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앤디 튜이 그림, 정윤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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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작가도 그렇지만 세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돠면서 생기는 고충 중의 하나가 작가와 작품을 고르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 있고 알려진 책과 알려지지 않은 책 사이에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는지 알 턱이 없다. 다행히도 영화를 비롯하여 드라마와 같은 다른 문화에 비해, 독서계는 영어권만이 크게 우세를 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비교적 다양한 문화권의 문학과 서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읽을 건가를 선택하는 것은 독자 본인의 몫이며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은 본인의 정보력이 결정한다. 


어차피 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가급적 나는 의미 있는 책들을 읽고 싶다 .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책이고 무엇이 의미있는 것일까. 세계에는 책에 관한한 수많은 권위 있는 목록들이 존재하고 그런 목록 속에는 고전을 포함해 우리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많은 작품들이 있다. (대형 매체 ㅇㅇㅇ, 혹은 하버드 서울대 등등)이 뽑은 백권 목록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조금 더 친절한 방식으로 문학 작가 혹은 유명인이 감명깊게 읽은 책들울 주제로 책으로 엮은 것들이 있다. 

이 책은 AtoZ위대한 현대 ㅇㅇㅇ들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곳에서 현대 문학작가들에 대해 같은 포맷으로 52인을 엄선하여 차별화했다.  시리즈 일러스트레이터 앤디 뉴이가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이 차지하는 분량이 3/4 정도이어서 실제 텍스트는 매우 간략하다. 작가 한사람당 4페이지 정도에 1쪽 전면에는 작가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그린 그림이 나머지 는 작가의 책 초판본 등의 표지와 여러 기록 사진들이 쪼개 실려 있어 텍스트의 양은 한페이지 정도다.

사실 아직 읽지 않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너무 깊이 들어가게 되면 먼소리인지 모르거나 또 친절한 책일 경우 내용 유출이 심해 읽는 재미를 뺏어갈 우려가 있는 점을 상기할 때 단순히 작품 선택을 위한 목록과 간략한 정보만을 원하눈 경우에는 안성맞춤의 택이라 할 것이다. 다만 작가의 얼굴보다는 작가의 작품에 더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얼굴 일러스트라는 게 가 크게 의미가 와 닿지 않는 점이 있다. 

이렇게 포맷과 분량이 정해져 있는 책을 기획하고 작가 목록과 정리를 맡은 텍스트 작가는 서문에 52명을 고르는 것보다 528명을 고르는 게 훨씬 쉬웠을 거라며 선택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선 서구 문화권에 편중되지 않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시아 동구권 작가들을 골고루 소개하고 영미 작가들의 경우에도 인종을 초월해서 고르게 분배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였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과 생전 처음 듣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최근 몇년간 하나씩 읽은 작가들의 작품도 꽤나 많아서 뿌듯했다. 짧게 작가의 삶과 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해당 작가의 대표작 네 개 정도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추천하는데 그 짧은 자면에 그토록 압축적이게 작가와 죽품들의 핵심 정보를 전달하는게 보통 내공이 아니었울 성 싶다 단 두세줄에 묘사하는 작품둘이지만 그 두세줄에 홀리듯 책을 주문해버리는 케이스가 줄줄이다.

현대 작가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어디 적혀있는 건 아닐테지만 대부분이 생존하는 작가이며 20세기 초반부터 작품활동을 해왔는데 이 중 가장 나아가 많은 작가는 1871년에 태어난 마르셀 푸르스트이고 가장 젊은 작가는 가즈오 이시구로로 1954년생이다. 다시 정리하면 쉽게 쓰여젔고 현대 작가들이 개략적인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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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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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같은 느낌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운영하던 사진관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과거와 비밀을 밝히고 결말을 맺는 방식이 한 아이의 성장담처럼 읽혔다. 한 장의 사진이 한 개인의 인생을 망처놓고,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 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작별을 준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최초의 사진이 그토록 빠르게 인터넷에 유포될 지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진작가가 되고자 했던 본인 역시 다시는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사진관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가게에조차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니시우라 사진관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작가인 엄마는 딸에게 유품 정리를 맡기고 나몰라라 한다. 작은 섬에 위치한 니시우라 서점은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들르던 곳이다. 유품 정리중 미수령 사진들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전달하는중 의문의 사진 몇 장을 발견하는데, 이 사진에 얽힌 한 가족의 진실을 캐는 내용이다. 


