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치고 싶은 것 미래의 고전 20
이종선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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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학교에는 팬시점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것을 자랑삼아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 한단다. 한번은 걸려서 문제가 되기도 했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도대체 그 부모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서 그럴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재미로, 군중 심리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지 몰라도 그러다 습관으로 굳어질까 걱정된다. 도대체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 걸까. 아니,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이 책의 주인공 여진이는 훔치는 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그나마 극복할 가능성이라도 있었지 그런 자각조차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제목에서 드러났듯이 도벽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또래 집단에서 친구 맺기의 어려움과 가족간의 사랑을 줄곧 다룬다. 그러니까 매개체가 도벽인 셈이다. 그러면서 각자의 성장을 빼놓지 않는다. 여진이와 선주는 단짝이다. 그런데 선주가 양궁선수로 나가는 바람에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진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갖춘 민서와 민서 때문에 상처를 받아 위선적인 여경이가 동시에 여진이에게 접근하면서 일은 시작된다. 여진이가 어떤 게 둘의 본모습인지 몰라 힘들어할 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엄마였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 바빠서 여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짬이 없다. 여진이는 바로 그런 허기진 마음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채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훔친 게 아니라 주인이 없는 물건일 때만 훔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한다. 그러나 민서의 물감인 줄 뻔히 알면서도 훔치면서 마음 고생이 시작된다. 

사춘기라고 삐딱하게 굴기만 하던 언니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진이에게 큰 힘을 주는 모습은 뭉클하지만 마치 정해진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하필이면 엄마가 있는 날 모든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마무리 되는 모습도 그렇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여경이와 민서 사이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여진이의 모습은 6학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 그 또래는 대개 이 친구의 말에 쏠렸다가 다시 저 친구의 말에 쏠리는데 여진이는 진실을 판단하려고 애쓰니 말이다. 도벽이 있을 정도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데도 말이다. 뭐, 꼭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냉정을 유지해서 오히려 여진이에게 빠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선주의 이야기는-비록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표가 났지만-이 책을 읽는 어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동화란 어린 독자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니 이처럼 의미 있는 메시지를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전 같으면 작가의 의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도 그것을 읽는 어린 독자는 번쩍하는 뭔가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경이가 얄미웠다. 의도적으로 친구를 곤경에 처하게 하고 남 앞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처럼 위선 떠는 행동이 싫었다. 그래서 민서가 여경이의 잘못을 현장에서 잡았을 때 통쾌했다. 그런데 문득 <교환 학생>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 아주 얄미운 친구가 있는데 속으로 그 친구의 본모습이 드러나길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작가는 그 친구에 대해 별다른 고자질 없이 다른 친구들이 그녀를 이해하도록 자연스럽게 풀어갔다. 우리는 이처럼 잘잘못을 따져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게 대부분인데 외국 작가는 그렇지 않다. 우리 작가의 이런 이야기 방식이 통쾌할지는 모르나 여운은 확실히 덜하다. 여경이가 들킨 모습이 통쾌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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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얼굴 창비아동문고 256
안미란 외 6인 지음, 원종찬 엮음, 이고은 그림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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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이다. 그런데 옛이야기라면 모를까 동화에서 무서운 이야기는 그닥 많지 않다. 아무래도 동화라는 성격상 어린이들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그들의 갈등을 다루기 때문인 듯하다. 무서운 이야기에는 으레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는데 동화에는 판타지 동화가 아예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러동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나는 것만 언급하자면 <귀신새 우는 밤>과 <금이 간 거울> 정도가 있다. 특히 <금이 간 거울>의 경우 이 책 <하얀 얼굴>에도 글을 쓴 방미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위의 동화를 읽으며 오싹한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 그렇지만 무작정 오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잘 집어냈다는 감탄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뒷표지에 호러 동화라고 표현한 이 책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처음 이야기부터 심상치 않다. 재건축 때문에 거의 이사를 가고 난 썰렁한 아파트라는 배경도 공포 이야기에 어울린다. 게다가 아무도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특별한 층에서, 그것도 진태가 탈 때만 멈춘다는 것도 공포 이야기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단순히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우와 진태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와 떠난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들어 있다.  

