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자본주의 강의
김수행 지음, 카를 마르크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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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인 저자의 열정이 그래도 전해지는 ‘자본론‘을 보면서 다소 어려웠던 마음이 풀어지고 경제의 개념과 흐름, 그리고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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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자본주의 강의
김수행 지음, 카를 마르크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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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단 나는 마르크스란 이름에서 '자본주의'라는 단어보다는 '공산주의'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혁명에 불을 지핀 인물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공산주의와 대적하는 느낌의-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자본론'을 집필하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고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에 속해있으니 자본주의의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본주의: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개인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자본의 흐름이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체제. 라는 정의는 검색을 통해 정리된 정의이고 내가 생각하는 그 자본주의가 맞다.

그렇다면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것은-엄밀히 말해 엥겔스가 집필했다고 하는데-애덤 스미스처럼 경제의 기본이나 돈의 흐름, 그리고 그 주체는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했던 집념의 결과가 아닐까.


일단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나는 칼 마르크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사상가'나 '정치가'가 아닐까 했던 선입견은 '철학자', 혹은 '경제학자'라는 말이 낯설었다.

신학자가 되고자 했다가 포기했다던 애덤 스미스처럼 '무신론자'였다고 하는데-스미스는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다만 무신론자 절친인 흄의 영향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무한한 경외를 접은 것뿐 아닌가-

당시 독일 사회나 영국 사회 모두 '성직자'의 신분이 가장 우월했던 시대에 소신이 뚜렷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이 책 서두부분에 있는 마르크스의 성격 전체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이 싸우는 것이라든지, 싫어하는 악덕이 굴종이라는 답을 보면 그가 엄청난 투쟁력과 고집을 지닌 사람임을 짐작케 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영구불멸의 사회형태가 아니며 새로운 사회로 바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는 계속 진화되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자 계급'이라든가 '임금노동자 계급'같은 단어에서 오는 지배체계의 모습에서 그가 바라보는 '자본주의'실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후에 저술했던 '공산주의' 저서에서의 사회 모델은 이상적이었고 성공한 모델이었던 것일까. '~주의'라는 것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진화 내지는 변화를 거듭하기 마련이 아닌가.

아마 많은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의 이런 주장에 다 동조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어려운 이론을 떠나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이미지는 '기업'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이게 시험문제로 가장 많이 나오는 정의 아니던가.

이렇게 막연히 알고 있는 '기업'의 목표는 이미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데 '만약 이윤 추구의 내용이 노동자들의 종속, 기업들 사이의 무한경쟁, 경제 전체의 무정부성,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등을 내포하고 있다면 소유주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경영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의 차이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저자의 말에 잠시 주춤하게 된다.

소유주의 직접 경영도 여전히 많지만 전문 경영인의 참여가 높아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고정된 관념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결코 쉬운 이론을 담지 않았다. 이해를 하기위해 엄청난 집중과 검색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이론을 현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꼭 전하고픈 저자의 열정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면 남에게 전달할 수가 없지 않은가.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이니, 그리고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았던 세대로서 '마르크스'란 이름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그가 알고자 했던 '자본론', '마르크스'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점이 무식하고 단순한 독자인 나로서는 더 와닿았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어찌되었든 이런 나같은 독자도 마르크스란 인물에 대해 알아보려 노력하고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왜 고전으로 전해질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는 흡족하지 않을까. 무작정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통찰하려는 학자로서의 태도가 신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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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경제학 강의
김수행 지음, 애덤 스미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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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만 외웠던 기억만 있는 내가 너무 어려울 것이란 편견을 깨고 경제학 교수 김수행의
명강의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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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경제학 강의
김수행 지음, 애덤 스미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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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국부론'이라하면 영국의 '애덤 스미스'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정도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학창시절 사회였던가 하는 과목에서 늘 등장했던 시험문제였기 때문에 '누구'의 '무슨 저서'정도로만 외웠던 기억만 있다.


일단 이 책을 펼치기 전 '지루하겠구나'했던 염려는 읽는 동안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아마도 국부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알기 쉽기도 했거니와 처음부터 살짝 던지는 수수께기같은 질문이 흥미를 이끌었다.


'금 은 보화를 가장 많이 가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할까요?'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의 식민지가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면, 이 것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군대가 봉급을 받게 되었을까요?'

