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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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전처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역시 읽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고전 중의 하나였다. 최근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제인 에어>의 개봉으로 새로이 그녀의 원작이 주목을 받게 됐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 대한 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 읽게 된 원작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 <제인 에어>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나 제인 에어다. 열 살배기 꼬마 숙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외숙모 새러 리드 부인과 세 명의 사촌형제의 구박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제인이 사는 게이츠헤드 장에서의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어린 제인과 리드 부인의 불화는 제인의 외숙부가 유언으로 남긴 제인의 후견부탁에서 비롯됐다. 제인은 리드 부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촌 존 리드와 한판 싸웠다가 혹독한 벌을 받기도 한다.

어린 제인은 결국 게이츠헤드 장을 떠나 로우드 학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지만, 그곳의 환경 역시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리드 부인으로부터 제인에 대해 좋지 않은 정보를 들은 로우드 학교의 운영자인 브로클허스트 씨는 제인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외톨이 친구 헬렌 번스를 만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발진티푸스가 대유행을 하면서 제인은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헬렌을 잃는다.

로우드 자선원 학교에서 6년은 학생으로 그리고 나머지 2년은 선생으로 지내면서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교육이라는 무기를 얻은 제인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다. 가정교사 광고를 통해 로우드 학교를 떠나 손필드 장에서 프랑스 꼬마 아델 바렝을 가르치게 된 제인. 손필드 장의 주인인 로체스터 씨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역경을 딛고 자주적인 인간형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손필드 장의 숨겨진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평범한 인생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바뀌는 극적인 전환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샬럿 브론테는 영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단면을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부모 없는 아이가 홀로 성장하기에 부르주아지 사회가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지, 부르주아지의 자선으로 운영되는 자선원 학교에서의 간소하고 소박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작가는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리드 부인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제인은 로우드 학교에서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진취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제인 에어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사랑을 찾게 되는 손필드 장의 생활을 통해 그녀는 재산과 계급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녀의 고용인이자 주인인 로체스터가 어울리는 상류계급 인사들은 가정교사인 제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장면은 이를 방증한다.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제외한다면 교양이나 프랑스어 실력에서 제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소위 숙녀들에 대한 위선과 허영을 샬럿 브론테는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비록 고용인와 피고용인의 관계였지만 로체스터 씨에게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제인의 모습은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아 소녀가 부자 주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연애담은 손필드 장에서 로체스터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손님으로 찾아온 리처드 메이슨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건을 거치면서 미스터리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제인은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던 손필드 장에 숨겨진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지만, 그 비밀로부터 따돌림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던 제인 에어가 무서운 인상과 묘한 표정의 주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변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미묘하게 바뀌는 제인이 느끼는 감정의 추이변화를 예리하게 짚어낸 묘사는 특히 일품이었다.

희비극을 오가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이 연애소설에서 샬럿 브론테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여성상을 창조해냈다. 특출난 외모도, 유복한 부모가 물려준 유산도 없이 위기마다 자력갱생하는 주인공 제인은 아무리 “슬프고 외로워도” 울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게 맞선다. 남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과연 이런 여성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당찬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저 그런 고전 스타일의 연애소설이겠지 하는 나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샬럿 브론테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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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혼 을유세계문학전집 37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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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러시아 소설에 대해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작년에야 비로소 읽을 수가 있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도 도전할 계획인데, 머뭇거리고 있던 차에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라고 불리는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을 주말 동안에 다 읽었다.

우크라이나 폴타바 부근 출신의 니콜라이 고골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 혼>은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죽은 혼>에는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전 유럽에 퍼진 계몽주의 사상의 전파는 물론이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새로 재편된 메테르니히 체제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어느 시대에서나 빠지지 않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야심가의 모험담이 전개된다.

그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직접 소설에 개입해서 독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주인공의 활동을 기술하는 고골의 작법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지방도시 N에 사륜마차를 타고 수행원과 함께 등장한 우리의 주인공 파벨 이바노비치 치치코프는 정중한 매너와 백만장자라는 소문을 등에 업고 일약 N 도시의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도시의 고위층이 다투어 그를 파티에 초대하고, 귀부인들 역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치치코프라는 이름의 귀족이자 6등 문관은 이상한 것을 매집하는데 정성을 쏟는다. 그것은 바로 죽은 농노다. 아직 근대화의 세례를 받지 못한 19세기 러시아에서 토지와 그에 예속된 농노는 사회 주류 기득권층의 물적 토대였다. 그들이 흥청망청 벌이는 파티와 산해진미의 음식들 그리고 파리에서 유행하는 최신 패션 따라잡기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귀족이 보유한 영지에서 나오는 소출과 농노의 노동이었다고 고골은 증언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농노도 아닌 죽은 농노를 치치코프는 왜 사는 걸까?

