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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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가 달라 동조하기 힘든 호모오피스쿠스들의 이야기  
 

  애초의 생각과는 조금 엇나갔다. 물질만능주의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자가 되어버린 윌리 로먼의 이야기를 그린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차이는 시공간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사람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잘 나가던 광고회사 직원들이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는다. 격분한 해고자들의 뜻하지 않은 행동들, 그리고 자신들도 해고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회사생활을 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야기,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 떠오로는 신예 조슈아 페리스의 처녀작이고, 원제는 Then we came to the End 다.  


 

  세계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작금의 경제상황에 이 책을 펼치는 의미는 남달랐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 계속 엇나가고 있었다. 닷컴 붕괴로 실직되는 광고회사의 직원들은 보통 샐러리맨들과는 차이를 갖는다. 그들에게 닥친 해고통지는 패배를 모르는 엘리트들에 대한 사형선고다. 그래서 그들의 광기는 소설속 허구라는 인정하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회사측의 '해고통지'가 마치 의사의 '정신이상판정'을 내리는 순간과 닮아 동조하기가 여러웠다.  

  특별한 대우와 월등한 보수는 엘리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근무태만은 창작을 위한 소일이라 여기는 그들에게 꺼져가는 닷컴의 거품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마치 오늘날의 월가처럼. 월가의 신참내기 직장인이 IT의 떠오르는 강국 한국에 와서 밤에는 육지주림에 빠져 있다가 낮에는 산해진미로 해장하며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수억의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호강을 세상에 알렸다. "난 지금 한국에서 왕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그 또래들의 이야기인듯 해서 그들을 수발하고, 보좌했던 한국인으로서 읽는 내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의 광기와 몰락에 조금은 고소함을 느꼈다. 나도 미쳐가는 걸까? 

  서두에 던진 말처럼 <세일즈맨의 죽음> 속에 등장하는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몰락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험금 몇 푼을 건지려 목숨을 던지는 그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서운하다 하겠다. 파산 위기에 있는 월가의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정부에 그들은 '벌만큼 번 사람'이고, 이번 위기 또한 그들의 '얕은 윤리관'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구제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등장하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의 발버둥을 어떻게 소화할 지 궁금하다. 거품은 붕괴를 예고한 인간재해다.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찍 무너지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거품붕괴의 피해가 고스란히 신의성실에 입각해 열심히 근무했던 선량한 샐러리맨에게만 전가되는 것이 안타깝다.  

  "난...열심히 노력해 이곳에 취직했을 뿐이고, 상사들의 눈치보며 열심히 근무했을 뿐" 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과장하고, 분노하며 광분하고 있었다. 그 책임이 과연 회사에만 있었을까? 스토리의 복잡한 전개와 자잘한 사건과 에피소드의 혼재는 호모오피스쿠스들이 처한 위기와 불안감의 정신없는 역동성과 닮았다. 애초에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곱지 못한 내게 이 책은 가독성 제로의 답답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눈으로 보는 듯 옮겨 놓은 저자의 묘사와 세밀한 서술은 인정해야 했다. 호好시절에 읽는다면 쓴웃음지을 추억꺼리가 되겠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가 읽기엔 '강제해고시 행동강령'같아 자꾸만 눈감아지게 만들었다. 시절을 못만난 소설, 제자리도 잘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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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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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성석제가 내놓은 인간풍경 가득한 소설들의 잔치상

 
  Web 2.0은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가 봅니다. 작가들이 탈고하기 전까지는 가족들에게조차 보여주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원고를 매일 매일 블로그에 올려서 Webzine이라는 개인미디어로 거듭나더니, 그들이 즐겨 읽은 책의 리뷰를 엮어 책을 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소설가 성석제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이번에 스스로를 '문학집배원'이라 칭하고 자신이 읽은 문학 속에서 즐거움을 준 소설들을 모았고, 그 속에서 정수(자신이 생각한)를 뽑아 소개하고 살짜기 멘트를 넣었습니다. 책 제목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입니다.  

