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 우편기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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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전달하는 야간비행사의 고독한 사랑이야기
 
  깊은 밤, 적막이 짙게 깔린 깊게 늦은 밤. 잠 못드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한다.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저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에 빠져 있게 된다. 어느 즈음이 되면 어느 한꼬리에 매달리게 되는데 아예 자리를 잡고 깊이를 더하게 된다. 시간도 잊은 채, 내가 생각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런 적 없는가?
 
  밤낚시를 하면서 이런 적이 많았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에 매달리다 내가 원하던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깊이를 더하는...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밤낚시의 묘미는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해결해야 할 걱정이나 문제를 안고 낚시를 드리우고 상념에 빠져 있으면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 있는 것도 아니요, 세월을 낚다가 운 좋게 붕어라도 한 마리 건지게 되면 작은 기쁨도 맛볼 수 있기에 장비를 챙겨서 깊은 밤 속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억지로 찾지 않아도 그런 경험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야간경비원, 범인을 잡기 위해 잡복중인 형사, 야간비행을 하는 비행사... 정신을 놓는다면 큰 일을 당할수도 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이들이 자신들의 업무에 몰두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들이 글을 쓸려면 훌륭한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난 가을 읽은 소설 [이별을 잃다]의 작가의 직업이 형사인 것처럼. 오늘은 비행사의 이야기다. [어린 왕자]의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생텍쥐베리의 본격적인 첫 소설 [남방우편기]다.
 
 


 
"3만 명의 연인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게 바로 우편물이었던 것이다.... 연인들이여, 조금만 기다려라. 저녁놀이 불타는 가운데, 우리가 그대들에게 당도할 것이다. 베르니스 뒤로는 짙은 구름들이 회오리바람에 섞여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의 앞에서 대지는 태양빛 옷을 입고 있었고, 깨끗한 옷감은 바람에 너울거렸으며 나무는 대지를 두텁게 감싸 안았다. 돛은 바다에 주름살을 수놓고 있었다."
 
  우편물을 전달하기 위해 야간비행을 하는 자크 베르니스는 수많은 연인들의 마음이 담긴 사연들을 배달하지만 자신은 유부녀 주느비에브와의 이룰 수 없는 첫사랑에 괴로워하고 있다. 비행중에 일어나는 실제의 위험상황과 그녀와의 기억, 그리고 사랑에 괴로워하는 베르니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로 작가인 셍텍쥐베리의 직업이 비행사였던지라 저자가 소설 속의 주인공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다만 한 남자가 자신의 이루어질 수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진솔한 마음은 소설 전부에 가득 차 있다.
 
"지금이 몇시지?
시간은 왜 자꾸 묻는 걸까? 이곳에서의 시간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시골 간이역처럼 0시, 1시, 2시, 이렇게 뒤로 물러나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잡아둘 수 없는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늙는다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 하지만 허비해버린 이 시간, 무언가 다른 듯한 이 고요함, 아직도 조금 더 멀리 있는 듯한 는낌, 바로 그런 게 피곤함을 몰고 왔다."
 
  정작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지 못하고, 외로움이 너무나도 고독했던 나머지 품게 되는 사랑파는 여자에게서 피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느비에브에게서 떨어져 멀어져 가는 시간을 두고 하늘 위에서 흘러가는 지상의 풍경처럼 느끼게 된다. 하늘에 있는 그는 '정복자'라고 말하지만, 영원히  한 여성의 마음만 훔치고 있는 도둑이었다. 남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그 역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잊기 싫어서 인지 잊혀짐이 무서워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사랑과 그녀가 느끼는 사랑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가 말하는 관계라는 끈의 생명력과 골동품으로 비유된 숨은 본질의 깊이 또한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그가 겪었던 고독과 깊은 밤 하늘 위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만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르니스는 고개를 돌려 다시 길을 떠난다.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바보 하나가 크게 상처를 입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것을 알면서도 길을 떠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날 만큼의 난리가 있어야 하거늘 파리는 조용하다. 남자들은 죽을 만큼 사랑할 줄 안다. 하지만 가끔 자신이 만든 허상의 그녀를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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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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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퍼즐속에 감추어진 진실.
 
