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독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런 깨달음. 뭘 해도 좋은 시간이 새벽의 조용하고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인데 특히 독서와 글을 쓰는데 이처럼 좋은 시간이 없다는 것. 새벽에는 주로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힘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고 평일에는 새벽부터 이른 오전까지가 아니면 운동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삶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만, 역시 이 고요한 시간의 에너지와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발산되는 집중과 맑음은 책에 바쳐져야 온당하다. 기도나 명상도 이 시간에 어울리는 마음의 행위임을 보면 내면의 독서라는 건 결국 기도나 명상과 다름이 없는 성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싶다. 


코넌 도일의 자취를 따라 에딘버러와 런던을 오가면서 셜록 홈즈를 이야기하는 이다혜 기자의 책을 보고나서 이런 테마로 시리즈가 나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듯 만들어진 '걸어 본다'에 무척 실망한 터였지만 (그 shallow함이란) 이 시리즈는 적어도 이번 두 번째의 리딩까지는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잔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일년이 훨씬 넘어 이년은 족히 되어가는 듯한 예전에 드영 아니면 리전오브아너 박물관에서 클림트와 로댕의 연합전시회를 다녀온 것이 이 책과의 대화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에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마침 언젠가 구해놓았던 클림트를 읽은 것이 또한 이 책과 좋은 시간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주 함축적이지만 각각의 scene에서는 무척 구체적으로 깊게 다룬 클림트와 그의 예술세계의 이 책은 흥미로운 예술가를 다뤘다는 점 못지않게 그 기승전결 또한 매우 잘 짜여진 하나의 극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약력으로만 assume하고 얘기할 만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도권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건 '걸어 본다'시리즈에서 얻은 실망이 큰 탓이다. 


