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5) 삶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연’이 삶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이 우연에 의해 애초 가고자 했던 삶의 방향이 틀어져서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1.

한 여성은 잡지사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 김수현 작,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 속의 여성 기자가 멋져 보였던 것. 그때부터 잡지사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되고 싶은 직업이 있다고 해서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모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나면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에 깜짝 놀라곤 하였다. 그래서 한두 군데 이력서를 낼 게 아니라 아예 여러 장을 써서 여기저기 내기로 하였다. 그것도 기자직만 겨냥할 게 아닌 것 같아서 사무직의 직원을 구하는 회사에도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어 보았다. 그런데 먼저 합격한 곳이 어느 잡지사였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그때 만약 여성 기자인 주인공이 멋진 배역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기자직을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기자직을 멋지지 않은 직업으로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얼마든지 있었는데, 하필 그 드라마가 방영되어 그 여성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합격 통보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녀가 사무직의 합격 통보를 먼저 받았다면 사무직에 취직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일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우연이 만든 일이다.


어느 유능한 영업사원(남자)은 이렇게 말했다. “난 처음부터 영업직에서 일할 생각을 한 게 아니었어요. 다만 여러 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이곳에 먼저 취직이 되어 영업직에 근무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어느 연예인(여자)은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을 해 보겠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 어느 유명한 감독님의 눈에 띄어 연예인으로 데뷔하게 되었죠.”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파스칼)”



2.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화투’를 너무 좋아해서 그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날렸다. 그리고 노숙자가 되는 신세가 되었다.


수중에 돈이 없었으므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래서 여러 막노동을 하며 돈을 열심히 벌었는데, 6개월쯤 지나니 삼백만 원이라는 목돈이 만들어졌다. 그 돈을 생각하니 어쩌면 그것은 그동안 화투판에서 잃었던 돈을 찾을 수 있는 액수 같았다. 그래서, 이건 운명이야, 하는 생각으로 다시 화투판을 찾았다. 그러나 결과는 애석하게도 돈을 다 잃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뒤, 재미로 사 두었던 복권이 당첨되어 또 돈이 생겼다. 오백만 원이었다. 그건 다시 화투를 해서 그동안 잃었던 돈을 찾으라는 ‘신의 계시’ 같았다. 신의 계시를 어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또 화투판을 찾았다. 결과는 어이없게도 그 돈을 다 잃었다.


그는 한낱 우연일 뿐인 일들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맘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 화투판을 찾은 것을 후회하였다.



3.

어느 인터넷 블로거의 이야기다. 그는 현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이 블로그를 스스로 만든 게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블로그든 홈피든 그런 것을 갖는다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었다. 왜 그런 걸 가져서 거기에 매어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리뷰를 작성해 보라고 하는 메일을 자주 받았다. 아마 그곳에서 책을 자주 구입하니까 그런 광고 메일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메일들을 삭제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리뷰를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침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어 그것에 대한 리뷰를 한 편 써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리뷰를 올리면 자동적으로 ‘서재’라는 개인 블로그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졸지에 생각지도 않은 블로거가 되었다.


그는 말할 것이다. “내가 블로거가 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아”라고.




4.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은희경 저, <새의 선물>에서.




5.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삶은 그저 우연들이 이뤄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람들의 버릇일 뿐이지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들일 때가 많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삶은 그저 우연의 연속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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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최근 몇 년간 ‘우연’이 만든 무의미한 일들이 많아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필연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생기게 되면 그것에 대한 글도 써 보겠다. 그 글의 제목은 이렇게 될 것이다. ‘삶은 필연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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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내가 뽑은 최고의 글



1.

예전에 비해 과학과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 풍요로운데 풍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생겨났다.


2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30평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0평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또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자동차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더 고급의 자동차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만족’이 부재하고 상대적 빈곤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샬 살린스(사회학자)에 의하면 오스트레일리아나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원시 유목 민족은 ‘절대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풍요로움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느긋하게 수렵하고 채집하고, 개인이 소유하게 되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 이들에겐 개인 소유물이란 없으며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풍요를 느낀다. 그들과 같이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움을 느끼며 사는 이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들처럼 풍요 속에 살려면 그들처럼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가능하다. 나눔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알고,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이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게 가능할까.


