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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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로 기억된다. 교회선생님으로부터 빌려본 책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감동을 받았던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 후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책. 이젠 커버린 내가 얼마 전 꿈속에서 교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이야기해주던 내용이 있다. 바로 “우동 한 그릇”의 내용. 난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감동을 전해주려 애쓰지만, 그 감동의 전달이 쉽지 않아 애태운다. 잠에서 깬 후 잠결에 꾼 꿈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한 책의 내용마저 뚜렷하게 전달하던 꿈속의 내 모습에 무척 신기해하던 일이 있다.

얼마 후 들른 서점의 진열장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어 반갑게 손에 든다. 바로 며칠 전 꿈속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던 바로 그 책, “우동 한 그릇”이다. 서점 주인에게 이 책이 혹 예전에 나왔던 책이 아니냐고 묻자, 예전에 출판된 책이 맞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에 내 꿈속에 나타났던(?) 바로 그 책임을 알고 얼른 사게 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쳐들면서 또 다시 맛보게 되는 감동이란!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배려가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허름한 세 모자의 밤늦은 우동 한 그릇의 주문에도 웃으며 조금 많은 양의 우동을 말아주던 주인아저씨의 묵묵한 인정. 우동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삶의 희망을 키워가던 세 모자. 작은 빵집에서 일하지만 그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작은 인정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려 노력하는 여종업원의 모습.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이 일하는 빵집의 빵을 먹고 싶어한다는 할머니에게 사랑과 인정을 담아 건네주는 모습.

진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크고 힘찬 어떤 정신이나 힘보다는 이러한 작은 배려와 사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지만, 벌써 눈시울을 글썽이게 하는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들... 이런 작지만 아름다운 마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맛깔 나는 곳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아무리 세상이 삭막해지고 무서워진다 해도 이런 작은 아름다움들이 모인다면 결국 세상의 어두움은 그 아름다움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빛깔을 띄느냐 하는 것은 그 누구의 몫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몫임을 자각하게 된다. 정말 가슴을 후끈 달구어주는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책이다. 내가 꾼 꿈은 이런 아름다움을 다시 맛보도록 하기 위한 계시(너무 거창하지만...)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놀란다. 이 책의 초판은 1989년도가 아닌가! 난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었는 줄 알았지만, 이 때는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었는데... 역시 사람의 기억은 이처럼 불완전하고 세월 따라 변해가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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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하늘 한 하늘 창비시선 75
문익환 지음 / 창비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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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그는 살아생전 줄기차게 통일을 노래하던 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희년 개념(이스라엘이 50년째 되는 해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도 놓아주며, 땅도 원주인에게 돌려주던 제도)을 차용하여 남북이 나뉜 지 50년이 되는 해가 오기 전에 이 땅엔 통일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분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던 95년도를 한해 앞두고 결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분단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분은 어쩌면 희년의 해인 95년도에는 분명 이 땅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 염원 50년은커녕 6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에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통한의 눈물만을 흘리셨을 것이다.

목사이자 신학자 그리고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그분의 네 번째 시집인 “두 하늘 한 하늘”은 그분의 꿈이 그러하였듯이 ‘통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통일을 노래한 시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들도 상당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쓴 시들, 자신의 스승인 김재준 목사와 함석헌 선생을 그린 시들이 6부와 7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제5부의 ‘그날이 오면’은 보다 나은 세상의 도래를 위해 젊음을 산화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이 부분에서 두드러진 사상은 부활사상이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남아있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행동할 때, 그들의 정신은 오늘의 삶 가운데서 부활하여 시인이 노래하는 ‘그 날’을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간간이 비치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언어들 역시 통일을 바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는 사회의 반민주화와 독재정권이 바로 분단수호세력, 통일반대세력과 일맥상통한다는 그의 생각에서 유래할 것이다.

