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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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제국주의 시절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발언의 주인공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다. 이런저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었지만, 또 <베니스의 상인>은 처음인 것 같다. 2004년에 발표된 알 파치노가 부자 유대인 상인 샤일록으로 열연한 영화 버전을 봤는데, 이제야 원작과 만나게 됐다.

16세기 말 셰익스피어가 발표한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 세계에 상단을 파견해서 향료와 비단 사업을 벌이는 앤토니오에게 그의 절친 바싸니오가 벨몬트에 사는 아리따운 포오셔에게 청혼하기 위해 군자금으로 3,000 다가트를 융통해 달라고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당장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던 앤토니오는 자신의 신용을 걸고(요즘 식으로 하면 신용담보대출 정도가 되겠다) 천하의 수전노 유대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이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이 건 계약위반 시 조건이 해괴하다. 앤토니오의 신체 부분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살 1파운드를 달라는 거다. 나름대로 사업에 자신이 있던 앤토니오에게 3,000 다가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흔쾌히 이 조건을 수락한다. 하지만, 신화에 등장하는 금기가 모두 깨지게 되어 있듯 앤토니오의 계약 역시 위반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 해협에서 그리고 트리폴리스와 세계 각국에서 베니스로 향하던 앤토니오의 선박들이 모두 침몰한다. 자, 이제 위기다.

한편, 두둑한 군자금을 얻은 바싸니오는 포오셔에게 구혼하고 수수께끼 같은 상자 뽑기 미션에 나선다. 금상자, 은상자 그리고 납상자 중에 포오셔의 초상화가 든 상자를 뽑는 것이다. 항상 이런 미션에게는 조건이 걸리기 마련인데, 상자를 뽑은 사람은 이후에 일체 상자 뽑기의 비밀에 대해 말하지 말 것과 이후 홀아비로 사는 약속을 해야 한단다. 거 참, 당대에 포오셔가 얼마나 대단한 신붓감인진 모르겠지만 가혹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샤일록의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미션을 무사히 수행한 바싸니오는 포오셔의 사랑도 얻고, 이제 법정에 서게 된 앤토니오를 구하러 나선다.

셰익스피어는 악마의 탈을 쓴 유대인 샤일록이 증오와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법정에서 공개 살인을 하겠다고 칼날을 가는 장면까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고리대업을 통해 이윤(이자)을 얻는 행위를 극도로 경멸한 당시 시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즘처럼 금융업이 발달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게 작금의 세태가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잉태된 반유대주의의 유서 깊은 증오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앤토니오는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 역시 거리낌 없이 샤일록을 모욕하고 저주한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 파렴치한 캐릭터 이상의 혐오가 중세 이래 유럽에 뿌리내린 반유대주의와 공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윤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앤토니오와 그 친구들은 그렇게 얻은 이윤을 경멸하지만, 샤일록은 정당한 수익이라고 항변한다. 아직 근대적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베니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의 가치관 충돌일까. 당대에는 앤토니오가 승리했을진 모르겠지만, 현재라면 샤일록이 이겼을지도 모르겠다. 신체 포기각서가 횡행하는 마당에 그깟 살 한 덩이 쯤이야.

법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포오셔와 니리서는 자신들이 배우자에게 준 사랑의 증거인 반지를 교묘하게 얻어내 남자들의 맹세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조롱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이야기의 작은 반전이라고나 할까. 깨지지 않으리라고 목숨을 걸고 한 사랑의 맹세는 하나같이 깨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 신화가 보여주는 엄연한 사실을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앤토니오와 바싸니오의 묘한 우정도 관전 포인트다.

책을 읽으면서 란슬럿트 고보와 아버지 샤일록을 배신하고 로렌조와 사랑의 도피를 택한 제시커의 등장이 궁금해졌다. 후자야 샤일록의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어릿광대 란슬럿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희극으로 무대상연을 전제로 쓰인 만큼 관객의 웃음을 위한 장치였을까? 이런 모호함이야말로 셰익스피어 문학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학자의 연구 대상이 된 이유가 아닐까 추론해 본다.

