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메랄드 아틀라스 ㅣ 시원의 책 1
존 스티븐슨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모임에서 한때 판타지를 집중적으로 본 적이 있다. 그때 작품성은 차치하고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판타지가 재미있다는 부류와 판타지는 너무 힘들다는 부류였다. 물론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판타지가 너무 어렵다는 편에 있었다. 대개 책을 읽으면서 해당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읽는데 아무래도 판타지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계를 그리므로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왕 판타지 소설이라면 차라리 SF가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 이래서 아이들이 <해리 포터>에 빠지고 어른들도 <트와일라잇>에 빠지는 거구나. 이 책은 그만큼 푹 빠져 읽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이러한 판타지를 많이 읽어보질 않아서 내 감정적인 판단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판타지의 전형이라고 하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고나 할까.
처음에 다짜고짜 아이들을 부모와 떼어 놓는데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전후 사정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케이트의 입장에서 서술될 때 마치 큰 아이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동생들을 맡아도 충분하리라 예상했는데 알고 보니 케이트조차 어린애여서 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들에게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 세 남매가 고아원을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하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부모 입장에서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고 만다.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바스티안이 고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읽게 되면서 환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케이트가 어떤 책에 사진을 올려놓자 그 시점으로 들어간다. 사진을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은 책에 올려놓으면 사진을 찍은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설정, 정말 판타스틱하다. 사진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영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 사진 찍기를 거부했던 사람들(물론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가 그래서 반대했다'고 하지 않을까.
케이트와 엠마, 마이클이 과거로 돌아가서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는 동안 셋은 부쩍 자란다. 티격태격하며 싸우지만 위기가 닥칠 때마다 형제를 생각하는 그들의 우애와 한 가지 사건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딛는 모습,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용기를 갖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환상 세계에서의 모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하는 동안 내적,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괴롭혀도 대응하지 못하고 숨기만 하던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를 구하고 나서 당당해 진 것처럼 케이트도 그럴 것이다. 중간중간 동생들을 바라보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며 놀라지만 그 자신도 많이 달라졌다. 아마 세 아이들에게 각각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려면 앞으로 두 권의 책이 더 나올 텐데, 과연 거기서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궁금하다(그러고 보니 우리 작가의 책인 <아로와 완전한 세계> 시리즈도 세 남매가 펼치는 세 권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이와 비슷한 구성이다. 이 책 <에메랄드 아틀라스>가 대단한 찬사를 받았던 책이라니 <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새삼 다시 보인다. 물론 여러 면에서 우리 작가의 책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풍토에서 그 정도의 책도 대단한 것 아닐까). 또한 세 남매는 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맨 처음 시작할 때 못 만난다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오는 책을 꾸준히 읽으면 될 텐데, 다음 권은 언제 나오려나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