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울로 코엘료와 삶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대학 1학년을 마칠 즈음 기말고사 직전 33명의 떼미팅(?)을 했더랬다. 이런 대책없는 사건을 치루리라고는 언감생심 생각도 없었는데, 술동무 동기녀석이 추천을 했고 학비의 1/5 정도의 장학금에 눈이 멀어 선뜻 수락했는데, 그 때의 선거공약이 '1 학년 40명 전원 떼거지 미팅을 주선하겠다'는 것. 지금 생각해봐도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술김에 한 소리인지, 아니면 떨어질 것이 확실해서 객적은 소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당치도 않은 공약때문에 압도적인 표차이(30여명이 참가했으니 표차이가 나봐야 얼마나 나겠냐마는)로 당선되고, 장학금을 탄다는 명목으로 엄마에게 그 금액만큼 선불을 땡겨 동기들에게 술을 샀다(학기를 마치자마자 군입대를 해서 장학금은 무효가 되었고, 땡겨 써버린 선불은 일병휴가때 막노동을 해서 갚아야 했다. 삶이란게 참 퍽퍽하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화장실 다녀온 놈'의 심뽀같아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게 못마땅했던 터라 난 꼭 지키기로 마음먹고 동기녀석 둘과 함께 어느 여전(여자전문대학)을 찾아가 강의가 막 끝난 유아교육학생들의 강의실을 급습해 '30명 단체미팅'을 약속받는데 성공했다. 미팅 당일 총참석 가능인원은 26명, 미팅에 굶주린 85학번 예비역들 7명이나 반강제적으로 참석해 졸지에 33 대 31의 단체미팅이 학교앞 6군데의 카페에 분산되어 치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커플이 된 사람들만 따로 모이는 2차 장소인 맥주집 '레벤브로이'에 30여 명이 찾아왔다. 주선자의 결말이란 늘 그렇듯 지갑은 텅텅 비고, 욕은 배가 터질만큼 먹고 한쪽 구석에서 허탈하게 커플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커플이 된 여학생이 수고했다며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짝이 된 파트너가 마음에 들었을까? 아님 나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책 이름은 '배꼽'.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오쇼 라즈니쉬가 쓴 책이었다.  

  책을 좀처럼 읽지 않았던 때라 선물받은 사실에 의미를 두고 책은 거들떠 보지 않을 법도 한데, 겨울방학 첫째 주에 입대영장을 받아 심란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고 방안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가 우연히 그 책을 '재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책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재미있고 짧은 우화를 소개하고 저자인 철학자가 나름의 멘토링을 던져주는 형식의 우화집이었는데, 생각조차 없었기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얻는 배움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았다. 당시에는 꽤 유명한 책이었는데, 속편도 출간되어 직접 찾아 읽을 정도(아마 책구매의 첫기억 같다)로 매료되었다. 훈련소에 입대할 때도 지니고 갔는데, 압수된 후에 잃어버렸다. 지금도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이야기에도 교훈과 삶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한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그런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번엔 인도의 철학자가 아니라 브라질의 히피 출신이 쓴 책이다. <연금술사>로 잘 알려진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저자가 1998년부터 2005년 까지 쓴 짧은 감상문과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삶과 죽음, 운명과 선택, 실연의 아픔과 사랑의 발견에 대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 책이 빛을 발하는 것은 저자가 경험하고, 들은 주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저녁식사후 편한 수다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한 시간을 전쟁치루듯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에게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철학자 같다. '인생을 제3자적 입장에서 관찰할 줄 아는 시간이 널널한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니던가? 젊어서 정신병원에 세 번 입원한 적이 있고, 히피생활을 했으며, 이름난 작곡자였다가 어느날 자신만의 멘토를 만나 산티아고를 순례하고 글을 쓰게 된 저자의 이력은 그에게 '남보다 삶을 줌인 줌아웃하게 하는 관찰력'을 준 것 같다(하늘이 내려준 문장력을 포함해서). 하나의 이야기에는 자신의 삶이 뭍어 있고, 자신의 시선이 꽂혀 있다. 지금껏 쓰여진 그의 책이 '자신을 뱉어낸 글들'이었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책인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그는 살아서 죽었다'였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을 걱정하고, 일을 멈추고, 중요한 순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늘 푸념하면서도 막상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미뤄온 전화통화를 더는 미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지금보다는 좀 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육신의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p 164)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삶 앞에 준비된 자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제 그녀와 진지하게 한 말과 같아 더욱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언제 죽을 지 모르기에 오늘을 당당하게, 후회없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오늘을 슬퍼하며 지내는 것은 불행한 것이라며 웃고 행복하며 살기를 일부러라도 찾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파울로 코엘료는 그런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아 힘이 솟았다. 이 책에는 답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던져 동의를 구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적 여유를 제공하고 있었다. 누런 종이에 검은 활자 몇 개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다니...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오쇼 라즈니쉬'가 생을 마감했을 때, 세상은 안타까워 했지만 인도국민들은 "그런 철학자들은 우리나라에 만 명은 넘게 있어서 그리 슬플 일도 아니다"고 뻐기며 심드렁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를 두고 엘리자베스 1세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했는데, 그럼 세익스피어는 오쇼 라즈니쉬를 능가하는 만 명의 철학자를 가진 나라보다 훌륭하단 말일까? 하는 바보같은 질문을 해 본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가 세상을 마감한다면 세상도 슬퍼하고, 브라질도 슬퍼할 것이다. 고전이 될 만한 작품들을 쓰는 저자들을 '내 생애'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책은 그런 기쁨을 또 한 번 만끽하게 해준 책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와의 대화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들의 청춘예찬
 

