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넘버 포 - I Am Number Fou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는 어떻게 정의를 해야 할까. 영화 <아이 엠 넘버 포>를 보면서 자꾸만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와 지구를 외계의 악당으로부터 지키는 슈퍼맨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재밌는 건 슈퍼맨은 넘버 원을 상징하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존(알렉스 페티퍼 분)은 아주 처음부터 대놓고 자신이 넘버 포란다. 물론 그 말에 수긍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어느 정글 같아 보이는 곳에 은신하던 로리언 행성 출신의 넘버 쓰리를 모가도리언이라는 이름의 외계인들이 습격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바닷가에서 놀던 넘버 포 존은 발에 타는 통증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자신의 수호자인 헨리(티모시 올리펀트 분)와 함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아무도 모를 어느 곳, 오하이오주 패러다이스로 떠난다.

플롯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존은 로리언 행성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9명의 전사 중의 한 명이다. 넘버 쓰리까지 당했으니, 앞으로 남은 6명이 힘을 합쳐서 잔인무도한 사냥꾼인 모가도리언에에게 대항해야 한다. 다만, 신세대 젊은이답게 존은 은둔의 삶이 아닌 나름 달달한 사랑도 해보고 싶고 보통 청소년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물론 그의 수호자 헨리는 절대 허락하지 않겠지만.

패러다이스에서 이들의 은둔의 삶을 방해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새라(다이아나 애그론 분). 동네 청년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캐릭터다. 하지만 원치 않게 동네 노는 형들인 마크 제임스 패거리와 어울리게 되면서 좀 꼬이게 된다. 한편, 진짜 아버지를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왕따 소년 샘도 빼놓으면 안되겠다. 어느 영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종류의 사이드킥은 빠지면 안되는가 보다. 넘버 포 존의 뒤를 쫓은 정체불명의 오토바이 아가씨와 흉포한 모가도리언의 숨 막히는 추적이 시작된다.

DC코믹스의 만화 같은 <아이 엠 넘버 포>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달랑 넘버 포와 넘버 식스만이 등장했다. 앞으로 나올 캐릭터가 이 둘 말고도 넷이나 더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속편이 예정되어 있다. 단, 그 시기는 언제인지 모를 뿐. 외계에서 온 소년이 전사로 탈바꿈한다는 통과의례 같은 공식 외에 청소년들의 달달한 로맨스도 가미된 전형적인 오락물로 보면 될 것 같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도 등장했던 티모시 올리펀트는 수호자로 뛰어난 모습 대신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 인질이 되어 모가도리언의 일격에 당하는 단발성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의 역할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존이 플로리다에서 남긴 온라인상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장면이었다. 물론 거의 전지전능한 능력의 헨리도 바닷가에서 존이 찍힌 영상만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 흔적을 따라 넘버 식스와 모가도리언들이 존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비스틀리>에서도 잘생긴 훈남으로 등장했던 알렉스 페티퍼는 <아이 엠 넘버 포>에서도 비슷한 이미지의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냈다. 이런 외모에 뛰어난 운동신경 그리고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미스터리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답답한 시골 마을을 떠나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새라와의 러브라인은 그래서 더 필연적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혹시 새라 대신 넘버 식스와 삼각관계로 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로리언 행성인들은 사랑에 한 번 빠지면 영원하다는 금언의 족쇄가 그들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 섬세하게 이런 장치까지 마련하다니 대단하다.

역시 전편보다 더 궁금해지는 속편에서는 로리언 행성인과 모가도리언들의 숙원 그리고 새로 등장할 다양한 개성과 능력의 나머지 ‘넘버’들이 기대된다. <아이 엠 넘버 포>가 가벼운 몸풀기였다면 속편은 본격적인 본 프로 상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 뮌헨 출신의 작가 다니엘 켈만의 책을 두 번째로 읽었다. 나와 그의 첫 만남은 들녘에서 나온 일루저니스트 시리즈 <나와 카민스키>였다. 그의 재기 발랄한 글에 반해 바로 후속작인 <세계를 재다>도 샀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책을 사서 모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명예>를 단박에 읽었다.

