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에드워드호퍼 전시 도록, 서울시립미술관) - From City to Coast
서울시립미술관 지음 / 서울시립미술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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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봤던 전시회 도록이다.

그 때만 해도 출간이 안 돼서 구입을 못했고 책바다를 통해 빌려 볼 수 있었다.

전시 도록은 비싸기도 해서 도서관에서 구입해 주면 좋을텐데 소장된 곳이 드물어 아쉽다.

훼손 문제 때문인지 대출도 대부분 제한되어 있어 빌려 읽기가 참 어렵다.

다행히 이 책은 책바다 통해서 딱 한 곳의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었다.

사실 실제 전시회에 가서는 기대만큼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아주 유명한 작품이 없어서 그랬나?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이나 문화재는 훌륭한 작품들을 언제라도 바로 가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봤던 장욱진 회고전은 작품 규모도 엄청나고 대표작들이 전부 망라돼서 보는 내내 감탄했던 것에 비해, 기대했던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는 밋밋했던 느낌이다.

그래도 이 화가의 일생과 미학관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책이나 전시회든 안 보는 것보다는 보는 게 항상 낫다.

도시인의 쓸쓸한 감성을 그림으로 잘 표현해 주는 듯하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현대인의 고독함을 그림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연에서 역시 쓸쓸한 감성이 느껴진다.

호퍼 역시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단순히 정신적인 안정이나 영감 같은 것 외에도 내성적인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통해 남편의 작품들을 관리했던 것.

역시 위대한 예술가의 뒤에는 헌신적인 배우자가 있는 모양이다.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작품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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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지음 / 국립현대미술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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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가 본 덕수궁 미술관.

멀어서 가기 힘들었는데 관심 있던 화가의 회고전이 열린다고 해서 특별히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투숙까지 하면서 보고 온 전시회다.

전시회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장욱진이라는 화가가 이렇게 세련된 모더니스트였나 새삼 느꼈다.

소재는 매우 한국적이고 어찌 보면 점잖은 조선 시대 문인화가 같기도 한데 색감이 너무나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사실 작은 도판으로 볼 때는 왜 장욱진이 모더니즘 화가로 분류되는지도 잘 몰랐는데 실제로 가서 많은 작품들을 보고 나니 과연 김환기나 유영국 같은 추상주의 화가들과 같이 동인회를 꾸렸던 게 이해가 된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이외수씨 같은 시골 사람 같은 느낌인데, 그림의 구성이나 색채가 너무 너무 세련됐고 현대적인 감수성이 확 느껴진다.

도록이 비싸서 못 사고 책바다에서 신청해서 봤는데 도판이 실제 작품의 매력을 절반도 못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생활이 곧 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예술이 일상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했던 치열한 작가 정신이 이해된다.

요즘 트렌드, 이를테면 반미학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했던 그 미학관에 공감한다.

이중섭 그림을 보면 항상 가족이 주인공인데 장욱진 역시 따뜻한 가족애가 그림에 잘 녹아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신실한 불교 신자인 부인에 대한 애정어린 선묘화도 많아 역시 훌륭한 예술가의 뒤에는 사랑하는 배우자의 헌신이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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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인문학
박경준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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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분량에 비하면 내용은 평이하다.

11편의 유명 오페라가 소개되었는데 아무래도 부족하고 다른 책을 더 참조해야겠다.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하니 모르는 부분도 많아 빨리 넘어가지지 않았고 특히 바그너 오페라는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꽤 지루했다.

오페라의 유명 아리아들은 음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감동이 느껴지는데 솔직히 오페라 전편은 몰입이 안 되고 너무 지루하다.

오페라를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영화관에서 오페라 몇 편을 관람하기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코지 판 투테를 볼 때는 나랑 어떤 남자 딱 두 사람만 영화관에 있었다) 감동을 받은 작품은 정말 한 편도 없어서 아쉽다.

16세기 말부터 시작한 음악극 형식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간의 목소리가 가지는 힘은 어떤 악기 못지 않게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다.

유럽은 오페라가 주류 예술이라 그런지 대본의 내용을 검열하는 문제로 논쟁이 많았던 듯하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왜 늘 주인공이 죽나 싶었는데 원래 예술을 종교처럼 추앙하고 완벽한 사랑은 현실에서는 훼손되기 쉽기 때문에 죽음으로 완성한다는 역설이 들어있다고 한다.

악극이라는 형식이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음악과 연극을 결합한 것으로 오페라가 아리아에 종속되지 않고 한 편의 드라마, 즉 완벽한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오페라의 대본은 주로 희곡에서 나온다는 점도 흥미롭다.

사실 나는 오페라가 음악을 듣기 위해 줄거리는 대충 갖다 붙이는 줄 알고 있었다.

이러니 제대로 감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나 보다.

가벼운 오페레타는 춤이 가미된 뮤지컬로 발전했다고 한다.

서양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라 그런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불붙게 만든 사랑의 묘약이라는 소재가 공감이 안 됐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랑의 묘약은 사랑이 갖고 있는 열정,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격정어린 감정이라는 것이다.

약을 먹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면 이성을 잃고 상대에게 올인하게 되니 과연 옛날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약을 먹어서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됐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오류>

267p

바그너의 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의붓아버지는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다.

-> 여섯 살이 아닌 바그너가 6개월 때 죽었다.

438p

영화에 푸치니의 사생 딸이라고 밝힌 나디아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 나디아는 푸치니의 사생 딸이 아니라 손녀이다.

