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한 게 물이다. 뭘 막 쓰면 물쓰듯 쓴다고 말한다. 돈을 물쓰듯 쓴다. 전기를 물쓰듯 쓴다. 그런데 물이라는 게 H2O 분자가 지구 내에서 계속 순환하는데 부족해진다고 하는 건 왜일까. 흔하디 흔한 건 그냥 물, 지구 표면의 2/3를 덮고 있는(맞나) 바닷물을 포함해서 강과 호수 지하수 꾸정물까지 모두 포함해서 물이지만, 생존에 필요한 건 생존에 적합한 ˝깨끗한˝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업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물은 구하기 쉬웠다. 


옛날에는 시내물과 강물을 먹을 수 있었다. 농약이 없었고, 영양이 풍부한 분변물은 농사에 이용했으므로 물에서 똥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자연적 물들을 맘껏 마실수 있었던 이유는 흐르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서 물고기가 방귀를 뀌고 똥을 눈다 해도, 거기에 섞여 있는 오염성분들은 산소와 반응해서 자연적으로 정화가 된다. 그것이 왜 현대에는 불가능할까.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아 너무 많은 오물이 나오면서 그것과 섞이는 깨끗한 물의 양보다 오물수가 더 많아져 산소가 부족해지고 자정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렇다. 


화학반응에는 전자 수용체인 산화제가 필요하다. 산소가 전자를 흡수하여 물로 바뀌면서 산화제의 역할을 한다. 물에 녹는 염류중 가장 흔한 것이 황산염인데 하수에 산소가 없을 때는 황산염이 산화제가 되어 황화수소로 바뀐다. 이 황화수소가 하수 악취의 대표자다. 대장에도 산소가 없으므로 세균들은 대사과정에서 황산염을 황화수소로 바꾼다. 황화수소는 악취의 원인이다. 방귀 냄새의 주된 성분도 황화수소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나온 오수에서 산소가 모두 소진되면 황화수소가 많아진다. 따라서 적은 양의 하수가 산소가 풍부한 하천에 유입되었을 때는 자정작용을 통호 악취가 제거되지만 방류 지점이나 대도시의 처리되지 않은 대량의 하수는 산소 부족으로 황산염의 산화로 인해 악취가 심하게 된다. 


다시 물부족 문제로 돌아오면, 물의 양은 여전히 지구 대기권 내에서 똑같은데 더러운 물은 많고 깨끗한 물은 모자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을 말할 때는 상수와 하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물의 필요와 처리를 고대 로마 시대 중력을 이용한 물 분배 시스템을 1.0으로 하고, 시대를 거쳐 세균을 이용한 정화 및 염소 처리 등의 혁신적 방법이 사용되는 시기를 나누어 2.0과 3.0 시대를 거쳐 물부족에 직면한 현재와 미래를 워터 4.0의 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물의 정수 및 하수 처리의 공학적 / 제도적 역사를 탐구한다. 딱딱하다. 논문같다. 그러나 부족함 없이 상세하고, 성실하게 쓰여졌다. 버릴 구석이 조금도 없다. 그동안 물에 대해 궁금하던 부분이 말끔히 풀린 느낌이다. 


19세기를 지나며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자 유럽과 미국 등의 각 도시는 도시인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데 많은 문제가 생겼다. 앞서 말했다시피 물은 중력에 의해 밑으로 스며 지하수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데, 도시가 커지면서 인구집단이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하수가 상수와 섞이는 문제가 생긴다. 정수와 하수는 함께 변화해간다.  도시가 강으로 쏟아내는 오수가 강물을 만나 한 도시를 지나 다른 도시로 흐르는 동안 정수가 되지만, 도시가 커지면 오수의 양이 너무 많아져 자연 정화능력을 상실한다.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하고, 오수를 배출하는 강물 주변의 주민들은 악취를 견디지 못한다. 세균을 이용한 하수 처리 방법의 발견은 워터 2.0시대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물을 정화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그것이 임호프Imhoff 탱크다. 하수의 악취와 고형 오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분변물이 섞인 오수에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사는 혐기성 세균을 이용한다 (사진 110 삽입 예정, 지금 책 없음). 장치의 밑에 가라앉은 부유물에서 세균이 황산염을 모두 소비하고 나면 탄산가스를 취하는 세균이 많아지게 된다 이런 미생물은 유기물이 풍부한 고형물을 분해하면서 메탄울 발생시킨다. 임호프 탱크는 20세가 초에 20년동안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에 건설되었다.


