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을 보면서, 온라인의 배설보다 무서운 건, 한국 사회 내 '학문'에 대한 인식이리라. 이제 한국사회는 80퍼센트 이상의 대학졸업자가 아닌, 80퍼센트 이상의 '대학원 졸업자' 사회에 진입할 게 될지 모른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 인가라는 반문이 나올 듯하지만, 여기가 한국이니까 가능하리라 본다. 교회를 안 다녀도, 교회 사정을 신도보다 잘 알고, 인도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인도 사정을 그렇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 나라 아니었는가. 노르베르트 볼츠가 말한 '정보미식가'들의 세상에서, 정보는 경험을 부정하고, 경험을 한 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우리 시대의 총이 되었다. 정보미식가들에게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상식은 (그들의 정보에 의해) 구성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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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가게들이 문을 많이 닫을까봐, 장을 한꺼번에 많이 봤는데, 다음 추석때는 그리 안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추석은 '내려가는 자들'을 위한 날이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날이 될테니까. (명절날, 순대국집에 혼자 순대국 먹으러 온 사람들 왜 이렇게 많은거야.ㅎ) 이제 '고향'이란 점점 사라질 개념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휴식처'만이 남았을 뿐이다. 서울/비서울의 경계는 점점 강화되고, 시들시들했던 '내부식민지론'은 은밀한 탄력을 받을 것이다. 명절은 '휴가의 기능주의'의 테두리 안에 걸쳐있고, 언론의 관용적인 명절 풍경은 명절의 진실을 감추게 될 듯하다. 동아시아 블록 안에서의 경쟁과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의 관련성 속에서, 가장 두려운 미래는 (사람들이 가장 그저 그렇게 치부하는)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담론의 세계가 아닐지. 이제 고향은 언젠가 돌아갈 곳이 아니라, 늘 '관리되어야 할'곳이리라. 노스탤지어가 아닌 합리적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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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4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2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누르면서도 씁쓸하네요...
혼자 명절을 보내신 건가요?
평소보다 조용하고 나른한 시간(폭우가 망쳐놓긴 했지만)을 보낸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혼자 순대국 먹으러 가진 않았는데...
힘 내세요!!! 늘 들르지만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9-27 1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와님!^^

2010-09-25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걱정은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내가 장례식을 잘 리드할 수 있을까?이다. 아버지는 늘 내가 생활점수가 떨어진다고 핀잔을 주셨다. 나는 어린 시절 형광등을 가는 법부터 라면을 끓이는 법까지. '책만 읽고, 생활력이 떨어지는 아들놈'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아버지로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양라면을 혼자 끓여 먹고 나서, 대충 물로 씻어놓은 냄비를 보신 아버지가  나를 기특해 하셨을 때, 그 쾌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 스물 아홉살이 되어도, 여전히 효도다운 효도 하나 못해 드리고, 돈을 타 쓰는 아들놈이라는 이미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 청년들의 이미지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미지가 개인화되었을 때 다가오는 아픔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당당함'과, '비경제인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기죽음'이라는 뒤섞임 속에서 강화된다. 연달아 우수한 회사에 취업한 연구 동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잡고 있는 졸업 논문의 한 자, 한 자에 대해 담겨진 애정이 하루하루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 할 때가 바로 내 현실이라는 건 감출 수 없을 듯하다. 

몇 년 째, 집에 내려가지 않는 이유엔, 그냥 공부하느라 바빠서,라는 진부한 핑계보다는 내 스스로가 집에 내려갔을 때 여전히 나를 따스하게 받아주실 그 가정의 이미지가 나를 어린 시절의 온기로 뒤덮어, 그냥 멈추게 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느낌을 인정한 건 최근이었다. 그래서 이 온기가 유지되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 온기의 힘이 나를 이 삶의 생존자로 유지해주겠지,라는 '습관적 희망'에 기대게 할 때, 정작 그 온기의 멈춤. 그것을 보여줄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을 가끔 꿈에서 마주치게 되고, 나는 깨어나서, 서랍에 들어있는 통장 몇 개와 잔액을 새삼스럽게 확인해본다. 

이 생을 실감난 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결국 '돈'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장례식'이라는 죽음의 의례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건, 내 스스로에게 시사적이고, 뭔가 사회적으로 말하고 싶게 만드는 상징성이다. 그것이 꿈이라는 내 '형식의 장치'라 하더라도, 그것이 형식이기 때문에 실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건, 내 스스로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리라. 오히려 그것이 형식이며, 그 형식이 꿈은 결국 환상 아니겠니?, 현실은 다를거야.라고 선언하는 순간, 닥치는 삶 그 자체의 불확실함, 그리고 우연은 (과장을 보태어) 영혼을 잠식한다. 

며칠 전, 홍상수의 영화를 보러 광화문에 갔다가, (때마침 내가 광화문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시간 30분 전) 사원증을 걸고 오늘은 어떤 점심을 먹을까 웃으며 건물을 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봤을 때, 그리고 그 쳐다봄을 통해 문득 생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할 데가 없다는 적막감으로 하루앓이를 할 때 쯤. 나의 치열함이 결국 책의 운명과 논문으로 가게 된 (어쩔 수 없는 이 순간) 이 시간에 내가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나오는 꿈 속에서도, 현실에서 내가 만지고 있는 책과 논문에서도, 내가 마음 속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다가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저 직장인의 건물에서도 내가 없는 시간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이 삶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정성일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이 사회를 둘러싼 무자비와 무능력.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말 자체에 대해 결국 힘내자,라는 말밖에 건네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밉고 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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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8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9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1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정환과 엠시몽을 다룬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무리수'를 마셔야 할 사람은 오히려 언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비평가라는 사람들이 재판관이 되려는 한국 사회에서, 네이버 지식인에 문화평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를 묻는 새싹들의 미래가 암담하다.  오히려 지금 물어야 할 건 연예인의 윤리가 아니라 언론의 윤리가 아닐까. 정말 한국의 대중문화 저널리즘은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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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9-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보고는 논개로 바꿔야겠는데요^^

얼그레이효과 2010-09-16 23:49   좋아요 0 | URL
아하.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ㅋ

2010-09-20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끔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 적확한 맥락으로 탈바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무서운 재미'가 가득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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