다시 미술관이 열리고 일단 코로나로 죽거나 굶어 죽어야 하는 처절한 선택지점에서 이 지역은 코로나로 죽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 듯, 모든 것이 up to 25-50%의 인원제한으로 열렸다. 이제 음식점 내부에서도 이 조건을 지키는 한 식사가 가능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지만 하필이면 미국 전체에서는 엄청난 숫자로 다시 전염자가 급증하는 시기와 맞물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더 위험한 상황이 금방 재개될 것 같다. gym은 그간 많은 멤버를 잃어버린 듯 새벽이나 점심 모두 사람이 매우 적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고 운동을 하는 환경이라서 닫힌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진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원래 지난 3월에 시작에 맞춰 가려던 프라다 칼로의 전시회를 다가오는 다음 주 토요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철저한 예약제로 사람이 가장 적을 오전 9:30, 두 번째 타임에 맞춰 끊었고 이를 위해 그간 미뤄온 미술관 회원증을 갱신했다. 연간 117불로 De Young과 Palace of Legion of Honor 두 곳을 무제한 이용하고 심지어 남에게 표를 끊어줄 수도 있는데 작년부터 잘 이용하고 주변에도 인심을 쓰니 나쁘지 않다. SF Museum of Modern Art (SFMOMA)는 작년에 앤디 워홀의 전시에 맞춰 회원가입을 했으나 한번 이용하고는 갈 일이 없었던 탓에 이번에는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장부에 맞춰 연초에 이듬해의 수입과 세금을 계산할 때 늘 드는 의문이 profit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읽었는데 비록 중언부언에 쓸데없는 말이 많은 책이지만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장부는 장부로 두고, 실제로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자는 건데 9월부터 실행을 해본 결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건 없고 후회는 언제해도 너무 늦었다는 주의라서 바로 실행에 옮긴 건데, 기대수명에 비춰 아직도 15-25년은 더 일해야 하는 나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될 일이다. 일단 들어오는 금액의 30%을 미리 떼어놓고 임금처리, 렌트, 업무비용 등을 충당하고 (내 월급 포함) 나머지는 적절히 분산해서 모아두고 있다. 일년을 이렇게 하면 그 다음 해에 발생할 세금을 미리 모으고 수익금은 투자로 돌리는 것 외에도 상당한 수준의 예비자금을 모으고 좀더 장기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형태의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은 딱 그 반 정도면 충분히 할 말을 할 수 있었을 정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인기 높은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오마쥬 또한 많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두 어 작품은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번에 읽은 일본작가의 책 또한 이를 오마쥬하여 신박한 twist를 보여준 즐거운 이야기였다. 단순히 각색을 통한 번안하는 수준은 일본의 경우 이미 다이쇼 시대 정도에 많이 한 것 같고 현대로 들어오면 이렇게 장치와 구성을 빌려와서 전혀 다른 길로 가는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보다 근대화가 빨랐던 것이 문학에서도 큰 차이를 갖게 되어버린 바, 굳이 일본의 것이 우리보다 낫다는 걸 넘어 일단 우리 소설계는 장편을 제대로 쓰는 것부터해서 단절된 문학의 발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쟈선생의 최근작에서 다뤄진 '장편의 부재'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글세계 전체의 큰 병과도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난 30년간 커진 활자의 font size와 멀어진 글 사이의 간격에 힘입어 단편이 중편이 되고 중편이 장편이 되어버린 병폐를 넘어가는 건 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노력해야 하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쓰고 나니 지난 번의 페이퍼 이후 읽은 책이 딱 세 권임을 알게 됐다. 이번 달은 이제 일주일이면 끝인데 아직 여섯 권은 더 읽어야 보통의 페이스가 resume될 수 있음이다. 연 250권은 읽어야 4년 = 1000권, 40년 = 10000권이라는 목표를 채울 수 있다. 40이 되던 해에 잡은 나름 원대한 계획인데 이번의 첫 4년은 그 후반부가 되어보니 힘이 빠진 것 같다. 다행히 그전 3년의 열심한 독서로 아마 1000권을 채우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그 질과 깊이에는 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내년부터 시작될 두 번째 4년은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에는 가급적 일찍 일어나서 2-3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운동에 나설 생각이다. 주중에는 아무래도 새벽시간은 운동에 바쳐져야 마땅하지만 주말에는 3시 정도에 일어나서 6시까지 책을 읽은 후 9시까지 운동에 쓰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럼 필연적으로 주말 저녁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니 좀 괴롭지만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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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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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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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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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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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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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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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해서 나이를 먹어가는 미국에서도 마흔 넷이 된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남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지금도 team sport는 아주 못하는 편에 속한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 와서 그럭저럭 몸을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검도를 시작했던 것과 무조건 2마일 달리기를 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좋은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발바닥의 부상으로 검도는 2006년 이후 거의 포기했고 지금은 그저 사무실에서 낮은 자세로 앉아서 허공격자를 치고 있지만 투기종목에 대한 무서움을 많이 극복하게 해준 좋은 무술로 기억하고 있기에 언젠가 형편이 되면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근육운동의 경우 2008-2009년 정도에 아주 천천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형편으로는 무척 큰 부담이 되었고 사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다니던 gym에서 직원의 꼬임에 넘어가 반 년 정도 받은 트레이닝이 좋은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기에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 몸이 특별히 멋있어진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운동을 계속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특히 COVID-19으로 gym과 모든 시설이 문을 닫은 지난 반 년간 그간 만들어온 좋은 습관의 덕을 톡톡히 본 건 전적으로 이때 시작해서 꾸준히 만들어온 지난 시간의 덕분이다. 술과 먹는 걸 조금만 더 조절하는 걸 목표로 하고,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더 늘려가고, 나중에 이 시기를 잘 견딘 후 수영을 배워서 기존의 루틴에 접목하는 것까지 중장기적인 계획을 잡고 있다. 


무술은 다시 배우고 싶고 늘 꿈을 꾸고는 있는데 품새가 있는 무술보다는 쉽게 격기를 체득하여 연습할 수 있는 종류가 더 나을 것 같다. 요즘은 품새의 원리과 공방, 내포된 실질적인 movement를 풀어서 가르치는 곳도 많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도 품새에 많은 걸 치중하고 고전성을 우수함이라고 포장하는 곳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물론 좀더 전통을 따지는 무술도 나름 재미는 있겠지만 그건 시간이 더 많아지면 생각해볼 일이다. 


마구잡이로 손에 잡히는 책을 쉽게 읽는 것으로 마중물을 삼아 다시 조금씩 더 읽어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순수하게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독서 또한 그 쓰임새가 있다 (굳이 따져야 한다면). 


