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5.10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10월이 가까워온다. 찌는듯했던 더위도 오는 가을은 어쩌지 못하는지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진다.

 


 

샘터의 표지에 일렁이는 가을의 모습이 참 넉넉하게 다가온다. 가을의 풍성함만큼이나 풍요로운 가을호가 참 반갑다.

표지를 넘겨 '이달에 만난 사람'을 보니 이름이 참 낯익다. 매일아침 KBS뉴스타임 중반에 그의 촌철살인이 나오곤 했는데 그이가 바로 '하상욱'이었다. 검은 뿔테안경이 잘 어울리는 이 젊은이 서른 다섯의 SNS 공감시인이라고 한다.

내가 그의 '시'라면 시일수도 있는 글귀를 보고 빵 터졌었다.

'쉬운 이별이 어디 있겠니' 첫마디는 마치 연인들의 이별을 그리는 듯 싶었다가 마지막에 '휴대폰약정'이라고 떠서 만나기는 쉬웠지만 헤어지기는 어려웠던 휴대폰과의 인연을 꼬집은 그의 글을 잊지 못했는데 이렇게 지면으로 만나고 보니 인상도 서글서글하고 그의 말마따나 인기비별은 '외모'이지 싶다. -진실로-

 


계절이 계절인만큼 여름옷 정리가 숙제인데 '오래 유지되는 옷장정리법'이라니, 사실 언젠가 입겠다는 일념으로 쌓아둔 옷들 결국은 입어보지 못할 확률이 100%라니 올 가을에는 반드시 처치해야겠다.

나도 읽었던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인용한 글귀를 한 번 되새겨본다.

옷을 만져보고 '설렘'을 기준으로 물건을 정리하라! 결국 나를 설레게하지 못하는 옷은 과감히 버리라는 이야기이다.

 


 

수상보다는 관상, 관상보다는 심상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나는 관상에 관심이 많아 '얼굴 읽는 남자'를 꽤 흥미롭게 보곤한다. 세계적 기업가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회장과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회장을 비교하여 분석하였는데 일단 부자라는 공통점을 빼면 닮은 구석이 전혀없는 관상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공통점은 행동력이 강하다는 점이라고 한다.

부자가 되는 과정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역시 행동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부자는 되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내 관상에는 부(富)가 없는 것인지 그저 밥술이나 먹는 정도이지만 건강만큼은 제발 타고났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을 오가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서울에는 모기가 귀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올해는 가물어서 모기 서식이 어려웠던지 모기 한마리 만나지 못했는데 이 곳 섬모기는 어찌나 끈질긴지 낮밤없이 공격을 해댄다. 성석제의 소설 '동무생각'에 모기에 대한 이야기를 보니 섬모기를 능가하는 모기가 바로 툰드라 지역에 사는 초원모기인데 건강한 순록도 이놈들을

만나면 빈혈로 사망할 정도란다. 그런 암모기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수모기의 울음소리라니 놀랍지 않은가.

작가의 말처럼 모기의 천적이 잠자리라니 어느새 하늘에 잔뜩 떠있는 잠자리가 모기를 다 잡아먹어주었으면 좋겠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특히 이 성석제작가는 박학다식하다. 자신이 좀 무식하다 싶은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하와이에서 사는 혼혈인은 '하파'라고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바마대통령도 하파이고 이 글을 보낸 어머니도 하파인 자식을 두고 있다고 했다. 통섭의 작가 '최재천'은 단일민족임을 자랑삼아 외치는 우리민족들에게 일갈을 했었다.

'섞어야 우월하다' 인간의 유전자의 특성상 섞이는 것이 더 우성학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던가.

암튼 두 민족이상의 피를 물려받아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 사는 하파가 요즘 대세가 아닐까. 이런 자부심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범죄로 희생되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니...안심귀가 프로그램이 도입되야 할만큼 밤길이 무서운 시대이다.

얼마전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여성도 대형마트에서 납치되어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수원여대생살인사건은 아직 범인도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지경에 수원시에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을 위한 '로드매니저'가 있다니 참 든든하다. 남녀 2인 1조인데다 경호전문가가 이끄는 팀이라니 왠만한 가해자들이라고 덤비가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보호단체가 생기는 것이 가슴아프지만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봉사로 안전을 지켜주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요즘 마음도 몸도 어수선하지만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여유있게 '샘터'를 즐겼으면 한다.

너무 노력하기만 하는 삶은 안스럽지 않은가. 잠시라도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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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리커버 한정판) -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당신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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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숨가쁘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시간들!