위키피디아로 <베니스의 상인>을 검색해 보니 희비극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그런 분류가 이해가 간다. 희극과 비극을 한 드라마 속에서 저글러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대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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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돔 1 밀리언셀러 클럽 111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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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영화 <미저리>를 봤다. 주인공 캐시 베이츠의 열연에 반했던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들었다. 그 후에도 <쇼생크 탈출>로 다시 스티븐 킹과 만났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책으로 접한 건 이번 <언더 더 돔>이 처음이었다.

어느 작가보다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을 사랑하는 스티븐 킹은 자신의 고향 메인 주의 어느 시골 마을을 대작 <언더 더 돔>(2009)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다. 인구 천여 명 남짓한 체스터스밀 마을 지도까지 제공해주는 출판사의 섬세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지도 뒤에는 많은 주인공에 대한 깔끔한 정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긴 워낙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정말 눈에 띄는 건 “눈여겨볼 견공들” 목록이다. 자, 이제 이 대작과 만날 준비가 되었으면 스티븐 킹 작품 중에서 <스탠드>(1990)와 <그것>(1986)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는 <언더 더 돔>에 도전해 보자.

소설의 힌트는 표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체스터스밀 마을을 둘러싼 투명한 막, 그들이 부르는 돔으로 마을은 10월의 어느 날 갑자기 외부와 격리된다. 스티븐 킹은 외부와의 격리를 강조하기 위해, 간발의 차이로 마을을 탈출하는 데 실패한 주인공 데일 바버라(바비)와 불운하게도 투명 차단막이 내려오는 찰나에 그만 두 동강이 난 마못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돔이 생기자마자 연습비행을 하던 소형비행기가 돔에 부딪히고, 엄청난 속도로 마을 경계로 달려가던 트럭도 그야말로 ‘박살’이 난다.

“호러” 장르로 구분된 <언더 더 돔>은 대가의 역작답게 다양한 주인공이 엮어내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마을의 실제적인 지배자인 마을의장단의 부의장 빅 짐 레니의 아들 주니어 레니와 술집에서의 사소한 시비로 결국 싸움까지 다다른 요리사 바비는 조용하게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돔 때문에 마을에 갇히게 된다. 마을 의장인 앤디 샌더스와 사고로 죽은 경찰서장 하위 퍼킨스를 대신해서 서장직을 맡게 된 피터 랜돌프는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경찰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아들 주니어 레니와 그의 건달 패거리를 임시직 경관으로 임명한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빅 짐의 추악한 음모가 밝혀지는 가운데,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통적 구조를 통해 위기 상황에 빠진 인간 군상의 실제 모습을 작가는 냉정하게 그려낸다.

돔이 언제 사라질 건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가운데,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차단된 체스터스밀에서 연료(프로판가스)와 식량의 확보가 우선이라고 바비는 예언한다. 그의 예언은 나중에 푸드시티 폭동 사건으로 현실화된다. 빅 짐이 폭동을 선동하고, 무질서와 폭력을 제압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은 나치 지도자 히틀러가 독일국회 의사당 방화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쟁취하는 그것과 너무나 유사했다. 빅 짐이 채용한 얼치기 경관들은 1930년대 독일에서 폭력을 행사하던 나치 돌격대(SA)를 연상시킨다. 몇 세대 전 괴벨스의 선동정치를 베낀 것 같은 빅 짐의 행태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놀라울 뿐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선량한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살인도 불사하는 빅 짐과 주니어 레니 부자의 위선적인 모습은 갈수록 추악해지는 체스터스밀 마을의 이전투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마을의 공권력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면서, 연방대통령이 임명한 계엄 사령관 바비를 증오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살인누명까지도 씌워 사적인 복수의 제물로 삼으려고 한다. 아무리 비상상황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법절차도 무시한 채 “모두의 안녕을 위”한다는 말로 공공연한 공갈과 협박 그리고 폭력을 무고한 사람들에게 휘두르는 장면을 통해 스티븐 킹은 독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 올린다. 익히 알려진 대로 민주당 지지자인 작가의 양치기 소년 부시 정권에 대한 조소와 힐난이 소설 곳곳에서 눈에 띈다.