  성석제님은 책의 시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장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힘찬, 인생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장이 냇물과 도랑을 따라 흘러갈 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냇가를 따라 달리셔도 좋고 도랑에 발을 담그셔도 좋습니다. 문장으로 푸르러진 마음의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든가요." 말씀처럼 감성가득한 글들이 가득합니다. 도시의 매연보다는 소똥 내음 그윽한 시골의 한적함을 느끼게 하는 성석제님의 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소개하시는 소설가들은 과거와 지금, 동양과 서양을 에둘러 등장합니다. 현진스님과 채만식 선생, 루쉰과 빠블로 네루다가 눈에 띕니다. 영원한 어머니 박원서님과 유일무이한 애국자 김구선생님, 황순원님의 백미 '별'도 보이고, 결혼관을 흐려준 박현욱님의 '아내가 결혼했다'도 보이네요. 반갑고, 새롭고 흥미로운 글을 만드신 쉰 두 분을 모두 만났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봄이 올 듯 기분을 붕붕거리게 만드는 글들이었습니다. 소설 하나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두 세페이지 글을 하나 둘 씩 모아 하나로 엮었습니다.

  글 말미에 던지는 성석제님의 해서 역시 프로이트의 꿈해몽을 능가합니다. 인간세상의 모든 상념을 담은 글들에 저마다 어울리는 해설을 놓았습니다. 껍질채 쪄 내놓은 자리돔 이야기를 적은 한창훈님의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에서 성석제님은 내면이 중요하다면서도 껍데기에 절대적으로 가치를 둔 우리 현실을 꼬집습니다. '껍데기를 째고 찢고 올려붙이고 꿰매고 깎고 빛을 쪼이고 점을 빼고 주름을 제거하고 향수를 뿌리고 동물성, 식물성, 기능성,한방, 산삼 성분 화장품을 바르고 때로 남의 껍데기를 먹어서' 껍데기와 그 뒤쪽, 안과 밖의 차이가 나날이 커져 표리부동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존재, 바로 우리들 모습을 꼬집었습니다. 

  이런 책을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습니다. 저자의 서재를 소개하는 듯, 좋은 책의 일부를 맛뵈기로 보여주는 듯 한 '책속의 책', 문학에 있어 문외한인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작은 선물입니다. 하지만 성석제님 필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작품에 대한 예의일지는 모르지만, 거침없이 투덜대고 쏴대는 성석제표 '해설'이 더 맛깔지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제가 뭘 압니까? 그렇다는 거죠. 그래도 즐겁게 읽으며 즐겼습니다. 그럼 된 것 아닌가요? 늦은 금요일 밤에 미친 아헤처럼  낄낄깔깔 대가 시무룩했다가 심각해진 몇 시간을 이 책에서 얻었습니다. 산해진미 그득한 잔치상을 한~상 받은 느낌, 이 책을 덮으면서 받은 포만감입니다. 잘 먹었...아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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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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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바리스타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64세 노인의 감동적인 실화!  



  64세의 노인이 고단한 몸과 마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이 때문에 직장을 퇴직한 노인은 한창 때의 영화로운 삶의 회환으로 막연한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어느 여인의 뜻하지 않는 제안을 받는다.

"혹시, 여기서 일하실 생각 없으세요?"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명문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후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하며 이사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였던 그가 자신이 즐겨 찾던 어느 커피숍의 말단 파트타임 직원으로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의 기쁨을 찾아가는 이야기, 마이클 게이츠 길Michael Gates Gill<땡큐! 스타벅스> 이다. 원제목은 How Starbucks Saved Mt Life 이고, 이 책은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영화로 손꼽히는 영화<굿 윌 헌팅>과 <파이딩 포레스터>를 감독한 구스 반 산트가 메가폰을 잡고, 명배우 톰 행크스가 주인공 마이클 역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 책 이야기에 앞서 커피이야기 아니 스타벅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스타벅스Starbucks]와 나의 첫 만남은 공교롭게도 책이었다. 1999년 가을 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라는 책을 읽고 스타벅스의 창업자이자 이 책의 저자였던 하워드 슐츠와 그의 사업체 스타벅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책 내용은 시애틀에서 시작된 스타벅스를 인수하고 프랜차이즈화하면서 큰 성공을 이룬 이야기를 다룬 자서전이었다.그 때는 아직 우리나라에 스타벅스가 입점하지 않았던 때, 프랜차이즈 업체로 사업에 한창이던 갓 30을 넘은 나는 <스타벅스>를 한국에 들여올 생각에 이르렀다. 자금 동원여력을 확인하고 동업자와 파트너를 물색한 후 홈페이지를 찾아 전화를 걸어 사업제의를 했는데, 이미 한 발 늦었다. 신세계측에서 미국본사와 똑같이 100 억원을 공동투자하는 조건으로 <스타버스 코리아>한국지사를 허락한 상태였다. 

