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산책
왕야오팅 지음, 오영삼 옮김 / 아름나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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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산 책은 안 읽게 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 기한 때문에 강제 독서가 되는데 구입한 책은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인지 항상 책꽂이에 꽂혀만 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 못 간 기념으로 집에 있는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구입한지 몇 년 된 것 같다.

알라딘에서만 보고 소장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구입했는데 막상 받아 보니 의외로 분량이 작아 약간 실망했었다.

200 페이지 정도로 얇은데 대신 도판이 아주 훌륭하다.

저자가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서 근무하는 학예사인 것 같은데 본문에서 밝힌 바대로 요즘은 도판 기술이 아주 좋아져 중국 회화를 책으로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번역도 매끄럽고 중국회화사를 지루하지 않게 작품에 초점을 맞춰 이론과 감상 포인트를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제목만 좀더 임팩트 있게 바꾸면 훨씬 많이 팔릴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중국회화는 간단히 말해 입체감과 색채를 추구한 서양화와는 달리, 선묘 중심의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다.

서양화가 그림 그 자체만으로 예술의 한 분야가 됐던 반면, 중국화는 문인화라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주를 이루면서 시서화가 하나로 묶어져 순수회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당대 이전까지는 중국도 평면적이긴 해도 색채화 위주였다고 한다.

그 후 문인화가 발전하면서 그림에 시와 글씨를 곁들이면서 일종의 높은 인격적 경지를 표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단색의 선묘를 추구하는 수묵화가 발전하게 됐다.

단순히 안료의 발전이 더디기 때문인가 했는데 추구하는 예술의 경지가 달랐던 셈이다.

한자가 궁극적으로는 상형문자이므로 회화적 요소가 강해 그림과 결합하여 독특한 형식이 만들어진 것 같다.

동양화의 산수화라고 하면 실경 보다는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그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옛 화가들은 자연 환경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천 년 전에 그려진 송대의 황산과 오늘날 실제 사진을 보면 아 바로 여기를 그렸구나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황하에 있었던 북송의 산수화와 강남으로 이주한 후 남송의 산수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화가로도 유명한 송의 휘종은 전문 화원을 설립해 전문적인 그림 교육 뿐 아니라 이론의 배경이 되는 유교 경전도 학습시켰으며 화원들의 대우도 훌륭해서 좋은 화가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역시 기술만 가지고는 안 되고 이론적인 무장과 사회적 대우가 함께 이루어져야 격이 높아지는 것 같다.

필요에 의한 공예품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예술로 발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대에는 한인들의 정치 참여가 금지되자 예술로써 응어리를 풀다 보니 문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명과 청의 회화는 단순한 아마추어적 문인화를 넘어서 서양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채색이나 입체감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세련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양주팔괴의 개성있고 화려한 그림들도 과연 이래서 怪 라고 표현했구나 수긍이 갈 정도로 기존의 문인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회화라고 하면 당연히 서양화가 먼저 떠오르는데 중국 전통 회화의 발전 과정도 정말 흥미롭고 천 년 전의 송대 그림이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과연 대단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명의 나라구나 싶다.


<오류>

61p

오대 양의 원제가 쓴 <산수송석격>에는 

-> 양나라 원제 소역은 오대가 아니라 남북조 시대 사람이다.

126p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1121~255) 청동기의 디자인이나 장식문양에는

->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221년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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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미술 -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휘트니미술관 기획, 리사 필립스 외 지음, 송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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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익하고 재밌으면서도 어려웠다.

책에 등장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을 다 몰라서 한 번에 직관적으로 확 와 닿지가 않았다.

특히 무용이나 연극, 영화, 소설 쪽은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라 이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큰 감흥이 없어 아쉽다.

그럼에도 본문에 나온 작품들이 거의 다 실려 있고 1차 대전 이후 현대 미술을 주도해 온 미국 미술의 방향성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어 전체적인 개념을 잡는데 아주 유익했다.

