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나니, 제목이 조금 우습다.  마치 무엇인가 있어보이려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 아는 제목이다.  그저, 그간 읽은 책들을 몇 개 엮어서 페이퍼에 남기려는 것인데 매우 자주 쓰는 '간략한'으로 시작되는 제목보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퍼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리뷰의 제목을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쉽다.  책 한 권을, 그 책에 대한 느낌 또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글제목을 생각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리뷰위주로 (사실 페이퍼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글을 남기던 것이, 이제는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꼭지를 정하는 것도 쉽다는 편리함에, 페이퍼를 더 자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갔지만, 결국, 이것은 또다른 '간략한' 리뷰의 모음이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이라는 시골 출신의 미국 글쟁이가 20년에 가까운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뉴햄프셔주의 하노버라는 곳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대략 1996년경의 이야기인데, 책으로는 1999년에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걸출한 글쟁이는 그의 위트있는 입담과 넓은 지식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다수의 책이 '발칙한' 또는 '빌 브라이슨의'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고,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교포사회에서도 책을 좀 읽었다거나 하이킹/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씩은 읽었음직한 작가인데, 내가 그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그리고 이형렬/한윤경의 팟캐스트에서 다루어지던 그를 기억해서 최근의 중고구매때 몇 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람.  아마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지하게 웃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국의 삼대 내지는 오대에 들어가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다.  생긴지는 한 백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지나는 구간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3,360 km에 달한다.  시설이라고는 중간에 나오는 그야말로 기둥에 지붕을 얹은 정도의 넓은 합숙공간, 그리고 간혹 보급품을 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산장이 전부인데, 이곳을 완주하는데에는 약 반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는 어릴적 친구 - 사고뭉치 - 와 함께한 그의 여행은 트레일의 약 40%를 커버하는데 그쳤지만, 그 와중에 자연과 인간, 개발, 보전, 안전, 동물, 등등...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트레일을 건너면서 느낀 그의 생각,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재미있은 에피소드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가끔은 살짝 서글픈 감성을 자아낸다. 

 

예전부터 백두대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백두대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한 트레일이 여기에, 존 뮤어 트레일과 오레곤 트레일과 함께 (서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일단 동네의 뒷산이나 파크부터 확실하게 정복하고 꿈꾸어도 되겠지 싶다.

 

옥의 티라면, 내가 읽은 버전이 예전의 판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번역이 좀 별로였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거슬렸고, 직역과 의역을 일정한 틀없이 오가는 부분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번역을 한 홍은택이란 분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 읽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과 동일한 분인듯.  번역을 못했다기보다 상업적인 번역이라면 조금 더 신경써서 번역하고 수정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2008년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언제 보아도, 남성의 과점과는 확실히 다른, 여성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성, 사회, 사랑, 직장, 결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perspective를 준다.  물론, 너무도 여성의 눈으로 비춰진 사회상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들을 모아놓은 두 책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다룬 단편들과 겹치는 것들도 조금은 있는 듯.  

 

뭐랄까, 서울 그리고 여자/부부라는 주제를 마치 두부나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나오는 여러 단면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그의 단편들은 2000년대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황폐화된 사회상이라고 하겠고, 혹자는 썪어가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나름대로의 적응이라고 하겠지만.  때로는 raw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인 비판같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읽는 사람 나름대로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흑임자 김중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악기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김중혁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음악매장 주인, 여러 가지 잡지들의 기자 etc., 이런 경험들, 특히 음악/악기관련의 일에서 나온 발상을 단편으로 구현한 것 같다. 

 

작가 본인이 늘 이야기하듯이, 글에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하는 말인데, 읽는 사람으로써는 그리 가까이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위한 책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번 작품집 역시,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특이한 주제를 특이하게 엮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미 흑임자로서 얻어진 명성(?) 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만큼의 가까움 때문일까, 특별히 탓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김중혁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기괴(?)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농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흑임자 버전의 그와 히키코모리 같다는 글을 쓰는 작가 버전의 두 가지 charact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 '빨책'에서 실시간으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인 적이 있는데, 목소리의 톤부터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은,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중혁 작가라는 character 그 자체와 함께 버무려 무엇인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작(?)들을 구해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페이퍼를 다 쓰고 나니, 글이 매우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지금 읽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보고서 따로 모아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써버린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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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4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셨으면 다음에 그 작가들 이야기 또 써 주셔요~

transient-guest 2013-02-14 09:33   좋아요 0 | URL
네!ㅎㅎ
 

 

