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세일! 엄마 아빠 팔아요 신나는 책읽기 29
이용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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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부모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벗어나고픈 존재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저주하고 싶어도 양심에 찔려서 그런 생각을 얼른 떨쳐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죽하면 옛이야기속에 나오는 새엄마가 실은 친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지 않던가. 친엄마를 미워하고 복수할 수 없으니까 비교적 죄책감을 덜 갖는 새엄마를 등장시켜서 실컷 미워하고 잔인한 복수까지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단다. 오직 한 가지 이유, 마음대로 하고 싶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부모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주인공(그러고 보니 진짜 주인공의 이름이 안 나오네?)은 좀 더 적극적이다. 자신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왕창 세일해서 팔겠다는 광고를 내니 말이다. 마녀에게 파다는 광고를 내자마자 바로 팔려나간다. 그것도 단돈 오만원에. 순식간에 일을 해치운 주인공은 혼자 신나게 보낸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학교도 안 가고 아주 신났다. 여기까지는 어느 동화책과 비슷하다. 마녀에게 마법의 설탕을 받아와서 엄마와 아빠를 작게 만들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렝켄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 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솔직히 이쯤되면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하고 후회해야 할 법한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엄마 아빠를 사갔던 마녀가 돌아와서는 돈을 더 얹어주면서 제발 데려가라고 사정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그러니까 요지는 엄마와 아빠가 어찌나 싸우는지 마녀가 못 살 지경이란다. 그러면서 어쩌다 그런 부모를 만났느냐며 주인공을 불쌍하게 바라본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많지 않을까. 조금 더 커봐야 부모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지 아직은 그럴 나이(주인공은 초등 일 학년이다.)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정말 어쩔 수 없이다. 마녀의 빗자루 때문이니까.) 부모를 찾아나선 주인공은 엄마 아빠가 지나간 자리마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코뿔소의 뿔이 뽑히고 강시도 겁먹고 악어조차 울게 만든 대단한 엄마 아빠다. 각각의 모험이 상당히 재치있지만 비슷한 모험이 너무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어 나중에는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어린 독자들은 각각의 모험에 흠뻑 빠져들 것도 같다. 원래 아이들의 특징이 똑같은 놀이, 똑같은 이야기라도 언제나 처음인 양 빠져드는 법이니까. 당연히 마지막에 가서는 엄마 아빠가 달라졌지만 역시 약효가 오래 가진 않는다. 

 여하튼 엄마 아빠를 팔아버렸지만 마녀도 감당 못하는, 문제가 있는 엄마 아빠를 둔 주인공의 딱한 처지는 곧 어린이의 마음을 대변한 듯하다. 그래서 어린 독자들은 통쾌하게 읽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를 윤리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온전히 그들의 마음을 읽어줌으로써 작가는 확실히 어린이 편에 섰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의 반응이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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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쟁이 고모가 좋아 내책꽂이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홍미라 옮김, 이승연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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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고모라는 단어는,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는 단어는 아니지 싶다. 내가 아직 고모가 되어보질 않아서 조카에게 고모란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으나 니콜과 케빈은 고모를 아주 싫어한다. 잔소리를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고모는 단지 잔소리만 심한 게 아니었나 보다. 오빠에게도 비가 온다고 투덜대는 것으로 봐서 원래 까다로운 성격인가 보다. 어른이야 상황을 이야기하면 설득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무조건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닐까 싶다. 케빈의 엄마가 고모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도 아이가 없을 때는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엄마와 아빠가 떠나지 않기를 별별 구실을 대며 부탁하지만 결국 고모가 오고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 집으로 떠났다. 역시 고모는 오자마자 청소부터 한다. 이처럼 깔끔한 사람이 아이 둘 있는 집에 왔으니 오죽할까. 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런데 고모가 좋아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긴다. 그 전부터 약간 조짐이 보이긴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부터 그랬다. 그제야 아이들도 고모가 약간은 편해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무에 올라갔다 내려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렸을 때는 나무에 잘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은 니콜은 고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신기해한다. 하긴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으니까. 