유품 정리중 마유는 두 개의 진실과 맞닥뜨린다. 하나는 미수령 사진 속 가족의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이고, 또 하나는 한 때의 실수로 사진을 그만두게 된 자신의 과거다. 미수령 사진 속 가족의 미스터리는 흥미롭긴 했지만 치매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사고를 당한 아들의 얼굴을 할아버지의 얼굴과 똑같이 만들었다는 설정이 일본풍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자기 자신의 얼굴을 찾겠다며 잘생기고 호감이 가는 그 얼굴을 다시 원래대로의 평범한 얼굴로 또다시 성형수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한 결말 역시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이다.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어머니의 그늘에서 크게 인정받지 않았던 어릴적 자신이 할머니에게서 사진을 배우고 우연한 기회에 찍은 소년 루이의 사진이 엄마의 책표지로 채택되자 이를 계기로 루이가 배우로 발탁되고 그의 사진을 독점하면서 자신감을 찾았으나 이후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게 된 과정이 마유의 비밀이다.  그녀는 사진을 포기하고 경리일을 하면서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은 채 원래의 소극적이고 조용한 인물로 되돌아와 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미수령 사진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마유는 지금은 작가가 된, 루이의 사진을 유출했다고 의심했던 한 선배가 할머니의 집에서 한동안 살면서 일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진 유출 사건 후 은퇴하고 자취를 감추었던 루이의 흔적 또한 미시우라 사진관에서 발견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잊고 살았던 그 4년동안의 시간, 자신에게 공백같았던 섬에서의 시간들을 발견한다.


생각보다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미스테리와 성장소설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사건을 캐는 당사자가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도 대면하게 되는 시간들을 잘 풀어나간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교훈적인 듯한 일본 대중 소설 특유의 감각은 어쩔 수 없이 취향에 잘 안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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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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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정신은 양분될 수 없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이 정신을 관장하는 것과 같은 기관에서 이루어지므로, 정신의 모든 작용이 끝나면 육체 역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시몽의 심장이 뛴 이유는 시몽의 심장을 관장하는 뇌가 시몽의 다른 모든 정신적 조건들과 소통하며 심장의 박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뇌가 정신을 처리하지 못할 때, 뇌는 육체의 기관인 심장을 처리하지 못하고, 심장이 스스로의 몸에서 내는 에너지와 호르몬과 화학작용으로 뛰지 못할 때, 그 심장은 이미 죽은 자(뇌사자)의 통제하에서 벗어났으므로, 시몽의 것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누가?)


불과 몇시간 전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도 소식을 듣고 백킬로미터를 달려 집채만한 파도를 넘나들던 활력 넘치는 시몽이 돌아오던 길 교통 사고로 죽어가고 있을 때,  아직도 푸른 파도를 향해 달려들던 그 쫄깃한 심장이 쿵쿵거리고 뛰고 있지만, 뇌가 더이상 기능하지 않아 뇌사 판정이 나자,  그 생명의 중지로 인해 반대로 꺼져가던 생명에 희망이 되는 사람이 있다. 뇌는 멀쩡한데 신체에 이상이 생긴 가람이다. 치명적인 장기 기능 장애로 기증 말고는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기증자가 생겨야 삶이 지속된다. 