염소 딜레마

염소는 하천과 호수의 병원균과 정수 처리 이후 상수도 망을 통해 침입하는 세균으로부터 물을 보호한다. 그러나 발암성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과학계 를 놀라게 한 것은 클로로포름이 당초 우려했던 산업 폐수가 아니라 부패하는 식물과 조류에서 나오는 물질과 염소의 화학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듯했다는 것이었다.136


음용수의 화학 물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문제는 미지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아무도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138


염소 소독 물을 마신 사람들이 방광암 및 직장암  발생률이 증가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20세기 이후 사용하게 된 수많은 화학물질들 사이에서 염소와 반응을 일으켜 발암성 물질을 생성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그것을 발견하는 과학적 공학적 과정은 이랬다.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 암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염소 처리된 상수에서 수많은 화학약품질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무엇인지를 어떻게 찾겠는가. 이럴 때는 성실한 과학자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과학자가 필요하다. 생물학자 에임스는 세포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유발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론했다. 그가 이용한 것은 트립토판을 만드는 능력이 없는 변종 세균이었다. 변종 세균을 화학물질에 노출시키고 아미노산 생산 능력을 다시 찾는 세균이 발생하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 트립토판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영양소가 풍부한 환경에 이 트립토판무생성 세균 수십억 마리를 배양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화학물질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발견된 염소 처리된 물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고, 독성이 높은 원인 화학물질들을 탐지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MX라고 명명된 매우 독성이 강한 화합물이 돌연변이 유발원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후 세균번식 억제를 위한 법적 기준치의 염소 소독과 암발생 억제를 위한 염소부산물 최소화 요구를 맞추는 실용적 대안으로 오존처리 방법이 도입된다. 그러나 향후 오존 역시 천연수에 포함된 브롬화물이 산화할 때 생기는 브론산염이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수처리시스템

현재 하수 처리 시스템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통합하수시스템방식이고 또 하나는 위생하수도다.  통합처리하수시스템의 문제는 집중호우에 처리되지 않은 하수와 빗물이 섞여 오버플로우 하수관을 통해 배출되는 데 있다. 이 때 처리되지 않은 하수는 집중 후우와 함께 그대로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가서 상수에 유입될 수 있다. 위생 하수도는 가정과 산업체의 하수만을 하수처리정으로 이송하고 빗물운 개울과 하천으로 직접 배수한다. 미국은 위생 하수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위생 시스템 역시 환경적 문제를 안고 있다 . 포장 도로의 빗물이 파이프를 통해 하천으로 유입되면 빗물이 토양과   얕은  지하수층을 통과하는 긴 여정동안 식물에 흡수되거나 지하수를 보충할 기회를 잃고 개울로 흐르는 양이 2~5배 증가한다. 범람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홍수에 취약한 주민의 재산 보호를 위해 수로를 직선화하는데 그러면 또다시 유속이 빨라지고 하천의 퇴적물이 쓸려나가 어류의 먹이가 되는 바닥 곤충과 생물이 사라지고 조류까지 피해를 입게되는 연쇄적 파괴가 일어나게 되는 한편  치뫽으로 인한 환경적 재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워터 3.0인데, 워터 4.0의 대안으로 지붕에 식물을 심는 녹색 지붕, 빗물정원, 식생 수로,생물침윤시스템, 인공 침윤시스템 등을 설명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다공성 재질이나 가운데 구멍이 있는 콘크리트 블록의 사용으루 제시한다


하수처리장의 미생물이 미량의 약품과 인공 화학 물질을 제거하는 능력은 세균이 다양한 화학 물질을 공격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효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210


주방세제나 세탁용 세제의 생분해성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병 속의 화학물질은 미생물이 천연 유기물을 쉽게 부술 수 있는 결합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211


많은 인공합성물질이 천연 유기물과 같이 제거되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하수처리장을 통과한다. 인공감미료는 사람의 소화기관의 있는 효소가 부수기 어려운 결합을 가지고 있다. 인공감미료 이외에도 x 선 촬영 조영제, 수수의 약품 등은 하수처리장을 통과하는 동안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들은 정수를 거쳐도 상수에 남는다. 이런 것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많은 방법들이 빽빽히 설명되고 있다. 


