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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방귀 한림아동문학선
조현서 어린이 외 26명 지음, 제천기적의도서관 엮음, 나수은 외 그림 / 한림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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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빠 방귀』는 예쁜 동시와 그림이 함께 하는 어린이시 그림책이랍니다. 제천기적의도서관 어린이시 창작 동아리 ‘계수나무’의 어린이 회원들의 동시를 모아놓은 책이랍니다.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를 통해, 아이들만의 세상, 아이들의 느낌과 생각을 알 수 있는 귀여운 그림책이랍니다.

 

어떤 친구는 봄을 생각하며, 개미와 거미의 일광욕을 상상하네요. 또 어떤 친구는 봄을 떠올리면 몸이 뜨거워지나 봅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 맘껏 뛰어놀아서 일까요?

 

봄이 다가온다. / 나비도 신이 났는지 / 파릇파릇 날아다닌다. /

개미도, / 거미도. / 나와서 햇볕을 쬔다

< 조운호, ‘봄’ 일부 >

 

새싹들이 봄이 온다고 / 고개를 내밀었다. /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 봄이 우릴 부르면 / 내 몸 전체가 뜨거워서 땀이 난다.

< 이재준, ‘봄이 오는 소리’ 일부 >

 

이런 느낌, 생각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네요.

 

어느 아이는 고구마를 캐던 때를 떠올리며 시를 쓰네요. 그런데, 커다란 고구마를 뽑아 올릴 땐 으쓱하지만, 작은 것을 뽑을 땐, 왠지 움츠러들게 되는 그 마음을 참 예쁘게 표현하고 있네요.

 

작은 것을 뽑을 때 / 나도 작아진 것 같고 / 큰 것을 뽑을 땐 / 나도 커진 것 같았다.

< 박재형, ‘고구마 캐기’ 일부 >

 

참 솔직한 표현들이 미소 짓게 하지 않나요? 그런데, 더 이상 솔직할 수 없는 시가 있네요.

 

나는 원숭이처럼 잘 돌아다닌다. / 그런데 선생님이 자꾸 / 시를 쓰자고 졸라서 /

할 수 없이 시 교실에서 시를 썼다. / 축구도 하고 싶고 / 야구도 하고 싶은데 /

선생님 때문에 / 할 수 없이 시를 썼다.

< 손호재, ‘나’ 전문 >

 

오죽 활달하면, 자신을 ‘원숭이처럼 잘 돌아다닌다’고 표현했을까요? 그렇게 활달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가 선생님의 ‘조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시를 써주네요. 이 아이에게는 선생님이야말로 자꾸 조르는 아이로 여겨질 수 있겠네요. 마음은 여전히 운동장 축구놀이와 야구놀이에 가 있는데, 몸은 교실에 붙잡혀 시를 쓰는 그 억울함(?)을 시에 담아 적어내는 모습, 너무나도 솔직하고, 순수하지 않나요?

 

아이들이기에 이렇게 멋진 시가 나오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멋진 기교는 없을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들이어서 더 특별하네요. 아무리 뛰어난 성인 시인들이 아이의 심상을 갖고 쓴다고 해도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그런 진짜 아이들의 예쁜 시들이네요.

 

또한 아이들이 얼마나 예리하게 부모를 관찰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시들도 있답니다. 아빠는 힘도 센 장사죠. 하지만, 그런 아빠도 누군가를 만나면 양과 같이 순해진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가 관찰한 생활인 아빠의 모습이죠.

 

우리 아빠는 우리 집 자랑거리다. / 호두 깔 때는 킹콩처럼 /

그냥 손으로 꽉 쥐면 깨진다. // 우리 아빠는 사람들을 만나면 /

그 힘이 콩알만 해진다. / 사람들에게는 친절해야 하기 때문에 / 양처럼 순해진다.

< 이정호, ‘우리 아빠 ’ 전문 >

 

왠지 같은 아빠로서 서글퍼지는 내용이기도 하네요. 그래도 아이에겐 아빠가 ‘우리 집 자랑거리’니 참 황송하기도 하고요. 우리 아이에게도 내가 ‘우리 집 자랑거리’이길 소망해보네요.