  옛날 강원도 산골에 너와집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새우젓장수와 봇짐장수는 가장 기다리는 사람중 한 명이었다. 지난 번 왔던 이후로 세상이 어떻게 되었고, 변했는 지 이모저모를 전해주는 유일한 소식통이었기 때문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등짐을 풀고 시원한 냉수 한사발을 들이킨 후 굵은 팔뚝으로 훔치고 풀어놓는 세상이야기. 그가 직접 봤는지, 들었는 지 알 수 없다. 세치 혀에서 쏟아지는 사건, 사고는 순거짓뿌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를 학수고대했던 산골사람들에게는 넋놓고 침흘리며 듣기에는 충분한 신선한 얘기들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이유는 듣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한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절 산골 사람들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 이야기꾼은 팔도를 떠돌며 물건파는 장사꾼들이었다. 

  지겨운 밥벌이에 하루를 보내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오늘날의 도시민들. 그들도 '소식'을 기다린다. 퇴근하기 바쁘게 TV를 켜고, 누군가가 떠드는 말과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듣기 좋던 싫던 새로운 이야기꺼리에 경청하고, 내 속에 접수하면 함께 나눌 사람을 찾아 휴대폰을 연다. 온전히 제 이야기만 해도 시원찮거늘 잠시동안 빌어온 남의 이야기를 놓고 흉을 보다가 제 속내를 함께 실어 보낸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뭐하고 지내?" 물을까 겁이 나서, 한달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 생활을 먼저 이야기하기가 뻘중해서가 아닐까? 

그럴 대상이 있다면 그나마 낫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절묘하게도 그럴 상대가 없다면 심심하고 헛헛해진다. 우리가 사람이 그립다고 느껴질 때는 어쩌면 공감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서다. 언제 어느 때이건 책을 펼치면 눈으로 듣고, 생각으로 대답할 수 있어서다. 그 중에서 이야기책이라고 하면 단연 소설이 으뜸이고,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은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들이다. 옛날엔 등짐장수에게서 이야기를 구했고, 오늘날은 소설가가 소설을 통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 타고 난 이야기꾼이 한 사람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전 세계(아무나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포함해서)를 떠돌며 이야기를 줍고 만들어 왔던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젊은이들에게 근질근질한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이렇듯 장황하게 글을 늘어놓은 이유는 황석영이라는 이야기꾼의 소중함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개밥바리가 별>을 읽었다.  