워터 4.0의 시대는, 환경적인 관점에서 물을 이용하는 방법들, 제도들을 들이다본다. 이미 물부족 사태는 미국의 서부와 남부 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다른 지역의 물을 끌어다 쓰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여러 사막 주에서는 물을 물쓰듯 쓰지 않고 전기쓰듯 쓰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할 듯하다. 오수의 재사용과 바닷물을 이용하는 방법등 다양한 방법과 함께 이들 몇몇 대안들이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한 사례와 성공한 사례들을 매우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수도 기반 시설의 노후에 따르는 교체비용의 부담 문제와 같이 정치적인 사안들도 다룬다. 


연방의 지원금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지역사회가 경제적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224


현대적 월 시스템을 보유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상당한 수준을 수도요금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지난 5년동안 해마다 거의 두 배로 수도요금인상 되었다)


통상적으로 정수장을 떠난 수돗물의 10~20%가 사용 되기 전에 누수로 없어진다 233


책이 좀 딱딱했지만 이제껏 물에 대해 궁금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많이 풀렸다. 생명은 순환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물에서 더욱 명료하게 설명되었고, 특히나 바로 얼마전에 읽은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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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바닥에도 질서가 있고 하수구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애초 축축하고 더러운 밑바닥 하수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쓰레기 인생은 추락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없는 오늘을 마비된 시간들 속에 던져버린채 시대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인간 내면의 추악한 골만을 찾아 흐르는 사람들. 그 타락하고 비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자체가 영화에서 보여주던 장면의 충격과 어떤 선정적인 이미지가 이끄는 힘 때문이었다.  영화는 한 두 장면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어떤 강렬함이 원작으로 끌리게 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책에 비해 선정성과 충격을 많이 중화시키고 영화적 해석이 휴머니즘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여졌다.  원작의 근본적인 철학과는 상이하다고 할 수 있으나, 영화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극적으로 밀어붙인 매우 영리하고 훌륭한 각색이었다. 영화에도 역시 만점의 별점을 주고 싶다. 책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중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각 작품의 인물들이 다른 작품속에서 재등장한다. 영화는 이 작품속 인물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퍼즐을 완성했다. 책 속의 모든 작품은 한치의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기대하는 휴머니즘적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차용한 영화는 작품이 가진 비정한 분위기를 그대로 영화에 흡수했으면서도 감독의 해석 내에 어떤 작은 감동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 <트랄랄라>에서 나서부터 창녀인 트랄랄라는 희망 없는 삶에 대한 자각도, 소외된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도 없다. <여왕은 죽었다>에서 트렌스젠더 조제트는 도시의 쓰레기 중 쓰레기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약만이 그녀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듯하다. <파업>에서 해리는 그나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일하게 직장을 가진 기계공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의 임원이지만 그가 관심있는 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조의 돈과  놀고먹는 것이다.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희망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거르고 걸러 남겨진 , 도무지 정화 불가능한 더럽고 악취 풍기는 시궁창 쓰레기 더미에 삶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을 믿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게 하는 건 중독에 마비된 영혼들이 저지르는 약탈과 폭력과 섹스와 그 속에서 멈추어진 시간 뿐이다. 화려한 아메리카 드림의 외진 곳에서, 걸러내고 남겨진 악취나는 쓰레기들의 뭉치들이 하루살이 처럼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트랄랄라 115 쪽 인용 참조). 이것이 트랄랄라의 삶이다. 어쩌면 이 버러지같은 삶은 그녀에게 오히려 편안한 일상이고 나름의 정돈된 질서였는지 모른다 . 장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랄랄라에게 3일간의 의도치 않은 환한 세상 밖 구경은 스스로 구더기를 파게 만든다. 이미 바닥이어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어둠속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스민다. 한국전쟁으로 내몰린 젊은 장교는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옷을 사러 다닌다. 바에서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젖가슴을 흔들어 유혹하고 몸을 팔고 돈을 훔치고 개새끼라고 욕하며, 그걸 또 동네 건달들과 나누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 장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집단 강간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장교가 남겨주고 떠난 편지의 구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영화에서 벌거벗겨진 그녀를, 그녀를 사랑했던 소년이 자신의 옷으로 벗어 덮어주고 함께 울어준다. 책에서 그녀는 이빨이 계속 나가고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한 상태로 너덜거리는 그 몸둥이가 시체처럼 널부러진 채, 담뱃불이 비벼지고, 막대기가 꽂힌채로 그대로 길거리에 방치된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야만적이고도 비정한 채로 막을 내린다. 장교가 떠나면서 돈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장교를 뒤로 하고 개새끼라고 욕을 하고 편지를 찢어버린 그녀가 경험한 세계. 그것은 아마도 혼동의 세계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옷을 사준 남자, 처음으로 함께 걷고 함께 자고 함께 얘기하고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다시 또 거리로 내몰려, 다시 또 몸팔고 돈을 훔치는 생활을 계속하지만 문학 작품 속 그녀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술 한두잔 값으로 몸을 팔기 위해 바를 전전하는 일로 보인다. 집단 강간이 시작되고 사내들이 더러운 땀과 체액들을 흘리며 줄을 서서 그녀를 강간하는 동안 트랄랄라는 여전히 자신이, 자신의 몸이 창녀로서 남자에게 쓸모있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인생에게는 마땅치 않았던 지나간 3일의 경험을 씻어내고자 자신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부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런 생각조차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충격과 슬픔에 압도되어 책을 더 읽을 수도 안읽을 수도 없는 상태로 주말을 지냈다. 