미국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4대째 마을 신문사를 운영하는 줄리아 셤웨이는 보수적 공화당 지지자이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바비 편에 서게 된다. 그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가짜 보수주의자 빅 짐과 대척점에 선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합리적 보수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잦은 총기 사고 때문에 뜨거운 감자처럼 언급되는 수정헌법 2조의 “무기 휴대의 권리”가 의미하는 잘못된 정부 혹은 정권에 대한 저항은 마을의 무소불위한 독재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빅 짐 레니에 대한 마을 주민의 자각과 그에 따른 반발로 형상화된다.

한편, 소설을 읽을수록 과연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돔”이 과연 어떻게 처리가 될지 궁금해진다. 바비는 조 매클러치, 노리 캘버트 그리고 베니 드레이크라는 마을 꼬마 삼총사에게 방사능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가이거 계수기를 들려서 돔의 정체를 파악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긴다. 마을 어른들이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약탈하느라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정말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 찾아 나선다는 설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2권을 다 읽기 전까지 이 책이 3권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만약 세 번째 권도 한 500쪽을 너끈하게 넘긴다면 정말 한 1,500쪽 소설이라는 건가? 엄청난 분량에도 책 읽는 재미는 가히 최고였다. 어서 빨리 3권과 만나고 싶다.

[뱀다리]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과 지명의 교정에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헤스켈 선생과 해스켈 선생은 다른 사람이 아닐 테고, 메사추세츠와 매사추세츠는 다른 곳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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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즈 예게른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915-1916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파올로 코시 지음, 이현경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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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홍구 교수님의 <역사란 무엇인가> 강의를 들었다. 한 교수님은 강의에서 역사가의 특정 역사에 대한 취사선택 그 자체가 역사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출신의 만화 작가 파올로 코시가 이 책 <메즈 예게른>에서 다룬 아르메니아의 슬픈 역사 그런 게 아닐까? 역사에서 과연 객관성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이미 파올로 코시는 아르메니아의 처지에서 대학살 사건을 피력한 게 아닐까 싶다.