시집 전반에서 보이는 그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가 ‘비무장지대’라는 시가 아닌가 싶다. 그의 노래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점차 확대된다면 그가 그처럼 바라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비무장지대는 무기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곳이라
우리는 총을 버리고
군복을 벗고 들어간다
막걸리통들만 둘러메고 들어간다
너희도 따발총 버리고
계급장 떼고 들어오너라
.....(중략)
날씬한 허리 용수철로 튀었다 펴며
푸른 하늘 밀어올려라
아아아아아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붙여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

자신들의 나라 일에 자신들의 의사 하나 마음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오늘 우리네 현실을 보며, 통일은커녕 독립마저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우리에게 통일은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통일보다는 독립이 선취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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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씨앗의 마음
시애틀 추장 외 지음, 서율택 옮김 / 그림같은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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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조상으로부터 물려온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침략자들에게 힘으로 또는 회유로 모두 빼앗겨 버린, 그래서 지금은 쓸쓸히 ‘보호구역’안에서 스러져 가는 아메리칸 인디언들. 바로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 본서이다. 작은 씨앗이 종국엔 수많은 결실을 얻는 것처럼, 이 책은 작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커다란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엮은이는 이들이 겪었던 아픔이나 서양인들의 잔혹성을 들추어내려는 것이 본서의 목적은 아니라고 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아픔을 전제하고 글을 읽는다면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더욱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이 작은 지혜의 글들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살찌게 하는 이유는 이들의 마음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들은 자신들의 신인 위대한 정령에 대한 경외와 사랑, 그리고 동포들에 대한 사랑과 이타적 돌봄, 그리고 생활 습관에 베어 있는 자연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기초하여 살던 자신들의 이야기이기에 아 작은 지혜 글들은 커다란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인디언들을 그들의 영토에서 몰아내었던 서양인들의 종교 역시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랑이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잘못된 종교형태와 근본정신이 왜곡된 앎, 근본정신을 잃은 종교열성이 가장 비종교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아마도 아메리카에 정착한 그들 역시 본질을 망각한 종교인들이었으리라.

아무튼 이 책에 쓰여진 글들은 모두 사랑이란 이름 하에 요약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두드러진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지에 대한 사랑, 나무에 대한 사랑, 동물들에 대한 사랑, 즉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이 자연의 품안에서 자연의 보살핌 때문에 살아감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 외에는 절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꼭 자연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도 항상 자연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이미 서구 사상에 젖어 그들처럼 자연을 짓밟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진 않은가?

우정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것을 백인들에게 나누어줬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백인들이 탐내던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단 하나의 죄 아닌 죄 때문에 자발적인 나눔이 아닌 백인들의 총칼 앞에 착취당하고 만다. 결국엔 그들은 ‘보호구역’이란 곳으로 몰려 자연의 보호를 빼앗기고 만다. 이들의 슬픈 역사 속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그들의 지혜의 글들은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강자만을 지향하는 우리네 강퍅한 사회에 이러한 작은 지혜의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로움과 참 지혜를 깨닫게 하길 기원한다. 아울러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의 따스함에 감염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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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미우라 아야코 지음, 김윤옥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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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이면에는 가진 자 밑에 눌려 착취당하고 신음하는 약한 자들의 한숨의 역사가 공존한다. 또한 이처럼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던 풀뿌리 인생들의 소외된 인권과 그들 삶의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소리를 높이다가 거대한 권력의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힌 생명들 역시 부지기수이다. 우리 민족 역시 그러한 암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억압하에서 민족이 당하였던 착취와 눈물. 해방 후 일제는 물러갔지만 가진 자들의 여전한 억압과 착취 아래 이에 항거하다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한 송이 꽃잎처럼 스러져 갔던가! 피로 붉게 물들인 5월의 광주, 불의에 맞서 학업을 뒤로한 채 투사가 되어 자욱한 최루가스 가운데서 이상을 키워가던 지난 80년대의 끈끈한 생명력. 아마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진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희생들이 사회의 거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어머니”라는 소설은 그와 같은 실존 인물(고바야시 다키지)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였던 다키지라는 실존 인물. 그의 어머니가 다키지에 대해 회상하는 진술을 기본 틀로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가난한 시절, 공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찰 아저씨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고 자랐던 어머니는 공권력이라는 것이 백성을 위한 도구라는 막연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세상의 불평등을 보았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평등의 세상을 지향하게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가진 자들의 마수에 걸려 결국 경찰의 고문 앞에 목숨을 잃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을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어머니의 슬픔을 저자는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 잔잔하게 전개해 간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각의 변화는 아마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는 외침이 아닌가 싶다. 처음의 어머니는 기존의 세상에 대한 반성과 극복보다는 그에 대한 순응의 자세를 보인다. 이러한 것은 시작부분에 언급되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 느꼈던 경찰 아저씨의 따뜻함에 대한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어쩜, 공권력의 진정한 이상을 보여주는 저자의 의도이리라.

