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두달째 그들이 편지를 압수하고 있다. 오늘 오후에 작업장에서 두리토가 자신의 감방 벽에 붙어 있던 복제화를 주었다. 그녀의 편지가 다시들어올 때까지 자네가 가지고 있어, 그가 말했다. 언젠가는 다시 들어오겠지. 오늘 밤 그 그림은 내 방의 거울과 오스트레일리아 지도 사이에 붙어 있다. 한밤에 감옥에 면회를 온 여인을 그린 조르주 드 라 투르 *의 그림. 죄수는자신의 감방 안에 앉아 있고 여인은 서 있다. 그녀가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촛불의 빛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서로의 소식이 너무 궁금한 두사람은 미소를 지을 생각도 못 하고 있다. 여인은 왼손으로 막 자신의 머리를정리한 직후의 모습이다.

* Georges de La Tour (1593-1652). 프랑스의 화가. - P156

이런 텅 빈 밤에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나면, 커다란 무언가가 내게 찾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야 누르, 사랑해요. - P183

우리는 절대 군인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랬더라면그들이 우리를 어디론가 끌고 갔겠죠. 탱크는, 우리 주위를 돌면서, 의도적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어요. 서서히 올가미를 조여 온거죠.
고양이들이 뛰어오르기 전에 어떻게 거리를 재는지, 어떻게 자기가 계산했던 바로 그 자리에 네 발을 한데 모은 채 착지할 수 있는지알아요? 그게 그때 우리들 각자가 해야 할 일이었어요, 계산 말이에요, 얼마나 뛰어야 할지를 계산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였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꼼짝하지 않겠다는 무서운결심을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의지력이 필요할지를 계산해야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필요한 의지력을 과소평가하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대열을 깨고 나가기 십상이죠. 두려움이 떠나지 않은 채 커졌다 작아졌다 했어요. 그 두려움을 과대평가하면 일찍 지치게 되고, 그러면 끝을 보기 전에 쓸모없는 존재가 돼 버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서로손을 잡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어요. 계산된 에너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 P194

당신의 편지를 자주 다시 읽어 봐요. 밤에는 안 읽죠. 밤에는 그편지들을 다시 읽는 게 위험할 수 있거든요.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일하러 가기 전에 그것들을 읽어 봐요. 밖으로 나가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보죠. 가끔은 지붕 위에 올라갈 때도 있어요. 어떤 때는 밖으로 나가 길 건너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기도 하고요. 거긴 개미들이 많아요. 그래요, 아직 많아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얼룩진 봉투에서 당신의 편지를 꺼내 읽는 거죠. 그렇게 읽는 동안, 사이의 날들이 기차의 화물칸처럼 툭툭 끊어진 채 스쳐 가요! 사이의 날들이무슨 의미냐고요? 지금 읽고 있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와 - P207

지금 사이죠. 그리고 당신이 그 편지를 썼던 날과 그들이 당신을 잡아간 날 사이이기도 해요. 또 교도관들 중 누군가가 그걸 부쳤던 날과 내가 지붕 위에 앉아 그걸 읽고 있는 날 사이이고, 우리가 모든것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런 날과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진 다음 그것들을 잊어버려도 되는 날 사이예요. 그날들이 바로, 내 사랑, 사이의 날들이고,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선로는 이백 킬로미터떨어져 있죠.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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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죽은 자의 운전 - 충돌실험용 인체모형 및 충돌한계라는 무섭고도 필요한 과학

아름답지는 않지만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사체연구의 결과가 가져온 변화 덕분에 지금은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벽에 정면으로 충돌해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1995년에 〈외상저널》에 실린 ‘부상방지에 대한 사체연구의 인도주의적 이익‘이라는 기사에서, 앨버트 킹은 사체연구를 통해 차량의 안전장치가 개선된 덕 분에 1987년 이후 매년 8,500명이 생명을 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3점 지지‘ 안전띠를 시험하기 위해 충돌장치에 올랐던 사체 1구당 매년 61명이 생명을 건졌다. 얼굴에서 에어백이 터진 사체 1구당 매년 147명이 정면충돌에서 살아남았다. 에어백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사망했을 것이다. 또 앞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사체 1구당 매년 68명이 목숨을 구했다. - P106