 고모와 공감대를 형성한 아이들이 이제 고모랑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겠지. 그리고 고모도 드디어 아이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혹시 표지 그림처럼 되는 건 아닐지. 니콜에게 사 준 인라인 스케이트를 고모가 빼앗아서 신나게 타고 다니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나머지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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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의 초록 책 사계절 중학년문고 20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박형동 그림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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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개그 프로그램(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익명으로 해야 뭔가 있어 보인다.)에서 '옛날에 여자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요즘 세대들이야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 세대(이젠 이렇게 말하니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4,50대를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말하는 부모 세대란 6,70대를 의미한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들은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몇 십 년 전의 과거에 비하면 나빠진 것보다 좋아진 게 많은데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몇 십 년 후에야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 같진 않으나 몇 백 년 후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변해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꿈꾸는데 왜 자꾸만 디스토피아 쪽으로 기우는 것일까.  

 그러나 디스토피아처럼 보여도 약간 다르게 접근하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미지의 행성으로 떠나지만 거기서 또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여기도 엄연히 신분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 그저 그런 사람들은 연료도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주선을 타고 가지만 그렇다고 그런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4년 동안 우주를 떠돌며 정착할 곳을 찾는 동안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딱 한 권의 책만 가지고 가라고 하니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소중한 책을 챙긴다. 그런데 패티는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은 초록색 책을 챙겼다. 이야기를 하도 읽어서 더 이상 흥미있는 이야기가 없을 때 사람들은 패티의 결정을 특히 아쉬워한다. 그럴 때 책 한 권이라도 더 있었으면 무료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야기가 항상 그렇듯이 '무'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처음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는 법이니까. 이제 그들이 정착한 곳에서의 이야기는 패티의 책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종이가 없었지만 그곳에서 종이를 대신할 만한 뭔가를 발견하겠지. 

