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더 큰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 - <탈무드> 중에서.




1미터 길이의 직선에 손을 대지 않고 그 직선을 짧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의 답은, 그 직선보다 긴 직선을 위나 아래에 그어놓는 것이란다. 그렇게 하면 원래 있었던 직선이 짧은 직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짧다’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어떤 불행한 일을 겪을 때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면 그 불행한 일이 작은 불행이 된다는 뜻의 구절이 <탈무드>에 나온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라는 구절이다.


이것의 예를 이렇게 들 수 있겠다. 십만 원을 잃어버리면 이십만 원을 잃어버린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고, 화재가 나서 집이 타버리면 인명피해가 있는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가정보다 차라리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을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를 들면 전셋집에서 사는 사람이 월세를 내며 사는 친구를 만나서 위안을 받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경우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불행은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로 권여선 작, <사랑을 믿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남자와 이별하고 실연의 고통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 심부름으로 큰고모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우연히 불행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그 여성의 큰고모님 댁을 철학관으로 잘못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는 친지의 희귀병 때문에, 누구는 유괴된 손자 때문에, 누구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절실한 마음으로 점을 보러 철학관을 찾아왔던 것.


그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 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건만 그들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강하게 끌리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집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타인을 위해 빌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자식을 앞세운 뒤 늙어가는 부부의 평안과 명랑을 빌었다. 그녀가 타인을 위해 뭔가를 이토록 절박하게 빌어본 적은 없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은 이제 남자와의 이별로 신음하던 그녀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 집을 방문하기 전과 방문한 후의 그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자신의 지독한 아픔도 싹 잊은 채 오직 남을 위해 마음속으로 절실히 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아픔 따위는 거의 치유되었다는 걸 뜻하리라. 그런 불운한 일들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고통은 아주 작은 하찮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이런 분석이 가능할 듯싶다. 첫째,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엄살떨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나의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남의 불행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것. 셋째,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모습과의 비교가 필수라는 것.


타인과 늘 비교하는 인간의 심리로 인해,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아도 외국여행을 다니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고, 그리 뚱뚱하지 않아도 자신보다 더 날씬한 사람을 보면 자신은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보다는 열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으로 솔제니친*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있는 한 행복하다. 아무것도 그를 막지 못한다.”


* 솔제니친 :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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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탈무드> :  

                     

“인생은 무엇이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5000년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유태인들의 온갖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이 모두 이 <탈무드>에 담겨져 있다.”



 

 

 

 

<사랑을 믿다> :  


권여선,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에 정영문, 하성란, 김종광, 윤성희, 천운영, 박형서, 박민규 등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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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010-01-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자주 들어오는데 오늘도 새 글이 없군요. 바쁘신가봐요. ㅎ

페크pek0501 2010-01-22 12: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쁘기도 합니다만 워낙 무능해서요 ㅋ. 블로거들 중엔 직장을 다니면서도 매주 신간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유능한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쁜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해놓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죠. 저는 요즘 그저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헌책방IC 2010-02-0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 ㅋ 좋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10-02-02 14:16   좋아요 0 | URL
속도주의에 빠져 바른 속도만 중요시하는 시대에 사는 게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분위기도 있어 저 같은 사람에게 위안을 줍니다.

진지리진 2010-08-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다운 쌤♡
오늘 우리 만나기로 한 날인데^^
못 만났죠.. 덕분에 오늘은 감동을 주는 글..에 취해 갑니다~

페크pek0501 2010-08-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그리고 반가워. 그 벌칙으로, 만나면 내가 맛있는 팥빙수를 쏠게, 아니면 우리 물냉면을 먹을까 ㅋ
연구문제를 정하는 데도 힘들던데, 설문조사를 하는 건 더 힘들던데, 통계분석의 해석을
쓰고 있는 오늘은 더 힘드네. 논문쓰기가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수 있네. 이제 좀 쉬려고 컴퓨터를 끄려다가 진의 댓글을 발견하고 반가워 로그인 했어.
이 무더운 여름날, 난 더운 줄도 모르겠어. 바다에 빠졌거든. 연애의 바다라고...ㅋ
휴우, 난 요즘 논문과 연애중...
 


