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지금껏 잘못 알아 온 CIA의 '불편한 진실들'을 담은 책 !
 
  내 할아버지에게 미국은 '아버지의 나라'였다. 1950년 6월 25일,(날짜를 모르는 젊은이가 허다하다니 굳이 적는다) 한국전쟁을 참전하셨던터라, 게다가 총 한 번 쏴보지 못한 채(나중에 할머니가 할아버지 몰래 말하셨다) 총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나셨던 당신에게는 '나라를 구해준 훌륭한 나라'였다. 그래서인지 4-5 살 때 늘 저녁때만 되면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빅 머로우가 출연했던 미국드라마 컴뱃Combat 을 꼭 봤다. 그리고 내게 늘 말씀하셨다. "미국은 좋은 놈, 독일군은 나쁜 놈이란다." 그것은 국민학교 3-4 학년때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했던 반공영화 '똘이장군'에서 북괴의 수괴로 나온 김일성은 '붉은 돼지'였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믿었다. 영화속 주인공은 항상 '좋은 놈'이니까.  

 

  그래서 일꺼다. 대학 새내기 때 붉은 깃발을 두르고 '양키 고 홈'을 외쳐대는 80년대 학번의 선배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한 '학습'은 간첩교육과 다름없었다. 지금껏 듣고 믿으며 자라왔던 사실과 너무나도 달라서 제대로 영글지도 못한 정체성은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언론'이 말하는 '좌익 용공세력'들과 함께 한 학기를 보내며 전경에게 잡혀가고 매맞기를 되풀이 하면서 나 또한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가 되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인지도 모른다. 뒤늦게 알게 된 게 화가 났고, 그동안 속아왔던 것이 더 화가 났고, 앞으로도 속아야 한다는 것에 치를 떨게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속고만 있는데, 이 세상을 움켜쥔 우두머리는 여전히 '아버지의 나라'로 받들고 있었으니, 그 시절은 정말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니었고, 살아간다고 사는 게 아니'었다.
 
  비밀秘密 을 만들고 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의 쾌감은 인생에 있어 색다른 맛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제는 알지 못하는 자도 그 비밀에 관심이 지대함에 있다. 비밀의 유효기간은 그것을 몰랐던 자들이 알게 되는 그 때까지만 일테지만, 밝혀진 후엔 비밀을 가졌던 이유에 대한 막대한 책임과 알리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의 무서움을 견디는 것은 현재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밀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그 위험도도 커지지만, 알고있는 자들에게는 들키지 않는 한 인간만이 가지는 즐거운 '스릴'도 된다.
 
  '비밀'을 지켜야 하고, 또 다른 '비밀'을 만들어 내야 하는 자, 그것을 '업業'으로 하는 자들은 아직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비밀을 모르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물론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우스운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자들은 '비밀'이었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을 할테지만, 나중에 안 이들은 '속았다'고 분개할꺼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비밀'이 노출되어 대중화되면 '사기'가 되는 것이다. 비밀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이 끝까지 지켜져야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비밀에는 무섭고 사악한 마성魔性이 있다. 네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을 내가 앎으로써 갖는 작은 우월감, 바로 그것이다.그래서 어떤 병적인 이들은 '습관적'으로 비밀을 만들어내고, 즐거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마성때문에 비밀이 만들어지고, 지켜지는지도 모른다. 이 매력적인 '비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혼자되기를 자처하기'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비밀때문에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없고, 스스로가 배척하기 때문에 혼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왕따'가 아닌 '자발적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남과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은 '공상'이 되어버리는 결론에 치닫는다. 비밀은 비밀을 낳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현실과는 멀어지고, 그 속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밝혀지는 숨겨진 비밀. 어쩌면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비밀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지금껏 미국을 세계 제일의 자리에 있게 해 온 조직, CIA를 낱낱이 파헤친 책이 나온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년간 CIA 전·현직 국장 10명과 요원 300여 명을 수천 시간에 걸쳐 인터뷰했으며, 참고한 문서만 5만 건이 넘고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 국가들을 여러 차례 직접 여행하기도 했다. 책이 나온 후 그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이 책은 이미 미국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뉴욕 타임스에  베스트셀러로 오르며 미국의 정치계, 학계,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울러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고, 비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온 CIA의 공식 논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화제의 책, 팀 와이너Tim Weiner 의 [잿더미의 유산 LEGACY of ASHES]이다. 

