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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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조르주 심농 시리즈가 흐지브지되어 버린 듯한데 그래도 이제껏 출간한 책들을 모아서 세트상품으로 만들어 이북으로 판매하기에 낼름 샀는데, 산지 꽤 됐는데 겨우 2권 읽었다. 


1903년 벨기에 태생의 심농은 16세때 생업으로 기자가 되고 이후 20여개의 필명으로 대중소설들을 써서 입지를 굳혀나간 후, 매그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불안의 집>을 조르주 심농으로 발표한 후, 매그레라는 인물에 대한 확신으로 본명을 사용하여 계속 매그레 시리즈를 발표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열린책들의 매그레 시리즈는 1권부터 19권까지 총 19권이며, 1권은 수상한 라트비아인이고 이 책은 2권이다. 


1편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그 전에 읽고 리뷰를 썼던 걸로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없다. 누가 가져갔나. 그래도 기억을 돌이켜보면, 1편을 처음 읽었을 때, 추리극의 긴장감보다는 사건의 범인을 파헤쳐가기 보다는 범인의 사연에 집중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또한 매그래라는 캐랙터 역시 우쭐대는 잘난척도 없고 우직하고 무겁다.  1편에서 약간 안면을 튼 사이라 2편에서는 더욱 편하게 매그레를 읽을 수 있었는데, 전에 열린책들 무슨 기념 기획 세트 낼 때 심농의 책을 한 권을 골라 끼워넣었는데, 그 때 1편이 아닌 이 책으로 정한 것을 보면, 재미상 이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더 대표성을 띈다고 여긴 듯하다.


내용은 1편보다는 긴장감도 있고 속도감도 있다. 1편에서는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잘 몰라서 조금 답답했던 걸로 기억하고,  여기선 일단 사람이 먼저 죽고 시작하니까, 그런 답답함은 없긴 한데, 그럼에도 뭔가 메그레만 눈치채고 있는데, 안갈켜줌 하는 부분이 있어 호기심 때문에 책을 놓기가 힘들다. 어떤 세일즈맨이 호텔에서 죽고, 메그레는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러 가면서 시작하는데, 전편과는 달리 호텔 사람들이 메그레에게 호의적이다. 창문을 통해 누군가 그를 쏜 것은 확실한데, 범행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여럿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결국 범인을 찾아내고 나서야, 제목에서 풍기는 뭔가 고독한 느낌 "홀로 죽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몸은 병들어 언제 죽을 지 모르는 한 샐러리맨. 예전에 IMF 시절에 정리 해고를 당하고도, 집에 말하지 못한 채 매일 길거리며 공원으로 출퇴근을 하던 구직자들의 풍경이 생각나기도 했다. 가족이란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서 있다는 믿음은 종겨적 상상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서로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있으면서, 그 필요한 것을 채워주지 못할 때, 스스로의 위치를 존엄성을 훼손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가정을 꾸리고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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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 욕쟁이 꽃할배의 더 까칠해진 시골마을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빌 브라이슨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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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 약 20여년 전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처음 와서,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 1권을 썼는데 세월이 흘러 강산도 두 번 변하고 사람도 변했으니 다시 썼다. 


100년전 건물들이 당연한 듯 대도시의 한복판에 줄지어 서있고, 때로 300~400여년된 농가 주택마저도 이리 손보고 저리 손보며 원형을 유지한 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30여년 된 '노후'화된 아파트의 재개발 열풍과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는 한국의 모습들이 교차하곤 했는데, 영국이 고작 20여년간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영국만큼 도시 풍경이 변하지 않는 곳이 또 있을까 싶지만, 시간 앞에서 공간이 주는 변화는 단지 물리적인 변화에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다. 건물을 부수거나 새로 짓지 않아도, 도로를 확장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그 공간을 형성했던 사람들과 공기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변화하고 있었으며, 빌 브라이슨은 그것을 포착하였다. 