단상(3) 운동회의 풍경이 달라진 이유


한 일간지(조선일보, 1월 4일)에 의하면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빗 등 저명한 미래학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세계미래학회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2010년 이후의 미래전망 10’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머지않은 미래에 휴대전화를 통한 ‘길거리 이상형 찾기’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원하는 이성의 외모나 취향을 휴대전화에 입력해 놓으면 유사한 프로필을 갖춘 이상형의 위치를 휴대전화가 찾아 통보해 준다는 것이다.”


이미 휴대전화는 우리의 삶의 풍경을 많이 바꿔 놓았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로 인해 길거리의 공중전화가 없어졌고 손목시계의 사용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만나는 약속도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 비하면 불확실하게 약속을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 한 예로 ‘그 부근에 도착하면 전화해’하는 식의 말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나는 운동회 풍경을 꼽겠다. 언제부턴가 초등학교 운동회의 풍경이 달라진 것이다. 피자나 치킨을 파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자신의 가게 명함(또는 광고지)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이젠 낯설지 않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부모들 대부분은 당연한 듯 그것을 받아든다. 운동회 점심시간이 되면 그 명함(또는 광고지)을 보고 피자나 치킨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학교로부터 초대되어 학부모와 아이들이 운동 경기나 놀이를 함께하며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이다. 아이들의 잔칫날인 셈이다. 이런 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점심시간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준비한다. 그것이 과거에는 엄마의 정성이 들어 있는 김밥이었다면 이제는 휴대전화로 주문하는, 남이 만든 피자와 치킨인 셈이다. 그것들은 음료까지 함께 배달이 되기 때문에 물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이제 김밥 대신 휴대전화 하나만 들고 오는 학부모들


그래서 아예 김밥을 준비하지 않고 운동회에 오는 학부모들을 이미 볼 수 있는데, 앞으로 김밥 준비를 따로 하지 않는 어머니들이 점점 늘어갈 것을 예견하게 된다. 이제 직접 재료를 구입하여 김밥을 싸는 어머니의 정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소지품을 통해 음식 배달이 가능해진 까닭인데,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다.


운동회날 학부모들의 행동양식이 변하고 점심 메뉴가 변한 것은 젊은 세대의 먹거리 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휴대전화의 대중보급이 이루어짐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의 기능이 편리하기 때문인데 이 편리함이 우리의 삶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엔 휴대전화를 통한 ‘길거리 이상형 찾기’가 활성화된다고 하니, 또 어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까. 나는 이런 변화가 가끔 두렵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편리함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지금의 세상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두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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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세계미래학회가 전망한 2010년 이후의 세상

1. 길거리에서 이상형 찾아주는 휴대전화 등장

2. 3차원 프린터로 물건 제작

3. 뇌 신경세포 신호를 이용한 텔레파시 대화

4. 기술개발 관련 문제를 입력만 하면 컴퓨터가 자동 해결

5. 바다에 땅을 만드는 기술로 초소형 국가 등장

6. 젊은이는 독서량 늘고 노인은 게임에 빠져

7. 암모니아, 새로운 자동차 연료로 각광

8. 친환경 생체연료로 조류 약진

9. 태양열 반사 거울 같은 ‘과격한’ 온난화 대책 속출

10. 외계생명체의 존재 여부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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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에는 휴대폰으로 표기되었으나 이것은 잘못된 표기 같아서 ‘휴대전화’로 고쳐 썼음. 한글과 영어의 합성어인 휴대폰보다는 한글로 ‘휴대전화’, 또는 영어로 ‘핸드폰’으로 쓰는 게 옳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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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0-01-1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사람들이 출소하면 세상살이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초등학생이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낯선 모습을 어떻게 볼까요. 내가 어느 날 초등학교 운동회에 갔을 때 그 새로운 풍경에 충격을 받았을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세상은 이렇게 변했구나’하고.