<여왕은 죽었다>는 조제타는 비니를 사랑한다. 그렇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 우리, 그러니까 수십년 후 반대쪽 땅에서 반대쪽 땅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 읽고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 우리가 사서 먹고 바르는 음식물과 화장품과 세제에 어떤 화학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가끔 따져보고 공기중 떠도는 미세먼지의 농도를 걱정해 마스크를 구비하고, 조금이라도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피하고자 알고자 하는 그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밑바닥 인생의 쾌락과 무감각 증오 약탈의 세계에서, 약물로서 스스로를 마비시키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폭력과 섹스에 만연된 사람들도, 그들도 사랑을 하는 거였다. 악랄하고 야비하기 그지 없는 동네 깡패 비니와 연인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조제트는 온전히 서로를 위해서 있고 싶다. 조제트는 그가 상상하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오로지 약물의 힘으로만 재현 가능하다. 


그릭스와 월리스바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공간배경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매춘을 하고 서로를 패고 찌르면서 킬킬거린다. 항구 근처에는 해군들과 육군들이 드나들고, 동네에는 큰 공장이 있다.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루는 <파업> 역시 파업이라는 상황 속에서 추악한 본능만이 지배하는 비열한 상황을 다룬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의 열의, 이어지는 무료한 경찰과의 대치 사항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패악들, 노조 임원과 노조 집행부들의 부조리들 역시 파업 주도원 해리의 추악한 욕망과 내적 변화를 통해 빠지지 않고 낱낱이 해부된다. 파업이 길어짐에 따라 변화되는 양측의 심리변화도, 파업 도중 지급되는 식표품 배급과 같은 당시 풍속 등도 흥미로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렇게 쇼킹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영화는 해피 앤딩을 맞는 듯 보인다. 노조는 타협을 하고 토니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신부와 결혼을 한다.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 듯하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무리 역시 숭고한 승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사회가 배출한 쓰레기들은 하수구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제 트랄랄라는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온전한 사랑의 상실감만으로 영혼을 적실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사무실 아는 안을 바삐 움직이던 허리도 점차 행동이 느려졌다(중략) 태도나 행동에 절박함이 전혀 없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니 그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무임금 노동에 불과했다. 경쾌했던 분위기는 피켓시위가 시작된지 일주일 만에 시들기 시작하더니 토요일마다  식량 배급 줄이 생기고 남자들이 10달러 치의 식료품을 들고 집에 돌아가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198

피켓 시위를 할 시작할 때만 해도 남자들은 출근하는 회사 중역들을 보면 농담도 하고 간혹 야유와 조롱을 섞어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낮이든 밤이든 그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중략) 하루하루 같은 날이 계속 됐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201

식량배급 줄을 서며 보낸 지난 몇 개월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는 꺾인 희망이 마침내 출구를 찾아 분출했다. 드디어 주먹을 휘두를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지겹게서 있기만 했던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203

남자와 여자로서 아니면 같은 남자로서 친구도 연인도 아닌 서로 사랑하는 두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세상에서 함께하는 3분... 손님도, 버러지 같은 놈도, 부치 여왕도, 아서에 대한 기억도 없는 세상에서 함께 한 3분.. 사랑이 가득한 이 순간..( 여왕은 죽었다 62)

