, 고개만 끄덕여주라."고 어느 러브 카운셀러가 말한 적이 있다. 개개인 마다 다른 절대적 가치인 '사랑'을 논하고 돕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일테다. 중요가치이면서도 정답이 없는 것이 사랑인지라 묻기도, 답하기도 어렵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카운셀러가 되줄 것 같다. 오롯이 '완전한 사랑'을 이룬 저자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심리학적 연구를 근거로 한 다수들의 의견이기도 하기에 정답은 아니겠지만,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 많다. 사랑을 여전히 로맨틱한 판타지로 여기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사랑를 찾는 사람들의 현실을 알아야 할 테다. 당신이 지금 솔로라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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