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장바구니담기


뻘에 다녀온 며느리가 밥상을 내온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가시지 않던 더위
막 끓여낸 조갯국 냄새가 시원하게 식혀낸다
툇마루로 나앉은 노인이 숟가락을 든다



남은 밥과 숭늉을 국그릇에 담은 노인이
주춤주춤 마루를 내려선다 그 그릇 들고
신발의 반도 안되는 보폭으로 걸음을 뗀다
화단에 닿은 노인이 손자에게 밥을 먹이듯
밥 한 숟갈씩 떠서 나무들에게 먹인다



느릿느릿 빨간 함지 쪽으로 향하던 노인이
파란 바가지 찰랑이게 물을 떠다가
식사 끝낸 나무들에게 기울여준다
손으로 땅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는 노인,
부축하고 온 지팡이가 다시 앞장을 선다



어슬렁어슬렁 기어온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밑동으로 스며든다
툇마루로 돌아와 앉은 노인이 예끼, 웃는다-16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3-06-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내 눈에 선하게 비치는 것 같다
그러다 웃는다
 
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장바구니담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천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탕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1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3-06-0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밌는 시다
나도 올 여름에 미숫가루 실컷 먹어야겠다

L.SHIN 2013-06-10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이 시 오랜만에 보는군요.
저도 예전에 이 시를 보았을 때 너무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릴 때 보았던 깊고 어두운 우물이 생각 났었죠.
어딘가, 해변 마을에 놀러갔을 때 어느 집 뒤에 우물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자주 놀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죠.-_-;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높은 담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시멘트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위험한 우물이었거든요.
옆에 수호 천사가 우리들을 지켜 보고 있었더라면, 아마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을 겁니다.(웃음)
 
비익조
엄경희 지음 / 이가서 / 2005년 1월
장바구니담기


서러웠던 세월만큼 내가 줄 것이다.
세상을 다 뒤져 보이지 않게 숨은 기쁨들을 모두 찾아내....
한시도 그 얼굴에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그 몸에 굳게 갇힌 너를 불러내 나를 의지해 편히 쉬게 할 것이다.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너를 내 앞에 모두 보이게 할 것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할 것이다.
너는 내 하루를 물처럼 돌처럼 흐르게 하는구나.
너를 앞에 둔 그 하루는 폭포처럼 쏟아져 흘렀거늘....
이리 기다리는 시간은 돌이 되어 멈추었구나.


종현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지필묵을 펼쳐놓고 앉았다.
한참을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하던 손끝이 갑자기 먹을 찍어
혼을 빼놓은 사람처럼 새 한 마리를 그려 놓았다.
비익조....


눈도, 다리도, 날개도 모두 하나뿐인 되다 만 새....
하나인 눈으로 세상을 보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하고....
하나인 다리로 걷지 못하니 그리운 곳 있어도 가지 못하고....
하나인 날개로 날지 못하니 새로 났어도 창공을 기억하지 못한다.
남을 쌍을 만나 하나가 되지 못하면 평생을 서러움만 키우다 한이 되리라.-338~339쪽

종현이 자신이 그려 놓은 그것을 한참 동안 넋을 놓은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는 기이한 새 한 마리가 그렇게 날아들어 그 밤 연유 없이 종현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움이라 했느냐?
평생을 아프게 품어도 서럽지 않을 그리움이라 했느냐?
그리움에 목이 타 심장을 녹이면 어찌하겠느냐!
그 심장이 녹아 몸을 죽이면 어찌 하겠느냐!-340쪽

무엇을 보아 이리도 아프겠느냐!
무엇을 품어 이리도 서럽겠느냐!


망부석인 양 그 자리에 굳어 떠날 줄을 모르는 발걸음이 흐르는 시간을 그렇게 붙잡고 있었다. 한스러운 슬픔이 손끝에 모여 싸리문을 움켜진 손에 핏물이 배여도 한 점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온 영혼이 그를 향해 있었다.