[목요일이 좋아. 어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2월 둘째 주 목요일을 전후하여 매년  다섯 명의 여자(시즈코, 에리코, 나오미, 에이코, 츠카사)들이 4년전 죽은 천재 소설가 '시게마츠 도키코'를 추모하기 위해 우구이스 저택에 모인다.  그들은 그녀의 죽음을 두고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추어 나간다. 자살인가 타살인가에 대한 그들의 의구심을 담은 그 퍼즐은 하나의 챕터가 끝날때마다  조금씩 완성된다.  퍼즐의 한조각은 저마다 다른 자신의 기억이며, 그렇게 하나하나의 조각이 모여 서로를 찾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마치 그들이 과거속에서 흩어진 서로의 기억을 더듬는것처럼.
 
  책을 읽으며 퍼즐을 맞춰가면서 함께 완성된 그림을 머릿속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짐작은 정확할수도 있지만 때론 의외의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 퍼즐 역시 한조각씩 맞추어가면서 그녀들은 짐작한다. 도키코는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된 것이라고. 제법 잘 맞아가는 퍼즐속에서 그녀들은 생각지 못했던 조각들의 등장에 당황해한다. 자리를 찾지못해 헤매지만 결국 그녀들은 수수께끼같은 이 퍼즐을 완성시킨다.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는 그들의 기억이 완성시킨 이 퍼즐은, 자신들이 그렸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으며,  다시말해 도키코의 죽음은 타살이 아닌 자살로 밝혀진다.  망상에 의해 도키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렸던 것. 혼자만의 기억이 아닌 얽히고 설킨 그들의 모든 기억이 밝혀낸 진실은 이 책을 덮는 지금의 순간까지 섬뜩하고 놀랍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탄탄한 구성에 대한 놀라움과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긴박감, 마지막으로 작가의 문체속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까지 이 모두를 단 1%도 세어나가는 것 없이 100%의 버퍼링으로 전하고 싶다. 기존의 온다 리쿠 소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 그래서 더욱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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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하지 않는다 - 강남 일급 룸살롱 대마담의 전략적 세상살이
한연주 지음 / 도서출판 다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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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대마담이 말하는 대한민국 남자, "푸대접받는 사람들".
 
  "매력 있는 남자란 자기 냄새를 피우는 자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무슨 주의주장에 파묻히지 않고 유연한 사람. 그러니 더욱 예리하고 통찰력이 있는, 바로 그런 자다. 매력있는 남자에게 건배!"
 
  도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또 다른 책 [남자들에게]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을 존경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남자들이여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인가.'라고 말하며 '매력있는 남자'에 대해 정의했다. 유연함과 통찰력을 갖춘 남자.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지금도 세계 최고의 매력남이라 불리는 이탈리안 남자만을 연구해온 그녀다운 정의다.
 