그 밖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앞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한다. 어디 그 뿐인가. 도시 소시민의 힘겨운 삶에 끼어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두 공포 요소가 들어 있다는 점이 호러 동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매일 누군가가 채니의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바꿔놓는다는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귀신이 들어와서 채니의 방을 몰래 바꿔놓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의 반전이란.  

이처럼 모든 이야기는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고민과 친구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들어 있다. 물론 때로는 정말 오싹하다. 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무서운 이야기가 총출동되어 그 중에서 비슷한 것을 골라내느라 바쁘다. 그러나 만약 이런 무서움만 있었다면 그저 그런 여름날의 심심풀이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고민이 들어 있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비판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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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염소 별이 봄봄 어린이 5
김일광 지음, 이상현 그림 / 봄봄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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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이산가족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 아닐까. 다른 상황은 차치하고 같은 민족이 지리적으로 나뉜 나라가 지구상에서 한반도 뿐이니까. 그래서 이런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 게다.  

산속에서 염소를 키우며 홀로 사는 덕이 아재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북으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안쓰러워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배를 몰고 나갔을 뿐인데 마을 사람들이 오해하자 산으로 숨다시피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만약 덕이 아재가 오징어잡이 배를 탔을 때 잘못해서 북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오해는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북으로 간 사실을 사람들이 아는 이상 어떤 상황에서도 불리하게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외롭게 사는 덕이 아재를 통해 그러한 아픔을 들려주고자 한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염소 별이가 덕이 아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때는 그저 염소처럼 나온다. 완전한 의인화도 아니고 어정쩡하다. 그래서인지 읽는 이를 잡아끄는 힘이 약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읽고 나서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나중에 덕이 아재가 비록 타의에 의해서지만 또 오해 받을 것을 알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내려가는 장면은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전에는 제대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오해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아기 염소 별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단다. 별이가 올라간 이 산성이 나중에는 잃어버린 별이를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아저씨도 별이와 똑같은 곳에 올라갔다. 그만큼 별이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 오는데 별이는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어, 그런데 비 온다고 했는데 이 그림에서는 전혀 비 오는 느낌이 안난다. 아주 썩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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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7번째 일요일 소담 팝스 1
자비네 루드비히 지음,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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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A를 선택했을 때의 삶과 B를 선택했을 때의 삶을 보여주던 게 생각난다. 살아가면서 중대한 결정을 해야하지만 어느 것으로 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두 가지를 다 살아보고 결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요즘 어느 개그 프로에서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보며 아이디어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하다. 두 가지 삶을 살아볼 때는 다른 삶에 대해 전혀 개입을 못하는 반면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 책도 시간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가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대개는 일이 크게 잘못되었거나 큰 실수를 했을 때다. 둘째는 일요일 저녁만 되면 무척 아쉬워하며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단다.편안한 일요일이 거의 끝나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긴 나도 예전에 그랬다. 여기서 내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과 둘째가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을 통제하고 싶다는 생각은 같다.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적어도 아직까지는) 사실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에 은근히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시간이 되풀이되고 있다면 어떨까. 프레디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일요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방학 마지막날이라면 누구라도 다음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프레디는 우연히 계속 일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고, 그것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혼자만 그 사실을 눈치챘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도 함께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냥 휴가와 같은 날을 보내면 되는데 프레디 혼자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기껏 청소하고 성적표에 사인 받아놓고 보고 싶지 않은 편지를 버려도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있다니,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겠다. 