1년 동안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발표했다는 <명예>는 소설과 사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특이한 구성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처음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작가의 포인트를 파악하는 순간 책은 오롯하게 독자의 수중에 들어온다. 사실 단편은 짧은 시간 내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므로 중견작가들도 부담스러워 한단다. 다니엘 켈만은 비록 짧은 작가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복잡하게 구성된 단편 모음집을 성공적으로 완성해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어느 사이엔가 일상이 되어 버린 작금의 세태를 다니엘 켈만은 냉정하게 꼬집는다. 현대 문명의 이기들은 모두 소통을 위한 도구들이지만, 도구가 사용자의 경계를 넘어서 버린 상황에 대한 풍자가 <목소리>에 담겨 있다. 자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 휴대전화로 자꾸만 엉뚱한 사람인 랄프를 찾는 전화가 오면서 주인공 에블링은 점점 랄프라는 사나이의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 다음 단편에서 소설가 레오 리히터는 최근에 사귀게 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국제 분쟁지역을 누비며 구호활동을 하는 엘리자베스와 강연여행을 떠난다.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고, 글은 언제 쓰며 자신이 그의 작품을 어느 순간에 읽었는지 끊임없이 읊조려 대는 독자들의 성화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중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대신 보낸 마리아 루빈슈타인은 비자가 만료된 상황에서 여행가방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마저 잃어버린 상태에서 어느 농가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으로 전락한다.

첫 단편에서 등장했던 랄프는 유명한 영화배우로 다시 다른 단편에 재등장한다. 이번에는 에블링이 아니라 진짜 자신으로. 문제는 자신의 삶을 어느 대역 배우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편에서는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가 연상됐다. 행복을 일상으로 누리는 이는 불행의 나락에서 비로소 행복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피곤한 진짜 배우의 삶 대신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누리던 인기와 재산까지 모조리 사라져 버리는 건 원하지 않겠지?

소설 속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가 좋아하는 미구엘 아우리스토스 블랑코스의 온 힘을 다한 글쓰기에 대한 묘사 역시 일품이다. 공기가 어둠을 잠식해 가는 동안에도, 석양의 불길이 사위어 가는 동안 땀에 푹 젖을 정도로 열정을 다해 수녀원장에게 답장을 쓰는 미구엘과 창작의 고통을 공유하는 다니엘 켈만의 이미지가 현현되었다. 각각의 다른 이야기의 연결이 되는 단서를 찾는 재미는 켈만식 보물찾기의 변형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은 <토론에 글 올리기>와 그 다음 편인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다. 두 편에 잇달아 등장하는 키보드 워리어 몰비츠는 전형적인 인터넷 중독증 환자다. 잠시라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지 않으면 불안에 시달리는 그는 무려 만 개나 되는 포스팅의 보유자다. 사루만 같은 보스에 의해 강제로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회의가 열리는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레오 리히터의 소설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다.

보스 사루만의 이중생활을 그린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가는지>는 최근 외도를 시작한 한 남자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부인과 애인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의 스릴넘치는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거짓말을 한 번 하기가 어렵지 일단 한번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달리게 된다는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멀쩡한 몰비츠를 죽이기도 하고, 동명이인으로 조작하는 장면에선 우리나라 직장인의 변명과 겹치기도 한다.

다니엘 켈만의 <명예>는 읽을수록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 차곡차곡 쌓인 단서들은 뒤로 갈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듯이 단편 간의 전후좌우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면서 초반의 시큰둥했던 반응은 사라지고 어느새 열기를 띠기 시작한다. 작가가 치밀하게 짠 플롯에 반응하면서 <명예>의 공통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소통과 교감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즐거움은 가상세계와 현실의 복잡한 변주곡일 뿐이다. 단편 모음으로 이렇게 멋진 작업을 완수한 다니엘 켈만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론드 1
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강성희.송기철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이스 캐럴 오츠.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그리고 필립 로스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미국 출신 대가를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블론드>로 처음 만나게 됐다. 아직도 미국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자 사랑의 여신 그리고 그녀의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뉴욕 지하철 위에서 바람에 부푼 흰색 드레스를 부여잡은 그녀의 이미지는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조이스 캐럴 오츠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사랑의 여신의 신화에 도전한다.