  

   
  저자 팀 와이너Tim Weiner 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국가 안보와 비밀 공작에 관한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 정보기관에 대해서 글을 써 왔으며, 1988년 미 국방부의 비자금을 파헤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명실공히 베테랑 기자다. 그런 그가 이번엔 미국의 최고 정보기관이었던 CIA를 목표로 파고 들었다. 현재 CIA는 미국 정보 분야에서 2류 조직으로 밀려난 상태다. 60년 만에 사형선고를 받은 셈인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9.11 사태에 있었다. 그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우리 조차도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장비를 갖춘 미국이 왜 몰랐는가?"하는 의문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부었을 정도이니, 미국인의 토로는 얼마나 대단했을테고 그것에 미국정부도 할 말을 잃었다. 결국 CIA는 지난 2005년 CIA 국장 체제를 없애고 국가정보국장DNI 이 총지위하는 체제로 만들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정확하지 않는 '실제 정보'로 정권자의 의도에 맞도록 왜곡되고 가공된 채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 행정부가 세계에 슬로건을 내건 '테러와의 전쟁'의 관건은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인데,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고 정확해야 하는 것이 '정보'일텐데, 그런 정보를 핵심업무로 하고 있는 CIA가 실제를 왜곡하거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북핵 현실을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은 우리의 그것까지도 건드리고 있다.
 
 정보기관의 정보 업무는 해외에서 진행되는 사실들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혹은 그런 사실들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말을 빌리자면 '역겨운,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 즉 넓은 세계를 바라보면서 어던 일이 다가오는지 파악하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인데, '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한 미국의 CIA가 지난 60년 역사동안 이런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 책은 하나하나 파헤쳐서 소개한다. CIA는 공산주의와 대결하기 위해 전 세계 독재정권에 돈과 무기를 제공했고 심지어 폭력을 동원해 다른 국가를 전복시키는 ‘미국을 위한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에서 미화된 CIA의 성공 스토리와 달리 CIA는 잘못된 정보수집과 정세 판단으로 한국전쟁에서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끊임없는 실패와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지금의 세계적인 테러 현상의 원인을 제공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자민당과 CIA의 반세기에 걸친 밀월관계,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에 무기를 제공한 CIA의 비밀 공작, 미국의 도움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을 학살한 독재정권의 폭력 행위, 부시 대통령의 이데올로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보를 왜곡한 이라크전쟁의 진실 등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현대사의 진실을 뒤집는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CIA가 창설된 이후 처음 일어난 전쟁이었던 한국전쟁에 대한 그들의 한반도 정책은 모두 실패로 거듭된 것들이었고, 저자는 현재의 한반도 위기의 한 원인으로 CIA의 북한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정보 분석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수준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고,  CIA 내부에 있는 북한 전문가 중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내부사정에 어두우며 특히 북한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접근통로조차 제대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우리는 현재까지도 북한의 징후에 대해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이고, 그들의 발표는 우리의 그것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물론 언론과 학계가 한 목소리로 입을 모은다는게 정말 어의가 없었다. '에이 설마, 정말 그럴까?' 추측이나 억측없이 1차 보고서 및 문서들을 바탕으로 작성했기에 '진실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차라리 '거짓이라면 좋겠다'고 바랄 만큼, 알고 있던 사실과 너무 다른 것들이었다.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도 그 사실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경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역사상 그 어떤 공화국도 30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미국 역시 만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한다면, 즉 원래 CIA가 수행했어야 할 임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면, 강대국이라는 지위에서 언젠가는 밀려날 것이다." (서문중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CIA는 사라지지만 다른 이름의 또 다른 정보기관은 'CIA'의 역사를 통해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만약 CIA가 온전히 미국을 위해 제대로 활동했더라면, 즉 실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면서 원했던 모습으로 있었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테고(저자가 쓸 이유가 없다), CIA의 강력한 반대로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젠 종이호랑이가 되어버린 CIA와 정권 교체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에 시의적절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결코 석고대죄하며 "우리 미국은 바보였습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세계를 상대로 괴롭히고 이용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고해성사하지 않았다. '제대로 잘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이후에 정보기관을 만들거나 속할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정보기관도 되지 말 것이며, 개인의 사익을 위하지도 말 것이며, 오로지 미국이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내용과 다름이 아니다. 다시말해' 9.11이 아니었으면 CIA는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까지 세상을 주무르면서 벌인 '불편한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땅에 테러가 벌어질 만큼 무능력하고 썩은 CIA 였기에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난 해석하고 싶다.
 
