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고양이 캬라코 - 벨 이마주 102 벨 이마주 102
도이 가야 글.그림, 방선영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8년 5월
품절


캬라코는 삼색 고양이, 삼색 고양이 중에서도 꼬마 아가씨랍니다.- 4쪽

삼색 고양이란 하얀색, 검은색, 갈색의
세 가지 색을 가진 고양이를 말하죠.
캬라코의 엄마도 삼색 고양이고요,
캬라코의 언니도 삼색 고양이예요.
그래서 캬라코도 어리지만 삼색 고양이랍니다.- 5~6쪽

하지만 캬라코는
하얀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밖에 없지 않냐고요?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있잖아."
자그마한데다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캬라코도 갈색점이 있어요.- 7~8쪽

꽤나 예쁘게 만들어졌네요.
하지만 바람이 불면 다 날아가 버리지 뭐예요.- 13~14쪽

이제 캬라코는
작은 갈색점을
아주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요.
잘 먹고
잘 놀고
가끔 공부도 하고
잠도 잘 자는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25~26쪽

이제 캬라코의 인사는 이렇게 바뀌었어요.
"나는 삼색 고양이 캬라코예요, 작은 갈색점이 예쁘죠."
그런데 검은 고양이 할머니는
정말 하얀색과 검은색의 얼룩 고양이였을까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왜냐하면, 할머니의 어릴 적 모습은 아무도 못 봤으니까요.- 31~3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귀신 - 김시습과 금오신화 창비청소년문고 7
설흔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장바구니담기


이승에서 죽었을 때 나는 덩치만 큰 소년이었습니다. 염라국에서 미래의 왕으로 낙점받으면서 나의 고통과 번뇌와 슬픔은 그대로 살이 되었고, 내 덩치는 더욱 커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살만 얻은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탓에 또다시 이승의 삶을 겪었지만 말입니다. 강물에 뛰어드는 나를 무사들이 보고만 있었던 것도 결국은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나이는 아직 열일곱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열일곱입니다. 덩치가 더 커지고 생각이 조금 자란 열일곱입니다. 언젠가 삼촌을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삼촌을 그저 죽은 자 중의 하나로 대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제 다리를 건널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파주댁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생의 죽음에 대한 사과였고, 상아를 데려가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행위였습니다. 김생에게는 할아버지의 친필이 담긴 종이를 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닙니다. - 259~263쪽

나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충분하지만 김생은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니 김생에게 주어야 마땅합니다. 다시 상아의 손을 잡았습니다. 파주댁은 통곡했고, 김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상아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살짝이기는 했지만 손을 빼고 싶어 하는 마음도 함께 느꼈습니다. 하지만 손을 빼더라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상아 또한 이미 죽은 자이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떨리는 손을 꼭 잡아 주는 것뿐입니다.
다리 위를 걷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승에 갔던 것은 상아를 만나기 위해서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생의 죽음도 상아와의 만남도 결국에는 하나, 즉 인연이었습니다. 내 생각을 눈치챈 걸까요, 상아가 갑자기 내 손을 세게 쥐었습니다.
그러고는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내 아빠를 죽인 사람이에요.'
그렇습니다. 나는 상아의 아비를 죽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상아는 나를 받아들였습니다.
상아의 결단이 없었다면 나는 영원히 이승을 떠도는 요귀로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상아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 259~263쪽

나는 상아의 손을 쓰다듬으며 내 마음을 전했습니다.
파주댁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 그친 긴 둑에는 풀빛이 가득하고요, 남포항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는 내 마음을 흔든답니다. 대동강은 언제가 되어야 마를 수 있을까요, 해마다 이별 눈물이 더해지기만 하니.'
상아도 그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상아가 파주댁에게서 배웠던 것입니다. 지아비를 잃은 슬픔을 치유했던 그 노래가 이제는 상아의 것이 되었습니다. 상아와 파주댁은 분명 다시 만날 터입니다. 김생 또한 언젠가는 내가 다스리는 곳으로 오겠지요. 만난 자는 헤어지나 헤어진 자는 다시 만납니다. 그러니까 애이불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말없이 파주댁과 상아의 노래를 들으며 붉은 만월 하나만이 떠 있는 저승의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259~263쪽

"불타는 집이 바로 연화인 것을!"
"뭐라 하신 겁니까?"
불길은 사라지고 의아해하는 선행의 얼굴만 남았다. 김생은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꿀밤을 마저 먹인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 너에게 『금오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쓰는 법을 알려 줄 테니 잘 들어라. 그런 글을 쓰려면 이 집을 불태우고 저승에 가야 하는데, 저승이 어디인고 하니......."