  남자들은 성공을 염원한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쥐고 세상을 내려보고 싶은 마음은 모든 남자들이 갖는 영원한 로망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저에는 '암컷에게 잘 보이고 싶은 수컷의 동물적 본능'이 엿보인다. 남자들은 성공이나 출세를 통해 매력남으로 거듭나고 싶은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한 남자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룬 것의 원인에 '내 여자, 내 아내'가 있는가 하면, 힘들게 이룬 막대한 부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뒤에도 여자가 있었고, 존경받는 사회지도층 사람들이 어느 날 '쇠고랑'를 차고 감옥으로 가는 것을 모습의 뒤에도 '가족, 내 아내'가 있다. 그 어떤 모습이든 남자의 성공의 이유에는 여자는 꼭 들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상이몽 즉, '남자들이 되고 싶은 매력남'과 '여자가 바라는 매력남'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정이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남자들이 매력남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사력을 다 하고 있지만 실은 '헛물'을 켜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생각하는 매력남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 답은 아마도 여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한동안 유명했던 책이 있었다. [(긴자마담이 이야기하는) 성공하는 남자, 성공 못 하는 남자]라는 책 인데, 일본의 번화가 긴자에서 회원제 클럽을 경영하는 마담 마스이 사쿠라가 술집에서 손님을 접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가 말하는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매력남들의 65가지 법칙을 이야기 한 책이다. 제목처럼 화려한 밤의 도시 '긴자'를 찾는 일본의 남자손님을 이야기한 일본 술집 마담의 이야기라 그녀가 말하는 '성공법칙'은 우리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접대부들에게만 사랑받는 남자'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 껄끄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비즈니스의 선상에 있는 '접대'문화가 남아 있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는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제법 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두 번 째 책 [(긴자 마담이 이야기하는) 성공하는 남자들의 화술]이 더 읽을만 했다. 이 책은 비록 얕은 수일지는 모르지만, 말주변이 없는 비즈니스맨들이 성공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갖춰야 할 화술의 테크닉을 41가지의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두 권 모두 마담이 지켜본 남자들, 직장인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손님들이 긴장을 풀 듯 넥타이를 풀고 웃고 마시며 술을 즐기는 모습은 모두 같지만,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을 쟁취한 남자들은 상사나 부하를 대하는데 있어 여성 못지 않은 배려심을 지니고 있음을 20여년 간 현장에서 손님들을 관찰하며 얻은 생생한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출판대국 일본에서는 '접대부'도 책을 낼 만큼 저자의 폭이 다양함을 알고 내심 부러웠는데, 지난 달 즈음 송숙희 씨가 쓴 [당신의 책을 가져라]를 읽던 중에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직업군의 저자들이 있다는 것을 예를 들면서 소개한 책들 중에서 '강남 일급 룸살롱 대마담'의 책도 소개되어 놀라웠다. 오늘 소개하는 책의 주인공 한연주의 [나는 취하지 않는다]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저자가 아가씨 숫자만 수백 명에 달하는 강남 일급 룸살롱의 대마담이 된 사연과 그녀의 직업세계 그리고 그녀가 보는 남자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인데, 두 명이 가도 최소한 백 만원의 술값을 내야 하는 최고급 술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어 자못 흥미로웠다. 언론의 르뽀나 뉴스로 조금씩 소개된 적도 있고, 많은 소설의 소재거리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자신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적어놓은 책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책의 내용은 '물장사'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저자의 이야기가 절반 정도, 나머지는 저자가 대마담으로서 업계를 주름잡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만의 생존방식과 마케팅을 담고 있다. 
 
"남자들은 치밀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작은 것에 쉽게 감동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여자들의 특성이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슴이다. 이런 소소한 감동 때문에 술을 마실 때 단골집을 즐겨가고 즐겨찾는 마담을 따라 다니게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 땅의 남자들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사는지 알 수 있다. 우리를 찾는 사람들은 다 그래서 사회에서 한 자리씩 하는 사람들인데도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섯 권의 고객 관리 노트에 2,000명의 단골을 관리하는 저자가 보는 대한민국 남성은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낯선 아가씨들과 최고급 술을 주문하는 것으로 갑甲 자신의 지위와 성공을 자축하지만 그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밤을 잊고 갑甲을 접대하기 위해 온갖 시중을 드는 을乙도 공존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엔 모두 안쓰러운 사람들이었다.
 
  지난 2004년 도입된 접대비실명제가 곧 폐지 될 것 같다. 접대비실명제는 영리법인이 건당 50만원 이상 지출한 접대비에 대해 접대상대와 접대목적 등을 기록해 업무관련성을 입증하는 경우에만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하는 제도인데 접대를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자는 말인지, 접대가 늘어야 대한민국 기업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말인지 의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영업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 접대하고 대접받는 안쓰러운 사람들'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은 확실하다. '밤의 꽃'이 말하는 우리나라의 '매력남'은 누굴까? 이 책은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손님을 두고 좋은 손님, 나쁜 손님, 그리고 특별한 손님을 구분하고 있다. 물 쓰듯 돈을 펑펑 쓰는 손님들이 대접받고 싶어 안쓰럽다는데 '매력남'은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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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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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영화, 더 멋진 원작소설. 파이트 클럽 !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를 즐기는 방법 중에 마음에 드는 영화가 원작이 있다면 원작 소설을 찾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영화를 보는데,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스토리의 영상과 감독이 의도한 바 대로 연출된 영화를 서로 비교해 가면서 나름대로 만끽하기를 즐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읽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소설은 일찌감치 소개되었지만, 최근에 영화로 제작되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고, 소설을 먼저 읽었다. 이제는 한가한 때를 봐서 영화를 봐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와 반대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는데, 원작이 소설인지 모르고 보는 경우와 우리말로 번역된 소설로 아직 소개되지 못했을 때는 어쩔 수 없다. 바로 이 소설이 이 같은 경우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먼저 소개된 것은 영화였다. 1999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엔 2000년에 소개가 된 위 소설의 영화는 당시 '최고의 섹시남'으로 등극한 브래드 피트와 [프라이멀 피어]에서 명배우 리차드 기어와 함께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살해범'역으로 주인공을 맡은 것만으로도 화제를 낳았던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 두 사람의 만남 만으로 개봉전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파이트 클럽]이다.
 