'로도스도 전기'에서 약 30년 정도 앞선 시대를 그리는 prequel. 본편에서는 익숙한 체제속의 기득권 혹은 원로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본편에서 이야기하는 혼란의 시대에 마족과의 전쟁을 위해 뭉친 전사, 마법사, 신관, 드워프 등 여섯의 영웅들 중 그 존재가 기록으로 남지 못한 미지의 영웅으로 짐작되는 인물 또한 이번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니 오랜 팬의 입장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서양판타지는 톨킨을 기점으로 이루어지고 이 서양의 판타지가 일본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로 구현된 후 다시 한국에서 꽃이 피게 된 건 90년대 정도부터로 기억하는데 금도 즐겁게 읽히는 많은 작품들이 이때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다만 많은 것들이 그런 것처럼 이 분야에서도 표절의심을 피해가지 못하는데 이번에 완간이 되어 나온 89-90년 사이의 '로도스도 전기'를 보니 확실히 그런 의심이 가는 작품이 떠오른다. 즐겁에 읽은 기억만큼이나 불쾌할 수 밖에 없는데 의심이 가는 정황이 있을 뿐 뭐라 말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혼자 생각할 뿐이다.  어쨌든 즐거웠다는 이야기.
















이 책들에 대해서는 짧게 남긴 말 외에 달리 할 말은 없다. 캐롤은 영화의 미장센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아직 볼 생각은 없고 아케치 고고로 시리지는 계속 읽어가고 있는 레트로 감성의 충족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이번 작품은 정말 건질 것이 별로 없었다. 


퇴근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았다. 금년까지는 일단 9-6로 잡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9-5로 잡고 조금 더 유동적으로 office hour를 가질 생각이다. 어차피 일은 다 내가 하는 거니까.


사람한테 시달린 끝에 큰 실망과 시간낭비, 그리고 비용낭비로 끝난 2015-2020까지의 HR문제는 지금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냥 잘 손절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잊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끝난 것이라면 애초에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필요에 따라 outsourc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규모를 잡고 일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남을 챙겨줄 부분에 있어 그 필요나 당위성이 없어졌으니 그만큼 더 자유롭게 계획을 잡고 하나씩 phase를 완료하자는 계획인데 일단 45-50, 50-55, 55-60 이런 식으로 5년을 단위로 장기적인 목표를 쪼개서 하나씩 완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인 건 12월까지 더 생각을 많이 해볼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책을 읽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변함이 없이 매일 조금씩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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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13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롤은 섹스 장면이 좀 쓸쓸하더군요.
영화는 대체로 잘 만든 영화 같습니다만 두 번은 안 볼 것 같더군요.

생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게 보내시길...^^

transient-guest 2020-10-14 00:22   좋아요 1 | URL
아직은 좀 남았습니다, 생일까지는.ㅎ 감사해요.
동성의 섹스장면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서 재미있어 보여도 퀴어영화는 안 보게 됩니다. 캐롤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으면 빨리 넘겨가면서 볼 것 같아요.
 

트럼프와 國民の力 미쳐 날뛰고 있고. 조금 잠잠하더니 다시 나파와 소노마 밸리에서 불이 나서 유수의 와이너리들이 타버리고. 어제 받은 메일에 의하면 내가 좋아하는 Castello Di Amorosa 와이너리도 다행히 본성은 피했지만 주변의 건물이 타버리는 바람에 싯가 500만불 상당의 와인이 날아가고 건물을 다시 짓는데는 최소한 2-3년의 기간과 1000-1500만불이 들 것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온 세상이 미쳐 날뛰는 듯. 코로나는 잦아들 기색이 없고 아마 겨울이 되면 더 난리가 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올해는 한 달씩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도 사는 것이 어려웠던 일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책읽기도 운동도 일도 무엇도 다 엉망이었던 9월이 지나고 새롭게 10월이 왔고, 가을과 함께 NFL 미식축구의 시즌이 돌아왔지만 11월의 대선에 대한 걱정과 더 나빠질 것 같은 경기, 이와 무관하게 계속 값이 오르고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해 사실 한 해를 마감하는 즐거움 같은 건 없이 그저 살아남고 또 살아서 빨리 2020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마음이다. 늘 가을은 NFL과 함께 한 해의 마지막으로 접어드는 느낌과 다가올 겨울이 기다려지는 즐거운 시즌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책을 몇 권 읽었기에 주절거려 본다.


