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전시회 관람 - 대림 미술관 수석 에듀케이터가 알려주는 미술관 사용
한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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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딱 내가 좋아하는 주제라 못 지나치고 빌리게 됐다.

집에 와서 펼쳐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다.

하루에 200 페이지씩 읽는 게 목표인데 참 진도가 안 나가고 힘들다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쉬운 책들은 술술 잘 넘어간다.

미술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에듀케이터라는 직업답게 쉽게 글을 잘 쓴다.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전 관람을 다녀와서 느낀 점들을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미술관은 이제 단순히 전시를 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도서관처럼 복합문화센터가 되는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몇년 전만 해도 이런 전시는 나같은 사람이나 오지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을 정도로 한산했는데 요즘은 어떤 전시를 가도 항상 북적인다.

그래서 관람하기기가 참 어렵다.

저자는 에듀케이터인 만큼 영화관을 가듯 미술관에 쉽게 놀러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요즘 미술관들의 정책 방향도 좀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하자는 쪽인 것 같다.

미술관이라는 건축물 자체에 관심이 커지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우리나라 뮤지엄 산 같은 경우도 미술관 그 자체를 보기 위해 방문하게 된다.

미술관의 정원도 관람하고 데이트도 하고 관련 이벤트나 교육 강좌도 참여하고,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저변이 확대될수록 관람 에티켓에 대한 강조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요즘은 어린이들 체험학습 같은 사설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는지 어느 전시회를 가나 아이들을 끌고 다니는 팀들 때문에 감상이 참 어렵다.

어제 전시 같은 경우도, 아이들이 가야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다른 관람객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정말 눈쌀이 찌푸려졌다.

이래서 박물관에서 사설 도슨트를 금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 수준에서 저런 어려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까, 또하나의 사교육인가 싶기도 했다.

관람 에티켓에 대한 교육이 매우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를 직접 보는 것은 원작을 만날 때의 강렬한 감동 때문에 언제나 흥분되는 미적 체험이 된다.

책에서는 천천히 한 작품을 감상하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들은 대부분 기획전시라 여러번 방문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감상 시간이 한 두 시간만 넘어가도 금세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외국 미술관에 가면 다시 오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강행군을 한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상설 전시작이 너무 적어 여러 번 보기가 힘들다.

저자가 추천하는 것처럼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고 가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의외로 전시 관람이 머리와 몸을 금방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나는 오디오 가이드 듣는 것도 힘들어, 일단 빠르게 한 바퀴 돌아본 후 도록을 구입해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그러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친근감이 생겨 다음에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도 찾아 보게 된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중산층의 조건 중에 문화생활이 있던데 정말 공감하는 바다.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 그 다음은 문화 생활인 것 같다.

최근에 콘서트에 다녀와서 1년 내내 그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거웠고, 어제 가야 전시회를 보고 나서 가야에 관한 궁금증이 생겨 책을 찾아 보고 있다.

미술관에 다녀오고 나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게 분명하다.

미술관에 좀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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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Art Classic 10
유스투스 뮐러 호프스테데. 콘스탄티노 포르쿠 지음, 이지영 옮김 / 예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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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루벤스와 티치아노이다.

루벤스 역시 티치아노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명암 대비 기법을 시작한 대가라고 하면 카라바조가 대표적일텐데, 그림이 너무 어둡고 강렬해 밝은 분위기의 루벤스가 더 마음이 간다.

여신들 관능미나 그리는 타락한 화가라는 네티즌 평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그리는 위대한 화가가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퇴물 취급받는다는 게 속상했다.

그림의 본질이야말로 색채인데, 루벤스의 작품은 정말 화면에서 빛이 난다.

값비싼 물감들을 아낌없이 화폭에 쏟아 부었던 모양이다.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신체의 동작들을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지.

아무리 찬사를 거듭해도 부족한 느낌이다.

보통 이런 번역서들은 문체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역자가 번역을 참 잘해서 한 눈에 들어온다.