우선 오츠 작가는 노마 진 베이커(마릴린 먼로의 본명)의 유년시절로 소설을 시작한다. 실재 인물로 주인공으로 했지만, 전기가 아닌 소설인 만큼 그녀는 사실적 바탕에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모든 이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이생에서 36년이라면 짧은 삶 속에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던 은막의 스타 마릴린 먼로의 내면세계를 해부한다. 수줍은 성격에 말까지 더듬고 항상 불면에 시달려야 했던 스타의 가족사로 시작한다.

엄마라는 말 대신 언제나 어머니라고 불러야 했고, 할리우드 영화산업계의 귀퉁이에서 은막의 스타들을 동경하며 언젠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노마 진의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글래디스 모텐슨은 나이 어린 딸에게 확실히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가난한 모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자동차에 휘발유를 채우고, 할리우드 명사들의 으리으리한 저택 순례에 나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종잇장 같은 글래디스의 정신이 분열하면서 어린 나이에 노마 진은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하게 된다. 실제로 노마 진은 여러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고 하지만, 소설에서 작가는 워렌 피릭 가정 하나로 축약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달랐다고 했던가. 어려서부터 예쁘고 귀여웠던 노마 진은 아름다운 아이에서 소녀로 그리고 여자로 성장한다. 고아원 시절 크리스천사이언스를 신봉했던 원장의 영향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애정의 외연을 확대하기도 한다. 노마 진의 양어머니 엘지 피릭은 그녀에 대한 남편의 뜨거운 시선과 뭇 남성들이 노마 진에게 던지는 추파의 의미를 파악하고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나어린 노마 진을 시집보내기로 한다.

“빅대디” 버키 글레이저와 행복했던 신혼은 꿈처럼 지나가고, 2차 세계대전 열병에 휘말린 미국의 여느 남성처럼 버키는 군이 입대한다. 이제 소녀에서 여자가 된 노마 진은 블레이저 가문에 들어가 사는 대신, 홀로 서는 삶을 시작한다. 전시에 남성 노동력이 부족해진 미국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급증하는데, 작가는 이런 사회상을 소설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어느 카메라맨에게 발탁된 노마 진은 미국의 후방을 지키는 여성 모델로 드디어 그녀가 어려서부터 꿈꾸던 할리우드에 진입하게 된다.

<블론드>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뤄야 하다 보니, 소송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법적 다툼을 피하고자 이제는 죽고 세상에 없는 노마 진을 제외한 인물에 대해서 가명을 써야 했나 보다. 노마 진의 첫 번째 남편 그리고 그녀가 관계했던 할리우드 제작자도 이니셜로 처리했다. 물론, 알려고 해서 위키피디아나 구글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바로 다 알 수 사항이었지만.

조이스 캐럴 오츠가 통속적인 소재로 글을 쓴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결국 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닌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책날개에도 나오지만, 남자만의 전유물처럼 그려졌던 광기와 폭력의 세계를 여성에게도 적용하는 작가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는 할리우드의 신화가 되어 버린 실존인물 마릴린 먼로의 빛과 어둠 그리고 역사의 빈 공간을 작가적 상상력을 채워 넣은 <블론드>는 어쩌면 조이스 캐럴 오츠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대공황, 전쟁 그리고 마녀사냥이 몰아닥치기 시작하던 할리우드에 대한 조이스 캐럴 오츠의 해석 역시 일품이다. 대공황 시기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 무엇이라도 팔아야 했던 시대의 아픔, 모든 것을 바꿔 버린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들썩이던 미국 남자들의 단면도 빠지지 않는다. 전후 공산주의 러시아와 대결하게 된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수호국가라는 미국에서 중세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매카시즘, “빨갱이 사냥” 열풍이 벌어진다. 스타가 되기 위해 요즘도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성상납이 그 당시에도 횡행했다는 사실에 입맛이 씁쓸해졌다. 남성권력이 지배하는 스튜디오 계에서, 어쩌면 아름다움은 재능이 아니라 고통의 원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화려한 은막의 세계보다 ‘정상’적인 삶을 갈망했던 노마 진이 할리우드에 적응하기란 난망한 일이었으리라.

