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키 작은 남자는 키 큰 여자를 원한다?




키 작은 남자는 키 큰 여자에 반한다. 키 큰 여자는 키 큰 남자에게 별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키 작은 남자는 키 큰 여자를 통해서 자녀의 키에 대한 가능성을 조절하고, 키 큰 여자는 키 큰 남자를 피함으로써 자녀의 거인화를 미리 막으려는 것이다. - <사랑은 없다>, 41쪽.







모든 인간은 신체의 기형을 바로 잡아 균형을 맞추려는 잠재적인 눈높이를 갖고 있다. 그와 같은 현상은 비단 신체의 크기나 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격에서도 나타난다.

이성은 누구나 자기와 반대되는, 혹은 자기에게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기를 바란다. - <사랑은 없다>, 41쪽.





쇼펜하우어는 키 작은 사람이 키 큰 이성에게 끌리고, 키 큰 사람은 키 작은 사람을 선호한다면서 그 이유는 자녀의 키 조절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와 반대되는, 혹은 자기에게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점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에게 없는 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경향이 있긴 하다. 가령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지성에 대해 큰 가치를 두기에 지성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매료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지성적인 사람이라도 지성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점을 선호하기 때문일 뿐,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부자와 빈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빈자는 부자의 이성에게 끌리지만 대부분의 부자는 부자의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건 이미 자신이 갖춘 것에 대해선 큰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가 멋있어 보이는 건 자신이 가난한 경우에 한해서다. 그러나 부자도 부자를 좋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이 금전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녀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키가 작은 남자가 언젠가 태어날 자식도 자신을 닮아 키가 작을까 봐 이왕이면 키 큰 여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이해할 수 있지만, 키의 조건이 이성을 사랑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라고 여겨지진 않는다. 둘 다 키가 작은 부부들과 둘 다 키가 큰 부부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많다. 하나는 동질성이고 또 하나는 이질성이다. 어느 부분이 나와 같거나 다를 때 상대를 사랑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이질성 때문이라고만 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성향이 같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같은 취향으로 마음이 통해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이 있지 않은가. 아마 쇼펜하우어가 살아 있다면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을지 모른다. ‘찾아보면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었겠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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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는 요즘 나의 생각과 같은 글보단 다른 생각의 글을 읽으려 한다. 읽어야 할 책이 많고 바쁜 삶을 사는 세상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는다는 건 한마디로 시간낭비다. 그런 점에서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의 글을 읽을 때 내가 놓친 다른 진실을 깨달을 수 있고 나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균형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책은 독자를 변화시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과 관련한 책 :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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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추루 2011-07-1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지런한 은경씨 삶을 심오하게 살 정도의 여유만 있었더라면 ㅎ 난 삶과 투쟁하느라 바쁘다오~

페크pek0501 2011-07-17 12:5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보는 순간, 아주 '짠' 했습니다. 마치 총 맞은 것처럼...

덜 투쟁해도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대상은 각기 달라도 누구나 투쟁하며 산다는 것을. 투쟁하며 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그런데 바로 그 애씀이 우리 삶의 원천이라는 것을. 그것이 없으면 죽은 삶이라는 것을.

제가 오늘 (아마도 제 기분이) 컴추루님이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까지 읽은 것 같군요.
 


<반론> 인류의 종족 유지 본능 때문에 사랑을 한다?




남녀 간에 엄숙하고 뼈에 사무친 사랑의 고뇌와 환락은 바로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대전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인류는 그 엄숙하고 고뇌에 찬 사랑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랑이 생의 목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사랑은 없다>, 26쪽.






자신의 연인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찬미가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라 해도 그 최종 목적은 오직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사명감을 완수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사랑은 없다>, 29쪽.