저자의 영국산책 1편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20년 전에 처음 느꼈던 영국이란 곳의 아름다움은 아마도 내가 느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해외 여행 붐이 일었던, IMF 바로 직전의 한국인들에게 영국은 종종 유럽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기도 했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찬란한 유적지 및 그림처럼 아름다운 중부 유럽을 돌아온 여행자들에게 영국은 그다지 인상깊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관광지만을 다닐 때 드는 느낌이다. 런던만 해도, 관광객들로 가득찬 피카디리 서커스 말고도 백년 이상된 석조 건물들이 정교하고 세심하게 관리된, 그저 차들이 한 대 겨우 지나갈까말까 한 아주 오래된 골목길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관광 책자에도 표시되지 않는 시외의 작은 마을,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유적지들에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고유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골목가에 세워진 똑같은 모양의 작은 집들은 현관문과 작은 앞뜰에 철마다 꽃을 피운다. 찬물과 더운물이 따로따로 나오는 수도꼭지에, 문에는 벨 대신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손잡이가 달린 그곳이 처음엔 낙후되어 보였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민족성이 지켜온 것은 편리함을 상쇄시킬 고유한 문화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빌브라이슨의 툴툴거림은 나의 툴툴거림으로 함께 공명했다. 그동안 어떠한 정치적 변화들을 경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옛표어는 무색해진 채,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사람들의 태도도, 공간을 지키는 방식도 거센 자본의 방향이 가는대로 변화했을 터다. 그 변화에 제대로 탑승하지 못한 도시와 지역공동체는 공동화의 위기에 처해, 방문객으로 가득했던 작은 도시의 중심가에서 작가가 예전에 먹었던 오래된 노포 역시 문을 닫은 지 오래라는 소식은 가슴아팠다. 특히 그가 처음 영국에 와서 정착하고 일자리를 잡았던 본머스는 관광객의 수가 급감하고 그에 따른 부대시설과 문화 역시 사라져가고 있었다. 


훌륭한 극장이며 세련된 상점, 레스토랑, 명성이 높은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 그 외에도 다양하고도 품위 있는 문화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의 툴툴거림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그는 발로 걷는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차를 타고 보는 풍경과 많이 다르다. 걷고 또 걸으며 영국의 구석구석을 다닌다. 차로는 무심결에 지나였을 마을의 팝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뭔가에 대해 불평을 하고 때로 쌈닭처럼 싸운다. 영국이란 곳은 관광 책자에 나올만한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어디서곤 은은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는 그 세세한 생각들을 적었다. 연출되지 않은, 우연히 만난 그 작은 디테일과 즉흥적인 유머 감각은 빌브라이슨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포인트다.


예전에는 도싯과 서머싯의 주류 관련법이 달라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다가 밤 10시가 되면 10시 30분까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옆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마셨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기사를 읽으며 예전의 것들에 대한 향수로 가슴 한 켠에 아련한 통증을 느꼈다.



몇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올드크라이스트처치로드를 걸어 다니곤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상점들이 활기차게 영업 중에 있었고 길가에는 화단이며 긴 의자들이 군데군데 있었으며 인도에는 벽돌이 올망졸망 깔려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배수관을 새로 설치한다며 벽돌들을 모두 들어 올리더니 바닥을 다시 공사하고 그 자리에 아스팔트를 깔아버렸다. 덕분에 그 길은 검정색 폐기물이 볼품없이 길고 네모나게 이어진 길이 돼버렸다. 이것이 검소한 영국인의 문제다. 보수를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정말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해버린다.


1970년대 내가 아일랜드에 갔을 때만 해도 연간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 피시가드 여객선 터미널을 이용했었다. 지금은 이용객 수가 35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이마저도 계속 감소 추세다. 이곳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배는 하루에 단 두 척 뿐이었고 그중 한 대는 이미 새벽 2시30분에 떠났다. 다음 배는 오후 2시 30분에 있었다