그들이 체결한 공동투자 금액의 1/10 남짓으로 한국지사를 추진했었기에 어짜피 성사되지도 않았을 법도 했지만, 어마어마한 '블루오션'을 손에 놓친 허탈감에 난 거의 한 달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듬 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땅 값이 비싼 명동 한복판에 1호점이 서고, 폭발적인 인기를 받으면서 새로운 커피문화를 한국에 퍼뜨리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늘 그 때를 기억하곤 했다. 넘볼 수 없는 적이 되었지만 탁월한 선택을 한 '신세계'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스타벅스>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한국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크게 두 부류였다. 레지들과 응큼한 대화와 끈적한 미소를 나누는 중년 아저씨들의 공간이었던 다방과 차를 채 마시기도 전에 잔을 가져가 버리는 불친절한 웨이츄리스가 있었던 커피숍. 내 아버지 세대에는 DJ가 라디오의 그것처럼 신청곡을 받아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뮤직박스가 있던 낭만적인 음악감상실도 있었다지만 1990년 대 후반의 커피숍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만남을 위한 대화장소 그 뿐이었다. 가격은 쌌던가? 다방에서는 레지 아가씨와 몇 분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커피를 사야 했고, 젊은이들이 몰리는 중심가의 커피숍은 '자릿세'명목으로 상당했던 터, 게다가 한 시간여를 넘기려면 또 한 잔의 커피(재떨이를 행군 것 같은 떨떠름한 맛의 거무튀튀한 색, 딱 그랬다)를 마셔야 했으니 가격은 그 때나 지금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스타벅스의 등장이 그렇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절의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고, 그 시절에 비하면 마시고 트림을 할 정도로 많았으니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진 때문은 아닐까?

  지금껏 마셔봤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경험의 원두커피 맛, 그리고 화사하고 푸근한 공간, 친절한 바리스타의 응대 등 <스타벅스>는 집과 직장과 더불어 '제 3의 공간'을 고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미국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는데, 그 여세는 한국에도 몰고 와 새로운 커피문화를 만들어 냈다. 수 많은 아류업체들이 생겨나고 원조와 경쟁하면서 2005년엔 하루 종일 밥은 안 먹고 커피만 마시는 사람들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커피를 외쳐댔고, 스타벅스는 세계 제 1의 업체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체인점을 늘려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벅스의 신화>도 Web 2.0 이라는 '소비자 주권 시대'의 대세에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미국 본사에 매년 지급하는 로열티의 액수가 밝혀지면서 국내 커피숍이 등장하면서 동급의 국산체인을 놔두고 값비싼 로열티를 지급해 가면서 마셔야겠냐는 애국심섞인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기계화된 작금의 스타벅스 커피는 예전 바리스타가 뽑아낸 그 맛이 아니라는 고메이틱한 고객의 불만도 쏟아졌다. 또 세계 평화와 인류애를 가진 고객들은 커피제품가격은 비싼데, 원산지에는 거의 덤핑을 치며 커피를 사들인다며 '공정무역'에 의해 커피를 사들이는 업체의 커피를 마셔줘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지난 해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된장녀 신드롬' 지난 해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체인의 매출은 급감하게 되었다. 올해 맥도널드에서 '더이상 커피를 비싸게 마시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며 '맥카페'를 출시하면서 호응을 얻자 최근 스타벅스에서는 1불짜리 커피를 출시했다고 하는데 소비자의 빈 주머니 사정을 읽고자 하는 그들의 경쟁은 앞으도 두고 볼 문제다.

  한창 잘 나갈 때면 몰라도 예전에 비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스타벅스'에 대한 책이라니? 출판사의 선택과 이 책 내용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자사 홍보를 위한 스타벅스의 선택인가? 그런 책을 나름 생각이 심지곧고 흥행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출판사인 [세종서적]이 냈을 법하진 않았다. 아무튼 스타벅스에 관한 책이니 개인적인 애정을 위해서라도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을 처음 든 의도는 책의 내용으로 스타벅스를 흉볼 생각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다분히 얄궃고 사악하기까지 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많은 생각과 감동을 안겨주는 훌륭한 책이었다.