확실한 건 함께 나눌지 모르고, 오로지 남의 나라에 비해 잘 사는 경제대국이 되는 것만이, 또 남보다 많이 가진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우린 행복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부유한 나라가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마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듯하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게는 다음의 글이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로 읽힌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김구 저, <백범일지>






2.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기 일쑤이고 모순투성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기에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이 정확하고 실수가 없고 반듯한 사람들만이 있는 세상이란 얼마나 싱겁고 재미없을까.





이런 세계를 상상해 보란 말이다. 신문에는 살인 기사가 나지도 않고 모든 인간은 전지전능하며, 불이라곤 난 적이 없고 비행기 사고도 없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 일도 없고 합창대의 처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는 목사도 없으며,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리는 왕도 없고 결심을 바꾸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사람들 모두가 논리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열 살때 스스로 짜낸 계획을 실현해 내고야 마는 세계 - 이렇게 되는 날에는 이 즐거운 인간세계와도 그만 작별이다!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좋은 글이란 좋은 형식과 좋은 내용을 갖춘 것이다. 여기서 형식이란 글을 담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은 그 그릇에 담는 무엇이다. 어떤 글은 형식이 뛰어나되 그것에 담긴 내용은 보잘것없고, 어떤 글은 형식은 서툴지만 그것에 담긴 내용은 깊음과 울림이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좋은 글이다. 이때 형식이 필자의 문장력을 나타낸다면 내용은 필자의 사고력을 나타낸다. 좋은 글의 기준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문장력보다 사고력이다. 왜냐하면 사고력에 비한다면 문장력은 노력으로 누구나 길러질 수 있는 기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법(文法)에는 다소 맞지 않아도 애송할 만한 문장이 있다. 문법엔 빈틈없이 맞아도 읽기 곤란한 악문도 있다. 이런 것들은 속이 얕은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다.

- 같은 책.





꽃과 여성에 대한 임어당의 글은 심미안이 느껴져서 여러 번 읽게 한다.




미인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으로 꽃을 사랑하면 꽃의 각별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꽃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으로 미인을 사랑한다면 부드럽고도 귀여운 애정을 느끼게 된다.


미인은 말을 알기 때문에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를 풍기므로 미인보다 낫다. 동시에 미인과 꽃을 다 같이 손안에 넣을 수 없다면 향기를 풍기는 꽃을 버리고 말하는 꽃을 손안에 넣어야 할 것이다.

- 같은 책.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는, 임어당의 일침의 말.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지식, 감상을 동반하지 않는 비판, 사랑을 동반치 않는 미, 정열을 동반치 않는 진리, 자비를 동반치 않는 정의, 온정을 동반치 않는 예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얼마나 비참한 세상이냐!

-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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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좋은 글을 뽑아 소개하려고 써 보았다. 나도 누군가가 뽑아 놓은 글을 즐겨 읽기 때문에 한번 해 보고 싶었다.


1.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라는 김구 선생의 글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게 만든다. 마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미리 제시해 놓은 것만 같다.
 

       

  

  

 




 

 

 

 

 

  

 

 

 

 

 

 

 

 

   

 

 

   

 

 

 

 

 

 

 

 

  

 

 

 

 

 

 

 

 

 

 

 

2.

만약 내가 단 한 권의 책만 가져야 한다면, 난 서슴지 않고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을 선택하겠다. 이 책의 글은 언제 읽어도 향기 좋은 차와 같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푸른 나무와 같다. 이 책을 만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1993년에 처음 읽으면서 글에 너무 매료된 나머지 좋은 글에서 눈을 떼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서 노트에 적어가며 읽었었다.


이 책엔 좋은 글이 매우 많아 여기에 다 싣지 못했다. 나중에 한 번 더 좋은 글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독자를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사람이 되게 해 준다. 풍경은 아름답고 사색은 깊어지는 그런 길을 걷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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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리진^^ 2010-11-0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추, 추천 100개 하고 싶어요~ 이 글!!^^

페크pek0501 2010-11-05 18:25   좋아요 0 | URL
고맙고 반가워요.
오늘 병원에 갔었는데, 어깨가 아픈 게 허리디스크때문이래요. 예전보다 더 나빠진 듯. 이 몸으로 '그걸' 이번학기에 끝낼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지네요.ㅋ
진님도 컴퓨터 사용시 쉬어가며 하시길...
 