  과연 저자는 이 책을 내면서 알게 된 모든 진실을 알렸을까? 그리고 그들은 늘 '진실'만을 추구하는 나라 사람들이기에 언론은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줬을까? 과연 그럴까?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책을 알고, 읽게 된 이상 우리나라가 지금껏 미국의 정보통을 통해 얻어왔던 진실의 경로는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 밖에 없다고 한다면, 최소한 전해준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추악한 CIA의 역사'를 생각하며 또 다른 분석의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결코 세계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미국인들을 겨냥해서 쓴 책이다. 이 책이 나온 이유에는 CIA 보다 더 강력한 정보기관이 출현되어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을 지켜나가는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것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실패를 뒤집어 보는 것은 더 나은 미래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역사탐구의 올바른 자세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패'에 대하여 "세계가 알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걱정하며 숨기기에 급급하는데 익숙한 우리가 볼 때는 '미국의 관대함' 또는 '저자의 용감성'에 칭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보다 강한 미국을 만들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여지껏 당해온 CIA 보다 더욱 강력해진 조직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이고, 세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미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국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많은 정보의 루트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이제 정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재확인 되었다. 아니 '제대로 믿어야 할 놈을 믿어도 끝내는 시원찮더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역사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것을 믿고서 펼치는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누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우고 느껴야 할 점은 많다. 특히 위정자와 언론, 그리고 학계와 젊은이들이 '역사'란 세상에 들어난 것을 재해석한 것 뿐, 진실은 그림자 속에서 항상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옛말을 따르면 '믿지 못할 놈은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치이거늘, 상종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한스러울 따름이다. 앞으로는 '내 네놈에게 또 당할쏘냐?'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상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많은 한숨과 분노와 각오를 안겨준 '불편한 진실'을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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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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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대소 속에 뭍어나는 삶의 페이소스, 성석제의 여행 단편모음집!
 
"걘 뭐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친구중에 그런 녀석 하나 꼭 있습니다. 세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친구. 녀석의 하루가 슬랩스틱코미디인 듯, 만날 때면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득인 친구가 있습니다. 표정과 말투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남이 했던 시시한 이야기도 녀석의 입을 통하면 박장대소를 부릅니다. "허 참, 내가 이런 일도 있었다니까?" 라며 말문을 열면 흩어져있던 이야기들이 잠잠해 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배를 움켜지고 쓰러지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그냥 옅은 웃음으로 좌중을 지긋이 보는 녀석. 그래서 모임에 그 친구가 나오지 않게 되면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진 듯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아 도통 흥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합니다. "걘 뭐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어제 읽은 소설이 그 친구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홉편의 단편 하나 하나가 어찌나 구성지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지 그래서 눈물나게 웃다 보면, 그 웃음 속에 숨어 있는 아련한 인간적 비애감도 느끼게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소설가 성적제의 [지금 행복해]를 읽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절반 이상이 여행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넉넉하게 보내는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분명히 난 소설을 읽었는데 말이죠, 마치 만화가게에서 코믹만화 한 권을 집어든 사람처럼 조용한 북카페에서 편한 자세로 읽기 시작했다가 '크득크득' 웃느라 자세를 고쳐잡아야 했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웃음을 참느라 '끄윽끄윽'대다가 결국은 야외테라스에 나가 뒤집어지게 웃어야 했습니다. 물론 한 쪽 손에는 이 소설을 들고 말이죠.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 여행생각도 나고, 함께 갔던 말썽장이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웃음 뒤엔 한참동안 옛날을 더듬게 했습니다.   
 

   
  성석제 만큼의 가벼운 소재와 오만 군상의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가벼운 사건 사고가 항상 즐거운 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닌 '내가 겪은 이야기'같아서 입니다. 나에게 있어 그분의 소설은 감탄과 찬사를 던지며 읽는 소설이기 보다는 한 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조용한 겨울밤을 배경삼은 푸근하고 넉넉한 오뎅집에서 서너 살 위의 형님과 마주앉아 따끈한 정종과 안주 마시며 끌끌껄껄대는 그런 소설 이거든요. 웃다가, 혀를 차다가, 뒤집어지다가 책을 덮으면 '그래, 이런게 세상 사는 게 아니겠어?'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는 소설이거든요.
 