 

이 외에도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시들, 참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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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 초록잎 시리즈 9
박방희 지음, 이유정 그림 / 해와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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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희 시인의 동시집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는 참 기발한 시집이랍니다. 시인의 심상이 때론 엉뚱하면서도 기발하게 느껴지네요.

 

시인의 세계에서는 새들이 문자를 보내고, 게임하러 가기도 한답니다. 하늘에 친 거미줄은 하늘이 굶주려 거미줄을 친 거라네요. 하늘의 목구멍에 거미줄을 쳤네요. 나뭇잎의 펄럭거림은 새들의 공연에 나무가 손뼉 쳐 주는 거라는 생각이 참 기발하며 예쁘네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검은 옷자락에서 빛나는 금단추라는 발상은 또 어떤가요?

 

이처럼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은 때론 엽기적이란 느낌도 갖게 한답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기도 하고, 책의 여는 시이기도 한 <정어리 통조림>이 그렇답니다.

 

비좁고 꽉 막힌 통 속으로 /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

<정어리 통조림> 전문

 

어떤가요? 한편으로는 생선 통조림에서도 바다를 느끼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또 한편으론 조각난 몸통들이 깡통 속에 꽉 찬 그 느낌이 왠지 엽기적이지 않은가요?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을 보며, “식은 밥”이라 노래하는 부분은 해학적이기도 하고요. 매미의 허물은 땅속에서 입던 배냇저고리란 표현은 귀여워 미소 짓게 하고요.

 

또 때론 의식 있는 시들도 많답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노래, <나의 좌표>도 있고요. 환경에 대한 노래들도 많답니다. <슬픈 백로>, <식목일>, <육지에도 섬이 있다>가 그렇네요. 특히, <육지에도 섬이 있다>란 시는 우리의 편리함이 동물들을 섬에 가두는 폭력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요.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시들도 있답니다. 마치 별보기 운동을 하는 것 같은 학생들의 고단한 하루를 노래한 <집에 오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드러내는 <포장마차 아버지>, 식당일을 나가는 고단한 어머니에 대한 노래 <꾸벅꾸벅>도 있고요. 자신보다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에 대한 노래 <세상에서 제일 큰 관>도 있답니다.

 

참 예쁜 시도 있고, 기발한 상상력, 엉뚱한 상상력, 해학적 유머, 의식 있는 노래들도 가득하답니다. 참 좋네요. 그 중에 한 시를 적어봅니다.

 

지붕 끝에서 눈 녹은 물들끼리 얼음땡 놀이 //

걸음마다 / 얼음! / 얼음! //

한 뼘 내려오는 데 / 꼬박. 하룻밤.

<고드름> 전문

 

참 예쁘죠? 이처럼 예쁜 시, 의식적 시, 유머가 담긴 시를 읽을 때,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 주머니는 더욱 커지리라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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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불 - 박은종 동시집 아동문학 보석바구니 6
박은종 지음 / 재미마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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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도서출판 재미마주에서 출간된 동시집 『초롱불』은 1958년 인간사에서 간행된 박은종 시인의 『초롱불』 초간본 을 다시 발간한 책이다. 표지 그림 및 본문의 그림 역시 당시의 그림 그대로 살려낸 것들이다. 그래서 마치 근대역사박물관에서나 봄직한 아우라를 풍겨낸다.

 

은종은 박화목 시인의 호이다. 평생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을 작품 활동을 했다는 박화목 시인의 『초롱불』에는 유명한 가곡 “보리밭”의 원작인 <옛 생각>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박화목 시인의 또 다른 유명한 시는 동요 “과수원길”이 있다.

 

이처럼 유명한 시인의 동시집 『초롱불』의 전체적 분위기는 목가적인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동시들이 마치 정겨운 고향 시골 풍경을 보는 듯 느껴지는 내용들이다. 초가집의 풍경, 저녁 어름의 달그림자, 눈 온 날 아침의 새하얀 풍경, 초가지붕이나 담에 주렁주렁 매달린 박넝쿨, 뒹구는 가랑잎 등 시인은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찬미한다. 물론, 시골 풍경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느낌은 다른 시각으론 적막하고 한적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시인은 허수아비의 허허로운 모습에서 외로움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며, 또 다른 시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그려내기도 한다.

