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인데, 색이 유치하게 화려한 본이 내가 가진 초기본이고 좀더 심플하게 디자인 된 옆의 것이 다음에 나온 본이다.  지금은 둘 다 절판되었고, 나 역시 이 시리즈는 중고로 구매해서 읽었다.

 

어제부터 조금 한가했어야 하는것을, 별로 영양가 없는 미팅때문에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잠깐 나왔어야 했다.  그 덕분에, 주말이 짧아진 것을 President's Day 연휴로 살짝 땜질이 되어, 오늘은 본가에 돌아와서, 아파트에서 들고온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고 있다.  연초부터 한 동안 소설을, 그것도 현대소설을 위주로 책을 읽었더니 슬슬 조금 지겹기도 하고 -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아무리 잘 읽던 것도 조금 물리기 마련이다 - 해서, 비판적인 읽기랄까,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 그간 모아놓은 장정일의 독서후기를 꺼내어 놓았다. 

 

새삼 느끼지만, 참으로 많은 책을 무지막지하게 읽어 내려간 흔적이거니와, 비교적 세심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자기의 평과 느낌을 갈겨내려간 기록은 '독서일기' 일곱 권, '빌린책...' 두 권, 그리고 '공부' 한 권 이렇게 모여있다.  다뤄진 책만 해도 필경 천 권은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의 시작인 93년도에 처음 나온 장정일의 첫 독후감 모음집인 셈.

 

그의 신랄한 비판이나 찬사를 받은 수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좀 신경쓰이게 한다.  단순히 내 독서가 좁다 넓다를 떠나 출판되고 나서 이십 년을 채 살아남지 못하는 책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상당히 많은, 장정일이 93년을 전후하여 읽은 책들 중,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들을 보면, 제목은 커녕 저자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독서력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그 이상, 한 권의 책, 또는 하나의 작가가 timeless classic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사실, 책에 대한 생각을 쓰려고 여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이번에는.  예전에도 다른 곳에서 본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되면서 서재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그 전에 한번 페이퍼에 쓴 적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만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애시당초 페이퍼나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읽은 것을 덜 까먹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츠바이크의 '어떤 정치적 인간의 초상'의 후기를 보고 좀 짧게 고쳐 올린 것이다.  즉 내가 정리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요제프 푸셰라는 인간이 있었더랬다.  1759년에 낭트란 도시에서, 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수도원 부속학교의 교사로 전전하다가 "이런 저런 기만"으로 구민들을 속여 32세의 나이에 프랑스 혁명의 권력중추였던 국민회의의 대의원이 된다.  처음의 소속은 온건파였지만, 로베스 피에르의 급진파가 권력을 잡자, 바로 (1) 급진파로 변신한다.  그 후, 로베스 피에르의 실각 후에는 (2) 5인 집정내각을 조종하여 (3) 나폴레옹에게 권력을 내준다.  나폴레옹이 제정을 부활시킨 후 푸셰는 (4) 오토라토 공작에 봉해지는데,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연패하자, (5) 다시 나폴레옹을 실각시키는 음모로 그를 밀어낸다.  그 후 (6)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다가, 다시 루이 18세 (푸셰가 포함된 400인 투표로 목이 잘린 루이 16세의 동생) 에게 프랑스를 넘긴다.  

 

장정일은 이 책의 후기를 쓰면서 푸셰만큼이나 다양한 정치행보와 변신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늘리고 종국에는 갓 싹이 트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밟고 18년간의 왕정을 이어간 다카키 마사오의 커리어를 오버랩 시킨다.  이 책을 쓰던 93년 당시는 이인제가 김영삼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인데, 88년에 통일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데뷔한 그의 정치적 행보와 변신이 원조격인 푸셰를 능가하게 될 줄은 장정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로, 지금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면, 장정일은, 아니 나라면, 마사오 보다는 이인제의 - 심지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정치력 - 변화무쌍함이 푸셰의 그것과 더 오버랩 시키게 될 것이다. (이 책도 품절이다. 아무튼 책이 마구 나왔다가 빨리 사라지는 한국의 출판문화는 내 큰 불만의 대상이다) 

 

이인제의 연표는 (1) 통일민주당, (2) 민주자유당, (3) 신한국당, (4) 국민신당, (5) 새정치국민회의, (6) 새천년민주당, (7) 자유민주연합, (8) 국민중심당, (9) 새천년민주당, (10) 통합민주당, (11) 무소속, (12) 자유선진당, (13) 선진통일당, 그리고 (14) 새누리당인데, 그야말로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말이 딱 이인제를 두고 한 말 같다.  이놈의 지분정치...