 

 

 

 

 

 

 

 

 

 

 

 

 

 

21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이제 5권밖에 남지 않았다.  첫 몇 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캐릭터에 익숙해진 - 혹은 길들여진 - 탓인지, 아쉽기가 그지 없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라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 뤼팽의 주업무이지만, 그 이상, 뤼팽은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모험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뤼팽의 활동 초기에는 도둑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모습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 수사관, 탐정, 귀족, 모험가, etc - 기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양산해낸다.  긴 스토리의 장편 에피소드도 좋지만, 16권에서처럼 특정시기, 특정인으로 활동했던 뤼팽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더 흥미있게 읽힌다. 

 

이제 뤼팽을 다 읽고나면 캐드팰과 엘러리 퀸, 그리고 동서추리문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모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책장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우게 될 것인데, 그렇게 모아놓고 추운 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jazz를 틀고, 된장질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낮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의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처럼 두꺼운 커튼을 내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촛불 가득한 서재에서의 reading도 좋겠다.  무엇인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듯한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성향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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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고구매로 김영하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책에 조금 굶주려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수행의 큰 결과물은 김영하의 초기작품들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구매했다면 좀더 나은 녀석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로서, 상태는 최상으로 구했지만, 커버가 없이 왔다. 일단, 이 책은 내 기억에는 다섯 권으로 다시 엮어 새로 나온, 그러나 대부분 예전에 다른 이름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었던 글을 모아 뽑아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글은 낯이 익고, 한 두 개 정도만 내가 읽지 못한 그의 글인 듯 하다. 하루키의 글은 이제는 매우 친숙하여, 꼭 옛날 친구를 간만에 만나 한잔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언제 읽어도, 아무리 재탕이어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신선하다. Haruki-ism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아니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결과물인 현재의 그가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맥주-위스키, 그리고 재즈를 섞어내는 풍류를 가진 글쟁이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엿보는 것만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것으로 내가 본, 그리고 가지고 있는 하루키의 책은 모두 51권 40작품이 되겠다. 하루키의 전작을 결심한 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약 일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눈이 띄면 예전의 판본들도 모두 구해볼 생각이다.  정말이지 난 하루키의 그리 철학적이지 않는 담론과 술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행은 확실히 지난 작가인 듯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90년대인가 하루키의 책이 한국 서점가를 휩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읽으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의 나이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2009년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 라고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벌써 2013년이니, 나오고나서 은근히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인 셈이다.  

 

무엇인가 묵직하지만, 이것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결론짓게 되었는데, 여행기는 가급적 좋은 작가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에 고플때에는 여행기를 읽어왔는데,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벼운 글, 심지는 2-3페지당 그림 페이지가 하나씩, 그리고 사진 페이지가 하나씩 섞여 찍힌 책들도 은근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가볍게 읽고 여행에 대한 주림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 다시 펴보게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 하루키, 괴테, 카잔차키스, 그리고 김영하까지 - 볼 때, 작가들의 여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작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괴테나 카잔차키스는 여행기 자체가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고, 하루키나 김영하는 아직 그 정도의 무게를 - 세월의 검증이 어느 정도 필요한 -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와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 그것도 자유롭게 매우 보헤미안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사실 재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성공'이라는, 아니 사실 '성공'에 함께 오는 '돈'과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재벌도 - 그러니까 이건희 같은 사람도 -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다 털고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살거나, 여행을 빙자한 자유로운 떠남을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시간적인, 아니 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9-to-6의 직장인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의 이 책은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과 일견 오버랩 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엄연히 김영하라는 사람의 세계 - 하루키와는 매우 다른, 다소 어둡기까지 한 - 가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구현되고 있느니만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군데군데 보이는 그의 위트나 성찰에 따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고 하겠다.  예를들어: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던가...나는 미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가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라는 말을 보고 밑줄을 그었는데, 마치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이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들 외에도 몇 군데, 엎드려 책을 보느라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밑줄을 긋게 한 구절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멋과 맛을, 그의 사진과 함께 느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이는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은 작품이니, 책이 처음 나오고나서 강산이 한번 바뀐 셈이다.