햄리라는 어린이 장난감 백화점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반가왔다. 영어 공부를 하러 왔던 여동생이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았는데, 집이 시내와 가까와서, 빨간색 버스를 타고 햄리를 도서관처럼 드나들었다. 신통방통하게도 아이는 돈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무얼 사달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어쨌든 그곳은 어린이의 천국이었는데 영국을 대표하던 거의 모든 기업들이 외국의 다국적 기업으로 모두 넘어가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 가운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기업은 절반이 채 안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햄리 역시 프랑스 기업이 인수했으며, 스코트랜드의 대표 위스키와 휴대폰 제약회사 등도 모두 소유했다는 소식이다. 영국의 거의 모든 기업이 외국인 소유라고 한다. 외국인이 그 나라의 대표 회사들을 소유하고 경영을 하면서 영국인이 지켜왔던 가치들을 과연 소중하게 다루어줄까. 변화의 원인은 아마도 그러한 사회적 변화에 기인하고 있었던 것일 거라 짐작되었다. 사람들은 관광지를 찾는 목적이 무언가 다른 장소, 다른 경험을 위해서인데, 고유한 문화들이 사라져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소는 퇴색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둘다 영어권의 나라이지만 외국인으로서 거리의 사람들을 미국인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태도다.  빌 브라이슨은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점 주인의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와 미국의 숨통이 막힐 것 같은 관심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고 썼다. 흔히 미국은 친절하다고들 하는데, 오지랍인지, 길거리에서 조금만 주의를 둘러봐도 이사람 저사람 지나가다가 도움이 필요하냐 하고, 상점에서 계산하다가도 늘 와쯔업 와쯔업 하는 바람에 뭐라 둘러대야 할지 은근 스트레스가 받는 1인에게는 무관심한 태도가 낫다. 영국인들은 타인에게 쓸데없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기 때문에, 일단 도움이 필요해 말을 걸으면, 영어를 개떡같이 하더라도 충분히 귀기울여 들으며 뭔가 답해주려고 애를 쓰는 듯했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영국인들의 젠틀맨적 기질은 운전자들을 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도로들은 모두 매우 좁았으며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게 구불구불했고 대단히 험했다. 마을 어귀마다 차들이 갑자기 줄지어 정차해 있으면 앞 도로가 너무 좁아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어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운전자들이 이 상황을 수더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어느 누구 하나 성질을 내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이 영국인의 최대 장점이다. 영국 어디를 가도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남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 있다.


 

두세 건물 건너 한 건물 꼴로 ‘임대’ 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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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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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p19)


이 계절이 되면 휴가를 떠나는 걸 아는 이웃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주셨다.  시로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몇일을 먹었다>를 쓴 박준 시인의 따끈따끈한 신작(산문집)이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해, 의심이 많아 그런지, 책에 글씨보다 공백이 많은 책들은 지면을 채워 상품 가격만 높이려는 출판사의 꼼수같아 좋지 않게 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 기준을 시에 적용하면 절대로 안될 일이다. 처음에는 공백이 많아서 시집인가? 했는데 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읽다보니, 형식상의 분류는 산문에 속하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산문 그 자체로서도 시다. 고로, 지면 가득 공백으로 차 있더라도, 그 공백 속에 진주 처럼 빛나는 한 구절의 글자가 있다면, 공백은 텍스트가 된다. 그러니 출판사들이여, 공백을 많이 넣으려면 이처럼 의미있는 공백을 넣을지어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 - 이문재 시인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p21)


우리는 살면서 무수하게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사람과 물건과, 시간과 많은 것들은 한 때 내 곁에서 삶 자체와 뒤엉겨 동거동락하지만, 서서히 해가 저물듯 모든 것들은 끝을 맺고 떠나고 새로운 것들이 다가온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설레이는 일이지만, 그렇게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고 익숙할 무렵 어느새 무엇인가가 허전한 마음에 돌아보면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이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가 종종 있다. 익숙했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허전한 마음을 짚어 내어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술마시다 문득 걸려온 전화라 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 포용한 사람이다. 종로 피맛골의 비좁은 다락방에서 생선구이와 김치찌개와 파전과 소주를 마셔본 청춘을 기억한다면 세월이 흘러 그곳의 재개발 소식들에 싱숭생숭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곳은 반짝 반짝 윤이나고 잘(?) 관리된 프랜차이즈 간판이 걸린 곳이겠지만, 피맛골이 없어지는 것은 청춘의 흔적들이 사라져가는 듯한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이 짧은 몇 줄의 산문을 읽으며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어릴 때 등교 길에서 먹던 무수히 많은 길거리 음식들, 커서는 길에 즐비했던 떡볶이집들.. 사라진 대신 채운 것들이 자본의 또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 p28)