전후 가난하고 배고프고 빽도 없는 우리 국민들 그저 무조건 열심히, 부지런히 달려와야 살아남는 줄 알았다. 허리끈 졸라매고 먹을 것 아끼고 자식들 뒷바라지 하고 그렇게 달려온 시간들은 이제 풍요라는 결실을 얻어 살만한 시절이 되었다. 그래도 습관은 무서운 법이라 좀 느긋하게 살아도 좋으련만 여전히 '빨리빨리', '더 열심히'를 놓지 못하고 있다.

'천재는 1%의 재능과 99%노력'이라는 말도 있듯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났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배워온 우리로서는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라는 제목이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자의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일방적인 침략으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전후비슷한 행로를 걸었다.

파괴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달려왔고 기적적인 경제부흥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보다 살짝 앞선 세대가 아마 일본의 경제를 견인하지 않았나싶다. 저자인 고코로야 진노스케 역시 이런 시간들을 지나온 것같다.

대학졸업취업 1기생이니 사회에서 큰 기대를 가졌을 것이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을 거란 짐작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문득 외롭다고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멀어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이 행복하지 않았고 자신이 많이 망가져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하긴 일본의 국민들이나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열심히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쉬는 법을 모르고 즐기는 법을 모르니 인생을 돌아보면 행복수치가 높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아뭏든 저자는 과감히 사표를 내고 '셩격 개선 전문 심리 카운슬러'라는 다소 생소한 길을 걷게 된다.

말하자면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좀 느긋히 즐기며 살라는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이제 먹고살만 하니 배가 부르구나...하고 빈정댈지도 모르지만 일견 그의 조언에 귀가 솔깃해진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난을 버텼던 시간을 버리고 이제 고급 호텔에 티룸에서 차도 한 번 마셔보고 전부터 갖고 싶었던 브랜드 제품도 구입하고 자신을 아끼고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좀 낯설게도 들리지만 왠지 '나'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인정받고 도태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시간들을 이제 좀 내려놓아야 하는건 맞다.

서점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성과를 높히고 성공으로 달려갈 것인가 하는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아주 가끔 '느림'을 찬양하는 책이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좀 적당하게 살자'라고 하는 책은 처음이 아닐까.

내가 가장 공감이 갔던 글귀는 '거절을 잘하자'였다. 나 역시 대쪽같이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거나 명령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보면 싫은 감정으로 겨우 일이나 사람들과 대면해야하고 스트레스로 마음을 상했던 일이 많았었다. 당장은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생길지 모르지만 내가 행복한 것이 일단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거절할 줄 알면 자유로워져요' 여기서 자유란 정신의 여유가 아닐까.

에니메이션을 보듯 간단하면서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글귀가 참 편안하다. 아마 그의 강의도 이럴 것이다.

그가 왜 바쁜지 알것만 같다. 자신은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분명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고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다.

빽빽히 써있는 스케줄을 보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내 생활에도 조금쯤 여유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쉬엄쉬엄 쉬면서 나를 좀 덜 볶아가면서 살고 싶어지는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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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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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와 산책을 나갔던 꼬마소년은 투정을 부리다가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직은 파란 신호등이지만 곧 빨간신호등으로 바뀔 것을 염려한 꼬마의 엄마는 아이를 막으려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하고 만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은 꼬마의 눈을 가리고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그 꼬마소년은 노암이었다. 노암은 그후 아동심리학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열 여섯살이 되는 해에 치료가 끝나게 된다.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했던 노암은 현실과 과거의 상처를 오가며 가까스로 삶을 연명한다.

다행히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대학에도 진학하는 등 노력을 하지만 자신의 영혼은 오래전 죽은 것같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상실감에 알콜중독자가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노암과 그의 누나 엘리자에게 맡기고 폐인이 된다. 한 가정의 행복이 노암으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노암은 독특한 취향을 지닌 쥘리아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귀었지만 그녀는 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떠나고 혼자 남게 된다.

노암은 회사의 중견간부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쥘리아를 떠나 보낸 이후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마흔이 되도록 스쳐가는 여자들과의 가벼운 만남만을 가진 채 사랑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못한 삶을 살게된다.

아마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아이 하나를 낳고 이혼을 한 누나 엘리자를 방문했던 노암은 세 살짜리 조카 안나에게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세 살짜리 꼬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휘와 목소리로 그에게 한 말은

"넌 다섯 사람과 함께 같은 날 심장으로 죽을 것이다."이었다. 순간 심장이 멈출 것같은 충격을 받은 노암은 오래전 자신을 치료했던 아동심리학박사 로랑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이제 은퇴를 하고 진료를 하지는 않지만 노암에게 리네트를 소개해준다.