<연애칼럼> 사랑엔 유효 기간이 있을까


사랑엔 환상이 있기 마련이다. 이 말은 환상이 있어야만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환상은 사랑의 필수조건인 셈.



남녀가 만나기 시작하면 상대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모습의 지도를 그리게 된다. 하지만 상대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가 없다. 가령 떨어져 있는 동안에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텔레비전을 볼 땐 어떤 자세로 보는지, 잠을 잘 땐 어떤 잠옷을 입고 잠버릇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또 무슨 생각을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상의 힘을 빌려 그 모르는 여백을 채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겨나는 게 환상이다. 이때 좋아하는 상대에 대한 환상은 아름다운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환상’이란 말은 언젠가 깨지고 말 무엇을 지칭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환상으로 생긴 사랑은 가짜일 것 같고 진짜의 사랑엔 환상이 끼어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환상이 있다고 가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중요한 건 서로 상대가 가진 환상을 깨지 않도록 아름답게 보여야 좋은 연인관계가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사랑에도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늘 자기관리를 잘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랑엔 유효 기간이란 게 생기는 것 같다. 특히 둘이 가까이 있게 되면 자기 관리를 하는 일이 어려운데, 바로 결혼하면 그럴 확률이 높다. 결혼으로 인해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서로에게 친숙해져서 자기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상대의 단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상대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게 되고, 얼마나 씻기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또 조심성 없이 방귀를 뀌고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거기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연애할 때 몰랐던, 상대의 나쁜 성질까지 알게 되면 환상이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된다. 자연히 사랑의 달콤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강인선 저,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에서 사랑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참고할 만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는 순간을 사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로 가정한다면, 2년 후 그 사랑의 강도는 반으로 준다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나면 남은 사랑의 열기는 또 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세계 공통으로 결혼 4년째가 가장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열렬히 사랑했던 부부도 이혼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결혼생활이 갖는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 부부에겐 서로 편안한 가족이면서 동시에 설렘을 주는 연인이어야 하는데, 이 둘을 양립시키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다. 그 한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는 예전의 좋은 화장품 냄새가 났던 여성이 아닌, 앞치마를 두른 채 김치와 된장 냄새를 풍기는 여성이다. 물론 아내의 시각에서도 남편의 모습이 변해 있긴 마찬가지다. 남편은 이제, 예전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잡던 남성이 아니라 피곤에 지쳐 귀가하는 남성인 것이다. 이런 서로에게 사랑의 속삭임은 멀어져 간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많다. 밤마다 우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하는 부모의 역할까지 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결혼하기 전의, 연인 사이야말로 사랑을 유지시켜 주는 비결이 될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몽테뉴)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아나톨 프랑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스탕달)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드니 드 루주몽)

“욕망은 정의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다.”(롤랑 바르트) -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결국 서로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늘 옆에 있어서 언제나 안을 수 있는 연인은 뜨겁기 어렵다는 것. 그러려면 공간적으로 멀리 있어야 한다는 것. 보일 듯하면서 보이지 않고,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그 안타까움이 사랑을 증폭시킨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결혼에 대해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 주위엔 둘의 사랑을 잘 가꾸며 사는 부부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고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깊은 애정을 갖고 사는 부부들이 많이 있다. 다만 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건 꼭 염두에 둘 일이다. 지금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고 해서 영원히 그 사랑이 변치 않을 거라고 믿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변하고 마음과 생각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듯이 사랑이란 감정도 변할 수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자연의 모습도 매일 변하듯이.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를 잘 보여 주는 예가 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그의 부인 브루니의 연애 경력이다. “브루니는 믹 재거, 에릭 클랩튼 등 유명 가수 및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등 유명인과 염문을 뿌렸다. 문학잡지 편집인 장 폴 앙토방과 동거하다 그의 아들인 유부남 철학교수 라파엘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기도 했다. 사르코지 역시 두 번째 부인 세실리아가 미국인 홍보 전문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혼한 뒤 브루니와 결혼했었다(조선일보에서).” 이것만으로도 사랑엔 유효 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차라리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보면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가정해 보면 된다. 첫째, 내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내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서 내게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견딜 것인가. 둘째, 만약 자신이 짝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서 영원히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확률이 아예 없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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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강인선 저,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후기>
 

