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형편없는 인간을 판단할 때조차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했는데, 이런 할머니가 지금 내게 닫힌 채로 외부 세계의 일부가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보다도 
할머니에게 말해 줄 수 없었으며, 내 불안한 마음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에게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낯선여인에게 하는 것보다 더 자신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할머니에게 털어놓았던 생각이나 슬픔을 이제 막 할머니가 다시 내게로 돌려주신 것이었다. - P9

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ㅡ 혹은 우릴 먼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그 후엔 결코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 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미리 정해진 오후에 일어날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 P11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머리칼에만 유일하게 늙음의 관이 씌워졌을 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의 고통으로 새겨진 주름살이나, 오그라들고 부풀어오른 살, 팽팽하거나 늘어진 살로
부터 해방된 얼굴은 이제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할머니의 부모님이 남편을 골라 주던 날처럼 
할머니의 이목구비는 순수함과 순종으로 섬세하게 새겨져, 
뺨에는 세월이 점차 파괴해 버린 순결한 희망과 행복에의 꿈, 결백한 즐거움마저 빛나고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조금씩 물러가던 삶은, 삶에 대한 환멸마저 앗아 가 버렸다. 
할머니 입술에 미소가 떠오르는 듯했다. 장례 침상에서 죽음은 중세의 조각가처럼 할머니를 한 소녀의 모습으로 눕히고 있었다. - P60

우리가 사는 동안 사물이나 존재가 관통하는 동심원은 그리 많지 않으며, 내가 다른 모든 이들 중에서 택한 이 꽃핀 
얼굴을 멀리 있는 틀로부터 나오게 하여 새로운 도면에 놓고 마침내 입술을 통해 얼굴의 인식에 도달한다면, 내삶은 그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91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거의 모든 집에 불행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집에는 배신한 남편 때문에 우는 아내가 있고, 저 집에는 반대로 아내 때문에 우는 남편이 있었다. 다른 집에는 부지런한 어머니가 술주정뱅이 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을 이웃들 눈에 감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거의 인류의 절반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알게 되었을때, 그들의 상태는 얼마나 끔찍했던지, 간통한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그토록 매력적이고 충실한 것으로 보아. 나는 그들이 받아 마땅한 행복을 
거부당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그들이 옳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 P104

부인은 그렇게도 우아하고 자연스럽고 다정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녀는 과거의 일을 완곡 어법이나 모호한 미소와 암시적인 말로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냥한 태도에서도 뒤로 돌아가거나 고의로 말을 하지 않거나 하는 일 없이 자신의 위엄 있는 큰 키만큼이나 뭔가 거만한 꼿꼿함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누군가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르는 원한 따위는 완전히 재가 되었고, 이런 재 자체도 그녀의 기억이나 적어도 그녀의 태도에서 아주 멀리 내던져졌으며, 또 다른 사람이라면 불화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일도 그녀는 지극히 감탄할 만한 단순함으로 처리했으므로,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서 일종의 정화 작용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 P119

이는 우리가 나날의 세월을 연속적인 순서대로 다시 체험하지 않고, 
어느 아침이나 어느 저녁의 상쾌함과 햇빛으로 응결된 추억 속에서, 나머지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로 여기저기 고립되고 가두어지고 움직이지 않고 멈추고 상실된 풍경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추억 속에서 살기 때문일까? 그리하여 우리 밖에서뿐아니라 우리 꿈과 성격의 발전 과정에서도, 만일 우리가 다른해에서 뽑아 올린 다른 추억을 떠올리려고 한다면, 우리도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 시기에서 아주 다른 시기의 삶으로넘어가는 점진적인 변화가 삭제되어, 이 두 개의 추억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과 망각의 거대한 벽 덕분에 
마치 해발이 다른심연과도 같은, 
호흡하는 대기와 주위의 빛깔마냥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두 성질의 불일치 같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 P145

