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주 미술 여행 - 카이로에서 뉴욕까지, 일곱 도시의 미술관을 따라 떠나는 예술 여정
오그림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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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세상은 넓고 가볼 만한 미술관이 많다는 걸 보여준 책이다. 카이로&룩소르, 피렌체, 파리, 도쿄, 빈, 뉴욕까지 그 도시에서 세계적인 명소로 뽑히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저자가 도슨트가 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설명한다. 마치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듯 시대별로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들이 남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순서도 기원전 3,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고대 미술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남긴 건축, 조각, 회화 작품이 그리스, 로마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데다 르네상스와 근대 미술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문화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아마 인류 초창기부터 시각적 상상력은 그림을 그려 남기는 것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문명의 탄생은 예술이 발전해나가는 토양이 되었고 신화와 종교를 만나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1425~1426년에 완성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는 놀랍기만 하다. 원근법을 적용해 그린 그림인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작품 크기가 6.67m x 3.17m라고 하니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실감 나게 보였을 것인가.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라봐야 하는데 마치 실물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산드로 보티첼리가 남긴 작품을 좋아한다. <봄>, <비너스의 탄생>은 꽤나 우아하면서 심미적으로 아름답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카라바조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라는 점이다. 유명한 미켈란젤로 때문에 출신인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인물인데 살인과 수많은 폭력,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림을 너무나도 잘 그려서 풀려난 화가라고 한다. 사실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서 충격적이었다. 궁정 화가들의 작품도 꽤 볼만했다. 이아생트 리고가 1701년에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옷 질감이나 구도, 정치적인 이미지 등 여러 요소들이 태양왕인 루이 14세의 위상을 한 폭의 그림에 잘 표현해 주었다. 실제 박물관에서 실물 크기로 보면 압도당하는 기분일 것 같다.


이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클로드 모네, 피터르 브뤼헐,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에드워드 호퍼 등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대부분 서구권 화가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다. 아마 지면 관계상 책에 싣지 못한 작품들이 훨씬 많을 테고 보너스 스폿에서 주변 명소와 미술관을 짧게 다뤘다. 한 도시의 한 미술관만 제대로 걸으면서 관람해도 족히 반나절 이상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미술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 덕분에 잠시나마 그 수고를 덜고 다 읽을 즈음에 세계 일주를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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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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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중 하나인 <페스트>를 드디어 완독했다. 지난 2019년 11월 17일 중국에서 최초 보고된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에서 해제 발표되기까지 3년 4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6억 8,700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약 69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런 경험을 가진 채 읽어보니 오랑 시의 대처는 거의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페스트라는 무서운 전염병 앞에 인간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랑 시를 폐쇄한다거나 혈청을 개발하는 등 갑자기 닥친 재앙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인수공통전염병이다. '페스트'는 독일어인 'pest'의 독음으로, 영어로는 'plague'라고 한다. 흔히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도 부른다.


천연두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힌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의 뜻인 '검은 죽음의 병'을 그 정도로 답이 없고 무서운 비유적인 명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증상이다. 혈관 내에 피가 응고되어 부패하고 신체 말단이 괴사하면서 실제로 피부와 근육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페스트균은 현재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다. 페스트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흑사병의 주요 형태는 가래톳 흑사병(bubonic plague), 패혈증형 흑사병(septicemic plague), 폐렴형 흑사병(pneumonic plague) 등이다. 중세에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여 인구 7,500만~2억 명 남짓이 희생됐다. 국내에서는 근래에 발병이 보고된 바가 없다.

나무위키

일단 페스트에 감염되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곧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라 공포와 절망이 도사릴 수밖에 없었다. 시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전보 외는 없었고 철도나 선박도 끊겨버렸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쥐 소동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치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쥐 벼룩이 흑사병을 전파시킨 공포가 오랑 시에 엄습하고 있었다. 1부 2장부터 주요 등장인물들인 베르나르 리유(의사), 장 타루, 파늘루 신부, 랑베르(신문기자), 조제프 그랑(시청 말단 공무원), 코타르, 리샤르, 카스텔, 수위 미셸 영감 등 속속들이 등장한다.


서술자의 관점에서 주로 베르나르 리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쓰였지만 장 타루의 수첩에 적힌 부분도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각 등장인물들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맞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지 잘 보여준 책이다. 특히 파늘루 신부의 설교 논조가 바뀐 시점이 극적이다. 아무 죄도 없이 페스트에 걸린 오통 판사의 자녀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잠시 머문 오랑 시를 탈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 포기하고 보건대에서 활동하는데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인물이다. 페스트가 종식되고 시의 문이 열린 뒤 열차 플랫폼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과 재회하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으니 말이다.