그녀는 원하는 걸 얻었다 그저 몸만 내주면 됐다 재미도 있었다 가끔은 재미없으면 또 어때 상관 없었다 그냥 등을 대고 눕거나 쓰레기통 위에 엎드리면 끝이었다. 일하는 것보다 낫잖아. 게다가 재미도 있고. 잠깐이지만. 하지만 항상 시간은 흐른다. 그들도 나이를 먹었다. 친구한테서 푼돈 뜯어내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왜 취한 놈이 뻗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기다렸다가는 놈들이 빈털터리가 되고 말텐데. 턴 놈들은 군부대로 돌아가는 길가에 내다 버렸다. 밤마다 그릭스 맞은편 술집 윌리스에서 수십명이 나왔다.(중략) 덩치가 크거나 정신이 말짱한 놈들은 벽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만만치 않은 놈의 경우엔 하나가 붙잡고 여럿이 덮쳤다. (중략) 축 늘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 완전 신나. 그러고는 피자와 맥주를 먹으로 갔다. 트랄랄라도 같이. 그녀는 어김없이 거기 있었다. (트랄랄라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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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사기 - 미래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권하는 인간학의 고전
사마천 지음, 김원중 엮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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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해 짧막한 일화 위주의 글들을  가려뽑은 사기다. 어떤 왕이 어떤 정책을 써서 성공했다 뭐 그런 내용보다는, 족적을 남긴 위대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어떤 나라의 재상이 되거나 하는 성공 이전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큰 중국이 수 많은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통과하는 동안에 역사에 기록될만한 획을 그은 시점은 그 시점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발탁되었는지부터가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금과는 많이 달리,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제도를 통한 인재 등용 이전에 사람을 쓰는 일은 비교적 신분적 구획에서 자유로웠던 듯 싶다.  일화 위주의 소개이다 보니, 역사서로 알려져있는 사기의 역사기술적 내용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원전 100년을 전후로 해서 지어진 듯이 보인다고 하는데, 로마 시리즈의 말기 공화정 시대와 비슷한 시대임을 생각해본다면, 그 까마득한 고대에 인류가 이렇듯 역사를 편찬할만큼 많은 분량의 글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감동 그 자체이다. 특히 책이 역사서이니만큼 책의 내용이 지어진 시대로부터 약 2천년의 역사의 내용이고 또 단순하게 정치와 제도 전쟁 등에 대한 서술이 아닌 일화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므로 당대의 상업과 직업군 등의 사회 모습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다. 왜 중국 역사서중 가장 중요한 저작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기는  본기, 표, 서, 세가, 열전 등 모두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번역한 민음사 판 사기 열전, 사기 본기, 사기 세가의 내용 중 청소년을 위해 ‘명장면’을 가려 뽑아 한 권에 싣고 각 장면마다 작가의 해설을 덧붙인 버전으로 2010년에 출간한 <김원중 교수의 청소년을 위한 사기>의 개정판이다. 내 경우, 중국어 한자어로 된 책 제목은 뭔 뜻인지 머리에 바로 쏙 들어오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데, 원전에서 발췌했다는 세 권의 책 제목 역시 명확히 하기 위해 네이버 사전에 찾아보니, 열전(列傳)은  ‘여러 사람의 전기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책’이고, 본기(本紀)는 왕의 사적을 기록한 부분, 세가(世家)는 제후, 왕, 명족에 대한 기록이라고 나온다.


사기가 역사서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발췌된 내용은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사기는 기전체라는 중국의 역사 서술 방식의 효시가 된 편찬 체제라고 하는데, 이 기전체라는 것이 ‘시대 순으로 제왕의 언행을 정리한 뒤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의 이야기를 서술(p20 해제 중)’하는 것으로 이전의 연대순으로 매일매일의 사건을 평면적으로 서술한 서술방식에 비해 사건을 주제별로 엮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중국 역사서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이고, 중국 역사 서 내의 인물의 일화들을 적은 이야기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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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안아 준다 -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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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주는 함축적 의미는 결국 그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다. 어릴 때부터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아온 내 세대에게 문학적 사고는 정해진 틀에 갇혀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릴 때 교과서에 나온 시들은 그 시들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볼 틈도 없이, 교사가 혹은 참고서가 알려주는 대로 시의 주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였다. 그 시를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에 상관 없이, 그 시를 통해 받았어야 했을 감정에 동그라미를 쳐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 요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시가 시인을 떠나 독자에게 왔을 때, 독자의 어떤 주관적 해석에도 작가가 개입할 수는 없다. 누가 뭐라겠는가.