읽다 보니 오래 전에 읽었던 <The American Century>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새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 판권을 마로니에북스에서 다시 사서 재출간한 모양이다.

역자도 똑같아 약간 황당했다.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원동력은 맨 마지막에 나온대로 다양성, 다원주의에 있는 것 같다.

여러 미술 사조들을 거치면서 현대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주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수용해 왔다.

그 범위를 넓혀 이제는 인종, 젠더, 민족, 계층 등 모든 영역을 다 받아들이고 이런 개방성이야말로 미국 미술을 현대 예술의 선두주자로 만드는 힘인 것 같다.

여러 다양한 출신들이 모여서 세운 나라니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다양함을 수용하여 강점으로 활용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자유주의 정치 체제에 다시금 놀라는 바다.

지금도 팝아트나 사진의 2차 복제 등에 대해서는 독창성 면에서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아트 대중에서 일반 대중으로 관람객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자본주의 소비문화, 저널리즘 등과 떼놓을 수 없는 분야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비디오아트는 물론 직접 영화까지 예술가들이 만들 수 있고 인터넷 등을 통해 보다 널리 알릴 토양이 있으니 과연 현대 미술은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전복시켜 왔고 지금도 앞으로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번역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아니면 원래 현대 미학이 난해해서인가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20세기 후반 현대 미술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고 도판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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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 일제강점기 한일미술교류
황정수 지음 / 이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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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페이지에 달하는 너무 두꺼운 분량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던 책이다.

그런데 염려와는 다르게 술술 잘 넘어가서 생각보다 빨리 읽었고 내용도 흥미롭다.

저자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함몰되지 않고 근대화 시기, 특히 일제강점기 때 서양의 화법이 어떻게 한국에 이식됐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무엇보다 제국주의 정책과는 사실 큰 관련이 없었을 일본 예술가들의 역할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해 줘서 읽기가 편했다.

정치인이 문제지 예술가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 화단에서 촉망받는 인재들이었으나 정부의 정책상 조선으로 건너와 오랫동안 주류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자신의 꿈을 제대로 못 펼친, 어찌보면 불운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일본 역시 서양화를 받아들인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일본에서도 상당히 엘리트 계층이었고 이런 인재들이 조선의 근대 교육 시작 시점에 투입되어 우리 화단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 유망주들을 교육시켰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일본인 화가들 밑에서 회화의 꿈을 키운 조선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가 배우는 시스템이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은 서양, 특히 프랑스 유학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는데 조선인으로서는 도쿄미술대학 입학이 가장 큰 목표였다.

책에서 화가들의 약력을 들을 때 그 학교 나왔나 보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당시에도 도쿄미술대학 입학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징용이 면제됐기 때문에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근대의 화가들은 조선시대 중인 계층이 아니라 사회의 엘리트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김환기의 부인이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에 일본풍은 없다는 인터뷰에 대해 김영나씨의 책에서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던 부분이 이해가 간다.

근대 회화 자체가 일본의 교육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대학 교육을 받았는데 어떻게 영향이 없겠는가.

그리고 문화의 교류와 영향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일본 화가의 이름이 지워져 누가 그린 것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조선 화가 이름으로 둔갑하기까지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할 수 있어도 예술은 만국 공통의 보편적인 눈으로 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면에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이 책이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인 제자들에 대한 일본 선생들의 헌신과 애틋한 정이 눈물겹다.

야나기 무네요시만 한국의 미를 사랑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도판도 전부 컬러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확실히 산수화도 일본의 신남화는 색채감과 서양의 원근법이나 비례감이 더해져 우리 정서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서양화의 수채화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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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술명품 - 양장본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솔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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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드디어 빌리게 됐다.

2002년도에 한일월드컵 기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모양이다.

도록이 도서관에 있어서 읽을 수 있었다.