시인은 덧붙인다, 장례식장의 빤한 음식들과 소주를 마시며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과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터져나오던 눈물을 그 죽은 자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울다 잠들어 깨어난 아침 부운 눈과, 욱여넣는 밥을 이야기하며, 다시 또 그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을 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일은 무엇인가는 잊혀지고, 무엇인가는 떠나가고, 또 누군가가 죽는일을 묵도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잃는 경험을 한다. 내가 단명하지 않는 한,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능하다. 저자처럼 소주를 들이키거나, 어서 이 긴 장례의 형식이 지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진정으로 떠난 이를 생각하며 눈물지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몇장 넘기지 않아, 인생의 구절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맨 앞에 인용한 부분과 연결된다. 뭐 시적으로 근사한 어구가 아니라서, 저 부분을 인용했는데, 그 산문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이 한 말 중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뜨거운 물 좀 떠와라"였고,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가 했던 마지막 말은 "그 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래전 애인이며 직장동려이며 마지막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적고 있는데, 그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보면, 그들이 영영 떠났거나 더이상 만나게 되지 않더라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언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정이 깊은 친구 하나가 있는데, 헤어질 때면 늘 내 할머니가 하던 류의 (잔소리 약간 섞인) 따스한 인사말을 건넨다. 차조심해,  몸조심해.  그런 것들이다. 아들과 떨어져있던 동안에 통화내용 중 기억나는 건, '응 아빠랑 싸우지 말고~' 다. 그러고보니, 시어머니가 했던 말 중에서도 생각나는 게 '싸우지들 말고 잘있어라'다. 어지간히도 싸우나부다 생각할거 같은데, 싸우는 것도 인생에 열정이 넘쳐 나야 가능하고, 요즘은 그냥 웬만하면 영혼을 잠시 프리징하여 넘긴다.


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의 어떤 말들을 기억할까. 못된 말을 한 적은 없는지, 내 주장만 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저런 지적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심히 염려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있으며, 지금 만나 말하고 있는 사람을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이 말이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떠나 사라져도 오래도록 상대의 마음 속에 살아남게 될 말들을 골라 써야 겠다.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 말


저자는 태백과 정선, 삼척 같은 강원도로 여행을 자주 간다고 했는데, 우연히도 지난 해 여름 이 책을 들고 바라보던 차창밖과, 뜨거운 여름 바다를 들락거리던 곳이 바로 삼척이다.  책에서 이모네 식당이 오래되어 모네식당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같은 식당인지 모르겠지만 이모네 식당도 지나갔다.  많은 정겨운 것들이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사라져가는 지금, 그것들을 아쉬워하고 흔적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갑자기 시집 한 권이 잘팔려서 주위에서 부러움과 시샘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방송 한 번으로 그토록 부러워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그동안 이런 저런 노동들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야 했던 삶이 시인의 정갈한 언어로 과장되지도, 혹은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게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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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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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는 현재 쓰이는 언어가 아니지만, 많은 언어 속에 흡수되어 알게 모르게 여러 변형된 형태로 많이 쓰이고 있다. 간단한 단어로 유비쿼터스, 비전, 아우디, 에쿠스, 아쿠아, 스텔라 등의 예를 책에서 소개하지만, 자주 쓰는 영단어 중에서도 좀더 유식하고 고상해보이는 단어들은 라틴어 어원에서 온 말들이 많다. 우리 언어에서 한자어와 순수 우리말의 차이처럼, 영어나 다른 서구의 언어에서도 라틴어 어근을 가진 말들과 지역어에서 온 말들은 어감이 차이를 갖는다고 한다. 똥을 똥이라 말하는 것과 대변이라 말하는 것의 차이처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라 하더라도, 뭔지 모를 무게와 고상함을 전해주는 라틴어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고상해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운다고 한다.라틴어로 말하면 뭔 말을 해도 우아해 보이니까 말잔치가 벌어지는 현장의 적재 적소에서 극적으로 등장하는 라틴어 한 마디는 멋진 일일 수 있다. 


문제는 라틴어 배우기의 어려움에 있다. 키케로는 지긋지긋한 라틴 문학이라는 표현으로 라틴어 문법의 복잡성을 오래전부터 얘기해왔는데 각종 태와 어미변화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데, 이렇게 문법적인 규칙이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해 조직적이고 수학적인 언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의 동사가 60개의 어미 변화를 갖는다고 하면 대략 상상이 가능할 거 같다. 명사 하나만 봐도 단복수가 1격에서 5격까지 변하고 형용사의 형태도 명사의 성(남성, 여성, 중성), 수(단수, 복수) 격(주격, 속격, 여격, 대격, 탈격, 호격)에 맞게 다 일치해야 하는데, 이런 규칙을 훈련하다보면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접근법이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는 것이다. 