 

  이 책은 한 때는 잘 나가던 백인 엘리트의 64세 노인이 젊디 젊은 흑인 직원으로 가득한 뉴욕의 스타벅스 브로드웨이점에서 말단 파트타임 직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 그래? 그것참 미국이란 나라는 별 짓도 다해.'라며 웃으면서 넘겨버릴 수 있는 가십거리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흑백의 인종문제, 학력문제, 노인복지, 세대차이,그리고 기업문화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의 총합이 들어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저자인 마이클이 커피숍 스타벅스에서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와 스타벅스의 기업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서 읽은 대목은 '스타벅스의 기업문화'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단순히 커피를 사서 마시는 '고객'에 있던 마이클이 고객을 접대하는 바리스타의 위치에 있게 되면서 '그곳'에 가면 왜 기분이 흐믓해지고 푸근한 공간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의 과정을 통해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내용의 근무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클은 나중에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소매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 비즈니스'였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연륜과 성품을 더해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브로드웨이 점에서는 처음으로 본사에서 보낸 '비밀고객(일종의 암행어사)'에 의해 별 다섯의 최고점수를 받는다.

  또 하나 주목한 것은 엘리트 출신의 64세라는 노인이 흑인 젊은이들을 '파트너'로 삼아 주급을 받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근무하는 마이클이 심적으로 갖는 갈등부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난데...'라며 지난 날의 영화를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갈 법한 마이클은 '새로운 도전'에 감행하고 젊은이들과 생활하면서 '제 2의 삶'을 살게 된다. 취직하지 않았더라면 흑인에 해괴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을 살필 리 없는 백인의 노인은 그들과 파트너가 되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졌던 생각들이 '지극히 단순하고 오만한 편견'이었음을 알게 된다. 스타벅스에서 근무하면서 잘 나갈 때 친했던 친구도 만나고, 자식들을 살피지 않는 아버지라고 외면했던 딸들도 와주어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할 것 같았던 이들과의 만남이 오히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껏 자신이 살았던 삶 역시 자신만의 '편견'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에서 끝은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했다. 늙게 시작한 탓에 느리고, 서투르고, 힘들어 보이지만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노인들이 살면서 쌓았던 삶의 궤적 만큼은 젊은이들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훌륭한 서비스 정신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품성 좋은 노인을 매니저가 채용하는 '현장 채용 시스템'은 세계 커피 혁명을 일으킨 스타벅스다운 '사람 비즈니스'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다. 한 수 톡톡히 배웠다. 이 책은 한 해에도 수십 만의 업장이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소매 비즈니스는 '사람 비즈니스'로 발전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고객을위한 진정한 서비스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 맛이 최고라고 말하지도 않고, 다른 커피숍을 음해하지도 않는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의 이름 한 번 나오지 않고,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자화자찬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이클씨가 스타벅스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탄생한 것 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거꾸로 말하면 훌륭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한국에 있다면 제2의 마이클과 같은 한국사람도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이 땅에서도 탄생했으면 좋겠다.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많은 수의 스타벅스가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책을 낼 때만 해도 걸어서 스타벅스에 출근하고 있다는 마이클씨.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최고의 직업으로 여기는 만큼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은 추호도 없다는 그가 아직도 근무를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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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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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결과는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그 중에서도 주목된 것은 영국 출신 재주꾼 대니 보일이 연출[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각본상, 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것.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미국 유명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를 본딴 인도 최대의 퀴즈쇼에 출연해 의외의 선전을 벌이게된 인도 빈민가 소년의 이야기다. 최근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비롯한 20여 개의 상을 흽쓸어 다음달 열릴 아카데미 상에서도 선전이 예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작품에 주목을 한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가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찾아냈다. 원작이 소설인데 지난 해 국내에 Q&A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인도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 소설로서 전세계 36 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던 <질문과 대답(Q and A)>을 대형 스크린으로 그려낸 코믹 드라마이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처녀작 치고는 너무나 잘 구성된 소설이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소설인데, 영화화되어 이렇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니 정말 반갑다. 사실 원작인 소설만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필자가  리뷰를 쓸 때 그 소감을 "인도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한 편의 영화같은 소설. 당신의 오감을 사로잡을 것이다." 라고 적은 바 있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아 기대가 되는 영화 [슬렘독 밀리어네어].