안개는 더 이상 우리가 찾는 신기루가 아니라 맞서 싸워야하는 위험이 되었고, 그리하여 길을 찾고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려움과 불안을 거쳐 마침내는 안전의 기쁨을, 고향을 떠나 어리둥절해하며 낯설어하는 나그네에게 주어지는 안전의 기쁨을-길을 잃을 위험에 처해 보지못한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ㅡ 맛보는 것을 의미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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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3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 문장을 읽다보면, 길게 쓰는 게 어렵긴 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페넬로페님, 여긴 오늘 비가 많이 오고 있어요.
비 피해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07-15 00:42   좋아요 1 | URL
문장이 길어도 저 문장들이 넘 아름다워 밑줄긋기 했어요.
작가가 사물이나 인간의 행동을 깊이 보고 그것을 묘사하는 힘에 계속 읽게 되는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7-14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래에 일어날 일들은 전혀 모르고 산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바로 앞에 일어날 일도 하나도 알 수 없으니까요.
페넬로페님,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07-15 00:44   좋아요 1 | URL
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들이기에 미래는 암담하죠~~
우리의 육체에 죽음의 자리를 망각하고 살다 미래의 언젠가는 그걸 깨달을 것 같아요.
아니면 지금 깨달아야하는지도 모르지만 자꾸 망각하는 것도 같아요^^

scott 2022-07-18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는 철학자이나 심리학자 였던 것 같습니다

잃시찾 읽다보면

결국엔 우리 모두의 생의 모습을 담은

심리 철학서 ^^

페넬로페 2022-07-18 17:34   좋아요 0 | URL
scott님의 해석이 정말 탁월하고도 공감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했어요.
인간들의 심리를 어떻게 이리도 잘 표현했나해서 계속 감탄중입니다^^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 -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진이 밝힌 걷기의 기적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 지음, 홍정기 감수 / 비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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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무조건 좋다. 비만, 디스크, 당뇨 등 현대인에게 위협적인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에 걷기는 필수! 스트레스도 해소! 여기에 햇볕 쬐며 걷기, 계단 오르기, 등산, 보폭 넓게 걷기를 곁들이자. 죽기 전까지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건 건강한 정신과 보행능력, 이것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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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1 19: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걷기는 무조건 좋다 공감합니다. 걷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저도 열심히 걸어야 하는데 ㅠㅠ ㅎㅎ

페넬로페 2022-07-11 21:42   좋아요 2 | URL
걷기 능력도 점점 퇴화되니 매일 열심히 걸어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북플 독보적 덕분에 강제적으로 걸어야하니 좋은데요^^

scott 2022-07-11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뒤로 걷기 추천 합니다! ㅎㅎ

안쪽 허벅지 근육 강화에 도움이 ^ㅅ^

페넬로페 2022-07-12 13:02   좋아요 2 | URL
뒤로 걷기가 안쪽 허벅지 근육에 좋은거군요.
산책하다보면 뒤로 걷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도 해보겠습니다^^

희선 2022-07-12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마다는 어려워도 한주에 서너번이라도 걸으면 좋을 텐데... 걷는 게 좋다 해도 자주 못 걷네요 저는 어디든 걸어다녀서 괜찮기는 합니다 차 타고 갈 곳이 없기는 하군요 어쩌다 차를 타면 멀미해서 안 좋아요 차 타고 어딘가에 가야 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데...


희선

페넬로페 2022-07-12 13:08   좋아요 2 | URL
매일 걷는것도 노력해야하고 시간을 내야해서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합니다.
희선님, 멀미가 있으시군요.
저는 멀미는 없지만 걷기 시작하면서 웬만하면 가까운 거리는 차 타지 않고 걷게 되었어요
그게 또 좋아요^^

새파랑 2022-07-12 0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은 안읽어도 매일 걷기는 하는데 살안찌고 좋더라구요 ^^
페넬로페님의 걷기 읽기 쓰기 언제나 응원합니다~!!

페넬로페 2022-07-12 13:11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께서 매달 올려주시는 독보적 히스토리에 자극받아 저도 365일 도전해 보기로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ㅎㅎ
응원 감사드려요^^

Falstaff 2022-07-12 07: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폭 넓게 걷기, 진짜 괜찮아요!
햇볕 쬐며 걷기는..... 여름엔 헥헥... 안 됩니다. 이러다 내가 죽지... 싶더라고요!