장기 기증자는 스스로가 죽어야 기증할 수 있고, 죽은 자는 기증할 수 없으므로 장기 기증이라는 말은 상호 모순이다. 수혜자는 타인의 죽음으로 꺼져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삶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그것도 뇌사 판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급작스러운 비극적인 죽음, 사고를 원한다는 것에 도달한다. 심장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죽기를 원하며 자연사가 아닌, 죽기 전에 신체 기관들이 곱게 보존되어 있을 수 있는 상태의 충격적 죽음이어야 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기증자의 가족이다. 잠자듯 누워있는 아들의 심장이, 아직도 힘차게 뛰고 있는데, 그래서 아침에 전해들은 그의 사고 소식을 인정하기조차 어려운 부모들이, 뇌사 상태인 아들에 대해 과거가 아닌 현재 형으로 말하고 있는 부모들이, 장기 기증 권유에 대면한다는 것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다. 기증 여부는 평소, 사망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를 추론해서 보호자가 최종 결정한다. 


장기 적출 절차는.. 그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로 이어지지요. 예를 들자면 시몽이... 너그러웠는지를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147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정일까. 사망자는 아직 열아홉 아이이고, 그 아이의 평소 행동들에 유추해 아이의 정신으로 부모가 대신 결정해주어야 하는 기증 여부. 엄마는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면담자에게 말한다. 만일 아이가 만일 이기적이라고 말한다면, 이 면담을 끝낼 수 있는 거냐고. 


시몽의 육체는 마음대로 약탈해도 되는 장기저장고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고인의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해 본 뒤 거부로 결론 나면 절차는 중단됩니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되어 면허증을 발급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를 표시함으로써,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쉽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유럽에서는 면허증 발급시, 별도로 표시하지 않으면 장기 기증에 자동으로 동의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어, 더욱 장기 기증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면허증에 선택적으로 장기 기증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은데, 찾아보니 그냥 면허시험소에 가서 면허증 바꾸면 되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서류들을 떼고 동의하고 그걸 가지고 다시 면허시험소에 가는 등 절차가 까다로와서, 기증 표시를 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쉽다. 어차피 죽을 인생, 아니 뇌사 상태라면 사망 상태라고 하니, 어차피 죽은 생, 신체 기관의 재활용이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갑작스런 비극, 도저히 그 죽음 자체를 납득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가족의 신속한 결정 상태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유럽의 현대 소설들이 조금 어렵게 읽히는 면이 자주 있는데, 그래서, 시작하려면 늘 한숨을 먼저 쉬고 시작하게 되는데,  장기 기증이라는 다소 자극적이면서도 르포르타쥬 형식을 연상시키는 소재를 보고 읽기 전, 살짝 망설였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읽기로 한 건, 그것들이 주는 낯설음에 기대감 때문이었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정말 새롭게, 사실적으로 정밀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시적인 감동을 주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첫시작부터 강렬한 시적인 언어가 시몽의 심장을, 그 심장이 처음 뛰었을 때부터  그 심장이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주요 순간들을 노래하는데, 가슴이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역사에 남을만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심장이 의미하는 것이 곧 비극적 소재가 될 것을 직감하는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무게의 감정을 싣게 된다. 


시몽 랭브루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튀어 오르고 울렁대고 벅차오르고 깃털처럼 가볍게 춤추거나 돌처럼 짓누르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는지(사랑), 시몽 생브루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p7)


시간 배경은 서핑보드를 시작한 이른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때부터, 사고가 나고,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들의 일상이 시작되고,  부모에게 사고소식이 통고된 아침과, 장기 이식 결정이 난 오후, 그리고, 숨가쁘게 시작된 수혜자 선정 작업과 각 병원의 담당의들이 활동을 개시해서, 적출과 이식이 이루어진 다음날 새벽까지의 24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르포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개입되지만, 깊이있는 감정의 세부적 변화와 내면의 세계들이 다루어지고, 전문적 사건의 전달 역시 매우 정교하고 핍진한 묘사에 기반한다. 전문적이란 것이, 새벽에 아이들이 서프를 하는 과정인데, 파도를 타는 세부 묘사가 압권이고, 장기 이식에 따른 절차적 과정 역시 이식자와 면담자, 의사들 사이의 묘한 긴장들과 감정선들이 세부적으로 다루어진다. 이식 수술 및 처리 과정 등의 의학적 절차는 말할 것도 없다. 