책 판형도 크고 두꺼워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도판 위주라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일본 여행 갔을 때 교토와 도쿄의 국립박물관을 갔는데 일본 문화를 잘 모르고 한글 설명도 많지 않아 이런 문화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감상이 어려워 아쉬웠다.

이 도록을 봐도 자세한 양식 같은 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본 전통문화의 미의식이라던가 공예 제품, 회화 등이 갖는 독특한 개성과 미적 완성도는 약간은 이해가 간다.

일본 문화라고 하면 인상파에게 영향을 미쳤던 우키요에만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주 최근의 에도 시대 목판화이고 수천 년에 걸친 전통 문화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조몬 토기는 우리나라 빗살무늬 토기와는 아주 다른 미감이라 신기했다.

또 서구 조각과는 다르게 목조각 전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부처처럼 숭배의 대상이 아닌 이상 인물상을 조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나무로 아주 사실적인 인물 조각이 많아 신기하다. 



<인상깊은 구절>

26p

이상과 같이 아스카, 나라 시대에는 불교미술이 중심이었으며, 그 추진력이 된 것은 다수의 도래인들이었다. 또한 일본이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 문화의 소화, 흡수에 노력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4p

그리스 미술 이래 인체에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여왔던 서양예술과는 달리 인체미에 무관심하였던 것은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경향일지도 모른다. 서양에서는 상징주의가 발달하여 추상적인 개념을 선호하여 희화화시켰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과 같은 표현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공통된 경향이다. 조몬 시대에 대담한 여성표현을 담은 일본미술은 대륙 문화의 유입 이래 여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 하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 미술의 주니히토에의 장미나, 허리에까지 닿을 만큼 길고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애호하였던 감각은 에도 우키요에에서 머리 형태나 옷의 문양 및 질감에 강하게 구애되었던 것과 같은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티치아노와 부셰와는 전혀 다른 여성미의 탐구가 이루어진 듯하다.

 또한 모모야마 시대 장벽화에서의 거목과 화면 가득히 표현된 파도 등, 자연의 일부만을 크게 잡아내어 작품을 구성하는 표현도 일본미술의 독자적인 특징이다. 모모야마 시대의 칠공예와 에도 시대의 린파 등도 같은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브뤼겔이나 바르비종파는 물론, 중국이나 한국의 산수화가들과도 전혀 다른 조형 감각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파조의 미'라고 하는 용어이다. 일본인은 대칭성과 균일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화면에 모티프를 질서정연하게 늘어놓는 것보다는 의식적으로 좌우 어느 쪽에 모티프를 집중시켜 화면에 조밀의 차를 확연하게 하고 많은 여백을 남기기도 한다. 채색과 먹의 농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화면의 균형을 깨는 모험, 즉 최소의 균형을 유지할 정도의 곡예적인 화면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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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 카프카에서 스메타나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2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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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차고 재밌다.

기자들이 쓴 책은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가급적 안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정말 괜찮다.

문장력도 좋고 무엇보다 자기가 쓰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카프카나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나 밀란 쿤데라, 바츨라프 하벨 등은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됐다.

하벨의 경우는 체코 현대사까지 덤으로 알 수 있었다.

<프라하의 봄>은 영화로 먼저 접했고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내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노벨상에 추천되는 작가라 그런가 줄거리 중심으로 읽는 나 같은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다만 저자의 소설론에는 많이 공감했다.

자전적 소설을 지양하고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닌 실존적 고민을 하는 또다른 실험적 존재라는 것.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고 작가와 주인공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어떤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체코의 현실을 외면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비난하는 투의 글을 읽은 적 있는데 시대참여 정신과 예술로서의 소설은 별개의 문제 같다.

문화예술 전통이 거의 없는 한국과는 확실히 서구 문화권은 다른 것 같다.


<오류>

121p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삶을 살았던 그는 예테보리에 살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60년대에 들어 조국 체코의 상황은 급변했다. 스메타나는 1961년 3월 31일자 일기에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 1960년이 아니라 186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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