 이번 연애칼럼도 알랭 드 보통의 신세를 졌다(지난 번 연애칼럼도 그의 글을 인용했음). “사랑은 충족이 되면 스스로 타 사라지고,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면 욕망은 꺼져 버린다”라는 그의 글에 동의하는 칼럼이다.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가 쓰는 연애칼럼에선 연인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그리움과 달콤함을 동반한 사랑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요리사이고,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음악가이다. 그의 글은 맛있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는 나에게 그런 작가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란 소설은 2년 전에 읽었는데, 요즘 나는 그 책을 복습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내가 2009년 2월 27일에 올린 리뷰를 읽어 보기 바랍니다.)


 

알랭 드 보통의 그 밖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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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0-03-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컴퓨터를 켰는데, 놀랍군요! 어제 하루 4백명 이상의 방문자가 들어오셨군요. 지금도 계속 들어오시네요. 이 칼럼 때문인 것 같은데, 이 글이 왜 인기가 있는지 분석해 보려 합니다. 제가 쓴 글 중 제일 잘 쓴 거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사람들이 연애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증거로 생각됩니다.

이 글을 추천해 주신, 다음사이트의 블로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먼댓글을 써 주신 분께도 감사 드립니다. 저도 그분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조회 수가 저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더군요.

이 블로그가 생긴 지 15개월째인데 이제 비로소 안타를 쳤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공부를 더 해서 더 좋은 글로 홈런을 치는 것은 몇 년 뒤로 남겨 놓겠습니다. (페크의 자랑질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ㅋㅋㅋ 2010-03-1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0-03-19 09:17   좋아요 0 | URL
누구세요? 성함을 밝혀도 됩니다. ㅋㅋㅋ

gimssim 2010-03-19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의 자랑질 ...계속 부탁드려요.
잘 쓴 페이퍼도 맞구요.
사랑엔 '...효과'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지요.
미국 대통령...이 못말릴는 건망증.
이따 다시 올게요. ㅎㅎㅎ

gimssim 2010-03-19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 사무실에서 집에 돌아와 제 서재로.
사랑의 유효기간...쿨리지 효과.
미국의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와 그의 아내가 한 농장을 방문하여 따로 시찰을 하게.
닭장을 둘러보던 쿨리지 여사는 수탉이 하루에 몇번이나 암탉과 관계를 하는지 물었단다.
"몇십 번 합니다" 라고 안내원이 대답했다. 그러자 쿨리지 여사는 그 말을 대통령에게도 꼭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이번엔 대통령이 닭장을 보고 수탉에 관해 물었단다.
"매번 같은 암탉과 합니까?" "아닙니다. 각하. 매번 다른 암탉과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영부인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세요"
ㅎㅎㅎ...ㅋㅋㅋ...

페크pek0501 2010-03-19 09:16   좋아요 0 | URL
깔깔깔 웃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쓰셨지요? 그 이야긴 저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땐 그리 웃기지 않았는데, 중전님의 글을 통해 읽으니 매우 웃기네요. 아마도 진지한 분이(중전님의 평소의 글로 봐서) 그런 글을 쓰셔서 그런가 봐요. 같은 내용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네요.

수전 손택에 의하면 사진은 그 사진이 걸린 장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대요.
마샬 맥루한에 의하면 어떤 미디어가 전해 주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고 해요. 그래서 미디어가 하나의 메시지가 돼버리죠. 그의 유명한 말, “미디어는 메시지다.” - <미디어의 이해>에서.
니체의 말도 생각나네요.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 - <권력에의 의지>에서.