신파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부분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시몽의 심장 적출의 마지막 과정에서 의사가 부모의 부탁으로 그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mp3를 들려주는 장면, 그리고 심장 이식자에게 그 심장이 이식되면서, 작가가 그 심장이 듣던 노래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그랬고, 아들이 사랑한 여자친구 쥘리에트에게 소식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늦게까지 지연시키다가, 결국 말하고, 그녀가 추운 겨울 티셔츠 바람으로 뛰어 오던 장면 등등이다. 시간이 되면 한 번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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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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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오는 영화는 21 세기에 만든 영화로, 당대의 화려한 귀족적 모습을 세련되게 구현하였지만, 책에서 보는 내용과 차이가 종종 보인다. 톨스토이는 깨알같은 심리묘사, 일상의 묘사가 특징인데 가령 사람들이 추운 겨울 무명옷을 입고 어쩌구 하는 부분을 보면 영화가 표현한 극도의 화려한 의복들은 (물론 고증이 충분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인 시각적 만족을 위해 화려함과 세련됨에 방점을 찍었을 뿐이고,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 당대의 낙후된 모습들을 캡쳐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생각해낸 것이 아마도 러시아에서 자국민들이 즐겨 보았을 영화다. 유튜브에서 러시아어로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лина) 라고 타입해 보았더니 2시간짜리 영화가 나온다. 러시아어로 말하기에 오 여기 있었군 했는데, 알고보니 1997년 소피 마르소가 연기했던 버전에 러시아어 더빙을 입힌 것으로, 아마도 러시아어 더빙이고 저작권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유튜브에 버젓이 풀버전이 돌아다니는 듯했다. 말을 못알아먹어 어렵긴 했지만 중요한 몇몇 키티에게 레빈이 구혼하는 장면, 기차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만나는 장면, 연회장에서 춤추는 장면 등등을 골라 보았는데 역시 키이라 나이틀리 버전에서 안나의 욕망을 제대로 표현했다. 특히 연회 씬은 압권이다. 엉뚱한 얘기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는데, 그래서 결론은 러시아 버전의 안나 카레리나를 드디어 찾아서, 보다가 잠들었다는 얘기. 컬러판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오래되었고, 의복이니, 건물의 인테리어니 기타 등등 21세기 버전에 비하면 훨씬 궁색해 보인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더 실제 당대와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1편 읽은지 한참 되었는데 오랜 만에 계속 읽으려고 2편을 들었는데 어디까지 읽었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 읽었다는 건 알겠는데, 다시 읽기 전에는 뭔 내용이었더라로 가서. 떠올려보기로. 안나의 오빠 스티바는 가정교사랑 바람피다가 걸려서 호되게 와이프 에게 질책을 당하고 아내를 설득시킬 목적으로 안나를 부른다. 기차에서 브론스키 백작의 엄마와 동행하게 된 안나는 역에서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고 서로 안면을 트는데, 안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브론스키 백작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편 레빈이라는 작가 톨스토이의 페르소나로 생각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키티에게 구혼을 했다가 퇴자를 맞는다.  키티는 안나의 시누의 새언니인 돌리의 동생으로 브론스키 백작이 구혼할거라고 기대하고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가, 브론스키가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고 안나와 질펀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실망을 하여 병이 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나의 심경 변화다. 역에서 만났을 때부터 브론스키는 계속해서 안나에게 노골적으로 치근덕 거리는데, 안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그를 피하고 외면하지만 연회장에서는 그와 함께 정열적으로 춤을 추면서 그를 갈구한다. 자신을 마중나온 남편을 보고, 저이의 귀는 왜 저모양으로 생겼을까라고 생각하는 안나는, 결국 이전까지의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브론스키가 나타나는 사교계에 얼굴을 들이밀고, 조금씩 조금씩 대담하게 브론스키와의 러브어페으를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아이를 임신하기에까지 이르는데,(이 부분이 영화랑 헷갈려서 1편에서 이미 임신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외도를 눈치챈 남편이 주의를 주우도 막무가내의 태도로 일관하던 그녀는 결국 경마장에서 브론스키가 탄 말이 낙마하는 사건을 계기로 외도 사실을 온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부, 아름다운 부인, 냉철한 이성, 안가진 거 빼놓고 모든 걸 다 가진 안나의 남편 카레린 역시 부인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모든 것이 안나의 외도를 반증하고 그녀가 그를 더이상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 뻔한 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추궁하거나 외도사실을 캐거나 함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더럽힐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경마장에서의 사건으로 이미 안나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했음에도,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내기 힘들다. 이런 카레린의 태도는 관대하다기 보다는, 득과 실을 따져서 유리한 것을 취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편 키티에게 퇴짜를 맞은 레빈은 귀족임에도 시골의 영지에서 육체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며 살아가는데, 키티가 브론스키와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고, 상처받아 몸이 아프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더 자존심을 건드린다. 2편은 스티바의 아내 돌리가 아이들과 함께 레빈이 사는 시골 자신의 영지 근처로 여름을 지내러 왔다가, 레빈을 만나고, 동생 키티가 이곳에 합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소피 마르소 주연,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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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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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 투르게네프,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기라성같은 문학 작가를 낳은 19세기 러시아가 20세기에도 많은 문학가를 낳았다. 19세기 문학가에 비해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구소비에트 시대에 자유 진영과의 원활한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20 세기 러시아 문학은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대량학살이다. 말이 2천만이지, 우리나라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스탈린 통치 기간 중 2차대전 중 독일과의 전투와 정치적 탄압으로 죽어갔다고 하니 압도되는 비극의 양에 먼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대를 뒤덮은 비극은 문학과 예술 속에 스몄을 것이다. 전쟁과 혁명과 내전과 숙청과 탄압, 그 모든 삼켜버릴 듯 휘몰아지는 역사의 광풍을 통과한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까.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살펴본다는 것은, 20세기 역사상 가장 큰 사건들을  겪은 러시아의 역사의 편린들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제정 시대의 부패와 가난과  항거와 혁명과 압제와 피튀기는 전쟁을 겪었고, 혁명의 완수 후에도 압제의 칼끝에서 날마다 날마다 죽어갔다.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삶을 결정한 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 시대가 요구를 캐어내고 구석 구석에서 숨쉬는 사람들의 정신에 반향한 예술이기에 러시아 예술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학생 시절이었을 때, 지리 시간에 국가 단위의 러시아는 없었다. 대신 사회과 부도라는 지도 교과서에 커다랗게 자리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만이 기억난다. 그토록 큰 나라가 우리에겐  미지의 장소였다. 공포의 나라였다. 대부분의 헐리우드 액션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선과 악 대결에서 선인 미국이 악인 소련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0년의 역사가 연방국으로서 소련이 존재했던 기간이다.  1917년 제정 러시아는 10월 혁명의 성공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혁명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1917 혁명이라는 이 문제적 시간과 사건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 듯했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혁명으로 건설된 사회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문학이다.