페넬로페 2022-07-12 13:14   좋아요 3 | URL
자주 걷다보니 보폭이 조금씩 늘더라고요.
파워워킹도 좀 되고요~~
요즘 더워서 조금만 걸어도 힘드는데 햇볕쬐기 몇 번 해보다 포기했어요 ㅎㅎ
그냥 양산 쓰고 걷습니다^^
골드문트님, 걷기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7-12 1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더워도 걷기는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햇볕 뜨거운 날에는 양산 쓰고ㅎㅎㅎ 주중엔 점심시간 이용해서 주말에는 이른 아침 이용해서 하고 있네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듯합니다^^*

페넬로페 2022-07-12 13:16   좋아요 4 | URL
저도 양산 쓰고 걸어요.
피부가 점점 안좋아지고 햇빛 알러지도 있어요
그래도 살 안찌고 허리 안 아플려고 걷습니다
땀 흘리고 나면 오히려 피곤도 없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좋아요^^

미미 2022-07-12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덥다는 핑계로 걷기 빼먹는 날이 많은데 반성합니다^^
그래도 어제는 해 떨어질무렵 실컷 걷다오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요. 걷기로 병을 이겨냈다는 증언들이 많은걸보면 확실히 건강을 위한 필수!

페넬로페 2022-07-12 13:20   좋아요 3 | URL
더워도 너무 덥죠!
그래서 그런지 지치기도 하고 책읽기도 어려워요
어제는 걷다가 소나기 만나 공원벤치에 한참 앉아 있다 왔어요 ㅎㅎ
걷기의 가장 좋은 점은 스트레스 해소인 것 같더라고요.
나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져서 또 하루를 잘 견뎌요^^

서니데이 2022-07-1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걷기는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도 되지만, 건강에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해요. 매일 30분만 걷기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되고 있어요.
요즘 날씨는 습도가 너무 높아서 저녁에도 걷기 더워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금 덜 더운 편이지만, 비가 오고 나서 모레부터는 다시 많이 덥다고 합니다.
페넬로페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07-21 20:06   좋아요 1 | URL
날씨가 더우니 확실히 걷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꾹 참고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고요~~
요즘은 비가 열대 스콜처럼 내리는 경우가 많아 걷기할 때 한번씩 비를 만나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열심히 걸으시길 바래요~~
건강 쑥쑥^^
 
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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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꾸준함으로 계속 공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의 기록도 의미 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수강한 과목에 대한 나열과 감상은 저자에게만 위로가 된다. 독자에게 공부의 위로를 주기 위해서는 울림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읽기가 지루했고, 식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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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7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7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2-06-27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기대하고 있었는데
페넬로페님 100자평 보니
기대를 확 낮추고 읽을까봐요^^*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ㅎㅎ

페넬로페 2022-06-27 20:57   좋아요 2 | URL
저번에 올려주신 책 구입 목록에서 봤어요. 개인마다 느끼는 감상 포인트가 다르니 미미님께는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지요^^

독서괭 2022-06-27 2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열과 감상..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 확 오네요..😅

페넬로페 2022-06-27 20:59   좋아요 3 | URL
나열과 감상, 중간 중간에 그림도 많이 있었는데 솔직히 그림에 대해서라면 알라딘 서재의 미니 74님과 그레이스님의 글에서 훨씬 더 감동적이고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을 받습니다^^

2022-06-27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7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6-28 1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흐려서인지, 하루종일 회색같네요.
바람도 불고 습도 높은 날인데, 생각보다 실내 기온이 많이 올라갔어요.
더운 하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6-29 07:38   좋아요 3 | URL
어제부터 비도 많이 오고 바람이 엄청 부네요. 습도때문에 에아컨도 자주 틀어야 하고요.
비가 와서 가뭄이 어느정도 해소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서니데이님!
눅눅한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래요^^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인간 프로작Prozat이다. 내가그의 책에 중독된 것은 그가 생의 낭만을 잘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친 독자는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일것이다. 유머, 카리브적 낙천성, 낭만주의적 라틴아메리카인, 유럽을 떠돈 망명가이자 세계시민, 진보적인 역사성과 정치성, 매력적인 이야기꾼, 나선형 이야기 구조, 반복과 회귀, 마술적 리얼리즘 등그의 매력은 무한하다. 이처럼 팬이 많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면할수록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예고하건대 난 그들의 예상과는 다른 길을 알려 줄 예정이다. 왜냐하면 여행기는 사실의 기록인 동시에 현실의 메타텍스트이기 때문이다.
- P17

