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교수에게 묻기 전, 제자들에게 

오늘도 어느 출판기획자의 책상엔 정체불명의(?) 학술외서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연구형 '기획자라면 본인이 직접 인터넷 바다를 헤엄칠지도. 그리고 이런 말을 할지도. "그래, 학술서가 어렵지만 요건 내면 그래도 찾아서 사 보겠지..". 그리고 '주변 참조형'기획자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수에게 구조 요청. "교수님, 김길동입니다"로 시작하는 안부 인사. 그리고 용건으로. "아..교수님 몇 년 전에는 푸코가 좀 붐이다 싶더니, 요새는 영 경향을 모르겠네요."(여기까지만 읽어도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냈는지 이 바닥에 도가 튼 학자도 있을 듯. 계속)" 평소 교수님의 깊고 다양한 독서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최근 연구하시는 주제가 신선하더군요. 관련하여 교수님 대학원생들이 읽을 만한, 그리고 인문사회쪽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탐낼 만한 좋은 학술서 없을까요?" 물론 이 가상의 대화보다 더 구체적인 상황이 있을 것이다. 암튼 내가 이것을 상상해 본 건 인문사회 서적 시장 중 학술서. 이 '학술서'란 놈은 정말 누가 읽느냐의 문제다. 난 이 바닥에 정녕 대학원생들의 현실이 있는지 궁금하다. 

 

# 2. "요즘 대학(원)생들 참 책 안 읽어"에 괄호 없애기 

공대나 경제경영쪽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르겠다. 내가 대학교때부터 근 10년동안 공부한 문화연구 바닥을 포함해 인문,사회쪽 공부하는 사람들의 독서 실태에 대해서는 그래도 한 마디 거들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요즘 대학생들 참 책 안 읽어"라는 진부한 말에 '원'자를 넣어도 된다고 본다. 대학원생들 책 읽을 시간이 있던가. 정말 경험해보니 그랬다. 현실적인 대안은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는 것보다, 푸코의 《성의 역사》를 다룬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게 대학원생들의 현실적 독서일 것이다. 커리큘럼에는 한 주마다 시도해야 할 무시무시한 레퍼런스 소화 명령이 적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이 책만을 깊이 팔 수 있겠나. 사람들은 바쁘다. 생각할 것도 많다. 돈 벌려면 당장 놓인 연구도 해야 한다. 책은 사고 싶다.  그러나. 

 

# 3. '수다장'으로 변하는 강의 시간 

모든 수업이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닥을 소개하면 수업은 '수다장'이었다. 매주 책 리뷰를 적어오는 것이 과제지만, 어렵다. 안 읽힌다. 그래서 일단 책의 대강을 훑는다. 그리고 관련된 인생담을 적는다. 자신이 주의깊게 보는 사회 현상을 깊게 기술한다. 그러면 수업 분위기는 오늘 배우기로 한 부르디외의 '장 이론'이나 푸코의 '권력론'이 아니라, 자신이 주의깊게 본 요즘 사건들에 책 내용을 조금 얹는다. 결국 3시간 정도의 수업은 각자 삶을 한탄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그러면 남는 것은 없다. 교수는 자신을 도발할 견해가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짓밟힌다. 그래서 예리한 교수들은 불시에 책을 읽었는지 검사하기도 한다. "자네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를 설명해볼 수 있겠는가" 제자들 일동 침묵. 고개 숙이기.