457p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33

-> 1813-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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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발레 HK 러시아ㆍ유라시아 연구시리즈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사업단 지음 / 뿌쉬낀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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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큰 맘 먹고 마린스키 극장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관람했다.

예매하기도 어려워 큰 기대를 갖고 갔건만 쉬는 시간에 나와 버리고 말았다.

아, 정말 어쩌면 그렇게도 지루할까.

좋은 좌석에 앉아서 꽤 가까이 봤음에도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감동이 없었다.

뉴욕에 갔을 때도 오페라는 물론 뮤지컬도 전부 졸아 버렸던지라 역시 난 공연 예술은 안 되는구나 체념하게 됐다.

하긴 생각해 보니 영화 보면서도 조금만 지루하면 바로 자버리긴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표지도 너무 아름답지만 아빠가 발레에 관심이 생겨 자주 얘기했기 때문이다.

동호회에서 같이 발레 영상을 감상하고 해설을 듣는다는데 너무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이다.

비록 감상은 어렵지만 도대체 발레란 어떤 예술인가, 특히 러시아 발레의 특성은 뭘까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됐다.

사실 이 책도 모르는 내용이 많아 지루하긴 했다.

다만 발레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넘어와 러시아에서 꽃피우게 된 과정, 그리고 21세기에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활발하게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러시아 발레의 강점은 흥미롭게 읽었다.

발레는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인상적이다.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대화!

거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입혀지고 무대 예술까지 곁들어지면 확실히 종합예술이 되는 듯하다.

발레의 안무는 직접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만든다는 점도 특이했다.

형식이 있는 고전 발레만 있는 게 아니라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현대 발레도 많이 창작되고 있다니 한 번 관람해 보고 싶다.

안무를 바꿔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같은 내용을 다양한 버전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을 듯 하다.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국가의 지원이 있어야 유지하는 예술 장르가 아니고, 관객들의 관람료로 자생할 수 있는 현대성이 더욱 마음에 든다.

소련으로 바뀐 후 사실성을 중시하여 환상적인 요소를 전부 삭제시키는 등 예술의 침체가 있었으나 그 안에서도 계속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러시아 발레의 저력이 대단하다.


<인상깊은 구절>

132p

<불새>의 유례없는 성공은 비단 전통의 가공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았다. <불새>의 '러시아적인 것'은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재창조된 러시아성이었다. 댜길레프는 "유럽화된 러시아 예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세련되고 코스모폴리탄적인 고급 취향으로 바꾸는데 적극적이었다." 즉, <불새>의 러시아성은 러시아의 토속성 자체가 아니라 "세련되게 수정된 민족성"이었다. '러시아적'인 발레 <불새>의 성공은 유럽적 형식을 발레뤼스가 완벽히 구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류>

131p

러시아의 고대 국가 키예프 루스가 9세기 후반 기독교를 수용한 이래

-> 러시아가 기독교를 수용한 해는 989년이므로 10세기 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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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mos 2022-09-2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88년은 키에프 루시 공국이 정교회 신앙을 국가신앙으로 공인한 해입니다. 기독교가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9세기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래와 국가 공인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오해로 보입니다.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야기
하응백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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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빌리게 됐다.

따로 메모해 둔 책이 아니라 이번에 안 빌리면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항상 신간을 먼저 빌리다 보니, 기존 리스트에 있던 책들이 계속 밀리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책만 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은퇴 후의 삶이 기다려지면서도 정작 눈이 나빠져 원만큼 못 읽게 될까 봐 제일 무섭다.

남들은 퇴직 후 돈 걱정을 제일 많이 하던데 나는 시력이 진심으로 가장 큰 걱정이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하필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한동안 앞이 안 보이게 됐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빠는, 당시에 자살 사고가 너무 커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절망감과 공포가 진심 이해가 된다.

벌써 40대 후반에 들어서는데 매일 열심히 읽어야지 하는데도 사실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양만큼 읽지를 못한다.


이번 책은 국악에 관한 책인데, 듣는 것에 약해서인지 사실 음악, 그것도 국악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기악곡이 아닌 노랫말이 있는 민요 등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사용되던 한자나 사투리가 많고,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노래의 가사를 읽어서인지 해설을 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직관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전통적인 우리 노랫가락들이라 그런지 저자의 해설을 찬찬히 읽어 보면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아 흥미롭다.

책에서 배우던 시조들, 이를테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라든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이런 시조들이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려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과연 지식인 양반들이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우아하게 한 자락씩 뽑았을 법한 가락들이다.

이런 양반문학들이 기층으로 내려와 하층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애환과 합해져 민요가 됐다고 한다.

요즘은 민요나 국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는 듯하여 쉽게 즐길 수 없어 아쉽다.

판소리는 지루한 줄만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무슨 수련회에서 춘향전의 사랑가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의외로 너무 재밌어 다른 건 몰라도 춘향전은 그 후로도 몇 번 찾아서 들어봤다.

확실히 문화가 살아 있으려면 현재의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형식으로 발전해야 하는 모양이다.


<인상깊은 구절>

208p

우리 국악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그 주제가 대부분은 전통사회의 윤리의식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한 낭군에 대한 지고지순한 여인의 기다림이 대부분이다. 판소리 <춘향가>가 이를 대표한다. 기다리던 여인이 남자를 배반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 덕목을 기본으로 판을 짜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에서 충과 효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적 질서 체계를 뒤흔들만한 혁명적 내용을 담기는 어려웠다. 당시의 의식적, 무의식적 검열체계가 엄격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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