"여섯, 여섯, 여섯, 이래 논구고, 그래마 두 개가 남는다. 둘 나누기 셋은 영 점 육육육쩜쩜쩜. 하고 무한대다. 가위바위보나 홀짝으로 해서 맞히는 사람이 한 개비씩 가지는거 어떠냐."
 
"가위바위보나 홀짝이나 난 그렇게 우연에 맡기는 게 싫다."
 
"그래마 이래자. 두 개를 한꺼버네 불을 붙이가이고 돌아가민서 삼분의 이씩 피우마 되잖아."
 
"무슨 수로 삼분의 이를 피웠는지 아느냐고. 난 남의 침 묻은 담배 피우기 싫어."
 
"갑(담배케이스)를 담배 하나로 보고 두 사람은 담배 하나씩. 한 사람은 갑을 가지기로 하자고. 갑 있으마 담배 간수하기 좋지."
 
"갑하고 답배하고 같다는 논리에 반대한다."
 
"에에, 씨부랄. 그 새끼 더럽게 따지쌓네."
 
단편 [여행]은 배알 꼬일 일이 뭐가 그리 많은지 티격거리는 만재와 봉수, 그리고 영덕은 태양 담배가지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서로가 못마땅하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항상 같이 붙어다니는 무리, 그게 친구인가 봅니다. 아들과 친구 먹은 중독자 아버지 이야기(지금 행복해), 여행중에 한 여자에게 반해 그녀만을 쫓다가 생기는 이야기(설악 풍정), 바위에 잘못 올라갔다가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기적처럼), 남자 셋, 여자 셋 국민학교 동창들이 이십대가 되어 떠난 여행(피서지에서 생긴 일), 옴니버스란 이런 것이다 말해주는 듯한 이야기(톡), 낚시하다 일어난 이야기(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 이런 저런 배꼽을 빼는 에피소드가 모두 아홉가지가 모여 성석제표 여행 9종 세트로 한 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자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과 슬픔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닐까요? 실제 삶에 있어서는 슬픔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문학에 슬픔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과장이 되기 쉽죠, 아홉 스푼의 웃음에 한 스푼 정도의 슬픔이 비극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놀라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고, 너무나 슬퍼서 우스운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건강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억지 웃음처럼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목구멍이 훤히 보이도록 가슴내어 뒤집어지게 웃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제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이먹을수록 생각되고 계산된 웃음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마음껏 웃고 싶고, 마음껏 슬프고 싶어서 옛친구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 책을 만나보세요. 선배를 만난 듯,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공공장소에서는 읽을 때는 주의하세요. 거짓웃음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사알짝 미쳤다'고 할 지도 모르니까요. 즐거운 친구의 이야기같은 소설,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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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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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고통, 현대인이 느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내 연애소설의 시작은 재미있게도 만화였다. 제목은 이현세의 만화 '까치의 오계절'. 중학교 1학년의 따뜻한 봄이었는데, 시간적 부담이 없는 토요일 오후에 직사각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군것질꺼리를 할 돈을 남겨둬야 하는데,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주머니를 털었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을 감추려 검정색 교복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훌쩍거렸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까치의 오계절'은 나를 울린 첫 만화였고, 첫 연애소설이었다. 그 책은 오혜성과 마동탁 그리고 엄지와의 갈등을 이야기한 만화였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때에 '만화가게 대여 1순위의 초고속 베스트셀러'였고,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후문이 있던 책이다. 이 작품으로 이현세는 만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이관용씨의 작품인 '열아홉살의 가을(이청과 조용원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을 비롯해 박범신씨의 소설과 장총찬이 등장하는 김홍신씨의 '인간시장' 등 시간과 경제력이 허용하는 한 모두 읽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때마침 '사춘기'도 찾아와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려 책에 꾀나 탐닉했던터라 서재에 늘어나는 책의 수량만큼 시험성적은 떨어졌고, 급기야는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독서금지령' 처분을 당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 '가출'을 고려했던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비슷한 스토리에 주인공과 시공간만 바뀌는 '연애소설'은 독자의 나이에 따라 감회는 다른 것 같다. 어릴 땐 '연애란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해 '훔쳐보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들었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주인공의 대사 하나 하나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내가 네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동조하게 된다. 나중에 그것을 집어 들면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어봐서 아는데, 그러는게 아니야'라며 충고하게 될까 모르겠다. 무튼 아직도 이야기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인 것을 보면 그런 글을 써도 시원찮을 나이가 된 내 스스로가 아직도 부족한 어설프니 같기도 하고, 팔푼이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도 팔푼이가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동경만경東京灣景]을 읽었다. 
 