그러나 반복되는 프레디의 일요일은 똑같은 날이 하나도 없다. 전날 실수한 부분을 만회하거나 미리 사건을 예방하려고 하지만 결국 다른 사건을 만들고 만다. 물론 그 다음 날이 되면 결론적으로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똑같은 시간의 띠를 혼자만 맴돌고 있다. 왜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프레디 혼자만 그걸 느끼는 것일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시간의 뫼비우스 띠를 끊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것은 당연히 주인공인 프레디였다. 그러니까 작가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장치였던 셈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과연 프레디는 똑같지만 새로운 날을 어떻게 맞이할까에만 신경썼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프레디뿐만 아니라 가족이 안고 있던 문제가 드러나고 조금씩 해결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언니와 사사건건 부딪치자 언니를 미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니 일요일이 반복될수록 언니와의 추억을 생각해낸다. 그러면서 언니가 일방적으로 화나게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 아빠와의 관계도 그렇고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시간만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프레디의 성장이 들어 있다. 그리고 가족의 화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들어있다.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이처럼 주인공의 변화가 들어있는 진정한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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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2016-12-2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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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왕 커드
앨런 길리랜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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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보다 특히 이럴 때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동화책 이야기하는데 웬 영어 타령이냐고? 만약 이 책을 원서로 읽으면 번역된 것보다 훨씬 맛이 살지 않을까 해서 하는 얘기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분명 이게 언어유희 같긴 한데 옮긴이의 설명으로는 아주 세세한 느낌까지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원서로 읽으면 어떨까를 내내 생각했다. 또 하나. 이 책을 읽다가 그동안 대충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었다. 둘이 뭔가 비슷한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 책은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객관적으로 설명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하나 있긴 하다. 엄마와 쌍둥이 형제에 관한 이야기. 그 외에는 모두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은근히 매력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헨리와 헨리에타의 장난감 인형들이 브로치를 찾으러 가는 도중 만나는 갖가지 모험담이다. 헌데 넷이 함께 떠나지만 그 안에서 패가 나뉜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그러한 갈등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관계를 보면 끈끈한 정이 있는 듯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쿨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스위니와 오플래터리가 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 사실을 알았을 때 기존의 대장과 한판 승부가 벌어지리라 예상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커드의 경우 배신감을 느낄 법도 한데 그런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필그림은 정확히 중간에서 상황을 잘 조율하는데 그 능력이 대단하다. 

서로의 이야기가 약간씩 어긋나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은 만나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얘네들이 이러다 브로치를 찾으러 갈 수는 있을까 잔뜩 걱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듯이 우연히 간 길이 제대로 간 길이고, 수수께끼 내기에 휘말렸어도 어찌어찌 하다보니 정답을 맞췄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게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진짜 수수께끼를 못 푼 것인지. 하지만 이러한 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작위적인 게 아니라 풍자와 위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속성을 은근히 꼬집는다. 갑옷을 벗은 미노보어는 아기에 불과하지만 갑옷을 입고 자신의 정체를 숨겼을 때는 무시무시한 미노보어로 돌변한다. 가면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의 상반된 모습은 가면 뒤에 숨어서 악한 짓을 하고자 하는 인간을 그린 듯하다. 그 밖에도 풍자와 위트가 많이 나온다. 오죽했으면 원서에는 뭐라고 써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었을까. 

벌루나퍼스는 또 어떻고. 분명 달이라고 했는데 이들 모험에 합류할 때 보면 절대 달이 아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풍선이다. 하긴 등장인물 소개에서 연못에 빠진 달 그림자가 열기구로 떠올랐다니 달은 아닌가 보다. 객관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냥 다 이해가 간다. 그런데 벌루나퍼스가 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재치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상당히 많은 의미가 숨겨 있곤 한다. 여기서는 올드 코비가 가장 못된 역인데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 생각되지 않는다. 스위니와 오플래터리를 몰래 꾀는 장면에서는 교활하게 느껴지지만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원래 성격이 그래서인지 판타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정신없는 이 책을 읽으니 처음에는 더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정리도 되지 않아 헷갈렸다. 그러나 읽다 보니 언어유희가 상당하고 재치가 있어서 은근한 매력이 느껴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는 이런 식의 풍자와 유머에 익숙하지 않고, 이 나라의 문화와 언어습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풍자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가끔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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