 

언제나 '승자'의 편에 있지는 않았고, 시대를 쫓아가는 기민함도 떨어지지만, 이인제를 비롯한 이런 '정치적 인간'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매우 공감하게 되는 촌철살인의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을때 여러 가지 이유로 밑줄을 긋지 못한 부분들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표시해 놓으리라 했건만.  어떻게, 지난번과 똑같은 부분을 똑같은 이유로 놓치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자 혹은 자를 대체할 책갈피가 없다던가, 화장실 변기 혹은 gym의 자전거에 앉아있을때에만, 밑줄 긋고 싶은 페이지와 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딱, 그때와 같은 그 부분들, 한 두 개도 아닌 그 부분들을 읽을 때,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렇게 무엇인가 모자랐더랬다.  여전히 줄을 긋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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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1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셰 저 사나이 결국 권력 줄타기하다가 마지막에 줄에서 떨어지죠.워낙 적이 많아서 늘 견제당하기도 했고요.술수로 흥한 자 술수로 망하죠.

transient-guest 2013-02-19 23: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지금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네요. 계속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요...
 

써놓고 나니, 제목이 조금 우습다.  마치 무엇인가 있어보이려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 아는 제목이다.  그저, 그간 읽은 책들을 몇 개 엮어서 페이퍼에 남기려는 것인데 매우 자주 쓰는 '간략한'으로 시작되는 제목보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퍼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리뷰의 제목을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쉽다.  책 한 권을, 그 책에 대한 느낌 또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글제목을 생각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리뷰위주로 (사실 페이퍼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글을 남기던 것이, 이제는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꼭지를 정하는 것도 쉽다는 편리함에, 페이퍼를 더 자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갔지만, 결국, 이것은 또다른 '간략한' 리뷰의 모음이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이라는 시골 출신의 미국 글쟁이가 20년에 가까운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뉴햄프셔주의 하노버라는 곳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대략 1996년경의 이야기인데, 책으로는 1999년에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걸출한 글쟁이는 그의 위트있는 입담과 넓은 지식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다수의 책이 '발칙한' 또는 '빌 브라이슨의'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고,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교포사회에서도 책을 좀 읽었다거나 하이킹/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씩은 읽었음직한 작가인데, 내가 그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그리고 이형렬/한윤경의 팟캐스트에서 다루어지던 그를 기억해서 최근의 중고구매때 몇 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람.  아마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지하게 웃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국의 삼대 내지는 오대에 들어가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다.  생긴지는 한 백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지나는 구간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3,360 km에 달한다.  시설이라고는 중간에 나오는 그야말로 기둥에 지붕을 얹은 정도의 넓은 합숙공간, 그리고 간혹 보급품을 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산장이 전부인데, 이곳을 완주하는데에는 약 반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는 어릴적 친구 - 사고뭉치 - 와 함께한 그의 여행은 트레일의 약 40%를 커버하는데 그쳤지만, 그 와중에 자연과 인간, 개발, 보전, 안전, 동물, 등등...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트레일을 건너면서 느낀 그의 생각,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재미있은 에피소드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가끔은 살짝 서글픈 감성을 자아낸다. 

 

예전부터 백두대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백두대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한 트레일이 여기에, 존 뮤어 트레일과 오레곤 트레일과 함께 (서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일단 동네의 뒷산이나 파크부터 확실하게 정복하고 꿈꾸어도 되겠지 싶다.

 

옥의 티라면, 내가 읽은 버전이 예전의 판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번역이 좀 별로였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거슬렸고, 직역과 의역을 일정한 틀없이 오가는 부분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번역을 한 홍은택이란 분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 읽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과 동일한 분인듯.  번역을 못했다기보다 상업적인 번역이라면 조금 더 신경써서 번역하고 수정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2008년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언제 보아도, 남성의 과점과는 확실히 다른, 여성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성, 사회, 사랑, 직장, 결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perspective를 준다.  물론, 너무도 여성의 눈으로 비춰진 사회상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들을 모아놓은 두 책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다룬 단편들과 겹치는 것들도 조금은 있는 듯.  

 

뭐랄까, 서울 그리고 여자/부부라는 주제를 마치 두부나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나오는 여러 단면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그의 단편들은 2000년대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황폐화된 사회상이라고 하겠고, 혹자는 썪어가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나름대로의 적응이라고 하겠지만.  때로는 raw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인 비판같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읽는 사람 나름대로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흑임자 김중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악기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김중혁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음악매장 주인, 여러 가지 잡지들의 기자 etc., 이런 경험들, 특히 음악/악기관련의 일에서 나온 발상을 단편으로 구현한 것 같다. 