 

# 4. 유일한 기대, '세미나' 그러나. 

간혹 '열혈 모드'인 대학원생이 있다. 그런 사람들끼리 뭉치면 "정말 이 책은 누가 읽을까"라고 관련 출판기획자도 의문을 갖는 책들을 읽는 수요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세미나라는 것이 어찌 그리 끈기있게 유지되던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읽어오라는 그 명령의 긴장감이 사라지니 스스로에게 맡긴 그 열혈 모드의 자유 의지는 이내 식고 만다. (대부분 세미나를 주도한 사람이 먼저 지쳐 모임을 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일단 책은 팔리겠지만, 지식이 유통되고 소비되지 않으니 관련 책들을 사 볼 수 있는 다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요즘 인문,사회 대학원생들의 대안은 대학원 밖 좋은 인문사회 강좌들을 등록하여 돈을 추가적으로  내는 것이다. (언제 한 번 이 문제를 깊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금 대학원 바깥의 인문사회 강좌들의 융성이 대학원생들에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일단 이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밝혀두고 싶다) 

 

# 5. 결국 문제는 학문 사회다 

근데 이 문제를 개인의 불성실로 탓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학문 사회다. 대학원생들 열심히 산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탐독하고 싶은 원전 읽을 시간이 없다. (그러면 휴학이라도 해야 하나. 비싼 돈 들여 왔는데 나이도 생각해야지) '학술적 성과'를 대변하는 논문 작성. 여기에 교수들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가지만 정작 고생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겠는가. 대학원생들이다. 교수가 이것 좀 도와줘,라고 하는 건 양반이다. 교수가 다 시키고, 이름 얹어 놓는 상황은 다반사. 그러면 이 친구들의 독서 시간은 누가 보장해주는가.  

'논문중심주의'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다만 대학원생들이 개념들을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분명 '논문 찍어내기'를 강요하는 이 현실은 고쳐야 한다. 대학원생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내가 읽고 의문을 갖는 이 학자의 생각을 교수 그리고 동료들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6. '독서 운동'이 필요한 곳은 대학원이다 

고로 나는 주장한다. '독서 운동'이 있어야 할 곳은 대학원이다. 이건 학문 사회를 압박할 안과 밖의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수유 너머'같은 곳은 책 깊이 파고 싶은 사람들을 그들의 공간으로 모이게만 하지 말고, 대학원을 압박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제자들과 밥 한 끼 하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니?"라는 질문 하나 던져보려는 시도 필요하지 않을까. 인문사회 출판 브랜드들은 마냥 책만 내지 말고, 자신들의 학술서를 팔아줄 현실적 독자인 '대학원생'들의 독서 실태 파악을 분명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들은 무슨 책을 내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기 전, 지금 대학원생들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 그들의 생활에 들어가야 한다. 언제까지 슬라보예 지젝의 힘에만 의존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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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5-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서재에 들리게 되었는데,,
제가 대학생이라서 얼그레이님이 쓰신 대학원생의 독서실태에 관한 글을 안 읽을 수가
없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

저는 예전에 인문학 강좌 붐에 대해서 그나마 국내 인문학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정도로 간간이 살아나고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얼그레이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 붐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대학교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인문학 강좌와 같은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텐데 말이죠. 요즘은 취업을 위한 장소가 되었지만 원래 대학교라는 곳이
인문학을 포함한 지식과 교양에 대해서 서로 공유하고 소통하던 학문의 장소였잖아요.

갑자기 저와 같은 대학생들이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대학 도서관 대출순위에 보면 간간이 샌델의 <정의>가 있다거나 항상 대출중이던데,,
학문과 교양을 배우려는 '열혈모드' 는 충만한데 정작 제대로 된 인문학 강좌를 듣지 못해서 혹은 듣고 싶어도 궁핍해서 듣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학생들만
외롭게 읽고 있는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었구요,, 주말 잘 보내세요 ^^


얼그레이효과 2011-05-21 08:55   좋아요 0 | URL
cyrus님, 반갑습니다.^^ 대학원 밖 고생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런데 이러다보니 쌓이는 건 '아카데미' 안의 냉소주의더군요. 우리 학교 이제는 더 공부할 것 없어 같은. 차리리 밖 커리큘럼이 낫더라. 이건 분명 아니다..라는 시각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제 제도권 공부를 그만둔 사람이라 그렇지만..cyrus님처럼 열심히 공부하시고 책 읽으시는 분들이 여전히 계시니 희망을 갖습니다. 수고하세요!