그때 본 운동회 풍경을 글로 써 놨기에 그것을 토대로 이 글을 썼습니다. 과학발전의 속도를 좀 늦추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변화가 싫은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요.



옥계 2010-01-2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 세대에선 "변화"란 일상이지만 그들에게 또 하나의 미래를 교육하는 일이 오늘날 기성세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연일 다큐멘터리로 전해오는 소식이 그러합니다. 지구 온난화에다 북극의 온도가 높아지고 야생이 바뀌고 하는 문제를 야기 시켜온 무조건적인 첨단 발전과 인류의 생활 방식에 있다고 봅니다 취학 전에 한글은 물론 기본 영어를 떼고 가는 세상이니까요.음식문화는 위험수위 그 자체입니다.

페크pek0501 2010-01-24 15:59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점점 먹거리 문제가 중요해질 듯싶습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을 듯해서요.
제가 변화가 두렵다고 한 것은 그만큼 적응하기 힘들다는 얘기도 됩니다.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운 것처럼 또 앞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된다면 또 구입해서 익숙해질 때까지 배워야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더 큰 문제는 기존의 것을 다 폐기(낭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전 LP판으로 음악을 듣다가 CD가 나왔는데 앞으로 전자책이 대중화된다고 하니 종이책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LP판처럼 말이에요. 이 무슨 낭비입니까. 티브이를 통해 아이티 참사를 보고 나니 불편하지도 않은 종이책을 없애고 전자책을 보느니, 차라리 거기에 들어가는 그 투자비용을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썼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이젠 지구촌의 문제로 풀어야 할 듯합니다.

옹달샘 2010-02-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이 어릴 때 보던 비디오 테입이 많이 있었는데 CD가 나오고나서 비디오와 테입을 모두 버렸지요. 그런데 이젠 영화도 CD가 아닌 usb에 다운받아서 보는 세상이 되었어요. 동생이 영화를 CD로 구워주었는데 이젠 이것도 안봐요.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편리해지지만 배우는게 버거워지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0-02-02 14:11   좋아요 0 | URL
이번에 넷북을 샀는데, 디스켓 사용 기능이 없고 CD도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더라고요. usb로만 사용하라는 거죠. 예전에 구입한 노트북이 디스켓과 CD를 사용하는 건데, 이젠 그게 구닥다리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된 거예요. 이제 디스켓과 CD가 쓰레기가 되는 시대입니다. 아까워라...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확신이 어리석은 이유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 - 수전 손택 저, <문학은 자유다> p210.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는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독서할 시간도, 숙제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 뒤에는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이것저것 배워야 남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학부모가 있다. 아이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여 아이가 병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부모들에게, 초등학생들은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충분히 휴식해야 키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기 싫어한다면 집에서 독서습관을 길러 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는 말도 소용이 없다. 공교육은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받는 것이니, 개별적인 선택의 사교육이 중요하다고 확신하는 학부모들에겐 학원은 필수사항이다. 이런 학부모들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수가 곧 아이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데, 그야말로 뚜렷한 견해를 가진 이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모자간 갈등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대체로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가난한 집의 딸이다. 반대로 어머니가 결혼을 권하는 상대여자는 부잣집 딸이다. 이런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가난한 집의 딸보다 부잣집 딸이 좋다고 굳게 믿어 버린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부분, 가난한 집의 딸은 대체로 착하고 부잣집 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 콧대 높은 부잣집 딸보단 착해 보이는 가난한 집의 딸이 더 좋은 신붓감으로 생각된다.