읽으면서도 정말 코로나-19 때처럼 사람들이 취한 행동과 상당히 유사해서 놀랐고, 조그만 전기 자동차 2대가 천막 사이로 커다란 냄비를 싣고 다니는 장면도 특이했다. 감염 의심자를 수용소 같은 곳에 격리시키고 혈청 실험을 지속하는 부분도 상당히 흡사하다. 무엇보다 감염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후반부에 가면 주요 등장인물이 하나둘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도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쓰였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전염병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쳐오는 질병이며, 혈청 맞는 시기를 넘기거나 부주의한 순간 언제든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묘사와 유려한 문체 등 번뜩이는 문장들이 많았음에도 이상하게 완전히 몰입해서 읽지는 못했다. 뭔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장면보다는 등장인물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도 있고 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한 부분에서 맥을 놓친 것 같다. 전반적인 소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품 해설을 정독하길 추천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페스트가 전쟁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지나친 부분도 새롭게 보인다. 인간이란 존재는 예기치 못한 존재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그것이 죽음으로 직결되는 전염병이고 시가 폐쇄된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는 온전하게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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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픽사 베스트 컬렉션 : 소울 Soul Disney·Pixar Best Collection 시리즈
라이언 박 해설 / 길벗이지톡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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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디즈니, 픽사 베스트 컬렉션 : 소울>은 9번째로 소개된 책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지금까지 디즈니 픽사에서 개봉한 명작 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전체 대본집과 디즈니 추천 성우가 녹음한 오디오북으로 지루하지 않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 책 구성은 스크립트북 + 워크북 + 오디오북으로 되어 있다. 스크립트북은 말 그대로 전체 대본집인데 지문과 배경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다. 워크북은 스크립트북에서 중요한 표현 100개를 선정해 어떻게 활용되어 쓰이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오디오북은 등장인물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로 스크립트북을 보면서 활용하면 좋다.


사실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실력과는 별개로 하다가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한다면 집중도도 높아지고 오디오북을 더욱 귀 기울여 듣게 되는 효과가 있다. 챕터별로 반복해서 들으면 영어 특유의 리듬에 익숙해지고 오른쪽 자막을 보면 뜻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암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해가 되지 않고 연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지만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대본집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듣고 자막을 보면서 다시 들으면 그 상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하게 된다. 역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소울(Soul)>이란 작품은 제93회 아카데미상과 제78회 골든 글로브상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오리지널 음악상을 수상한데다 전체적으로 평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삶에 대한 교훈적인 의미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영어 공부하기에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총 28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디오북 전체 길이는 84분이다. 이왕 영어 공부를 한다면 따분하지 않고 재밌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특성상 대화가 길지 않고 짧고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워크북에서 따로 선정한 100개의 표현으로 깊이 있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 지금 영어 공부를 재미있게 배우고 싶다면 디즈니 픽사 베스트 컬렉션 시리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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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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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책이다. 읽고 나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교훈과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모모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무도 알 지 못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커다란 도시의 남쪽 끝머리에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으로부터 출발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극장이었던 그 주변으로 누추해져가는 오두막집과 밭들이 깔려있고 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심어진 곳이다. 모모가 그 원형극장에 살기 시작하자 달라지기 시작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모모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모모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앉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모가 필요하지만 직접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은 모모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아직 모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p. 21


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 자기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모모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은 채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와서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 술집 주인인 니노와 미장인 니콜라가 화해하고 니노 술집에서 노인을 받아주지 않아 생겼던 문제도 대화로서 풀렸다. 아이들은 원형극장 터에 앉아 놀았는데 한순간도 지루한 때가 없을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특별한 장난감 없이도 오직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곤 했다.


도로 청소부 베포와 관광 안내원 기기를 알게 된 후로 날이 갈수록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된다.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기기는 온갖 말을 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둘 다 가난하게 사는 형편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 제2부에서 등장하는 회색 신사는 자신을 시간 저축 은행에서 나온 영업사원으로 소개한다. 회색 자동차를 타며 잿빛 얼굴을 한 채 항상 작은 시가를 물고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회색 신사복에 회색 연필을 들고 불쌍한 이발사 푸지 씨에게 시간 낭비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 중 압권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콘크리트 회색빛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뿐만 아니라 건축 구조물도 모두 시멘트를 기반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시간에 쫓겨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이야말로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계획에 맞춰 살아가야 열심히 사는 거라고 종용하고 시간 낭비하는 걸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계획성 없는)이라고 치부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거르거나 간단한 토스트로 때우고 출근길에 몸을 싣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누구와 붙잡고 얘기할 시간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겨지고 상상력을 키울 시간보다 정해진 놀이와 시간표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회색 신사의 손에 넘어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채 바쁘게 앞만 보며 걷고 아이들이 시위를 해도 귀담아듣기는커녕 아예 보육원 시설에 맡겨 버린다. 도로 청소부 베포는 자신의 원칙에 따라 쓸고 쉬다가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듯 정신없이 빗질만 할 뿐이고 관광 안내원 기기는 이야기꾼으로 명성을 얻어 부와 명성을 얻은 유명인이 되었지만 3명의 비서들로부터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돌려 막느라 끌려다닌 듯 산다. 회색 신사에게 시간을 뺏긴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놀랐다.


