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퇴직자, 즉 부성적 질서에 의해 완성된 동굴 속 황제들은 쉽사리 변화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타협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직에서의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 없고, 취약한 가족 관계에서 친밀성은 강화되지 않는다. 경제적 자원 또한 이전과 같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믿어 왔던 가치와 삶의 일관성을 위협하는 일이다.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서사를 바꾸는 전략을 택한다. 퇴직자들이 서사를 축소하고 멘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표적 방어 전략으로 쓰인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변화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서사적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인 것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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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는 탈조직화하여 새로운 생활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퇴직은 여전히 공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퇴직자가 낯선 환경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들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같이 출근하던 공간이 사라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일과를 이제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혼란을 겪는다. 당연히 친밀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여전히 회사와 관련된 공적 관계망 안에 있으면서도 공적 존재가 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 P42

과거와 현재의 지위 변화는 퇴직자들이 무력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지시를 내리고 결재를 하는 의사결정권자로서 체화되어 있는 권위적 태도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수족이 되어 줄 부하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 일체리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던,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작 중요한 일을 발목 잡는 상황이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다. - P60

퇴직자들은 자신에 대한 주변의 대우가 재직 당시와 달라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달라진 대우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 P62

퇴직자들은 공적 영역이라는 삶의 장소가 사적인 영역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들이 체화하고 있는 공적 영역의 언어, 지위, 생활 습관, 권위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야기한다. 퇴직자들이 퇴직 이후의 삶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을 구성해 온 공적 영역의 요소들, 회사인간으로서의 특성이 한꺼번에 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무용지물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은 그동안 자신이 가정에서 부재해 왔음을 확인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 P66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을 한국보다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퇴직 후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면서 부인의 돌봄 노동에 의존하는 퇴직자들을 일컫는 ‘젖은 낙엽落葉‘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남편의 퇴직으로 인해 배우자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은퇴 남편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보도도 있었다. - P69

상급자가 되어 갈수록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도와주는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명령조의 언어나 정확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회사인간의 커뮤니케이션방식은 가족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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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오늘날의 사회적·생태적 위기의 뿌리에 금융통화제도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2

공식적 경제의 고작 2~3%가 실물경제를 반영할 뿐이고 나머지 거의 모두가 투기적 카지노경제로 쏠려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경제성장을 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실체(인간(노동), 토지(자원), 자본)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 P3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needs)를 위해선 충분한 곳이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greeds)에 대해서는 극히 불충분한 곳"이라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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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집단을 ‘회사인간‘ 이라고 불렀다. 회사인간이란 전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헌신이 조직의 성장,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고를 내면화한 조직 구성원을 의미한다. - P11

당시 일본의 회사인간의 세대적 구성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였다. - P11

출근하는 한 이들은 공적 사회 관계망을 유지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성취해야 할 목표는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소속된 회사와 직책을 밝히는 것은 곧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었다. - P12

기계형 남성이란 산업 사회의 이상적 남성상으로, 업무와 관련된 범위에서 장애물을 극복하려 하고, 공격적이며, 목표에 대해 승리 지향적인 인간이다. 이들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다른 기계형 남성과 내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 자신을 개방하거나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감정을 노출하는 것 등을 여성적인 특성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부한다. 여성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기계형 남성 사이에서 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형 남성이 되지 못한 남성은 권력의 훈육 중심 체제 속에서 처벌받는다. 기계형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개인 행동을 비교하고 구별 짓고 서열화하여 동질화하거나 배제해 버린다. 이른바 ‘정상화‘라는 미명하의 권력에 종속된 존재이자, 이 권력을 재생산하는 존재가 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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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목소리가 그의 양심 속에서 대답했다. ‘인간의 너그러움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 즉 남을 위한 속죄다.’ - P453

그리고 또 그는 자기 일생의 두 위기에서 자기를 연이어 맞아들여 준 것은 천주의 두 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집은 모든 문들이 닫히고 인간 사회로부터 배척당했을 때였고, 두 번째 집은 인간사회가 다시 뒤쫓기 시작하고 형무소가 다시 입을 벌렸을 때였는데, 첫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범죄에 빠졌을 것이고, 두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형벌에 빠졌을 것이다.
그의 온 마음은 감사로 누그러지고 그는 더욱더 사랑하고 있었다. - 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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