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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형제 - 날개가 필요해 우리들의 날개 아름북스 12
이은하 지음, 홍영지 그림 / 삼성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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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일까를 생각한다. 단순히 읽히는 것이 아니라 왜 안간힘을 쓰는 걸까. 예전에는 간접경험과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추상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라는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이 생긴 것 같다. 그렇다면 어린이책의 기능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물론 정확한 답이 있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닫혔던 마음을 열게 할 수도 있고 상처 받았던 마음을 아물게 하는 치유의 기능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을 헤아릴 줄 아는 기능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간접경험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기능에 속할까. 물질적으로 풍부할지언정 정신적으로 궁핍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대철이. 자식보다는 애완견에 정성을 더 쏟으며 자식의 마음이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는 아예 관심도 없으며 오로지 돈 쓰는 재미로 사는 듯한 엄마와 자식을 엄하게 키운답시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허리띠로 때리는 아버지(이것은 훈육이 아니라 학대 수준이다.)와 사는 대철이를 보면 어쩜 그리 상황이 골고루 섞여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대철이가 올바르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거기다가 부모님이 싸우면서 대철이를 임신했을 때 지울 걸 괜히 낳았다는 둥, 대철이 때문에 억지로 살고 있다는 등의 소리를 들은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가치 없는 존재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아버지까지 툭 하면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그러나 전학 온 학교에서 만복이라는 가난하게 살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있는 친구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기능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작가가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아픔을 가진 아이에게 치유의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친구들 문제만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철이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앞서 가정내 문제가 근본적인 것일텐데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평소 어린이책을 볼 때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것은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분명 마지막 부분에는 대철이가 만복이와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고통을 나눌 친구를 찾은 것이 분명함에도 어딘지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혹시 그 후에 일어날 더 커다란 아픔(가족의 해체로 인한)이 예측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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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싫어!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6
엘리자베트 죌러 글, 신민재 그림, 배수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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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사실은 또래관계다. 공부는 그 다음이다. 물론 별 탈 없이 학교를 잘 다닌다면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지만 우선 관심이 가는 것은 친구들과의 관계다. 저학년 때는 처음 입학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고 고학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거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큰아이의 경우는 특히 더 하다. 반면 둘째는 너무 여려서 혹시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니 참 같은 남매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의아할 정도다.

이 책에는 폭력의 형태도 다양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때로는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고 어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특히 폭력을 휘두르고 피해자가 고자질을 못하게 하는 것을 두고 그것은 절대 고자질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아이들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가보다. 우리나라에만 집단 따돌림이 심하고 약한 친구를 힘으로 괴롭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외국 작가도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폭력의 행태 또한 비슷하다. 비록 여기에 나오는 일이 때론 비현실적이고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는 어른들만 나오긴 하지만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처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등장 인물을 보며 아이들이 자신을 반추하는 기회를 가졋으면 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어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이들은 폭력이라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매체들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게다가 요즘은 남의 일에 간섭하기도 쉽지 않다. 어른일지라도 청소년에게 바른 말을 하기가 꺼려지니 아이들은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나서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어쩌다가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지금부터라도 내 아이부터라도 폭력의 부당함을 알아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이로 키워야겠다. 비록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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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도도군 일공일삼 48
강정연 지음, 소윤경 그림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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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인지 방송에서도 동물에 대한 프로그램이 꽤 많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동물에 관한 프로그램은 한가한 일요일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거기서 보면 유기견에 대한 이야기, 길에서 떠돌던 개가 힘겹게 사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다 결국은 한 가족이 된 이야기,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는 개 이야기와 그 와중에 딴짓만 하는 개 이야기, 사람들의 욕심에 따라 성형하는 동물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들이 여기 이 책 속에 모두 녹아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개의 의지가 들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동물병원에서 받은 수첩에는 수컷 강아지가 새끼를 못 낳도록 하는 수술을 하면 성질도 온순해진다는 이야기가 써 있다. 한때는 나도 거기에 혹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강아지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또 며칠 전에는 딸이 개가 못 짖게 하는 수술도 있다며 그걸 해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한다(가끔 밤에 짖어서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난 후였기에 그건 정말 개 입장에서 보면 학대 수준을 넘어 생물 취급을 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비열한 짓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설명해 줬다.

순전히 개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래 개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였구나.' 내지는 '개들이 이래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 유기견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버려진다'는 것을 사람의 집을 나선 공간 즉 떠돌아다니는 것만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키우다가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는 것도 개의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뜨끔했다. 사실 우리도 처음에 조금 키우다가 힘들면 시골에 갖다 주기로 합의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걸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버려지는 것이란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정말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순수하게 개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호칭 또한 특이하고 재미있다. 도도의 원래 주인인 사모님은 남편이 '야'라고 부르기 때문에 도도는 그녀를 '야'라고 명명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남편은 '그 인간'이다. 아마도 돈 많고 밖에서는 교양있는 척 행동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공간에서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상대를 대하는지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유야 어찌됐든 독자 입장에서는 통쾌하고 신선했으며 재미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개들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인지 개들의 사회도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간혹 도도의 눈을 빌어 인간사회의 모순과 인간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비꼰다. 또한 짧고 직설적인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유쾌하고 시원하게 해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동반자를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도도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훈련장에서 훈련받는 개가 저런 마음을 갖고 열심히 훈련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에 종속되었던 이름인 도도를 버리고 초롱이로 새 삶을 시작한다는 설정은 아이들도 자신이 삶의 주체자로서 우뚝 서길 바람과 동시에 동물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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