 

작가 본인이 늘 이야기하듯이, 글에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하는 말인데, 읽는 사람으로써는 그리 가까이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위한 책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번 작품집 역시,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특이한 주제를 특이하게 엮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미 흑임자로서 얻어진 명성(?) 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만큼의 가까움 때문일까, 특별히 탓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김중혁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기괴(?)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농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흑임자 버전의 그와 히키코모리 같다는 글을 쓰는 작가 버전의 두 가지 charact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 '빨책'에서 실시간으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인 적이 있는데, 목소리의 톤부터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은,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중혁 작가라는 character 그 자체와 함께 버무려 무엇인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작(?)들을 구해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페이퍼를 다 쓰고 나니, 글이 매우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지금 읽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보고서 따로 모아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써버린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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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4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셨으면 다음에 그 작가들 이야기 또 써 주셔요~

transient-guest 2013-02-14 09:33   좋아요 0 | URL
네!ㅎㅎ
 

 

 

 

 

 

 

 

 

 

 

 

 

 

 

 

21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가 이제 5권밖에 남지 않았다.  첫 몇 권을 읽을때만 해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었는데, 이제는 작가와 캐릭터에 익숙해진 - 혹은 길들여진 - 탓인지, 아쉽기가 그지 없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라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 뤼팽의 주업무이지만, 그 이상, 뤼팽은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모험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뤼팽의 활동 초기에는 도둑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모습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 수사관, 탐정, 귀족, 모험가, etc - 기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양산해낸다.  긴 스토리의 장편 에피소드도 좋지만, 16권에서처럼 특정시기, 특정인으로 활동했던 뤼팽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더 흥미있게 읽힌다. 

 

이제 뤼팽을 다 읽고나면 캐드팰과 엘러리 퀸, 그리고 동서추리문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모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책장 하나 정도는 가볍게 채우게 될 것인데, 그렇게 모아놓고 추운 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jazz를 틀고, 된장질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아니, 낮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의 오귀스트 뒤팽과 화자처럼 두꺼운 커튼을 내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촛불 가득한 서재에서의 reading도 좋겠다.  무엇인가,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듯한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성향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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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중고구매로 김영하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책에 조금 굶주려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수행의 큰 결과물은 김영하의 초기작품들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구매했다면 좀더 나은 녀석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로서, 상태는 최상으로 구했지만, 커버가 없이 왔다. 일단, 이 책은 내 기억에는 다섯 권으로 다시 엮어 새로 나온, 그러나 대부분 예전에 다른 이름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었던 글을 모아 뽑아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글은 낯이 익고, 한 두 개 정도만 내가 읽지 못한 그의 글인 듯 하다. 하루키의 글은 이제는 매우 친숙하여, 꼭 옛날 친구를 간만에 만나 한잔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언제 읽어도, 아무리 재탕이어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신선하다. Haruki-ism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아니 그의 삶의 자세, 그리고 결과물인 현재의 그가 좋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맥주-위스키, 그리고 재즈를 섞어내는 풍류를 가진 글쟁이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엿보는 것만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것으로 내가 본, 그리고 가지고 있는 하루키의 책은 모두 51권 40작품이 되겠다. 하루키의 전작을 결심한 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약 일년 정도이니,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눈이 띄면 예전의 판본들도 모두 구해볼 생각이다.  정말이지 난 하루키의 그리 철학적이지 않는 담론과 술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행은 확실히 지난 작가인 듯 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다.  90년대인가 하루키의 책이 한국 서점가를 휩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인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읽으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어느새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저씨'의 나이를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2009년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 라고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벌써 2013년이니, 나오고나서 은근히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인 셈이다.  

 