딸을 가진 어머니가,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남자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내용의 드라마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남자가 사윗감으로서 조건이 좋다는 것과 자신의 딸이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 그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집념마저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간과한 것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딸이 행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이미 다른 여자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남자가 사랑하지도 않는 자신의 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없었던 건 자신의 생각이 매우 뚜렷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도 검사나 의사가 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부모는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그런데 이 말이 백 퍼센트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혹시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에 부모 자신부터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자랑스런 자식을 두고 싶은 게 부모로서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에 종종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뛰어난 판단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뛰어난 판단력이란 올바른 생각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올바른 생각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독서를 하는 것도 결국 올바른 생각으로 판단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결과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안다. 앞날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오판 가능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것이 확신이 어리석은 이유다.


수전 손택은 그의 저서 <문학은 자유다>에서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라는 말로, 문학에서 '확신의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문학에만 적용되는 말이겠는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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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


중학교 일학년인 딸아이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연예인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곤 하였다. 난 그런 아이에게, “연예인이 되려는 길은 마음고생이 심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니 공부에만 전념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넌 그런 쪽으로 재능없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이는 섭섭하다는 눈빛으로, “엄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말해, 내가 잘 될 수도 있는데, 자식의 꿈에 격려해 줘야 좋은 엄마지.”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얘가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아이의 눈엔 내가, 위의 칼럼 속의 어머니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비판했던 어머니와 내가 다를 게 없다는 것. 이런 생각으로 이 칼럼을 써 봤다. 나는 <유형지에서>라는 소설 속 장교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나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유형지에서>라는 소설은 내가 얼마 전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위의 칼럼을 쓴 것이다. 이미 이 소설의 내용을 넣어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으니 이 소설로 인해 세 편의 글을 쓴 셈이다. 그만큼 나로 하여금 할 말이 많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지…. 그래서 판단해야 할 어떤 일이 생기면 내 생각에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다. 그럴 때 위안이 되는 것을 최근에 비로소 찾았다. 바로 수전 손택의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자마자, 마치 무심코 길을 걷다가 반짝거리는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으로 들떴다.


바로 이 문장이다.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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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수전 손택’의 저서

<문학은 자유다>, 이후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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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09-12-3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면 새해가 시작됩니다. 빠른 세월을 화살로 또는 흐르는 물로 표현한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올해 1월 말에 블로그를 개설했어요. 블로그를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아직 그런 만한 역량이 없는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읽고 그냥 한 번 리뷰를 썼더니 자동으로 블로그가 생겼습니다(그런지 몰랐음). 그래서 시작된 블로거 생활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자주 글을 올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방문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저로선 고마운 일입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로운 마음과 즐거움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옹달샘 2009-12-3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글에 나오는 어머니들처럼 내 생각이 옳다고 우리 아이에게 잘못된 확신을 주입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수용하고 어떤 경계선을 긋지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도록 수전손택의 저서를 읽어야겠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경인년에도 복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0-01-01 11: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옹달샘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요즘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아는 것만큼 쓰고 읽은 만큼 아는 것이므로 결국 읽은 만큼 쓴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글의 질은 독서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많은 책을 읽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즘따라 책 속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읽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많습니다.

민교 2010-01-0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수업 정말 재있었어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요 수업이매일 정말 기대되네요~^^

페크pek0501 2010-01-03 14:48   좋아요 0 | URL
와우!, 민교군 들어왔군요. 수업에서보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군요. <죄와 벌>책을 읽는 것, 빨리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내가 왜 천재작가라고 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7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부담스러울 텐데, 즐겁게 완독하셔서 그것으로 수업한 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군요. 이번에 안 읽는다면 아마 평생 읽기 힘들 겁니다. 내년부터 고등학생이 되면 이렇게 긴 장편을 붙들고 살 수 없을 듯...

태혁 2010-01-0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수업을 듣고 3번쨰 댓글이네요..
새해가 밝았는데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2010년에도 밝게 수업하구요. 작년 수업 정말 재밌어요
저번주에 모르고 못갔었는데요 2010년에는 꼬박꼬박 지각안하고 다닐께요^^
새해 福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0-01-05 13:41   좋아요 0 | URL
태혁군, 반갑군요. 지난 주 태혁이가 빠진 수업은 크림을 넣지 않은 맛없는 커피였고, 향기 없는 꽃이었지요. 우리의 수업을 즐겁게 해 주는 일등공신이 오지 않아 모두들 섭섭해 하는 눈치... 다음부턴 결석을 하지 않는, 늘 성실한 학생이 되어 주시길... 그리고 우리를 계속해서 즐겁게 해 주시길...

