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결 오시듯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4
이봉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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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 장날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전라 우수영 총각과 결혼한 새댁이 오일장에 갯것을 사러 나왔겠다.
그녀는 사뭇 다른 이곳 말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어 사투리를 열심히 배우고도 있는 중이었다.
'바지락'은 '반지락'이라 하고, '팔다'는 '폴다'라 하고, '게'는 '
기'라 하고... 오늘은 바지락을 좀 사야지, 함지박을 벌여놓은 할머니 앞으로 다가간다.
몇 번 사투리 땜에 의사소통이 안 되던 할머니다.
은근히 그 할머니 사투리 모르는 새댁을 놀린 일도 더러 있었다.
이번에는 놀림을 당하지 않으리라, 그녀의 먹은 마음이 다부졌다.
"할머니, 이거 반지락 맞죠?" 근데 "잉, 기여." 한다. 기라니? '기'는 '게'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이 할머니가 또 날 놀리시나?
새댁은 다짐하듯 목소리를 조금 높인다.
"이거 반지락이잖아요." 할머니는 쓱 한번 쳐다보더니 또 그런다.
"기당께." 하, 참, 기가 막혀서...,
할머니가 이번에도 놀리는 게 틀림없다고 판단한 새댁, 따지듯 당겨 앉는다.
"할머니, 자꾸 반지락을 기라고 하실거에요?"
할머니는 그만 신경질이 났는지 악을 쓰고 만다.
"아, 기단 말이여. 이 서울 촌년아!" -20~21쪽

그 때 뒷짐 지고 지나던 할아버지도 그런다.
"깅마."
그걸 듣고 옆 함지박의 숭어가 한나절을 푸드덕거린다.-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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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결 오시듯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4
이봉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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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닮은 여자들



물기만 살짝 젖어도 반짝이는 조약돌이었던,
그 좋은 한때가 벌써 오래 전에 졸졸 흘러가버린
여자들 대여섯이 계곡물에서 텀벙댄다
나는 아들만 일곱을 낳았어 이년아!
일곱이면 뭘 해 영감도 없는 것이?
까르르 웃음보 터지고 물방울들 바위를 구른다
아직도 그렇게 반짝이던 생이 남아 있을라나?
바위를 닮은 여자들 가랑이 사이에
검푸른 이끼가 끼어버린 여자들이, 풍덩
뛰어들면 금세 거무튀튀해지는 바위들이 계곡에서
삼겹살에 상추쌈에 대두병 소주를 맛나게 마시고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거나 말거나
아카시아 숲 속으로 꽃마차가 달리거나 말거나
보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바위들이 낮술에 취해
물속에 가랑이를 터억 벌리고 누워 있다
영감 그거 있어봤자 성가시기나 하지 뭘 해?
그래도 등 긁어주는 건 그놈뿐이여 이년아!-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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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3
강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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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시절 오랜만에 상륙을 나오면
발아래로 뿌리가 내리는 느낌
땅 맛을 알았지만
두꺼운 군화가 핥고 난 뒤의 맛



아침 산길에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이 부러워
흉내 내며 느껴보는 맨발의 맛이 요란하다



시멘트 길 돌자갈 길 솔잎 길
디뎌가며 다양한 발 맛이 있다는 걸
온몸 옴질거리며 깨닫는다



물기가 적당한 황톳길은 인절미 맛이고
콩자갈 깔린 길은 매우 시금털털
아니 심하게 맵다



지금 아픈 저 자리들 굳은살 박이면
안 아프리라,
잊으며 다시 잃으리라
우리들 사랑처럼



날카로운 돌이 모서리로 박혀오며
새롭게 깨우쳐 주는



신묘한 발의 맛-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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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3
강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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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얼음이 양쪽 강안에
발 벌리고 있는 날
그 얼음 위에 어떤 시인처럼 잠시 세 들고 싶다
얼음 위로 솟은 갈대를 울타리 삼아
한숨 눈을 붙였다가
문득 누군가 그리워지면
손차양 만들어 햇빛을 가리고
눈물 한 방울쯤 얼음 위에 놓아두고
얼음 위를 뒹굴다가
이따금 내리는 눈송이로 이불 삼아
첫날밤처럼 잠들면서-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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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3
강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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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텃밭에 나가
웃자란 상추와 쑥갓을 두어 끼 먹을 만큼 땄는데
어머니는 창 너머로 보고 있었다



허리 아프다고 아들이 투정하자 한 말씀 하신다



다 그려
먹겄다 싶으면 힘 안 드는 것이
하나도 읎당게-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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