그동안 소련은 북한과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먼 땅,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상기시키는 춥고 황폐하고 차가운 공산주의의 나라였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 하면 19세기 문학과 망명 문학을 주로 떠올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러시아 문학은 19세기에 마무리된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리얼리즘 문학이고, 이후 체호프의 과도기를 거쳐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은 마감된다. 얼어붙은 먼 땅이라는 막연한 상상의 나라에서 꽃피운 문학들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8명의 작가 중, 노벨상 수상작가가 다수 있는데, 대부분 반체제 인사로 찍혀 작가 활동을 금지 당하거나, 망명의 길을 선택해, 외국어로 글을 쓰거나 하는 고초를 겪는다. 20세기 초반 정치적 격동기에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보다 더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으나 혁명 이후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서, 스탈린의 권력 구조가 안정된 이후 창작에까지 사회주의 이념이 강조되었고, 이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위세를 떨치며 문학은 위축된다. 1953년 스탈린 사후부터 흐루쇼프가 실각하여 브레즈네프 집권까지 이어지는 대략 10년간의 해빙기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완화되며 반체제 작가들이 활동하지만 결국은 솔제니친과 같이 추방되는 운명을 맞는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선도한 작가로 막심 고리키를 맨 처음에 다루고 있는데, 완독하지 못해서 내내 찜찜하고 궁금했던 <어머니>와 그의 문학적 세계를 저자는 일부 평론가들이 작품에 드러난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비판한다고 전하면서, 그 시대야말로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회였기에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따라서 그런 비판이야말로 도식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옳은 말이다. 어떤 시대라 하더라도 보편적인 시대적 요구가 있기 마련이다. 격동기였지만, 그 숱한 피를 뿌린 러시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었다고 믿는 우리 나라에서만도 70년대의 낭만적 문학과, 80~90년대 초반의 저항의 문학과 그 이후의 나른한 나르시스적인 문학, 그리고 이 시대의 문학이 시대적 요구와 흐름을 따라 함께  호흡하고 있는데, 세계 그 어느 역사의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격동적 혁명의 전야에 어떻게 다른 문학이 더 위대할 수 있었을까.