 


 

그녀는 사실 정통적인 심리학자는 아니었다. 정신에 결부된 영혼과 몸의 관계에 결부된 모든 지식들에 대해 열려있는 통합적인 접근법으로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리네트는 노암의 조카 안나의 예언은 어떤 막강한 존재가 순수한 영혼의

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에 있는 예언소녀 사라를 만나보라고 권하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도 없었던 노암은 리네트의 조언에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알수 없는 이끌림으로 이스라엘로 향한다.

 


 

자폐아였던 사라는 노암에게 안나와 같은 예언을 들려주고 다섯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알려주기 시작한다.

노암은 사라가 알려준 다섯 사람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이스라엘에서 한 달전 태어난 갓난 아기와 이탈리아의 존경받는 철학박사, 그리고 헝가리의 행복한 부부등을 만나면서 도무지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여정을 끝내려고 한다.

하지만 사라가 보낸 네 번째 동반자의 이름을 본 순간 노암은 미친듯이 암스테르담으로 달려간다.

바로 그가 평생 단 한번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쥘리아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지식은 하나의 덫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에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것을 분석하고 분류하며 이로써 그것들을 통제한다고 믿습니다....우리는 영원과 무한에 비해 우리의 삶이 너무도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본문중에서-

거리에서 만난 수도자의 입으로 전한 인생의 메시지는 사는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노암의 영혼을 흔들었다.

뭔가 더 위대한 존재들을 확인하고 자신의 죽음이 과연 언제 도래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지닌 채 사라가 전한 죽음의 동반자들을 만나는 동안 노암은 인생의 의미와 결혼, 사랑의 위대함들을 느끼게 된다.

 


 

'어떤 신비주의적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동일한 영혼이 여러 개의 몸에서 살 수 있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상처로 평생 고통받았던 노암은 쥘리아를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을 사라에게 보낸

리네트의 조언에 과거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있음을 알게된다.


사실 누구나 크고 적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된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꼬마소년의 아픔은

너무나 아프고 안스럽다. 스스로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속죄를 대신하는 것같은 안타까운 모습에 제발 과거로

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노암을 어린시절부터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을까. 그래도 오래전 옛사랑과 재회하여 남은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넣었을 것같아 다행스럽다.

예언을 따라 노암과 함께 한 여정도 신비스러웠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스토리 배치도 훌륭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삶을 살았던 노암의 아픈 시간들을 어루만져주는 작가의 따뜻한 손길에 위로가 된다.

역시 '밝은 세상'의 책은 늘 행복감을 준다. 실망하지 않을 책을 선택하려면 '밝은 세상'의 책을 집어들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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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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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넘긴 어머니와 마흔 중반의 아들의 동거기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까지 차지한 아들은 여전히 늙은 엄마가 차려준 열두첩 반상을 받으며 여전히 툴툴 거리며 살아가고 있단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하는 일도 살림을 하는 일도 다 귀찮다고 하는데 중늙은이 노총각 아들 뒤치닥거리가 반갑지만은 않을 것 다. 그래도 하루에 국을 세가지씩이나 끓여 한 가지라도 더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이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의 사랑이 눈에 선하다.

더구나 밥상 차리는 일도 지겨울텐데 술상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술이 등장하지 않는 꼭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매일 술이야~~'가 절로 나온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나이라 해도 건강이 아직 괜찮은 것일까. 늙은 에미가 차려주는 술상을 받는 아들을 부러워해야할지 걱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래전 여인네들은 무뚝뚝한 남편과 노동에 가까운 시집살이를 견디면서 어찌 살았는지..

말순씨도 부잣집 딸로 잘 살다가 남편 잘못만나 팔자가 제대로 뒤집어졌다. 더구나 바람이라니..

눈이 오는 날 그 하얀 눈을 보면서 서른 한 살 남편의 뒤를 쫓아가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맨발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눈물과 분노가 섞여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런 세월을 살았을꼬. 아마도 자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S자형 몸매는 O자가 되었고 제 몸을 키워주던 젖은 이미 축쳐져버렸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노화되지 않는다.

 


 

매일 새벽이면 천수경을 외고 절에 다녀오면서 챙긴 떡을 좋은 기 받으라고 기어이 먹이려는 어머니!

돈좀 꿔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자신의 집 족보에 오를 각오라면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머니의 걱정처럼 몸에 하자가 있거나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왜 결혼을 못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못생겼나...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정도는 아닌데...성격이 까칠할까?

시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언제까지 늙은 엄마의 뒷바라지를 받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매일 술상 차려줄 여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술 좋아하는 여자라면 모르지만.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특가 행사중인 마트까지 전사차림으로 나서는 어머니와 티격태격 하는 일상이 짠하면서도 감동스럽다.  사표를 수 차례 던지면서 가장의 무거움을 어머니에게 넘기기도 했던 이 아들, '우울증인 것 같아!'라는 아들의 말에 외출도 안하고 가끔 자는 아들의 얼굴에 귀를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돈다.