건망증으로 생각이 안 나서 그 얘기를 확인하고 다시 들어오신 님이 귀엽?습니다. (이런 말 결례가 안 되길 바라며)

오늘 중전님이 30센티 좋아졌어요. 너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 제가 경솔한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그쯤으로...ㅋ

덕분에 오늘 아침은 유쾌하게 시작합니다.

gimssim 2010-03-19 13:56   좋아요 0 | URL
아,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남궁옥분이 말했지요.
사랑에 대해 반쪽 짜리 페이터 쓸 글감 있는데 말이지요.
주말이나 지나서 써 볼께요.
유쾌하게 시작하신다는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행복 바이러스가 되고픈 중전의 소망!

글샘 2010-03-1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 개념이 포괄하고 있는 '상황'이나 '정신 상태'가 너무도 다종다양하구요. 남녀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관계가 사랑의 개수만큼이나 많지 않을까 합니다.
유효 기간 만료된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만, 유효 기간이 무한대인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요.
저 대통령과 아내의 이야기에서처럼,
사람은 제가 바라보려고 하는 부분만 바라보는 습성을 가진 찌질이니까요. ㅎㅎ
덕택에 아침부터 유쾌한 이야기 옮아 갑니다. ^^

페크pek0501 2010-03-19 20:07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어서,그게 걸려서 위에 후기를 썼어요. 이 연애칼럼에선 연인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그리움과 달콤함을 동반한 사랑이다, 라고.

그런데 연인 사이의 사랑도 저마다 빛깔이 다 다를 겁니다.

순오기 2010-03-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의 댓글보고 달려왔는데... 먼저 축하드리고
지금은 학교 갈 시간이라 미처 못 읽고 다녀와서 꼼꼼히 읽어볼게요.

gimssim 2010-03-19 13:5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여기서도 뵙네요.
저도 축하 댓글 달았는데 김치국 마시고 기다리고 있는거 보이세요?

페크pek0501 2010-03-19 20:08   좋아요 0 | URL
매우 감사합니다. 경험이 많으실테니 제 기분을 아실 겁니다. ㅋㅋ

순오기 2010-03-19 22:59   좋아요 0 | URL
앗~ 중전마마 서재에 방금 다녀왔어요.ㅋㅋ

바밤바 2010-03-1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말 그대로 조금 관례적이고 스탈당의 말이 정녕 와 닿네요.
ㅎㅎ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건 책임보다 기쁨에 더 닿아있는 듯 합니다. ^^

페크pek0501 2010-03-19 20:12   좋아요 0 | URL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실은 책임?도 조금 느낍니다. 책임이라긴 보단 마음의 불편함 같은 거예요. 겁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함부로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도 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글쓰기라서 부담스럽기도 해요.

페크pek0501 2010-03-1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이 축하의 뜻으로 방문해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중전님, 글샘님, 순오기님, 바밤바님 모두에게 인사합니다. 꾸우벅^^^

가까이들 계신다면 짬뽕에 군만두라도 각각 돌리는 건데, 대구에다 부산에다 서울이시니...먼길 오셨는데, 대접도 못해 드리고... 고마운 마음만 가득 전합니다.

그 답례로 앞으로 네 분의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여 흔적을 남겨 드리지요. 여름까지 바쁜 일이 있어서(끝낼 일이 있어서) 저는 자주 글을 못 올릴 텐데 여러분의 글을 읽는 것으로(그 즐거움으로)대신하겠습니다. 그래도 제 블로그가 폐쇄?되진 않도록 한 달에 서너 편은 올릴 거예요. ^^^ 그러니 한달에 서너 번은 방문해 주세요.

순오기 2010-03-19 22:58   좋아요 0 | URL
광주도 있어요.ㅋㅋ
꼼꼼하게 정독했습니다~ 사랑의 유통기한, 길어야 좋은가요 짧아야 좋은가요?
아둔한 질문을~~~ ^^

애나 2010-03-2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pek님 컬럼 제목이 재밌네요. 잘 읽었어요. 제목도 흥미롭고 글도 재미있어 대박났나봐요. 유통 기간, 있다마다요. 단지 기냐, 짧으냐의 차이일 뿐. 열씨미 또 쓰세요, 홧팅!

페크pek0501 2010-03-21 12:25   좋아요 0 | URL
와우, 이게 누구십니까? 반가워서 입이 저절로 벌어지네요. ^^ 방문해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인데, 댓글까지 남겨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ㅋ

이 글은 제목이 한몫한 듯해요. 사람들이 연애에 관심이 많은 데나, 유효기간이 있을까, 없을까 하는 의문문의 제목이 호시심을 일으키게 한 듯...