이와는 반대로 혁명은 혁명의 당위성과 혁명의 잔인성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개인의 희생을 낳기에, 반혁명 작가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자먀틴과 파스테르나크는 반혁명 대열에 선 작가들로서, 그들의 대표작인 <우리들>과 <닥터지바고>는 공식적으로 출간되지 못하는 작품, 그들 속에서는 부재하는 작품이었고, 대중들은 읽을 수 없었다. 숄로호프를 제외한 여기에 실린 나머지 작가  불가코프, 솔제니친, 나보코프 모두 작품이 출간금지 당해, 망명하거나, 고립된 삶을 살았다. 문학에 대한 탄압은 국외 출간 및 망명 문학으로 이어지며 닥터지바고 같은 일부는 자유진영의 자의적 해석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당의 반대로 끝내 거부해야 했던 경우가 닥터지바고를 쓴 직후의 파스테르나크이다.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과 <체벤구르>를 계속 못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룬 플라토노프의 작품 세계를 읽으니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있다. 러시아 철학은 논증이나 이론적 체계와 무관하게 진지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을 철학으로 규정하므로 19세기 철학사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한 장씩 차지하는데,  20세기 철학자에 아마도 플라토노프가 들어가지 않을까 예상될 만큼 문학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한 사회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혁명주의라는 이유로 근 60년 가량 출판을 금지당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사회주의자 중에서도 이상주의자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현실 타협주의자였던 스탈린은 트로츠키 같은 극좌파를 비롯해 플라토노프 같은 투철한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 역시 제거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이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 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갖게 되는 정서가 슬픔과 연민입니다. 플라토노프는 바로 그 정서에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죠. (p92)


문학은 시대의 운명과 함께 한다. 실제 수용소의 경험으로 생생한 수용소 현장을 문학으로 쓰고 실상을 널리 알리며 반체제 활동을 해온 솔제니친은 막상 체제가 무너지자 반체제가 설 장소를 잃었다. 그는 소련이 가장 서방 세계에 악날함의 극치로 알려질 때에는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서 다루어졌지만 체제 비판이 자본주의에까지 이르자 서방세계는 그를 꺼려했으며 체제가 무너진 무너지고 20년의 추방 생활이 끝내자 이제는 비판할 체제가 없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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