죽은 농노에게도 인두세를 부과하는 러시아 정부의 모순을 파고들어,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를 사들여 담보로 삼아 거액의 대출을 받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는 치치코프의 정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의 300쪽이 넘어가서야 비로소 고골은 독자에게 치치코프가 누구인지 소개한다.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재무국, 건설위원회 그리고 세관원이라는 요직을 거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전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작자를 선량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법의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치치코프를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극진히 대접하는 마닐로프, 무상으로 농노를 제공하다시피 하는 코로보치카, 어떻게 해서든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는 거래를 시도하려는 소바케비치에게서 농업국가 러시아의 현실을 엿볼 수가 있다. 치치코프의 사기 행각이 거의 성공할 단계에서 불한당 노즈드료프의 폭로 때문에 치치코프는 그만 나락으로 추락한다.

여기까지가 1842년에 발표된 1권의 주된 내용이라면, 1845년에 발표된 2권에서는 재기에 몸부림치는 치치코프의 활약이 그려진다. 2권에서는 종교적 귀의를 연상시키는 고골 만년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구제받지 못할 사기꾼의 길을 걷던 치치코프는 러시아 농촌 사회에서 건전한 영농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지주의 영향으로 한때 정직한 사업가의 꿈을 키우는 장면에서 기독교적 구원이라는 모티프에 영향을 받은 작가의 면모가 보인다. 하지만 악당의 선량한 주인공으로의 극적인 변신은 19세기 소설에서 무리한 시도였을까? 치치코프는 정상적 삶의 궤도로 안착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걷어차 버리고 미망인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유언장 위조를 시도한다.

19세기 러시아 농촌사회와 상류사회에 대한 고골의 사실적 묘사에는 당시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듯한 현장감이 흐른다. 치치코프가 찾은 시골 마을에서 돼지가 병아리를 냉큼 집어삼키는 장면에 대한 묘사나 치치코프가 사실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코페이킨 대위 아니 적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는 대중의 상상은 혁명과 계몽주의 사상의 전파로 어수선하던 시대상의 반영으로도 읽힌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처럼 코시카료프 대령의 계몽주의적 개혁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농민들의 반발로 무위로 돌아간다. 지식인이었던 고골은 이런 시도가 러시아 농촌사회에서 아직은 시기상조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고골이 세상을 뜬 후, 9년 뒤에야 러시아는 농노해방령을 선포한다.

한편, 나폴레옹과의 조국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민족주의 성향도 소설의 곳곳에서 엿볼 수가 있다. 유럽의 후진국으로 간주되던 러시아가 여러 내부의 모순에도 열강의 하나로 성장하던 시기에 프랑스 스타일로 대변되던 유럽문화는 동경이자 극복의 대상이었다. 상류층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국어인 러시아어보다 프랑스어 사용을 선호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고골은 건전하고 근면한 러시아적 가치와 노동의 신성함을 은근하게 강조한다.

2권에서는 소실된 부분이 많아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맹점이 있긴 하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당시 러시아에서 통용되던 다양한 관용적 표현은 확실히 주해가 없었다면, 현대의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미주보다는 각주가 더 보기 쉬운데, 미주 표시가 나올 적마다 책장을 뒤로 넘겨야 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지난달에 읽은 안톤 체홉과 이달에 읽은 니콜라이 고골의 책을 통해 그동안 줄기차게 괴롭히던 러시아 소설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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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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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진 선생의 장편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이달 들어 집중적으로 하진 선생의 책에 빠져 있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그동안 그의 책이 넉넉하게 출간이 돼서 당분간 하진 선생 앓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하진 선생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기다림>과의 만남은 황홀했다.

소설 <기다림>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진 선생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무지시에 사는 군의관 쿵린은 간호사 우만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린은 유부남이고, 특별한 이유 없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그를 인민법정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별거한 지 18년이 되어 자동으로 이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진 선생은 실제로 있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18년의 오랜 기다림 속에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린의 아내 수위는 시골 마을 어춘에서 병든 시부모를 봉양하고 딸 화를 홀로 키운다. 부모의 설득으로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지식인 쿵린은 전족을 한 시골뜨기 아내 수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발이 예뻐야 미인으로 인정받던 구시대의 상징으로 작가는 전족을 선택한다. 구습을 딛고 찬란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하는 신국가 중국이지만,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하진 선생은 꼬집는다.

