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5.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갑작스럽게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첫눈은 사흘쯤 늦었다지만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어느새 올해의

마지막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맘때가 되면 할일없이 마음이 바쁘고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웠음에 후회가 밀려들기도 합니다.

문밖에는 눈발이 섞인 바람이 휭휭거리고 세상은 테러로 뒤숭숭한 요즘 그래도 샘터 한권으로 마음을

덥혀봅니다.

12월의 큰 행사인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인지 표지에 특집 '우리 곁에 산타'라는 제호가 눈길을 끕니다.

어느새 산타는 현실에 없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어쩌면 상상보다 더 멋진 산타가 내곁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나요? 내게 산타는 누구일까요. 아마 연로함을 무릅쓰고 맛있는 김장김치를 담궈 멀리 섬까지 보내주시는 엄마가 내 산타가 아닐까요.

며칠 전 읽은 '오봉로망'이라는 책은 파리에 있는 어느 서점의 이야기입니다. 명작만을 엄선하여 전시한 꿈의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서점이 꼭 있었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이번호에는 '최후의 서점'에 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로스엔젤리스에 실제하는 이 서점의 이름이 바로 '최후의 서점'이라는데 점점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고보니 비감한 이 서점의 마지막 몸부림이 이름에 담긴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여권을 꺼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을텐데 기억도 나질 않네요.

언젠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여는 티켓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는데 십년 넘게 쓸일이 없다보니 아마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여권이 어디에선가 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해외로 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유효기간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가 막상 공항에 나가 난감했던 기억을 가진 분들도 있으실거 같습니다. 최소 6개월이상 남은 여권만을 통과시키는 나라가 꽤 된다는 거 기억하시길...최근에 제 친구도 공항에 나갔다가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걸알고 기겁해서 임시여권으로 출국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답니다.

서민교수의 기생충이야기는 늘 즐겁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무척 징그러웠습니다만.

저희 가족들도 해마다 봄 가을로 구충약을 먹고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기생충은 그리 많이 감염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에서는 기생충으로 실명은 물론 목숨까지 잃는 일이 흔하다고 하는데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고 이미 기생충의 위험에서 벗어난 선진국의 학자들이 기생충 후진국을 위해 끝까지 연구를 해왔다는 사실이 감동스럽습니다. 이런 마음이 충만하다면 파리테러같은 비극은 없었을텐데말이죠.

가까운 일본에서는 어느새 노벨수상자들이 꽤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니 대한민국이 분발해야겠다는 조급증이 들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부엌수업'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입맛을 다시면서 레시피를 암기하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이번호에 소개된 호박전무침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님이 자주 해주셨던 음식이라 사진을 보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그저 숭숭 썰어서 기름에 부쳤다가 양념으로 무쳐낸 간단한 음식이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손맛만큼은 나오질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식에는 추억이 깃들기 마련이고 내 아이들은 어떤 음식을 보면서 나를 추억할지 궁금해집니다.

2015년 주는 맘 받는 맘의 선물은 웃는 당나귀인형이랍니다. 이제 인형을 갖고 놀 아이가 없어 저는 패스하겠습니다.^^

마지막장에 있는 이름 요지경에 언젠가 꼭 투고를 해야겠습니다. 제 이름 만만치 않거든요.

하도 딸을 나서 제발 딸좀 그만 나오라고 '그만'이라고 지을려다 그래도 너무하다 싶어 '이금안'이라고 지었다는 사연을 보니 오래전 남아선호사상속에 울었을 우리 어머니들과 딸들이 생각나 뭉클해집니다.

지금은 딸이 최고인거 다 아시죠?

'깊은 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한 세상을 소용돌이 치듯 살다가신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문득 샘터 뒷표지의 글이 가슴에 박힙니다.