마늘빵 2011-05-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 이건 다른 얘긴데 소개글에 '지식조리사'라는 문구 잘 어울리세요.

얼그레이효과 2011-05-21 08:5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저번에 주장해주신 대학교 내부 출판사의 책값 책정도 분명 더 크게 공론화할 문제라고 봅니다. 아마 이 맥락에서 대학원생들의 독서 실태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식조리사'..앞으로 제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 봤어요. 레시피를 잘 계발해야 할 텐데. 많이 묻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풀밭 2011-05-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성과 공감을 같이 하게 되는 지적이네요. 그나마 대학원생들이 읽는 책의 상당수도 사실 저널 특집호에 실린 논문들이나 한 명이 여기저기 실었던 논문들을 편집한 책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걸 떠나서라도 수업리딩 외에 실제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대학원생도 많다는 걸 새롭게 알았습니다. 삶의 맥락에 이론 양념을 치기... 아 이건 도망칠 구석이 없군요. ㅠㅠ

얼그레이효과 2011-05-21 09:02   좋아요 0 | URL
풀밭님 안녕하세요.^^ 제가 대학원 다니면서 몇 권의 책 작업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정말 대학원생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그리고 뭔가 지금 출판하는 곳과 공부하는 곳 그 두 관계가 느슨하다, 서로 코드가 안 맞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이야기 안 되고, 나는 낸다..너는 읽어라..는 식의 상황. 조금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풀밭님도 공부하시다가 혹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대학원 내 문제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바라 2011-05-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되는 말씀이네요. 확실히 대학원 들어온 뒤로 더 책을 못 읽는 것 같아요. 수업이나 세미나도 제대로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저는 사회대 수업들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항상 강의계획서보면 리딩 양이 엄청 많던데요. 그래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걸 다 소화하기는 힘들긴 마찬가지였군요. 그에 반해 철학과 강독 수업들은 뭐 한 학기동안 이십쪽 남짓 읽는 경우도 있고.. 이것도 나름 의의는 분명히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독서량이 적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일차적으로는 저의 게으름이 문제겠지만 확실히 어떤 독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그레이효과 2011-05-21 09:08   좋아요 0 | URL
바라님 안녕하세요^^ 바라님도 수업과 세미나의 고충 역시 느끼셨군요..ㅜ.ㅜ 제가 여러 학과들, 또 다른 학교 수업들을 좀 골고루 다녀본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법 문제가 있더군요. 지금, 대학원 사회를 개선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이 지식을 생산하는 문제. 지식을 소비하고 유통하는 문제. 이게 참 그냥 흐물흐물 넘어가고, 논문이란 성과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가장 큰 불안은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어느 대학에 강의를 맡으면, 그 강의의 질도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도 한 번 글로 적어보고 싶더군요..고등학교 - 대학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악순환. 더 깊이 고민해보겠습니다. 바라님 논문 쓰시는 기간 동안 건강 잘 챙기시구요!

2011-05-21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1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11-05-2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 슬라보예 지젝의 힘에만 의존할 텐가"라는 말씀에 무릎을 치며 웃고 동시에 씁쓸한 느낌을 머금게 됩니다. 돌아보게 만드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21 21:22   좋아요 0 | URL
지젝에게 유감은 없지만, 매년 교수신문 볼때마다..출간예정리스트 보면..'지젝빨'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이 바닥'의 소비현상이 안타깝더라구요. 람혼님처럼 치열하게 고민하시는 학자분들의 사유가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논문 압박을 뚫고,,대중과 호흡하고 원생들과 호흡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국내 공부하시는 분들도 '교재'만 내는 실적형 책 말고, 길게 내다보고,,깊게 생각해 본 독특한 기획 책들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구요.