또다시 처음처럼 이곳에 섰다.
부르고 싶구나!
그 이름을 불러 나를 보게 하고 싶구나!
내 원망이 깊어 하늘이 너를 오래 주지 않을 모양이다.
많은 날을 함께 하지 못했어도 이미 너는 내 사람이다.
가진 것 없는 가슴 한 쪽 나누었으나 이미 우리는 서로의 세상이다.
그 맑은 심성에 한스러움이 고여 남은 날이 서러우면 어찌 하느냐.
버리고 살아라.
그리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알았던 기억 한 점도 남겨두지 말고 버리고 살아라.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치 마라.
이리 떠나는 나를 용서치 마라.
너를 은혜 한 나를 용서치 마라.-345~346쪽

"이 속에 한 사람이 있사옵니다. 신분은 미천하나 그 재능과 학식이 그리 두기 아까운 사람이옵니다. 그에게 과장에 나설 수 있는 신분을 주시옵소서."
"그것이면 되느냐? 다른 것은 없느냐?"
"없사옵니다."
"너를 이리 보내는 나를 원망치 마라."
"다시 태어나도 마마를 어버이로 모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정녕 그 길을 택하겠느냐?"
"먼저 가 기다릴 사람이 있사옵니다. 오래도록 준비해 한 점 소홀함 없이 맞을 사람이 있사옵니다."


제게는 그 사람이 제 세상이었습니다.
한세상 가지고자 탐내는 그것보다 그 한 사람을 얻는 일이 더 간절했습니다.
허나 그것 또한 부러 되지 않을 욕심이었습니다.
평생을 쏟아낸 원망이 하늘에 닿아 저를 용서치 않으려 합니다.
하늘이 그 세상을 허락지 않아 남은 생을 함께 하지는 못하나...
그 하나만은 제 것으로 가져갈 것입니다.-354쪽

"...어머님과...형님들의 목숨 줄이 내게 있다."-36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3-05-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너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 지면서 울었다...
눈물은 계속 나오고...
눈물로 이 책을 담았다...
눈물로 이 두사람을 떠나 보냈다...

숲노래 2013-05-2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로 담은 책 언제까지나
좋은 마음으로 아껴 주셔요
 
비익조
엄경희 지음 / 이가서 / 2005년 1월
장바구니담기


효원이 어명으로 그 짧고 비통한 삶을 천상에 뿌렸다. 목을 타고 넘어와 흩뿌려진 선혈이 도포 위 매화나무에 붉은 꽃을 피웠고 허공을 보고 선 비익조의 눈에 피눈물을 쏟아 놓았다.


한 사람만 기억해 가져가게 해주십시오.
그것이면 족합니다.
한세상 이리 살다 가는 것에 원통하다 한을 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 사람만 담아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엄해 망각의 강을 건너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허나 그 하나는 제 것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이 생을 비익조의 서러운 그리움만 품고 가는 자의 마지막 애통한 염원입니다.
그 사람 제게 주십시오.
저를 그 사람에게 주십시오.
다음 생에 한 쌍의 날개를 달아 원 없이 창공을 날아오르게 해주십시오.

-362~363쪽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와 있을 것이다.
배를 타야 한다.
그 사람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이리 허망하게 나를 놓고 갈 사람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내가 갈 것이다.
가서 그를 만날 것이다.

종현이 그렇게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면 모든 것을 놓으려하고 있었다.


이리 이곳의 끈을 놓으면 그리운 이를 보게 되는 것이리라.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갈 것이다.
이제 그 무거운 옷들을 다 벗어버렸을 테니 편히 쉬어지질 않겠느냐.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찾아가 너를 만날 것이다.-364~365쪽

내가 태어난 연유를 알지 못했다.
너를 만나 잠시 살아있는 나를 보았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너를 알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내 마지막이 원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허망하지 않다.
그러니 너를 기억해 가져갈 것이다.
수없는 망각을 강을 건너고 수억 겁의 인연을 거쳐 내가 너를 찾을 것이다.
너를 품은 나는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
그러니 너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 오너라.
귓전을 지나는 바람 한 점도 흘려보내지 말고 가져오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을 네 속에 담아 나를 만나면 원 없이 쏟아 보아라.
나는 오직 한 사람만 기억해 갈 것이다.
내가 너를 은혜 했다.