우리 삶은 소리없이 흐르고 있던가요. 2015년 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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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의 신
하라다 마하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몇 달전 보았던 영화 '국제시장'에서 이제는 늙어버려 1.4후퇴때 함흥에서 헤어진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늙은 아들역의 황정민이 '아버지 더 정말 힘들었어요'하고 통곡하는 장면에서 그러했었고

최근 다시 열풍이 부는 '응답하라 1988'에서 가난한 딸을 찾아온 친정엄마가 몰래 화장실 세탁기속에

딸내미에게 돈 삼만원을 숨겨놓고 '우리 딸 옷 한벌 사입어라'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짓는 모습에서도

불쑥 눈물이 솟구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물꼭지는 너무 자주 헐거워져서 민망함을 느끼곤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내 유쾌하게 전개되었던 이 책의 말미에서도 나는 불쑥

솟아오르는 눈물 때문에 잠시 당황스런 기분이었다.

서른 일곱의 직장여성 아유미는 십 칠년이나 근무했던 영화관련회사에 사표를 낸다. 좋아하는 영화관련일을 하는 회사인데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복합영화상영관오픈프로젝트가 마무리도 되기전이었다.

술술 풀려나가던 그 프로젝트가 아유마외 친한 직권남용으로 함의가 결정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엉뚱한 자회사로 이동 발령이 떨어지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유미는 사표를 내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글쎄 조직사회라는 것이 결국 이런 냉혹함이 있긴 하지만.

하필 회사를 그만두는 마지막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구의 아버지가 심장수술을 받는 날이었다.

젊은 날 영업사원으로 전국을 떠돌던 때부터 마작과 영화에 미쳐 가족을 소홀히 하던 아버지는 낡은 맨션의 관리인이 되고도 도박습관만은 고치지 못하고 여기저기 빚까지 낸 사실을 알게된 아유미는 이번만큼은 빚을 갚아주지 않고 스스로 갚게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아버지의 통장과 연금을 꽉틀어쥐고 어렵게 결심을 내비치자 자유분망한 아버지는 실망한 티가 역력하다.

아버지가 수술하고 입원하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맨션의 관리실을 지켰던 아유미는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적어온 영화일지를 보게된다. 아버지 특유의 자유롭고 솔직한 리뷰를 보게된 아유미는 자신도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몇 줄 글을 끼워넣는다.

'영화관이란 그런 장소가 아닐까. 같은 시간과 체험을 공유하는, 한바탕 신났다가 다시 조용해지는 축제와 같은 장소...명화는 화려한 불꽃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천변이 지금 사라지고 있는게 나는 안타깝다.' -본문중에서

언제 보았을까. 퇴원한 아버지는 아유미가 적어놓은 그 글을 영화전문잡지사 메일로 보내고 그 글을 본 '에이유'의 편집장 다카미네 요시코는 아유미에게 편집부로 출근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구직활동을 하려고 여기저기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대기업 과장출신의 늙은 여직원이 갈 직장은 거의 없었다.

얼떨결에 이제는 퇴락하고 있는 영화잡지사 '에이유'로 출근하게 된 아유미는 뜻밖의 반전을 맞게 된다.

경마도 마작도 할 수 없게된 아유미의 아버지는 인터넷카페를 들락거리더니 '에이유'블로그에 글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그 글을 읽은 팬들의 의외의 호평에 힘입어 '에이유'에 필진에 합류하게 된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늙은이의 글이 뭐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평생 영화를 사랑하고 보아왔던 눈길은 의외로 깊었다.

팬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인기가 올라가던중 '로즈 버드'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사람이 남긴 댓글은 불에 기름을 부은듯 영화팬들을 불타오르게 한다. 아유미의 아버지 고짱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라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고짱의 영화평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전혀다른 시선으로 몰아가는 로즈 버드의 글은 많은 팬들의 갑론을박을 야기하고 덕분에 기울어가는 '에이유'는 화제의 중심에 서고 투자자들이 몰려들게 된다.

과연 로즈버드는 누구일까. 고짱의 머리가 벗겨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지척에 있는 인물이 아닐까.

졸지에 추리물로 접어들어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키더니 결론은 일본과 미국의 영화광들의 대결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전혀 만난적은 없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공유하는 애정만으로도 절친이 될 수 있음을 알게된다.