 



 
  소설 [동경만경]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누구든 보낼 수 잇는 잔잔한 하루의 일상을 평범한 필체로 그려낼 뿐이다. 오히려 나의 하루와도 같은 일상 때문에 편안한 일일 연속극을 한편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슴 뭉클하고 애뜻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던 일반적 연애소설과는 다소 밋밋한 연애소설이라 짐짓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경만경]은 삶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 중에서 가장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아픔의 기억을 가슴에 남기기도 하는 ‘남녀관계’,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때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자체가 무의미 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곳에 독자들을 초대함으로써 각자 해답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입은 사랑의 상처로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감정을 가진 료스케와 '그가 단지 몸뿐이기를 바란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단지 몸뿐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에 대해 이질감을 가진 미오. 연애관만 비슷할 뿐 그들이 가진 직업과 삶에선 어떠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그들을 서로 끌리게 만든 것 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너무도 가벼워진 요즘의 남녀관계를 상징하는 한 미팅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다. 료스케는 현재 교재를 하고 있는 애인이 있음에도 빠르게 그녀와의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빠지다' 라는 말과 '탐닉하다' 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P 120)
 
  료스케와 미오는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고 싶어 하지만 단지 서로를 탐닉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고통과 외로움, 사랑에 대한 모호함이 주는 혼란스러움을 제공하는 감정의 사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부정할지 모를 그 사랑의 감정에 빠져 들어간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자기 뜻대로 꿈을 이뤄내는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누군가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ON이 되지 않고 거꾸로 누군가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OFF가 되지 않는 거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기로 작정한다고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 (P 153)
 
  도쿄만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단편적인 삶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그들에게 만남의 계기가 됐던 미팅사이트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가보지 못한 일본의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주는 답답함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오늘날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우연을 빙자한 필연'이 되었던, '인스턴트 러브'가 되었던 무엇인가 '대화상대가 필요한 두 사람'의 존재가 있음은 어제와 오늘이 매한가지다. 서로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둘이 만든 세상에는 둘만 존재하니까. 우울한 그들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인류 최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살포시 겹쳐있을 뿐이다. 어제의 날씨와 기분에 딱 어울렸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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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맛있는 사랑과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소설!
 
 술과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떠오르는 선배가 있다. 대여섯 살(가장 친한 선배이면서도 아직도 정확한 나이차이를 모른다) 차이가 나는 세 학번 위의 선배인데, 내가 선배의 집에서 자야하는 경우는 딱 하나, 그와 밤새고 술을 마셨을 때 뿐이다. 새벽 서너 시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들어갔다간 추호秋虎 같은 아부지한테 몽둥이찜질 당할 껀 뻔한 사실, 게다가 그시간에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집을 가려면 필히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돈이 있으면 술로 바꿔먹을 판이었으니 어림없는 소리였다. 선배집에서 잠을 얻어자는 것은 고마운 일인데, 게다가 아침밥까지 얻어먹는다는 것은 정말 감지덕지할 일인데, 문제는 정확하게 새벽 6시에 머슴밥을 먹어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놋쇠그릇으로 하나 가득 보리밥이 산을 이루고, 젓갈과 시골된장으로 잘박잘박하게 지진 된장찌게, 어제 담근 듯한 풋풋한 총각김치 그리고 철마다 바뀌는 반찬 두어가지가 전부인데, 해가 꼭대기에 걸쳐진 점심만 같아도 꿀맛이겠지만, 술취해 한 두시간 자다가 일어나 먹어야 하는 선배의 아침식단은 '모래밥'을 씹는 듯 했다. 얻어먹는 주제에 게다가 노구老具를 이끌고 지으신 새벽밥을 물리칠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쑤셔넣고, 물을 마시고 있으면 할머니는 놋쇠밥공기의 절반 정도를 또 담으신다. "됐어요. 할머니, 저 배불러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녀석, 밥 참 잘 묵네..."하시면서 꾹꾹 눌러 담으셨다. 그리고 난 또 꾸역꾸역 모두 먹었고...
 