쇼펜하우어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늘 2세에 대한 잠재적인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남자는 2세를 위해 체력이 뛰어나고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을 선호하며, 이 조건이 갖추어질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두 연인의 결합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곧 그들 개체의 생명의 연장을 뜻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혼하기 위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재혼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전제하고 연애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관계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또 불륜 관계는 어떠한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랑해서는 안 될 상대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어 괴로워하는 사람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륜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2세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텐데 말이다. 사랑의 강물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제하지 못해 강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마는 경우의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은 이성적이라기보다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무분별하지 않은 애인은 애인이 전혀 아니다(하디),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장님이 된다(프로페르티우스),

사랑은 결점을 보지 못한다(T. 풀러).’


이런 명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엔 이성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맹목적이 아니라면 그건 사랑이 아닐 듯싶다. 그러므로 2세를 생각할 만큼 계산적인 이성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훗날 낳게 될 자식을 위해 좋은 유전자를 갖춘 상대에게만 사랑에 빠진다면 짚신에게는 짝이 없겠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짚신에게도 닮고 싶은 장점이 하나라도 있게 마련이오. 그리고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이오.”라고.


또 만약 2세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동성연애자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난 남녀관계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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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를 읽고 그의 글에 반론을 제기해 보았다.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에 지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가정해 보면,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글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쇼펜하우어의 저작의 가치는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문제에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건 그의 메시지가 우리로 하여금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반론의 글을 썼고, 나는 그의 글에 대해 반론을 썼다. 그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해 봤지만 그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옳은가, 하는 판단은 물론 독자들의 몫이다.



이 글과 관련한 책 :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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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 방법이 중요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젊어진 것 같단 인사를 했더니, 그분이 기분 나쁜 표정을 보여 당황한 적이 있다. 나는 젊어 보인다며 기분 좋게 해주려 했는데, 그 선배는 ‘내가 그만큼 늙었다는 말이냐’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말 한 마디로 낭패를 보았다.


‘예뻐졌네’하는 말도 듣기 따라서는 ‘예전엔 예쁘지 않았다’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을 잘 가려서 해야 될 듯싶다. 말을 건넨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말의 뜻을 오해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지만, 우린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만큼이나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어느 날, 우리 집 우편함에 어떤 봉지가 들어 있어서 꺼내 보았다. 거기엔 글씨가 씌어 있었는데, 아파트 주변에 쥐들이 많으니 이 쥐약을 곳곳에 뿌려 놓아 쥐들을 잡자는 내용이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동네를 위한 일이므로 그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봉지를 들고 그 약을 어디에 뿌리는 것이냐고 묻기 위해 경비원 아저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비원 아저씨가 내가 들고 있는 쥐약 봉지를 보더니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쥐약을 함부로 뿌리는 사람 때문에 어제 개 한 마리가 죽었다면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길에 쥐약을 뿌리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란 걸 난 왜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다. 좋은 이웃이 되려다가 나쁜 이웃이 될 뻔한 내 마음을 그 아저씨는 알 턱이 없을 게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도 ‘방법’이 중요하다.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 사랑하던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장자 저, <장자> 중에서.


어떤 어머니는 자식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들을 또는 딸을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을 만들어 버려서 주위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호의에도 사랑에도 중요한 건 그것을 나타내는 좋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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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손가락은 장작을 지피는 일을 할 뿐, 불이 전해지면 그 불은 꺼짐을 모릅니다. - <장자> 163쪽, 현암사.


당신은 호랑이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죽일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도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찢을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호랑이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리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살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 <장자> 202쪽, 현암사.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 <장자> 368쪽, 현암사.


