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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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칠십. 스페인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네 자매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신기하게도 유쾌하고 발랄하게 읽힌다. <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는 신간이 아니라 지난 2002년에 펴낸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과 1978년 에세이집 <생과 만나는 저녁과 아침>에 실린 '로스앤젤레스에 두고 온 고향'과 1977년에 본 비철의 파리, 1999년에 본 제철의 파리를 함께 엮어서 펴냈다. 평균 나이 칠십이었던 이들 네 자매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시기는 199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이다. 여러 사정으로 몸이 편치 않고 성격도 각자 다르지만 20년 동안 서로 다른 대륙에서 헤어져 살던 이들 네 자매는 다시없을 여행에 마음과 뜻을 모아 함께 스페인을 떠난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비철과 제철을 자주 언급하는 데 뜻을 찾아보니 비철은 비수기, 제철은 성수기라는 의미였다.

여행을 떠났을 당시 저자의 나이가 꽤 있었을 시기인데 월등한 필력과 섬세하게 묘사한 문장력은 깊은 몰입감을 준다. 다른 여행기에서 느껴보지 못한 방대한 지식을 담은 글 덕분에 책에 빠져 읽는 재미를 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환갑을 다 넘긴 나이에도 새로운 곳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새롭기만 하다. 그건 혼자가 아닌 네 자매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이끌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리도록 눈부시게 푸르른 날에 마드리드 궁전을 나오자마자 백치기를 당해 300달러와 소지품을 잃어버려고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네 자매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모든 일들이 지난 추억으로 남을 사건이지만 낯선 여행지에선 방심하면 크게 당한다는 걸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지만 알람브라 궁전, 세고비아 성, 황금 탑, 카를로스 5세 궁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웅장하고 경이로운 광경은 그 나라에 직접 가서 봐야지만 체험되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엔 많다고 볼 수 있는 나이대임에도 해외로 떠난 이들 네 자매를 보며 희망이 생긴다. 여행이란 무료하고 평범했던 일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크나큰 추억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어디로든 떠나려고 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 평생 모를 일이다. 네 자매의 끈끈한 우애와 서로를 챙겨주려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와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이렇듯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충실하게 기록한 저자 덕분에 미지의 영역에 있던 세계가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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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 대한민국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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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0년 형 실형을 받고 투옥된 지 3년째인 1931년 6월부터 '조선일보'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1931년 12월까지 연재한 글을 엮어서 내놓은 책이 <조선상고사>다. 원본은 일반 대중이 편하게 읽기 힘든 책이라는데 김종성 사학자의 번역으로 우리 시대에 읽기 쉽도록 쉬운 문장과 정확한 사료로 보강하여 내놓은 것이다. 예전부터 <조선상고사>라는 책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총론부터 신채호 선생의 역사철학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와 '비아'의 투쟁과 역사를 구성하는 3대 요소로 인간·시간·공간으로 보는 관점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올바른 역사는 기록된 사실에 근접하여 알려고 해야 하는데 우린 혹 붙은 한국사를 진짜 역사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문이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왜곡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자주파 묘청을 숙청하고 사대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도 고대사를 청소하기 위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신채호 선생은 지적한다. 일연의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고대사 사료들이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다 보니 책의 결함과 오류가 있어도 교차 검증하지 못한 것이다. 근데 지금까지도 역사왜곡은 진행 중이다. 식민사관을 계승한 뉴라이트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등 끊임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지우고 어떤 목적을 가진 의도된 역사를 가르치려고 한다. '대한민국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역사'는 이렇게 난도질당하고 거짓말로 위장한 역사가 아니라 정확한 기록에 따른 진짜 역사를 말한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작자의 의도에 따라 사실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덧붙어거나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관점에 따르면 태조(1392년)부터 철종(1863년)까지 25대에 걸쳐 472년간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이 보장된 채 집필을 이어갔으니 얼마나 위대한 역사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일갈한 신채호 선생의 말마따나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된 사실을 기록한 역사를 진짜 역사로 알고 배우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사를 배우려는 열정은 넘쳐나면서 왜 우리 한국사를 제대로 알려는 노력엔 학계조차 의견이 분분한가? 앞으로 역사를 배울 때 <조선상고사>는 두고두고 읽어나갈 것 같다. 우리 고대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만약 신채호 선생이 조금이라도 부유했다면,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아마 퇴보한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진실에 근접한 고대사를 완성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조선상고사>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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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격전의 길을 걷다 - 7년의 전쟁, 다시 돌아보는 임진왜란사
안광획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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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임진왜란 전적지를 답사하며 발굴한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우리 역사에서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선조들은 침략한 왜구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이름 없는 영웅들이 들풀처럼 일어나 의병대를 조직하여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며 싸웠다. 우리가 잊지 않고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함도 있고, 흔적이 남아있음으로 후세에 사는 사람들이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유적지는 제 모습을 잃은 채 개발 논리와 지역 간 이해타산 속에 훼손되고 방치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이렇게 소홀히 여기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자행되는 역사 왜곡에 당당할 수 있을까?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임진왜란 답사 여행을 코스별로 일정을 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역사 답사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데 실제 그 지역으로 가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쏙쏙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임진왜란 중 모르는 전투가 많다는 걸 알았다. 근데 답사 현장에 대한 기록과 함께 읽으니까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과연 임진왜란 당시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장에 직접 가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물 이야기와 무기 이야기를 중간에 실어서 임진왜란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부분도 괜찮았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책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전적지를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었다.