예전에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 미국의 엘러리 퀸처럼 일본에는 같은 이름으로 책을 쓰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가 있다. 아버지가 경감이라는 설정도 비슷하니 이 정도면 오마주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엄연히 일본의 현대작가인 만큼 소설이 만들어진 당시의 사회문제를 모티브로 해서 일본이라는 무대장치에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거의 100년 정도의 차이를 둔 엘러리 퀸과는 다른 전개와 재미가 있다. 기시감이 들면서도 완벽하게 추리하지 못한 의외릐 결말이 묘하다. 범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여럿으로 방향을 유도하지만 진정한 범인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번역된 것들 중에서 절판되지 않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들은 이로써 모두 읽은 것 같다.


이게 벌써 45권째. 사계절을 돌면서 퇴근 후의 한 잔이나 즐겁게 모여서 마시는 이런 저런 술자리, 술과 안주의 이야기로 잔잔하면서 때로는 식욕과 함께 술에 대한, 아니 정확히는 술자리에 대한 그리움과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별것 아니지만 꾸준함으로 여기까지 구한 듯. 이곳은 여전히 산불로 난리고 가을의 늦더위로 아직 쌀쌀한 날씨는 오지 않았지만 겨울에도 영상이 유지되는 이곳에도 그런 저녁이 온다. 건강상의 이유로, 무엇보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 술을 줄여가고 있는 지금이지만 주말에 한번 정도는 그런 저녁을 맞으면 따뜻한 안주와 함께 한 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친구는 여전히 없고 때로는 혼자 마시는 것이 지겹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눈앞의 맛과 멋에 취해보는 거다. 


7월에 그리고 9월에 각각 나왔으니 처음부터 긴 내용을 나눠서 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Seemingly 모든 것을 끝내는 Endgame 같은 방향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고대의 demigod을 업고 나타난 해양일족과 Chicago's finest - White Council마법사들, White Court 뱀파이어들, 갱이면서 알고보니 어둠의 일족이 된 Gentleman Johnny Marcone, Summer과 Winter의 정령들, 북방신화의 일족들, 그리고 해리 드레스덴이 시카고와 인류의 미래를 걸고 한판의 거대한 전투를 벌인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명과 각종 손실을 입고 일단락된 이야기는 하지만 천재적인 작가에 의해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스토리의 떡밥을 잔뜩 던지고 마무리된다. 다음 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 이 소설은 벌써 첫 권이 나온지 20년이 되는 해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이 더 크고 넓게 펼쳐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우리가 아는 세상 이면의 거대한 세계가 보통 사람들에게 expose된 부분만 해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부분이라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물론 너무 아쉽게 사라진 등장인물들도 있지만.  새롭게 펼쳐질 관계들이 가득하다. Drakul과 함께 다시 등장한 Black Court의 뱀파이어들만 해도 엄청난데, 여기에 이번의 사건을 바탕으로 리셋된 모든 관계들과 30의 Black Danarian의 Fallen Angel중 하나로 밝혀진 등장인물과 해리의 갈등관계까지 너무도 무궁무진한 앞으로의 세계가 남아 있다. Jim Butcher의 천재성은 여러 종교와 신화의 세계관을 다신교적으로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잘 알려진 작가와 소설도 있지만 상당한 부분의 지면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추리소설의 슈가맨을 소개한다. 덕분에 이런 저런 책을 계속 찾아보면서 장바구니에 담거나 아마존을 돌아다녔고, 결과적으로는 책을 더 구매하게 되었으니 오호라 선재로다.


책의 세계란 것이 워낙 깊고 넓은 덕분에 추리소설이라는 하나의 분야만 해도 파고들어가면 건물을 채울 정도로 많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엘릭시르, 검은숲, 동서, 황금가지, 모비딕, 국일미디어, 해문 같은 전통 강자들만 해도 상당한 양이고 여기에 다른 출판사의 판본이나 특정작품을 더하면 엄청난 책더미가 나온다. 동서의 경우 중역이 의심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는 이곳과 해문이 많은 작품들을 들여왔기에 여전히 동서미스테리북스의 책을 구하게 된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추리소설은 그 특유의 종이냄새가 아주 특별한데 8살 때 처음 받은 '브라운 신분의 모험'이 아마 이곳의 책이었었던 듯, 그때의 기억에 남은 향기와 유사하여 늘 책이 오면, 또 책을 읽으려고 할때마다 책을 열고 종이냄새를 맡곤 한다. 기억이든 추억이든 시간이 흐른 후의 많은 것들은 그들을 다시 떠올릴 때, 그 돌아올 수 없음에 고통과 향수와 아련함을 준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쉽게 비잔틴제국의 마지막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에 큰 점수를 줄 수 있다. 유명한 정치인인 저자는 덕분에 인세를 꽤 벌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분명히 더 학술적으로 깊이 들어간 책을 읽어야 한다.