책이라면 꽤 읽은 편이고 역사나 세계사라면 웬만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맞아 이 책이 쓰여질 당시에 세계최강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니었던가?

아메리카 대륙, 필리핀 제도, 일부 아프리카까지 방대한 식민지를 가진 나라였으니 당연하다.

수탈한 금 은도 어마무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난했다고? 도무지 모르겠다.


쌓아두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이 된다는 것이 스미스의 주장이다.

금이나 은이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재화는 맞지만 순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공산물과 농산물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결국 파산과도 비슷한 가난을 가져온다는 이론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스미스의 이 주장을 금 은을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수단으로만 지나치게 일면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스미스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경제학자인 저자의 시각은 스미스의 시각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넓다고 생각한다.


스미스가 영국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고 당시 부를 쓸어모았던 동인도회사를 비판한 것은 경제학자로서 자본의 거대한 흐름을 잘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닐까? 그 땅에 있는 자원을 쓸어오고 국토도 넓어지고 위상도 높아질텐데. 하지만 당시 영국은 적절치 않은 과세정책으로 오히려 화를 불러왔다고 본다.

개인의 이익을 증대했겠지만 정부의 이익은 오히려 늘지 않았고 국민들의 부담만 늘어났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 국부론에서는 단 한번 등장했다고 한다. 정말?

스미스가 주장하는 경제이론은 먹이사슬의 구조처럼 순환되는 것이고 인간의 천성과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서 인간들에게 천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질서를 방해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라는 뜻이었단다. 아하.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스미스가 무신론적 흄의 영향을 받아 그 길을 접었고 도덕철학을 강의하면서 저술한 '도덕 철학강의'가 '국부론'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같은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의 만남이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다시 검색하고-당시 영국의 왕조, 산업혁명같은- 그와 친분을 나누던 인물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조금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경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아마 시대가 흘러도 '국부론'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는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저자의 성함을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직접 강의를 들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열정으로 경제를 공부하고 강의하던 저자가 너무 일찍 스미스를 만나러 가신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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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이 당신 편이에요
하승완 지음 / 부크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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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시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라는걸 새삼 깨닫게 된다.

골목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머리를 땋고 교복을 팔랑거리며 지루하게 학교를 오가는 날들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몇 십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1년을 기다려 활짝 핀 벚꽃이 고작 열흘만에 저버린 것처럼 인생은 딱 그만큼의 시간인 듯 싶었다.


화려했던 십일홍은 더 짧았는데 그 청춘의 기억은 내 인생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정점의 어느 날, 나는 '아 나는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날인 것'임을 알았다.

그 시간들은 잘 무장되지 않았어도 가난했어도 비참하지는 않았고 살아볼만 하다는 힘이 있었다.

이후 어려운 시절들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어떻게 이겨내고 살았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냥 살아졌다. 내 힘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누가 이끈 것처럼, 그냥 끌려다닌 것 같은 시간이었다.


살고보니 이만큼이나 오고보니 '슬픔에도 끝이 있고, 눈물에도 끝이 있다'늘 말이 와 닿는다.

살아야 할 날들중 슬픔이 없다거나 눈물이 없는 시간만 존재할 것이란 것은 아니다.

다만 슬픔이 와도 눈물이 와도 예전만큼 힘들지 않으리라는 것, 또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뿐이다. 그 슬픔과 눈물덕에 더 단단해졌고 더 깊어졌다. 그게 인생이니 견뎌내 보자.


그냥 멈춤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가엽다. 조금 쉬어도 좋았을텐데. 우리 세대 사람들은 너무 부지런했고 자신을 닥달하고 살아왔다. 그래야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이라도 잠시 멈추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치면 잠시 쉬어보자. 힘들면 누군가의 손도 잡아보자,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붙잡지 않아도 되는 인연이 있다'

고르기 힘든 보석이 가득한 주얼리샵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느 한 문장만 고르기가 너무 힘든 책이다.

살아온 시간들이 많지 않은 저자가 어떻게 이런 위로의 말들을 골라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차면 저절도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다.

살아온 날들 뿐만이 아니라 돌아보면, 곁을 보면 내 삶을 지켜준 사람들, 책들, 문장들이 너무 많았음에 감사한다.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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