함축적 의미라는 말을 꺼낸 건, 이 책의 구조가 다섯 개의 주제 하에서 서로 묶였음을 주목해서다. 신경림 시인은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에 해당하는 시들을 고르고 추리고 번역해서 분류하였다. 외국 시들이라 번역 중 떨어져나가고 남겨진 의미들이 잠언집같은 느낌을 주었다. 잔잔하고 편안한, 주제에서 볼 수 있듯 격정적이지 않고, 피로를 잊을 수 있는 시들, 잠이 솔솔오는 시들이다.


한편의 시와 한 편의 그림이 짝지워져있다. 파울 클레, 헨리 마틴,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다른 화가의 그림도 있다.



체로키 인디언의 노래 -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 곁에 왔네

그가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따뜻한 하늘의 바람이

그의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이 시는 작가가 따로 있는 것 같지 않고, 체로키 인디언들의 노래를 번역한 듯한데, 갓 태어난 아기를 여행자로  노래하는 첫 구절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살면서 겪게될 그 모든 희로애락은 삶이 끝난 후 뒤돌아볼 때 하나의 여정으로 성찰할 수 있는 여행자로 보는 것이다. 삶의 여정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만, 그 작은 생명이 우리와 함께 하라고 주어진 만큼 인연을 소중이 여기고,  그 아기의 인생 여정이 축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  단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도 생각난다.


폴 짐머의 완다와 폭설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묶여있는데, 눈쌓인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고, 아름다워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원어도 찾아보았다. 탄광 하면 검은 색이 떠오르는데 하얀눈과 대조를 이루며, 일탈처럼 찾아온 폭설에서 생긴 세상과의 고립이  완다와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눈도미 속에 굴을 뚫고 철조망 담을 넘어다니며 먹을 것이 떨어져 소라도 잡으려 했던 그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속에서 오롯이 사랑을 느끼지만, 눈은 그치고 제설차가 도착하고, 꿈결처럼 둘만의 시간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마디, 요즘은 눈이 그렇게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일탈적 사랑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완다와 폭설

-폴 짐머

몇년 전,

타일러스벅 근처 노천광산에서 일했었거든.

하루는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두 시경엔

허리까지 내린거야

“집엘 가겠습니다.” 반장에게 말했어.

“다섯 시까지 기다려보지 그래?: 하길래

“소들을 돌봐야만 해요” 둘러댔지.

완다가 집에 잘 있는지 봐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네 시쯤 집에 다다랐는데 그사이 눈은 가슴까지 쌓였고 내리고 또 내렸어.

완다와 나는 사흘 내내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

눈 더미 속에 굴을 뚫고 철조망 담을 넘어 다니며

눈을 녹이는 심장 소리에 얼마나 웃어댔던지.

먹을 것이 떨어져 소라도 잡을까 생각했었지.

그때 그만 날이 개고 사과알같이 달콤한 달이 떠올랐어.

다음 날 아침 제설차가 도착했는데, 슬프더군.

요즘은 눈이 그렇게 오지 않아, 다 그런거지 뭐.


Lester Tells of Wanda and the Big Snow - Paul zimmer


Some years back I worked a strip mine

Out near Tylersburg. One day it starts

To snow and by two we got three feet.

I says to the foreman, "I'm going home."

He says, "Ain't you stayin' till five?"

I says, "I got to see to my cows,"

Not telling how Wanda was there at the house.

By the time I make it home at four

Another foot is down and it don't quit

Until it lays another. Wanda and me

For three whole days seen no one else.

We tunneled the drifts and slid

Right over the barbed wire, laughing

At how our heartbeats melt the snow.

After a time the food was gone and I thought

I'd butcher a cow, but then it's cleared

And the moon come up as sweet as an apple.

Next morning the ploughs got through. It made us sad.

It don't snow like that no more. Too bad.