라틴어에서 말하는 격변화니 태변화니 호격, 탈격, 여격이라는 말들을 보니 듀오링고로 러시아어를 학습하면서 부딪친 부분들과 겹치며, 라틴어의 문법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규칙이 많으니 뜻을 보다 명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러시아어를 처음 접해, 처음 몇 개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갈 때는, 문장이 짧아서 우와 말이 참 간단하네, 이런 말로 어떻게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이 나올까 했는데, 영어라면 여러 말이 섞이고 얽혀 표현했을 말들을 단어의 어미 변화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어가 없이 동사의 어미만 보고도 주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명사 역시 그 명사가 처한 환경까지 어미 변화가 암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러시아어 역시 라틴어에서 영향을 받은 탓인지, 라틴어를 어근으로 하는 단어들이 종종 나오며 문법 역시 유사한 부분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라틴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문법 책이 아니다. 라틴어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라틴어로 전해 경구들의 유래와 인문학적 의미들을 성찰하는 책이다. 유럽에서 라틴어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한마디로 인문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자살하기 전에 죽어라하고 외우던 단어가 라틴어 동사변화였지만, 역설적이게도 Carpe Diem 이라는 명구가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이다.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21세기 한국에서만 와닿을 것 같은 이 말은, 고대에 라틴어로 세네카가 한 말이다.  책에서는 이 말을 알려주며 discimus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본다. disco(배우다)라는 동사가 원형이고 여기서 명사 disciplina(공부)와 discipulus(학생)이 파생하고, 다시 discipline(규율, 학과목) 과 제자disciple가 유래했다. 여기 쓰인 discimus는 직설법 현재 단수 1인칭인 동사 원형 disco에서 disc 까지 어근으로 보이고 o가 탈락하고 mus가 붙어 이 문장을 완성시킨다.


총 20여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고, 각 챕터마다 한 문장으로 된 간단하지만 감동깊은 라틴어 경구를 소개하고, 해당 구절을 깊이있게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서강대에서 처음 라틴어 강의를 개설했을 때 이십여명 남짓했는데, 해가 갈수록 수강자가 늘고, 라틴어를 공부할 수 없는 이웃 대학과 일반인들까지 청강을 들으러 와서 수백명이 강의하는 강당이 꽉 찼다고 한다. 라틴어를 왜 공부하려느냐고 하면, 뭐 별 쓸모는 없겠지만 있어보이려고 한다는 대답이 많다고 하는데, 라틴어 문법 자체를 공무하는 것이 있어보이는 게 아니라, 라틴어가 오래된 언어이고, 인문학의 기반이 된 언어이니만큼 그 속에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알게 되면 알쓸신잡의 지식꾼들처럼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있어보인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챕터 마다 소개하는 구절이 모두 다 좋지만, 몇 개만 골라보면..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Postquam nave flumen transit, navis relinquenda est in flumine.

(포스트쾀 나베 플루멘 트란시이트, 나비스 렐린쿠엔다 에스트 인 플루미네)


숨마 쿰 라우테

Summa cum laude pros se quispue


참고서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학원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했던 숨마쿰 라우데라는 말은 가장꼭대기라는 의미의 summa와 cum 이라는 전치사, 찬미, 칭찬을 의미하는 명사 laude로 이루어졌는데, 유럽의 대학에서 최우등을 표시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명사의 격은 모두 6개가 있는데, 칭찬을 의미하는 laude는 사전에 주격 단수 laus를 찾아야 하고, cum이라는 전치사가 탈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문장에서는 laus의 탈격인 laude로 쓰였다. 


주격(nominativus) - 은는이가

속격(genetivus) - 누구의

여격(dativus) - ~에게, ~에

대격(accusativus) - ~를, ~을

탈격(ablativus) - 수단, 행위자, 동반, 방법, 장소, 시간 / 종종 전치사와 함께 사용

호격(vocativus) - 호칭 ~님, ~야,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라틴어 명사는 명사, 형용사 대명사의 어미는 문법적 기능을 위해 이 세가지 성과 수와 격에 따라 어미가 변화한다. 그런데 여성, 남성, 중성이라는 대체 이 쓸데없어 보이는 명사의 성은 국제법에서 몹시 중요하다. 국제조약이나 서구 법률 문헌에서 원칙적으로 단수로 지칭된 것은 복수인 대상에 적용하지 않으며 여성 명사로 사용된 것은 남성 명사에 적용하지 않는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성경의 구절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예수를 시험했던 바리사이들에게 예수가 한 말이다.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제국의 멸망 후에도 카톨릭 교회가 공식언어로 채택하여 사용되었기에, 라틴어는 근대 이후까지 교회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 언어로 남게 되고, 그것이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p92).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는 단초 역할을 한다. 캐사르와 신을 구분하는 복음서의 권고는 정교 일치를 파괴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오랜 중세시대 동안 교회 권력이 교육 의료 등 오늘날의 사회복지 개념을 비롯하여 사회의 모든 방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미 신앙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른 중세시대에서조차 성경의 가치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104)