김영하의 가벼운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하루키만큼 가볍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8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고 김영하라는 이름안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그의 background,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온 내용물이 하루키와는 도저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넘어서 하루키가 속한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6-10항쟁세대와는 좀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매우 짧은, 그러나 김영하에 의한, 김영하의 이야기들로 잘 엮어진 이 책을 구한 것도 중고서점을 이용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역시 엎드려서 읽느라 밑줄을 거의 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삐삐에 대한 이야기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등하교를 다니던 무렵의 한국에서는 또래들이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계를 만들기까지 했었는데, 정작 나는 대학교때 잠깐 쓰다가 말았다.  이곳에서의 그리 넓지 못했던 인간관계상 삐삐가 올 곳도 별로 없었기에 대부분 있으나마나 할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이는 cellphone을 가진지도 오래인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나의 일상이다.  사라진 공중전화박스만큼이나 옛스러운 삐삐 이야기, 2002년,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아마 삐삐가 뭔지도 모를거야라고 했는데, 2013년의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pager가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 

 

간만에 편하게 여러 권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게는 고전문학은 아직도 즐거움에 비례한 고통스러움을 줄 때가 있는 때로는 엄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같이 어울려 시시껍적하고, 때로는 다소 야한 농담을 욕과 버무려 주고 받으며 한잔 꺾을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들인 것처럼, 책도 그렇게 여러 녀석들을 읽으며, 또 한 주말을 보냈다. 

 

그 외에도, 잠깐 짬을 내서 logos에 가서 '아름다운 그림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생애'라는 전기와 앨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스탄 갯츠,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영화 sideways의 CD를 샀다.  물론 모두 중고로...하나씩 까먹을 것들이 널려있어 항상 즐겁다, 아무리 일상이 지루하거나 stressful해도 말이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화를 내게서 모두 빼앗아간다해도 책들만 남겨준다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PS 까먹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도 읽었다  지난 주에...

주디의 이야기가 아닌, 대학친구, 주디가 살던 고아원의 경영을 맡게 된 친구의 이야기.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야 알게 되었다.

진 웹스터가 Gene Webster (남자이름)인줄 알았더니 Jean Webster (주로 여자이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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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2-05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김영하, 저도 좋아해요. 다만 하루키는 산문만 좋아합니다.^^;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도 포스트잇도 가볍게 정말 엎드려 읽기 좋았던 그 느낌이 기억납니다. 꼭 고전이 아니어도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3-02-06 02:29   좋아요 1 | URL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방편으로써의 독서보다 더 근간에 있는 책읽기 그 자체로써의 즐거움이란 말이죠.ㅎ 그런데, 왜 하루키의 산문만 좋아하는지요? 혹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궁금해서요.ㅎㅎ

blanca 2013-02-06 16:20   좋아요 1 | URL
저는 하루키의 그 무언가 엽기적인--;; 본인도 자기의 생활이나 성격과는 너무 다르다고 얘기한 그 요소가 안 맞아요. <상실의 시대>도 몇 번이나 제대로 읽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답니다. 그 이후로는 사실 진지하게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성급하게 그의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은 너무 좋아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6 23:41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듯 하네요. 좀 나쁘게 말하면 변태적일때가 있다고 봐요, 저는.ㅎㅎ 그게 하루키탓인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묘사나 의식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2-07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가 소련이 해체되고 80년대 무용담을 지겨워하기 시작한 청년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죠.그래서 우리나라 후일담 소설과 하루키 소설이 공통점이 있다고 평론가들이 말하는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7 23: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사실, 하루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90년대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1   좋아요 1 | URL
그때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죽 계속되고 있죠.몇 년 전 <아이큐84> 번역 놓고 출판사간 경쟁이 치열했으니까요.<상실의 시대>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번역본 중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9 23:55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하기사, 상실의 시대는 최근에 소위 완역판이라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하루키라는 작가의 저력이 새삼 느껴지네요. 어떤 보편성도요.

노이에자이트 2013-02-1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요.센카쿠 갈등으로 일중 관계가 안 좋았던 지난 여름 하루키가 우려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양국은 갈등 중이네요.

transient-guest 2013-02-12 09: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일본의 팽창정책하고 미국의 대중노선/대북노선하고 맞물려서 앞으로의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듯 합니다. 한일관계도 한중/한러관계와의 역학관계까지 생각하면 정말 다각적이라고 보는데요. 정말 복잡하기만 하네요.
 