이런 수위와는 대조적으로 직장인 군병원에서 만난 우만나는 젊고 건강한 매력의 소유자다. 첫사랑으로부터 시련을 당한 만나는 유부남 쿵린에게 마음이 끌려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한 쿵린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유부남이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만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하진 작가는 주인공 쿵린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심리에 대한 절묘한 묘사를 통해 가정도 지켜야 하고, 동시에 만나와의 사랑도 갈구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기술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은 오히려 해가 되는 걸까? 그래서 쿵린인 조강지처 수위와의 이혼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그저 ‘기다림’이라는 지극히 수동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어쩌면 쿵린과 만나에게 기다림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의 파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두 불량남녀의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하다.

결국, 쿵린은 오랜 기다림 끝에 수위와 이혼하고 만나와 새살림을 차리고 아이도 낳지만, 피곤하고 짜증나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내기 시작한다. 오랜 기다림의 세월은 만나와의 사랑마저도 휘발시켜 버리고, 린은 불타는 사랑보다는 평안을 더 선호하는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한다. 그리고 시골을 떠나 무지시에 새로운 삶을 꾸린 수위와 장성한 딸 화를 찾는다. 이 부분에서는 작가의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다는 유교적 사고가 읽혔다. 일종의 클리셰이라고 해야 할까?

<기다림>의 성공으로 하진 선생은 비로소 미국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과연 서구인의 눈으로 본 쿵린과 우만나 그리고 류수위의 삼각관계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한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간주되던 이혼이 이제는 일상이 된 마당에, 18년이나 기다린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잡히지 않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기루를 쫓던 이들이 마침내 그 사랑의 결실을 손에 넣었을 때, 남은 건 뻑뻑한 현실뿐이었다. 하진 선생의 담백한 문장이 엮어내는 소박한 삶의 비밀은 참 매력적이다. 그러니 그의 책에 점점 더 빠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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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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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백한다, 나는 책중독자다. 하지만, 굳이 톰 라비가 구분한 분류법에 의하면 장서광(bibliomania)이라기 보다는 애서가(bibliophilia)에 가깝지 않을까? 어쨌거나 모든 경제활동의 단위를 책값에 비유하고, 다른 비용에 우선해서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걸 보면 애서가와 장서광의 중간 정도에 어중간하게 서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보통 책에 대한 책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나만의 독서를 하기에도 바쁜 데 다른 이가 책에 대해 쓴 글을 볼 틈이 어디 있나 그래. 이 얼치기 애서가/장서광은 꾸역꾸역 그렇게 책을 사댄다. 애서가와 장서광을 나누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그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비슷한 증세의 책쟁이들과 항상 하는 말이 우리가 읽을 책이 없어서 책을 사냐는 자조적인 말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책이 없어서 책을 사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책을 사서 누리는 즐거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마니아적 기질의 장서광처럼 초판본이나 희귀본에 대한 애정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니 직접 책을 먹는다는 식서가 정도 되면 이건 중증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의 동지 톰 라비는 익살스럽게 유사 이래 책중독자의 다양한 면모를 유감없이 동지들에게 전달한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변호사 출신의 불라르의 책에 대한 욕심은 가히 환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책을 모았던지 그가 죽고 나서 시장에 풀린 책 때문에 한때 파리의 책값이 다 싸졌었다고 했던가.

할인판매를 하는 대형마트의 책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똑같은 찰스 디킨스의 전집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들이고, 온라인 구매로 아낀 돈으로 다시 책을 사는 책중독자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마냥 푸근해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펴드는 책중독자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흠칫흠칫 놀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이 세상에 나를 닮은 동지가 있군’하는 위로감 말이다.