풍요와 자상함, 인자함, 지지자로서의 어머니는 피 흘리며죽어 가는 예수를 안은 채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가보의 작품 속에서 어머니들은 자식과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된 존재로, 자식의 죽음을 당연하게도 예언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백 년의 고독』에서 우르술라는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죽음을 직감한다. 마콘도에 있던 우르술라는 난로에얹어 둔 우유가 끓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며 주전자 뚜껑을 열었는데 구더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의 죽음을 알아채고 남편에게 가서 서글피 하소연한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듯 솜씨 좋은의사가 총알을 빼내면서 아들은 죽음을 겨우 면한다.
- P34

나와 할아버지는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집에 사는 단둘의 남자였다. 내 삶은 이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할머니 지배하에 미신적인세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환상적인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매일 일어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현실적인사람이었고, 시민전쟁에 참가했으며, 정치적 술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어른인 것처럼 취급했다. 나는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세계에 갈라져 살았다.
- 이브 빌런 외, 다큐멘터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중

아마도 가보는 환상과 현실의 대결 아래에서 많은 양가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어떤 작품보다 자전적인 그의 소설에는 이 대결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 년의 고독을읽어 보았다면 외할머니 이과란은 우르술라, 외할아버지 리카르도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39

우르술라는 현실감각을 가지고 세상 물정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다. 
동물 모양 과자를 팔고 빵 공장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고, 건물을 증축하고, 집을 청소하고, 성당 건축을 위해 이마어마한 돈을 내놓기도 하고, 독재자가 되어 아무나 처형하는 것이버릇이 된 아르카디오에게 살인자라고 당당히 비난하고, 열일곱 명의 아우렐리아노를 비롯해 남편의 배다른 자식과 남의 자식을 모두거두어 키우고, 자신의 딸 아마란타에게 억울하게 독살당한 며느리레메디오스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하고, 똑똑했던 남편이 미치광이가 되어 집안의 밤나무에 묶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를 염려하고 감싸 준 사람은 바로 우르술라였다. 남편과 아들이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연금술과 은세공에 몰입하고 있던 그 긴 시간 동안을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그들의 똥을 치웠다. 독재자 아르카디오의 부인인 산타 소피아 드 라 피에다드가 오죽하면 딸이 고생을 덜하게 하려고딸의 이름을 ‘우르술라‘라고 지어 달라던 남편의 유언을 일언지하에 거부했을까.
- P48

누군가 거칠게 그린 가보의 옆 얼굴 벽화를 보고 나는 아라카타카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의 장남 노벨문학상 수상‘까지는 아니라도 ‘가보의 마을‘이라든가 ‘마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도의 플래카드나 간판은 있을 줄 알았다. 아라카타카로 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유토피아는 아무에게나 문을열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P51

월요일
ㅡ마콘도에 불면증이 찾아와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게 된 날

화요일- 피에트로 크레스피가 꼬박꼬박 점심을 먹으러 부엔디아의 집에 온 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무장한 청년 스물한 명을 데리고 기습적으로 방위사령부를 점령하고 아르카디오를 마콘도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뒤 마콘도를 벗어나 혁명군 부대와합류하기 위해 떠난 날,
마콘도에서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날.

수요일- 마콘도에 철도가 오는 날.
미스터 허버트, 미스터 브라운, 변호사, 기사들, 농경학자들.
수문학자, 지형학자들, 측량사, 그리고 창녀들이 온 날.
- 아르카디오의 사형 집행일.
- 늙은 수녀가 산타 소피아 드 라 피에다드를 찾아와 페르난다.에게 전해 주라며 두 달 전 태어난 메메의 아들 아우렐리아노를 건네준 날.

목요일- 우르술라의 딸 아마란타가 태어난 날.