천천히 읽던 몇 권의 책들을 마무리했다.  바쁜 지난 3주간이었는데, 이번 주말까지의 일로써 모두 끝났다.  이번 주는 조금 숨을 돌리고, 청소도 하면서, 그간 좀 마구 다룬 내 몸을 아껴주어야겠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줘도, 먹는 것이 나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마구 부어버린다.  역시, 이제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다른 부분의 생활도 더 신경을 써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젊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물론 신체적인 젊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안 먹는 것은 아닌 것이다. 

 

1차대전이 조금 지난 후, 스페인 명가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뤼팽은,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괴도행각 대신, 무려 정의를 위해 유산상속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주력한다.  

 

영국인답게 냉철한 추리와 신속한 행동, 그리고 기계같은 감정조절로 실수가 거의 없는 홈즈와는 달리, 역시 프랑스인다운 감성과 흥분하기 쉬운 열정으로 뤼팽은 종종 실수를 하고, 심지어는 죽을고비도 수 차례 넘기지만, 결국에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을 손에 넣는다.  물론 그 댓가로 2억프랑의 유산상속은 포기하겠지만...

 

한 가지 웃긴 것은, 작가서문인데, 이 시기의 모리스 르블랑에 따르면 뤼팽은 극우에 보수주의자, 다시 말해, 완벽한 자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말이다.  괴도 뤼팽이 극우에 보수주의자라니...

 

 

 

 

 

 

 

 

 

 

 

 

 

 

양귀자라는 작가는 사실 다른 작품 - 아마도 영화화 되었던 그 책 - 을 통해서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 '원미동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막바지인 1986년을 전후해서, 이미 서울의 bed town으로 전락하던 부천의 원미동, 한 구석의 그저 그런 여러 이웃들의 삶을 통해 때론 즐겁고, 때론 행복하지만, 대체로 많이 고단하던 서민들의 삶을 이웃과의 interaction을 통해 조명한 작품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들 상당부분이 딱 이 정도,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그 만큼의 모습이라서, 요즘의 도심을 무대로 하는 소설들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졌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뀐지 오래인 그 동네의 모습에서 작품이 쓰여지던 당시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다.  지금도 기억하는 부천의 모습은 중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져있던 20층 아파트들의 공사모습인데, 아피아 가도 양옆으로 매달려 있었다던 스파르타쿠스와 검투사노예들의 처형모습이 떠올랐더랬다.  철골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형틀이 끝없이 서있던 그 모습이, 어쩌면 서울을 둘러싼 대다수의 도시서민들의 삶의 모습일런지도.

 

내가 기억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기본구조는 같으나,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 명작만화버전으로 보았던 스토리는 훨씬 더 elaborate해서 스토리를 펼쳐놓았던 것 같은데, 원작은 사실 매우 빨리 움직인다.  주로 주디의 편지를 통해 전개되는 스토리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보는데, 예를 들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당시, 그리고 소설의 무대가 유럽이 아닌 미국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명작동화의 무대는 유럽이었으니까.

 

요즘의 눈으로 보면 조금 웃긴 것이 사실, "키워서 데려가는" 뭐랄까, 미연시나 라이트 노벨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데,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작가는 아쉽게도 속편까지만 쓰고 서른이 채 안된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남아서 많은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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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부천은 소사라고 했는데 복숭아가 유명했지요.요즘은 복숭아 과수원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2 00:41   좋아요 0 | URL
송내, 소사, 부천 일대는 다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근방에서 산이나 들판을 본 지도 꽤 오래전의 일인 듯 합니다.
 

 

스타크래프트는 국민게임이라고 할 만큼 널리 퍼진 게임이다.  특히 전작인 StarCraft와 StarCraft: Brood War은 거의 십 여년 이상이나 한국의 게임 및 기간산업 - PC방, PC, 중계 - 을 키웠다고까지 회자되는데, StarCraft 2는 그 정도의 impact는 없지만, 여전히 프로리그의 게임시합이 이루어지고 중계되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역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게임도 좋아하지만, 그 보다는 책을 더 좋아한다.  더구나 나이가 들고, 시간이 없어지면서 게임을 하는 시간은 매우 줄어들어, 거의 play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책읽기는 보다 더 간편한점도 있고, 휴대성도 좋아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StarCarft는 게임만큼이나 소설도 재미있는데, 그간 여러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게임속의 에피소드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바 있다.  