주어진 환경에서 순응하며 그 틀거리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어머니의 시각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조금씩 변화한다. “나는 아무래도 모를 일이 있었소. 다키지가 아무리 극악한 놈이라 하더라도 체포하자마자 몽둥이로 때리고, 송곳으로 찌르고, 제멋대로 찔러서 죽여버려도 되는 건지요. 경찰은 재판을 하지 않고 즉각 죽여도 되는 법인지요. 이것을 알 수가 없소. 이런 경우에 경찰이 한 일은 살인이 되지 않는지요. 나는 법률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경찰이 나쁘다 싶으면 누구든 죄다 죽여도 된다고는 아무래도 생각이 되지 않거든요.” 이러한 어머니의 눈을 비춰진 공권력의 모순 고발은 비록 작고 약한 푸념에 그칠 듯 보이지만 독자들의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힘을 가진다. 아마도 ‘어머니’라는 존재의 이미지를 통해 잔잔한 고발이 결코 잔잔함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가슴을 후벼놓는 효과를 갖는 듯하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맑은 영혼의 소유자 다키지의 어머니는 오늘도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른 생명들을 억압하는 독재자들, 그리고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공권력의 횡포에 대해 잔잔하게 대항한다. 혹,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러한 우리네 어머니의 절규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회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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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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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무엇인가? 어떤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의 의지에 의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15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멀쩡히 살아나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것들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잔잔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기적이 여기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주인공 ‘부피에’의 말없는 노력으로 죽음의 공간이 생명의 영역으로 바뀌어 감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처럼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리고 다른 생명에는 무관심한 문명의 위기에 진정한 문명의 영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부피에’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려 메마른 광야에서 매일매일 하나 하나의 씨앗을 심어감으로 메마른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한 사람의 말없는 행동함으로 먼지만 날리던 골짜기에선 다시 맑은 물이 흐르고, 말라버린 샘에선 생수가 솟아난다. 또한 생기를 느낄 수 없는 황량한 흙먼지만이 몰아치던 광야가 신선하고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동산으로 변해간다.

그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미래가 없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의 사르러져 가던 마을은 생기가 넘치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미래의 희망을 공유하고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바뀌어간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단 한사람의 말없는 행동함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주인공 ‘부피에’의 이런 모든 행동함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닌 이 땅의 생명력 회복을 지향하기에 그의 인격됨은 더욱 두드러진다. 철저한 이타적인 사랑과 행동함으로 인한 생명의 회복.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기적이 잊혀져 가는 문명의 시기이기에, 또한 타인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안위함만을 목표하는 현대사회이기에, 이러한 기적을 그리고 있는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나태해져 가는 나를 반성하게 하며, 움켜쥐기 위해 바둥거리는 우리네 삶을 부끄럽게 한다. 아울러 작은 힘이나마 이 땅의 회복을 위해 행동하기를 결단케 한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이 글은 읽는 사람들에게 긴 감동과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끝없는 생명력을 가진 글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생명의 나무를 심어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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