미현 2010-01-0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토요일 퇴원했어요. 아직 앉아 있는 것 힘들어요~나중 시간 되면 천천히 은경씨 글 음미할께요^^* 2010년 화이팅~

페크pek0501 2010-01-05 13:46   좋아요 0 | URL
반가운 미현씨, 모든 고생 끝났고 이제 회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아 마음 놓여요. 안 그래도 연락해 볼 참이었어요. 언제 차 몰고 외출할 수 있을 때 만나요. 약속대로 맛있는 것 사줄게요. 그때처럼 우리 동네에서 영화를 보러 가도 좋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페크pek0501 2010-01-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눈이 많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도 하고 불편하게도 했을 눈입니다. 하루종일 바빠 컴퓨터를 켤 시간이 없어 이제 들어와 보네요. 전 제 블로그에 일주일에 두세 번 들어오는데, 그것도 잠깐 들어왔다가는, 주로 남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여러 글을 읽습니다. '많이 읽고 적게 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아무래도 다작을 하다보면 글의 수준이 낮아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아마 이건 바쁘거나 게을러서 대는 하나의 핑계, 또는 합리화일지 모르겠군요................여기에 들어오시는 모든 이들에게 어제 날린 눈송이만큼 많이, 유쾌하게 웃을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단상(2) 삶의 해석의 차이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이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좀처럼 운동하게 되질 않았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워낙 운동에 취미가 없어서다. 학창시절에도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어느 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날이 많아지게 되어 급기야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위장에 큰 이상은 없으나 소화능력이 약하다는 것. 의사는 몸을 많이 움직이라며 방치하면 큰 병을 키울 수도 있다고 조언하였다.



의사의 이런 말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소화가 되지 않아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한 느낌이 심해져서 기분이 좋질 않았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그때부터 난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매일 걷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걷고 나면 소화불량 증세가 없어졌다. 이것이 지금껏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게 된 이유다. 이젠 걷고 싶을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산책을 하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름다운 하늘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햇살의 따사로움을 온몸에 받으며 만끽하기도 한다. 평소 소화가 잘 되었다면 산책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 뻔했다. 이런 즐거움은 ‘소화불량’이 내게 준 선물인 셈이다.



우리의 삶을 잘 관찰해 보면 이렇게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이것을 간과하며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삶의 해석의 차이에 기인하는데, 매사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다음의 글처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려고 한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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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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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 새 달력, 그 열두 장의 의미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그 어떤 물품도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다. 만약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편이 출근시 아내에게, “여보, 회사일이 바빠 오늘 야근을 해야 하니 세 시간만 살 수 있는 돈을 줘. 그러면 야근하지 않고 일찍 퇴근할 수 있어.”라고 말할지 모른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등교시 어머니에게, “엄마, 오늘도 시험공부를 하느라고 밤을 새야 할 것 같은데, 네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주세요. 다른 친구들도 시간을 다 사 놓았단 말이에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럴 경우,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에게 시간을 사 줄 수 없는 것을 가장 속상하게 생각하겠다. 이런 세상에 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때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면 ‘시간’을 사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바쁜 때였다. 정말 시간이 금이었다.


어제 2010년의 새 달력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 달력 속 열두 장의 365일이라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본금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자본금을 어떻게 써서 어떤 결과를 얻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 자신의 몫이다.



시간은 인간의 삶의 좌표를 바꿔 놓는 힘이 있다. 훗날 어떤 이는 보람과 만족으로 살게 만들고, 어떤 이는 후회와 탄식으로 살게 만드는 것, 그것은 ‘시간’이다. 새 달력을 보며 그 열두 장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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