 


  소설<개밥바라기별>은 시작부터 화제를 몰고 왔다. 문제(?)작가로 알려진 중견의 소설가가 신문에 연재를 해야 걸맞을 법 한데 인터넷에 자신의 소설을 연재했다. 다 읽고, 스크랩하면 책이 안팔릴텐데, 인세는 어쩌실려고? 젊은이들이 호응이나 있겠어? 하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모든 것을 불식시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폭발적인 조회수를 연일 기록하며 연일 화제를 낳았다. 이 소설만큼은 그에게도 블룩(blook=blog +book)이 된 셈인데, 블로그에 연재되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책으로 발간된다면 독자들의 반응이 시들할 것 같은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자신이 애정을 갖게 된 것들을 직접 소유하고 이를 다시 만끽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개밥바라기별>를 애독했던 블로거들은 책으로도 그를 만나려했다. 그 결과 여러 매체와 단체의 2008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작가 황석영이 유준의 몸을 빌어 이야기한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사춘기부터 스물 한 살 무렵 월남전을 참가하기까지의 방황을 담았다. 여기서 최근 한국 문단에 불고 있는 성장소설의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세와 권력에 맞서 대항했던 식자들의 고민이 이제는 '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발전, GNP 향상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무시되어 왔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의 행복과 발전이 곧 사회와 국가로 발전하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작가의 말]에서 외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성장소설에 대해 '아마도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장이나 변화등을 다루기에는 근대화 기간 동안 현실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보다 주요한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 먼저가 아니라 모두가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사회로 발전함을 모두가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나'라는 일인칭으로 말하고 있다. 성격과 능력, 개성 모두 서로 다른 이들은 친구가 되어 서로를 지켜보고, 살피며 나를 키워가고 있었다. '나 스스로 소중함'을 주인공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한 시도 떨어질 수 없을 것 같던 친구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있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기에 '나의 행복'을 찾아야 함을 배운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되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실패할 지언정 도전하는 용기있는 행동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저자 역시 자신의 지난 청춘이야기를 빌어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작정해 둔 귀한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면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누구보다 거침없이 살아온 작가의 삶이어서 그의 조언에 신뢰감이 뭍어났다.  

  "책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일 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고 말씀하신 엄마의 충고에도 그가 소설가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소설 속에 뭍어 있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와 오감으로 느끼는 듯 하게 하는 배경묘사들이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던가? 소설 속에는 어린 날의 황석영이 서 있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추억했던 적 언제던가 기억조차 없던 필자의 청춘을 수도 없이 불렀다. 그 시절의 막연함의 답도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했다. 순탄치 만은 않았던 청춘이 무조건적 반항이 아니라 목표를 찾지 못했던 순수한 방황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필자의 청춘도 실은 '개밥바라기별'이 떠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오늘 하루를 살아감은 그 시절 방황에 대한 대답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춘예찬, 이 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
이요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은 에로틱한 사람도 로맨틱하게 만든다? 

  중학 시절, [하이틴]이라는 학생잡지를 즐겼던 때가 있다.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길래 열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잡지 한가운데 두꺼운 마분지로 만들어진 당대의 아이돌 스타들 사진은 책을 펴면 제일 먼저 봤던 기사였다.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등 세계 최고의 하이틴 배우들의 야릇한 미소는 사춘기를 막 벗어난 여드름투성이의 중등이에겐 울렁거리는 모습이기에 충분했다.

  잡지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있는 로맨스소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다가 우연히 읽은 후엔 과월호를 뒤져서 찾아 읽을 만큼 재미있고, 흡인력이 강했다. 통속소설을 난생 처음 읽은 느낌은 설탕맛을 알게 된 어린아이의 느낌이랄까?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커지는 듯한 놀라움 자체였다.

그후로 박범신, 김홍신, 이규형등 당시의 청춘소설을 섭렵했었는데, 어찌나 즐겨 읽었던지 읽어가는 소설 수에 반비례하는 학과성적 때문에 아버지의 몽둥이에 못이겨 결국은 소설읽기를 그만 두었다. 나의 통속소설에 대한 기억은 그렇다.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든 소설, 『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를 집어들었을 때 그 시절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에로소설계의 톨스토이’로 불리는 유명한 32살의 예쁘지 않은 노처녀 에로작가 오자인과 옆집남자 완소남 장호수. 그 둘의 만남은 우연치고는 얄궃기만 하다. 장호수의 직업은 배우이며 배경 또한 심하게 착한데, 그는 에로작가인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는 에피소드도 많고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풋풋하고 예쁜 사랑을 그려냈다. 박장대소보다는 신웃음, 감동보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읽는 내내 잔잔히 스며드는 설레임과 애틋함은 어린시절의 그때같아서 기분이 묘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주인공과 소설의 내용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어린시절과 달리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잘 될까?’, ‘나름 콘텐츠로 쓰이면 괜찮겠다’ 등 읽는 내내 잡생각으로 얼룩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가슴 저 깊이 꿈꾸는 로맨스가 있기 때문일게다. 