고짱이 영화 밝은 부분을 보려했다면 로즈버드는 어두운 면을 보려했다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제 저물어가는 인생의 끝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노인의 우정에 가슴이 찡해진다.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고 싶었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충격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고짱을 위한 '키네마신 감사제'가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감동이 피어오르면서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시간앞에서도 결국 '사랑'으로 모든 것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기대없이 펼쳐들었던 책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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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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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나는 이 작가의 꽁무니를 며칠씩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그의 소설 '칼의 노래'가 비수처럼 내 몸에 와서 박히고 그 적막함 때문에 한참이나 몸살을 앓았던 난 글로써만이 아닌 인간 '김 훈'을 느끼고 싶어서 였는지 모르겠다.

모 출판사에서 그의 책이 출간되고 한창 마케팅이 진행되던 때 '독자기자'라는 이름으로 그를 뒤쫓았던 것이다.

도무지 멋을 낼줄도 모르고 사실 출판사나 독자의 요청으로 어딘가를 불려다닌다는 것을 몹시도 싫어한다는 그가 문경새재를 오를 때는 참으로 신이 난 모습이었다.

어느 강연에서는 당시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이 한참이었던 때라 무상급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그는 아무 댓가없는 밥은 아이를 나약하게 할 뿐이다..라고 답했던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나왔듯 그의 아버지는 시대를 앓느라 가족은 늘 뒷전이었고 그럭저럭 대학을 나온 작가는 가난한 조국의 국민들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고 싶어 기술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었다.

밥을 벌기 위해 밥을 먹고 다시 일터로 향하여만 하는 가장의 무거움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필 그가 태어난 시대는 한국전쟁과 가난과 이념의 충돌들이 난무하는 시간들이었다.

서울 토박이 모친의 말투는 늘 점잖았고 작았다고 하더니 그 역시 목소리는 낮고 군말이 없는 편이다.

그런 그의 진면목은 결국 글에서 발휘되곤 한다. 오래전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이순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렇게 나온 '칼의 노래'에서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망루에 오르던 장군의 고독이 뚝뚝 묻어 나왔었다.

기자출신 작가답게 시대의 아픔을 녹아낸 작품들이 속속 나왔고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왠지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움이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람둥이 친구가 '여자란 골방에 들어가 살을 부비는 존재'라는 말에 '졌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절로 난다. 아직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어쩌면 제법 유머러스한 구석이 많은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기자 시절 서대문형무소에서 마주친 박경리작가와의 일화는 가슴이 저릿해진다.

이제 겨우 돌도 안된 손주를 포대기에 업고 형무소 맞은편에 시린 바람을 맞고 서서 사위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모습.

그런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이 전해져오는 것같아 자꾸 가슴이 시려온다.

박경리는 알았을까. 먼발치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낯선 사내가 후일 글을 써서 밥을 먹는 후배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무수한 아버지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가혹한 노동과 날이 밝도록 일해야 했던 수많은 밤의 고난을 지나왔을 것이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끝까지 머리 숙여 모든 일을 다 해온 세월들...

라면도 밥에 속하는 것이라면 그의 라면 끓이기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단한 노동으로 밥을 벌어야 했던 고단함을 잠시 접어두고 마치 별식처럼 끓여먹던 라면의 존재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잠시라도 잊게 해준 고마운 별식이었을 것이다.

물은 약간 넉넉하게 스프는 3분의 2만 넣고 센불에서 끓여낸 그의 라면맛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서울 토박이 입맛을 가진 그의 싱거운 습성은 라면 끓이기에서도 나타나는지.

자신만의 라면 끓이기에서 그의 고집과 다부짐과 소신같은 것들이 드러난다. 천 원도 안되는 라면 한봉지를 꺼내 끓이는 단순한 작업에서도 그의 결기가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고 한편으로 무섭다.