저에게 누군가가 좋은 책을 열 권만 뽑으라면 서슴지 않고 그 중 한 권으로 장자가 쓴 <장자>를 뽑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장자>의 글을 많이 인용하기도 하였는데, 앞으로도 인용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장자>에는 깊은 의미를 가진, 생각할 거리의 글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글도 많기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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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저, <장자>를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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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은 글이군요. 꼭 장자라는 책을 사볼래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페크pek0501 2010-05-20 18:49   좋아요 0 | URL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지리진 2010-08-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억.. 선생님~ 장자였어요?? 전 왜 노자를 샀을까요?? ㅠ.ㅠ
선생님께서 가장 권해주고 싶다던 철학서... ㅠㅠㅠ 초간 노자 양방웅 도서출판 예경 구입해버렸어요~ 헐. 그리고!! 남교수님 책 샀답니다~ 항상 끼고 다니면서 읽을 거에요!! 추천해주신 책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벼락같이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바보같이 답답할만큼 꽉 막혔었다는 생각이요!ㅜ 편협하고 생각이 좁았단 사실을요..ㅜㅜ 하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주에 선생님께서 하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과 이해에 대한 말씀들... 그 땐 무슨 도덕관과 상식 따위를 생각하면서 "이해 절대 불가"란 신념을 꼿꼿이 세웠는데... 이 세상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나나 내 친구들에게 어쩌면 사고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을 가져야 겠어! 란 생각이 불현듯 든 거에요!! 그런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생각과 관심 어쩌면 제가 좁쌀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이해와 공감 등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고, 문화 경제 정치에 대한 이해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페크pek0501 2010-08-12 12:45   좋아요 0 | URL
ㅋ 전 장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노자입니다. 두 권 다 좋아요.
공자나 맹자에 비해 좋던데,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진님의 댓글에 답글을 쓰다가 글이 길어져서 아예 페이퍼에 글을 올렸어요.
단상(9)<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글입니다. 보시길...

진지리진 2010-08-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그동안 드러나는 뭔가에 대해 다소 가식적일 정도로 그럴 듯해 보이거나 괜찮아 보이면 되겠지했는데, 그보다는 인간 그 자체(자연스러움과 본성 등등)에 대한 이해...도 아니겠죠~ 제 수준에선, 뭐랄까~ 그 자체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이고 안목적 매커니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교수님 칼럼에서처럼... 어쩌면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에서조차 권선징악 사필귀정 류의 도덕적 국수 자락을 뽑아 지성을 배불리거나, 내 상식에선이란 서두로 운운하는 제 뇌의 오만한 식성과 착각어린 상상적 비만에 대해 재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겠어요!!
요즘...무더위에 태풍까지... 이사 준비로 바쁘실텐데~ 더구나 손가락 마비 마법에 걸리는 논문 쓰는 와중에도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쌤께!!^^

페크pek0501 2010-08-12 12:46   좋아요 0 | URL
진님처럼 젊은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저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ㅋ

진주 2012-10-3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슬플까요..

페크pek0501 2012-11-01 21: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왜 슬프실까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주 2012-11-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죄송해요 그때의 마음만 담아두고 갔네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의 부분을 읽고
저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저를 모르면서 막말하는 인간들이 생각이 났어요.
저는 그들을 존중해줬지만 돌아오는건 상처뿐이더군요.. 물론 이야기를 해주어도 못알아듣는 인간들 때문에 속상했어요. 제 후배들과 옆사람들도 같은 피해를 보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게 사람을 대하니 참 그들이 이젠 짜증나고 싫어요

페크pek0501 2012-11-16 20:30   좋아요 0 | URL
의사소통, 이것 참 어렵지요.
죄송할 것까진 없습니다. 오히려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던 걸요.
오래전에 쓴 글인데, 저도 님 덕분에 다시 읽어 봤답니다.
날짜를 보니까 2년도 더 된 글이네요.
오래전의 글도 읽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싱거운 후기>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을 쓰고 나서



나폴레옹은 청년 시절에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대단히 애독하여 전쟁터에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하며, 이 소설을 무려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것을 어느 책에서 읽고 이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된 게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일 때였다.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시시하게 읽은 것이라서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나폴레옹이 일곱 번이나 읽었다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다시 읽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서간체 소설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작품을 쓴 괴테 자신이 젊었을 때 실제로 체험한 절망적인 사랑의 경험과, 그리고 불행한 연애 때문에 자살한 친구의 파멸을 소재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 것이다.


베르테르가 우연히 만난 로테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까지 앓게 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때 ‘우연’은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살하는 인생’이 아닌,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우연’이란 존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연’이 베르테르에게서 보듯이 불행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지도 모르니까.