2015년에 시작되어 무척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일이 결국 다 허사가 되었다. 사람이란 건 물건이나 다른 무엇보다 다루기가 어려운데, 여기에 COVID-19까지 겹친 탓도 있지만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주말에 잘 쉬면서 regroup하고 다시 열심히 일할 열정을 찾아야 한다. 많이 실망스럽고 특히 사람에게 실망하는 건 단순히 그 문제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이슈로 인한 것인데 이런 때일수록 내 자신을 잘 추스려야 한다. 물론 기분이 나쁘고 입맛이 쓴 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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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마지막 주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이번 달 독서는 저조하다. 보통 주말에 회복하는 것을 기점으로 마중물이 부어지고 다시 치열하게 책을 읽는 것에서 생활의 의미를 찾곤 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9월은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이번 주에 마무리를 계획한 것들이 거의 다 처리되었고 다시 다음의 phase로 나아가는 그 중간의 지점에서 잠시 조금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저조한 성적이지마 어쨌든 또 조금이나마 쌓이 책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요즘 무슨 애교점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눈물점'은 흔히 눈밑에 있는 작은 점이다. 예전에 관상학에서는 보통 이를 성적인 분방함이나 요사스런 기운으로 봤던 것 같은데, 여기서도 그와 비슷한 의미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물점'에 얽힌 이야기는 하지만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전체적인 구조상으로는 지극히 일본스럽고 주술기가 다분한 concept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서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 주로는 아주 기괴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버리는 것으로 봉인한다는 것이 중심. 추리소설도 재미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기담집은 늘 이렇게 익숙하다면 익숙한 세계관에 기대어 즐겁게 펼쳐진다.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도 일본스러움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가끔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서 그저 이야기를 즐기는 건 나쁘지 않다. 



간간히 나오는 이 시리즈를 사들이면서 읽고 있다. 의외로 앞서 번역되지 않았거나 소개가 되지 않은 일본의 추리소설, 주로는 다이쇼에서 쇼와 시대의 작품들을 가져오는 것이 참 좋다. 아주 고전적이고 너무도 오래된 시대의, 서양풍을 따라가고 배우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며 꽃을 피우던 이 시대는 식민지가 되어버린 우리에게는 마치 잃어버린 한 세대의 그것과도 같아서 아쉬움과 화를 함께 갖고 일본을 바라보게 하지만. 그래도 요즘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고풍스러움이 배어있기에 다소 지루한 면도 있고 번안소설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 시절의 소설들은 그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있다. 상당히 신선한 발상이 눈에 띄었지만 이런 저런 장치를 다 떼어내고 나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만큼 치밀하지 못했던 탓에 이미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혐의자를 지목할 수 있었다. 비록, 정확한 전개를 유추하지는 못했지만. 막판의 반전은 나름대로 특이했지만.


저자가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썼다고 한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은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 몇 권을 연달아 읽었으나 큰 감흥은 없었는데, 이번의 이야기는 훈훈하고 예쁘고 아련하다. 아직 사랑이나 남녀의 차이를 알지 못하던 나이에 느끼는 윗 친척누나에게 느끼는 묘한 감정과, pre-teen이 될 무렵 도시에서 이주해온 여자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의 시기와, 공부를 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머리가 커져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과 이해까지 상당히 잘 쓰인 것 같다. 공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닌 그런 묘사까지 모두. 역시 일본의 작가들은 신변잡기를 가져올 때 가장 빛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유달리 이 나라의 작가들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에서 시작해서 창작으로 방향을 잡고 쓰는 걸 잘하는 것 같다. 박경리 선생님은 매우 혹평을 한 전통이지만 나는 좋아한다. 