2011-05-23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조금 쓰다가,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바이오통에 들어있는 설탕 가득 뿌린 토마토를 몇 조각 주워먹었다. 한 손에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위즈덤경향,2011)를 집어 들고서.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읽고 싶은 사람들 순서로 읽었다. 고현정에서, 나영석 피디, 신영복 교수 등등등 순으로. 김제동이 '만나러 간 사람'에 포커스를 두면 그냥 '훈훈한' 인터뷰집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한 나의 행동을 좀 합리화하고 싶어서 몇 구절, 구절들을 뜯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 건질 수 있었던 첫 걸음은 '김제동'에 방점을 찍는 것이었다. 김제동이 만나러 간 이유는 김제동 본인이 가진 컴플렉스를 드러내고 고쳐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고로  이 책에 대한 나의 주제 찾기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 사회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피곤함' 

 

 

인터뷰는 원래 이타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포장을 해줘야 하고, 화장을 해줘야 하며, 누군가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 보통 조연은 인터뷰어가 되기 쉽다. 이렇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기적' 독서가 필요했던 것 같다. 김제동의 저 '착함 콤플렉스'를 따가울 정도로 집요하게 같이 고민해주기. 이런 관점에서 읽으면 이 책은 '착하지만 그만큼의 우울함도 함께 갖고 있는 한 아저씨'의  탐사기 같았다. 그는 타인의 이야기를 남에게 비춰주려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김제동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를 더 하소연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난 이 아저씨가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착하지만 늘 우울함을 달고 있는 인상이다.  김혜리 기자가 『진심의 탐닉』(씨네21북스,2010)에서 김제동에게 했던 질문 그리고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서 김제동이 했던 말은 묘하게 섞인다. 

웃음 주시는 분한테 이상한 이야기지만, 김제동씨를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 김혜리, 『진심의 탐닉』(김제동 편, 48쪽) 

  

(...) 난 종종 내 감정을 이겨가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착한 척해야 할 것 같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가끔 못 참고 울컥했다가 집에 와서 베겟잇을 붙잡고 밤새도록 끙끙대며 힘들어한다.  

-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김C 편, 139쪽 - 김제동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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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사람들은 인문-사회 서적 무슨 재미로 읽어요? 라고 물어본다. 

나는 말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짠해서요. 그 사람들의 이론과 논리에 애착이 가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개념을 만들기까지 들인 그 수고로움이 뭔가 짠하게 다가와서 읽습니다.." 

어려운 언어에 대한 질책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 어려운 언어에 들인 수고로움. 그 수고로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 지탱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찾아보기란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다.

어려움을 쉽게 바꾸려는 노력 여부에 대한 비판은 있을지언정, 어려움 그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인문- 사회 서적을 읽는 예의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쓰는 사람이 부럽겠지만, 학문 사회에서 책쓰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논문이 아니면 정성들인 번역서 한 권이라도 제대로 된 실적으로 쳐주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종종 논문이 아닌, 책을 낼 때 자신의 글을 '잡글'이라고 하는 이상한 표현으로 낮춰 부르는 악습까지 생겼다. 책을 내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썩어 빠진 우리 학문 사회의 현실이다. 그 난관을 뚫고 사람들과 정성스럽게 이야기하려는 공부하는 이들의 글쓰기 노력은 때론 가엾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들이 짠하고 한편으론 고맙다.

 그런 분들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런 분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힘을 내서 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고민들을  만들어가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러기위해서는 공부 또 공부다. 우리 동네 한식집에서부터 최근에 나온 신간 서적까지. 공부 또 공부다. 어려운 말이 나오면 그것을 지우지 않고 살리되, 사람들이 한 개념 더 알 수 있게 정성을 들이고 깊이 파는 것. 공부 또 공부다. 이제는 어려움을 쉽게 바꾸려는 노력 또한 슬슬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 기운은 여전히 미약하지만 말이다. 그 저자들에게, 그 출판 기획 편집자들에게 더 뜨거운 관심과 위로를 보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판도 함께.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리뷰어'도 아니고 '서평가'도 아니다. '공부꾼'이다. 공부길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나는 '공부꾼'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보다 무서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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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5-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공부하는 사람이 짠 - 해서요. '
 이 말도 너무 짠 , 해요.. .
 