금요일- 3년 넘게 계속되던 마콘도의 장마가 그치고 10년간의 가뭄이 시작된 날 - P69

- 아마란타가 레메디오스를 독살한 날
바나나 학살 사건이 일어난 날

토요일-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먹성 좋은 여자와 먹기 대결을 펼친 날,
- 마콘도에 온 외국인들이 무도회를 벌인 날,

일요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레메디오스가 결혼한 날,
레베카가 부모의 뼈가 든 자루를 들고 마콘도에 나타난 날.
- 자유파와 보수파 사이의 투표일.
- 바나나 농장 노무자들이 휴식을 요구한 날,
- P71

가보의 소설에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의 시간은, 뒤집는순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모래 시계로서의 기능만 할 뿐이다.
마콘도는 시간이 포함된 공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뒤죽박죽되어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과거의 공간이다. 이것은 그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백 년의 고독」에서는 가장 중요한사건인 바나나 학살 사건조차 날짜나 시간이 아닌 요일로 단순하게 제시된다. 요일은 계속 반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회귀라는 주제와 반복의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가 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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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15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방랑자 마르케스!
치열하게 쓰고(취재 하고)
치열하게 투쟁 하고

그리고
엄청난 바람둥이로 살다 간 ㅎㅎㅎ

페넬로페 2022-04-16 09:39   좋아요 2 | URL
평생 치열하고 파란만장한 마르케스의 삶이 궁금했어요.
영원한 방랑자라는 말이 딱 맞는것 같아요^^

희선 2022-04-16 0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래색 클라우드 몇 권밖에 못 봤지만, 지난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편이 나왔군요 가보가 애칭인가 봅니다 소설이랑 함께 보면 괜찮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2-04-16 09:41   좋아요 2 | URL
‘백년의 고독‘ 읽고 이 책 읽으니 도움이 많이 되네요.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어 좋아요^^

2022-04-19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9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4-20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4-20 21:5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날씨가 좋아요.
낮에는 좀 덥더라고요~~
화창한 날에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멈추는가?
왜 가슴속에 그런 두려움을 갖는가?
왜 용기와 솔직함을 갖지 못하는가?
그렇게 축복받은 세 여인이 하늘의 궁전에서 너를 보살피고,
내 말이 너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 P22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 P24

스승님, 저 들려오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고통에 사로잡힌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스승님은 「치욕도 없고 명예도 없이살아온 사람들의 사악한 영혼들이 저렇게 처참한 상태에 있노라.
저기에는 하느님께 거역하지도 않고 충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태만한 자들. 그러니까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게으름이나 비열함 때문에 선을 행하지 못한 영혼들이다. - P25

오. 하느님의 정의여! 
내가 본 수많은고통과 형벌은 누가 쌓았습니까?
왜 우리의 죄는 우리를 파멸합니까?
마치 카리디 바다 위에서 파도가마주치는 파도와 함께 부서지듯, 이곳의영혼들은 맴돌며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곳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이쪽과 저쪽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가슴으로 무거운 짐을 굴리고 있었다.
- P56

하늘에서 증오하는 모든 사악함의 목적은
불의이며, 모든 불의의 목적은 폭력이나
기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
기만이란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인간 고유의 악이며, 따라서 사기꾼들은
더 아래에 있고 더욱 큰 고통을 받는다.
그 첫째 원은 폭력자들로 가득한데,
폭력이란 세 종류 사람에게 가해지므로
세 개의 둘레로 구분되어 만들어졌다.
폭력은 이웃 사람, 자기 자신, 하느님에게,
즉 그들과 그들의 사물에게 가해지니,
너는 듣고 분명하게 이해할 것이다.
- P85

생각해 보오, 우리의 형상이 비틀려서
눈물이 엉덩이의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가까이 보고도, 어찌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정말로 나는 단단한 돌다리의 바위에
기대 울고 있었고 안내자가 말하셨다.
「너는 아직도 다른 멍청이들 같구나!
죽어야 마땅할 자비가 살아 있다니.
하느님의 심판에 연민을 느끼는 자보다.
더 불경스러운 자가 어디 있겠느냐? - P158

「이제 그런 태만함을 버려야 한다.」
스승님이 말하셨다. 깃털 속이나
이불 밑에서는 명성을 얻을 수 없으니,
명성 없이 자기 삶을 낭비하는 사람은
대기 속의 연기나 물속의 거품 같은
자신의 흔적만을 지상에 남길 뿐이다. - P193

우리에게 남은 감각들은
이제 정말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태양의 뒤를 따라 사람 없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거부하지 마라.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 보라.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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