보이느냐.
오늘은 겨울 산을 담았다.
백설이 세상을 뒤덮어 이 머리에 내려앉은 세월만큼 무상하다.
그곳은 어떠냐.
아무런 시름이 없어 혹여 나를 잊지는 않았느냐.
다 담고 가려니 힘이 드는구나.
개울가에 뒹구는 자갈돌 하나도 네가 보지 못한 것은 다 담아가야하니...
이리도 시간이 더디어 흐르는구나.
너는 여전히 그동안의 얼굴로 나를 맞을 것인데...
나만이 이리 늙어 어찌 하느냐.-368~369쪽

보고싶구나.
나를 향해 웃던 그 얼굴이 너무도 사무치는구나.
이제 더 담을 것이 없다면 내 이 그리움 거두어 가다오.
간밤에 너를 보아 남은 머리에 백설이 더 내렸다.
이만하면 되질 않았느냐.
더 늙어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찌 하녀 하느냐.-370쪽

길고 무거운 생에 잠시 한 마리 나비인 듯 꿈을 꾸다 갑니다.
아직도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련한 그 기억으로 가는 길이 그리 서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월광의 눈 속에 세월이 무심히 내려앉아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 불초소생은 더 많은 축언을 올리고 가야할 듯싶습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염원을 이루시어 원 없이 창공을 날아오르십시오.


비익조를 그려다오.
왜... 그것을 내게 그리라 하느냐?
그 새는 슬픔이다.
평생을 서러움만 품고 가는 비통함이다.
어째서 그것을 네 도포에 담으려 하느냐?
그리움이다.
평생을 아프게 품어도 서럽지 않을 그리움이다.
그 반쪽을 만나 창공을 날아오르면 수천 리를 한 번에 품어 가질
그리움으로 견디는 새다.
그러니 그려다오.-371쪽

한사람만 기억해 가져가게 해주십시오.
그것이면 족합니다.
한세상 이리 살다 가는 것에 원통하다 한을 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사람만을 담아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엄해 망각의 강을 건너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허나 그 하나는 제 것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이 생을 비익조의 서러운 그리움만 품고 가는 자의 마지막 애통한 염원입니다.
그 사람 제게 주십시오.
저를 그 사람에게 주십시오.
다음 생에 한 쌍의 날개를 달아 원 없이 창공을 날아오르게 해주십시오.-372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3-05-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사랑이 다음 생에 이루어지면 좋겠다...
부디...
 
게으른 고양이의 결심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45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3월
장바구니담기


1.10:02 – 11:02 일어나기
2.11:03 – 11:30 깨끗이 씻기 1
3.11:31 – 12:20 아침 먹기
4.12:21 – 14:32 소화시키려고 잠자기
5.14:33 – 15:15 공부하기
6.15:16 – 16:00 명상하며 머리 식히기
7.16:01 – 17:00 점심 먹기
8.17:01 – 17:30 소화시키려고 잠자기
9.17:31 – 17:35 체조하기
10.17:36 – 17:59 깨끗이 씻기 2
11.18:00 – 19:00 생수와 과자 먹기
12.19:01 – 20:00 공부하기
13.20:01 – 20:15 청소하기
14.20:16 – 21:15 저녁 먹기
15.21:16 – 21:43 깨끗이 씻기 3
16.21:44 – 22:45 공부하기
17.22:46 – 00:15 또 공부하기
18.0:16 잠자기- 9~10쪽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괜히 힘을 쓰는 일이 없도록 모든 계획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파에서 해치웠어요. 그러다보니 소파가 길이 들여, 앉는 자리에는 큰 언덕과 연못이 생겼어요.
하루에 딱 한 번, 뒹굴이는 어쩔수 없이 자신이 잘 길들여 놓은 소파를 떠나야 했어요.
특별한 곳에 가야만 할 때였죠.
바로 정원 뒤쪽에 있는 세상 끝으로 말이에요.- 11~12쪽쪽

하루 하루 시간이 흘렀어요.
일어나기, 깨끗이 씻기, 아침 먹기, 루디에게 화내기, 소화시키려고 잠자기, 공부하기, 명상하며 머리 식히기, 점심 먹기 등등.

아느 날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에게 어떤 느낌만 들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그대로 아주 좋았을 거예요.
하지만 뒹굴이로서는 그 느낌을 도저히 그냥 참고 넘길 수 없었어요. 하필이면 루디가 놀이를 막 시작한 그때 말이에요!
뒹굴이는 일단 급한 볼일을 미뤄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루디가 놀이를 멈추지 않자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로서도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장 가야만 했어요- 17~18쪽쪽

처음에는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픈 건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다시 한 번 물렸어요.
그리고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뒹굴이는 물린 자리를 앞발로 세게 문질렀어요.
그때 꽉! 또 다시 물렸어요.
이번에는 머리에 물렸어요.
그러다가 배도, 등도 물렸어요.
이렇게 뻔뻔할 데가! 뒹굴이는 짜증이 났어요.
혹시…… 아닐까……?
엄마가 늘 조심하라고 했던 그것 말이에요!