얼그레이효과 2011-05-18 00:1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짠한 시절에서 저를 탈출 못시키고 있어서.흐흐..

비로그인 2011-05-1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님 화이팅!!!^^

얼그레이효과 2011-05-18 00:13   좋아요 0 | URL
후와님도 화이팅!!!

바라 2011-05-17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공부 또 공부! 얼그레이님의 길에 응원의 한 마디 보태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18 00:13   좋아요 0 | URL
바라님은 늘 열심히 사시는 것 같던데요!. 바라님에게도 제 응원이 팍팍!

pjy 2011-05-1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고로 선비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19 23:05   좋아요 0 | URL
뜻을 몰라서 ~개도 안 먹는다를 쳐보니 시리즈가 주루루 나오네요..^^ 깊은 뜻이 있군요.
 

이런 스승의 날을 꿈꾸며 

1."이 난잡한 세상에 그래도 착한 학교, 착한 스승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는 진부한 말만 가득한 날이 되지 않기를. 

2. '스승됨'이라는 훈훈한 울타리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스승됨'을 고수하기 위해 제자들의 지성을 자신의 성과물로 환원하는 

스승들에게는 반성의 날이 되기를. 

3. '스승'과 여전히 '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는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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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5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이란 단어처럼 저에게 와닿지 않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 그렇다고 혼자 깨달은 사람도 아니지만 뭐랄까 한국에서 제가 만난 '선생'이란 이름 붙은 작자들은 보수적이고 지들 맘대로 하는 인간들 이었거든요.

전 그런 공식 직함이 있는 '선생'들이 스승이기 보다는 저의 멘토 화물차 운전 아저씨, 경비 반장님 등 민중 속에 있는 분들이 저에게 더 큰 깨달음을 주셔요. 아, 아파트 동네 아주머니들도요. ㅋ

얼그레이효과 2011-05-15 23:00   좋아요 0 | URL
'어떤'선생을 만나고, 그에게 자극을 받고 또 자극을 줄 것인가. 늘 찾게 되는 문제입니다.

2011-05-1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5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랜만에 서점을 들렸다. 우석훈 선생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을 흉내낸 듯한 제목의 책이 보였다. 그 책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보단, "~콘서트", "~연습", "~란 무엇인가"와 같은 제목의 책을 보고 약간 속이 메쓱거리는 그런 기분으로 몇 초간 책의 제목만 봤다. 꼭 '직선'을 저렇게 부정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직선이란 단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둠을 비유한다는 진부함만큼이나 진부한 생각. 그렇지만 직선의 반대말인 '곡선'이 놓여있다보니 오히려 밉상인 쪽은 '곡선'이 되버렸다. 그 기분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짧게 잠을 청했다. 일어나서 책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꼴을 주말만 되면 복도를 채우는 총각들의 호르몬 냄새를 맡은 기분으로 쳐다봤다. 오늘도 읽은 책, 읽지 않은 책대로 조금씩 구분해 놓는다. 그러다가 '가볍게'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은' 책 쪽에 갖다 둔다.  