마치 60의 어머니가 인기리에 방영중인 “꽃보다 남자” 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에 맞춰 티비 앞에 최대한 가까이 앉으시고, ‘어머머...저를 어째!’ 등등의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세대와 나이를 떠나 모두에게 ‘꿈꾸는 로맨스’는 남아있을게다. 

전형적인 로맨스소설,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소설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 모음집...
 

  인류 최대의 관심사, 그것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로도 행복해지지만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랑을 할 때' 즉,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받고 있을 때(이 둘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나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 '사랑'하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겠다." 칠순 넘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살아 생전 늘 하시던 말씀이다.

   사랑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사랑은 무한정 오래지도 않은 듯도 하다. 무한하다고 말하고 또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설명할 길은 많지 않다. 사랑은 보이질 않아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대상과 유효기간을 떠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 보여 부러워진다. '이 사람은 누굴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하지만 전혀 부럽지 않을 때가 있다. 아예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을 때다.

  갈구하면 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려워서 오래 살수록 그만큼 소중해지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사랑'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운운하는 사랑이나, 시답지 않은 노래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도매급' 취급 받을까 두렵고, 입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퇴색되어버릴까 두려워 고백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슬픈 사랑도 있는데 '내가 느낀 사랑을 상대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려워(고백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사랑할 수 있었지만, 고백한 후 거절받았다면 그 후에도 사랑하게 되면 범죄자 취급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병이 날 만큼 앓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하지만, 사랑을 온전히 전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아무도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고, 온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은 정답이 없는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사람들도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어(말)에서 만큼은 소극적인 사랑을 한다. 알게 되고 자주 만나면 보통 '사귄다'고 느끼는 우리네와는 그들의 교제에는 '(나와) 사귀어 줄래(요)?つきあってください’(츠키앗떼 쿠다사이) 고백의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랑 愛あい이라는 엄연한 단어를 두고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는 '좋아하다'는 단어인 すきだ(스키다)를 사용한다. 우리는 '애인'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일본에서 그렇게 드러내놓고 愛人あいじん(아이진)이라고 말한다면 '불륜상대'를 뜻한다. 그래서 그들은 '애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라는 표현의 그(彼かれ・彼氏かれし) 라고말하고 그녀(彼女かのじょ)라고 표현한다. 그런 탓에 일본의 애정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속시원할텐데 쫄이는 듯 뜸들이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필자는 늘 답답하고 멍청하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색다르다' 혹은 '순수하다'고까지 생각하게 하는데, 필자가 일본소설과 일본영화를 즐기는 매력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드러내놓고 사랑을 말하는 일본 책'을 한 권 만났다. 혼자였을 때라면 '사랑? 흥, 그 따위 것은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 하며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結婚できない男'의 주인공 쿠와노 신스케(아베 히로시 분)처럼 빈정가득한 썩은 미소로 지나쳤을 테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 어느때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고 느끼고 있는 지금(필자는 연애중이다)은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다. 

  일본문학 특히 대학시절 그의 작품이라면 단편집까지 모두 찾아 읽었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중심으로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을 논하는 책인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전차남'같은 소설,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일본의 국민소설들도 소개되었다. 사이토 다카시의 <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이다. 원제, 恋愛力―「モテる人」はここがちがう 연애력 - (애인을) 가진 사람은 여기가 다르다 이다.  





  이 책에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이다. 그리고 이 소설들에 숨어 있는 사랑에 대해 '이제 됐다고, 배가 터질 것 같다고, 잘 먹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랑(상실의 시대)', '네가 내 안에 들어왔고, 그런 너를 내 안에 품었지만 네가 떠나고 싶으니, 잘 가라고 말하는 사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사랑했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죽고 없다는 것도, 결국 무엇 하나 끝나지 않는 사랑(1973년의 핀볼)' 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책을 쓴 것만 같았다. 

다른 책들도 소개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는 '발꿈치에 밀리고 발끝에 채이다 언젠가 세상 끄트머리로 밀려날 것 같은 사랑' 이 있다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속에는 '자신의 가슴 깊은 곳이 시큼해질 정도로 자신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는 사랑'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실화'이고, 오늘날 일본인의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사랑을 잘 표현했다고 하는 <전차남>에는 '화염방사기로 단숨에 숲을 태우는 게 아니라 한 그루 한 그루 묘목에 불을 붙여 나가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사랑을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텐데, 소설들을 이미 읽어 본 필자의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잘 표현한 문장들이라고 생각됐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우선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영화소개 프로그램'의 나레이터처럼 소개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결정적 사랑 장면'을 보여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의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설<상실의 시대> 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대화 장면를 살펴보자.