 

이번의 StarCraft 2: Flashpoint에서는 - 실제 게임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전작 초반 Terran미션에서 Mengsk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후, Zerg의 Queen으로 다시 태어났던 캐리건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직후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게임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Zerg와 Protoss를 만든 고대인, Xel'Naga라는 종족이 있는데, 이들은 뛰어난 과학력을 가졌던, Protoss에게는 신과도 같은 신비의 종족이다.  관련소설에서는 항상 그들의 유물과 유적은 신비의 대상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서는 이 유물이 캐리건을 다시 인간으로 만든 것으로 설정되었다. 

 

사실 이런 소설들의 내용은 그저 joyful하게 읽기에 좋은 것이고, 어떤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속에서 본 인물들이 보다 더 생생하게 구현되는 것, 그리고 게임상의 간략한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상상에 의해 재구성되어 훨씬 더 흥미로운, 복잡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을 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생각된다.  얼마나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는지 모르겠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런지도 모르겠지만 - 사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들이다.

 

 

 

 

 

 

 

 

 

 

 

 

 

 

 

 

 

 

 

 

 

 

 

 

 

 

 

그리 많은 작품이 눈이 띄지는 않는다.  그래도 위의 archive에는 4권의 책이 합본으로 나와있는데, 늘 말하지만, 이 책들에서 사용되는 영어는 초급수준이라서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겠다.

 

게임도 재미있고, 책도 재미있지만, 어쩌면 현실은 더욱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이 게임 덕분에 일세대 신주영이나 쌈장 이기석을 필두로 수많은 프로게이머가 나왔고, PC보급율도 높아졌고, 인터넷도 더 활성화 되었지만, 진짜 드라마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테란의 황제 임요환.  다른 유명한, 일세를 주름잡았던 게이머들도 많고, 나름대로 한 시기를 주름잡은 홍진호, 강민 같은 선수들도 있지만, 모든 선수들이 다 주목받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일세대 신주영처럼 게임때문에 흥했다가 게임때문에 망한 경우, 더 심하면 M모 게이머처럼 도박에 연루된 승부조작때문에 형사법 처벌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임요환은 그러나, 잘 살고 있다.  사실 고등학교때까지 운동도 공부도 뭐에도 재능을 보이지 않던 한 소년이, 이 게임을 접하면서 인생이 바뀐 것인데, 천재라면 천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 동안 종족간의 상성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던 테란 종족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당시만해도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과 dropship의 활용으로 한때 황제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을만큼 멋진 플레이를 보인 그는, 군대도 잘 다녀오고, 탤런트도 만나고, 커피전문점을 경영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탤런트를 만나고 커피전문점을 경영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굳이 StarCraft 2 리그에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것 같고, 적당한 때 잘 물러나서 - 군대를 다녀온 후 실력이 좀 떨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경쟁도 심해졌었고 - 사는 것을 보면서, 정말이지 게임보다, 소설보다도 재미있는 것이 우리들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싶다. 

 

마침 바쁜 케이스도 그럭저럭 마무리되어 가는데, 이번 주말에는 간만에 스타나 한판 때려(여기서는 이 표현이 딱 맞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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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1-2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는 역시 샌님들이 많아서 게임에 관한 글에 댓글이 없군요.하하하...

토요일 케이비에스 프로그램인 '두드림'에 게임 고수인 작가 이인화 씨가 나와서 이야기하던데 재밌었어요.개그맨 양세형과 아주 죽이 잘 맞더군요.

소설을 게임으로 만든 것으로는 톰 클랜시 <레인보우식스>가 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3-01-28 23: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는 2004년인가에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중계/재방송을 보았어요. 정말 대단하더군요. 은근히 재미도 있고. 그러면서 소설도 더 읽어보고. 아무래도 게임세계를 소설로 구현한것을 보고나면 무엇인가 더 생동감있게 전달이 되더라구요.
레인보우식스도 말씀보니 생각이 나네요. 톰 클랜시는 참 다작이죠. 이 사람도 초기작들이 더 재미있어요. Patriot Game이나 Clear and Present Danger같은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