 



  이 영화는 군살하나 없는 멋진 몸매와 특유의 야성미로 뒷골목 파이터 타일러역을 유감없이 발휘한 브래드 피트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가 타일러를 만나 남성성을 찾아가는 잭역을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관객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연기로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영화였다. 나 역시도 이 영화만 몇 번을 볼 만큼 매료되었던 터라 '원작소설'이 나온 소식을 알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영화만큼이나 멋진 소설이었다.  
 
  수입 명품가구와 유명 메이커의 옷을 고집하며 사들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반복된 일상에서 공허함을 느끼며 살았던 잭은 어느날 특이한 인물, 비누 제조업자 타일러 더든을 만난다. 자신의 집이 폭파되면서 어쩔 수 없이 타일러의 공장지대의 버려진 건물에서 함께 동거를 하게 된다. 어느날 타일러가 자신을 때려달라는 부탁으로 시작해 서로를 때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데, 이제껏 찾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잭을 매료시킨다. 결국 이들은 토요일 밤마다 지하술집에서 일대일로 맨주먹으로 격투를 벌이는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단체를 결성하게 되는데, 하나 둘 씩 모이던 회원들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되면서 대도시 곳곳마다 지부를 결성하며 엄청난 단체로 거듭나게 된다. 
 
 

 
 
  마지막에 기발한 반전이 숨어있는 이 소설은 남성들의 잠재된 폭력성과 일탈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TV로 축구를 보는 것은 수동적 참가로, 축구경기의 관전을 소극적 소극적 참가라고 한다면 동호회 조기회등에 뛰어드는 것은 적극적인 참가로 볼 수 있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법에 제한되어 생각으로만 내재되어 있던 폭력의 적극적 참가는 비록 매주 토요일 밤 술집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작은 일탈은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와 비리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행동으로 옮겨진 생각의 다양성'과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우월감'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욕구들을 저자 척 팔라닉은 이 소설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시점의 전환은 너무나 빠르고 정신없어 혼란스럽게 하지만, 잭과 타일러의 정신상태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아 함께 동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단순히 싸움을 넘어 사회를 향해 저지르는 그들의 다양하고 다소 유치한 범죄들은 그마저 생각으로 밖에 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감을 던져준다. 타일러는 생각안에 갇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하기 싫은 일 일랑 버려버리고, 밖으로 나가 이성과 교제하고, 쇼핑을 하고, 욕하고, 싸움하며 세상을 향해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저 하나의 수치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다. 읽다가 보면 잭은 없다. 타일러 옆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나, 독자임을 알게 된다. 영화에 이어 척 팔라닉은 나의 숨어있던 남성성에 불을 질렀다. 마초적 냄새가 가득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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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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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만 사실은 눈먼 현대인에게 던지는 충격의 메시지!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내가 갑자기 눈이 먼다. '눈이 안보여'. 이것은 시작일 뿐. 원인불명의 실명은 마치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수도원의 비망록 Memorial do convento]으로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Ensayo Sobre La Ceguera/Blindness]의문표도, 느낌표도 없다. 따옴표도 줄임표도 없다. 단지 쉼표와 마침표만 있을 뿐. 빽빽하게 들어선 글자들의 단조로움으로 얼핏 보기만 해도 갑갑함을 느끼게 한다. 점자책을 읽는 시각장애인들의 답답함이 그럴까? 한 순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눈이 멀어버리고,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볼 수 있는 상황. 화자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함께 '눈먼 자들'을 목격한다.
 
 

 

 
 
의사의 아내는 말한다. "여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어요."
 