책의 저자 역시 현학적인 설명보다는 루벤스라는 화가의 생애와 넘치는 인간적 매력, 그리고 작품의 위대함에 대해 친절하고 알기 쉽게 묘사해 준다.

도판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미술전문 출판사라 역시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림의 위대함과 넘치는 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참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외교관으로서도 승승장구해 기사 작위도 받았고, 피카소처럼 사업적 재능도 뛰어나 공방을 운영하면서 부를 이룬다.

무엇보다 두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여자인 내 입장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첫번째 아내와도 매우 화목했고 그녀가 일찍 죽자 크게 상심하면서 애도했다.

두번째 결혼은 무척 파격적으로 50대의 나이에 16세의 헬레나 푸르망을 맞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조와 정순왕후의 국혼과 비슷한 경우랄까?

이렇게 어린 아내와도 사이가 무척 좋았는지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자녀를 다섯 명이나 낳는다.

또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 어린 신부를 미의 여신으로 화폭에 자주 등장시킨다.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부부관계가 아닐 수 없다.

말년에 통풍으로 오른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장갑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르누아르가 류마티즘으로 노년에는 손에 붓을 묶어서 그렸던 일화가 생각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와, 손을 쓸 수 없는 화가라니 인생은 정말 비극 그 자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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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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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까 봐 약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쓰여져 술술 넘기면서 금방 읽어버렸다.

6.25 당시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어찌 보면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던 화가들이 양쪽 정부에 동원되어 숙청당하고 고통을 겪었던 사정을 이야기한 책이다.

저자의 주관이나 평가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당시 화가들의 증언과 신문 기사 등을 주로 인용하여 한 편의 다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난을 간 화가들이 부산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거기서도 노숙을 하고 행상을 하면서도 변변한 화구 하나 없이 포기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 분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피지배인으로써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겨우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의 고통 속으로 빠진 셈이니 가장 불행한 세대가 아닐 수 없다.

외적의 침략도 아닌 내전으로 말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 정권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원흉에게,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 주체성을 살렸다는 오늘날의 일부 평가가 과연 가당키나 한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사는 이산가족의 슬픔도 화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중섭만 불우한 줄 알았더니 다들 힘든 세월을 보냈었던 모양이다.

근대화가들에 대한 전시회 도록들을 여러 번 봤더니 익숙한 이름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47p

부산 화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서울 화가들이 내려와 쉬지 않고 그룹전이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설쳐대는 모양으로 비춰졌던 것도 있었고 미국대사관이 서울에서 온 작가들의 그림을 사준 것이 심기를 상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김환기는 여러 모임에 주동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228p

김용환은 6.25 전쟁이 시작된 후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인민군에 의해 삐라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던 이력 때문에 9.28 수복 당시 다시 국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출중한 만화실력으로 인해 육군본부에 배속되어 대북 선전만화와 삐라의 원화를 그리는 일을 맡게 되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리다 뿐이겠소? 뭐든지 시키는 대로 그릴 테니 종이와 붓만 가져다 주시오. 내 앞에는 즉시 종이와 붓과 먹물이 준비되었고, 나는 곧 붓을 들었다. 만화 아이디어 걱정은 필요없었다. 지금까지 괴뢰군 사령부에서 그렸던 그림을 반대로만 즉, 이승만이 김일성을 압록강 저쪽으로 몰아내는 그림으로 바꿔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263p

당시 정훈 부장 이선근은 종군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이념 창조자라는 입장에서 파악했다. 문화인들의 작품을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과 전의를 고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종문의 경우 현대전에서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전전을 문화적 기술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하나의 전투수단으로 보았다. 곽종원은 '행동적 휴머니즘'을 내세우면서 경험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창작방법의 채용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소설가 김동리는 전쟁과 문학이 결부되면 전쟁은 문학의 한 소재에 불과하며 반대의 경우에는 문학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 또는 도구로서의 의의를 가진다고 정리한다. 나아가 전쟁에서는 이념이 매우 중대한 무기이며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정신적 무기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문학이나 그림이 전쟁의 한 도구가 된다면 예술로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공산주의 체제에서 예술이 몰락한 것도 이념의 수단으로 이용됐기 때문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예술지상주의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247p