 

"더 멋진 말을 해줘요."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보드랍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 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이 장면에 대해 저자는 '끔찍하게 간질이는 것도 아니고 축 처져 느슨해지는 것도 아닌 적당하게 알맞은 정말 특별한 사랑의 언어'를 사용했다며 '봄날의 곰같은 사랑스러운 언어'는 실제로 이 표현이 광고 카피로 사용되면서 <상실의 시대>는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고 전했다. 하루키의 멋진 표현, '옳거니' 느껴지는 저자의 해설이었다. 

  게다가 이 소설의 여주인공 미도리가 '배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말해 줬던 '딸기 쇼트케이크, 때론 초콜릿 무스와 치즈케이크의 관계'도 소개되고, 드라이하고 쿨한 대사들의 대명사 <바람 노래를 들어라>, 부족한 사람의 넘치는 사랑을 이야기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녀의 사라짐은 육십 억 인류에서 보자면 분명 사소한 일이지만, 그녀의 없음으로 나 또한 육십 억 인류속에서 없어지는 것과 말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상처는 청춘의 한 그늘이라며 그 순간 느낀 모든 희로애락이 모두 사랑이라고 말했던 <전차남>의 명대사들이 소개되고 맛깔나게 해설되고 있었다. 일본문학 속에 숨은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웠다.  

 그 밖에도 <금각사>, <산시로>, <겐지 이야기>, <선생님의 가방> 등 유명한 소설들도 등장하는데, 읽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어 그냥 넘겨버렸다. 절반을 약간 넘는 양을 읽는 맛으로도 이 책은 제 값을 다했기 때문이다.

'남의 사랑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고 말을 하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말의 권위자라고 알려진 저자의 일본소설 속 사랑훈수는 '연애박사의 카운셀러'같았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이 명대사들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할 만큼소설이 소개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다시 추억하고, 명대사들을 음미하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랑을 주고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저자도 이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양한 모습, 다양한 상황의 사랑얘기를 통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애정소설을 말하는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신기한 필자는 이 또한 '사랑력' 때문이 아닐까 애써 변명하고 싶다. '사랑할 때는 누구나 시인詩人이 된다'고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벅차고 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들기에 뭉뚱그려 시詩라고 말했는 지 모르겠지만, 연애하는 이가 두근대고 울렁대는 연애의 감정을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정말 생기는 것 만은 확실하다. 새벽녘에 깨어 아침을 볼 때까지 궁싯대며 이 글을 쓰는 것도 필자에게 씌인 '시인의 욕망'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알 다가도 모를 것'이고, 그래서 표현하기는 아직 서툴고 힘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단숨에 세 권을 읽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식 하드보일드 소설!
 

  우리나라에서는 [코믹 작가]로 잘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 우리나라에서 그를 알게 된 소설들이 [공중그네]를 비롯한 일련의 코믹소설들로 이루어져 그렇게 생각될 뿐, 일본에서는 하드보일드한 스토리로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하기로 알려진 작가다. 갓 스물부터 스물 아홉까지를 이야기한 [스무살 도쿄]가 그렇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의 스토리가 옴니버스형식으로 엮어진 소설 [최악]은 소설의 진면보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전개와 눈에 보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문체로 세 권을 단 숨에 읽게 하는 매력을 지닌 소설,   [방해자]다. 원제는 邪魔 .
   

 

  어느 날 일본의 작은 시에 위치한 기업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전후로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그 사건에 연류되면서 얽히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사건에 휘말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세 주인공이 결국 한 사건에서 만나게 되는 전작 최악(最悪)의 사건전개방식에서 좀 더 복잡하고 세밀하게 진화하였다. 최악이 한 스토리를 위한 세 주인공의 결합이었다면, 이 소설에 소개되는 방화사건은 세 명의 스토리를 위한 발단 사건에 불과하다. 세 주인공의 이야기, 그래서 3권, 모두 1,000여 페이지에 이른다.

