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71 | 372 | 373 | 374 | 37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 사이에서 속칭 왕따라는 소외 문제는 더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고질적 사회적 병리현상이 되어 버렸다. 교육의 전당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에서 촉발된 순위 매김에 아이들이 질식할 지경이라는 비명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나 홀로 살아남는 검투사의 투쟁을 배우는 극한에 내몰린 아이들의 일탈이 이젠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일본 출신의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는 가수활동도 병행하는 문필가라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이런 왕따 문제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중학교 2학년의 평범한 14살 소년이다. 아니 이미 소설의 주인공이 된 이상, ‘평범’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평범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시인 눈 때문에 학교에서 나름대로 잘 나간다는 니노미야 패거리에게 왕따를 당한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나를 괴롭히는 그들에게 저항할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나의 유일한 위안은 같은 반에서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비슷한 대우를 받는 고지마의 편지다.

여름이 시작되던 날, 달 뜬 마음으로 고래공원에서 만날 약속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이 어렵지만,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니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진다. 문자와 이메일이라는 편리한 방법 대신 편지라는 구닥다리 방법으로 오가는 나와 고지마 사이의 교류에는 다른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이너써클’의 미학이 숨겨져 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지마에게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꼬질꼬질하게 옷을 입고 다니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고지마와 남몰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비로소 삶의 낙을 찾는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최고 악당 니노미야가 분필을 먹이고, 배구공을 씌우고 인간 축구를 하다가 온몸에 멍이 들고 엉망진창으로 다쳐도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다. 피해자의 체념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처지의 고지마는 니노미야 패거리가 자신과 다른 나의 외모가 두렵기 때문에 그렇게 왕따를 하는 거라는 나름 의미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니노미야 패거리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통원하던 중에 그들 중 한 명인 모모세와 떨리는 담판은 피해자의 시선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에서 왕따라는 소외 문제를 바라보게 해준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타인과 어울려서 조화로운 삶을 살길 바랄 것이다. 니노미야와 모모세 같이 폭력적인 왕따를 자신의 자식들이 하리라고는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사실이라고 밝혀져도 끝까지 부인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그럼 도대체 괴롭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왕따와 집단 괴롭힘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서 자랄 나이의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책임은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가정은 이제 집어치우자. 그리고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게 가와카미 미에코의 주장이 아닐까 싶다.

나와 고지마가 꿈꾸던 “헤븐”에 안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최근에 나온 굽본좌의 정치 시사 화첩을 봤다. 만화라고 해서 쉽게 볼 줄 알고 달려들었다가 하루 저녁 내내 매달려 있어야 했다. 물론 시사인 온라인 버전을 통해 최근 열심히 보고 있지만, 2009년부터 보기에는 한계가 있어 책으로 샀다. 사실 예전에 <2차 세계대전> 편 첫 번째 권을 보고 나서 정통 역사물을 기대했던 바와 달라 한 번 읽고 나서 바로 책을 처분했던 기억이 났다. 좀 이른 총평일진 모르겠지만 2차 세계대전보다 이번 <본격 시사인 만화>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유시민 선생의 언급했던 역주행의 시대라는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 아침 어느 라디오 뉴스프로그램에서 남경필 의원이 지적했다시피 정부와 여당이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열심히 하면서 국민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건 난망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희대의 서브 컬처 패러디의 제왕 굽본좌께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가카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자신이 매주 연재하는 시사만화의 주인공으로 참 많이도 등장시킨다. 참, 고백하건대 굽본좌가 애용하는 일본 서브 컬처와 만화에 대해 잘 모르는 고로 본좌가 못다 한 이야기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지만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은하영웅전설>인가 하는 만화는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어느 신문에 실린 신한국 구룡쟁투인가하는 정치 무협소설(?)을 떠올릴 정도로, 이전투구와 배신과 합종연횡이 난무하는 21세기 한국 정치판에 대한 굽본좌의 예리한 분석과 신랄한 비평은 과히 촌철살인 미학의 진수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울러 승자독식주의가 아닌 내각제에 대한 작가의 애호도 엿볼 수가 있어 좋았다. 정치인들의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닌 보통 시민의 진정성 담긴 내각제 지지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지난주 4·27 재보선에서 승전고를 울린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팔색조 같은 정치적 변신 편에서 참 많이 웃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도 YS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전 경기도지사였다는 정도밖에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노 대통령의 저격수로도 활약했다는 전력에 조금은 놀랐다. 굽본좌의 말대로 지난 과거는 통 크게 모두 한 방에 퉁치고 지금은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정통 무협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정말 기막히게 스릴 넘치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읽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에 다가오고 있다. 과연 매주 새롭고 경천동지할 소식이 뒤덮게 될 시즌을 굽본좌께서는 또 어떻게 그리실지 잔뜩 기대된다. 아, 그리고 이제 앞으로 딱 661일 남은 임기 동안 가카에 대한 뜨거운 애정표현은 부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베른하르트 리만.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아틀레 네스가 아니었다면, 평생 리만의 가설 혹은 제타함수 같은 19세기 천재 수학자의 연구 성과에 대해 몰랐으리라. 사실 리만만큼이나 역사와 허구가 뒤범벅으로 중첩된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의 작가 아틀레 네스 역시 생소하기만 하다.