이 중 무엇보다도 큰 종군화가단의 이점은 어려운 시기에 생계유지의 수단과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망 확보였다. 특히 월남한 예술가들의 경우 소위 '빨갱이' 또는 '간첩'으로 몰리면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땅에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종군화가단증뿐이었다.

 일부 젊은 작가들의 경우 군복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부수적 수입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권력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너나없이 종군화가단의 문을 두드렸다.

299p

그녀는 이 책에서 "한국에서 우리는 대비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의 대가보다 훨씬 쌀 것이다"라는 명문으로 많은 이들에게 승리를 독려했고 맥아더 장군과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미군이 파견될 것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해서 특종을 만들어냈다.

305p

2차 서울탈환은 희생을 최소화하며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공했는데 이것은 당시 중공군이 병참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의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 6.25 전쟁에서 예상보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중공군은 3월 11일 이미 서울에서 자진철수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으며 비교적 손쉬울 것이라 보았던 용문산지구 북한강 전투까지 육군 6사단에 대패한 것을 계기로 휴전회담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 승리로 인해 국군은 약체라는 이미지가 상쇄되었고 UN군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중부전선을 동서로 나누어 공격과 방어를 하고자 하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전술을 차단하면서 서울에 미칠 군사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이 승리가 중공군과 인민군 측이 우리 쪽에 휴전회담을 제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317p

한편으로는 작품을 제작한 김환기와 남관, 김병기 모두 이후 미국이나 프랑스로 떠난 것을 보면 이들이 작품의 해외전시를 빌미로 전쟁 중에 해외로 나갈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닌가 추측도 해본다.

343p

"불란서에서의 그것과 일본에서 유행된 그것은 퍽 장식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그런 장식적인 것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체험한 그것을 화면에 나타내되 휴머니즘을 무시하지 않고 사실적인 것 또한 무시하지 않은 추상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동양화란 원래가 추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암시적이지요. 말하자면 공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서양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공간에서 발달된 것입니다."

 한국 화단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는 새로운 미의 창조이며 새로운 미술이 추상임을 상정하였고 김병기는 '추상회화의 문제'를 통해 현대미술의 양식은 추상적 경향이라고 정의한 후 "원래 회화는 하나의 추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비형상 회화는 실제 세계와는 하등의 관련을 맺지 않는 것이며, 완전히 관념세계에의 탐구이며 형이하의 현상세계와 절연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352p

남북한의 정치가들에게 6.25 전쟁은 '전쟁'이라는 공포를 통해 적절하게 국민들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남북한이 공히 그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일부는 이런 상황이 남한에서만 존재했던 정치 상황인양 몰아가고 비판한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자면 남과 북이 끔찍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6.25 전쟁 기간 중 일어난 참혹했던 양민학살을 평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353p

일부 재주 좋은 작가들에게는 치열했던 전쟁이라는 특이한 삶의 조건은 실력가들에게 줄을 대고 화단정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기회였다. 그러나 이런 처세술조차 없었던 작가들은 광복동의 다방가에 모여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잊기 위한 목적으로 작품을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 앞에서도 그들은 순수주의와 자연주의를 노래했으며 용기있는 데카당한 실존의 흔적을 남기려 애쓰는 지사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일군의 작가들은 낭만주의, 퇴폐주의에 빠져들어 기인적인 삶을 통해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야 어찌되었던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들이 이러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 또는 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의와 편의를 얻었던, 예술가들을 사회가 존경하고 예우하던 유일한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분만으로 보호의 대상이 되었으며 하다못해 배급에서도 우선권이 주어졌다. 종군작가라는 이름으로 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종군화가단에 들어가서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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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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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가 참 예쁜 책이다.