영화 100배 즐기기를 위해 영화에 앞서 소설로 먼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인도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한 편의 영화같은 소설.


당신의 오감을 사로잡을 것이다. 

 

십인십색十人十色. 짧게, 혹은 길게 인도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나, 인도를 아는 사람들의 평가는 저마다 다르다. 구도求道의 나라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요가yoga의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인도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천국이라고 평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한다.

대답하는 사람, 저마다의 입에서 나온 인도의 인상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나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것이다. 딱히 규명하기 어려운 어떤 '묘한 매력'을 지닌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볼 요량으로 인도에 대해서는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던 터, 지난 해에는 인도에 대해서는 가장 잘 설명된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도 전문가 두 사람이 쓴 책 인도 바로보기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한 여류작가가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엮어낸 이야기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우는 곳으로 정한 나라 인도를 맛볼 수 있었다. 단지 인도인의 인도소설이라는 매력으로 접하게 되었다가 그 어느 소설보다 훌륭하고 멋진 책을 만났는데, 바로 소개하는 이 책 <Q & A>가 그것이다.
 
인도의 최하류계층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인도의 어두운 세계 속에 살며 학문은 커녕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일자무식 18세 청년,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10억루피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걸린 퀴즈쇼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고, 동시에 체포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배움이 없는 그가 대학원에서 중세사를 전공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의 답까지 알게 되고, 마지막 문제에서 1루피짜리 동전의 힘으로 우승을 하기까지에는 그가 살아왔던 힘겨운 삶과의 투쟁의 나날들이 모두 녹아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발리우드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감성이 메마른 이들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권선징악의 단순한 교훈이 마음을 덥히고, 특히 중국의 이야기 못지 않게 과장된 그들의 이야기와 표현력이 대단히 시각적이고, 뮤지컬같은 배우들의 노래와 율동이 관객들의 '오감'을 충분히 적셔준다고 하는데, 천 루피에서부터 십억 루피까지 12단계의 상금이 걸린 퀴즈의 정답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면서 매 단계마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법률가로서 업무를 하면서 두 달만에 쓴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볼 수 없는 구성의 치밀함과 반전이 거듭되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만드는 글맛의 매력은 이 영화로도 제작중이며, 뮤지컬로도 올려질 예정이라는 뉴스를 당연스럽게 만든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실수와 실패로 얼룩진 우울한 나날이라고 평하는 어제들도 사실은 지금의 나를 지탱하게 만드는 힘을 받쳐주는 쓰라린 경험의 날들임을 이야기하고, 세상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이 무의미하지 않듯이, 우리의 삶 하나 하나가 의미가 있음을 전해준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기회가 오듯이, 준비하고 움직이고 있는 자들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을 고단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게 된다.
 
정직한 시선으로 뒤돌아 보자.
인생의 정답은 바로 나의 과거에 있을 것이다.

 


<영화 소개>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8 

 

 



 



 



  

 