  "뭘 좋아하세요?" 30대 초반까지 가장 난감해 하던 질문이다. 터지도록 배가 부르지 않다면 뭐든 먹는 것은 다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해서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한다. 타고난 식성食性 과 '없어서 못먹고, 안줘서 못먹었던' 경험으로 키워진 후천적 식탐食貪 덕분에 남의 집을 가면 '남자답게 먹는다 혹은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듣는 그 칭찬에 더욱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가리지 않고 먹었고 되도록 배가 부르도록 먹어 '뭘 좋아하냐' 물으면 '못먹는 것 빼고 다 좋아한다'고 선문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까탈스러워짐을 느낀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말한 바 처럼 "음식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비싸고 좋은 것을 먹기' 보다는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삼신할미는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제 밥그릇 숫자를 정해주는데, 한 끼라도 적게 먹으면 그만큼 명命을 줄여서 다시 부른다' 는 우리 할머니의 섬뜩한 가르침을 깨닫게 되면서 되도록 '제 때에 잘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음식은 몸을 움직여야 할 남은 시간을 위해 배를 불려야 하는 '연료보충'의 의미도 있지만 맛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욕구충족'의 의미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성異性과 같고, 사랑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과 사랑(섹스)의 묘한 관계, 그것을 이야기 한 소설을 만났다. 요코모리 리카橫森 理香 의 소설 [EAT & LOVE]를 어제 읽었다. 원제목은 EAT&LOVE (イースト・プレスチュチュカラーズ) 이다. 
  
 

   
 묘하게 엮인 주인공 여섯 명을 음식의 소재와 또 다시 엮어 그들의 사랑과 섹스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 면에서는 조경란의 [혀]와 닮았지만, 주인공 한 명을 제외하곤 주제들이 경쾌하고 라이트해서, 무엇보다 다분히 주인공들이 이국적이라 다름을 감지한다. 주인공 여섯 중에 '라즈베리 무스' 속 주인공, 36세의 노자키 신이치로 한 명만이 남자이고, 그의 주위에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노자키 신이치로가 이 소설의 메인인 듯 하지지만, 실은 그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기 위한 이야기의 핵심소재 역할을 한다. '주제도 모르는 바람둥이에 호색한'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들의 관념이 그러하듯 저자는 노자키를 그런 남자로 등장시켰다. 그럴 법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저자가 여성이었기에 노자키의 깊은 내면을 밝히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웠다(독자는 나같은 남자도 있으니까).
 
  재미있는 점은 40대에서 20대에 걸친 다섯 명의 여자주인공이었는데, 소설의 구성 또한 40세의 에구치 미라이, 34세인 가와카미 야스요, 26세의 나카다 유코, 22세의 고지마 미키, 그리고 이제 갓 20살이 된 가시타 미오를 주인공으로 그녀들과 관계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나이와 직업 그리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그녀들에게 있어 연상하고 찾게 되는 음식은 실로 다르고 다양했는데, 과연 '음식이 곧 사람이다' 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나이마다 다른 여성들의 남성관과 섹스관 또한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과 흥미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세계에서 미뢰(혀에 돋아나있는 자극을 담당하는 돌기)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인의 손에서 비롯된 음식과 사랑이야기이어서 일까 세밀한 묘사와 표현력은 대단히 감각적이었다. 특히 22세의 고지마 미키가 엄마의 유언대로 장례식을 찾은 문상객들에게 최고의 도시락과 점심을 제공하고, 타오르는 듯한 빨간색을 사랑하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빨간 한국 음식'을 저녁으로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배고픔'를 느끼는 동물적인 인간을 새삼 느끼게 되고, 그에 앞서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되고 싶은 듯 죽음 앞에서 '스시'를 맛있게 먹는 엄마의 모습에서 '먹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30대의 남성 노자키는 '라즈베리 무스'를 쳐다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약간 달콤하고, 취한 듯 몽롱하고 둥둥 떠 있는 듯하고, 녹아버릴 것 같고, 먹으면 정말로 입 안에서 금세 눈처럼 사라져버리거든." 라스베리 무스가 먹고 싶어졌다. 정말 맛이 그럴까? 최고의 표현은 20세인 기시타 미오의 파파(나이든 애인)가 인간의 음식과 사랑에 대한 코멘트 일 것이다. "미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지. (...)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야.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 
 