언젠가부터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자신이 '그래도 인간적인' 사회과학도임을 보여주는 '전략'같은 냄새가 나서, 소설과의 사이는 더 멀어지게 되었다. 학자라는 어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나오는 책 수다. 그 속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소설에 대한 고백들도 불편했다. '대학로용'이나 '홍대용'대화의 구색에 맞추기 위해 간혹 읽은 티를 내야 할 때는 그냥 '사두기만' 한 작품을 이리저리 뒤적인다,라는 것은 거짓말이고. 차라리 그 작품의 뒷면에 있는 비평을 읽고 자리에 나갔다. 난 작품보단 차라리 비평이 좋았다. 영화를 보진 않아도 비평은 챙겨 본다는 '진부한 영화평론가 당선소감 같은 멘트는 나의 삶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화살표를 재조정하여 보면 소설을 읽는 지인, 친구들 중에는 내게 '읽을 만한' 인문/사회 쪽 책을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권해주지만 "와 이 옷 완전 네껀데.."라는 말처럼 책 재단을 해준다. 그러다가 간혹 또 진부한 질문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이런 책 무슨 재미로 읽냐는 같은. 글쎄, 난 무슨 재미로 '이런' 책을 읽을까. 요즘 내 독서를 '독서법'으로 정리해보는 가운데, 난 인문/사회 영역의 책들을 에세이를 읽는 기분으로 매번 읽었던 것 같다. 어떤 확실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원 첫 수업 때 스튜어트 홀을 소개하는 책의 발제를 맡았는데 뭔가 직선적이고 따갑고 까칠하게 채워질 줄 알았던 발제문이, 스튜어트 홀의 인물론으로 채워지자 발제 시간은 미술관에서 그림 한 점, 한 점을 쳐다보며 감성을 교환하는 분위기가 가득 했다.  

치밀한 논리의 이론서들을 에세이를 읽는 기분으로 읽다 보니 주장- 근거 - 반론 검토 - 재주장 등의 논리 회로는 개인의 짠한 삶을 보여주는 무엇으로 느껴졌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읽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기존 사회학 이론들을 검토하고 진중하게 의견을 제시할 때, 그것을 빼곡하게 외우고 또 흠은 없나 논리적인 회로를 세우기보단 짠한 감정을 갖고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다시 화살표를 재조정하기. 소설은 내게 '무서운 곡선'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촌스럽게 '남성적'이니, '여성적'이니 이런 분류의 관점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소설 읽기'를 치부하는 사회학도들, 문화연구자들이 "아..소설을 읽어야겠다.."라고 운을 띄우며 '문학적 상상력'이란 말을 쉽게 꺼낼 때 참 재수없다라는 생각을 갖는다.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내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무서운 곡선'. 작가들이 독자들을 휘감는 것이 어쩌면 과학적인 논리보다 더 치밀하다는 그런 무서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무서워할 것 같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정성스럽게 열거해가며 맨날 '사회과학적'인 싸움을 하던 사람이 이런 재주가 있었단 말이야?라는 타인의 반응을 예상하게 만드는 열의도 체력도 없다. 그냥 계속 이론서들에서 '감성을' 찾고 싶다. 어색하지만 사회과학 이론서들을 읽는다는 것에서 나는 '감수성'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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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에서 사회과학적인 이론을 찾을 때 희열을 느끼기에 주로 소설을 많이 읽거든요. 얼그레이효과님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찾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사회과학 이론서들이 너무 딱딱하다고 느껴져서 소설을 통해 그런 짓을 하거든요. 근데 얼그레이효과님의 글처럼 대충 쓰인 소설에서는 그런 재미를 못 느끼고 사람들은 이름은 익숙히 알고 있지만 읽지 않는 그런 책 속에서 전 그런 사회과학적 이론을 찾아 내는 것 같아요. ^^
그래도 사회과학 이론서에 대한 갈망은 포기하지 않고 있기에 앞으로 좋은 책 리뷰 많이 부탁드려요. 헤헤

얼그레이효과 2011-05-14 00:07   좋아요 0 | URL
요즘 벌이는 일이 있어 책 소화력이 떨어져 큰일입니다..그래도 또 읽고 또 읽을려구요. '살려면'^^

루쉰P 2011-05-15 07:36   좋아요 0 | URL
^^ 책 소화력은 원래 뭔 일 있을 때 광폭적인 힘을 낸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거든요. 살기 위해 읽는 것이 진정한 독서인 듯 ㅋㅋ 화이팅!!

게슴츠레 2011-05-1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떤 개념을 말할 때 거기에는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고 나름 싸워온 그런 모든 과정이 들어있구나 싶더군요. 공감도장찍고 갑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15 22:56   좋아요 0 | URL
쉽게 말하면 뭔가 짠해서 이론서가 끌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