소설은 이 소설의 화자인 티리에 라이트너 후세라는 40대 중년 수학 교수의 실종신고로 시작된다. 서두에서도 말한 독일 하노버 출신의 천재 수학자 리만의 평전을 쓰겠다는 프로젝트에 헌신해서, 작문강좌에도 나가던 그가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걸까? 미스터리물의 공식대로, 남은 사람들은 그가 남긴 자료로 그의 과거 행적을 추적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핵물리학 등 현대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베른하르트 리만이 남긴 위대한 수학적 업적은 그를 불멸의 제단으로 이끌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티리에는 그의 우상처럼 글쓰기에는 젬병이었나 보다. 그래서 작문강좌에 등록하고, 뒤늦은 글쓰기를 배운다. 문제는 그렇게 시작한 작문강좌가 그의 삶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게 되는 발단이었다는 점이다.

티리에는 작문강좌에서 할덴이라는 도시에 사는 동갑내기 독일어 교사 잉빌드를 만나게 되고, 20년의 결혼생활이 주지 못했던 짜릿한 긴장과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각각 두 명의 십대 자녀를 둔 두 사람은 티리에가 수행 중인 리만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공고한 유대감을 구축한다. 티리에의 아내 카린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은 리만처럼 한때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을 도덕관념 때문에 고통의 원천으로 작동한다. 외도를 저지르는 여느 가장처럼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쫓을 수도 없는 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티리에와 잉빌드의 리만 프로젝트는 리만이 활동했던 독일 괴팅겐으로까지 확대된다.

아틀레 네스의 매혹적인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은 19세기 실존 인물이었던 리만 교수의 행적과 그의 삶을 추적하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버린 티리에와 잉빌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한다. 이런 다층적 구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쫓는 우상처럼 점점 변해가는 티리에의 삶에 방점을 찍는다. 풀리지 않는 리만의 가설처럼, 티리에 역시 어느 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린다. 티리에의 삶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가 되었다.

이런 두 가지 축에 권태로워 보이는 중년 부부의 삶 그리고 언제든지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십대 청소년 자녀를 둔 노르웨이 중산층 가정의 모습도 슬쩍 작가는 내비친다. 티리에의 아내 카린이 가르치는 노르웨이어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자신의 전공인 수는 전 세계적인 공통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그래서 티리에는 자신이 쓰는 리만의 평전도 아름답고 매혹적이면서도 명확한 수처럼 날카롭고 명료하게 저술하고 싶어한다. 물론, 냉철한 현실주의자답게 티리에는 외도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차가운 현실’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게 자신의 아내 카린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 티리에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티리에는 수학의 세계가 아름답고 매혹적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거의 강제로 하고 싶지 않은 수학공식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티리에가 말한 것처럼 수학의 세계와 결별하는 대로 가능한한 빨리 잊으려고 경주를 하지 않았던가. 나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사람도 그랬다는 공범의식에 즐거웠다.