과학적인 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인문학적인 꽃이 궁금했다.
인간은 왜 원예를 하게 되었나, 원예의 역사, 원예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 뭐 이런 것들?
앞부분의 꽃이라는 식물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어렵기도 하고 약간 지루해서 많이 건너 뛰었고 뒷쪽의 꽃 재배에 관한 이야기부터 흥미롭게 읽었다.
간단히 말해 꽃이 피는 이유는 스스로 종족번식을 못하기 때문에 수분을 매개해 줄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꿀은 벌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꽃가루에 단백질이 풍부해 박쥐나 곤충, 새들도 꽃에서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꽃가루가가 다리에 묻어 수분을 시킨다고 한다.
꽃에 영양가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꽃은 보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금방 시들어 버려서 꽃꽃이를 못하겠다.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할까?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있어 왔고 품종 개량을 통해 현대의 원예 산업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꽃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안면도에서 열리는 꽃 박람회에 다녀온 후 그 아름다움에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예술적 성향은 정말로 오래된 본능인 듯하다.
가지에서 꽃이 꺾였는데도 수일에 걸쳐 외국에서 배송돼서 소비자의 집까지 배달되는데도 여전히 싱싱한 걸 보면 오히려 꽃의 생명력이 길다고 해야 할까.
유전자조작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들이 많은데 사실 품종개량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됐고 저자에 따르면 자연에서도 무수한 변종들이 일어나 진화홰 왔다고 한다.


<인상깊은 구절>

112p

우리는 필요나 호기심 때문에, 그리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가꾸려는 천성에 따라 식물육종의 경우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는 권능으로 수분을 매개하고 있다. 7000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나라들에서 대추야자로부터 시작되고 곡물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농작물의 꽃과 관련된 우리의 '뚜쟁이' 재능은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으며, 씨를 비축하는 농부들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118p

농경문화권 중에도 집단 전체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유원지를 만들지 않는 사회가 있다. 이 부족들은 아마도 하루 5000 칼로리나 먹었을 것이다. 오늘날 '이상적인' 섭취로 생각되는 하루 2000 칼로리를 소비하는 것은 대체로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는 사회-흉포한 대형 동물을 쫓아가 죽이는 등의 행위가 없는-가 바탕이 돼 있다. 사람들은 잘 먹고 곳간 가득한 경우가 아니면 아름답지만 불필요한 사치품(꽃)에 한정된 농경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비옥한 땅은 분재에 낭비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었다.

125p

아시아의 정원은 서양문명의 정원에 비해 사색적이며, 크고 두드러지는 꽃에 덜 의지해 꽃이나 열매가 없는 속씨식물도 아름답게 여기며 잎이나 줄기도 똑같이 관상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꽃이 피지 않는 요소를 활용한다는 것은 특히 장식적인 암석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알 수 있다.

 란쑤 정원은 그 당시 한 부유한 가정의 정신적 이상향을 보여준다. 세부적인 데까지 능숙하게 설계된 이런 위안처가 있음으로써 가족은 일상생활의 근심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145p

현대에 들어서는 디자인이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많은 정원에서 원예 전문가를 다수 고용할 여력이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이다. 또한 자신의 토지를 관리할 수 없는 '노인'을 위해 돈을 받고 잔디를 깎거나 가지치기를 해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일벌레나 사커맘 등 집이나 정원을 비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

166p

20세기 장의사산업에 방부처리가 자리하기 전까지는 향기 짙은 흰 백합이나 오리엔탈백합을 교배한 잡종꽃들로 만든 화환과 부케가 시신의 부패로 인한 냄새를 가려주었다.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꽃이 환기장치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빅토리아시대의 장례행렬은 장엄하면서 고비용의 사교행사였다. 