무엇인가 묵직하지만, 이것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결론짓게 되었는데, 여행기는 가급적 좋은 작가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에 고플때에는 여행기를 읽어왔는데,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벼운 글, 심지는 2-3페지당 그림 페이지가 하나씩, 그리고 사진 페이지가 하나씩 섞여 찍힌 책들도 은근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가볍게 읽고 여행에 대한 주림을 달래기는 했지만, 사실 다시 펴보게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 하루키, 괴테, 카잔차키스, 그리고 김영하까지 - 볼 때, 작가들의 여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멋진, 작가의 내면에 가라앉은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괴테나 카잔차키스는 여행기 자체가 하나의 고전문학이 되고, 하루키나 김영하는 아직 그 정도의 무게를 - 세월의 검증이 어느 정도 필요한 -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깊이와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여행, 그것도 자유롭게 매우 보헤미안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사실 재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성공'이라는, 아니 사실 '성공'에 함께 오는 '돈'과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재벌도 - 그러니까 이건희 같은 사람도 -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다 털고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살거나, 여행을 빙자한 자유로운 떠남을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시간적인, 아니 심적인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9-to-6의 직장인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김영하의 이 책은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과 일견 오버랩 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엄연히 김영하라는 사람의 세계 - 하루키와는 매우 다른, 다소 어둡기까지 한 - 가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구현되고 있느니만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군데군데 보이는 그의 위트나 성찰에 따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라고 하겠다.  예를들어: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많은 지식인들이 할 수 없이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치 철학은 발전하지만 그때 발전한 사상들은 그 당대에는 별 쓰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라던가...나는 미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가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라는 말을 보고 밑줄을 그었는데, 마치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그대로 읽어내려가는 것 같이 느꼈다면 좀 과장일까?  이들 외에도 몇 군데, 엎드려 책을 보느라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밑줄을 긋게 한 구절들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멋과 맛을, 그의 사진과 함께 느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이는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은 작품이니, 책이 처음 나오고나서 강산이 한번 바뀐 셈이다.

김영하의 가벼운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하루키만큼 가볍거나 밝고 명랑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80년대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그리고 김영하라는 이름안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그의 background,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나온 내용물이 하루키와는 도저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대를 넘어서 하루키가 속한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6-10항쟁세대와는 좀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매우 짧은, 그러나 김영하에 의한, 김영하의 이야기들로 잘 엮어진 이 책을 구한 것도 중고서점을 이용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역시 엎드려서 읽느라 밑줄을 거의 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글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만큼, 삐삐에 대한 이야기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등하교를 다니던 무렵의 한국에서는 또래들이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계를 만들기까지 했었는데, 정작 나는 대학교때 잠깐 쓰다가 말았다.  이곳에서의 그리 넓지 못했던 인간관계상 삐삐가 올 곳도 별로 없었기에 대부분 있으나마나 할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고, 이는 cellphone을 가진지도 오래인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나의 일상이다.  사라진 공중전화박스만큼이나 옛스러운 삐삐 이야기, 2002년,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아마 삐삐가 뭔지도 모를거야라고 했는데, 2013년의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pager가 뭔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 

 

간만에 편하게 여러 권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게는 고전문학은 아직도 즐거움에 비례한 고통스러움을 줄 때가 있는 때로는 엄격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같이 어울려 시시껍적하고, 때로는 다소 야한 농담을 욕과 버무려 주고 받으며 한잔 꺾을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들인 것처럼, 책도 그렇게 여러 녀석들을 읽으며, 또 한 주말을 보냈다. 

 

그 외에도, 잠깐 짬을 내서 logos에 가서 '아름다운 그림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생애'라는 전기와 앨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스탄 갯츠,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영화 sideways의 CD를 샀다.  물론 모두 중고로...하나씩 까먹을 것들이 널려있어 항상 즐겁다, 아무리 일상이 지루하거나 stressful해도 말이다.  아마도 게임이나 영화를 내게서 모두 빼앗아간다해도 책들만 남겨준다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PS 까먹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도 읽었다  지난 주에...

주디의 이야기가 아닌, 대학친구, 주디가 살던 고아원의 경영을 맡게 된 친구의 이야기.  작가가 여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야 알게 되었다.

진 웹스터가 Gene Webster (남자이름)인줄 알았더니 Jean Webster (주로 여자이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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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02-05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와 김영하, 저도 좋아해요. 다만 하루키는 산문만 좋아합니다.^^;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도 포스트잇도 가볍게 정말 엎드려 읽기 좋았던 그 느낌이 기억납니다. 꼭 고전이 아니어도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3-02-06 02:29   좋아요 1 | URL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방편으로써의 독서보다 더 근간에 있는 책읽기 그 자체로써의 즐거움이란 말이죠.ㅎ 그런데, 왜 하루키의 산문만 좋아하는지요? 혹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궁금해서요.ㅎㅎ

blanca 2013-02-06 16:20   좋아요 1 | URL
저는 하루키의 그 무언가 엽기적인--;; 본인도 자기의 생활이나 성격과는 너무 다르다고 얘기한 그 요소가 안 맞아요. <상실의 시대>도 몇 번이나 제대로 읽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답니다. 그 이후로는 사실 진지하게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성급하게 그의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은 너무 좋아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6 23:41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듯 하네요. 좀 나쁘게 말하면 변태적일때가 있다고 봐요, 저는.ㅎㅎ 그게 하루키탓인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묘사나 의식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2-07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가 소련이 해체되고 80년대 무용담을 지겨워하기 시작한 청년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죠.그래서 우리나라 후일담 소설과 하루키 소설이 공통점이 있다고 평론가들이 말하는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7 23: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사실, 하루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90년대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1   좋아요 1 | URL
그때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죽 계속되고 있죠.몇 년 전 <아이큐84> 번역 놓고 출판사간 경쟁이 치열했으니까요.<상실의 시대>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번역본 중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3-02-09 23:55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하기사, 상실의 시대는 최근에 소위 완역판이라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하루키라는 작가의 저력이 새삼 느껴지네요. 어떤 보편성도요.