 

많은 동시들 가운데 엄마와 아이의 관계, 사랑을 잘 느낄 수 있는 시 한편을 올려본다.

 

창 바깥에 흰 눈이 / 소복소복 내리는데 //

빨 - 간 창문에 / 아기 그림자 비쳤다. //

밤 한 톨 구어 달라 조르는 게지 / 대추 한 움큼 조르는 게지 //

사박사박 눈 길 위에 / 강아지 한 마리 지나가는데 //

빨 - 간 창문에 / 엄마 그림자 비쳤다. //

밤 한 톨 구어서 주려는 게지 / 대추 한 옴큼 주려는 게지.

< 창 > 전문

 

밤 한 톨, 대추 한 움큼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만족할 아이와 비록 작은 것을 건네주지만, 그 안에 담겨진 엄마의 커다란 사랑이 느껴진다.

 

한 동안 겨울왕국이 한반도를 휩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엘사 인형 하나에 8백 만 원이나 하는 놀라운 사실(물론 한정판)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또한 이보다 훨씬 싸긴(?) 하지만, 80만원하는 겨울왕국 캐릭터 인형은 순식간에 품절되었다 한다. 이처럼 어쩐지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 여겨지는 이들은 결코 느껴볼 수 없는 정겨운 정서의 시가 아닐까?

 

풍요로워 진만큼 어쩌면 삭막해진 이 시대에 옛 동시집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함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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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노래 - 이해인 수녀가 들려주는
이해인 지음, 백지혜 그림 / 샘터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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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노래』는 이해인 수녀님의 동시집 『엄마와 분꽃』(왜관 : 분도출판사)에 실려 있는 “밭노래”와 백지혜 선생님의 예쁜 그림들이 만나 이루어진 그림책이랍니다.

 

먼저, 이해인 수녀님의 아름다운 시가 살포시 미소 짓게 하네요. 평범한 텃밭에서 자라나는 채소들은 밭이 젖을 먹여 살려내는 아이들이 되네요. 그리고 밭은 그 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엄마가 되고요. 많은 아이들을 먹여야 하기에 밭은 ‘젖이 많은’ 엄마가 되어야만 하고요. 이처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밭에서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는 시인은 눈, 참 예쁘네요.

 

밭은 해마다 / 젖이 많은 엄마처럼 / 아이들을 먹여 살립니다 / ...

/ 아이들의 이름은 / 참 많기도 합니다

 

밭이 엄마의 마음으로 키워낸 채소들이라 생각할 때, 이제는 채소 한 점 허투루 대하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또한 아기 홍당무가 빨간 이유를 묘사하는 대목은 살며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고요.

 

땅속을 몰래 빠져나온 / 아기 홍당무가 / 흙 묻은 얼굴로 웃고 있다가

/ 나에게 들켜서 /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역시 시인입니다. 홍당무의 붉음을 이렇게 멋지게 묘사할 수 있음이 신기하기까지 하네요.

 

우리 아이들이 이해인 수녀님의 『밭의 노래』를 읽는 가운데, 땅의 모성(母性)을 깨닫게 되고, 그 생명력을 공급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게다가 백지혜 화가의 그림도 참 멋지구요. 시의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리네요. 왠지 채소와 꽃, 나비를 즐겨 그리신 신사임당을 떠올려보게도 되고요.^^ 이번 추석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할아버지 텃밭에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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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 - 우리 마음을 흔든 고은 시 100편을 다시 읽다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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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은 국민시인 고은의 수많은 시 가운데 엮은이가 100개의 시구(시의 전문 또는 일부를 선택)만을 골라 엮은 시집이다. 시인은 이러한 엮은이의 작업을 평가하길, 마치 자신의 많은 시들이 오랜 세월 자라 하나의 나무를 이루었다면, 엮은이는 이 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드러내며, 자른 나무로 칠현금의 악기를 만들어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가 무엇인지를 시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엮은이의 표현처럼 시가 시인이 연주하며 만들어낸 악보라면, 이 악보를 가지고 또 다른 연주를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모한 용기를 내어 독자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나이테를 드러내 선율을 만들어 본다. 비록 그 소리가 불협화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시인의 주옥같은 시 가운데, ‘삶’이라는 나이테를 뽑아본다.