아틀레 네스는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리만 교수와 화자 티리에 사이에서 마치 저글링 하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놀랍다. 하지만, 티리에는 리만의 삶의 궤적을 쫓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우상처럼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요즈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장편 <블론드>를 읽다가 잠시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오게 해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누가 그랬던가. 러시아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이름만 영어식 이름으로 고쳐도 책이 반은 줄어들 거라고. 확실히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 그렇게 애를 써가며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남편 이름이 안드로비치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선뜻 러시아 소설은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수년 전에 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어디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러시아 문학 특유의 만연체는 어떻고? 하지만, 여기 오늘 이야기할 안톤 체호프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 아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와 달리 그의 스타일은 간결 그 자체다. 게다가 장편보다는 단편에 강하다고 하니 부담 없이 도전해 보련다.

러시아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당당하게 손꼽히는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굴>은 거리에 구걸하러 나선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시선을 좇는다. 가장이라는 족쇄는 생존을 위해 거리에 나서게 하지만, 선뜻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배짱도 없다. 그가 쭈뼛쭈뼛하는 사이에 허기를 참지 못한 아들은 굴을 먹겠다고 덤빈다. 실크해트를 쓴 신사들은 아들을 데리고 주점에 데려가고, 굴을 먹을 줄 모르는 아들은 껍질째 굴을 먹는다. 가난과 부르주아의 가난에 대한 경멸이 단편적으로 읽힌다.

다음에 등장하는 <진창>은 제목 그대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미수금을 받기 위해 수산나 모이세예브나라는 유대인 여성을 찾아간 주인공은, 그녀에게 결혼자금을 융통하려다 그녀의 마력에 그만 빠져 버리고 만다. 유럽 사회에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흔적이 엿보인다. 유대인 다음으로 프랑스인과 러시아인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에서는, 모국어 대신 프랑스어를 교양의 척도로 삼은 러시아 귀족의 허영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와 ‘진창’에 빠져 버린 중위의 형 알렉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수산나의 마력에 빠져 귀대마저 미룬 중위를 그녀의 집에서 맞닥뜨린 순간의 낭패란!

반유대주의와 여성에 대한 비하는 <로실드의 바이올린>에서도 반복된다. 장의사 야코프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적 관념에서 수치화하고 계량화한다. 자신이 못한 일조차도, 손실로 생각하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남자다. 그렇게 돈타령을 해대면서도 정작 수십 년을 함께 한 부인에게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러시아말을 서툰 유대인 로실드를 표현하기 위해 경음으로 번역한 낱말들이 인상적이다. 부인 마르파의 죽음을 앞두고 관을 만들면서도 “2루블 40페코이카”라고 기록하고 한숨을 내쉬는 야코프의 모습은 차라리 서글프기까지 하다. 도대체 뭣 때문에 강아지도 먹지 않는 돈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체호프는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전통 가치를 상실한 러시아 민중의 삶을 그리려고 했던 걸까.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는 달뜬 사랑 이야기로 전개되는 듯하다가 냉큼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기다린다. <산딸기>에서는 자신이 평생 꾸던 꿈을 이루지만 막상 그 행복의 맛은 기대와는 다르다는 어쩌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의 씁쓰름함을 직접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관하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역시 <검은 수사>라고 생각한다.