 [네이버 영화의 홍성진 해설]에 의하면  이 영화는 별도의 스타배우없이 인도 배우들로만 출연진을 구성하였는데, TV <스킨스(Skins)>의 데브 파텔, 인도영화 <레이스(Race)>의 아닐 카푸르, <뉴욕, 사랑해(New York, I Love You)>의 일판 칸 등이 공연하고 있다. 연출은 <트레인스포팅>, <28일 후>의 대니 보일 감독이 담당했고, 인도촬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베니티 페어> 등의 여성 캐스팅감독으로 인도출신인 러브린 탄덴이 공동연출을 담당했다. 미국 개봉에선 개봉 6주차에 상영관 수를 589개로 늘이며 전국확대개봉에 들어간 주말 3일동안 305만불의 수입을 벌어들여 주말 박스오피스 8위에 랭크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도의 중심도시 뭄바이의 빈민가에 사는 18세의 고아소년 자말 말리크. 상금으로 2천만 루피가 걸린 인도 최대의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Who Wants To Be A Millonaire?)’에 참가한 자말은 모든 이들을 깜짝 놀래키며 최종 우승에서 한 문제만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쇼가 끝난 어느날 밤, ‘어떻게 길거리 소년이 이처럼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가진 경찰은 그를 사기 혐의로 체포한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말은 빈민가에서 살아온 자기 형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퀴즈쇼의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왔음이 밝혀지는데…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만장일치로 뜨거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시카고 선타임즈의 로저 이버트는 별 넷 만점을 부여하며 “숨이 멎을 듯 흥분되는 스토리는 애절한 동시에 유쾌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LA 타임즈의 케네쓰 튜란은 “2008년 최고의 복고풍 영화. 이 할리우드 스타일의 로맨틱 멜로드라마는 메이저 스튜디오에게조차도 울트라-모던(ultra-modern)한 방식으로 만족감을 선사한다.”고 치켜세웠으며, 뉴욕 포스트의 루 루메닉은 “별넷 만점으로도 부족한 영화…최근 내가 ‘마스터피스(최고걸작)’ 호칭을 붙인 영화들중 가장 오락성이 있는 영화.”라고 박수를 보냈다. 또, 뉴욕 매거진의 데이비드 에델스타인은 “대니 보일의 영화들중 <트레인스포팅>이후 스타일과 내용을 가장 생기넘치게 결합시킨 작품.”이라고 흥분했고, 보스톤 글로브의 타이 버는 “간단히 말하겠다. 당신이 오늘밤 무엇을 하든지 당장 취소하고, 이 영화를 보시라.”고 강력추천했으며, 월 스트리트 저널의 조 모겐스턴은 “영화계 최초의 글로벌화된 걸작(first globalized masterpiece).”라고 요약했다. (장재일 분석)


written by 홍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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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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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로드>속 주인공들, 우리 주위에 살고 있다!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무척'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뒤늦은 책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책은 한 권 마다 사람이요, 한 권 마다 이야기며, 한 권 마다 좋은 스승이라고 여겨진다. 최소한 서가書架에 꽂혀 있기만 해도 그 자체로 '나무들의 다른 모습'이어서 알지 못할 풍요로운 기분을 제공한다(풍요로운 기분만 느끼기엔 너무 비싸긴 하겠지만). 늦게나마 알게 되서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생을 사는 절반의 기쁨은 느끼지 못하고 죽을 뻔 했다. 일찌기 로마제국의 정치가 키케로"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는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책의 효용을 가장 잘 말해준 말 같은데 그의 말처럼 책은 음식이 되고, 오락이 되며, 지식이 되고, 위안이 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오늘 제대로 만들어진 책다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생긴 모양도 훌륭하고, 책을 쓴 사람도 훌륭하고, 책 내용 또한 훌륭한, '이게 바로 진짜 책이다'고 느껴진 책인데, 내용은 소설이다. 우선 책 자체를 살펴보면, 소설을 주로 펴내는 '문학동네'의 것이다. 갈색 재생지 표지에 타자기로 쓰여진 듯한 제목의 활자체가 잘 어울렸지만, 무엇보다 띠지가 훌륭하다. 암흑 속 여명때의 산을 보면 이럴까? 산 모양의 폭넓은 띠지는 스스로가 표지였다. 띠지를 벗기면 길 위에 선 남자와 아이가 손을 잡고 있다. 완벽한 설정이다.
  

작품 또한 훌륭한데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37개국에 출간했으며, 곧 영화로도 소개될 예정인데, 일흔이 넘은(그래서 더 훌륭하게 여겨지는) 老소설가 코맥 매카시Coemac McCarthy<로드 THE ROAD> 이다. 저자는 누군가?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서부의 세익스피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책 모양 , 저자, 이야기. 이렇게 세 개가 잘 맞아 떨어진 책을 자주 만나기가 좀처럼 힘든데, 그래서 그런 책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다.    
 