사실상 허명에 속아서 산 책. 모씨에 대한 글을 보고 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리서치 자체만 놓고 보면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답게 상당히 치밀하고 논리적이지만 비약과 무리한 연결이 심하여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이야기로 보았다. 굳이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닌 것 같고 특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한 이유는 이 책에 면면히 흐르는 논리가 친일-반공-독재부역세력이 지금까지도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책을 썼는지, funding은 어디서 나왔는지. 저자는 대학교의 총장을 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성공을 했고 학자로서도 상당히 높이 올라간 사람인데, 배운 사람들일수록 가진 자들일수록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야비하고 비열한 언론과 검찰, 그리고 People's Garbage Party - 이제부터 그들을 나는 PGP로 부르기로 했다. 여기에 늘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면서 돈을 벌어온 끝에 지금의 지경에 이른 진석사, 그를 중심으로 한 회계사와 의학자와 무엇들을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는 생각을 한다. 책도 잘 쓰고 의견도 좋고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어떤 선생이 특히 그와 함께 작당하여 책에 이름을 올리고 괴상망측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며 관종짓을 하는 걸 보는 건 고통이기까지 하다. 진석사야 원래 그런 사람이 더 나빠진 것이고 염치도 없고 체면도 없이 내놓고 사는 망상가이자 똥묻은 개만도 못한 거지발싸개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여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하던 걸 하면서 좋은 모습을 유지하려면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 기합을 넣고 다시 한번. 띠를 꽉 묶어!! (이건 자신에게 늘 하는 일종의 다짐과도 같고 내가 스스로에게 거는 주술과도 같은 말이다).


이 두 권의 책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할 말이 남아 있지 못하다. 읽을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떤 말을 할 만큼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저 완독한 책의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가보다. 너무도 부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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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우라에 대해 뭐라 하셨을지 궁금했는데요... 아아....
저는 아우라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아서 트랜님의 감상을 읽어보려 했는데......
그렇다면 제가 읽고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불끈!)

transient-guest 2020-09-25 23:10   좋아요 0 | URL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용이 뭔가를 쓸만큼 잘 떠오르지 않네요 ㅜㅜ

2020-09-26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0-09-27 09:30   좋아요 0 | URL
제 닉네임이 그래요.ㅎㅎ 그저 스쳐가는 길손 같은 그런 뜻으로 사용합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의 YouTube방송을 재미있게 보다가 책을 몇 권 구했다. 그 중 하나를 읽고 있는데 그가 말한 '대단하고 흥미있는'건 잘 모르겠고, 기계적인 중립과 학술적인 목적으로 역사의 중요한 테제들을 건너뛰고 함부로 재단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조금 그에 대해 찾아보니 일단 자신에 대한 포장이 무척 과장된 점, 그렇게 유명세를 타고 TV에서 독설을 날린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이동진 등 몇몇과 함께 하던 책 방송에서 뭔가 아는 척으로 가득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이 사람의 목소리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 실망감이란.


1. NYU는 분명히 명문대학교가 맞다. 다만 이곳을 나왔다고 해서 미국을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미국에 살때' 혹은 '미국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그렇지 않다'를 남발했던 걸 기억한다. 들으면서 참 뻥이 심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지방에서 낮은 등급의 대학을 나오더라도 대학원을 잘 가면 좋은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 구조의 미국, 그러니까 대학 이후의 삶이 출신대학 이상 중요한 나라에서 고작 NYU를 나왔다고 그리 잘난 척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2. 이건 다른 글에서 본 건데, 그가 심심하면 들먹이는 소르본느 대학 이야기. 소르본느 대학의 적응과정이라는 것을 나왔다고 심심하면 얘기하는데, 알고 보니 어학당 같은 걸 다닌 정도. '수료'라는 말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과거 학교를 다니다가 형편상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던 한국에서나 그렇지 사실 중퇴나 수료는 큰 의미가 없는 표현이다. 어학당을 수료한 주제에 입만 열면 소르본느를 강조하되, 절대로 뭘 했는지 어떤 공부를 했는지 말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방의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치밀함이라니. UCLA 어학당을 다닌 사람이 뻑하면 '내가 UCLA다닐 때'를 남발하면 딱 이런 꼴일 것이다.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우려먹는 학교가 아마 줄리어드 음대도 있는 것 같은데 청강하고서 줄리어드를 팔아먹는 것도 이 사람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런 식으로 유명세를 탔고 책도 많이 썼는데 기실 그리 대단한 책은 없고 자계서의 언저리 수준에서 와리가리 하는 정도. 방송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그 시대의 교육이 그랬는지 아무튼 대단히 실망스러운 건, 내가 그의 추천으로 책을 샀다는 거다.  


이런 사람은 평생 하던 짓을 하면서 살 것이니 그저 멀리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에이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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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0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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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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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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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0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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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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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0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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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1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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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0-09-1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에이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