히틀러와 나치의 유대인 절멸 계획이었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서구 문학과 언론에서 꾸준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세기 최초의 대학살이었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1915-1916)은 어떨까?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국의 일원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터키가 전쟁 중에 저지른 대학살의 비참한 실상을 파올로 코시는 만화로 순화해서 전달해준다. 당시 터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잔학행위를 숨기려고 했지만, 끔찍한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과 양심적 서구인들의 노력으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통해 인류사에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무슬림 국가 터키의 기독교 아르메니아인 탄압의 역사는 지난 세기에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술탄 압둘 하미드 2세가 통치하던 19세기 후반에도 계속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 청년 투르크당의 개혁으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탄압이 중지되는가 싶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 학살이 재개됐다. <메즈 예게른>에서는 전쟁에 아르메니아 자원병으로 참가한 아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과 소나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죽음의 행진에서 생존한 점을 극화화해서 당시의 불편한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당시 터키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던 국방장관 엔베르 파샤, 해군성장관 아흐메드 제말 파샤 그리고 내무장관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 3인방은 <아르메니아인 문제 해결>이라는 마치 나치 독일의 수뇌들이 모여서 합의한 <유대인 최종 해결>을 연상시키는 아르메니아인 조직 학살을 주도한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전멸시키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용의주도하게 집행했다. 파올로 코시는 당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잊고 싶은 과거를 성공적으로 재현해낸다.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에서 지울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독일 출신의 양심적 군인인 베르너 소위와 요하네스 렙시우스 같은 이들이 아르메니아인을 구하려는 노력도 빠뜨리지 않는다. 독일은 전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의 조상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했지만, 터키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메즈 예게른>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을 국가모독죄로 기소한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올로 코시 작가가 선택한 주제인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과거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좋을까?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공존이 과연 가능할까? 화해와 공존이 피해자에 대한 일방적 강요는 아닐까 하는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어쩌면 이렇게 짧은 책으로 모든 것에 대한 정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의 소개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을 다룬 첫 번째 책이라는 점에서 <메즈 예게른>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메즈 예게른>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의 출간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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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탄생 - 만화로 보는 패션 디자이너 히스토리
강민지 지음 / 루비박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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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의 강민지 씨가 그리고 쓴 <패션의 탄생>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명품의 역사를 엿보게 됐다. 그녀는 모두 26명의 근대 패션을 주름잡았던 디자이너들의 삶을 통해 그네들이 만들어낸 패션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는지 적확하게 잡아냈다. 사실 평소에 패션이 관심이 없다 보니 옷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지만, 패션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보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의 탄생>은 근대 패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티에리 에르메스와 루이 뷔통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구찌오 구찌처럼 에르메스는 마구상 제조업자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에르메스와 루이 뷔통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서 자동차로 여행하는 시대에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의 휴대용 여행 가방을 개발하면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패션은 단순히 보기에 좋은 옷뿐만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을 보이던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입지전적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화려한 칵테일 드레스 같은 오트 쿠튀르 전성시대를 지나 프레타포르테로 대변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패션 사업은 장인들이 한 땀씩 직접 손으로 바느질하는 가내수공업 스타일의 제작 방식에서 탈피해 대중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해야 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천재 디자이너와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도 같은 CEO의 결합은 필연적이었다고나 할까. 패션의 대중적 소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프랑스 전통의 오트 쿠튀르 지지자들에게는 불편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뛰어난 패션이라고 해도 홍보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저명한 디자이너와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스타와의 만남 역시 운명적이었다.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의 만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선전하는데 마다할 디자이너가 누가 있겠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프라다가 다시 한 번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를 통한 스타마케팅은 선택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전적인 방식에 비하면 캘빈 클라인의 도발적인 광고 시리즈는 좀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주류 패션 업계의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패션계의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가문의 내력인 것처럼 구찌 일가의 막장 드라마 뺨치는 불화, 적국의 장교를 사랑한 가브리엘 샤넬의 로맨스,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자유분방한 영국 펑크록의 기수였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에피소드는 매력 만점이다. 비교적 신세대 디자이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장 폴 고티에나 존 갈리아노의 등장 역시 흥미진진했다. 물론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로 최고의 위치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단박에 추락한 존 갈리아노의 예에서 보듯 아무리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도 하더라도 정도를 넘어선 행동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존 갈리아노는 프랑스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6개월의 실형과 3만 달러 상당의 벌금형에 처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치 장교와의 로맨스로 부역 혐의를 벗지 못한 채 조국 프랑스에 묻히지 못한 가브리엘 샤넬 역시 역사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패션의 탄생>은 뛰어난 구성과 강민지 씨의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에도 곳곳에서 보이는 사소한 오탈자와 부족한 역사 인식으로 책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전쟁이 끝난 건(크리스찬 디올 편, 150쪽) 1941년이 아니고 1945년이다. 전쟁이 1941년에 끝났다면 자유프랑스군을 이끌고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이끈 드골 장군이나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 바친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희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은이나 편집자의 꼼꼼하지 못한 감수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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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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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을 좋아한다. 루이스 세풀베다, 로베르토 볼라뇨 그리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전작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라틴문학으로 꼽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읽으려고 몇 년 전에 사서 서가에 꽂아 두었지만 선 듯 손이 가지 않았다. 그동안에 헥터 바벤코 감독이 연출을 맡고 라울 줄리아와 윌리엄 허트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도 봤지만, 원작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올해 첫날 처음으로 읽은 책이 됐다.