호라 박사와 카시오페이아, 모모는 시간 도둑이 회색 신사들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준 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 바뀌는데 아마 이것이 저자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마음에 여유를 되찾자 길이 막혀도 웃음을 짓게 되고 사람들과 길에 서서 안부를 묻고 그 흔한 화단의 꽃을 보며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 줄 시간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업무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회의와 바쁜 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는 것도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아이들은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p. 360


어떻게 아무리 바빠도 아이나 사람들과 이야기 들어줄 시간이나 놀아줄 시간도 없을까? 회색 시간을 가져간 시간들은 저축이 아니라 죽은 시간을 뺏어가는 것이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으며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도 많다. 가둬버린 시간 속에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없고 바닥난 레퍼토리를 비슷하게 만들어 돌려 막기에 급급할 뿐이다. 아이들은 서로 함께 어울려서 무슨 놀이든 해야 재미있고 상상 속 세계를 펼칠 수 있고 어른들은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아야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저자가 주는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며 시간이 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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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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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미뤄뒀던 <위대한 개츠비>를 최근에 완독했다. 동명 영화가 2013년 5월 16일에 이미 개봉했고 내가 읽은 민음사 2판 12쇄는 공교롭게도 2013년 3월 25일이다.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원작 소설과 비교하면서 보는 맛이 있을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전에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다 읽고 나서 느낀 건 완전히 정반대였고 아메리칸드림보다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젊은이가 첫 만남부터 반해버려 잠깐 사귀다 사랑하게 된 부잣집 미인(데이지)을 향한 일방적인 사랑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톰 뷰캐넌)과 결혼해 유부녀가 된 그녀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선 같은 레벨 이상으로 자신의 학력과 부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옥스퍼드 출신도 아니었고 마이어 울프심과 같은 조직 폭력계 두목 휘하에서 당시 불법이었던 밀주 판매와 훔친 증권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도박하는 방법으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재산을 모으게 된다. 그 재산으로 뉴욕 웨스트웨이에 휘황찬란한 대저택을 구입하고 연일 호화로운 파티를 연신 벌이게 된다. 가까운 곳엔 닉 캐러웨이가 살고 있었고 파티에 대한 소문이 퍼져 닉과 조던 베이커를 통해 데이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읽고 나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닉 캐러웨이밖에 없고 대부분은 환상과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천민자본주의에 빠진 듯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경제 호황으로 넘실대던 1910~20년대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쓰레기 계곡 옆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는 월슨의 아내 머틀 윌슨이 유부남이었던 톰 뷰캐넌과 불륜을 맺고 그의 정부가 된 것도 다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돈도 제대로 못 벌고 비실비실한 남편을 구박하며 험한 말을 쏟아낸 것이다. 맨해튼과 이스트 에그, 웨스트에 그 중간에 있던 플러싱은 이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개츠비는 부가 가둬 보호해 주는 젊은과 신비, 그 많은 옷이 풍기는 신선함,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데이지가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은처럼 빛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p. 211


개츠비 이름 앞에 The Great을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첫사랑 데이지보다 그만큼 부를 이뤘으면 다른 근사한 여자를 찾았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환상에 사로잡혀 데이지만큼 부유해지면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부유하게 자란 데이지로서는 자신의 남편과 비교해 잘 생긴다가 부자이기까지 한 개츠비의 달콤함에 젖어들어서 빠르게 빠져들었다. 톰과 데이지 부부 둘 다 함께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개츠비가 톰에게는 상대하기 싫은 불청객이었을 것이다.


책 곳곳에서 발견하는 수려한 문장과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부의 허망함을 비판하고 있다. 성대한 파티를 열 때마다 수 백 명은 초대받거나 아니면 일부러 찾아왔을 텐데 그중에 단 한 명도 장례식에 오지 않은 건 모두 부질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첫사랑이었던 데이지조차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데이지와 사회적 위상을 맞추면 사랑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과 환상이 장례식 전후로 개츠비가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비뚤어진 욕망과 한순간 꿈으로 끝난 사랑의 결말이 씁쓸해진다. 진실한 사랑보다는 허세와 거짓말이 자칫 관계를 그르칠 수 있으며 결국 눈먼 사랑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완벽하게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모든 것이 경솔하고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경솔한 인간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 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한데 묶어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 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말끔히 치우도록 했던 것이다.

p. 251


60여 년간 반복된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은 결정판 텍스트를 완역한 책이라고 하는데 읽기 어렵다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긴 했지만 계획표에 따라 열심히 살았던 개츠비의 삶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건 많은 걸 느끼게 한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로 선정된 <위대한 개츠비>는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소설로 며칠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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