<블론드> 1권에서는 노마 진이 우리가 아는 스타의 길을 향한 고난의 행진을 시작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평생 애정 결핍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의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지만,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았던 사랑의 여신의 개인사를 알 수가 있었다. 할리우드 진출 초반의 역경과 <아스팔트 정글>과 <나이아가라>를 통해 세기의 스타가 되는 과정이 그려질 2편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돌아왔다. 오래전 첫 번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만났을 때,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한 때 역사학도였던 나에게 유홍준 선생의 답사기는 남다르게 감회가 서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봄가을 답사 준비로 바빴던 시절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유홍준 선생의 답사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달랬었다. 우리나라 강역을 넘어, 북한까지 누빈 그의 활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다가 선생이 문화재청장으로 공직에 나서면서 그의 답사의 명맥이 끊긴 줄 알았다.

이번에 새롭게 쓰는 답사기는 옛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필두로 시작한다. 경복궁에 한 2년간 살았는데 그 시절에 바로 유홍준 선생의 답사기를 만났으니 이 어찌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복원공사가 끝나 모두 공개가 되었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아미산과 녹산 일대는 민간에게 개방되지 않았었다. 새로 단장한 답사기에서 아침, 저녁으로 누비던 경복궁 이야기를 유홍준 선생의 설명으로 듣자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그 시절에 아침마다 만나던 경천사지 석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되고 있는데, 왠지 갇혀 있다는 느낌에 애처로워 보였다. 새로 복원된 태원전 자리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태원전이 왕이나 왕비의 시신을 모시던 곳이었다고 하니 왠지 으스스해지기도 했다.

태조 이성계와 더불어 조선의 틀을 짠 삼봉 정도전이 설계한 서울, 그중에서도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법궁으로서 경복궁의 가치는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과는 그 스케일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진 몰라도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는 단연 우리나라의 경복궁을 따라올 상대는 세계에서 없을 것이다. 유홍준 선생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넘겼을 지도 모르는 다리나 계단의 석수(石獸) 조각에까지 세심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런 석물을 좋아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경복궁을 찾아 선생이 설명한 석물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첫 번째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그야말로 시대의 화두 같은 명언을 던졌던 유홍준 선생은 문화재 청장이라는 공적인 자리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의 실재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해준다. 언제나 그렇지만, 실재가 없는 이론은 그야말로 팥소 없는 진빵이리라.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후대에 복원을 위한 금강송 식수사업 같은 그야말로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은 문화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발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기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단연 “상수(上手)”일 것이다.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재는 특정한 대가가 아니라 나무의 달인, 시골 촌로나 만수산의 나물을 캐서 파는 할머니 같은 분의 총합이라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개발만능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애써 걷는 굽잇길의 미학을 노래하는 반교리 청년회원의 글은 독자의 마음을 참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유홍준 선생은 답사에서 아무래도 조각이나 공예보다는 건축물이 시각적 효과에 있어 월등하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예전에 탑이나 부도 하나 달랑 있는 폐사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으리으리한 가람이 들어선 고찰에 비해 너무 시시하게 보였다. 그래서 선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화두로 제시했을까? 아무리 폐허 같은 유적지지만, 선생의 인문정신이 곁들여진 유창한 설명을 좇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 속에 거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선생의 새로운 답사기를 읽으면서 가본 곳에서는 추억을 그리고 미처 가보지 못한 선암사나 거창의 수승대 정자 같은 답사지에는 언젠가 시간을 내서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선생의 답사는 가시적인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누구나 잊고 싶어 하는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벌어졌던 신원리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외래 성씨와의 조화로운 삶을 외래종 꽃인 코스모스에 대한 개인의 소회로 조근조근하게 풀어나간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5도2촌의 실질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제2의 고향 부여 외산면 반교리에서의 정착생활에 대한 글 역시 일품이다. 입으로만 하는 농촌사랑이 아닌, 실천이 병행된 선생의 삶에서 언행이 일치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았다면 과찬일까.