  멋진 말, 하지만 50대가 아니면 잘 할 수 없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이란 맛없는 음식을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수많은 먹을 것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음식경험이 풍부한 50대의 추천 요리들이 맛있고, 잘 만들어진 것일테지만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에겐 제 입맛이 길들여진 타인은 그 맛을 모르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제 나이에 맞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의 맛도 사랑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뭘지 생각해 봤다. 내겐 '늦은 새벽 사랑하는 여인과 침대에서 함께 떠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통'이었다. 물론 먹은 다음(?) 먹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맛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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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소장본 - 전2권 - 칼의 노래 + 칼의 노래 자료집 : 김훈을 읽다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김훈의 펜에 의해 오감으로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체험할 수 있었던 소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소설의 글들이 추임새가 되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고, 인종을 불사하고 독자인 내가 만드는 상상의 화면 속에서 나는 감독이 되고, 주인공이 된다. 각본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이다. 그래서 내가 소설을 읽고, 잘된 작품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내가 충분히 감독역할을 하며 그 '각본'을 즐겼느냐 아니냐에 가름하는지도 모른다. 현대물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에 그에 판가름해서 '있을 수 있다 혹은 없다'가 첨가되어 더욱 비평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물의 소설은 '영화 각본'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그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과거 또는 미래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작가의 '각본'에 의존한다. 그래서 내가 갖는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표현과 영상을 경험하게 된다면 '걸작'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걸작'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지만, 내가 사는 '동시대'에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게 있어 행운과 같은 '작가와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이다.   
  

 
소설 [칼의 노래]는 당대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이순신이 백의 종군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명량해전에서부터 이순신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한 이야기인 바탕인 만큼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아닌 한사람의 무관으로서 한사람의 남자로서의 이순신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사학자도 아니고, 평론가가 아닌 독자로서 역사소설을 대하기는 몇년 몇 월 며칠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교과서라도 충분하니까) 그 때에 있었을 법한 사소하고 지저분한 일상의 사건 속에 전쟁을 간접체험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 김훈은 수 백 년 전의 임진왜란을 머나먼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 내가 겪은 듯 혹은 내 바로 위의 선조에게서 듣는 듯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필력에 묘사된 전쟁속에서의 이순신은 나에게 친숙하게만 느껴졌던 영웅 이순신이 아닌 무관으로서,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남자로서 다가오며 그가 느꼈던 절망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
 
  제목 [칼의 노래]처럼 자신의 칼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사지死地)를 찾는 이순신의 면면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명과 일본의 조약을 기다려 마지막 싸움을 회피 할 수 있었던 이순신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함, 자식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한, 전쟁을 통해 수없이 죽어갔던 백성들의 한,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 결전을 피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사지를 찾아 그곳에서 죽음을 완성한다. 저자의 실적인 묘사와 1인칭 시점에서의 서술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전개를 이끌어 냈다. 출격과 동시에 승패를 결정지었던 여타의 책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 사실적인 해상전투의 묘사는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의 여자와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장에선 "씻지않은 여진의 몸에서는 오랫동안 뒷물하지 않은 여자의 날비린내가 나고, 자른 목들은 썩은 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장수들은 겨를이 나면 종을 물러 서캐를 잡게 하였으며, 전쟁뒤 떠오른 시체들로 물은 썩어 역병을 일켰다. 죽은 시체들로 인한 악취는 사라지지 않는다."라 표현할 만큼 사실적 묘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 가진 고뇌와 절망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고통을 공유하고자 만든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빼앗긴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임금을 향한 충정심을 보였던 무관이자, 자신의 아들을 반으로 갈랐던 일본의 장수와의 만남에서 떨림과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한사람의 아버지, 하루살이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던 모습들 속에서 한 사내가 만날 수 있는 여러 위지의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머리와 코가 베여지는 전쟁속의 죽음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에 다소 어두웠던 책 속에서 그의 모습은 어떤 미사어구와의 결합이 필요없을 만큼 장대하고 아름답다. 작가의 유려한 문제와 함께 이순신의 삶과 죽음은 다시 재조명되었다.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 될 수 없는 불행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수많은 병사의 시체를 밟고 일어서는 자의 이름이 영웅이라지만, 그 역시 이미 마음은 제 발 아래 깔려있는 병사들처럼 죽었음을 느끼게 한다. 혼란스럽고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제 갈 길을 알았던 한 사내를 나는 만났다.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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