●연화(連花)ㅣ 불교에서 그리는 이상적 세계의 모습- 27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귀신 - 김시습과 금오신화 창비청소년문고 7
설흔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장바구니담기


'저 놈은 너를 잡으러 온 거야! 저놈이랑 있으면 네가 죽게 된다고!'
'엄마, 그게 아니에요!'
상아도 지지 않고 맞섰습니다. 파주댁은 더 격하게 상아를 몰아 붙였습니다.
'제 아비랑 똑같구나. 네 아비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다가 결국 개죽음을 당했다. 내 말만 들었으면 살 수도 있었는데.......'
'엄마!'
'너도 그렇게 죽고 싶은 게냐? 네 아비의 곁으로 가고 싶은 게냐? 안 된다! 아직은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된다!'
파주댁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다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부적을 든 손이 떨리는 게 똑똑히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여인입니다.
자신이 아는 세상이 세계의 전부라 믿고 있는 불쌍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행태를 보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어딘지 익숙한 광경입니다. 나를 몹시도 미워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나쁜 놈! 내 이승의 삶을 열일곱으로 끝나게 했던! 자라다 만 덩치 큰 소년으로만 남게 했던! 눈물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못하는 나이로 죽게 했던!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손목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가슴도 타올랐습니다.
손을 가슴에 댔습니다.- 179~182쪽

하나로 모아진 기운은 불길이 되어 눈앞에서 타올랐습니다. 어렴풋한 얼굴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불장난은 아이들이나 하는 법이다. 하긴 네놈이 어른은 아니니.'
그렇습니다. 나는 아이입니다. 이미 죽었으니 어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내 잘못이던가요?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재수 없고 짜증 나는 목소리를 향해 불길을 던졌습니다. 목소리는 허허 웃으면서 사라졌고, 대신 파주댁이 불길을 피해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나는 불길이 하는 짓을 보았습니다. 파주댁의 부적이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부적은 사라졌지만 내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불길을 모았습니다. 불을 던지려는데 상아가 파주댁 앞을 막아섰습니다. 상아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나를 보았습니다.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입을 꼭 다문 상아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비 그친 긴 둑에는 풀빛이 가득하고요, 남포항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는 내 마음을 흔든답니다.'
상아의 구슬픈 노래가 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맑은 남포항에 비가 내렸습니다. 비는 내 분노의 불길을 단번에 꺼뜨렸습니다. - 179~182쪽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불길이었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타오른 허무한 불길이었습니다.
꼴만 그럴듯했지 실속은 없는 불길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나는 몸집만 컸지 실상은 아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되지 못한 것, 그게 바로 내가 열일곱 나이에 죽은 까닭일 터입니다.- 179~18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시선 290
장철문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장바구니담기


사월의 느티나무 햇잎 스쳐 봄비 오시는 날
빗속에 배꽃 흐드러져 희게 부서지는 날
아내는 일 보러 가고
집 빈 날
글도 써지지 않고 책도 읽히지 않고
슬슬 졸리기까지 해서
일찍 집에 와 혼자 오줌을 누는데
거울 속에 자지가 참 이쁘장했다
며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운 값을 하느라고
움쳐 뛰려는 개구리와 같이
잎새 안쪽에 웅크린 개똥참외와 같이
멀뚱멀뚱한 놈이 참 실팍해 보였다
맑은 오줌발이 솟아나는 그 덩잇살을 바라보다가
그예 쿡,
웃고 말았는데
이걸 어디 좀 써먹을 데가 없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나도 몰래.
또로로록 또루루룩
빈집을 참 크게도 울리며 포물선을 그리는 오줌발과
검붉게 분 내린 그놈이 비치는 거울을 건너다보다
쿡,
또 한번 터지고 말았는데
입속에 맴돌던 그 '자지'라는 말이 참 물큰하게 씹히는
것이었다. -72~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시선 290
장철문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장바구니담기


처마 밑에 빗방울이 물잠자리 눈알처럼 오종종하다



들녘 한쪽이 노랗다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세 그루



빗방울 몇이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뚝뚝 떨어져내린다



남은 물방울들이 파르르 떤다



은행잎이 젖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툭
떨어져내린다



반나마 깔려서 들녘 한쪽을 다 덮었다-5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4-2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잎이 누렇게 익을 즈음에는
들판에서 자라던 들풀도
겨울을 앞두고 누렇게 시들면서
새로운 '풀빛'인 흙과 닮은 노란 빛이 되어요

전남 고흥에서 살며
아직 이곳 시골에서는
은행나무를 못 봤어요.
도시에는 은행나무 많지만
시골에는... 은행나무가 참 없어요 @.@

후애(厚愛) 2013-04-22 12:3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좋습니다!^^

전 시골에 은행나무가 많고 도시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참 많더라구요.
단풍나무는 시골에 많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