<검은 수사>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위버멘시가 떠올랐다. 주인공 코브린은 우연히 만난 ‘검은 수사’가 속삭인 신의 선민, 영원한 진리 그리고 인류의 빛나는 미래에 대한 감언이설에 자극받는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경지에 다다르고 싶은 걸까? 현실을 초월한 광기에 사로잡힌 코브린은 아리따운 아내와 장인의 보살핌도 마다하고 ‘선택받고 재능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검은 수사와의 재회만을 꿈꾼다. <검은 수사>를 읽으면서, 코브린이 만난 검은 수사의 정체가 어쩌면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체호프는 검은 수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정말 놀라운 묘사를 선보인다. 만약 이 장면을 영화화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인간에게 놀라운 우주의 비밀을 전달한 메신저에 대한 섬망(譫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부질없는 희망일진 모르겠지만, 다른 러시아 문학도 체호프의 책처럼 간결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해학을 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아무래도 깊이보다는 스타일이 더 좋은 모양이다. 어쨌든 체호프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뱀다리] 표지에 실린 칸딘스키의 <모스크바의 여인>이라는 그림에 보이는 시커먼 부분의 정체를 알고자 인터넷을 뒤졌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책 표지의 그림과 원본은 달라 보였다. 검은 칠이 된 부분의 정체가 너무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트런드 러셀, 난 러셀이 위대한 철학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로지코믹스>를 읽으면서 그에 다른 면들을 알 수가 있었다. 러셀은 수학자로 출발해서, 논리학자 그리고 철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생성의 비밀과 진리를 탐구한 구도자였다. 그리스 출신의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와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콤비는 20세기 초반 치열하게 전개된 논리학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소개한다.

영국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버트런드 러셀은 조실부모하고 펨브로크로지에서 종교적으로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여느 천재들처럼 러셀 역시 어려서부터 그 따분하다는 라틴 어는 물론이고, 훗날 자신의 학문 탐구에 도움이 될 독일어를 열심히 익힌다. 이 책 <로지코믹스>의 저자들은 논리와 광기의 연관성에 집착하는데, 어린 러셀이 밤마다 들은 ‘고삐 풀린 짐승의 감정이 가득 서린 신음’이 자신의 큰아버지가 내는 소리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함께 상이군인 “올드 파커”를 만나면서 훗날 자신이 걷게 될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나 자연과학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에 매력을 느낀 러셀은 논리학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다. 대학에 진학해서 만난 첫 번째 부인 앨리스와의 로맨스도 잠시뿐, 러셀은 논리학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즐거움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다. 수학의 토대를 찾기 위한 러셀의 정진을 계속된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교수였다. 화이트헤드와의 사제 관계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이어지는 사제의 순환이었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사설에서 서울대의 모 교수가 주장했다는 사이비 도제식 교육이 화이트헤드, 러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관계처럼 끝없는 학문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러셀이 주창한 역설처럼 교수지만 그 스스로는 교수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없는 명제에 작금의 교수 사태를 대입해 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학문적 명제라도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오르크 칸토어 그리고 나중에 반유대주의로 학문의 빛나는 성과가 탈색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우라를 발하는 프레게 교수와의 만남의 핵심을 <로지코믹스>는 그야말로 코믹하게 다룬다. 어쩌면 너무 복잡해서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예민한 부분까지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다룰 수 있다는 만화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정말 대단한 성과를 창출해냈다.

화이트헤드와의 공동 연구 역시 진리를 찾는 여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숙명이었으리라. 스승의 젊은 부인에 대한 애정, 끝없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십 년간의 연구 과정이 <수학 원리>라는 걸작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지만, 정작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또 다른 천재 쿠르트 괴델뿐이었다는 냉소적인 시선도 빠지지 않는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새롭게 등장한 비트겐슈타인과 상부상조하면서 현대철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러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승을 극복해야 하는 제자의 운명 같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호화된 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설명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읽는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알고 싶은 것은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으나,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구나!

현대 논리의 토대를 찾는 전개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로지코믹스>가 결말에 그리스 비극 아이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와 이종 교배를 시도한 장면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만화에 등장한 자기언급처럼 논리와 광기는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안 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71 | 372 | 373 | 374 | 37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