마흔이라도 쉰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같았을 것이다.

뻑하면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엄마는 노숙자라고 표현하시는-신세다 되는 아들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낙담하여 무슨일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통장을 내밀며 굶어죽지 않으니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을까...위대하게 다가온다. -물론 요즘에는 제자식을 죽이는 에미들도 있지만-

'나의 지킴이, 나의 사랑'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친손주 재롱도 보고 술상 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장가가서 아이를 낳아도 환갑에 겨우 중학생일테니 둘이서만 재미있게 살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에, 그래도 내 아들 심간 편하라고 대가 끊기는 불효는 저승가서 당신이 받겠다는 모습에, 그 사랑을 다 받고 살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지금도 바람불면 바다에 나가지마라, 건강조심해라..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온다.

뻐꾸기 우는 북한산 자락에서 며느리도 보시고 손주도 보시고 오랫동안 늙어가는 아들을 지켜보시길 기원해본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매일 올라오는 술상에 같이 걸터앉아 술 한잔 사랑 한잔 잘 마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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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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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이 글귀를 읽으니 어느새 어린시절 1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구멍가게를 뛰어가던 어린 나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라면값은 20원정도였던 것 같은데 100원으로 5개정도의 라면을 사서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그 시절의 나! 60년도 후반이었으니 나는 베이비붐세대인 셈인데 한가정에 아이들이 적어도 서 넛 이상은 되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그만 낳으라는 표어가 여기저기 보이던 시절이니 한국전쟁후 태어난 그 많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입히는 일들이 걱정스런 시절이기도 했다.

'통일벼'가 나오고 '알랑미'-아마 동남아의 안남미를 그렇게 불렀던 것같다-가 수입되면서 '정부미'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나오고서야 국민들의 배고픔은 어느정도 잦아들었던 것 같다.

'혼분식'이 장려되어 보리밥을 섞은 도시락을 검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제비'며 '라면'을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배가 고파 굶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라면 먹으면 되지'했다는 손주 이야기가 우스개처럼 말하는 시대가 온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창하고 가난을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는데는 '라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라면조차 사먹을 수 없을만큼 가난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비교적 쉽게 라면으로 주식을 대신 할 수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라면의 대부 '전중윤'회장 덕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삼양라면'!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 라면의 탄생을 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북이 고향이었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로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이라고 부르던 미군부대 쓰레기탕을 먹는 가난한 국민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식품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란 제목에 코끝이 시려온다. 유복하게 자라 배고픔을 몰랐다가 전쟁 피난 후 배고픔을 경험한 전회장은 가난한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삼양식품'을 설립한 셈이다.

하지만 그 한 봉지의 라면이 우리 가난한 국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스토리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도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뿌리는 중국이라고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만인 셈인데 중국에서 흔히 먹던 건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라면으로 탄생되는 스토리도 라면발처럼이나 굴곡이 심했었다니..

일본 역시 전후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고 있었고 건면사업을 하던 묘조식품의 오쿠이씨의 노력으로 라면이 탄생된다.

건면은 저장성을 높히고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에 튀긴 라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름을 선별하기 위해 시간도 참 지난했었다. 산패가 쉽게 되는 기름을 걸러내고 지금의 라면이 튀겨지기까지 모든 발명이 쉽지 않듯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라면의 진화는 참 고단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한일관계가 차가왔던 시절 오로지 배고픈 국민들을 구하겠다는 소신하나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이씨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던 전중윤회장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하고 가장 다양한 라면을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물만 부어서 먹는 라면에서 스프를 분리하고 한끼 식사로 탄생시킨 오쿠이씨의 노력에도 감동받았지만 그 귀한 스프의 제조비법을 전중윤회장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직전 몰래 전하던 오쿠이씨의 진심을 보자니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사람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본에서 탄생된 라면이 현해탄을 건너 '삼양라면'으로 재탄생되고 그 비화속에 숨은 감동을 보자니 무심코 끓여먹던 라면 한 그릇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온다. 라면에 깃든 추억이야 어디 한 둘이랴.

멀리 해외에 갈때도 소중하게 챙기는 음식이었고 요리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면!

안타깝게 전중윤회장은 작년에 타계를 했다고 한다. 우지파동이 일어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만큼 큰 타격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라면의 대부에게 새삼 고맙고 그에게 라면의 비법을 전수한 오쿠이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식탁에 날마다 오르고 있는 라면속에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담겨있다.

'라면 쉽게 보지 말라.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 역사를 오롯이 담은 음식일지니...'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의 라면이야기! 참 감동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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