이 책은' 1부 반침략 투쟁의 현장을 찾아', '2부 조선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3부 의병의 궐기, 깨어나는 한반도', '4부 반격의 서막', '5부 다시 시작된 전쟁 마침내 이룬 승리'로 각각 사건 순서대로 구성하였다. 임진왜란 전적지를 아이와 함께 가도 좋고 역사의 현장을 느끼고 싶다면 찾아가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곽재우 의병장 외에는 다른 곳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다. 분명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역사인데도 생소하다. 새삼 느끼지만 역사를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일이 관심에서 멀어지면 어려운 일이라는 거다.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의 역사를 발굴하고 방치해서 초라한 모습만 남은 유적들은 재정비되기를 바란다. 재조명 받아야 할 영웅들은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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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식사합시다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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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근현대사에 기록될 굵직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때라 8~90년대에 대한 기억은 살았던 동네와 학교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뉴스로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우리가 시대정신을 얘기할 때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그 시대를 대변하여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그 일을 겪어본 적이 없거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만약에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았을까? 훗날 현장을 찍은 영상과 증언, 자료들로나마 진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경계해야 할 것은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음식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술회하듯 풀어내는데 시대의 아픔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는 쉽게 누구나 유튜브에서 과거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을지 아찔하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모르고 자랐지만 이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음식 하나에도 우린 많은 추억들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시간, 공간이 맞아서 제일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먹은 새우 라면과 용광로 김치찌개가 특별한 이유도 힘든 노동과 같이 둘러앉은 먹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였고 그 시대에 허락된 낭만도 한몫했다.


이 책은 음식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는데 글귀에서 느껴오는 따뜻함이 있다. 같은 시간대를 살았지만 생애 주기가 달라 겪은 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가? 사회 통합은커녕 적대적인 분열과 갈등으로 나뉜 때가 아닌가. 경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계 부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 앞에 놓인 악재도 산재해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지방 소멸화, 민생 복지예산 삭감, 물가 상승 등 암울한 소식밖에 없다. 정치판도 그렇고 우리들의 미래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비빔밥처럼 서로 섞이고 어우러졌으면 한다. 지난 일에 대한 과오와 잘못을 반성하고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정치를 하며 반성한 세 가지로 국가주의, 민주주의, 외교를 뽑았는데 공감하는 부분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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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오름, 자연을 걷다
김은미 외 지음, 송유진 그림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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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전체 오름은 368개로 한라산이 화산 폭발한 뒤 남은 열로 소규모 폭발이 일어나면서 생긴 새끼 화산이라고 한다. 이 오름엔 초지, 자연림, 습지 등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동식물에게 서식지로써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어승생악은 5년 전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때 가본 곳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어리목 탐방안내소를 거쳐 정상까지 가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린다.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오름이지만 높이가 1169m에 이른다. 찾아갔을 때 자욱한 안개가 끼고 날파리들이 기승을 부려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채 사진 몇 장만 찍고 내려온 기억이 있다. 어떤 오름을 가든 제주도 특유의 자연 생태와 주변 경관이 멋져서 압도당한 기분을 여러 번 느끼게 된다.

이 책은 1~2장에서는 주로 제주도의 지형이 형성된 과정과 오름의 탄생, 비밀, 어승생 오름에 얽힌 수많은 이름에 대해 알아본다. 3~4장에서는 오름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이야기해 본다. 끝으로 5장은 아흔아홉 골짜기만큼 중요한 자연보호와 공생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란 주제를 다뤄본다. 모든 내용이 흥미롭고 제주도를 알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지만 특히 식물 이야기와 동물 이야기는 어승생 오름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라서 자연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게 해주었다. 제주에만 살아가는 독특한 동식물이 많은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어승생 오름은 한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드물어서 자연이 잘 보존되었고 야생동물이 살기에 적합한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어승생 오름을 통해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자연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다. 누구나 자연이 소중하다는 건 알지만 그 가치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훼손된다면 아름다운 예전 모습으로 돌이키기 점점 어려워진다. 저자도 1960~70년대에 있었던 한라산 개발을 예로 들면서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좋은 일이 무엇인지 오래 숙고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라며 두고두고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며 부러웠던 점은 유명한 관광지나 음식점, 카페, 서점, 편집숍이 아니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차마 눈에 다 담을 수 없이 깨끗한 자연 경관이었다. 제주 고유의 자연을 잘 보존되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러 찾는 것이다. 어승생 오름뿐만 아니라 다른 오름들도 그 자체로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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