마지막으로 로버트해스의 미술관이다. 매일매일 테러가 일어나고 고통이 일상이 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시대에, 어느날 캐테 콜비츠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식당에서 젊은 남녀가 아기를 안고 아침 식사를 하는 풍경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몇년 전 여름, 미국 여행을 했는데, 여행의 성격이 약간 미술관 투어 비슷했다. 도시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의미있는 건축물이 대개 미술관인 경우가 많고, 그런 미술관에 교과서에서나 보았을짐한 예술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미국의 식당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는 미술관 내의 식당을 즐겼었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비교적 깔끔하고 지역적인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미술관 답게 식당의 분위기도 개별적으로 모두 특색있었다. 그 때의 수많은 미술관 식당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였다. 콜비츠는 독일의 목판화가로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해서 굉장히 어두운 작품들을 주로 많이 그렸는데, 그 때문에 현실 속 평화로운 부부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세부적인 묘사가 어떻게 될까,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하며 작은 긴장을 주는데, 아기를 서로 교대로 안으며 버터를 바르고 빵을 먹고 신문을 보는 하나 하나의 동작들 그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교대로 아기를 안으며 서로 눈길을 자주 나누거나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이 평화롭다. 길지만 베껴쓰는 마음으로 전문을 타이핑해본다.


미술관

-로버트 해스


캐테 콜비츠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아침

젊은 남녀가 식당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아이를 안고 있고

남자는 일요일판 뉴욕타임스를 들고 있다.

여자는 등받이가 높은 버드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를 감싸안는다. 남자는 쟁반가득

신선한 과일과 빵을 가져오고,

흰 컵에 커피를 따른다. 남자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여자의 눈은 부석부석하다.

공기를 마시러 물 위로 솟아오른 잠수부처럼

잠 속으로 내동댕이쳤다가

순식간에 끌려나온 듯하다.

남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여자는

커피를 마시고 신문의 첫 페이지를 훑어본다.

태양 아래 조그만 그들의 자리에서

버터를 바르고 빵을 먹는다.

잠시후, 여자가 아이를 받아 안는다.

남자는 북 리뷰를 읽으며 과일을 먹는다.

여자가 과일 먹고 담배 피우며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남자가 다시 아이를 받아 안는다.

서로 눈길을 자주 나누지도 않는 두 사람,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저 공평한 풍경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기조차 잠에 빠져 돕고 있지 않은가.

주변엔 캐테 콜비츠의 목판화가 가득하다.

고통을 견딜 재능도 능력도 없는 얼굴들,

무감각해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얼굴들,

배고픔, 가공할 테러,

그러나 이 젊은 부부는 햇살 아래서

일요일 신문을 읽고 있다.

아이는 잠들었고,

벗겨 놓은 멜론 겁질에서 푸른 싹이 돋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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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응구기 와 시응오가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이시오구가 본인은 일본사람이라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데, 아무리 하루키에게 노벨상을 주고 싶다고 해도, 혹은 주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일본 태생일 뿐 일본문학으로서 받은 상은 아니라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년에도 영어 문화권에서 받았고, 그 전에도 계속 서구 문화권에서 받았으니까. 그런 하루키와 시응오가 확률이 높았던 모양인데, 다시 영어문화권으로 상을 주려니 노벨상위원회 쪽에서도 캥기는 게 있는지, 이시구로의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 운운하는데, 문화는 생김새나 유전자에서 생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있고, 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유독 개별적인 나라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보다는 아프리카라고 통칭한다. 아프리카 내에서 개별 나라들의 정체성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큰 덩어리의 정체성이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검은 피부, 가난한 땅, 핍박받고 굶주린 사람들과 부패한 정권, 부패한 정권과 분노한 반군이 총과 칼을 들고 서로를 겨누는 대신, 약자를 겨누는 황폐한 땅. 이런 것들 말고 한 개인이 세계에 대한 어떤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피의 꽃잎들》은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글자가 빽빽한 탓도 있었겠지만, 이질적 문화에 대한 생경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등장 인물도 많고 시점이 명확하지 않아서 지금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정된 비극적 결말을 유예시키고 싶었던 거다.


제국의 지배가 물러난 후, 식민 청산을 하는 일은 공산주의 혁명을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듯하다. 어느 나라가 제대로 그 일을 해냈을 지 궁금하다. 제국의 그늘 아래 제국의 문화와 제도를 동경하고, 그들에게서 교육받아 제국을 위해 민초들의 피를 빨았던 특권층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물러난 후, 스스로 괴물이 된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친일을 한 덕에 모은 재산과 권력을 대대 손손 유전자가 멀겋게 희석되도록 물려받고 아직까지도 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배 권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케냐의 외진 마을 일모로그의 한 매음굴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희생자들은 추이, 키메리아, 음지고 세 사람이고 이들은 생게타 양조회사의 이사들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무니라, 압둘라, 완자, 카레가가 지목되고 감옥에 갇힌다. 이 일의 시작은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교장 무니라가 황폐하고 버려진 땅 일모로그에 처음으로 도착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모로그의 가난, 가뭄에 시달리고 인구마저 줄어든 황무지, 내일이면 그가 잔인함을 경험했던 도시로 달아나 신기루에 불과한 미래에 직면하게 될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을 바라보는 것은 더 심오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그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었다.  221