불광동, 연신내를 지나 일산에 터를 잡은 그의 삶이 더 이상 밥벌이의 지겨움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스럽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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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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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랬던 유일한 추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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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여전히 서점에 들어서면 가슴이 설렌다. 가난하던 어린시절 책이 잔뜩 쌓인 서점에만 가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청계천 헌책방을 전전하고 그나마 신간이라도 구경할 수 있는 학교 도서관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었다. 그렇게 나에게 책은 여전히 삶의 동반자이고 연인이다.


서점에 있는 그 모든 책들이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 분야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던가.

그중에서도 소설, 소설중에서도 정말 좋은 소설만을 엄선한 서점이 있다면 난 기꺼이 갈 마음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바로 이런 서점을 문을 연다. '오 봉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오 봉 로망'의 뜻은 '좋은 소설이 있는 곳'이란다. 그렇다면 좋은 소설의 정의는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그런 책들? 아니면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했다고 자부하는 고전들?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명의 위원들이 뽑혔고 그들이 고른 600권의 책들은 오 봉 로망의 진열대를 장식한다.

가뜩이나 불황인 시절에 가뜩이나 스마트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런 서점에 들르기는 할 것인가.

 

 

이 '오 봉 로망'의 탄생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여인 프란체스카와 한 때 교사였지만 서점에 오랜동안 직원으로 일했던 이방이라는 남자의 열망이 숨어있다.

열 여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버린 딸아이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사는 프란체스카는 할아버지의 일기를 출간하여 부자가 된데다 돈많은 사업가의 아내로 얼마든지 이런 꿈의 서점쯤은 쉽게 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방역시 잘 팔릴것같은 책들을 어거지로 들여놓고 선택을 기다리는 일반적인 서점의 영업형태에 신물을 느끼던 중이었다. 아뭏든 둘은 의기투합하여 꿈의 서점 '오 봉 로망'을 열기로 한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은 이 사업이 절대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개점 초기 '오 봉 로망'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책을 사랑하는 선별된 독자들을 열광케한다.

하지만 비밀스럽게 선별한 위원들에게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들을 위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할만큼 선별에서나 유지면에서 고심을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의 명단이 유출되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들 주변을 맴돌며 사고를 유발시키고 위협을 가하는 그림자들.


이 소설은 꿈의 서점을 열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이라면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와 그런 꿈의 서점을 바라보는 반대편의 사람들의 시각을 잘 풀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정의와 진짜 작품의 차이.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심도높은 독자들의 눈. 그런 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들.

그리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골라낸 위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그림자집단은 누구인지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에 숨은 사랑의 이야기가 더 절절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자살한 딸의 기억을 아픈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프란체스카. 그녀는 오 봉 로망을 자신의 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먼저 간 딸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그리고 오로지 독서로 다져진 지혜로 이 모든 사업을 함께하는 이방. 그리고 그가 아끼는 여인 아니스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

그런 이방을 바라보는 프란체스카는 점점 이방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이방의 마음을 빼앗기는 어렵다.

그의 마음속엔 온통 아니스 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중년 여인의 안타까운 사랑과 어린 시절의 상처때문에 이방의 사랑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니스. 그리고 두 여인 사이에서 감정의 혼란을 느끼는 이방.


정말 이런 서점이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 작품도 버릴 수 없을만큼 빼곡하게 들어선 서점을 상상만 해도 뿌듯해진다.

이제 사람들은 종이로 된 책보다는 화면으로 보는 책을 더 선호하고 서점보다는 더 열정적인 곳으로 향한다.

그런 와중에 돈도 되지 않을 것같은 이런 서점을 내고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한 곳만을 바라보는 이상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결국 위원들을 위협하는 그림자들의 정체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란체스카의 죽음 이후 '오 봉 로망'의 분해와 새로운 시도들. 그리고 그들에게 지나갔던 아름다운 감정들은 가슴에 남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실제하거나 상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활자로 표현할만큼 대단한 저자의 능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과연 몇 권이나 추려낼 수 있을만큼 책을 읽었으며 안목을 가졌을까.

언젠가 서울 도심 어딘가에서 꼭 만나고 싶은 '오 봉 로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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