 전혀 낯선 곳에 여러 가족이 정착하는 모습은 흡사 우리 조상들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를 절로 연상케 했다. 바닥의 돌들이 꿈틀거리며 깨어날 때 혹시 공룡이 아닐까하는 진부한 생각도 해보았으나 역시 작가는 나처럼 진부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의 거대한 나방이라. 게다가 서로 소통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정착지의 이름을 정할 때 가장 나이 어린 아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는 그들은, 현명하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맑은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함께 보고자 하는 그들의 현명함에 놀랐다. 모든 사람들이 유리구슬같은 밀알을 보고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었을 때 아이들은 시도했다. 과거의 풍부한 경험이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새로운 행성에서의 주역은 바로 어린이들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름도 어린이에게 짓도록 한 것일 테고. 유리구슬 같은 밀알이 반짝이는 밀밭과 커다란 나방 인간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모든 것이 잘 된 지금이야 아름답게 연상되지만 읽을 당시는 조마조마했다. 과연 그들이 밀을 수확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무언가를 재배하지 않으면 정착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니까. 그나저나 후세의 인간들이 선조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말을 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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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돈 벌자고? 창비아동문고 261
박효미 지음, 이경석 그림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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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디로 말해서 동화속에 경제를 적절히 버무린 이야기면서 동시에 이 책을 읽는 아이의 부모들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유년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할 이야기가 많겠다. 게다가 사투리가 어찌나 고스란히 나오는지 덕분에 비록 읽는 속도는 느렸어도 사투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아서인지 마치 내 어린시절을 보는 듯했다. 물론 가희처럼 놀진 않았어도 거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이토록 활달하고 천방지축인 가희가 그동안 어떻게 집에서만 보냈을까 의아할 정도다. 모든 일을 다음으로 미루고 방도 치우지 않는 가희와 무척 깔끔한 나희가 자매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둘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뭐, 결국 가희가 구슬을 몽땅 잃는 바람에 원상태로 돌아가긴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궁리를 하던 중 얼음이 언 논에서 노는 동네 아이들에게 입장료를 받기로 하면서 일은 시작된다. 지금이야 얼음이 언 논에서 입장료를 내거나 썰매를 대여해서 노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책 속의 아이들이 노는 시절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어차피 얼어 있는 곳에서 노는데 입장료라니, 그건 완전히 구두쇠, 아니 강도라고 여겨질 정도였을 게다. 가희가 내세운 입장료는 또 어떻고. 지금은 어쩌다 유행할 때나 가지고 노는 구슬이다. 나는 구슬을 갖고 놀지 않아서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아이들에겐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꼼짝도 않던 가희와 나희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고, 그러다 결국 노는 맛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사정이 생겨서 못 나가는 날은 안절부절한다. 물론 거기에는 구슬을 따기 위한 집념도 있었지만 내 보기에는 놀이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인 듯싶다. 아이들은 원래 실컷 놀아봐야 나중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실컷 놀다가 아예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할까봐 걱정돼서 지레 겁먹고 못 놀게 하는 게 요즘 우리 부모들이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그것이 가슴까지 내려오는데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 너무 많다.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이던 팔석이와 함께 놀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습을 본다. 가끔씩 볼 때 가졌던 선입견이 서서히 사라진 것이다. 이렇듯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드디어 가희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닥불을 피웠다가 팽나무에 옮겨붙는 바람에 불이 나서 고생하고 엄마에게 툭하면 맞고 욕 먹는 모습이 지금 아이들이 보기엔 도저히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성냥이나 라이터를 갖고 다니면 절대 안 되지만 그 당시는 어느 집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면 성냥이 필요했으므로 성냥은 흔한 물건이었다. 실제로 작가와 비슷한 또래들은 추워서 모닥불을 놓았다가 짚가리에 옮겨 붙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처음 읽는 순간 작가의 어린 시절을 무대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텐데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기록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지금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라고 해서 여기서 일어나는 일만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어린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비교하기도 하고 기록하기도 하는 것이니까. 결국 그것이 모여 생활사가 되는 것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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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소년 문원아이 저학년문고 17
리비 하톤 지음, 황애경 옮김, 그레고리 로저스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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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로버트 브라우닝이 글을 쓰고 케이트 그린어웨이가 그림을 그린 책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만났다. 당시는 그냥 하나의 그림책으로만 만났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이 이야기가 서양에서는 실화에 바탕을 둔 유명한 옛이야기라는 것을. 즉 하멜른에서 어린이들의 실종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의 전모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즐겨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전설을 따라가며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기에 이 책처럼 그 후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일 게다. 

 만약 그곳 하멜른의 동네에 한 명의 아이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이야기는 그렇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다가 남은 아이는 몸도 약하고 한쪽 발도 절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데다가 공부도 잘 못해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남으려고 남은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처럼 빨리 걷지 못해 뒤쳐졌을 뿐이다. 아이들은 모두 천국과 같은 곳으로 들어가버리고 홀로 남은 소년은 자신이 친구들을 구할 유일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소년에게 피리 부는 법을 가르칠 때 가만히 살펴보면 소년의 옷이 점차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아 핀잔 들을 때는 원래의 소년 옷이었다면 조금씩 소리가 좋아질 때마다 점차 피리 부는 사나이의 옷과 비슷해진다. 이제 제법 피리를 잘 불게 된 소년은 친구들을 구할 수 있을까. 

 마을에 아이가 혼자라는 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소년은 나쁜 것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친구들을 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간의 소년의 고통을 생각하면 소년의 합리화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아마 이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 아닐런지. 비록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소년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도의적으로 보자면 친구들을 구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소년도 후회를 하며 피리를 새로 만드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용서도 때가 있다는 원래의 메시지보다 어째 소년의 상처에 더 마음이 쓰이는지. 그런데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아이들을 데려가 놓고 왜 남은 아이에게 피리를 가르쳐주며 아이들을 구하라고 했을까. 약간 모순된 행동 아닐런지. 그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나 설명도 없고. 소년 한 명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데 주변 인물까지 함께 보려니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여하튼 피리 부는 사나이의 후속편,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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