톰 라비는 그런 위로뿐만 아니라 고수 사이에 통용되는 은근한 기술도 알려준다. 좀 있어 보이는 서가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 나무책을 만들었던 선인들의 지혜는 물론이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책을 임기응변으로 지어내 제 자랑을 일삼는 책중독자를 골탕먹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책중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발한 방법을 전수해준다. 책중독자를 위한 꼭 필요한 지침서라고 할까.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나 고대해 마지않던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책중독자들이 누리는 열락의 즐거움을 톰 라비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한다. 심지어 자신의 책중독을 진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도 은근슬쩍 제공한다, 멋지다! 대부분의 책중독자들이 그렇듯 부정의 단계를 피할 수가 없다. 어쩌면 솔직해야 할 책중독 테스트에서 결과를 예상해서 몇 개 정도는 슬쩍 피하는 센스를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끄트머리에서 톰 라비는 언제부터인가 유사 이래 계속되어온 책의 존재를 위협하는 전자책을 소개한다. 책이 품고 있는 콘텐츠를 사랑하는 애서가에게는 희소식일지 모르겠지만, 책 고유의 향기마저 사랑하는 책중독자에게는 비보일지도 모르겠다. 전통 출판시장에서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전자책의 도전은 거세다. 개인적으로 톰 라비의 말마따나 전자의 움직임으로 구성된 전자책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속한 구매와 편리성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구식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책이 마음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두꺼운 책을 읽어가며 남은 분량을 가늠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전자책에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진짜 책중독자가 느끼는 죄책감에 대해 톰 라비는 멋진 면죄부를 발행한다. 결국, 어떻든 간에 우리의 증세는 고칠 수가 없단다. 그러니 책을 사고 읽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낌없이 책을 사라는 것이 톰 라비식의 화끈한 처방전이다. 고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겨야 하는 걸까?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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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
체 게바라 지음, 김홍락 옮김 / 학고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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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최후를 다룬 글을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리더스다이제스트는 예상대로, 혁명수출을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볼리비아에서 무장 게릴라 활동을 벌인 공산주의자 체 게바라의 약식재판도 없는 처형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서술했다. 모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고려한다면, 과연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으로 지난 세기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칭송받은 인물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다년간 외교사절로 활동한 김홍락 볼리비아 대사의 세심하면서도 유려한 번역으로 만나게 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어느 혁명가의 최후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게 해주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볼리비아 일기>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게릴라 전사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1966년 11월부터 이듬해 10월 볼리비아 유로계곡 전투에서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처형되기 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쿠바에서의 성공 후, 어떻게 보면 전 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인민을 해방하겠다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호응하는 열혈 혁명전사로 거듭난 체는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를 다음 혁명의 전초기지로 결정한다.

쿠바에서의 게릴라 활동이 체의 생애 가장 빛나는 성공의 순간이었다면, 볼리비아에서의 그것은 역설적으로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육필로 쓴 볼리비아에서 일기에는 무장 게릴라 투쟁 성공에 대한 확신과 30대 후반 게릴라 전사의 신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외부와의 연락 두절,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반목, 현지 농민 계급의 밀고 그리고 식량 부족으로 인한 끝없는 보급투쟁의 과정은 볼리비아에서 체의 실패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온다.

바티스타 독재정권 타도와 외세축출이라는 뚜렷한 목적으로 투쟁의 대오를 이뤘던 쿠바에서와는 달리, 나름대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된 바리엔테스 정권의 토대는 체 게바라와 마닐라(쿠바의 암호명)의 예상과는 달리 강건했다. 게릴라 활동의 필수적인 민중의 지지와 지원도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헤게모니 다툼도 한몫했다. 설상가상으로 쿠바, 볼리비아, 페루 같이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체의 게릴라 부대는 활동 초기부터 불화와 반목으로 지도자 체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그들이 주로 활동하던 리오그란데 강 유역의 정글의 기후와 지형에 적응하지 못한 게릴라 부대는 그 지역 농민의 길 안내에 의존해야 했고, 친정부적인 성향의 길라잡이들은 그들의 활동을 그대로 미국 군사고문단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전달했다. 식량이 떨어져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게릴라 부대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기강 해이와 부주의로 대원들이 희생되면서 이탈자도 속출했다. 한 때 정부군을 상대로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활약을 벌이던 체의 게릴라 부대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투쟁을 계속한다. 8월 말 바도 델 예소 전투의 패배와 호아킨 부대의 전멸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다가오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다.

번역을 맡은 김홍락 대사는 최후의 유로계곡 전투와 라이게라에서의 처형으로 갑자기 끝난 체 게바라의 마지막 일기를 친절하게도 에필로그와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참가했던 게릴라들의 약력으로 보충 설명해준다. 원래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생포할 때만 하더라도, 처형계획이 없었지만 그에 동조하는 세력의 준동을 우려한 볼리비아 정부는 복잡한 재판 과정을 생략하고 그를 처형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체와 그의 동지들이 꿈꾸던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꿈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대신 라틴아메리아 곳곳에서 우익 군사독재로 인한 부정부패와 쿠데타의 악순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게릴라 지도자답게,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냉정하게 매일매일의 사건을 기록하고 월말에는 냉혹한 평가로 자신과 혁명과정을 비판했다. 동시에 피할 수 없었던 동지들의 희생 앞에서는 문학가를 능가하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쿠바와 콩고에서 사선을 넘으며 투쟁했던 카를로스 코예요(투마)와 엘리세오 레예스 로드리게스(롤란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게릴라 지도자가 아닌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마지막을 맞았던 볼리비아의 라이게라와 리오그란데 유역은 이제 유명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최후를 맞은 체 게바라의 후광이 여전히 낙후된 지역에 살고 이들에게 비추고 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 다시 읽는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실패한 게릴라 전사의 마지막 기록은 그래서 더 멜랑콜리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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