어린이 자료를 제외하면 인체 주요부분의 충격 허용한도는 이미 오래 전에 파악되었다. 오늘날 사체들은 주로 신체의 주변부, 즉 발목, 무릎, 발, 어깨 등의 충격연구를 위해 이용된다. 킹은 내게 이렇 게 말해주었다.
"옛날에는 큰 충돌사고를 당하면 대부분 영안실 신세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발목이 으스러졌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도 에어백 덕분에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거죠. 사고로 양쪽 발목과 무릎이 손상되어 다시는 똑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그게 지금 중대한 장애원인이기도 하죠." - P110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사체 머리에 꼭 맞는 흰색 두건이 씌워져 있다. 은행을 털려는 사람 같다. 팬티스타킹을 머리 위에 쓸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운동선수용 양말을 쓰고 나온 사람 같다.
매트는 노트북 컴퓨터를 내려놓고 루한을 도와 사체를 옮겨 자동차 의자에 앉힌다. 의자는 충격기 옆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루한의 말이 맞았다. 요양원과 같다. 옷을 입히고, 안아 올리고, 옮기고. 아주 늙고 병약한 사람과 죽은 사람 간의 거리는 짧은데다가 그 경계도 그리 분명하지 않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면(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그랬다) 노년을 죽음에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보게 된다. 늙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잠이 많아지고, 어느 날부터는 내내 잠자는 상태로 들어간다. 점점 더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앉히면 앉히는 대로, 누이면 누이는 대로 있게 된다. 노인들은 여러분이나 나와 닮은 만큼 UM006과도 닮았다.
나는 죽은 자들이 죽어가는 자들보다 더 대하기가 편하다. 그들응 고통을 받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사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한 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 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그게 쉬웠다는 말이다. 사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는데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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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rcise regimen 운동을 통한 다이어트

But Mom said if I wanted a weight set, I was going to have to prove that I could stick with an exercise regimen. She said I could do that by doing sit-ups and jumping jacks for two weeks.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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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죽음 이후의 삶 - 신체의 부패와 그 대처방법

대학교의 메디컬센터 뒤에는 다람쥐가 호두나무 가지에 서 조르르 뛰어다니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숲이 있다. 여기 저기 풀밭에는 사람들이 그늘에 혹은 햇볕 아래 누워 있다. 연구원 들이 그들을 어디에 내려놓느냐에 따라……
이 쾌적한 녹스빌의 언덕은 야외 현장연구소로, 인체부패만을 연구하는 세계 유일의 시설이다. 햇볕을 쬐며 누워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증된 사체로서, 과학수사의 발전을 위 해 말없이 저마다의 향기를 풍기며 기여하고 있다.
죽은 신체가 어떻게 부패하는지, 즉 어떤 생물학 • 화학적 변화단 계를 거치는지, 각 단계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환경요소는 이 런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잘 알수록 특정 시체의 사망 시간, 즉 살해된 날짜 또는 시간까지 좀더 정확히 추정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67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은 후 우리 몸을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픈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지 절단 같은 것의 이미지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은 내가 볼 때 가만히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한 장례식을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하기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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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여덟, 스물 나이에 전선으로 떠났다가 스물, 스물넷이 돼서돌아왔어. 처음엔 기쁨에 들떴다가 나중엔 무서워졌지.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데 뭘 해야 하지? 평온한 삶 앞에서 공포가 밀려왔어・・・・・・ 그새 다른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우리는 뭐지? 우리는우리의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우리가 아는 것도전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전쟁이었지. 한시라도 빨리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군용외투를 일반 외투로 고치고 단추도 다시 달았어. - P220

방수부츠를 시장에 내다팔고 구두를 샀지.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거울 앞에 서서도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는 거야. 4년 동안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 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끼리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시작했지. 30년이 지나서야.... 모임에 초대도 하고……………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받아야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했고 항상 보호해줬는데. 그런데 이 평온한 세상에서는 남자들의 그런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는 거야.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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