그러니까…… 벼룩?

깊은 밤이 되어서야 깨무는 게 점점 약해졌어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완전히 지친 데다 괴로웠어요.
벼룩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뒹굴이는 일단 텔레비전을 켰어요.- 25~26쪽쪽

파리를 잡으면서 뒹굴이는 벼룩이 맛있는 암소 냄새를 잘 맡고 편안하게 암소에게 옮겨 갈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주위에 파리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게 되자,
왕눈이 암소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어요.
"이 초원에서 이렇게 조용히 있을 수 있다니!"
왕눈이 암소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에게 고맙다며
신선하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주었어요.
파리를 잡느라 목이 말랐던 뒹굴이는 우유가 말할 수 없이 달콤했어요.
그래도 뒹굴이는 얼른 왕눈이 암소와 헤어져 가까운 모퉁이를 돌았어요.
그러고는…….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꽉! 아, 안 돼요!
벼룩은 아직도 뒹굴이 몸에 있었고 또 다시 물었어요!
"암소 냄새가 너무 지독했나 봐.
냄새가 좀 덜 나는 동물을 찾아야겠어!"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가 생각했어요.- 39~40쪽쪽

여자아이는 뒹굴이의 귀 뒤를 부드럽게 어루만졌어요.
벼룩이 가능한 편안하게 옮겨 가도록 뒹굴이는 일부러 아이의 팔에 푹 안겼어요.
놀랍게도 여자아이의 손은 끈적거리지 않았고, 냄새도 아주 향긋했어요.
여자아이가 털을 어루만지자 게으른 고양이는 온몸이 기분 좋게 떨려 왔어요.
뒹굴이는 청소기처럼 웅웅 소리를 냈어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이제 가 봐야겠어, 귀여운 고양이야. 또 보자!"
여자아이는 고양이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세상에서 가장 쓰다듬기 좋은 고양이를 살포시 내려놓고 뛰어갔어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여자아이의 손길이 얼마나 좋았던지 아직도 기분이 멍했어요. 그러다가 뒹굴이는 얼른 세어 보았어요.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앗, 꽉, 꽉! 오, 안 돼요. 벼룩은 아직 뒹굴이 몸에 있었어요!
이번에는 더 세게 물린 것 같았어요.
뒹굴이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어요!
불쌍한 고양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뒹굴이는 몸을 긁적이는 동안 날은 점점 어두워졌어요.- 47~48쪽쪽

달님이 모습을 드러냈고 주위는 더 조용해졌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잘 부르지는 않았지만 느낌은 좋았어요!
또순이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달에게 불러 주는 노래였어요.

"좋은 기회야!"
벼룩이 뒹굴이 몸을 편안하게 여긴다면 다른 고양이에게 쉽게 옮겨 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끙끙 신음 소리를 내 가며
지붕 위로 올라가 잠깐 숨을 돌린 뒤 상냥하게 말했어요.
"안녕! 난 유명한 가수야. 오늘은 가수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릴 겸 원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가르쳐 줄게. 공짜로!"
또순이 고양이는 무척 예쁠 뿐만 아니라 아주 똑똑했어요.
다 잘 부르려면 노래 수업을 당장 받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요.
"그래, 해 줘!"
또순이 고양이가 '야옹' 하며 대답했어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아주 기뻐하며 당장 일을 시작했어요.- 49~50쪽쪽

하지만, 하지만…… 어쩐지 소파가 예전만큼 편하지 않았어요.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몸을 뒤척였어요.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의 털을 닦고 빗었고요.
늘 하듯이 말이에요.
그리고 금방 몸단장을 끝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용사에게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거든요.
왼손으로는 가련한 집파리들을 잡았는데 숲이나 초원의 벌레를 잡는 사냥꾼에게는 이것 역시 우스운 일이지요.
효과 만점 체조 연습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 코치에게는 당연히 식은 죽 먹기고요.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을 켰을 때 형편없는 오페라 공연이 나오자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갑자기 깨달았어요.
너무 따분하다는 걸!
뒹굴이는 다시 벼룩이 필요했어요. 지금 당장!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마음을 먹었어요.
벼룩을 다시 가져 오기로 말이에요!
뒹굴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파 연못에서 행복하게 잠이 들었어요.- 58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