이 책을 통해 부여문화원 주최로 선생이 인솔하는 <부여답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찌감치 신청해서 이번 봄이 다 가기 전에 선생과 함께 부여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답사의 상수에게 한 수 배워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수작(秀作)을 만날 때가 있다. 프랑스 출신의 마리 사빈 로제의 <바보 아저씨 제르맹>이 그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 읽다가, 잠시 접어 두었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시도에서는 한달음에 다 읽어 버렸다. 그 정도로 놀라운 흡입력이 있는 책이었다. 마리 사빈 로제는 어른들을 위한 멋진 동화를 창조해냈다.

소설의 주인공 제르맹 샤즈는 마흔다섯 살의 백수다. 특별한 기술 없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는 낙에 산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뜻이 없었고, 남미 히바로 인디언 같이 유유자적한 삶을 꿈꾼다. 어머니 집의 딸린 작은 카라반에서 사는 제르맹은 욕설이 들어가지 않은 문장은 아예 상종도 하지 않는다. 일자무식이란 말은 어쩌면 이런 제르맹을 위해 존재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제르맹이 어느 날 공원에서 여든여섯 살의 마르게리트 할머니를 만나면서 인생에 획기적인 변신을 체험하게 된다.

공원에서 노니는 비둘기 세는 걸 취미생활로 하던 제르맹은 우연히 만난 마르게리트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마르게리트가 이십대 발랄한 청춘이었던가? 아니다. 스스로 문맹이라고 고백하는 제르맹에게 그녀는 그저 수녀처럼 보이는 고상한 늙은이였다. 마르게리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르맹은 자신이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되고 하나씩 치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렇다! 바로 이런 진솔한 대화를 통해 제르맹은 유년 시절 자신의 학업성취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 벨 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평생 아옹다옹하면서 보낸 어머니와의 관계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동시에, 지적 개발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올리게 된다.

마르게리트는 제르맹에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 주면서, 이 바보 아저씨가 별천지 같은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들어준다. 로맹 가리가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은 또 어떠한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에게 세상의 빛을 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결정타는 바로 나도 좋아하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었다! 아무래도 초짜 독서가에게 <새벽의 약속> 같은 장편은 무리였으리라. 짧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세풀베다의 책은 남미 인디언들의 생활을 흠모하던 제르맹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책 속에서 내가 읽은 책을 만나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자, 그럼 동화처럼 <바보 아저씨 제르맹>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히로인 마르게리트는 늙으면서 생기는 망막퇴화증이라는 병을 앓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좋아하는 책을 읽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 제르맹은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마르게리트를 위해 책을 읽어주겠다는 거다. 그동안 책은 늘 마르게리트가 읽어주지 않았던가. 소설에서 마리 사빈 로제는 자연스러운 롤 체인지로 타자와 자아의 위치를 재배열한다. 늘 수동적이었던 제르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위기 앞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변신에 도전한다. 제르맹과 마르게리트가 서로 교감하는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의 정점이다.

마르게리트가 준 선물인 사전을 더듬더듬 찾으면서 제르맹은 그동안 뜻을 모르고 있었거나 불분명했던 단어의 뜻을 곱씹는다. 작가가 선사하는 프랑스어 특유의 언어유희는 물론이고, 마흔다섯 살 제르맹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에 그만 푹 빠져 버렸다. 프랑스어를 알면 더 좋았겠지만, 능력이 달리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양념처럼 등장하는 여자친구 아네트를 비롯한 조조 저쿡, 쥘리랭, 유세프 같은 제르맹의 친구들의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가 없다. 제르맹과 마르게리트가 엮어내는 큰 줄거리에 감초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바보 아저씨 제르맹>의 여운 곱씹으려니 마르게리트를 통해 돈오의 경지에 다다른 제르맹의 말처럼, 산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