제가 쓴 수필 3미터~~~ 처럼 제목이 글 점수의 반 이상을 얻게 한 케이스.

만나고 싶어요. 올해엔 꼭 뵐게요. 가까이 계셨다면 자주 뵈었을 텐데, 거리가 멀고, 집을 비우는 일이 쉽지 않네요. 대신 선배님의 카페에서 많이 뵙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0-03-2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사랑의 유통기한, 길수록 좋고 없고 사랑이 영원하다면 더 좋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는 게 좀 싱거울 듯해요. 서로 잘 보이려고 긴장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유통기한이 있다는 전제는 필요할 듯합니다.

옹달샘 2010-03-2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요. "뱃살 때문에 매력이 떨어져!" 삼여년 정도 운동을 하여 임신 오개월 몸매를 몸짱으로 만드는 중에 있는 반쪽이 제게 한 말입니다. 아! 저도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에 매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독서를 통해 머리를 살찌우고 운동을 통해 몸은 균형있게 만들어야 매력있는 여성으로 거듭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0-03-23 15:04   좋아요 0 | URL
오, 반가워요. 반쪽님의 그 말씀은 오히려 애정 표현 같은데요. 그건 뱃살을 빼서 둘이 잘 지내보자는 말 같아요.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지요.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때 보니깐 옹달샘님은 살찐 게 아니라 딱 보기 좋던데요. 다이어트 열풍으로 우리 사회가 좀 잘못된 거죠. 너무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지나쳐요.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뱃살을 빼는 건 좋습니다. 전 매일 걷는 운동을 합니다. 아마 365일 중 350일은 하는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10-04-2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연애칼럼의 조회의 수가 1,000이 되었군요. 천 명의 조회를 자축함 ㅋ.

희망찬샘 2013-07-1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칼럼 읽고 갑니다. 남편 얼굴 한 번 더 쳐다봐 주고, 따뜻한 말도 해 주고 그래야 겠습니다. 유효기간 늘리도록 말이지요.

페크pek0501 2013-06-04 13:50   좋아요 0 | URL
옛 글을 보셨군요. 인기칼럼이라니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에게 웃어 주기만 해도 남편들은 좋아할 겁니다. ^^
 


<싱거운 후기>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를 쓰고 나서




1.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라는 칼럼에 대하여


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는 큰애가 수시모집에서 불합격한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로서 갖게 된 내 마음가짐이 묘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어머니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식이 잘 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했을 터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해 나쁜 결과가 나오게 되면 그것에 초연하기 힘들 것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일터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백화점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경의를 표하게 된다. 백화점 판매직에서 일하는 어느 사십대 주부로부터, 하루 종일 서서 근무를 하여 다리가 아프고 발이 퉁퉁 붓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삶의 불평이 없진 않지만 그 어떤 불평도 그 앞에선 한낱 투정일 것 같아서.


이 칼럼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러기 아빠’의 가정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다음으로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를 넣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가정을 해체하고 부부가 떨어져 산다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이 바란 만큼 그 결과가 나온다면 그 어려운 삶에 대해 보람을 느낄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얼마나 마음에 타격이 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러기 아빠에 대해서 쓰자니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경우의 예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부부 이야기 둘을 가져와 썼다. 하나는 알뜰한 아내의 불행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늦둥이를 낳은 아내의 불행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그 상대는 자신의 희생을 바라지 않더라’라는 메시지를 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로 돌아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넋두리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여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에 쉽게 썼는데, 결말이 잘 써지지 않아 여러 번 고쳐 썼다.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주제를 제목으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개가 나왔다.


주제 1 :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착각이다.

주제 2 : 상대는 내게 희생하길 강요하지 않았다.

주제 3 : 희생의 선택은 자신에게 있다.

주제 4 :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중에서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를 주제로 생각하기로 하고 이것을 제목으로 정하였다. 따라서 이 칼럼의 맨 끝 문장도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도스토예프스키(소설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이 행복을 불행으로 맞바꾸지 않으려면, 그 결과에 실망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탓을 상대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므로. - 나의 글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중에서 끝부분.