‘우연’은 누구에겐 행운을 주고 누구에겐 불운을 준다. 나는 불운을 주는 ‘우연’이란 놈이 내 삶에 끼어들까 봐, 그래서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닌, 엉뚱한 불행한 길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소설이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베르테르와 로테의 로맨스는 부채나 도자기의 도안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 저고리와 노란 조끼와 바지가 유행하기도 했단다. 또 베르테르를 예찬한 나머지 이혼이 증가하고 자살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의 영향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 역시 ‘우연’의 희생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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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칠근 2010-05-0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네요.
늘 건필, 건강하세요

페크pek0501 2010-05-04 15:29   좋아요 0 | URL
박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



책을 읽다보면 좋을 글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글을 읽을 때면 다른 글로 넘어가기 전에 그 글을 여러 번 읽게 되는데,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연애소설이 내겐 그러하였다.


이것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땐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몰랐다. 시시했기 때문이다. 그저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한 남자의 불행한 사랑이야기일 뿐, 그 어떤 감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땐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 아주 다른, 새로운 명작을 읽는 듯했다. 이렇듯 읽는 시기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른 이유는 아마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의 정신도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과 함께 나의 정신도 성숙해진 까닭이겠다.


이번에 어떤 글을 쓰기 위해 세 번째로 이 소설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이 글을 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통해서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직업과 사랑의 공통점 세 가지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파스칼)”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pek0501)”


직업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S. 존슨)”

사랑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pek0501)”


“이 세상에 비천한 직업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링컨)”

“이 세상에 비천한 사랑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pek0501)”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또는 그녀가) 나타나서 나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걸까, 여긴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운명적인 것이었을까, 하고 누구나 한번쯤 생각에 잠겨 봤을 것이다.


베르테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한 하녀가 문 앞으로 나와서 로테 아가씨가 곧 나오실 테니 잠깐 기다려 달라는 전갈을 하였소. 나는 앞뜰을 지나 훌륭한 저택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소. 집 앞 층계를 올라가서 현관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여태까지 보지 못한 매혹적인 정경을 목격하였소. 즉 그 현관 홀로 위로는 열한 살에서부터 아래로는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 여러 명이 한 처녀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오. 팔과 가슴에 연분홍색 리본이 달린 말쑥한 흰 옷을 걸치고 있는 그 처녀는, 얼굴이 아름답고 키도 알맞은 편이었소.” - 32~33쪽, 혜원출판사. 


그녀(로테)는 손에 검은 빵을 들고 자기를 빙 둘러싼 아이들에게 각각 나이에 따라 빵을 조금씩 잘라서 정답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저마다 천진스럽게 고맙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로테)의 모습에 베르테르는 반해 버린다.


“나는 겉으로는 (로테와) 덤덤히 몇 마디의 인사치레를 했지만, 속으로는 어느덧 그녀의 몸매와 음성과 거동에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소. 그리하여 그녀가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겨우 정신을 차릴 여유를 갖게 되었소.” - 33쪽.


이렇게 베르테르는 로테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하지만 로테에겐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이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마침내 베르테르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눔으로써 삶을 마감하게 한다. 그는 죽기 전에 로테에게 편지를 썼다.


“아아, 나는 얼마나 당신과 굳게 결합되어 있었던가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리본도 함께 묻어 주십시오. 내 생일날 당신이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런 물건들을 나는 얼마나 탐냈는지 모릅니다. 아아, 그 길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습니다. 진정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탄환은 재어 놓았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럼, 로테여, 안녕!” - 231쪽.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땐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베르테르의 경우에 그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에 자살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그 당시의 신분차별의 귀족사회에 대한 그의 불만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로테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고 볼 때 그의 죽음은 그 괴로운 사랑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베르테르를 통해서 직업과 사랑의 세 공통점을 보다


로테가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왜 하필 베르테르의 눈에 띄어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했을까. 베르테르가 로테가 있는 그 시골 마을에 가지만 않았어도 그는 그런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사랑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pek0501)”


베르테르는 로테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빠져서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랑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pek0501)”


로테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고 해서 베르테르의 사랑을 비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랑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에 비천한 사랑이란 없다. 다만 비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pek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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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책>


괴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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