 

시인은 말한다. 시는 오래전 신들의 희로애락이었다고. 신들의 희로애락이었던 시를 읊조린다는 것, 얼마나 큰 특권인가! 이런 특권을 누리는 고은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아울러 그 특권을 엿볼 수 있는 우리 역시 행복한 사람 아닐까?

 

이렇게 주어진 특권으로 시인은 궁핍 가운데서도 시의 풍요로움과 속 깊은 축복을 누렸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시가 허락하는 황홀경이란다. 그래서 시인은 힘겨운 가운데 시가 허락하는 황홀경을 통해, 삶을 일구어 낸다.

 

시인은 삶을 노래한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있어 시란 궁핍 가운데서 풍요로움과 황홀경을 허락하는 것이기에 시는 삶을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인은 삶 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존재를 재미나게 보여주는 시구가 있다.

 

풀 보아 / 나무 보아 / 똥 안 누고도 / 잘 사는 / 조각달 보아

나야 죽어도 달 못 되어 똥마려워 <무제시편 103> 전문

 

생활인인 시인은 삶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삶은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맞서야 하는 대상이다. 이러한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잘 보여주는 시가 <두고 온 시>이다.

 

갓난아기로 돌아가 /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 삶은 저 혼자서 / 늘 다음의 파도 소리를 들어야 한다 <두고 온 시> 일부

 

그렇다. 삶이란 아무리 힘겨워도 언제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숙제다. 그렇기에 이러한 삶 속에서 여전히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시인에게 있어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절하고 싶다 저녁연기 자욱한 먼 마을 <지나가며> 전문

 

그들이 항상 먼저였다 / 어둑어둑한 데서 / 거리의 쓰레기를 쓸고 있었다 / 그들이 먼저였다 / 공장으로 가는 그들이 먼저였다 / 첫차는 씽씽 달려간다 / 이때뿐이다 / 가장 좋은 때는 새벽뿐이다 / 그놈들 아직 뻗어있으니까 <새벽> 전문

 

이처럼, 힘겨운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삶을 이어나가며 새벽을 여는 사람들, 저녁밥을 짓는 아낙네들의 치열한 삶이야말로 경외의 대상이다. 나의 삶은 어떤 삶인지 돌아보게 된다. 난 어디에 속하나? 뻗어 있는 ‘그놈들’인가? 아니면 힘겨운 삶이라 할지라도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열고, 치열한 삶을 헤쳐 나가는 ‘그들’인가? 그놈이 아닌 그들이 되길 소망할 뿐이다.

 

이처럼 시인은 힘겨운 삶, 궁핍한 삶을 벗어나려는 도구로 시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시를 통해, 힘겨운 삶을 정면으로 맞으며 열어가기에 비로소 시의 황홀을 맛보게 된다. 그런 시인에게 고단한 삶마저 삶의 축복이 된다.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旅愁 158> 전문

 

떨어진 옷소매는 어쩌면 궁핍한 삶의 증거이지만, 그것이 되려 살아왔음의, 살아있음의, 살아감의 증거가 된다. 시인은 옷소매가 닳아 떨어진 것을 보며, 애처로워하거나 지난한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힘겨운 삶을 견뎌내며 살아왔음에 감사한다. 이러한 감사는 아버지라는 시에서 더욱 돋아진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아버지> 전문

 

이러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더 가지려는 마음, 더욱 움켜쥐려는 마음이 우릴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있진 않을까? 자녀들이 밥 굶지 않을 수만 있다면, 설령 밥을 굶는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따스한 밥 한 공기 앞에 둘 수 있다면, 그것이 극락이요 천국이라는 고백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가! 이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궁핍 가운데 누리는 시의 풍요로움이다. 이러한 “시의 황홀”을 맛볼 수 있음이 독자들에게는 축복이요 황홀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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