문학으로 출발한 이름부터 매력적인 <거미여인의 키스>는 영화는 물론이고 뮤지컬 그리고 연극에 이르는 장르 이종교배의 전범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감방에 갇힌 두 사나이(발렌틴과 몰리나)의 이야기가 참 연극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 바네사 윌리엄스가 타이틀롤을 맡은 뮤지컬로도 상연이 됐다고 하는데, 연극과 뮤지컬 모두 한번 보고 싶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힌 몰리나가 유물론자이자 마르크시스트 게릴라 투사인 발렌틴에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오래전에 본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구성을 따른다. 문제는 이 두 사나이의 성적 정체성이다. 몰리나는 전직 디스플레이어이자 게이로 예민한 감수성을 자랑한다. 그래서 그는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속의 정말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고 훌륭하게 묘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머리 스타일은 물론이고, 건물의 특성까지 놓치지 않고 청자인 발렌틴에게 전달한다.

한편,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아르헨티나에서 사회혁명을 꿈꾸던 혁명가 발렌틴은 투옥생활 중에 나태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며 책읽기와 공부에 전념한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한 영화 이야기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 몰리나에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발렌틴은 그저 망상에 빠진 개자식일 뿐이다. 그래서 정작 그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작품에서 평행을 달리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마누엘 푸익은 소설 속 영화에 등장하는 표범여인, 좀비여인 그리고 거미여인으로 대변되는 신화의 탈주술을 시도한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몰리나의 성적 취향처럼 정상적이지 못하다. 키스하면 매력적인 여자가 표범으로 변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부두교의 주술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뺨치는 좀비여인 이야기 그리고 거미줄로 남자를 옭아매는 팜므 파탈의 전형 거미여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실타래처럼 엉킨 변형된 성적 코드의 해석이 난무한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의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몰리나의 동성애 취향에 발렌틴은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주술적 사랑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면서 감방 동료 간의 동지애를 넘어선 금지된 사랑으로 전진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프로이트와 마르쿠제 같은 심리학자의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설명은 다른 두 영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치성과 대척을 이룬다.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에서 나치즘에 경도되는 여주인공은 탐미주의적 경향을 가진 몰리나의 페르소나였을까? 사회주의자 발렌틴은 나치즘의 선전물이라고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를 깎아내리지만, 몰리나는 영화의 정치성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남미의 부유한 바나나 농장주의 아들로 유럽에서 공부하던 주인공이 게릴라 투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에서도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냐 아니면 사회적 책임이 우선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을 거듭한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통을 원하지만, 보통 사람과 그런 소통을 경험해 보지 못한 몰리나는 생래적으로 그런 발렌틴의 시도를 거부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몰리나를 이해하게 된 발렌틴은 가석방을 앞둔 몰리나에게 (성적) 약자로서의 삶에서 탈피하라는 조언을 해준다. 결혼조차도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적 알고리즘으로 파악하는 유물론자의 사랑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게릴라 집단이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몽상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그런 투쟁이 뭐냐고 묻는 몰리나가 어쩌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가 실재한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몰리나의 상상 속에서 빚어진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몰리나는 중요한 부분에서 계속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시간을 벌고, 그 짧은 사이에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은 아니었을까? 몰리나는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의 간호를 위한 가석방의 도구로 거미여인처럼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거미줄로 발렌틴을 옭아맨 게 아니었을까? 그것은 마치 탈주술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술적 사랑에 빠져 자기 파멸의 길에 들어선 자아의 모습으로 치환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영화 버전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 영화를 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책읽기를 통해 보충하고 싶다고나 할까. 새해 처음으로 읽는 책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랑은 바로 그런 거야.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 <거미여인의 키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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