노이에자이트 2013-02-1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요.센카쿠 갈등으로 일중 관계가 안 좋았던 지난 여름 하루키가 우려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양국은 갈등 중이네요.

transient-guest 2013-02-12 09: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일본의 팽창정책하고 미국의 대중노선/대북노선하고 맞물려서 앞으로의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듯 합니다. 한일관계도 한중/한러관계와의 역학관계까지 생각하면 정말 다각적이라고 보는데요. 정말 복잡하기만 하네요.
 

천천히 읽던 몇 권의 책들을 마무리했다.  바쁜 지난 3주간이었는데, 이번 주말까지의 일로써 모두 끝났다.  이번 주는 조금 숨을 돌리고, 청소도 하면서, 그간 좀 마구 다룬 내 몸을 아껴주어야겠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줘도, 먹는 것이 나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마구 부어버린다.  역시, 이제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다른 부분의 생활도 더 신경을 써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젊게 생각하고 사는 것은 물론 신체적인 젊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안 먹는 것은 아닌 것이다. 

 

1차대전이 조금 지난 후, 스페인 명가의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뤼팽은,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괴도행각 대신, 무려 정의를 위해 유산상속에 얽힌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 주력한다.  

 

영국인답게 냉철한 추리와 신속한 행동, 그리고 기계같은 감정조절로 실수가 거의 없는 홈즈와는 달리, 역시 프랑스인다운 감성과 흥분하기 쉬운 열정으로 뤼팽은 종종 실수를 하고, 심지어는 죽을고비도 수 차례 넘기지만, 결국에는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답게,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을 손에 넣는다.  물론 그 댓가로 2억프랑의 유산상속은 포기하겠지만...

 

한 가지 웃긴 것은, 작가서문인데, 이 시기의 모리스 르블랑에 따르면 뤼팽은 극우에 보수주의자, 다시 말해, 완벽한 자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말이다.  괴도 뤼팽이 극우에 보수주의자라니...

 

 

 

 

 

 

 

 

 

 

 

 

 

 

양귀자라는 작가는 사실 다른 작품 - 아마도 영화화 되었던 그 책 - 을 통해서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 '원미동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군사정권의 막바지인 1986년을 전후해서, 이미 서울의 bed town으로 전락하던 부천의 원미동, 한 구석의 그저 그런 여러 이웃들의 삶을 통해 때론 즐겁고, 때론 행복하지만, 대체로 많이 고단하던 서민들의 삶을 이웃과의 interaction을 통해 조명한 작품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들 상당부분이 딱 이 정도,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그 만큼의 모습이라서, 요즘의 도심을 무대로 하는 소설들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졌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뀐지 오래인 그 동네의 모습에서 작품이 쓰여지던 당시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다.  지금도 기억하는 부천의 모습은 중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끝없이 펼쳐져있던 20층 아파트들의 공사모습인데, 아피아 가도 양옆으로 매달려 있었다던 스파르타쿠스와 검투사노예들의 처형모습이 떠올랐더랬다.  철골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형틀이 끝없이 서있던 그 모습이, 어쩌면 서울을 둘러싼 대다수의 도시서민들의 삶의 모습일런지도.

 

내가 기억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기본구조는 같으나,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 명작만화버전으로 보았던 스토리는 훨씬 더 elaborate해서 스토리를 펼쳐놓았던 것 같은데, 원작은 사실 매우 빨리 움직인다.  주로 주디의 편지를 통해 전개되는 스토리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보는데, 예를 들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당시, 그리고 소설의 무대가 유럽이 아닌 미국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명작동화의 무대는 유럽이었으니까.

 

요즘의 눈으로 보면 조금 웃긴 것이 사실, "키워서 데려가는" 뭐랄까, 미연시나 라이트 노벨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인데,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작가는 아쉽게도 속편까지만 쓰고 서른이 채 안된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남아서 많은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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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2-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부천은 소사라고 했는데 복숭아가 유명했지요.요즘은 복숭아 과수원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transient-guest 2013-02-02 00:41   좋아요 0 | URL
송내, 소사, 부천 일대는 다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근방에서 산이나 들판을 본 지도 꽤 오래전의 일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