이 글은 자신이 희생한 결과에 대해 불평을 갖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그런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썼다. 자신의 희생에 대해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생각을 바꾸면 행복한 길을 향해 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2. 글쓰기에 대하여


글을 써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글이란 게 얼마나 수학적인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한 문장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되며, 한 문단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된다. 또 같은 낱말을 많이 중복해서 써도 안 되며, 낱말은 다르되 같은 의미의 문장을 중복해서 써도 안 된다. 같은 의미의 문장이 각각 다른 문단에 있을 경우엔 한 문단 안에 몰아넣고 중복되는 것은 빼 버려야 한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단과 문단의 연결도 자연스럽도록 신경 써야 한다. 서로 유기적 관계에 놓이도록 써야 좋은 글이다. 낱말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한다. 문장의 뜻을 살리기 위해 가장 적확한 낱말을 찾아 써야 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의무에 가깝다. 이를 위해 나는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알면 알수록 글쓰기가 쉬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것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글 쓰는 일이 쉽다면, 그래서 누구나 쉽게 잘 쓸 수 있다면 아마 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글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글쓰기가 하나의 ‘도전’이다. 도전하며 사는 삶의 좋은 점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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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10-03-1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러 문장을 리듬감 있게 하려 애씁니다. 헌데 쉽지 않네요. 생각의 실타래가 지나치게 엉켜있을 땐 특히 심해지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0-03-11 13:14   좋아요 0 | URL
대단합니다. 리듬감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쓰시다니... 전 아직 그런 경지에... ㅋ


좋은 글은 저절로 리듬감 있게 읽게 돼요. 좋은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걸 느끼게 되죠. 왠지 잘 안 읽혀지는 글이 있는데, 그건 못쓴 글이죠. 최명희의 <혼불>이란 작품이 리듬감 있다는 평을 받아요. 그의 글은 곡만 붙이면 그대로 노래가 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가장 좋은 문체는 간결체라고 합니다. 많은 유명 작가들이 동의했어요. 그래서 전 길게 써진 문장이 있으면 많이 자르는 편입니다. 그것이 읽는 독자들도 편하지요.

 


<생활칼럼>

희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번에 큰딸이 ‘수능’이라 일컫는 대입 시험을 봤다. 그리고 수시모집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믿었기에 나의 실망은 컸다. 아이는 거의 매일,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장 독서실로 가서 공부하여 밤 열두 시 넘어 집에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간식을 주고 말벗을 해 주고 새벽 한 시가 되어야 잘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고등학생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삼 년 동안 했던 뒷바라지였다. 그런데 불합격이라니, 그 결과 앞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내가 삼 년간 새벽 한 시에 자고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새벽밥을 먹인 결과가 불합격이란 말이지.”


이에 대해 아이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엄마보고 그냥 자라고 했잖아.”


사실 아이의 말이 맞다. 아이는 간식만 식탁에 챙겨 놓고 먼저 자라고 내게 여러 번 말했었다. 그 말을 듣지 않은 건 나였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힘들까 봐 학교와 학원을 자동차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아이가 밤새 공부하면 옆에서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어서, 이 정도의 뒷바라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해 주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야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던, 나 스스로의 선택인 셈이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밤에 편히 잘 만큼 내 신경은 무디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자식으로 인해 수면 부족을 견디며 지낸 것을 대단한 희생으로 착각했었나 보다.


사실 나는 내 생활로 바빠 아이 공부에 마음을 크게 써 주지 못했다. 그저 밤잠을 적게 잔 것 빼고는 특별히 뒷바라지한 게 없다. 그런데도 아이의 낙방에 서운함과 허탈함을 느꼈으니 나보다 더한 어머니들은 어땠을까, 헤아려진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삶의 대표적인 경우가 ‘기러기 아빠’의 삶이 아닐까 한다. 그 아내도 힘든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나는 ‘기러기 아빠’의 사연을 들을 적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가 부모가 바라는 대로 성공의 길을 걷게 되면 모를까, 만약 아이가 부모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그 부모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부모가 “너 하나 외국에서 공부시키겠다고 우리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도 감수했는데, 결과가 이게 뭐니?”라고 말했을 때 그 자식이, “누가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떨어져 살라고 했어요?”라고 한다면….