  이 소설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세상에 살아남은 부자父子의 고군분투鬪를 그린 이야기다. 희망도 목적도 없이 '살아남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우울하고 암울한 소설이다. 암흑으로 둘러싸인 잿빛 세상에 남겨진 남자와 소년이 지도에 의지해서 '길'을 따라 무작정 '남쪽'으로 걸어간다. 그들이 길을 걷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걸으면서 겪는 일들은 생활이 된다. 소년은 주로 묻고 남자는 주로 답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남자의 쉬운 대답은 무미건조하고 퍼석하지만 유일한 대화상대이고 사람다운 행동이기에 가장 많은 이야기가 담겼고, 그래서 진실이 담긴 듯 느껴진다.


  모두가 불타 버린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불타기 전 남겨진 것들을 찾아 입고 먹는 방법 뿐이다. 세상에 둘이라면 고독할 지언정 차라리 평화롭고 낫겠다. 알 수 없는 괴물에 쫓기고, 또 다른 살아남은 무리들을 경계하며 입고 먹어야 한다. 미래없는 내일, 갈수록 힘에 부치는 오늘나기. 낮에는 태양에, 밤에는 전등을 불빛 삼아 따끈한 커피를 보며 글을 접하는 내가 그들을 대하기가 머슥해진다. 저자의 실감나는 배경묘사는 그 세상속을 엿보듯 소름을 돋게 하고, 남자와 소년의 행색을 읽을 때는 머리와 등을 근질거리게 한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하는 생각이 여러 번이지만, 자살을 위한 권총 속에 든 두 개의 총알은 생존을 위한 저격용이 될 만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끈질기다. 그래서 사람인지 모른다.  


  소설이 애초에 남자 혼자였다면 어떠 했을까? 그는 자살을 선택할까, 아니면 혼자이기에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으려 애쓸까? 그에 대해 저자는 친철하게 혼자된 노인을 만나게 해 주어 답을 대신한다.

 
난 오랫동안 불을 보지 못했소. 그뿐이오. 나는 짐승처럼 살고 있소. 내가 뭘 먹고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을 거요. 저 아이를 봤을 때 난 내가 죽은 줄 알았소.
천사인 줄 아셨나요?
뭔지는 몰랐소. 그냥 다시는 아이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저 아이가 신이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그런 건 다 넘어섰소. 오래 있었거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당신도 알게 될 거요. 혼자인 게 낫소.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오. 마지막 신과 함께 길을 떠돈다는 건 끔찍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


사람이 혼자라면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기에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혼자 남아 사람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은 신도 살 수 없다니...신이 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일테다. 책이 말하는 대로 보이고, 느껴지고, 냄새가 났다. 내 눈에 펼쳐진 어두운 세상이 싫어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적도 있었다. 모두 읽고 난 다음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떠올르지 않겠다는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책을 덮고 느낀 한 마디다.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따뜻함과 풍요로움을 찾아 들어오는 퇴근길 지하도에 '그들'이 있었다. 등짝만한 배낭 두어 개와 두꺼운 골판지 몇 장, 올이 보이지 않는 담요를 들고 차가운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새카만 사람들, 노숙자였다. 그 속에 남자도 보이고, 소년도 보였다. 한 쪽 구석엔 홀로 된 노인도 있었다. 그들은 오늘을 살게 하는 한 끼의 무료식사를 위해 한 시간여 줄을 서며 낮을 보냈고, 밤에는 추위를 피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단지 모르고 지냈을 뿐, 아니 모른 척 했을 뿐 내가 사는 이 세상에도 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서는 자연이 사람을 버렸지만, 내가 본 지하도에 있는 그들은 사람에 의해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남자와 소년,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천재天災이기에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지만, 이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은 인재人災 다. 우린 오늘도 사람을 버리고 있다. 사람에게 버려진 그들에게 신은 존재할까? 신도 그들을 버렸을까?  캐시미어 스웨터에 양모 코트를 입고 서 있던 난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가져야 했던 걸까? 아님 패배자의 모습은 저 꼴일테다 각성하며 자리를 피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내일은 나아질 거라 희망을 안고 오늘을 보내고 있는 나도, 실은 우리는 소설 <로드> 속의 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넘어져 일어설 수 없다면 지하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가 되는 것은 죽는 것보다 싫기에 애써 쉬지 않고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둡고, 암울해서 읽기 거북하기까지 한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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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aaja 2009-02-13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멋진 소설이죠. 그러나 전 개인적으로 너무 반복되는 비슷 비슷한 상황에 질려버렸다는 .. ㅎㅎ 그래도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