  열 일곱의 소년 유스케는 요헤이, 히로키와 함께 셋이서 늘 그렇듯 용돈벌이로 '아저씨 사냥'을 하다가 그들의 먹잇감이 '형사'인지도 모르고 접근했다가 동료는 팔이 부러지고, 자신은 턱을 얻어맞는 부상을 입고 도망친다. 그냥 재수없는 날이라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파트타임으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 쿄코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으로 인해 두 손에 화상을 입고 입원하자 혼란에 빠진다. 한편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계기로 본점의 아르바이트원인 고무라와 인권변호사인 오기와라와 함께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할인마트와의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사건에 연류된 남편에게 보이는 수상함과 근무하는 할인마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민감해지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7년 전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은 형사 구노는 동료형사 하나무라의 부정한 행실을 추적중이다. 잠복중에 '아저씨 사냥'에 찍혀 불량소년 셋을 혼내주지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질형사 하나무라는 소년들을 회유해 형사의 폭행에 대해 '피해신고'를 하게 해 위기에 점점 빠지게 된다. 

처음엔 아주 작았던 사건이 점점 커져서는 '모래귀신'처럼 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들고 마는 세 주인공, 그들은 사건의 본질을 발견했을 때는 이를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부정으로 얼룩진 기업의 뒷모습, 그리고 암흑과 결탁한 경찰 수뇌부, 노동인권을 빌미로 기업후원을 얻어내는 NGO들의 황동등 일본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소개하고 그 속에 끼인 작은 소시민들의 절망감을 스토리로 엮고 잘 접목시켜 독자로 하여금 동질감과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의 강점은 역시 심리묘사다. 우리나라의 추리소설가 김성종이 심리학자 못지 않게 인간 성향의 양면을 섬뜩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면, 오쿠다 히데오는 다면적인 인간의 심리를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작 [최악] 때와 마찬가지로 나이와 성별이 서로 다른 주인공들의 감정들을 제 캐릭터에 정확히 들어맞게 잘 표현되어 놀라웠다. 특히 가정은 방화범의 가족으로 몰리고, 자신 또한 기업인을 괴롭히는 공산당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사력을 다해 두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는 쿄코의 불안한 여성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이 소설이 남성 작가가 쓴 글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제목은 邪魔사마, 일본어로는 '쟈마'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몸과 마음을 괴롭혀 수행(修行)을 방해(妨害)하는 악마(惡魔)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귀찮은 것, 벌레'라는 뜻이기도 하다. '단체 속의 나'를 강조하는 일본사회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이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단어이면서도, 상대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기도 한 단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쟈마邪魔 였다. 대大를 위해서라면 희생해도 좋을, 당연히 희생을 해야 하는 소小, 개인들. 평범했던 그들이 손댈 수 없는 만큼의 큰 사건 속 중심이 된 이유는 그들의 뒤에 존재하는 세력들의 발전을 위해 '정치政治'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선악의 가름은 체제의 존립 앞에서는 애매모호해진다. 아니 체제 존립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이든 '선'이 되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억세게 운이 나쁜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였다. 정권에 따라 좌우익으로 나뉘고, 보고자 하는 시선에 따라 때로는 숨은 천사가 되고, 의도된 쇼로 보여지는 세상에 사라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체제 속의 쟈마邪魔 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방해자'인 것인다.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홀로 된 세상을 살기 위해 자전거로 도피하는 쿄코에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젊을 때는 자신만 위해서 살면 돼." 앞으로 자신을 찾아올 대부분의 것들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어지러운 고독과 자유일거라 생각하며 쿄코는 고독과 자유의 두려움을 안고 제 길을 떠난다. 캄캄한 미래, 하지만 저자는 안경 낀 형사 이노우에의 입을 빌어 비록 전부 조건부겠지만, 인간에게 미래가 있는 한 무조건 행복한거라고 말한다. 체제 속의 나의 행복은 신기루 일 뿐, 두렵지만 고독하고 자유로움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은 온전히 스스로 판단한 것일까? 혹시 남이 그렇게 여겨서 또는 남과 비교해서 그렇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방해자邪魔'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내 행복과 불행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고, 평가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했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할 만큼 흡인력이 강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이번에도 그의 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최악]을 필두로 이 소설을 통해 '코믹작가'라는 오명을 벗기고,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요구된다. 이러한 평가 또한 그에게는 방해자邪魔가 될 테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