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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나무 위의 눈동자 ㅣ 동화 보물창고 36
윌로 데이비스 로버츠 지음, 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전, 그러니까 방학하기 전에 5학년 아이가 추리소설 좀 찾아달라는데 내가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외에는 마땅히 생각나는 책이 없는 거다. 간혹 동화에서 사건에 휘말려서 헤쳐나가는 과정이 나오긴 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당당히 쓴다. 작가소개부터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지만 이미 그것부터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미국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이며 이 책이 어린이를 위해 쓴 첫 추리소설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동화가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얘기다. 도대체 어린이가 읽는 추리소설은 어떨까하는 궁금함과 함께 어떤 사건을 다룰까 궁금했는데 역시 살인사건이 나온다. 어린이 책에서 살인사건이라, 이건 좀 센 걸.
롭의 누나가 결혼식을 앞두고 정신없는 가운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게 어딜 봐서 추리소설인지 모를 정도로 롭의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부터 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은 없으니 기다리는 게 당연하지만 오히려 처음에 시작되는 부분은 롭의 성장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아무도 롭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롭에게 신경쓰지도 않는 분위기가 계속되기 때문에 이러다 롭이 상처받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롭이 무슨 말만 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붙이는 가족들의 모습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가족들의 대화나 행동은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특히 롭이 칼로웨이 부인에게 빗자루로 맞은 것에 복수하기 위해 아침 일찍 케첩을 온 몸에 뿌리고 그 집 계단에 누워 있을 때의 상황은 어찌나 웃기던지 곧 살인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르는(아니, 벌어지는-왜냐하면 뒷표지에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이라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웃었다. 단지 롭이 계단에 있었던 상황이 웃긴 게 아니라 하필이면 그것을 칼로웨이 부인이 발견해서 놀람과 동시에 롭의 누나인 달시도 봤다는 게 문제다. 아니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생이 죽은 줄 알고 놀라서 뛰어왔는데 알고 보니 케첩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음은 물론이요, 롭이 천하의 말썽쟁이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작가가 단순히 상황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냥 하나의 해프닝이 되었을 테지만 글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쓰던지 전혀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문장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무리 그래도 칼로웨이 부인이 죽는 장면을 어린 아이가 봤는데 가족들은 어쩜 그토록 무심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먼저 롭이 받은 충격을 헤아렸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온 식구는 모두 달시의 결혼식에만 집중하느라 롭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작은 잘못도 크게 부풀려서 오히려 롭을 못된 아이로 몰아붙인다. 극적 구성을 위해서 이런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 작가의 동화 중 <오렌지 별에서 온 아이>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그 책에서 아이들이 총에 위협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도 그 아이들의 심리적 충격에 신경 안 쓰는 작가가 내심 못마땅했는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로 본다면 그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이 책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소설'로 인식한 데 반해, 그 책은 여기를 배경으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주인공들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서 지나친 걱정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우리 동화와 외국 동화를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이것은 단순히 외국 동화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동화는 나도 모르게 '현실'이라고 착각한다는 의미다.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는 무거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롭의 가족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한바탕 정신없는 가족극을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가족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롭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헤쳐나가면서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고양이 애물단지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이 롭을 거짓말쟁이에 말썽쟁이로 취급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롭이 못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 수 있다.
그나저나 달시가 롭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결혼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작가는 재치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롭, 네가 결혼할 때가 되면 사람들이 그냥 야반도주나 하라고 꼬일 거야. 그 말, 절대로 들으면 안 돼. 그럼 나처럼 선물을 많이 받을 수 없거든." 안 그래도 롭의 엄마가 그 전에 혼자말로 '테디는 누구하고든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바로 달시가 그 말을 한 것이다. 이런 식의 유머와 은유가 곳곳에 있어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