182p

최근까지 도시 거주자들에게 꽃은 대체로 사치스럽고 값비싼 물품이었다. 수명이 짧고 연약해 며칠씩 장거리 운송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꽃은 식품처럼 소중하게 여겨지지는 않아도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즐겁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연과 생활환경에 부가가치를 더한다.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절화용 꽃재배나 실내장식용으로 화단에서 재배하는 일은 부유한 상인이나 왕족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192p

식물육종 기법에 대체로 무지한 대중들은 좋은 취지의 환경단체들이 우리의 식품공급에 표명하는 우려에 겁을 먹는. 오늘날 가공식품 회사들은 공개토론, 가두집회, 과격한 항의 등이 불러일으킨 유전자조작생물과 관련된 악령을 자신들의 가공식품이나 상표에서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사람이 식물의 유전체를 바꾸기 위해 새로운 방법(유전자조작생물이나 유전자총)과 과거의 방법(이종교해만 꽃의 잡종이나 돌연변이를 이용한 육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은 정원용 화초의 잡종을 만든 루서 버뱅크에 대해 목사가 반대하면서 혐오감을 표명했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196p

푸른색 꽃은 자연 속에 그리 흔하지 않으며, 대부분 정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푸른색 때문에 제비고깔, 물망초, 제라늄, 초롱꽃, 나팔꽃 등이 마당에 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200p

꽃집이나 묘목원에서 구입한 꽃들은 수분매개동물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주는지를 확인하는 게 어렵다. 인기 높은 여러 변종들은 향기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절화수명을 늘리고자 품종을 개량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향기인 경우가 많다. 향기분자를 만들어내려면 물질대사 측면에서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향기가 전혀 없거나 적은 꽃이 식물이든 절화든간에 더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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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 큐레이터 캐서린 쿠가 사랑한 20세기 미술의 영웅들
캐서린 쿠 지음, 에이비스 버먼 엮음, 김영준 옮김 / 아트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4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라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예술가 개인에 포커스를 맞춘 책이라 그런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번역도 비교적 매끄럽고 본격적인 미학서가 아니라 그런지 훨씬 쉽게 다가온다.

사실 가까이서 예술가들을 바라본 저자의 가벼운 인상평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정말 수준높고 밀도있는 평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맨 앞부분에 자서전을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저자를 위해 그를 가까이서 본 후배가 그녀의 일생을 정리해 준 부분이 아주 매력적이다.

본인이 다 완성했다면 자신에 대한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전부 뺏을 것이다.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장애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거의 안 나온다.

어설픈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도 없고 정말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잘 아는 분야인 현대 미술이 온전히 예술계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최우선시 했던 듯하다.

예술가의 성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16년 동안 큐레이터로 일했던 시카고 미술관 관장과의 부적절한 사이에 대한 후배의 조심스러운 언급은 꽤나 흥미로웠다.

애 딸린 이혼남 사업가와 결혼했으나 당연히 이렇게 야망이 넘치는 여인이 얌전하게 집안에서 현모양처로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정적인 사람이 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고백이 내 심리상태와 비슷해서 그런지 너무나 와닿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도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고 어찌 보면 너무나 겸손한 느낌마저 주는 저자의 문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렇게나 인터뷰이를 잘 이해하고 그가 가진 사상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서도 날카로운 비평을 가하는 평전을 근래에 잘 못 본 것 같다.

다시금 느낀 바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사회와 내적인 인정의 욕구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최고가 되기 위한 강렬한 욕망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일, 불멸의 명성을 얻은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단순히 그들의 엄청난 재능에만 놀라는 게 아니라,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그 강렬한 욕망과 의지, 창작욕 같은 심리 상태에 훨씬 더 감동을 받았다.

저자가 이런 부분을 참 잘 묘사하고 있다.

은둔형 예술가도 있고 사회적 명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도 있고 참 인간의 특성은 다양한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강렬한 감동과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또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모두 다 특별하고 위대하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평전을 읽어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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