네가 주기까 나도 준다
Do ut Des(도 우트 데스)
Do는 주다라는 뜨을 가진 동사로 현재 단수 1인칭. 그러므로 나는 준다 라는 뜻이다. ut는 예정, 가능, 의무 결과 등의 의미를 갖는 부사/접속사이다. des는 do 동사의 접속법 현재 단수 2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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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스네 매일 부엌 - 생각대로 차려내는 데일리쿡 레시피 100
조영아(봉스) 지음 / 미호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마트나 시장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라, 주로 주말에 한 번 가서 왕창 사다 놓고, 있는 재료로 그날 그날 먹을 걸 결정해서 해먹는 편이다.  오이지 담그고, 마늘 간장 절임도 담그고 했더니 친구들이 두 사람 먹는 데 뭘 그리 요란을 떠냐고 하는데, 두 사람이건 한 사람이건 먹을 게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요리책이 많은데도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대략 친숙한 재료, 쉬운 요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짠밥이 얼만데 쉬운 요리에 요리책이 필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짠밥이 길어도 늘 사는 거만 사고 늘 먹는 거만 먹다보면 뭔가 먹는다는 일조차도 진부해져버린다. 


요리책이 많아도, 필요할 때는 요리책보다는 인터넷에서 주로 레서피 정보를 얻는 편인데, 냉장고에 쟁겨놓은 레퍼토리가 늘 그모양 그턱이다보니, 그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자주 해먹는 요리. 어째 내가 하면 뭔가 맛이 없는 것 같아서 한번씩 더 보는 건데, 내가 해서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똑같은 걸 자꾸 하니 맛이 없이 느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구성은 네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다. 매일아침밥은 주로 국요리 위주이고, 바쁜날의 한그릇은 일품요리 위주이고, 저녁 한 상과 술안주는 찜과 탕요리 위주, 마지막으로 특별한 브런치와 간식은 샌드위치와 간식으로 이루어져있다. 국편을 술렁술렁 넘기다보니, 누구나의 냉장고가 품고 있을 뻔하고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다른 조합의 국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달걀 김국, 고구마치즈 수프, 맑은 주꾸미탕, 장떡국, 황태 떡국, 두부 명란 찌개, 김치 낙지죽, 다보카도 달걀밥, 들깨 무국 이런 것들이 있다. 쭈꾸미가 있으면 빨갛게 양념해서 볶아 먹을 줄만 알았지, 그걸로 맑게 탕을 끓일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무는 생선 조림이나 무채만 해먹어봤지, 그걸로 들깨무국이란 걸 끓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떡국 역시 고기 푹푹 삶아 국물내서 만드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덮밥류는 요리와 설겆이와 뒷정리를 간편하게 한다. 고기 좋아하는 아이가 집에 같이 살 때는, 고기 썰어 이것 저것 야채랑 섞어 녹말 풀어 걸쭉하게 덮밥을 만들어주면 접시 핥도록 잘먹었는데, 요즘은 남편 입맛에 맞추다보니, 안주빨 요리를 주로한다. 이래 저래 요리하는 사람의 취향이 우선되지 않는다. 쨌든 덮밥류가 일품요리로 많이 올라왔다. 버섯덮밥, 고추잡채 덮밥, 양파 카레, 마파두부 덮밥, 쇠고기 가지 덮밥, 매운 양파 덮밥. 비빔밥과 파스타 요리도 꽤 많은데, 차돌박이 파스타, 간장버터 파스타, 상하이 파스타, 새우 데리야키 볶음 우동, 사케동, 붓카케 우동 등이 그렇다. 저녁상에 올라가는 찜과 찌개 등의 요리파트는 불고기 갈비 닭볶음탕 등 비교적 눈에 익고 많이 해먹었던 요리들이다. 그래도 닭발볶음 같은 건 직접 해본적이 없으니 도전해볼 기회.


간식은 별로 해먹는 편이 아니라서, 눈요기만 할 작정이다. 각 파트별로 에세이와 부록이 있는데, 간식 편엔 코티지 치즈 만들기라는 부록이 있다.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끓이다가 레몬즙, 식초 소금을 넣고 몽글몽글하게 얽히면 면보에 받쳐 굳히면 된다고 하는데, 이런 거는 재미삼아 시도해볼 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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