  '백색실명'은 마치 풍토병처럼 확산되며 사람들의 눈을 하얗게 멀게 한다. 예고도 없이 전염되는 이 질병의 원인을 찾기에 앞서 우선 실명환자와 그들과 함께 했던 보균자들을 수용시설에 넣어 별도의 병동에서 격리하게 되고, 수용되는 환자들이 수백 명에 달하면서 '백색의 어둠'을 겪는 그들은 시공감각을 잃어버린 채 끝을 알수 없는 수용생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겪으며 격리, 감금, 무질서, 폭력, 굶주림, 강간과 살인에 노출된다. 
 
"의사의 아내는 그곳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그런 행동이 경멸스럽고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98 면)
 
  하지만 저자는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은 패잔병 한 명을 남겨두고 모두 죽인 후 패잔병에게 "네가 본 것을 돌아가 모두에게 알리라." 고 말하는 듯 '의사의 아내' 한 명만이 '우유의 바다'에 빠져 부유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단죄'를 받게 되어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막판 인생'들의 최후의 목격자로 남겨진다. '눈먼 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마치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이 느끼는 잘린 팔이 있던 자리에서 느끼는 통각痛覺 처럼 '익숙한 것과의 결별'로 인한 상실감인 것을,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만다. 그런 그들을 보고 '의사의 아내는 '유령'이라고 말한다. 나머지 네 개의 감각으로 모두들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살았지만 그들은 죽은 것이다. 한편 '보이지 않는 고통'은 집단 군중심리와 인간의 자연적인 생활과 맞물려 또 다른 이름의 자유를 낳는다. 서로 먼저 많이 먹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고, 방귀를 뀌고, 잠자리를 가지고 다툰다. 한 자루의 총은 '권력'을 선사해 폭력과 갈취, 그리고 인권을 유린하는 강간이 자행해진다.
 
"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 우리는 으르렁 거리는 소리나 말로 서로를 알 뿐, 나머지, 얼굴 생김새나 눈이나 머리 색깔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 (85-86 면)
 
  그래서일까? 저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어쩌면 의미가 없다며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처음 눈 먼 남자', '의사', '의사의 아내',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소년', '도둑' 등의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 그 존재를 밝히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바로 '두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기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앞이 보였던 상황에서도 '두려워'했기 때문에 '백색실명'이 된 것은 아닐까 의문을 던진다. 이는 저자가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빠져 자기애고에 빠져버린 현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 눈 먼 채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의사의 아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선생님을 사랑하시나요. 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눈이 먼다면 내가 눈이 먼 다음에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그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무슨 감정으로 사랑을 할까. 전에 우리가 볼 수 있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도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눈먼 사람들의 진짜 감정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아직도 시작일 뿐이야. 지금은 그래도 우리가 가졌던 감정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 지금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데는 눈이 필요 없어." (354 면) 
 
  가까스로 살아남은 '눈먼 자들'은 도시에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서로 흩어지지 않고 아끼고 사랑하며 시골에서 살 것을 결정하게 되는 데 그 날 밤 '백색질병'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두려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버텨내려고 애쓸 때는 '눈먼 자들'이었는데, 서로가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그날 밤 다시 '눈뜬 자들'로 돌아간 것이다. 저자는 또 다시 '의사의 아내'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지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거죠."
 
 

 
 
  '안보인다는 것이 가장 괴로울 때는 꿈조차도 꿀 수 없다는 것이다'고 말한 선척적 시각장애인인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데도 '차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먼저 눈 먼 사람'처럼 놓칠까 잃을까 두려움에 떨며 사는 현대인의 눈에는 '꿈과 미래'에 대한 눈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보여준 '밀실'에서의 집단의 '후천적 시력상실'의 상황은 이런 꿈을 잃은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인간이어서 인간이 아니라, 인간다워야 인간이 됨을 보여주는 메시지 강한 소설이다. 저자의 메시지를 재확인하기 위해 이들이 눈을 뜬 6년 후의 모습을 그렸다는 [눈뜬 자들의 도시]를 찾게 하고, 글 속에서 그린 '눈먼 자들이 눈먼 사람들을 통지하는 정부의 모습'을 영화는 어떻게 그렸을지도 궁금해진다. 갑갑한 가슴을 계속 손으로 쓸게 하는 소설, 정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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