희생은 부모 자식 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있다. 어느 부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가 알뜰하래?”


부부 이야기 하나. 남편은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내는 알뜰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백화점 쇼핑을 갔다. 남편은 자신의 옷과 선글라스를 값비싼 것으로 샀고 아내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부부는 싸움이 났다.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은 이러했다. “난 그렇게 알뜰하게 사는데, 당신은 꼭 그렇게 비싼 물건을 사야 돼?” 이에 대해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비싼 물건 사지 그랬어?” 그리고 이어진 말은, “누가 알뜰하래? 당신이 알뜰해서 하나도 고맙지 않아, 오히려 그래서 피곤해.”였다. 아내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 달라고 했어?”


부부 이야기 둘. 마흔 살이 다 되어 뒤늦게 늦둥이를 낳은 아내의 사연 또한 이와 비슷하였다. 딸 둘을 낳고 세 번째로 낳은 자식이 그동안 열망하던 아들이었는데, 남편은 아이의 기저귀조차 갈아주지 않았고 아이를 좀 봐 달라고 하면 고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따졌다. “난 당신이 아들이 없어서 허전할까 봐 힘든 걸 감수하고 아들을 낳았어. 난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당신은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 없잖아.” 이에 대해 남편은, “누가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 달라고 했어? 괜히 낳아서 아이의 울음소리에 밤잠도 못 자게 하잖아.”라고 응수했다. 아내는 할 말을 잃었다.


알뜰한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알뜰히 살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고 여겼어야 옳았다. 늦둥이를 낳은 아내 역시,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 주고 싶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늦둥이를 낳았다고 여겼어야 옳았다. 그래야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기러기 아빠의 가정이 생겨난 것도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다. ‘자식 때문에’라기보다는 ‘외국에서 조기 유학을 하는 자식을 두고 싶어서’, ‘외국 유학으로 남들보다 월등히 사회적 성공을 거둘 자식을 두고 싶어서’, 그런 욕심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그래야 자식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넋두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부모 자식 간 좋은 관계가 되기 어렵다. 그런 부모에 대해 자식이 부담스럽게 생각할 게 뻔하고 어쩌면 짜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되면 그 대상을 원망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든지 그것은 타자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보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도스토예프스키(소설가)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라고 하였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이 행복을 불행으로 맞바꾸지 않으려면, 그 결과에 실망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탓을 상대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므로.


.....................................................................................


<후기>


수시모집에서 낙방한 아이는 결국 정시모집에선 합격하여 자신이 원하는 학교, 자신이 원하는 학과의 대학생이 되었다. 내 생활로 바빠 밤잠을 적게 잔 것 빼고는 엄마로서 마음을 크게 써 주지 못했는데도, 대학에 무난히 합격해 큰 기쁨을 안겨 준 딸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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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10-03-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보다 연배가 꽤나 있으시군요. 저는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비슷해서 제 또래인 줄 알았습니다. ^^;; 따님께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ㅎ

님의 글또한 라캉이 이야기한 '욕망의 주체'란 주제로 환원될 수 있을 듯 보이네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저런 자잘한 충돌이 생긴 듯. 라캉이 말했듯 인간이 어릴 땐 엄마란 존재의 눈치를 보며 살고 커서도 그러한 종속 관계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삶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기에 결국 제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좇으며 산다는 뭐 그런 말.
지나치게 환원론적이 말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대부분 사안은 지극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잔가지인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ㅎ

페크pek0501 2010-03-07 00: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기서 거기인 얘기, 그런 경우가 많죠. 책을 읽다보면 같은 내용의 글을 저자마다 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말이 생각나죠.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은 없다. 그저 새로운 방식이 있을 뿐이다.' - 내용은 같은데 표현방식만 다르다는...

젊은 친구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사실 전 바밤바님이 최근까지 여자인 줄 알았답니다. ㅋㅋ 그런데 님의 글 중에 '누나'라는 낱말을 쓰길래 알았어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읽고 적게 쓰자'주의거든요.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