오래 전 선조들은 그 풍요로운 땅에서 평화롭게 지냈으리라. 하지만 식민주의 시대에, 전쟁으로, 개발로, 숲을 빼앗기고 남자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 전쟁에서 죽거나 도시 빈민이 되고, 노인과 아이들만 남은 일모로그에 처음 무니라가 학교를 운영하러 도착하자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 이런 버려진 땅에 젊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니라는 그곳에 정착한다. 한 명의 학생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학생수가 늘어가고, 잘린 다리 대신 나귀 한 마리를 데리고 마을에 새로 정착하여 가게 겸 술집을 차린 압둘라, 그리고 고등학교 때 임신을 하고 집을 떠나 전전하다가 다시 되돌아온 완자와 친해지고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카레가는 무니라와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로 나중에 무니라를 찾아왔다가 이들과 알게 되고, 나중에 학교 선생으로 채용된다.


소설의 전개는 방화사건의 범인을 찾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방화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 네 사람들은 각자 말하지 못한, 혹은 말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대지주이면서 목사인 아버지를 가진 무니라는,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만 머무는 햄릿형 인간이다. 그들의 과거가 드러날 수록 그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즉 일모로그의 발전과 교육을 위해 헌신하던 무니라가 그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후배 교사인 카라가와의 관계가 전에 반정부 투쟁을 하던 중 자신의 가족이 귀에 잘리고 누이 동생이 죽는 일과 관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분노한 무니라는 자신의 추천으로 고용한 카라가를 해고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러한 관계는 완자와 압둘라가 죽은 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극명한 갈등을 내포한다.


이렇게 사회 속에서 개인과 개인이 서로 얽히고 섥힌 관계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행동과 관계 들의 상호 조합 속에 서로 뒤엉켜 일으키는 커다란 작용들임을 시사한다. 지식인들의 투쟁과 상호 갈등과 또 절망과 변절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는 사회 대로 국가라는 제도 내에서 서구 제국주의가 들여온 개발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더이상 원주민의 사회 그대로 정체되어 있을 수 없는 현실은 수탈과 약탈을 감내해야 했던 원주민들의 삶에 미세하게 현미경의 초점을 맞춤으로서만이 가능하다.


처음에 완자가, 무니라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는 임신이 하고 싶다. 결혼도 안한 처녀가 왜 임신이 하고 싶을까. 어떻게 먹여 살리려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러한 사고방식들은 후에 완자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알고 보면 무니라의 시점에서 쓰여지긴 했지만 완자가 주인공인 듯하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그녀는 자신을 위협하는 어떤 불의에도 승복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그리고 마침내 전통주인 생게타 주조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사업을 확장하여 지역 사회에서 성공을 거머쥔다. 평범한 소설이었다면, 혹은 헐리우드식 영화였다면 여기서 끝났어야 옳다.


가뭄 때문에 거지떼들 처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도시로 가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아름답고 슬프지만 한편으로 코믹하기까지 한 로드 무비같다.  그 모든 것을 겪어내고, 어떤 고비와 시련에서도 강인한 의지와 실천 그리고 혜안 있는 선택으로 성공을 가졌을 때,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자본이 몰아치고, 넓직한 신작로가 생기고, 비가 곡식을 열매맺어 풍성한 먹거리들이 넘쳐날 때, 이제까지 가뭄에 사람들이 죽어가도 처내버려두었던 일모로그를 그 땅을 그들의 생게타를 자본이라는 괴물이 그 소박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도록 그대로 둘 리가 없다.


마지막 완자의 선택이 옳으냐 그르냐는 더이상 질문의 가치가 없다. 그녀는 살아남아야 했고, 보고 배운대로 살아남아야 했을 뿐이다. 인간의 대지에서 솟아나는 새싹들이 열매를 맺고 곡식을 거두어 먹고, 이웃이 서로 아플 때, 배고플 때 돕고 살아가는 그 단순한 삶이, 어떤 이유로든, 가뭄이든, 산업화든, 신식민주의든, 자본주의적 약탈이든,  더 이상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이 남아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다시 우리에게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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